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국내여행기

마을버스와 함께 한 제주여행 (1)

carmina 2017. 3. 21. 16:18

 

 

2017. 3. 1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제주로 가는 8시 출발 페리호를 탈 수 있는 완도로 떠났다.

완도항이 눈에 익숙해 생각해 보니 언젠가 청산도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서울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내려와 이 곳에서 아침을 먹고 전망대에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등나무가 아름다웠던 여객 터미널 앞 쉼터는 사라지고 대규모 공사중이었다. 지난 번에 왔을 때 먹었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버스를 배에 실었다. 혹시나 해서 멀미약을 사 먹기는 했다.

 

 

 

휴일은 요금이 10%정도 할증된다. 3등 객실에 오르니 사람들은 서둘러 담요를 펴서 바닥에 누울 공간을 차지했다. 추자도를 거쳐서 가는 한일카페리호는 휴일인데도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배의 흔들림이 전혀 느끼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완도항을 떠나 파란 바다를 미끄러지듯이 나아갔다. 갑판위에서 바라보는 옥빛깔의 남해 바다는 하얀 뭉게구름의 그림자를 껴안고 길게 길게 뻗어 나갔다.

지난 밤 모자랐던 잠을 배에서 보충하는 사이 추자도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리고 페리호는 완도를 떠난 지 4시간 반동안 물살을 달려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에서는 새로 합류하는 일행 2명이 기다리고 있다. 한 명은 이전에 마을버스 세계여행시 만났던 젊은이로 그 뒤 입대한 뒤 이번 여행을 위해 휴가를 나와 합류했고 또 한 명은 일부러 캐나다에서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날아온 교포 여성이다.

이제 완전하게 한 팀을 이루었다. 모두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오랜동안 같이 여행을 다닌 사람들처럼 금세 친해졌고 대화와 웃음은 작은 버스 안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이런 모습이 참 신기했다. 어느 여행팀이 마치 스위치를 켜면 전기가 통하듯 이렇게 순식간에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제주도에서 해변이 가장 아름답다는 협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일부러 직선길을 피해 해안길로 달렸다. 좁은 마을길에 일반 대형버스는 가기 힘들어도 마을 버스는 승용차가 다닐 정도면 좁은 길도 충분히 다닐수 있는 편리함이 있었다.

이미 나는 제주 올레길을 타박 타박 걸어 완주하였기에 제주 해변들은 속속들이 알고 있어 협재 해수욕장의 하얀 백사장의 모습이 어떤지 그 주변에 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내 기억속에 지도가 있었다. 다만 다른 것은 내가 이전에 보아왔던 캠핑트레일러 숫자가 많아졌고 카페가 조금 더 생긴 것 뿐이다.

은빛 모래사장과 옥빛 바다. 화산암이 잠들어 있는 바다는 투명망토다. 열대지방을 연상케하는 야자나무는 덤으로 얻어지는 풍경이다. 많은 커플들과 가족들이 한가롭게 산책하고 있는 그 곳에서 우리도 발자국을 남겼다.

협재해변을 나와 구비 구비 해안길을 따라 가다가 하얀 등대가 보여 무조건 돌진했다. 원래 등대가 있는 곳까지는 차량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커다란 돌을 양쪽에 놓았었는데 무슨 일이 그 돌이 옆으로 비켜져 있기에 등대 바로 앞까지 가서 주차를 하고 또 한 번 우리들은 본능처럼 버스 위로 기어 올라가 날아 올랐다. 그리고 등대같이 긴 팔을 하늘로 뻗어 올렸다. 우리는 신이 났는데 등대 옆 바닷가의 낚시를 하는 아저씨와 밤에 주로 바다로 나가는 오징어잡이 배는 그저 바다같이 침묵했다.

이번 제주도의 숙박은 내가 지난 해 올레길 1코스를 걷기 위해 묵었던 성산포 근처의  '무명화가의 집'게스트하우스 (010-9594-6126)로 정했다. 대장님이 올레길을 많은 걸은 내게 사전에 '좋은 숙소를 구해보라'며 주어진 임무였다. 지난 해 이 곳에 밤 늦게 찾아 왔을 때 주인인 화가님이 바다에서 숭어를 잡아 와 내가 가지고 갔던 저녁 거리를 먹지 않고 다른 이름모를 여행객에게 전해 달라 부탁했는데 그 다음 날 어떤 이가 내가 가지고 온 음식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고 감사의 전화를 했던 좋은 추억이 있다. 또한 이 곳에서는 다른 숙소에서 형식적으로 주는 샌드위치 아침과는 격이 다른 아침을 제공하고 있다. 주인이 정성껏 준비한 아침은 정갈하고 맛있어 많은 여행객들이 이 아침 때문에 이 곳에 온다고 한다. 음식 준비에 냉동식품을 사용하지 않는 주인의 원칙아래 모든 음식은 그날 그날 장에서 직접 구입해 반찬을 만들어 더욱 맛이 있다.  

 

 

 

저녁에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바베큐 파티를 위해 좋은 제주도의 고기를 사가지고 들어갔기에 도착하는 날 저녁 식사는 푸짐했다. 넓은 마당에 놓인 드럼통을 잘라 만든 바베큐 그릴에 고기가 벌겋게 익어가며 밤을 즐겼다. 또한 화가께서 잡아 온 생선회는 제주 앞 바다의 물고기가 그대로 물 위로 뛰어 올라 내 입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그 날 주인의 배려로 게스트 하우스의 본채를 우리 전용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에 편백나무로 만든 여유있는 침대도 모두 우리 차지였다. 그러나 별채에 묵고 있는 다른 여행객이 우리의 분위기가 좋다며 같이 어울렸다. 그 분은 다음 날 다른 게스트 하우스를 이용하려 했으나 우리가 하루 더 묵는다 하니 결국 우리와 같이 저녁을 즐기기 위해 이 곳에서 하루를 더 묵었다.



이 곳에 또 다른 일행이 합세했다. 대장님과 많은 날을 세계여행을 같이 한 동명이인 남자와 마을버스의 스폰서인 스포츠용품회사에서 직원들이 방문해 흥겨운 저녁을 같이 했다.  

기타치며 노래를 부르고 시인이 시를 낭송하고 나는 제주에 대한 시를 쓰기로 유명한 시인 이생진님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낭송하다가 그만 말미에 눈물이 왈칵 쏟아야만 했다. 왜 그랬을까?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 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 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 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 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 주었다

365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60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밤새 모두 함께 기타치며 노래했다. 스마트폰 덕분에 모르는 노래도 악보를 찾아서 따라 부를 수 있었고 내가 부르는 노래들은 거의 모두 정확히 가사는 몰라도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였다.

언제 잠들었던가?

원래 오늘 부터 비 소식이 있긴 했지만 구름만 많고 비는 오지 않았지만 밤새 바람부는 소리가 요란했다. 태풍이 온다는 뉴스는 없었는데 창밖에 나무 흔들리는 모습이 거의 태풍수준이다. 주인도 이렇게 강한 바람이 최근 없었다며 혹시 집이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단다. 

역시 내가 먹어 본 경험과 소문대로 이 게스트하우스의 아침식사는 최고였다.  ​이런 식사을 식당에서 먹을 경우 적어도 7~8000원 이상 할텐데 하루 숙박비 2만원에 아침식사비를 제한다면 이 곳의 숙박료는 그야말로 최저가로 얘기해도 좋을 것 같다.

 

바람이 몹시부는 날, 우린 ​게으름을 피다가 느지막하게 제주도에 회국수로 유명하다는 조천의 해녀촌을 찾았다. 해녀촌의 바닷가 바로 앞에 있어 파도가 몰려 와 바위에 부서지며 솟구치는 포말을 보며 오늘 태풍이 얼마나 많이 부는지 실감했다.

 

    

지난 번 친구 부부와 같이 찾았던 조천의 맛집인 이 곳의 회국수와 고등어 구이가 일품이다. 커다란 쟁반에 국수와 회를 얹고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비며 나누어 먹어야 한다. 회도 일품이지만 국수의 탱탱함이 살아 있다. 성게국수는 따뜻한 면이고 한치국수의 한치는 냉동제품을 쓴다.

식사 후 조금 특이한 스케쥴이 있었다. 제주에 사는 자유여행가 쨍쨍이님 댁을 방문했다. 운전을 하며 근처에 와서 노란 지붕이 있는 집을 찾으면 된다 했다. 평범해 보이는 집 뒤에 노란 지붕을 가진 집이 보였고 우리가 대문쪽으로 가니 노란색 레이스가 달린 커다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노란 머리를 한 여자분이 반갑게 나와 우리를 맞는다. 한 눈에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느꼈다.

 

 

대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노란색 피아노 건반의 무늬를 그려 놓았다. ​빨간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밖에서 보았던 색깔 이상으로 현란한 색들이 온 방에 가득하다. 팀 버튼의 판타스틱 영화 '찰리와 초코릿공장'에 들어 온 것 같았다.  아니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들어왔다.

빨간 문을 여니 문 옆에 빨간 피아노가 있고 그 위에 인도에서 온 듯한 인형들이 수북하다. 빨간 벽지로 만든 방에 빨간 소파가 있고 다른 방엔 전세계을 여행다니며 모은 모자와 각종 현란한 드레스들과 레이스들, 이 모습을 보며 내가 꿈꾸어 왔던 개인 방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도 그랬다. 전세계를 출장이나 여행다니며 그 나라의 토속품들을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런 물건들이 있는 방에 들어가면 늘 행복했다. 그러나 아내는 이런 토속품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내는 보이지 않는 두길 원했고 나는 늘 밖에 꺼내 놓기를 원했다.  전세계 출장을 다니며 주로 소리나는 토속악기들을 사가지고 왔다. 멕시코의 피라밋옆에서 산 흙피리, 남미에서 산 팬플륫, 오르골 피아노, 아프리카에서 산 작은 봉고와 유럽에서 산 피리들.  중동에서 산 현악기 등등 사 모았고 그런 것들을 보며 늘 여행을 추억했는데 자꾸 집에 어딘가 구석으로 들어가 버려 어느 날 모두 거두어 음악교사를 하는 지인에게 교육용으로 쓰라고 전해 주었다.

 

 

 

본명이 최순자인 쨍쨍이님은 우리에게 집 근처에서 딴 동백꽃을 모두 한 송이씩 선물했다. 얼마나 그 모습이 보기 좋던지 나는 감동했다. 내가 원하는 손님 접대 방법이다. 막 삶은 돼지고기 보쌈과 막걸리로 우리를 대접했고 턴테이블에 가수 한영애가 부른 '누구없소' LP판을 올려 놓고 우린 모두 드레스룸에 있는 전세계 민속 모자를 하나씩 쓰고 신나게 춤을 추었다. 그것도 모자라 민속 드레스를 걸쳐 입고 거의 무아지경으로 춤에 몰두 했다.


그녀는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명예퇴직하고 세계가 집인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 되어 세계를 여행하였다.  ​몇 년간을 홀로 여행하며 자유인이 되었다. 세계인의 언어로 살았고 현지인의 방식대로 살았다.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모든 여행자의 종착지는 인도라고..  그녀는 인도는 8번이나 다녀왔다. 그녀는 여행을 즐겼다. 세계 어디를 가도 현지인과 자유롭게 어울렸고 마음이 내키며 오래 한 곳에 머무르기도 했다. 그녀의 모토는 '여행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였다. 문득 내 인생의 모토인 '음악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와 너무 흡사해 놀랐다.

그녀는 인도의 색깔을 좋아했다. 화장실 문은 노란색이 벽은 파란색이고 세면기는 커다란 장미 무늬가 있고 욕조는 빨간색이다. 아! 나 이 집이 왜 이리 좋지?

그녀가 우리에게 한 장의 종이를 보여준다. 그 곳에 '순자제일광, 충심환영 너의 제이집에 들어오십시요'라는 말도 안되는 한글로 쓴 뜻을 그녀가 풀이해주는데 Jay 라는 외국인 친구가 "Sunja is my sunshine. Really Welcome. Come to your J's home" 라는 영어를 인터넷에서 찾아 한글로 번역해 그려서 보내주었다며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집을 나와 그녀의 제안으로 가까운 우진제비오름을 가기로 했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모두 옷을 꽁꽁 싸매입고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낮은 오름이지만 전망이 아주 좋았다. 바람이 강하게 부니 추워서 가지고 올라간 모포를 잡고 커다란 날개를 만들어 어느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장면을 연출했다. 오름의 봉위에 부는 바람을 우리를 모두 날려버릴듯이 강하게 불어 얼른 기념촬영만 하고 반대편으로 내려오며 어느 커다란 나무 앞에서 그녀는 따라오는 무리를 기다렸다가 갑자기 긴장되는 말을 조그마하게 했다.

"진정한 자연의 기를 받기 위해서 ​내가 여기서 옷을 다 벗을거예요,"

그러나 그녀는 벗지 않았다. 혼자 걸을 때 가끔 이 곳에서 옷을 벗고 완전한 자연의 몸이 된다고 했다. 어쩌면 그런 것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혼자 빙그레 웃었다. 그녀는 진정 자유를 추구하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내려오는 길에 도롱뇽알이 가득하게 깔려있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그 옆에 노란 복수초들이 하나둘씩 작은 꽃잎을 내밀었다.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바닷가를 찾았다. 바람이 많이 부니 바닷가에 사람들은 없었다. 늘 사람들로 붑석이던 일출봉 근처에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돌이끼가 가득한 해변에 나가 사진을 찍는데 바람이 너무 불어 모래가 샌드브라스팅하듯이 마구 뺨을 두들겨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농협 하나로 마트에 들러 오늘 저녁 메뉴인 파스타재료들을 구입하여 젊은 군인 준수와 내가 함께 요리를 했다. 준수는 요리를 참 잘했다. 음식 재료를 알고 맛을 알았다. 익숙한 솜씨로 해물이 들어간 파스타와 토마토소스 파스타와 함께 싱싱한 샐러드와 살짝 구운 빵을 내 놓았더니 모두 정말 맛있게 먹었다. 텁수룩한 수염의 화가님도 신기한 듯 맛있다며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오늘의 식사 후 여흥은 홀로 여행을 와 이 곳에 투숙한 대구여자가 합세했다. 그녀는 우리와 어울리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우리의 분위기에 묻어 버렸다.  그녀는 같이 노래를 부르고 밤늦게까지 우리를 위해 맥주를 사주며 여행지에서의 낯선 사람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여행은 그런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늦은 밤까지 이야기하는 일행들을 보며 슬그머니 잠자리에 들었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침에 바닷가로 일출을 보러가자 했기에 가고 싶었으나 결국 새벽에 잠이 든 것 같고 누군가 일출 보러 가자고 부르는 것 같았는데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도무지 일출을 놓치기 싫어 대문을 열고 멀리 성산 일출봉 옆으로 해가 떠오르는 것을 지켜 보아야만 했다.

어제 그리 심하게 불던 바람이 오늘은 잠잠해 졌다. 만약 우리가 하루 늦게 제주로 들어왔다면 배가 운항항하지 못해 제주일정은 지연될 수도 있었다.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모두 집 안 곳곳에 붙어 있는 방명록에 우리의 글을 추가했다. 냉장고에서 꺼내 먹은 맥주들을 보충하기 위해 또 다른 기부릴레이를 하느라 맥주캔에 한 마디씩 써서 넣어 놓고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주인은 우리가 가지고 온 음식재료를 이용하여 맛있는 부침개를 만들어 챙겨 주었다.

 

 

오늘은 내가 리드하여 올레길 8코스를 걷기로 하여 욕심같아서는 일찍 출발해 걷고자 했으나 일행들은 느긋했다. 늦게 아침을 정리하고 늦게 떠났다. 또한 출발점인 월평포구로 가는 길가에 커다란 레드향이 매달려 있어 차를 세우고 한동안 레드향과 사진찍느라 시간을 보냈다. 우리 일행들은 여행 중 사진에 대한 열정이 참으로 대단하다. 그것이 나와 조금 다른 점이다. 나는 여행 중 내 모습을 찍은 사진이 많지 않다. 아마 더 많은 자연을 눈에 담고 싶은 욕심때문일 것이다.

결국 8코스 시작점인 송이슈퍼앞에는 ​거의 12시가 다 되어 도착하고 그 곳에서 한라산을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번 여행 중 내 임무가 좋은 올레길 코스 걷기였고 올레길의 아름다움을 많이 보여주고파서 서두르고 싶었는데 그 계획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아 조바심이 났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묵묵히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가 한라봉 무인판매대가 있어 5000원에 한라봉 7개가 든 검은 비닐봉투를 챙겼다. 천천히 걸었다. 일행은 더 천천히 따라왔다. 이전에 내가 걷던 길에 리조트가 생겨 길이 리조트 한가운데를 지나게 되어 있었다. 커다란 약천사 절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관람을 하고 돌아가는 듯 하다가 경내에 감귤나무 밑에 떨어진 귤을 주워 가졌다. 비록 떨어진 것이라도 절의 소유이니 줍지 말아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나는 제주도 올레길 전체를 다 돌았지만 한 번도 그렇게 남의 것을 무단으로 따 먹은 적이 없다. 지리산 둘레길을 모두 걸었어도 그 흔한 감하나 따 먹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 커다란 야자나무 숲이 있는 걸을 때 뒷 배경이 깨끗한 하늘에 보이는 한라산이라 모두 즐거운 포즈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바다가 보였다. 하늘빛과 바다물빛이 동색이다. 멀리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한가해 보였고 가끔 지나치는 올레꾼의 표정이 환해 보였다.

바닷가 길로 걷다가 해변에 쓰레기가 있으니 일행들이 커다란 비닐 안에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저렇게 줍기 시작하면 끝없이 주워야 할텐데 어찌 할려고 그럴까? 결국 조금 줍다가 한 곳에 모아 두었다.  ​

바닷가 모퉁이를 돌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구석진 곳에 둘러 앉아 아침에 싸가지고 온 부침개를 내가 배낭에 챙겨 둔 막걸리 한 잔과 함께 ​즐기고 모퉁이를 다시 돌아가는데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지친 얼굴로 힘든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안다. 그 들이 왜 힘든지.. 그 들은 반대편에서 아침부터 걸어와 지금 거의 한 코스를 거의 마무리하느라 힘들 것이다. 그들의 걷기는 곧 8코스를 끝내고 7코스로 이어질 것이다. 올레길은 잘 걷는 사람이면 대개 하루에 2개의 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 한 코스의 길이가 대략  15 ~ 20km이기에 하루 7시간 30km 정도 걸으면 가능하다. 나는 늘 홀로 그렇게 걸었다.

대포포구를 지나 바닷가길로 접어드는데 앞에 외국여자가 꼬마 아이의 손을 잡고 오기에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멕시코라 하기에 스페인어로 인사했더니 꼬마가 얼른​ 대답한다. 이국에서 자기 나라 말을 들으니 반가웠나 보다. 그 들이 걸어 온 길 끝 바닷가에 차들이 많이 몰려 있어 이상했다. 그리고 밋밋한 이층 건물이 있는데 그 곳에서 남미풍의 음악이 흐르고 있고 많은 젊은이들이 바닷가 테이블에 앉아 있기에 궁금하여 찾아갔더니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VADADA라는 이름의 고급 카페였다. 그 곳에선 와인을 팔고 커피 한 잔에 다른 곳의 2배 가격인 8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그 곳에 모인 젊은이들의 옷차림도 일반 여행자의 외모와 사뭇 다르다. 아마 이 곳이 고급카페로 소문나니 서울로 치면 압구정동급의 젊은이들 부류가 오는 것 같았다. ​그 곳에서 또 한참 놀고 사진찍고 수다를 떨었다. 우리가 걷기 위해 나선 사람들 맞나? 멀리 바다에는 해녀복을 입은 사람들이 고무보트를 사고 바다로 나가 물질을 하는 것이 보였다. ​

모두 아쉽다는 표정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길을 걷다가 주상절리 입구에 도착해 몇 명은 바닷가 바위로 쏜살같이 날아가고 몇 명은 바닷가 돌을 모아 탑을 쌓기 시작했다. 둥그런 돌들을 하나 하나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리는 재미가 쏠쏠하여 자꾸 욕심을 내다 보니 또 시간이 많이 흘렀다. 바닷가로 나간 일행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쌓아 놓은 돌탑을 그대로 두고 걷다 보니 주상절리 매표소를 지나고 그 곳에 있어야 할 먼저 간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보니 그 들은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고 들어가야 할 주상절리 전망대를 좀 전에 바닷가 바위를 뒤로 돌아가 주상절리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 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이 늦어 그들을 만나 같이 갈려고 기다리다가 일행이 네잎클로버를 찾았다. 생전 네잎클로버를 못 찾았는데 어쩌다 우연히 내려다 본 풀밭에 행운의 네잎클로버가 있었다며 무척 기뻐했다. 세상은 세잎클로버가 상징하는 행복속에 묻혀 살면서 행운만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씨에스 호텔 앞에서 우리의 걷기를 멈추었다. 마을버스가 근처에 있다기에 버스에 올라 오늘의 숙소인 카페올림으로 향하기 전에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를 준비했다.  우리 일행에게 자신들의 숙소를 저렴한 가격으로 빌려 주겠다는 카페 주인의 배려로 이틀간 숙소를 이용하기로 했다.

<<제주편 계속됩니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내용 중 일부는 일행이 찍은 사진들을 인용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