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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의 성가대와 교회 건축

carmina 2015. 12. 11. 17:31

 

 

오늘 우연히 내가 홈페이지 초기에 만들던 1996년도 정도에 썼던 글을

군시절 자매교회 홈페이지에 발견했습니다.

아마 옮긴 이는 같이 성가대를 했던 부광교회 김용선이란 청년같습니다.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댓글 쓸려 했더니 내가 부광교회인이 아니라 안되네요..

 

 

 

자매부대 출신 정경석사병의 추억을 퍼왔습니다.
글쓴이 : 김용선 날짜 : 2003-07-12 (토) 00:00 조회 : 2055
이 글은 정경석씨 본인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본인은 모릅니다. 동의를 받은건 아닌데 별 잘못은 아닐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군 생활의 성가대와 교회건축 (1978)
운 좋게 전방에서 근무하다가 후방인 부평으로 따블백 메고 내려 왔다. 집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 이렇게 좋을 수가… 군대 전공이 좋아 새로 생긴 부대에 나 같은 주특기 가진 사병들을 전군에서 차출하여 부대 하나를 만들었다.

그러나 새로 생긴 부대는 고생이 심한 법. 기존 있던 사병들 하사관이 군기 잡고, 타부대에서 올라 온 고참들, 밀리지 않으려고 졸병들 닥달한다.

새로 생긴 대대급 부대라, 부대 내에 교회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부평시내에 있는 부광교회와 자매 결연을 맺고 매 주일 트럭을 타고 나가 주일 예배를 드렸다.

본부 부대에 군종 사병이 하나 있어 이러한 종교 활동을 전담하고, 나는 우리 중대의 군종을 맡아, 내무생활을 하면서 주일 만 군종일을 하여 중대원들을 교회에 보내고 인솔하는 역할을 맡았다. 일등병인 졸병 때부터 이런 일을 하느라 고참에게 무척 눈치와 매를 얻어 맞았지만, 그렇게 군종으로 낙인찍혀 놓으니 겁이 없어 지고 내 밑에 눈치 보느라 교회 가지 못하는 졸병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도 편해졌다.

마침 부광교회에서 혹 부대원 중 성가를 잘하는 사병들 있으면 성가대를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어 부대 군종과 각 중대의 한 명씩 선발하였다. 우리 중대에는 내가 하고, 다른 중대는 나보다 조금 졸병인 사병들…

성가대를 하니 우선 제일 좋았던 것이 주 말 연습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토요일 근무가 끝나고 오후 4시경 외출증을 끊어 토요일 성가 연습을 참여하고 밤 늦게 다시 부대로 돌아 오는 생활. 다른 사병들이 무척 부러워 했으나 그건 하나님 잘 믿는 특권중의 하나였다.

어느 토요일 저녁 연습을 마치고 밤 늦게 돌아와 어두운 내무반에 들어가니 우리 내무반의 모든 사병들이 모두가 아파서 끙끙 거린다. 오후에 5파운드 타작이 있었단다. 내무반 보초가 나를 보더니

“K상병님이 너 돌아 오거든 오라 했으니 가봐.”

잔뜩 얼어 붙었다. 어두운 다른 내무반을 들어가니 오늘 타작한 장본인인 K상병이 나를 세우고는 하는 말이

“다른 사람 맞았으니 너도 맞아야지?”

“네”

“그러나 내가 너 때리면 하나님이 나 나쁜 놈이라 그럴 것 같은데?”

묵묵..

“넌 특별히 봐 주실 테니 조심해”

“감사합니다”

자매 교회에 지휘자로 계시는 분도 머리가 짧았다. 그 분은 타 부대에서 오시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먼저 계시던 지휘자가 미국으로 가는 바람에 공석이 생겨, 마침 자청한 사람이 군인이라 교회에서 부대와 얘기하여 정식 지휘자로 임명하였단다.

대전 목원대 성악 전공하신 분, 입대 전 우리 교회에서 성가대를 맡은 지휘자보다 음악성이 훨씬 뛰어 났다. 그 분에게 참으로 많이 성가를 배웠다. 그 분이 제대 후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 가고자 하였으나 교회에서 극구 붙잡아 매 주일 대전에서 올라 오는 수고를 하였다.

당시만 해도 입대 전에 늘 유행가에 심취했던 나이기에 내 소리가 다듬어 지지 않은 소리라 테너를 하다가 너무 소리가 튀었던지 베이스로 가라 해서 조금 기분이 안 좋긴 했지만 베이스하면서 소리를 많이 다듬어 지고 점점 내 유행가풍의 발성법도 사라졌다.

유난히 군인 성가대원들에게 각별한 정을 주신 부광교회의 고 흥배 목사님이 좋아 전역한 뒤에도 몇 번 가 뵈었다.

주일은 그렇게 밖에 나가 예배를 볼 수 있었지만, 수요일 저녁 예배와 주일 밤 예배를 못 드려 우리 군종들 끼리 기도하던 중, 부대 내에 교회를 건축하자 하고 군종 장교이신 상사님에게 말씀드려 부대장님의 허가를 받았다.

마침 부대에 못쓰는 콘셋트(창고) 건물이 하나 있으니 그걸 개조해서 사용하란다. 그 곳을 들어 가보고는 기가 찼다. 반원형으로 생긴 그 창고는 화학 약품을 저장하던 곳이라 냄새가 코를 찔렀고, 창문은 물론 냉방시설이 안되어 있으며 꾸불 꾸불한 양철로 만들어 진 천정도 아주 낡아 뜯어 내야만 했다. 바닥은 콘크리트도 다 깨져 다시 입혀야 했고….

우선 각 중대에 군종 사병들이 이 일을 맡아 하기로 하고 부대 일을 낮 시간에 열외 받았다. 아침부터 나가 그 더운 여름날에 방독면을 쓰고 천정에 있는 암면을 모두 걷어 냈다. 뜯어 낸 양철은 아스팔트 위에 놓고 테니스장을 다듬는 큰 콘크리트 롤러를 굴려 평평하게 하고, 의자는 부대 내 목공소에서 조달하여 전문 목공수가 만들어 주었다. 나무를 다듬느라 다리를 다치기도 하면서 세멘트를 구해 바닥을 새로 깔고, 페인트를 바르고, 창문을 만들고.. 등등 수 많은 작업을 하느라 여름이 다 갔고 고참들에게는 미움은 미움대로 받았다.

하는 일이 무척 힘들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을 하는 이가 없었다. 단지 하나 아쉬웠던 것은 입대 전 신학대학을 다니다 왔다는 모사병이 우리의 일에 너무 소극적인 태도와 신앙인 답지 않은 행동에 우리 군종들은 무척 분개하기도 했다.

교회의 내 외부가 거의 마무리 될 무렵, 우리는 교회의 집기 비품과 성경 찬송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다른 것은 부대 내 잉여 자재로 할 수 있었지만, 올갠이나, 탁자, 커튼 등은 모두 밖에서 돈 주고 사 와야만 하는 것이니, 후원금을 어디서 구하나…

우선 개인 월급을 털었다. 군인 사병 월급이라야 얼마나 되나? 몇 십만원 드는 비용은 도대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내가 나서기로 했다. 밖에서 구해 오기로…

인천 지역에 내가 연고가 많으니 이 곳 저곳을 다니면 후원금을 구할 수 있으리라.

우선 내가 다니던 화도교회를 가서 청년부와 상의를 했다. 많지는 않지만 해 보겠다는 약속을 받고, 다음은 나를 처음 교회로 인도한 김 목사님이 부목으로 계시는 계산 교회를 방문하였다. 그 곳은 주로 공장을 다니는 젊은이들이 청년부원이니 우리가 원하는 만큼은 기대하지 말란다. 한 반액 정도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좌우간 고맙다고 하고 다음은 성경 찬송가를 얻기 위해 입대 전 활동하던 인천 YMCA를 방문하였다.

기드온 선교회를 통해서 손 바닥 만한 성경은 언제라도 제공될 수 있지만 조금 큰 것은 어렵단다. 또한 찬송가도 누군가에게서 지원 받아야 하고… 무작정 부탁했다.

교회 이름은 진중교회라고 부대장이 명명해 주셨다. 계획된 헌당 일자는 가까워 오는데 비품을 구입할 헌금이 들어 오지 않아 애태우고 있던 중, 어느 날 화도 교회 청년부원들이 우리 부대를 방문했다. 준비한 헌금을 가지고… 그것도 내가 요청한 만큼의 헌금을…

며칠이 지나고 또 계산 감리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가 부탁한 전액을 바자회를 해서 모았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또 헌당일이 가까워 오자 YMCA에서 성경과 찬송을 가득 가지고 왔다. 부광교회에서 올갠을 기증해 주셨다. 복을 차고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

헌금으로 커튼, 휘장, 종, 방석 등 각 종 비품을 구입하고 나니 얼마나 좋던지…

헌당 예배를 드리는 날은 부광교회 여선교회에서 시루떡을 전 부대원이 먹을 만큼 잔뜩 해 오셨다. 너무 감사해서 내 눈에는 눈물만 펑 펑 쏟아졌다. 그 안에서 우리는 실컷 찬양하고 힘들면 교회로 가서 기도하고… 삼일 저녁이나 주일 저녁이면 예배 드리러 오는 사병들을 볼 때마다 영광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렇게 열심히 공을 드린 교회인데 우리가 전역 후 교인들이 많아 져 부대에서 주관하여 벽돌로 새 교회를 번듯이 지었단다.

- 참고 : 정경석님의 홈페이지 http://myhome.hanafos.com/~kschun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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