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아시아방문기

인도네시아 신들의 섬 - 발리

carmina 2016. 1. 7. 15:00

 

 

발리, 환상의 섬 (1989.5)

 

 

1989년 5월, ;신들의 도시’라는 이름의 발리섬을 방문했다. 언뜻 보기에는 돈 많은 상류층이 휴가를 즐기기 위해 가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는 출장지. 생전 이런 곳에 업무 출장을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우리 직업이지만, 무언가 색다른 것을 원하는 대기업의 사장들이 일을 치루고야 말았다.

 

업무라는 것이 늘 서류를 작성하고계산을 하고 컴퓨터를 두들겨야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서로 합의하는 서명을 호텔에서 빌려 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게 어차피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그리고 한국의 4개국 사람들이 모여 하는 것이니 꼭 국제 도시 한 복판의 유명한 호텔일 필요는 없지 않는가?

 

그리고 서명 기념으로 공 한 번 쳐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도 어차피 돈 들어 가는 것이라면 유명한 골프코스를 택해서 하는 것이 기분상 좋지 않은가?

 

그래서 발리로 택했다. 물론 발리가 국제적인 휴양지로 환상의 해변이 있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번 행사는 아가씨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고, 그것을 바라다 보며 침을 질질 흘리는 저급한 남정네들이 아니고 대기업의 사장들 아닌가?

그러한 야무진 꿈은 처음부터 계획되지도 않았다. 그저 발리의 산꼭대기 유명한 골프 코스에서 공 한 번 치는 것이 골프 매니아들의 최대의 소원이다.

 

사장님과 임원 그리고 담당 부장과 함께 찾아 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에서 잠깐 일을 보고 다음 날 발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을 찾았다. 우리 뿐만 아니고 4개국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골프를 친다는 부푼 가슴을 안고 발리의 덴파사 공항으로 가는 가루다 항공을 기다렸다.

 

그러나 어이 된 일인지 도무지 첵크인이 지연되기만 한다. 공항에 나와 있는 많은 사람들이 어수선해지며, 자꾸 공항 안내에게 물어 보지만, 기다려 보라는 말 뿐이다. 사장님을 모시고 가는데 이런 불상사가 생기다니.. 물론 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아랫사람으로서 몸 둘 바를 모른다. 결국은 발리 가는 편이 취소되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우리는 몇 시간을 더 기다려서 일본에서 출발하여 자카르타에 잠시 기착한 후 발리로 가는 비행편에 자리를 잡았다.

 

항공사에서 미안했던지 비즈니스 클라스를 내 준다. 처음으로 타 보는 비즈니스 클라스인지라 기다리면서 짜증나고 안절 부절 했던 기억이 기분 좋은 맘으로 바뀌었다. 옆 자리에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언뜻 보기에도 인텔리임을 알 수 가 있다.

 

나도 영자신문을 하나 주문해서 보고 있는데 기사 중에 독일의 유명한 테너 가수 피셔 디스카우의 생일임을 알리는 조그만 기사가 눈에 들어와 자세히 읽어 보고 있는데 옆의 할머니가 아는 체를 한다. 이 가수를 아느냐고…

 

물론 아다 마다. 노래 좋아하는 내가 이런 유명 가수를 모르면 되나? 독일 노래까지 아느냐고 물어 보길래 ‘그렇다’고 답변했더니 이 할머니 금방 표정이 바뀐다. 노래 제목을 말해 달라기에 ‘하이델 뢰스라인 (들장미)’를 이야기하며 처음 서두 부문을 원어로 낮게 들려 주니 갑자기 내 노래를 중단시킨다.

 

할머니는 기내의 주위에 있는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하며, 자기들은 모두 의사인데 발리에서 세미나가 있어 출장 간다며, 이 한국 젊은이가 독일 노래를 안다고 하니 모두 같이 부르자며 제의한다.

 

우리는 모두 일어섰다. 그리고는 다 같이 독일 말로 노래를 불렀다.


자아인 크나파인 뢰스라인 스테인
뢰스라인 아우프데르 하이덴
바르 소 융 운트 모르겐 쇤
리프 에르 쉬넬 에스 나주젠
자스 및 휘렌 푸로이덴
뢰스라인 뢰스라인 뢰스라인 롯
뢰스라인 아우프데르 하이덴

 

모두들 노래를 얼마나 진지하게 부르고 있는지 모두들 행복함을 느끼는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기내 스튜어디스들이 모여 들고, 비즈니스 클라스의 다른 손님들도 이미 흥이 돋았다. 노래를 끝내니 앙콜이 터져 나온다.

 

나이 든 할머니 의사들은 소녀같이 즐거워하고 나 보고 또 다른 노래를 아는 것이 있느냐며 묻는다. 하나 더 있지. 마침 그 전 해 합창단에 공연했던 레퍼터리 속에 독일 가곡 두 곡이 있어 완벽하게 외워 두었거든…. “오 탄덴바움 (소나무여)” 를 안다고 하니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

 

이 곡도 원어로 부르고 화음까지 맞추어 부르니 주위의 모든 이들이 박수치고 원더풀을 외치며 앙콜을 또 외쳐대었지만 우리는 더 이상 하다가는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자제하고 자리에 앉았다. 할머니는 내리기 전에 독일에 오면 꼭 연락하라며 종이를 찢어 연필로 주소를 적어 준다.

 

발리의 덴파사 공항에 내리니 한 밤중이다. 해변을 물론 보이지 않고 바닷가하고는 거리가 먼지 아무것도 눈요기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나 또한 윗 어른 들을 모시고 가는 것이기에 다른 것을 신경 쓸 여유도 없다.

 

서둘러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오니 호텔의 미니 버스가 우리를 기다렸다가 모두를 태우고는 덜커덩 거리는 발리의 밤거리를 달린다. 공항을 막 벗어나니 오른 쪽으로 조그만 교회의 십자가가 보이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왔다.

 

이 곳은 전통적으로 온갖 잡신을 모시는 힌두교의 섬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 중의 십자가는 마치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다. 기록에 의하면 인도네시아인의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이 곳 발리섬 인구의 90%가 힌두교이며 인구 3백만에 절이 10,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차는 어둠 속을 한 시간 정도 산꼭대기로 계속 달리는데 주위에 보이는 것은 그저 커다란 잎을 가진 나무들 뿐이다. 또한 피곤하기도 하여 창가에 기대어 졸다 보니 호텔에 다 도착했단다. 버스에서 내리니 나의 기대는 또 한 번 무너진다.

 

호텔이라는 것이 커다란 빌딩이 있고, 깨끗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방을 받으러 오고 대리석 바닥이 깔린 호텔 로비에서 첵크인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건 완전히 국도타고 달리다가 찾아 든 시골 주막집같다. 옆의 사람의 설명인즉 골퍼 만을 위한 호텔이니 그런 시설이 필요없단다. 숙소도 여기 저기 흩어져 있어 내 방을 찾아 가기도 힘들었다.

 

마치 우리나라 옛날 대문의 열쇠같이 생긴 투박한 열쇠를 들고 어두운 길을 벨 보이의 후레쉬 안내로 찾아 가서 독립가옥으로 된 내 방의 문을 여니 도대체 방문이 열리지 않는다. 벨 보이가 겨우 겨우 열쇠를 돌려 문을 여니 퀴퀴한 냄새가 방에 가득하다. 불을 켜니 바닥을 기어다니는 벌레들 땜에 기겁을 하고 우리는 벌레 죽이는 약을 뿌리고서야 겨우 침대에 들 수 있었다.

 

밤에는 몰랐는데, 아침에 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금방 갓 벤 풀 냄새가 향긋하게 코에 스며든다. 내 방은 골프의 18홀 코스 중 어느 한 군데를 차지하고 있으니 문 앞에 펼쳐지는 것은 파란 잔디 뿐. 이 맛에 이런 곳에 투숙하는 것일까?

 

호텔의 아침 식사 빵이 무척이나 맛이 있다. 지난 밤의 우중충했던 어둠의 기억들이 이 아침의 맑은 공기와 부드러운 빵에 모두 날라가 날라가 버린다. 거기다가 내가 좋아하던 70년대 가수들의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우리 사장님이 한국 포크음악의 대부인 김민기씨의 친형인데 젊은 시절 송창식 윤형주 등이 김민기씨 집 즉 우리 사장님댁에 놀러 와서 지내던 시절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주시는 바람에 아침이 더욱 맛있었다.

 

아침에 간단하게 회의하고 형식적인 사인과 악수를 교환하고 공식적인 행사를 끝냈다. 이 들은 이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골프일 테니 이런 복잡한 문서의 내용들은 우리들 보고 하라고 밀쳐 놓는다.

 

모두들 우르르 화려한 골프복장 차림으로 몰려 나가고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들만 몇 명이 모였다. 어디로 갈까 하고 망설이니 현지 회사의 젊은 사장이 자기가 안내하겠단다. 차를 하나 빌려서 골프장 근처의 시골 풍경과 이 곳 산 꼭대기에 화산으로 생긴 분지에 이루어진 호수를 구경하기로 했다.

 

차를 달려 처음 간 곳은 넓은 호수. 한적하기 그지 없다. 호숫가로 가는 입구에 양 옆으로 커다란 깃발이 있는데 깃발의 모양이 우리네 것과 사뭇 다르다. 길게 가로로 되어 있는 깃발만 보아 오다가 길게 세로로 늘어진 형형색색의 깃발이 방문하는 손님을 향해 도열하는 것처럼 보인다. 호숫가에 선물 코너도 사람이 거의 없어 진열대를 천으로 덮어 놓았고, 호수에 매어 놓은 보트들도 운행해 본 지 무척 오래되어 보인다.

 

보트 두 대에 나누어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도는데 스쳐 지나 가는 바람이 무척 시원하고, 호수 물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으나 고기는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앞에서 부딪히는 바람이 너무 거세었는지 내가 낀 선그라스의 오른쪽 안경알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선그라스의 검은 유리를 통해 보던 자연이 갑자기 환한 모습으로 보이니 그간의 모습을 잘 못 본 것 같아 얼른 보통 안경으로 바꾸어 썼다.

 

호수에서 나와 차를 타고 다음의 유적지를 가기 위해 지나가는 도로 옆에는 농사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어느 논에서는 할머니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여자가 웃통을 벗고젖가슴을 들어 낸 채 일을 하고 있어 시골 사람들의 순박함이 우리 나라와 다를 바 없음을 엿볼 수 있었다.

 

길가에 주렁 주렁 달린 바나나가 주인도 없이 누가 키우지도 않는데 익어가고 있다. 아무나 따 먹어도 괜찮다며 나보고 따 먹어 보라고 하나 매 달린 바나나가 파란 것으로 보아 아직 덜 익은 것 같아 따 먹기를 포기했다.

 

발리섬은 온갖 신이 살고 있음을 지나치는 가정집들의 마당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어느 집이나 마당에 조그만 석상들이 서너 개씩 있고 그 석상들이 무척이나 오랫동안 풍상을 겪은 듯 파랗게 이끼가 낀 것들이 보인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는 제법 많은 석상들이 있어 석상을 제작하는 집임을 알 수 있었다.

 

발리는 어디를 가나 마을 입구 혹은 집의 입구의 양 옆에 선과 악을 표시하는 조각물을 세워 놓는다. 그 조각은 크기만 달리 할 뿐 거의 같은 모양이었으며 그 많은 석상들은 어떤 모양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선악을 표시하는 조각물은 우리 나라 천안의 독립 기념관에 상징물과 너무 흡사해 쉽게 기억된다.

 

우리 일행이 찾아 간 유적지는 아주 오래된 절로서 발리섬의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어 그냥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 하고 다음으로 간 곳은 바닷가. 파도가 발 밑에 찰싹대는 바다 앞의 작은 섬에 아주 오래 된 듯한 사원이 마치 유령의 성처럼 떠 있다. 이 곳에서 석양이 질 때 바라다 보는 사원의 모습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절경중의 하나라는 동행인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 시간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바닷가 옆에 조그만 선물코너가 있어 들렀다. 아주 큰 거북이 박제가 눈에 뜨이고 저 거북이를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 간다고 한다. 무척 비싸게 보여 가격을 물었더니 그리 생각했던 만큼 비싸지는 않다. 때가 점심 시간이라 인근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잠시 쉬는데 이 곳에서는 점심 무렵에 모시고 있는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지 예쁜 꽃과 밥 그릇을 석상 앞에 놓고 손을 펴서 꽃 위로 양 옆으로 흔든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술적인지 발레 댄서의 춤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식후에 먹은 코코넛 열매. 즉시 따 왔는지 아직 푸른 잎이 붙어 있는 가지에서 코코넛을 따 가지고 긴 정글 용 칼로 윗 부분을 싹둑 싹뚝 잘라 내더니 조그만 구멍 하나를 내어 나보고 마시란다. 이런 것 마다할 내가 아니기에 두 손을 잡고 한 모금 마시니 비록 달지 않지만 시원한 나무 열매의 상큼함이 목구멍을 적신다. 지금 생각하니 그건 아마 포카리스웨트 맛이라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다 먹고 난 뒤 코코넛을 쪼개어 열매의 내부를 덮고 있는 젤 모양의 껍질을 먹는다.

 

어느 관광이나 다 그렇지만, 이 곳에서도 선물코너로 우릴 안내하는데 이 곳은 바틱을 생산하는 곳이다. 바틱이란 인도네시아 특산물로서 열매에서 채취된 즙으로 만든 물감으로 옷감에 하나 하나 찍어 무늬를 그려 내는 것으로 여성용 옷 뿐만이 아니고 스카프, 손수건, 각종 그림 등을 만들어 낸다.

 

특별히 살 것은 없고 바틱으로 만든 벽걸이용 그림 중 악기를 연주하는 아가씨를 그린 것과 피아노를 그린 것을 샀다.

 

관광을 모두 끝내고 호텔로 돌아 오니 골프 행사도 끝났는지 모두 돌아 와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곳에서 하룻밤 더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비행기로 자카르타로 돌아 가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 곳에서는 저녁 만찬을 위한 좋은 장소도 없어 해변으로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갑자기 일행들은 짐을 꾸리느라 바빴고, 서둘러 호텔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해변으로 나왔지만 이미 해는 떨어진 뒤였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너무 계획이 없는 행동을 저지른 것을 후회했다. 바닷가이니 호텔은 예약 없이도 충분히 하룻 밤 정도는 가능할 줄 알았는데 몇 명이 돌아 다녀 보니 이건 도대체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보다 어렵다. 방이 있어서 몇 백 불하는 최고급 호텔만 가능하여 포기하기를 몇 차례. 겨우 겨우 적당한 호텔을 얻어 여장을 풀고 저녁만찬을 하러 모였다.

 

발리섬 전통 케착댄스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어 야외에서 자리를 잡고 모이니 이 또한 낙원이 아닌가? 케착댄스는 원숭이 춤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손에 캐스터네츠같은 것을 끼고 손가락을 아주 길게 펴서 요리 조리 천천히 돌리며 추는 춤으로 외국영화에서 자주 보아 오던 발리 전통 무용이다.

 

그러나 그 케착댄스보다 더 환상적인 것은 우리 위로 떠 있는 별들. 내 생전 그렇게 낮은 하늘에 많은 별을 한 눈에 본 적이 없으며 마치 의자에서 일어나 손을 벌리면 별을 따 올 것 같은 환상에 사로 잡혔다.

 

이러한 환상의 바닷가에서 바다가재와 양고기를 시켜 놓고 비록 높은 사람들과 같이 있어 신경은 쓰였지만 정말 맛있는 저녁을 즐겼다.

 

식사 후 방으로 돌아 와 창문을 여니 파도치는 소리가 들린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일행 중 제일 하급 사원인 내가 개인행동을 할 수 없어 포기했다.

 

다음 날 아침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도착한 우리는 또 한 번 인도네시아 가루다 항공의 형편없는 횡포에 분개했다. 사전연락도 없이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를 취소하고 다음 비행기를 타고 가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 바다 구경 좀 여유 있게 하고 오는 건데..

 

발리에 와서 비키니의 옷차림과 끝없는 백사장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있어도 즐길 수 없는 환경이었기에 내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하며 접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