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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와 함께 한 남도순례 - 곡성, 구례편

carmina 2017. 3. 22. 11:33

 

2017. 3. 7

 

 

아침부터 바람이 심했다. 혹시나 배가 뜨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예정대로 출항한다고 했지만 바닷가에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해가 뉘엿 뉘엿 질 때 쯤 창밖으로 보이는 석양의 모습이 아름다워 우리 몇 명이 사진을 찍는다고 급히 선실을 뛰어 나가는 것을 보고 다른 승객들이 무슨 일이 생긴지 알고 무척 놀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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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호에 마을버스를 싣고 제주를 떠나 완도에 도착할 즈음 멀리 전망대가 보이는 것을 보고 선실내에

서  4시간 반동안 파도에 배가 흔들림이 심하게 느껴질 정도였고 갑판에 올라가니 서 있기도 힘든 심한 바람에도 안전하게 왔다는 생각에 감사기도부터 입에서 나왔다. 늦은 오후 쉬임없이 차를 달려 곡성으로 향했다. 특별히 연고는 없지만 그 곳에 일행 중 한 분이 평소 잘가는 식당이 있어 그 곳에서 저녁을 먹고 하루 숙박비없이 잘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고 곡성은 레일 바이크를 탈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어 차가 어두운 밤에 북쪽을 향해 달렸다.   

섬진강을 따라 깊이 깊이 들어가 곡성의 작은 마을인 압록리로 향했다. 처음들어 보는 마을 이름이지만 전라선의 압록역이 있고 유원지가 있어 섬진강에서 잡은 은어나 쏘가리 등 민물고기 매운탕이 맛있는 식당들이 제법 있는 곳이다. 식당마다 섬진강가에 커다란 평상을 놓은 것을 보니 장사가 잘 된다는 증거다. 이미 해가 진 늦은 시간에 도착했고 한 겨울이라 거의 문을 연 식당이 없지만 한 곳만이 우리를 위해 불을 켜 놓고 있다. 바닷가 도시에서 자란 내 체질상 민물고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매운탕은 잘 먹는 편이다. 그러나 매운탕에 나오는 생선은 거의 부스러진 고기라 제대로 된 생선맛도 볼 수 없음이 늘 아쉬웠다. 사람들은 민물고기도 회로 먹는다 하는데 이상하게 나는 어릴 때 부터 그렇게 먹고 기생충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자주 봐서 가능한 회는 먹지 않는다. 


 

2층의 넓은 공간에서 방석으로 요를 대신하고 가지고 다니는 침낭으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니 넓은 창으로 보이는 강가에 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 이제 막 내리기 시작하는 듯 지붕에 쌓인 눈은 없고 어디선가 기적소리가 들린다. 겨울이면 내가 참 즐겨부르는 가곡 '고향의 노래'의 가사에 나오는 듯한 풍경이다.

 

잠시 밖에 산책 겸 나왔는데 식당의 수족관에 가득찬 은어와 가물치 등 물고기들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고 허기를 느꼈다. 아침을 끓여 먹을 재료도 장비도 부족해 버스를 타고 일찍 식당을 떠나 9시에 레일 바이크가 시작된다 하니 눈이 펄펄 내리는 섬진강을 따라 침곡역으로 향했다. 우리 외에 아무도 레일 바이크를 탈려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고 매표소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레일 바이크는 전라선 일부 구간이 경로를 바꾸어 증기기관차 이외에는 자주 다니지 않는 유휴시간에 관광객을 위한 선로를 확보해 운행하며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운행은 하루 5번 떠나고 거리는 침곡역에서 가정역까지 약 5km를 페달을 밟아 가야 한다. 2인용이 있고 4인용이 있는데 2인승은 대당 2만원 4인승은 3만원이다. 곡성은 철도를 주요 관광자원을 활용하고 있다. 레일바이크를 비롯하여 기차마을, 기차 박물관, 기차펜션 등이 있고 봄이면 섬진강 주변의 산수유와 한옥마을등을 많이 찾는다.

 

혹시나 운행구간 중 오르막이 있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대체적으로 평탄했고 일부 구간은 아주 비스듬한 내리막길이라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안전요원의 설명을 듣고 강시인님과 내가 팀이 되어 바이크의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바이크에 핸드 브레이크가 있어 속도가 빠르다 싶으면 조절할 수 있어 앞에 가는 바이크와 부딪힐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우리 팀 이외에는 사람이 없어 여유있게 약 30분동안 바이크를 즐겼다. 중간에 선로 위로 작은 육교 같은 것이 있어 다른 사람이 기념촬영을 찍을 수도 있다.

 

가끔 내리는 눈을 맞으며 좌로는 맑은 섬진강과 우로는 가끔 보이는 자작나무 풍경을 눈에 담으며 바이크를 타니 모두 즐거워했다. 배가 고파 가정역 바로 앞에 있는 식당을 찾아 제육볶음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음식점은 대개 할머니가 만드는 음식점이 맛이 있다. 이 집의 음식도 그랬다. 제육볶음외에 곁들여 나오는 반찬이 많지는 않았지만 정갈한 맛이 있었다.  막걸리를 시키니 둘레길이란 상표가 붙어 있는데 주성분인 쌀도 밀가루도 모두 수입산인 것이 조금 안타까왔다. 

 

식사 후 섬진강을 가로 지르는 출렁다리를 호젓하게 산책했다. 다리를 건너며 보니 가정역의 옆 산 능선에 기차를 이용하여 만든 펜션이 보였다. 강이 보이고 기적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하루를 묵는다는 생각은 마치 달콤한 초코렛을 먹는 기분일 것이다.

 

 

 

 

 

장수군으로 가기 위해 지리산 노고단을 거쳐 넘어가는 것이 경치도 좋을 것 같다고 해서 한참 노고단쪽으로 갔는데 입구에서 지리산에 눈이 많이 내려 차가 올라 갈 수 없으니 다른 길로 가라고 통제를 하여 다시 어느 곳을 갈까 망설이다가 아직 산수유는 많이 피지 않았지만 구례 산수유마을로 가자는 의견으로 버스가 구례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

 

내가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기 위해 몇 번이나 왔던 구례. 길 가의 마을의 이름들과 모습들이 무척이나 반갑다. 방광마을, 산동마을, 내가 어느 해 봄에 찾았던 오미에서 난동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벚꽃길 옆으로 우리 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비록 힘들었지만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힘든 것을 잊고 걸었던 길들. 지금 주마등같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창밖의 풍경으로 흘러가고 있다.

 산수유 마을을 예상했던 것처럼 썰렁했다. 그러나 곧 다가올 큰 축제를 위해 빨간 산수유 열매를 상징으로 한 새로운 빌딩을 준비하고 있고 내부도 인테리어 공사중이었다. 이른 아침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손님을 찾아 할머니 한 분이 가지고 나오신 산수유차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고 강정과 산수유 말린 것을 팔았다.

눈이 내렸다. 축제를 위해 만든 대형 텐트군과 커다란 광장과 공원에 눈이 펄펄 내린다. 기암괴석이 있는 공원 정자 위에 오르니 함박눈이 아래로 퍼 붓는 장관을 연출한다.

 

 

 

 

 

모두 신이 났다. 봄이 코앞인데 이런 호사를 누릴 줄이야. 멀리 보이는 지리산 봉우리는 눈 구름에 휩쌓여 희미하게 보일 정도다.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추워 다시 차로 와 산수유가 많이 핀다는 마을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산수유 나무가 많은 마을의 한가운데까지 버스를 타고 들어가 한 켠에 세워 놓고 천천히 산책을 했다. 온 동네에 산수유 나무 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 막 피고 있는 꽃들이 모두 활짝 피면 여긴 마치 진한 노랑물을 온 동네에 풀어 버린 마을이 될 것 같다.

그 마을 한 구석에 오래된 서당같은 기와집이 있다. 봄이면 자주 촬영장소로 이용된다는 집이다. 이런 분위기 있는 장소에 우리 사진이 빠지지 않았다. 어느 집 앞에서 산수유 말린 것이 가득 쌓여 있고 마을 아저씨가 일을 하시기에 들어가 인사를 드리니 아직 철도 안되었는데 이 곳을 찾은 우리를 신기하게 생각햐셨다.

그렇게 언덕을 거닐다가 항아리가 많은 집에 아저씨 한 분이 마당에서 일을 하시기에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이것 저것 이야기를 하는데 안주인께서 나오셔서 우리와 대화를 시작했다. 자기도 도심출신인데 이 곳에 온지 16년정도 되었단다. 이 곳에 밤이면 밤별이 너무 아름답고 봄이면 온 세상이 꽃 천지라 너무 좋다 한다. 처음에 이 곳 산수유 축제를 자신이 시작했지만 이제는 규모가 커지다 보니 자신은 빠지고 다른 사람이 진행한다며 섭섭해 하시더니 우리를 집안으로 불러 들여 따뜻한 커피를 대접하며 자신이 이 곳에서 땅 문제로 섭섭한 이야기를 끝없이 얘기하셨다.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에게 그런 말보다 더 좋은 말로 이 곳을 소개해도 좋을텐데.... 아마 그런 일로 한이 맺혔는지 그 분은 누구와 만나도 그 얘기를 할 것 같다. 이 곳에 놀러 오고 싶다 했더니 오시면 방은 내 드리지 못해도 마당에서 텐트는 칠 수 있다고 한다.

언제 기회되면 사람들 없을 때 훌쩍 이 곳에 와 밤별을 보고 싶다.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