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7일차 (로스 아르코스 - 로그르뇨), 27.8km

carmina 2016. 6. 9. 10:13



2016. 4. 25


오늘은 거의 28km를 걸어야 한다.

다른 날 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조용히 배낭을 챙겼다.

아침도 첫 마을인 산솔까지 무려 7km나 되니 2시간 동안

먹지 않고 걸으면 허기질 것 같아서 알베르게에 있는

자판기에서 빵을 꺼내 배낭에 넣었다.


길은 어두워도 보름달이 있어 조금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어제 아침보다 더 한기가 밀려온다.

마을 곳곳의 석상들이 나를 바라보며 속삭이는 것 같다.

어두움속을 걷는 순례자여!   

자네같은 사람을 1000년동안 지켜 보았네.

그 길은 힘들어도 영광의 길이네.

내가 지켜 줄 것이고, 해와 달이, 바람이, 풀잎이 너를 지켜 줄 것이네

그리고 자네 발걸음을 기억하는 이가 지켜 줄걸세.

부엔 까미노.


먼동이 튼다.

하늘이 열린다.

검은 대지에 회색빛 구름이 덮여 있다가 조금씩 해가 위로 밀어내고 있다.

그 벌어진 틈 사이로 광명이 보인다.

내가 떠나온 마을에 불빛이 점점 멀어진다.

곧은 길, 일자로 길이 뻩어 있다.

나보다 부지런한 커플을 빠르게 걸어 추월하고

손이 시려워 자꾸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어 보지만

배낭 때문에 불편하다. 장갑을 끼었지만 얇은 장갑이라 따뜻함이 없다.

아직 어두운데 앞의 갈림길에 작은 벽돌 집이 있다.

다행하게도 바로 그 앞에 이정표가 있어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

길가에 못 보던 나무들이 보인다. 올리브인가?

날씨가 환해지면서 노란 꽃이 더 선명해 지고 하얀 꽃도 빛을 내고 있다.


지형상으로 산솔까지는 거의 낮은 언덕이나마 지루하게 오르고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도로의 가운데를 걸으며 하염없이 나의 그림자를 벗삼아 걸으며

내 그림자와 동행하는 모습을 동영상을 찍어 보았다.

밀밭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가 내가 움직일 때마다 덩실 덩실 춤을 춘다.

그러다 보면 또 포도밭의 나무가지들도 양팔을 벌려 춤을 추는 것 같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을 지나던 순례자에게 악마가 다가와

내게 악마와 영혼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순례자가 거부하고

악마와 싸우며 순례자의 그림자를 악마에게 씌워 버리자

악마가 그림자를 뒤집어 쓴 채 도망가고 순례자는 영혼과 몸을

지켰다고 하는데 오늘 내게 악마는 오지 않았다.  


멀리 마을이 낮은 언덕에 보이는데 저 곳이 산솔일까?

아무리 둘러 보아도 이 근처에는 마을이 없으니 산솔이 맞을 것이다.

카페에서 커피만 시키고 빵은 자판기에서 산 것으로 대신했다.

자판기용 빵은 너무 달다. 아마 설탕이 많아야 오래 보관가능하기에

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혹시 빠른 걸음의 조가 나를 따라 오지 않을까?

산솔에서 다음 마을인 토레스 델 리오는 거의 모퉁이만 돌아가면

될 정도로 지척의 거리다.


산솔보다 오히려 토레스 델 리오는 더 큰 마을이다.

템플 기사단이 예루살렘을 본 따 지었다는 커다란 성묘성당이

막 새로 지은 것처럼 눈 앞에 우뚝 서 있다.


마을을 지나는데 어느 집앞에 과일과 초코렛바를 파는 무인가판대가 있어

지나는 사람들이 동전을 놓고 가져간 듯 과일바구니 앞에 동전들이 몇개 놓여 있다.

순례자들 중에 이것을 그냥 가지고 가는 사람이 있을까?

이른 아침인데도 동전이 좀 있는 것을 보면 어제부터 놓여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서가는 사람의 종아리에 이상한 문신을 새겨 놓았다.

까미노를 걸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참 많은 사람이 몸에 문신을 하고 있다.

마치 길거리 벽에 그라피티를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팔뚝이나 등은

물론이고 목 뒤에도 하고 이처럼 다리에도 문신을 한다.


마을을 지나 언덕길로 올라가는 오른쪽 기슭에 사람들이

자기 소망을 종이에 적어 돌로 눌러 놓았다. 이런 것은 한 사람이

하면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너도 나도 따라하기에

그 소망의 언덕에는 수없이 많은 소망쪽지가 돌에 눌려 있다.

나도 내 스탬프를 찍은 포스트잇을 놓았다.


그 언덕을 넘어 내려가는데 길가에 돌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굴이 있어 무언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전에는 순례자들이

노숙을 했을테니 그런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문득 앞서가는 젊은 외국인의 배낭에 텐트가 달려 있는 것을 보고

노숙하느냐고 물었더니 가지고는 왔는데 아직 한 번도 해 보지는

않았단다.


길을 가며 이상한 꽃들을 자주 보인다.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보랏빛 큰 꽃인데 아무리도 독초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다시 발바닥이 아파온다. 길가에 앉아 양말까지 다 벗고

발바닥을 문지르고 있으니 길가는 순례자들이 괜찮으냐고 묻는다.

지금 몇 시간 째 걸었는데 한국인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혼자 그림자 놀이를 하고 있다.


모퉁이를 돌아가니 천막을 쳐 놓고 먹을 것 마실 것을 파는

가게의 벽에 전세계의 언어로 낙서를 하였기에 그 중 한글을 찾아 보았더니

몇 개 보였다.

'힘을 내요 슈퍼파월'

'7km 남았어?'  

'부엔 까미노'

누군가는 순례자의 이미지 등뒤에 날개를 달아 놓았다.

어느 곳에서는 작은 돌탑을 쌓아 놓았는데 이것도 전염병인듯

너도 나도 줄을 이어 작은 돌탑들을 쌓아 놓았다.

까미노를 걸으면서 이런 것들을 참 많이 보았다.

누군가 하면 나도 하고 싶어진다.


산악지대이다 보니 이제까지 보아왔던 광활한 밭은 사라지고

마치 우리 땅의 논과 밭같이 작은 땅들을 개간하여 오밀 조밀

밀밭, 포도밭들을 개간해 놓았다.


길가 마을에 들어가 맥주를 한 잔 마시는데

평소 안면 있는 이태리인 디에고가 나보고 국적을 묻고

자기도 아는 한국인 있다며 말하는데

영화감독 김기덕씨를 이야기한다.

아마 이태리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김기덕씨가

수상을 한 것을 기억하는가 보다. 한국 영화를 별로 보지 않는

나는 어느 영화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마을을 지나는데 모퉁이를 한번

꺾어져 왔기에 당연히 앞으로 계속 가야 하는 줄 알고

진행하는데 앞서 오던 현지 아가씨가 길 잘 못들었다고

하며 옆길을 알려 준다. 알고 보니 모퉁이를 돌고

바로 옆에 또 다른 모퉁이로 화살표가 나 있었다.

길을 가다가 이런 적이 몇 번 있었다.


이제부터 밀밭보다 포도밭이 더 많이 보인다.

이 곳 리오하 지방에서는 와인이 맛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포도밭에도 농삿군은 별로 보이지 않고 농기계를 이용하는지

가끔 포도밭에 농기계가 놓여져 있다.

밀밭에도 농삿군은 오로지 농기계로 모든 농삿일을 하는 것 같다.


다음 마을로 가기위해 길은 차도를 따라가야만 했다.

물론 차가 별로 안다니는 길이라 위험은 없었지만

까미노 길중 이렇게 차도 바로 옆을 다니는 곳은 별로 없다.

길을 걷다가 기아차가 지나가면 반갑다.

  

멀리 다음 도시인 비아나가 큰 성같이 보인다.

이 곳에는 성벽이 많고 성당과 수도원이 다른 곳보다 더 커보인다.

현대를 사는 사람도 늘 중세의 건물 속에 살고 있으니

어떤 마음을 가질지 자못 궁금하다.

생활에 불편함은 없을까?

집수리 하나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재잘거리며 노는 소리를 오랜만에 듣는다.

길거리 사람들은 많고 여기 저기 노인들도 거리 의장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이 곳 비아나가 사람이 사는 마을같다.


평소 자주 만나던 한국인 부부가 길에 배낭을 풀어 놓고

버너를 켜서 스테이크를 굽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한 점 먹어 보라고 부르기에 나도 웃으며 한 점 먹고 있으니

내가 아는 또 다른 외국 순례자가 내게로 외기에

그에게도 한 점 집어 주었더니 무척 맛있어 한다.


길가에 가끔 커다른 구호를 써붙인 낙서를 본다.

아마 스페인 일부 지방이 독립을 원하는 내용 같다.

하긴 스페인을 이곳 사람들은 자신을 스페인인이라 하지 않고

어떤 이는 자신을 까탈루냐인로 부르고 어떤 이는 에스파냐인

어떤 이는 바스크인이라 부른다.


그다지 크지 않은 공공 건물 근처에 넓은 잔디밭이 있어

순례자도 동네 사람들도 개를 데리고 나와 쉬고 있고

피크닉을 할 수 있는 나무테이블이 있어 나도 너무 일찍

목적지에 도착할 것 같아 이 곳에 배낭을 내려 놓고

맨발로 한참 햇빛의 따스함을 즐겼다.


길가 이정표에 누군가 둥그런 돌을 하나 가져다 놓고

영어로 Buen Camino 라고 쓰고 밑에 한글로 부엔까미노라고

써 놓았다. 아마 이런 낙서를 하기 위해 일부러 굵은

매직펜을 준비하고 다니는 것 같다.

어차피 허가된 낙서라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로그르뇨에 가까와질 때 긴 소나무 숲을 지나왔다.

마치 한국의 내가 잘가는 강화도 나들길을 걷는 기분이다.

도로 위를 순례자들이 건널 수 있도록 나무 육교를 만들어 놓았다.

큰 도로가 아니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날씨가 좋아지면 사람들은 무거운 등산화보다는 샌들 등산화를

신고 걷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샌들 등산화의 단점은

가끔 작은 돌이 신발 안으로 들어와 불편할 때가 있다.

이번 여행에 샌들 등산화를 가지고 올지 말지 무척 고민하다가

결국 그것조차 무거워 포기했었다.


숲가에서 아주 오래된 까미노 이정표를 발견했다.

아마 몇 백년은 되었음직하고 가리비 표시를

돌에 직접 새겨 넣었다. 그 이정표를 손으로 어루 만져 보았다.

중세때의 순례자들을 직접 목격했을 그 이정표를 보며

감회가 깊었다.


큰 길을 따라 하염없이 긴 길을 걸었다.

비아나에서 로그르뇨까지 거의 10km인데

순례자를 위한 아무런 시설도 없다.

길가에 커다란 공장지대를 지나고 햇빛이 뜨거워

무언가 달콤한 것을 마시고 싶고 화장실도 가고싶은데

도무지 적당한 곳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앞 뒤에 사람들이 없기에 얼른 방뇨하는데

바이크를 즐기는 순례자들이 내 옆을 쏜살같이 지나간다.


누군가 길가 벽에 이렇게 한글로 써 놓았다.

'사랑했지만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까미노는 누구나 커다란 이유를 가지고 온다.

종교적인 이유, 체험적인 이유, 그리고

무엇인가 떨쳐 버리고 싶고,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고,

새로움을 시작하고 싶을 때,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이 힘든 길을 떠난다.


두 명의 프랑스인이 유독 큰 지팡이를 잡고 길을 걷고 있기에

말을 건넸더니 영어를 전혀 모른다.

대화자체를 싫어하는 눈치다.  


그다지 힘들지 않은 평평한 길을 오랜동안 걸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제일 힘든 일이다. 길의 굴곡이 없이

오랜동안 걷는 길은 사람을 더 지치게 한다.


길을 가다가 어떤 할머니가 좌판을 벌이고 기념품을 팔고 있어

그 근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경찰 차가 지나가다

무엇인가 얘기하는 것 같다. 아마 허가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 좌판 앞의 집이 참 이뻤다.

화분을 예쁘게 가꾸고 집의 여기 저기 꽃들로 장식해 놓았다.


시골길을 지나니 갑자기 큰 길이 나타나고 노란 화살표가 실종되었다.

아마 갈림길에 표시는 없어도 그냥 진행하라는 뜻일 것이다.

도시 입구에 까미노 안내사무실이 있어 들어갔더니

예쁜 아가씨들이 웃는 얼굴로 반긴다.

숙소를 안내해 주고 지도를 제공하기에

기념으로 사진하나 같이 찍자고 권했더니 좋아하며 포즈를 취해주었다.

  

에브로 강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는데 노숙자인 듯 허름한 복장의

남자가 손에 팩 와인 하나를 들고 걸어가고 있다. 이 곳에는 노숙자도 와인을 마신다.


안네사무소에서 알려 준 썩 괜찮은 숙소에 도착. 

현대식 건물이라 베드버그가 없을 것 같고

정원에 작은 분수대가 있어 사람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짐을 풀고 빨래하여 양지 바른 곳에 널고

순례자들이 잘 가는 식당을 소개받아 골목길을 지나 찾아간 곳에서

순례자 메뉴를 시켰더니 마실 것으로 물을 줄 것이냐 와인을 줄것이냐 묻기에

와인을 시켰더니 레이블이 없는 와인 한 병을 가져다 준다.

물값이나 와인 값이나 같은 가격인가 보다.

샐러드로 멜론에 하몽을 얹어 먹는 것도 맛있고

메뉴에 양고기가 있기에 양고기 매니아인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주문했더니 그다지 두텁지 않은 양고기를 가져다 준다.

혼자 와인 한 병을 다 마시고 기분이 좋아 숙소 정원에 앉아 쉬다가

그만 거기서 낮잠을 자 버리고 말았더니 아는 순례자들이

나보고 코골며 낮잠 잘 자더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그날 밤에 잠을 못자 설쳤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