이 글은 정경석씨 본인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본인은 모릅니다. 동의를 받은건 아닌데 별 잘못은 아닐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군 생활의 성가대와 교회건축 (1978)
운 좋게 전방에서 근무하다가 후방인 부평으로 따블백 메고 내려 왔다. 집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 이렇게 좋을 수가… 군대 전공이 좋아 새로 생긴 부대에 나 같은 주특기 가진 사병들을 전군에서 차출하여 부대 하나를 만들었다.
그러나 새로 생긴 부대는 고생이 심한 법. 기존 있던 사병들 하사관이 군기 잡고, 타부대에서 올라 온 고참들, 밀리지 않으려고 졸병들 닥달한다.
새로 생긴 대대급 부대라, 부대 내에 교회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부평시내에 있는 부광교회와 자매 결연을 맺고 매 주일 트럭을 타고 나가 주일 예배를 드렸다.
본부 부대에 군종 사병이 하나 있어 이러한 종교 활동을 전담하고, 나는 우리 중대의 군종을 맡아, 내무생활을 하면서 주일 만 군종일을 하여 중대원들을 교회에 보내고 인솔하는 역할을 맡았다. 일등병인 졸병 때부터 이런 일을 하느라 고참에게 무척 눈치와 매를 얻어 맞았지만, 그렇게 군종으로 낙인찍혀 놓으니 겁이 없어 지고 내 밑에 눈치 보느라 교회 가지 못하는 졸병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도 편해졌다.
마침 부광교회에서 혹 부대원 중 성가를 잘하는 사병들 있으면 성가대를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어 부대 군종과 각 중대의 한 명씩 선발하였다. 우리 중대에는 내가 하고, 다른 중대는 나보다 조금 졸병인 사병들…
성가대를 하니 우선 제일 좋았던 것이 주 말 연습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토요일 근무가 끝나고 오후 4시경 외출증을 끊어 토요일 성가 연습을 참여하고 밤 늦게 다시 부대로 돌아 오는 생활. 다른 사병들이 무척 부러워 했으나 그건 하나님 잘 믿는 특권중의 하나였다.
어느 토요일 저녁 연습을 마치고 밤 늦게 돌아와 어두운 내무반에 들어가니 우리 내무반의 모든 사병들이 모두가 아파서 끙끙 거린다. 오후에 5파운드 타작이 있었단다. 내무반 보초가 나를 보더니
“K상병님이 너 돌아 오거든 오라 했으니 가봐.”
잔뜩 얼어 붙었다. 어두운 다른 내무반을 들어가니 오늘 타작한 장본인인 K상병이 나를 세우고는 하는 말이
“다른 사람 맞았으니 너도 맞아야지?”
“네”
“그러나 내가 너 때리면 하나님이 나 나쁜 놈이라 그럴 것 같은데?”
묵묵..
“넌 특별히 봐 주실 테니 조심해”
“감사합니다”
자매 교회에 지휘자로 계시는 분도 머리가 짧았다. 그 분은 타 부대에서 오시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먼저 계시던 지휘자가 미국으로 가는 바람에 공석이 생겨, 마침 자청한 사람이 군인이라 교회에서 부대와 얘기하여 정식 지휘자로 임명하였단다.
대전 목원대 성악 전공하신 분, 입대 전 우리 교회에서 성가대를 맡은 지휘자보다 음악성이 훨씬 뛰어 났다. 그 분에게 참으로 많이 성가를 배웠다. 그 분이 제대 후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 가고자 하였으나 교회에서 극구 붙잡아 매 주일 대전에서 올라 오는 수고를 하였다.
당시만 해도 입대 전에 늘 유행가에 심취했던 나이기에 내 소리가 다듬어 지지 않은 소리라 테너를 하다가 너무 소리가 튀었던지 베이스로 가라 해서 조금 기분이 안 좋긴 했지만 베이스하면서 소리를 많이 다듬어 지고 점점 내 유행가풍의 발성법도 사라졌다.
유난히 군인 성가대원들에게 각별한 정을 주신 부광교회의 고 흥배 목사님이 좋아 전역한 뒤에도 몇 번 가 뵈었다.
주일은 그렇게 밖에 나가 예배를 볼 수 있었지만, 수요일 저녁 예배와 주일 밤 예배를 못 드려 우리 군종들 끼리 기도하던 중, 부대 내에 교회를 건축하자 하고 군종 장교이신 상사님에게 말씀드려 부대장님의 허가를 받았다.
마침 부대에 못쓰는 콘셋트(창고) 건물이 하나 있으니 그걸 개조해서 사용하란다. 그 곳을 들어 가보고는 기가 찼다. 반원형으로 생긴 그 창고는 화학 약품을 저장하던 곳이라 냄새가 코를 찔렀고, 창문은 물론 냉방시설이 안되어 있으며 꾸불 꾸불한 양철로 만들어 진 천정도 아주 낡아 뜯어 내야만 했다. 바닥은 콘크리트도 다 깨져 다시 입혀야 했고….
우선 각 중대에 군종 사병들이 이 일을 맡아 하기로 하고 부대 일을 낮 시간에 열외 받았다. 아침부터 나가 그 더운 여름날에 방독면을 쓰고 천정에 있는 암면을 모두 걷어 냈다. 뜯어 낸 양철은 아스팔트 위에 놓고 테니스장을 다듬는 큰 콘크리트 롤러를 굴려 평평하게 하고, 의자는 부대 내 목공소에서 조달하여 전문 목공수가 만들어 주었다. 나무를 다듬느라 다리를 다치기도 하면서 세멘트를 구해 바닥을 새로 깔고, 페인트를 바르고, 창문을 만들고.. 등등 수 많은 작업을 하느라 여름이 다 갔고 고참들에게는 미움은 미움대로 받았다.
하는 일이 무척 힘들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을 하는 이가 없었다. 단지 하나 아쉬웠던 것은 입대 전 신학대학을 다니다 왔다는 모사병이 우리의 일에 너무 소극적인 태도와 신앙인 답지 않은 행동에 우리 군종들은 무척 분개하기도 했다.
교회의 내 외부가 거의 마무리 될 무렵, 우리는 교회의 집기 비품과 성경 찬송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다른 것은 부대 내 잉여 자재로 할 수 있었지만, 올갠이나, 탁자, 커튼 등은 모두 밖에서 돈 주고 사 와야만 하는 것이니, 후원금을 어디서 구하나…
우선 개인 월급을 털었다. 군인 사병 월급이라야 얼마나 되나? 몇 십만원 드는 비용은 도대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내가 나서기로 했다. 밖에서 구해 오기로…
인천 지역에 내가 연고가 많으니 이 곳 저곳을 다니면 후원금을 구할 수 있으리라.
우선 내가 다니던 화도교회를 가서 청년부와 상의를 했다. 많지는 않지만 해 보겠다는 약속을 받고, 다음은 나를 처음 교회로 인도한 김 목사님이 부목으로 계시는 계산 교회를 방문하였다. 그 곳은 주로 공장을 다니는 젊은이들이 청년부원이니 우리가 원하는 만큼은 기대하지 말란다. 한 반액 정도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좌우간 고맙다고 하고 다음은 성경 찬송가를 얻기 위해 입대 전 활동하던 인천 YMCA를 방문하였다.
기드온 선교회를 통해서 손 바닥 만한 성경은 언제라도 제공될 수 있지만 조금 큰 것은 어렵단다. 또한 찬송가도 누군가에게서 지원 받아야 하고… 무작정 부탁했다.
교회 이름은 진중교회라고 부대장이 명명해 주셨다. 계획된 헌당 일자는 가까워 오는데 비품을 구입할 헌금이 들어 오지 않아 애태우고 있던 중, 어느 날 화도 교회 청년부원들이 우리 부대를 방문했다. 준비한 헌금을 가지고… 그것도 내가 요청한 만큼의 헌금을…
며칠이 지나고 또 계산 감리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가 부탁한 전액을 바자회를 해서 모았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또 헌당일이 가까워 오자 YMCA에서 성경과 찬송을 가득 가지고 왔다. 부광교회에서 올갠을 기증해 주셨다. 복을 차고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
헌금으로 커튼, 휘장, 종, 방석 등 각 종 비품을 구입하고 나니 얼마나 좋던지…
헌당 예배를 드리는 날은 부광교회 여선교회에서 시루떡을 전 부대원이 먹을 만큼 잔뜩 해 오셨다. 너무 감사해서 내 눈에는 눈물만 펑 펑 쏟아졌다. 그 안에서 우리는 실컷 찬양하고 힘들면 교회로 가서 기도하고… 삼일 저녁이나 주일 저녁이면 예배 드리러 오는 사병들을 볼 때마다 영광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렇게 열심히 공을 드린 교회인데 우리가 전역 후 교인들이 많아 져 부대에서 주관하여 벽돌로 새 교회를 번듯이 지었단다.
- 참고 : 정경석님의 홈페이지 http://myhome.hanafos.com/~kschung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