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11일차 (볼레라도 - 아헤스)

carmina 2016. 6. 10. 17:47



2016. 4. 29


손이 시렵다.

어제 날씨를 조회해 보니 오늘 아침 기온이 0도다.

얇은 장갑을 끼웠는데 손이 시렵다.

특히 한국에서 올 때 가지고 온 장갑이 조금 지저분해

매번 사진 찍을 때 마다 그걸 이빨로 물어 벗어야 되니

영 찜찜하다. 아무래도 조치를 취해야겠다.


새벽길을 걷다보니 한국 단체 순례자들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 중 지난 번 나보다 한 살 많다 한 사람이 내게 친근하게 굴며

진한 전라도 사투리로 같이 셀카를 찍자며 팔로 어깨를 건다.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

그는 늘 단체 사람들보다 걸음이 빨랐다.


마을을 벗어나니 큰 다리가 나오고 물 소리가 크다.

아직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달이 어느 새 반달이 되었다.

까미노는 도로와 계속 평행으로 걸어야 한다.

이 곳은 아직 경작을 하지 않는 곳이 많았다.

혹시 일부러 밭을 휴식기간을 주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한 시간 정도를 걸었는가 싶은데 어제 같이 식사한 이지노씨를 만났다.

그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같이 이야기하며 걸으려 했더니 내가 걸음이

빠르니 먼저 가란다.


늘 혼자 걷는 것이 좋다.

첫번째 마을인 토스칸토스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으나 문을 연 카페가 없다.

그다지 멀지 않은 두번째 마을인 비얌비스티아 마을에도 역시 중심거리는 조용했다.

이럴 수 있을까? 순례자들이 얼마나 아침을 먹고 싶어할텐데 카페가 없다니..

까미노 어플 상으로도 이 곳은 먹을 곳이 없고 마실 곳만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세번째 마을인 에스피노사에서 겨우 문 연 카페를 찾고 커피와 가지고 간 빵

그리고 오렌지 하나로 아침식사를 했다.


언덕을 내려가다가 문득 앞서가는 두 여자가 그제 본 리투아니아 모녀기에

인사를 했더니 반갑다며 두 여자가 모두 내게 포옹을 한다. 이 포옹은 반가움의

인사라기보다 그들의 전형적인 인사법이다. 굳이 큰 의미를 두지 않아야 한다.


엄마의 이름은 도나고 딸은 루타였다. 내가 아침식사를 하는 사이

카페를 지나쳤는지 이지노씨가 앞서 가고 있어 자연스럽게 4명이 같이 걷다가

문득 루타가 반바지를 입고 있는 이지노씨의 종아리가 검게 변한 것을 보더니

자기 엄마의 배낭 속에서 약을 꺼내 발라 준다. 그럴 필요없다고 사양해도

약을 발라야 한다고 극구 배낭을 매어 허리 굽히기 불편할텐데도 허리를 숙여

발라 주고 있다. 참 심성이 고운 아가씨다.


긴 언덕길에 도달 했을 때 이번에는 얼굴을 자주 보던 독일인과 이태리인들

그룹을 만나니 루타는 또 그들과 반갑게 포옹으로 인사하고 그 사이

그 들과 즐겁게 지냈는지 그 중 키가 유난히 큰 독일인과 길을 걸으며

루타와 함께 포크댄스를 추며 흥겹게 길을 걸었다. 외국생활을 하면

당연히 사교춤을 배워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까미노 이전에 서로 본 적이 없었을 두 남녀가 춤의 리듬이 잘 맞았다.

도나는 내가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아니 리투아니아 전통 노래를 불러 주었다.

길을 걸으며 루타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자신도 전공이 건축이라 한다.


나는 이미 아침식사를 했지만 다른 이들은 아직 하지 못했는지

도로가 시작되는 곳에서 모두 카페로 몰려가고

나는 다시 루타 모녀와 함께 언덕을 올랐다.

마침 주위에 한국 단체 순례객들과 같이 합세하였지만

아무도 루타와 도나와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누구도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해발 약 1200m의 가파른 산을 올라야 한다. 오리의 언덕이라 불리는

몬테 데 오카와 알토 데 라 페드라하의 산 언덕이 비록 비스듬하긴

하지만 끝없이 올라가니 힘들어진다.

올라가다 가끔 쉴 겸해서  뒤를 돌아보면 멀리 보이는 다른 산 정상에

흰 눈이 덮여있다.


리투아니아 모녀도 이런 산행은 힘든 듯 나보다 더 힘들게 올라간다.

몬테 데 오카의 정상에 오니 앞에 보이는 산들과 지명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보드가 있었지만 너무 낡아 희미하여 제대로 읽지 못했다.

뒤이어 올라온 도나도 힘들었는지 가쁜 숨을 몰아내며 화사하게 웃었다.


그 곳에서 다시 페드라하 정상까지 다시 또 올라가야 한다.

한국 단체 순례객 중 유난히 이런 길을 걸을 것 같지 않을 나이드신

여자분이 얼굴에 수건을 대충 두르고 스틱을 잡고 걸어가시는데 스틱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기에 사용하는 법을 알려 드렸는데도 조금 지나니 

여전히 사용하시던 대로 하고 계시기에 더는 말하지 않았다.


페드라하 정상에 도착해서야 모두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 곳에 1936년에 세웠다는 높은 기념탑이 있고 앞쪽 시야가 탁 트였다.

이제는 가파른 언덕길로 내려가야 한다.

언덕을 다 내려 오니 아주 넓은 흙길이 길게 뻗어 있었다.

만약 비가 왔더라면 이 길을 걷는데 심각한 어려움이 있을 것같이

그 흙길은 모두 붉은 흙으로 덮여 있었다.


길이 넓으니 화판이 넓은 것인가? 여기 저기 돌로 하고 싶은 말들을

길에 적어 놓았다. 누구를 사랑한다. 부엔 까미노, 하드 모양 등등.

그 넓은 길의 양쪽에는 푸른 아름드리 숲이 길게 평행으로 달리고 있었다.


문득 길을 가다가 어떤 벌레들이 움직이는 것에 시선이 집중되었는데

세상에 그 벌레는 송충이같은 솔잎벌레가 서로의 끝을 물고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길이가 얼마 정도 되는지 내 스틱을 바닥에 놓고 재보니 

약 60cm 정도에 달하고 마리수를 세어보니 정확하게 20마리였다.

생존을 위한 놀라운 자연의 세계다.


그 넓은 길위에 까만 장갑 한 쪽이 떨어져 있기에 저 것을 주을까 말까 하다가

혹시 지난 번 처럼 바이크를 타는 사람이 주워 앞서 지나 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대로 두었다.


그 넓은 길을 한참을 걸어가니 길에 간이 매점이 있었다.

마침 루타가 나를 보더니 혹시 길에서 장갑 못 보았느냐고 묻기에

약 5분에서 10분거리에 있다고 알려 주었더니 급히 뛰어 가더니

가지고 왔다.


간이 매점 주위에는 순례자들이 음식을 구입하거나 가지고 온 과일들을

먹고 있는데 주변에는 나무를 조각해서 각종 모형들을 만들어 놓아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한국 청년들이 뒤따라 와 같이

앉아 쉬는데 내 배낭의 사과 하나를 사이좋게 잘라 나누어 먹었다.


깔고 앉아 있는 통나무에 한글로 이렇게 써 있었다.


"이 자리는 Camino와 결혼한 윤중천의 자리입니다.

3번째 순례자의 길, 이 길이 끝나고 북쪽길도

순탄하게 해 주세요. 2016. 4. 7"


아! 참 눈물겹다. 이 힘든 길을 3번이나 걷고 있다니..

얼마나 까미노를 좋아하면 이 길과 결혼했다고 할까?

혹시 나도 그 전염병에 걸리지 않을까?

나도 지금 미치도록 까미노 걷는 것이 좋다.

하늘에 쏜살같이 지나 간 비행기의 궤적이 흰 구름으로 남아 있다.


산 후안 데 오테르가 마을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점심을

하고자 했으니 갑자기 밀려든 손님들 때문에 빵은 15분이 걸려야 하니

즉시 즉시 줄 수 있는 맥주나 커피 밖에 안된다 한다.

어쩔 수 없이 맥주 하나에 배낭 속의 빵 남은 것으로 허기를 때웠다.

여기까지 오기 너무 힘들었는지 몇 사람이 택시를 불러 가 버렸다.


카페 옆에 성당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보니 알베르게를 겸하고 있는 듯

조금 지저분해 보이는 모포들이 차곡 차곡 쌓여 있고 등산화를 놓을 수 있는

신발 보관대도 보였지만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그 밑에 한글로 '믿음의 길, 만남의길'이라고 써 있었다.


이 곳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왼편 길은 부르고스로 조금 먼 길이고 또 하나는 점선 상으로 봐서

오늘의 목적지인 아헤스를 거쳐서 가는 길이다.

오른 편길을 택했다. 그 길이 까미노 어플에 있는 길이니까...


오붓한 숲속길을 걸었다. 졸졸졸 샘물이 흐르고 룰루 랄라 노래하며

길을 걷는데 저 편 아주 먼 곳에 마을이 보였다. 한숨이 나왔다.

아직도 길은 먼 것인가? 거리상으로는 오르테가에서 아헤스까지

불과 3.7 km인데 지금 보이는 마을은 무려 10km 정도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아헤스 마을은 긴 평원길을 지나니

바로 언덕 아래 조용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산티아고가 518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아헤스 마을은

마을의 알베르게들이 모두 담합을 했는지 레스토랑에서 마트를 겸하고 있었고

알베르게 내에 키친도 없어 식사를 모두 사먹어야만 했다.

하지만 음식값은 그다지 비싸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할 것도 없으니 때가 끼어 지저분한 손톱과 발톱을 깎고

천천히 동네 산책을 하는데 작은 성당이 비어 있다.

그 안에 들어가 아무도 없고 공명이 좋은 것을 확인하고 성당의

이층에 올라가 노래를 하며 녹음을 했다.

생명의 양식 (Panis Angelicus)

녹음 후 들어 보니 역시 성당의 울림이 좋아 마치 없는 파이프 올갠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빨래를 하고 건조대에 널어 놓으니 햇볓이 좋고 바람이 부니 빨리 말랐다.

오늘 참 행복한 날이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