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아시아방문기

방콕공항에서의 하루

carmina 2016. 1. 7. 15:06

 

 

방콕공항에서의 하루 (1997. )

 

13시간 하루일을 하다 보면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다. 아침 7시정도 출근해서 집에 8시에 돌아오면 13시간이 되고 하루일을 회사에서 지내는 것 또한 별로 어려운 일 아니다. 오전에 회의 한번하고 화장실 한번가고 서류 보고 공문 서너개 보다보면 점심시간이 되고 오후에 타부서 몇 번 방문하고 서류서너개 작성하고 컴으로 들어오는 뉴스 몇개 보다보면 하루해는 금방 간다.

 

그래서 방콕에서 TRANSIT하는 13시간을 컴퓨터도 있겠다 별로 힘들진 않겠구나 하고 방콕 시내로 나가지 않고 그냥 공항내에 눌러 있어 보기로했다.

 

밖으로 나가면 우선 여행사를 접촉하고 방콕 시내 관광을 해야 하는데 태국이 불교국가라 기껏해야 절 몇개 보는 것이 끝이다. 관광이 끝나면 보석파는데 가서 시간을 때우게 하고. . 저녁엔 할일 없어 대개 야릇한 느낌을 들게하는 태국 보디 사우나에 관심을 갖게 되기 마련이고 호기심에 가보기도 할 것 같고 해서 오늘은 그 뿌리를 싹둑 잘라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공항이란 곳이 세계여행을 하는데 가장 흥미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온갖 민족들이 스쳐 가는곳 저마다의 차림으로 모습으로 총총걸음으로 혹은 혼자 있을때 하는 짓거리들을 볼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는 누구든지 마음대로의 복장을 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이 곳은 어느 국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공항내 직원들이 제지하는 것은 토롤리를 가지고 들어가서는 안되는 곳에 서 있고 그런 사람을 제지하는 일 뿐.

 

세계의 민족들이 저 마다의 의상으로 나타나는 곳이다. 티벳트의 승려들의 장삼을 걸친 모습을 보면 윗 어깨가 훤히 들여나 보여 너무 섹시하고 유명 해변가를 관광하러 다니는 서양 아가씨들은 배꼽티와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인도인들의 사리 복장과 무척 촌스러운 복장의 중국 사람들, 거의 누더기를 입은 것 같은 아프리카 흑인들. 그들의 손에는 무엇인지 늘 잔뜩 손에 들고 있다.

 

공항에서 CHECK IN 할때 무료로 보낼 수 있는 짐의 한계가 있으니 그들은 가능한 손으로 많이 들고 다닌다. 가끔 기내로 들어갈때 말썽이 일어나는 일도 있다. 그것도 제대로 된 가방이 아니고 비닐 봉지 큰 것에 가득 담아 다니므로 보는 사람이 저게 언제 터지나 하는 조바심도 갖게 된다. 여자들의 거침없는 흡연 과 어느때는 정말 유명 영화배우 뺨치는 외국여자들이 풍만한 가슴을 털렁대며 앞을 지나갈때는 왜 그리 내 시야는 그 곳을 쫓아가는지...

 

쿠웨이트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오전 11시 30분경 방콕에 도착하고 우선 공항내에 호텔 비슷한 수준의 숙박할 수 있는 곳이 있어 가보니 무려 2인에 90불이라 한다. 한명에도 90불. 에라 참자. 사우나도 있길래 그곳에서 자도 되느냐고 했더니 가능하다면서 사우나로 안내한다. 아니 이런 거 말고..

 

사우나는 일인용 사우나로 완전히 빠삐용의 독방같다. 나무의자가 있고 그 위에 나무위에 들어 눕게 되어 있다. 아니 이런 곳에서 자도 된다고? 누굴 통째로 익힐 일 있어? 에라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

90불이면 밖에 나가서 관광해도 되는 요금이다.

 

누구처럼 FIRST CLASS티켓을 가지고 있으면 VIP LOUNGE나 가서 시간을 때울 수 있으련만...

우선 청사내에 컴퓨터를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전기콘센트가 사용 가능한 곳을 찾았다. 마침 창가에 그런 자리가 있어 편하게 자리 잡았다.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웃도리도 벗어 던지고 화장실도 미리 해결했다. 컴을 키고 쿠웨이트에서 쓰다만 여행기를 이어 나갔다. 글을 술술 이어 나가고

내용은 거의 마무리 지었는데 한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일찍 끝나면 안되는데.. 너무 의자에 앉아 있으니 엉덩이가 아픈것같기도 좀 걷기로 한다. 공항 전체내 흩어져 있는 면세점을 두루 두루 둘러 보았다.

 

또 한 시간 때웠다. 이번엔 좀 잠을 취해야 겠다. 의자를 적당히 붙여서 편하게 누울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놓고 길게 기대서 잠을 청하는데 쉽게 오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잠에 빠져든다. 중간 중간 깨서 시계를 보아도 시간이 쉽게 가진 않는다. 계속 졸면서도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데 하는데 하는데 하면서도 계속 일어서질 못하겠다. 4시경 더는 못 잘 것 같아 인근의 KFC로 향한다. 공항내 KFC가 있는 곳은 아마 여기 뿐이리라. 저렴한 돈으로 한 끼니를 해결한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 오가는 사람 들 다 보아가며 닭날개의 구석구석이 살을 빼 먹는다. 감자튀김 조그만 조각까지 남김없이 먹고 콜라의 얼음도 조금씩 녹여 먹는다. 이곳은 셀프서비스가 아닌가 보다. 다른 이들도 먹은 것을 그냥 놓고 나간다. 여행다니면 촌스럽지 않은 비결이 있다. 남들이 하면 똑같이 해라. 남들 먹는 것 먹어라. 나도 그냥 두고 일어선다.

 

이럴때 음악이라도 있으면 그냥 파 묻힐수 있으련만 ... 아무것도 안해도 시간을 보낼 수 있으련만... 평소 이어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카세트를 안가지고 다닌다.

 

이럴줄 알았으면 게임 씨디나 가지고 올 걸... 컴퓨터 게임은 별로 안하지만 이럴때 킬링 타임하기엔 최고일텐데... 그러나 떠나간 버스. 다시 컴을 키고 지난 번 쓰다 만 산행일기를 계속 써 보기로 한다. 그것도 쓰다 보니 30분정도에 모두 끝냈다. 아직 오후 6시. 이제 반정도 보낸 셈이다. 운동해야지. 다시한번 면세품코너를 이끝에서 저끝까지 순례한다. 그리고 과일 파는가게에서 코코넛열매를 제법 상품답게 깍아놓고 팔길래 하나 사서 시원한 열매즙을 먹는다. 역시 이맛이 자연의 맛이야. 코코넛 열매에 빨대를 꼽고 마시면서 가는데 누군가 나를 단체로 쳐다 보는 인기척이 있어 주위를 보니 의자에 나란히 시커먼 계통의 양복을 입고 이상한 밀짚모자와 양복의 깃에 빨간 뺏지를 단 일행들이 나를 계속 쳐다 보고 있다. 아 북한 사람들이구나. 어쩌면 저렇게 똑같은 복장들일까? 저들은 해외 여행 다닐때 양복을 빌려 입고 다닌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지금 저 모습에서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난 일부러 허리를 더 곧게 세우고 지금 내 복장이 저사람들 눈에 보기에 무척이나 이상한 개량 한복이기 때문에 더 의젓하게 걷느라 애를 써본다. 그리고 옆의 보석파는 가게에 들어가 그 들이 보는 앞에서 이것 저것 구경을 한다. 그러면서 흘낏 그들을 보니 역시 나를 계속 쳐다 보고 있다.

 

그래도 시간은 요지 부동이다 왜 이리 하루가 긴지... 아니 평소엔 이렇게 길지 않았는데... 방콕시간은 좀 늦게 가나? 내 시계가 틀리는지 맞는지 확인하는 것도 이젠 지겹다. 또 구석에 앉아 잠을 청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귀마개를 가져올걸.. 많이 잤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30분이 지났다.

 

일부러 사람들 많은데 가서 앉았다 눈요기라도 할려고 맥주도 하나 사서 먹고 조금은 알딸딸하게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아는체를 한다. 일본말. 무언가를 물어본다. 보딩패스를 내 보이면서 게이트 번호를 모르겠단다. 갑자기 머리속에 옛날에 배웠던 일본 단어들을 떠 올리느라 손이 자꾸 위로 올라간다. 일본어보다는 영어가 더 빨리 튀어 나오고 나에게 일본말로 물어보는 아가씨에게 일본어로 영어를 아느냐고 했더니 전혀 모른단다.

 

도움을 청하는 뜻을 알고 아가씨를 끌고 출국 상황판이 있는 모니터 앞에가서 아가씨의 비행기는 아직 게이트 번호가 주어지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여기 앉아서 기다리라고 일러준다. 아가씨는 구세주를 만났는지 계속 조잘 조잘 댄다. 난 겨우 겨우 알아 듣고 아가씨에게 말좀 천천히 하라고 부탁을 해도 원래 말이 빠른지 속사포같이 계속 쏟아낸다. 네팔에서 일하고 오는 길이고 네팔돈을 내 보인다. 환전이 가능한지 모르겠다면 나에게 짐을 맡기고 환전창구 다녀 오더니 실망해서 온다. 그리고 나보고 혹 면세점에서 일본돈을 받는지 궁금하다며 가서는 잔뜩 무언가를 사온다. 아가씨는 신이 났다.

잘 알아 듣지 못하는 말을 계속 나에게 쏟아 붓길래 가서 모니터 한 번 다시 오라고 말하니 마치 학예회 나온 어린애 같은 발걸음으로 다시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내가 일본인인줄 알았단다. 내가 그렇게 못생겼나? 그래서 내 복장을 보여 주었다. 일본인이 이런 옷을 입느냐고... 그랬더니 앉아 있어서 복장은 못 보았단다. 잠시 후 아가씨의 비행편 게이트 번호가 확인되고 아가씨는 아리가도우 고자이 마스 하며 총총 걸음으로 사라졌다. 덕분에 시계를 보지 않고도 한 30분 또 때웠다.

 

이젠 나도 본격적으로 대한 항공 TRANSIT COUNTER 앞에 가서 앉아 있어야겠다. 자꾸 더워지는 걸 보니 내가 힘든 모양이다. 화장실가서 세수를 하니 코피가 나올려는지 빨간 빛이 보인다. 하긴 지난 밤을 제대로 못잤으니 그럴 만도 하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늘 코피가 나오니 이미 예상은 했다.

잠시후 KOREAN AIRLINE COUNTER가 열리고 CHECK IN을 하며 가능한 앞자리를 달라 하니 처음 끊어 놓았던 표를 가지고 여기 저기 한참을 전화를 한다. 한 10분 정도 지나 아가씨는 미리 끊은 표를 찢어 버리고 비지니스크라스 같은 표를 내 준다.

 

THANK YOU 마드모와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