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아시아방문기

중국 상해 - 작가 세미나 참석

carmina 2016. 11. 1. 16:01

 

 

2016. 10. 29

 

비행기가 상해에 가까워질 쯤 창문으로 누런 흙탕물이 보였다.

저게 무엇일까?

비가 와서 산의 흙더미가 바다로 쓸려내려 오는 것일까?

그러나 비행기가 서서히 선회를 하며 착륙준비를 할 때

그 끝도없는 바다의 흙탕물이 바다의 색깔임을 알 수 있었다.

 

서해바다를 황해라 부른다. 누런 바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쪽에서 바라보는 서해 바다는

동해나 남해의 바닷물처럼 맑지는 않고 갯벌 때문에

탁한 모습은 있지만 그렇게 누런 색깔은 더욱 아니다.

실로 놀라웠다.

지금 내가 보는 바다는 완전히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황금빛 바다였다.

 

그런 황금빛 바다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젠 끝없는 들판이 보인다.

낮게 나르는 비행기 아래로 들판이 보이기에 곧 착륙하는 싶었는데

그 벌판이 언제까지 지속되는지 시간을 재고 싶을 정도로

한참을 날아 착륙했다.

 

산티아고 기행문을 출간하기 위해 선택한 더클출판사에서

무척 정열적인 사장님이 매일 아침마다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들과 작가의 소개를 아주 멋드러지게 작성하여 보내는 것을

참 이런 사업가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는데 이젠 한 술 더 떠서

작가들의 세미나를 외국에서 한단다.

지난해에 필리핀 세부에서 1차를 하고  올해는 중국의 상해로 선택하여

2박 3일간의 여정으로 세미나와 시내 관광을 겸하는 계획이다.

 

첫날 비행기 출발시간이 아침 9시경인데 공항에 6시까지 오라한다.

주로 전북지방 작가들이 많은 듯 전주에서 버스한대로 새벽 2시 반에

출발한다기에 가까운 곳에 살면서 늦으면 안될 것 같아

그 시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대중교통 시간을 알아보니

막막한 지경이다 부천터미널에서 떠나는 5시의 첫차리무진도 소사와 시흥을

거쳐 가게에 무려 1시간 반이나 걸린다. 그래도 그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28일 저녁에 예술의 전당 음악회에 공연이 있어 갔다가 인터미션시간에 집으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며 알람을 해놓고 일찍 잠에 드니 걱정이 태산같다.

멀리서 오는 사람도 시간맞추어 오겠다는데 가까이 살면서 예상되는 지각도착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새벽 2시경에 눈을 뜨고 인터넷으로 여러가지 검색해보니

다행히 김포공항에서 새벽 4시부터 15분 간격으로 인천공항으로 가는 대한항공 리무진편을

발견하여 무려 한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만나기로 한 체크인 카운터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카트에 책을 가득 싣고

오고 있다. 그들은 나를 모르기에 슬며서 그들 옆에 앉아 눈치만 보고 있는데

평소 단체카톡 사진으로 눈에 익은 여자분이 나를 보고 기웃거리며 눈인사를 건넨다.

아마 내가 올린 산티아고 동영상속의 내 얼굴을 기억하는 것 같다.

그제서야 그 들과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새로 전학온 학생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은 참 어색한 시간이었다.

 

첫날 낮에 상해에 살고 있는 분의 출판기념회가 있기에 책을 500권을 가지고 간다.

중국항공으로 내정되어 있던 항공편이 캔슬되고 아시아나로 바뀌어 갑자기

짐처리가 곤란해졌다. 어쩔 수 없이 각자의 개인 여행가방에 책들을 집어 넣고

기내운송을 하기로 하고 소란을 피운 끝에 다행하게 별도의 운송비용없이 짐을

모두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누구하나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직장 생활 36년동안 여권에 입출국 도장 찍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전세계의 수없이 많은 나라로 출장가방 싸들고 다니던 해외여행 .

그러나 지난 3월 퇴사하고 2달동안 스페인 산티아고를 다녀 온 후 이제는 별로

공항에 올 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 불과 4개월만에 다시 비행기를 타며

앞으로 내 여생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자못 설레었다.

 

단체여행이다 보니 모든 절차가 조금 까다롭고 반드시 전체 일행이 움직여야 하기에

수속이 복잡했다. 그런데 이 단체 모임은 이상하다. 어렵고 힘들고 귀찮은 출국 수속일을

모두 여자들이 뛰어다니며 처리하고 있다. 그간 얼마나 많은 교류가 있었기에

이렇게 모두 반갑게 얘기하고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낸 사람들처럼 스스럼없이 행동할까?

그 중엔 두 다리가 불편하여 양쪽에 목발이 있어야만 걷는 분도 있다.

 

1시간 40분 정도의 짧은 비행후에 도착한 상해공항.

사람이 많다 보니 늘 시간이 지체되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일반관광단체라면 누구 누구 없다며 볼멘소리를 자주 할텐데

누구 하나 그런 불평이 없다.

 

많은 책을 가지고오니 세관의 검사에 걸린 일행을 기다리다가 길이 어긋났다.

우린 당연히 검사 후 하나밖에 없는 출구로 나올 줄 알았는데

검사를 마친 그들은 다른 문으로 나와 또 시간이 지체되었다.

우리가 인천공항에서 중국항공의 결함으로 아시아나항공으로 바꾸어 탔기에

상해에서 만나기로 한 여행사의 버스와도 계획이 어긋났다.

가이드는 중국항공이 연착되어 오후 늦게나 온다는 정보만 알고 있었다.

 

잃어버린 일행을 찾느라 여기 저기 팔방으로 뛰어 다니는 것도

모두 여자회원들이었다. 늘 이런 일에 도맡아 하던 내가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우리가 버스가를 승차한 시간에 이미 오늘 가지고 온 책 발간을 기념하는

출판기념회는 상해의 큰 호텔에서 열리고 있어 일을 맡은 이는 상당히

조바심났을 것이다.

 

잿빛 하늘아래 덮힌 상해시의 모습이 보인다.

중국은 대나무의 나라라고 했던가.

대표적인 아카데미 수상작인 중국영화 와호장룡에서도

대나무위에서 벌이는 결투가 환상적이다.

중국의 상징동물은 판다도 대나무 잎만 먹고 살기에

대나무는 그들의 생활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나무를 심듯 상해는 빌딩으로 온 도시를 채웠다.

도무지 끝이 안보이는 빌딩 숲들.

처음에는 고속도로 주변으로 아파트만 주로 보였다.

그러나 도심지에 가까울 수록 보이는 고층빌딩들은

모두 제각각의 모양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상해정부는 도시의 미관을 위해 절대 빌딩이 같은 디자인으로

건축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 이렇게 지었다 한다.

과거 싱가폴이 이러한 정책을 이용해 도시의 아름다움을 계획하였기에

지금도 국토가 좁은 그 나라를 가면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데 인색함이 없다.

그러나 그 시절 한국에서는 획일적인 군사정책같이

모두 성냥갑같은 빌딩들이 우후죽순으로 지어졌다.

 

빌딩들을 보면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왜 빌딩들의 이름이 별로 보이지 않을까?

하다못해 아파트조차도 건물의 높은 부분에 이름이 없다.

동수를 작게 쓰고 멀어서 그런가?

내 눈에는 아파트 번호는 물론 동번호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상해를 상징하는 건물 몇개가 보였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다는 상하이센터빌딩과

독특하게 지은 동방명주빌딜,

그리고 내일 관광코스에 들어있는 병따개 모양으로 유명한

상하이금융센터빌딩(SWFC)이 우뚝 솟아 있다.

  

문득 아파트건물 베란다에 주렁 주렁 매달려 있는 빨래들을

보며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가이드의 설명이 곧 이어졌다.

상해는 습도가 많아서 집에 빨래를 널 수 없기에

누구나 이렇게 아파트베란다에 대나무를 이용해 빨래를 널고 있다한다.

한 때 우리나라도 이런 것이 허용되었지만 이제는 금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는 비교적 속도를 낼 수 있었는데

행사장인 Marriott 호텔로 가는 길은 거의 주차장 수준이다.

출판 기념회 행사가 거의 끝나갈 시점에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 책을 출판한 한 분은 상해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한 때 한국에서 탤런트였다가 상해를 와서 클린룸 사업을 했다 한다.

사업하느라 전세계를 다녀서 책 제목도

'상하이 콧수염의 지구백바퀴'

놀라운 것은 딸이 3명 있는데 모두 미스코리아 출신이다.

행사 중에 그중 미스코리아 진이었던 둘째 딸에게

내 조카도 2007년도 미스코리아 선 출신이고 이름을 알려 주니 

언니를 잘 안다며 무척 반가와 했다.

 

식사를 위해 현지의 한국인들이 있는 테이블에 앉았는데

옆에 앉은 이가 내게 안면이 있다며 손을 건넨다.

나도 낯이 익은 사람인데 누구일까?

혹시 대기업 다니시느냐고 물었는데 아니라 한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서로 친근한 얼굴이라 악수를 하고나서는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머쓱했지만 괜히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단상에서 무척 낯익은 나이드신 이가 베사메무초와 가곡 얼굴을 부른다.

누구일까?

 

행사 후 이제 우리끼리의 웍샵을 위해 이 출판사에서 책을 낸

작가가 운영하는 갤러리를 찾아갔다.

전시된 그림이 독특하다. 사람의 일생을 몽환적인 그림으로

그려 자꾸 무언가를 찾고 싶다. 그림감상은 나 자신과 그림을 통한

화가와의 암묵적인 대화가 있어 매력적이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화가의 생각을 읽어 내고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의도를 간파해 내기도 한다.

 

이미 책을 낸 작가들 20여명이 모두 순서대로

자신의 책에 대한 배경을 짧게 이야기했다.

비록 짧지만 모두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데 조리가 있었고

확실한 신념이 있었다.

주로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책으로 발간한 작가들은

책의 간단한 소개를 통해 '나 이렇게 가치있게 살았다'라며

자신감있는 태도로 발표를 했다.

 

참으로 다양한 주제들이 있었다.

사업을 하며 겪은 이야기.

자신의 인생을 강연하며 사는 사람들.

평범한 가정주부가 세상으로 나와 지낸 이야기

이미 시중에서 베스트셀러로 손꼽힐 만큼 눈에 익은 제목의 저자

군부대를 다니며 장병들과 책과 글쓰기를 가르치는 작가

사춘기 청소년들과 대화하는 상담가

자녀를 키우며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쓴 작가

세계최초 후불제 여행사를 차린 남자의 꿈.

예술가, 개그맨, 상담가, 방송인, 사업가 등등 

그들은 모두 세상을 멋지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곧 책이 나올 작가들도 자신의 책 소개가 있었다.

그리고 몇 명을 선택해서 특별히 더 심도있게 이야기하는 과정에

내게 기회가 주어져 산티아고 까미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발표 후 몇 명이 혹시 산티아고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도

발표해 줄 수 있느냐며 의향을 물어오기에 '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며 언제든지 기회되면 하겠다 했다.

 

살다보니 이런 모임에도 참석하는 내 자신이 신기했다.

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독서관련으로

모임을 가져 본 적이 없는데 작가들과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갤러리를 운영하는 작가의 원대한 포부를 들으며

이 모임의 한 조각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꼈다.

 

이 곳 상해에는 3명의 작가가 거주하고 있기에

여행기간동안 사업을 하는 그들의 지극한 환대에 모두 감동했다.

베풀고 베풀고 차고 넘치도록 그들은 우리 일행에게 베풀었다.

 

정통 중국 레스토랑에서 끝없이 나오는 맛있는 음식을

고급 백주와 함께 즐기고 밤늦게까지 여흥을 불살랐다.

 

두번째 날 ...

 

오늘은 종일 관광이다.

우선 상해에 오면 누구나 가보는 초고층빌딩의 전망대다.

위키피디아의 정보에 따르면 현존하는 세계 최고빌딩은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빌딩 (높이 828m, 163층) 그리고

2위로 상하이센터로 명시되어 있다.

높이가 무려 632m인 123층짜리 무역센터건물이다.

최근에 한국에 건설한 롯데타워는 5위로 랭크되어 있다.  

 

오늘 우리가 올라가는 곳은 세계금융센터빌딩(SWFC)이다.

통상 병따개 모양의 빌딩이라 하는데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설계를 담당한 일본 업체가 빌딩의 상단에 원형의 모양을 만들려 했는데

빌딩에 원형을 공간을 만들면 일장기를 연상한다해서 사각모양으로

중국정부에서 변경했다 한다. 만약 원형으로 되었더라면 그 사이로

비치는 붉은 태양의 모습이 장관이었을 것 같고 그것을 보기위한

또다른 여행 코스가 될 것만 같았다.

그 뻔히 보이는 발상을 일본의 침략을 경험한 중국이 그냥 둘리 없었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고 휴일이라 그런지 교통이 한산했다.

버스가 상해의 강남같은 푸동지역으로 가기 위해

황포강의 지하터널을 이용하여 버스로 갈 수 있다.

우리 일행 중 상해에서 90년대 초반부터 살고 있는 분의

설명에 의하면 이 이 지역이 당시만해도 거의 농촌지역이었다 한다.

급격하게 늘어나는 인구와 고도성장으로 만들어진

이 곳을 완전히 금싸라기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버스가 빌딩 숲을 지날 때 창문으로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 보아도

빌딩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빌딩 숲 사이에 내려 하늘을 보니

완전히 압도당하는 분위기다. 마치 거대한 공상과학 영화의 한 복판에

서있는 느낌이랄까.  카메라를 아주 낮은 자세로 엎드려 사진을 찍어도

좁은 렌즈구멍으로 빌딩의 끝까지 안잡히자 사람들은 도로 바닥에 누워

빌딩을 촬영하는 진풍경를 연출하기도 했다.  

 

빌딩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니 천정에 디지털로 큰 숫자가

빠르게 돌아가며 높이를 표시하고 있다. 순식간에 몇 백 미터를

올라가 97층에 도달했다. 그 곳에서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 1차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상해시의 모습이 다행하게도

날씨가 좋아 모두 선명하게 보였다.  

 

누런 강물이 있는 포구라는 뜻의 황포강으로 둘러쌓인 푸둥지역은

강폭이 넓어 대형 화물선들과 바지선들이 마치 물결에 천천히 떠밀려 가듯이

저 멀리 아래에서 지나가고 있다. 그 모습이 거대한 태풍에 휩쓸려 내려가는 홍수에

집들이 떠밀려 내려가는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바닥에 일부분을 유리로 만들어 놓아 아찔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지만

양옆이 막힌 공간이라 그런지 그다지 사람들이 두려워 하지 않고 즐기고 있었다.

창문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건물 중 눈에 확 뜨이는 동방명주 탑이 아름다웠다.

하늘을 향해 거대한 레이저포를 발사할 것만 같은 모습의 이 탑은

유독 높은 초고층 빌딩 사이에 있으면서도 상해의 아이콘으로 불릴만한 건축물이다.

 

어제 고가도로에서 지나치며 본 거대한 아파트나 상가건물들은 거의 미니어쳐 수준이다.

영화에서 멀리 보이는 장면들을 CG로 처리하듯 지금 내가 보이는 것이 혹시

VR처럼 가상으로 보이는 장면은 아닐까?

 

97층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100층으로 올갔다.

97층에는 베란다가 있어 보이지 않던 동방명주의 모습이 이제 뚜렷하게 보였다.

참 아름답구나.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연상되는 진기한 풍경이다.

 

멀리 작은 공원이 보이지만 아마 직접 가보면 큰 공원일 것이다.

어느 건물하나 밋밋하게 지은 것이 없다. 모두 다른 모습으로

설계를 한 것은 마치 중국이 이렇게 큰 나라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부천의 내가 사는 집도 66층의 초고층빌딩이라 가끔 옥상에 올라가면

아래로 보이는 것은 네모난 나무토막으로 도미노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모두 일정한 건물의 외양을 가지고 있다.

 

남산꼭대기에 올라가 서울 시내를 내려다 봐도 특색있는 빌딩은 몇 개뿐

거의 나무토막을 잘라 세워 놓은 것 같은 빌딩들이 부지기수이다.

 

온갖 다른 피부색을 가진 관광객들이 밀려와 유리창에 대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댄다.

아마 대부분의 사진이 유리에 반사되어 찍히니 만족할만한 작품은 얻지 못할 것 같다.

 

빌딩을 내려오니 저층 식당가에서는 아이들의 소리가 크게 울렸다.

카페테리아가 몰려 있는 공간에서 여러가지 복장을 하고

할로윈데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고 어린이를 위한 쇼도 하고 있다.

이쪽 지역은 젊은이들의 거리인 듯 거리엔 할로윈데이를 상징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서구의 퇴폐적인 문화를 막고 싶어도 인터넷을 통해 들어오는 물결은

바람같이 막을 수 없다. 중국에서는 어떤 연유인지 한국의 카톡이나

미국의 페이스북, 유튜브 및 트위터를 접속할 수 없다. 아마 이것도

우회하는 방법 있으니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일 것이다.

 

빌딩을 내려와 일행 한 명이 핸드폰을 분실했다고 얼굴이 사색으로 변해

급히 비상이 걸렸다. 가이드가 전화를 하고 여기 저기 수소문하더니

결국 어느 마트에 놓고 온 핸드폰을 찾았다며 기뻐했다.

아마 핸드폰안에 끼워 둔 언론사 사원증을 보고 보관해 둔 것 같다며

좋아했다.

 

길거리에 오토바이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는데 거의 모두 전기충전식이다.

공해와 매연을 대표하는 중국이 변하고 있다.

 

서울의 강남거리같은 상해의  남경로를 찾았다.

이 곳에 오니 과연 중국다웠다.

끝이 안 보이는 넓은 도로 양쪽에 빌딩들이 즐비하고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거센 노도같은 물결이랄까.

아무리 휴일이라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데모군중같이

거리로 나와 산책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상상 그 이상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지만 거리는 무척 깨끗했다.

하다못해 거리에 일정한 간격으로 있는 쓰레기통에 쓰레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 아마 이 쓰레기통 주변에 다 먹고 버린 수많은 커피컵과

일회용품들이 넘쳐서  쓰레기통주변이 흘러내린 물로 지저분했을 것이다.

또한 치우기 힘든 비닐봉투하나 날라 다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곳이 보이지 않았다.

 

중국사람들은 대개 지저분하다는 편견이 적어도 이런 도심에서는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이 거리에서는 금연으로 정해졌는지

어디에도 담배꽁초하나 보이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길 바닥에 껌이 눌러 붙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싱가폴이 도로를 깨끗이 하기 위해 껌 판매를 금한 것처럼

이 곳도 그런 정책을 도입한 것일까?

나는 어릴 때부터 껌을 씹지 않았다.

첫째 껌씹으며 우물거리는 모습이 보기 안좋았고

껌으로 딱딱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싫었고

영화를 보면 대개 악당들이 껌을 질겅질겅씹는 이미지가 싫었고

종국적으로는 껌을 아무 곳이 뱉어 도로를 지저분하게 만드는 것이 싫었다.

혹 식사 후 누가 내게 껌을 주면 성의를 거절할 수 없어  

몇 번 씹어 목적만 달성하고 쓰레기통이나 종이에 싸서 버린다.   

 

길 한 복판에는 걷기 힘든 어린이들이나 노약자를 위해서

두칸짜리 무궤도 전동버스가 다니고 있다.

 

길가에 이어져 있는 삼성의 광고판을 보면 기분이 좋다.

업무차 세계 어디를 가나 삼성이나 LG 그리고 현대와 기아의 심볼을 보면

한민족의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동남아는 물론이거나와 중동국가 유럽 미국 하다못해 아프리카를 가도

이 대표적인 한국로고들은 쉽게 볼 수 있다.  

어제 묵은 호텔 방에도 삼성TV가 있었다.

이전에는 거의 모두 일제 TV로 채우지던 곳이 이젠 모두 한국제품이다.

 

길을 잃었다.

분명 가이드가 높이 매달은 태극기를 보고 걸었는데

동행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순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뒤에 따라 오는 우리 일행들의 모습도 보였는데

갑자기 버뮤다 삼각지처럼 모두 증발해 버렸다.

 

우리 세사람은 온갖 추측을 다 해보았지만

주위에 너무 많은 사람들과 빌딩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서 있기로 했다.

점심식사를 하러 가던 중이었으니 인원이 부족하면

찾으러 나오겠지. 다행하게도 일행 중 전화로 사라진 일행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 뒤에 우리를 찾으러 왔다.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즐긴 후 남경로를 떠나  홍구공원을 찾았다. 

한국인에게 상해는 유난히 역사가 깊은 곳이다.

일제 치하에 상해임시정부가 있었고 윤봉길의사가

상해의 홍구공원에서 일본군 행사에 폭탄을 던져

한국의 독립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거사를 치룬 곳이다.

 

홍구공원은 우리나라의 파고다공원같은 모습이었다.

수없이 많은 노년층의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고 있다.

 

입구를 들어가니 눈 앞에 마치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쌓아 놓은 듯한 석조작품이 보였다.

 

중국은 차의 나라라는 것을 알려주는 작은 수도꼭지를 보았다.

사람들은 보온병에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고 있다.

이것처럼 좋은 배려가 있을까?

 

그리고 조금 지나니 어떤 이가 바닥에 이상하게 생긴 봇으로

한글로 무언가를 쓰고 있다. 붓은 작은 생수통에 물을 채우고

끝에 붓을 달아 놓아 글을 쓰면 물기로 세멘트바닥에

쓰여 졌다가 말라버리는 식이었다.

그가 멋진 불글씨체로 쓰는 글은 윤봉길 의사를 칭송하는 글이었다.

또한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강조까지...

이런 애국표현은 정말 본받을만했다.

 

길가 벤치에서 나이드신 분이 한국의 해금과 비슷한

중국의 현악기 얼후를 연주하고 있다. 악보를 보면대에 펼쳐놓고

연주하는 그 앞 바닥에 작은 통이 없는 것으로 보아 돈을 바라는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소일삼아 연주하는 것 같았다.

 

윤봉길의사 기념관을 찾았다.

윤봉길의 호는 매헌(梅軒)이라 2층 기념관의 높은 곳에는

매헌이라는 호만 걸려 있다.

 

기념관 앞에 윤봉길 의사에 관한 히스토리가 적혀 있는데

한국말로 설명을 하는 기념관의 어린 가이드의 말투가 조금 어눌하다.

발음에서 강한 중국어 액센트들와 사성의 느낌이 들렸다.

 

기념관 관람 후 상해 거주하는 작가분이 옆에서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기에 얼른 아이스크림을 하나 들고 설명을 해 준 중국인 가이드에게

전달해 주었더니 무척 고마와했다.

 

홍구공원의 연못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여유롭게 뱃놀이를 즐기고 있다.

 

상해의 축구 경기장이 보이는 곳에 있는 중국의 문호이자 혁명가인

노신선생의 묘에 잠시 들러 보고 걸어 나오는데

어느 곳에 노인 남자들이 한 사람의 주위에 가득 몰려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다. 매스컴이 없던 문맹시절에 소식을 전하는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어디선가 중국의 경극에서 들을 수 있는 날카로운 노래소리가 들렸다.

길거리 벤치에서 노인이 얼후를 연주하고

나이든 여자분이 입을 작게 벌리며 노래를 하고 있다.

대개 추운 지방에 사는 민족이 찬 바람이 많이 들어오니

이렇게 입을 작게 벌려 말을 하거나 노래를 한다. 따라서

소리의 피치가 상당히 높고 아울러 소리를 멀리 전할 수 있다.

두 사람의 모습으로 모아 팀을 이뤄 다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의기투합하여 노래하는 것 같았다. 나 같이 객기를 좋아하는

아줌마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서울의 인사동같은 문화의 거리가 있는 대륜로를 찾았다.

큰 문을 지나 들어가니 거리의 모습과 건물의 형태가 다르다.

오래전 중국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 곳에서 영화촬영을 하는지 중국 인민복을 입은 젊은 남녀가

카메라 앞에서 서서 연기를 하고 있다.

 

거리에는 골동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고

그 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임신을 한 젊은 여자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남자가 꽃다발을 전해 주는 장면을 찍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 앞에서 여러가지 포즈를 취하고 있고

또 구석에 할로윈데이를 축하나는 젊은이들 무리가 노는 것을 보고

중국의 젊은이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들도 이젠 물질보다 감성을 원하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반면 한 귀퉁이에는 시골장터처럼 남자들이 장기판 옆에 몰려

훈수를 두고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을 보며 문화의 양극화를 생각해 본다.

 

길가에 교회가 있어 들어가 의자에 앉아 잠시 기도를 드리고 주위를 둘러 보니

전면 스크린에 예수님의 고난을 그린 영화 팻션의 장면들이 이어지고

이층으로 올라가니 우리에게 익숙한 교회의 모습과 성당의 모습이

융합해 있는 예배실을 보았다.

그 곳에서 혼자 '생명의 양식' 찬양을 불러 보았다.

옆에서 듣던 교회 안내자가 내 노래소리를 듣더니 찬양이냐고 묻는 듯하다.

그 들에겐 이런 노래가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문화의 거리 곳곳에 많은 동상이 있다.

노신을 비롯한 중국의 위인들과 찰리 채플린 그리고

작은 소녀상까지...

중국의 역사에 익숙하지 못하여 누구를 표현한 것이지는 잘 모르겠다.

 

저녁식사 후 황포강의 야경을 즐기기 배에 오르니

몇 백명이 탈 수 있다는 유람선에는 많은 민족들이 있었다.

홍콩에서 레이저쇼 및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야경쇼보다는 조금 부족했지만

규모가 컸고 빌딩이 더 많았고 황포강 양 쪽의 야경을 모두 볼 수 있어 좋았다.

이러한 알려진 관광코스에 광고를  하는 국내업체는 기아자동차뿐이었다.

중국의 자국업체를 보호하기위해 경쟁사의 광고를 금지시킨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없이 빌딩의 현란한 쇼에 빠져 셔터를 누르다보니 문득

얼굴에 물방울이 튀긴다. 비인가 아니면 물보라인가.

 

이미 밤이 깊었다.

일행중 일부는 맛사지를 받으러 가고

나머지는 이 기분을 그대로 가지고파서 맥주마시러 간다기에

나는 이번 주에 또 다른 트레킹이 예정되어 있기에서 체력을 조절해야 할 것 같아

슬며시 빠져나와 호텔로 들어왔다.

 

셋째날

 

아침 호텔 카페테리아에서 밖을 보니 비가 온다.

우산이 필요하겠구나. 가져오길 잘했다.

 

아침에 의견이 분분했다.

관광보다 우리끼리의 세미나가 더 의미있다.

아니다 멀리 외국까지 왔으니 처음오는 사람을 위해

예정된 관광코스는 하는 것이 맞다.

두가지 의견중 결국 예정된 코스를 보기로 했다.

 

상해에 유럽풍의 거리인 신천지를 찾아가 산책하고

혹시 원하는 사람은 인근의 상해 임시정부를 방문하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의 도로는 거의 주차장수준이었다.

사거리에서 차들이 신호가 바뀌고 경찰이 제지를 해도

차는 꾸역 꾸역 밀고 지나쳤다.

이제야 내가 알고 있던 중국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한국에 오면 아무곳에서나 담배를 피우고

공중도덕은 거의 지키지 않았다. 특히 중국관광객이 많은

제주도에서는 더 가관이라 한다.

지금 버스기사의 운전을 보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모퉁이에 우회전할려고 기다리고 있는 승용차들이 있는데도

버스가 그 앞에 막아선 채 주차를 하고 우리들을 태우고 있다.

 

비가 내리는 신천지 거리는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유럽풍의 거리라 하지만 유럽을 많이 가본 나로서는 그다지 유럽답지 않았다.

길거리의 카페들은 이제 막 문을 열고 있었다.

제대로 유럽을 느끼기 위해서는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여유를 갖는 것이 제격이지만 비가 오니 커피라도 마시기 위해

일행들 몇 명이 이제 막 비에 젖은 의자를 닦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

모두 따뜻한 커피와 함께 아침을 즐겼다. 나는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유럽인의 흉내를 내 보았다.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다.

우리 일행은 그 때 쯤 그 곳을 빠져나왔다. 

오가는 시간이 길다보니 오전에 관광시간 불과 1시간도 주어지지 못했다.

아마 상해를 그물처럼 엮어 놓은 지하철을 탔으면 더 편했을 것이다.

     

점심은 더클에서 책을 출판하고 상해에서 한국식당을 경영하는 분의

오리 전문 식당에서 식사를 가졌다. 맛있는 음식이 끝없이 나왔다.

한국같았으면 남은 음식을 싸들라 하고 싶을 정도로 음식은 많이 남았다.

 

식사후 공항에 가기 전에 들른 정한영작가님의 자택.

엘리베이터가 있는 단독주택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집의 여기 저기 안내를 해 주시고 우리는 그 곳에서 우리가 모금한

상해 한국학교 발전기금을 전달했다.

 

방의 구석 구석에 미스코리아 출신들의 사진이 걸려 있고

거실에는 국내 유명인사들과 면담을 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작가님은 이렇게 성공하기까지 안과 밖으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차근 차근한 어투로 들려 주셨다. 특히 가정을 중요시하고

가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문득 이 집을 위해 노래를 불러 주고 싶어

'즐거운 나의 집' 노래를  부르니 기분이 차분해지고 모두에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노래는 그렇게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

 

이제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우리 모두 이번 여행에서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마치 교과서대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같다.

 

이번 여행을 마치면서 문득 내 남은 여생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을 예상해 본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기대된다.

마치 미지의 세계로 긴 여행을 떠나는 나그네의 기대감이랄까?

 

현재 내 카톡의 내 프로필에는 이렇게 써있다.

 

"즐거울 수 있는 사람과 만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