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9일차 (나헤르 - 산토 도밍고) 21km

carmina 2016. 6. 9. 17:07


2016. 4. 27


오늘 산토도밍고까지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라

조금 늦게 일어나도 될려니 했지만 습관적으로 일찍 눈이 떠졌다.

그래도 6시 50분에 출발.

혹시 알베르게가 코스와 조금 떨어져 새벽에 길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알베르게에서 제 코스 찾아갈 때까지

골목 골목마다 노란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니 가파르고 거친 황무지 언덕길이 나를 힘들게 한다.

언덕을 오르니 바로 이어지는 길고 긴 일직선 길.

이 곳 사람들은 조그만 짜투리 땅만 있으면 포도를 심었다.

내가 가야할 길이 아주 먼곳까지 뻗어 있어 벌써 기를 죽인다.

그러나 이쯤이야 많이 겪었으니 그저 룰루 랄라하며 걷는다.

피레네 언덕을 올라가는 것보다야 낫지.

그러나 바람 한 점 없고 하늘엔 구름만 가득 꼈다. 비가 올려나.


한참 길을 걷다가 앞사람이 왼쪽 옆길로 꺾어져 가기에

나도 가까이 가서 보니 노란 화살표가 그쪽으로 꺾어 진 것 같아사

따라 걷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이 길이 까미노 길이라면 바닥에 흙이 잘 다져 있을텐데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은 사람들이 별로 안 다니는 길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앞서 가던 사람들이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결국 한 팀은 왼 편으로 가보고 한 팀은 오른 편으로 가 보았다.

나는 아무래도 아까 길이 직선길이었으니 오른편 길이 맞는 것 같아

갔는데 저 앞편에 순례자들이 걸어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제대로 길을

찾았다. 같이 가던 외국인 여자가 반대편 쪽으로 간 사람을 찾으러

뒤로 돌아가고 나는 제대로 까미노로 접어 들었다.


누군가 길에 순례자를 뜻하는 Peregrino 를 Perrogrino 라고 표현해 놓았다.

내가 알기로는 Perro 는 미친 개를 뜻하는 말이다. 하긴 우린 다 미쳤다.

개만 아닐 뿐이지. 단지 곱게 미쳤을 뿐이다.


포도나무를 가만히 보니 이제 조금씩 싹이 나고 있었다.

가을 쯤 되면 여기 이 길을 걷는 기분이 상당히 좋을 것 같다.

끝없는 밀밭길, 포도밭길. 이많은 밀과 포도는 다 어디로 수출될까?


끝없는 벌판 길 뒤에는 고속도로 옆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없더니 앞서간 사람이 천천히 가고

늦게 온 사람이 빨리 오더니 그새 고속도로 옆 길을 걸을때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그 중 눈에 뜨이는 사람 한 명이 있었다.

뒷 모습을 보니 한쪽 다리가 불편하여 절뚝거린다.

아하. 그러고 보니 어제 알베르게에서 저녁에 요리한다고 감자를

깎는데 한 손이 조금 불편하더라니 반신에 약간 중풍이 온 사람 같다.

정말 대단한 의지다. 새삼 존경스러워 진다.

그래도 아주 심한 중풍이 아니라 걷는데는 이상이 없었다.

그 사람은 그 뒤로도 계속 같이 걷게 되었다.


내가 발바닥이 아파 겨우 앉을 만한 바위를 찾아 발을 주무르고 있으니

너도 나도 내게 도와주겠다고 말을 건넨다. 고마운 사람들.


아조프라 마을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있는데 사람들이 몰려 든다.

다시 좁은 공간이 시끄러워 졌다. 그래서 좋다.   


시루에냐로 향하는 길을 걷는데 구름 걷힌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며 생긴 비행운이

묘하게 커다란 십자가를 만들어 냈다. 모두 사진 찍으로 하늘에 대고

셔텨를 눌렀다. 멀리 노란 언덕이 보인다. 저기 까지만 가면 길에

변화가 있을려나. 뙤약볕을 맞으며 걸어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없다.

그냥 걸을 뿐이다. 그러나 아직 공포의 메세타 평원 까미노는 멀었다.

이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 누군가 하릴없이 뻔한 길 가운데에

나무 막대기로 화살표를 만들어 놓았다. 길이 너무 밋밋하니

그런 장식이라도 있어야 하나?


단지 가끔 길가 이정표에 산티아고까지의 거리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드니

기분이 좋다. 언젠가는 500 단위가 400, 300, 200, 100 단위대로 내려갈 것이다.


누군가 밀밭 둔덕에 나는 일거리가 없고 스페인 60%의 젊은 실업자가 있다고

호소한다. 그걸 왜 주로 외국인 순례자가 많은 곳에 알릴까?

그러면서 기부를 바란다. 그 인구가 농사인구에 투입되면 안될까?

땅 많고 일할 곳도 많을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 그 길 끝 시루에냐 지역엔 골프장이 있다.

아마 아까 그 호소문은 골프치러 다니는 사람들에게 한 호소문일 것이다.

리오 알타 골프클럽 앞을 지나는데 골프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 곳에서 못 보던 한국 남자 2명이 있기에 인사를 하니 길을 걷다가

이 곳에서 하루 쉬웠다 하는 것으로 보아 길을 걷다가 골프채 한 번

휘두른 것 같다. 조용한 골프라운지에 들어가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긴 긴 길의 고단함과 갈증을 해결한다.

이 지역은 조금 부촌인듯 길 옆에 수영장도 있다.  


어떻게 이렇게 벌판의 색깔이 이분되었을까?

노란색 아니면 초록색이다. 참 아름답다. 


벌판 길을 걷다가 얕은 내리막길에 두 명의 외국인이

내리막길을 지그재그로 조금씩 뛰면서 내려간다.

나도 후에야 그게 편한 방법인 것을 알았다.

내리막길은 천천히 내려가면 오히려 다리에 더 부담이 되는데

조금씩 뛰어 내려가면 다리가 편하다.


아주 멀리 산토도밍고 마을이 보인다.

이렇게 멀리 자주 보게 되면 시력이 좋아질 수도 있겠다.

몽고 사람들이 안경을 안쓰는 것처럼, 먼 곳 보는 것에 익숙해지만

46년간 쓴 내 안경도 벗을 수 있지 않을까?

괜히 하릴없이 이런 생각도 해본다.


누군가 이정표 위에 슬리퍼를 벗어 놓았다.

등산화 올려 놓은 것은 자주 있어도 쓸만한 슬리퍼 올려 놓은 것은 처음 본다.

누군가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돌로 눌러 놓았다.


길을 걷는데 젊은 아가씨 한 명과 조금 나이든 여자 한 명이 같이 걷기에

부엔까미노하고 말을 걸어보니 리투아니아 모녀다.

딸이 영어를 잘하고 엄마는 조금은 알아 듣는 것 같다.

엄마의 머리에 두건을 썼기에 리투아니아 전통이냐고 했더니

맞다면서 두건의 문양이 리투아니아 상징이라 한다.


산토 도밍고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닭그림이다.

이 곳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15세기에 독일 청년이 부모님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하다가

어느 마을에서 알베르게의 예쁜 아가씨가 독일 청년에 반해

사랑을 고백했지만 남자가 거절했다. 상심한 아가씨는

독일 남자가 돌아갈 때 배낭에 은잔을 하나 넣어 두고

절도범으로 고발을 해 버렸다. 재판에서 남자는 교수형을

언도 받고 집행을 했는데 절망에 빠진 부모가 산티아고  

성인에게 기도하며 순례를 계속했는데 '산티아고의 자비로

아들이 살아 있다'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이에 급히

되돌아가 마을 재판관에게 사정하여 "아들이 살아 있으니

살려 달라"고 애원하니 재판관이 식사로 닭고기 요리를 먹다가

그 말을 듣고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면 이 닭도 살아 있겠구려"

하니 갑자기 그릇 안에 있던 닭들이 살아서 날개를 푸드득 거리며

날아갔고 아들은 무사히 살아서 부모님과 함께 순례를 게속햇다 라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닭에 대한 상징이 많다.

집집마다 닭문양을 대문에 그려 넣기도 하고 거리에 닭을 든

순례자의 상을 만들어 사람들이 그 곳에 머리만 집어 넣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재미있는 곳도 있다.


마을 입구에 커다란 감자 포장하는 공장이 있어 수확한 감자를

구별해 박스에 담고 있었다. 규모가 큰 것으로 보아 이제까지

보아오던 녹색 밭 중 밀밭이 아닌 것은 거의 모두 감자밭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


마을의 집들은 모두 몇 백년이 되었음직한 대문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대문을 열면 그 안에 새 대문이 있다. 그 대문에

노크를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모양의 장식을 달아 실용성을 추구했다.

이 곳도 관광지인듯 버스에서 관광객들이 내려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 지은 듯한 집도 밖의 기둥은

아주 오래 된 나무로 버티고 있어 이렇게 해도 허가가 나는지 궁금했다.


길가에 고철을 이용하여 자전거를 탄 순례자 모양이 재미있어 

나 사진 좀 찍어 달라고 핸드폰을 주었더니

자기들이 같이 찍자며 몰려 들었다.


이 곳의 알베르게는 시설이 참 좋았다.

거의 4층 빌딩으로 되어 있는 이 곳에는 넓은 주방과

식당 그리고 편히 쉴 수 있는 응접실이 있었다.


저녁을 위해 혼자 식사를 하는데 알베르게 매니저가

내게 와인 한 잔을 가져다 준다. 왜 그랬을까?


식당에서 한국인 부부를 만났는데 남자가 자판이 분리되는

노트북으로 하루의 여정을 글로 쓰고 있어 부러웠다.

저 노트북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민하고 포기했는지..


늘 길에서 혼자 걷던 호주아가씨가 어느 이태리 남자와

같이 잘 걷더니 이제는 알베르게에도 둘이 노골적으로 진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렇게 알베르게에서의 밤은 짧은 시간 떠드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사라져 버리고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