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살며..감사하며..

바람새 양양 번개 - 우리에게 과거같은 오늘이 있다

carmina 2017. 6. 5. 23:38

 

 

2017. 6. 3

 

도무지 이 집단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이리도 이미 한물 지나간 과거의 노래들 부르며 행복해 하는 것일까?

인기있는 가수나 다른 사람의 노래를 듣고 박수를 쳐 주는 것이 아니고

이 들은 모두 떼창으로 그 오래 전의 노래들을 머리 깊은 곳에서 꺼내어

따라 하고 있다.

그렇다고 요즘 젊은이들처럼 신나게 발을 구르고

몸을 흔들며 춤추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앉아서 입으로만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도

행복해 하는 얼굴들을 보고 있으려니

이 들의 과거가 궁금하다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누군가 기타만 치면 저절로 노래가 흐른다.

기타 선율이 흐르는 동안 그 노래가 끊이질 않는다.

외부적인 요인이 없다면 아무도 그만하자고 나서는 사람도 없다.

  

한창 젊은 10대와 20대에 형님이나 누님들 그리고

부모님이 부르시던 트롯트가 내 적성에 안맞는다고

생각되는 젊은이들이 포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퇴폐적인 서구 문명이 우리 아이들을 버리고 있다고 하고

가사들이 현 정부를 비판하는 노래들이라고  

너무 비관적인 노래들이 있다고

방송에서 마구 가위질하고 마음대로 가사를 바꾸던 시절에

이 들은 반항적으로 이 노래들을 배웠을 것이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어느 때 부터인가 댄스음악과 함께

도무지 이해 못하는 가사들이 포함된 대중가요가 나오고

칼러 TV에서 보여지는 현란함이 마음에 드는 신세대들 속에서

다방에서 DJ들이 쪽지의 신청곡을 받아 LP판으로 노래를 듣던  

50~60세대들은 어느 때 부터인가 우리의 노래들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 것을 알고 우리끼리 뭉치기로 했다.

그런 모임이 바로 인터넷상에서 시작한 바람새였다.

 

90년대 중반에 하이텔을 시작하고 상업 통신의 CUG로

하나로 된 사람들이 음악을 공유하고 모이더니

인터넷 세대에 맞추어 사이버 공간에 카페라는 것을 만들었다.

또한 오래 된 가수들의 팬클럽이 만들어 지고

나름대로 향수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2017년 바람새의 모임이 1박 2일로 양양에서 있었다.

처음 참여하는 이 모임에 가고 싶어 좀처럼 빠지지 않는

주일 예배도 불참했다.

 

우리에겐 부모님에게 받은 이름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선택한 것처럼

내가 만든 이름들로 모든 것이 통한다.

 

새들도, 꽃도, 자연도, 국적없는 예쁜 말로

우리 스스로에게 참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

 

멀리 양양가는 길.

토요일이 교통 체증이 심하다.

그러나 다른 차끼리 서로 교신하며 가는 길은 즐겁기만 하다.

휴게소에서 만나 생전 처음 보는 얼굴도

이미 우린 모두 익히 아는 사이들이다.

 

진행팀에서 모든 것을 준비했다.

속초에서 이 세상에 하나 밖다는 전복해물뚝배기를 파는 

음식점을 찾아가 줄을 서서 먹는 즐거움은 여행의 기본이다.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줄을 서서 사먹는 씨앗호떡과 닭강정이 유명한

속초전통시장에 들어가 싱싱한 멍게와 섭같은 해물을 사서 입이 즐거운

저녁식사를 기대하는 것도  모두 다 같이 함께 했다.

 

양양으로 향하고 있는데 차 안에 있는 일행들의 핸드폰에서

동시에 문자가 도착했다.

오늘 동해바다에 너울성파도가 심하니 각별히 조심하란다.

마침 이전 년도의 행사에는 늘 스쿠버다이빙으로 해서

잡아 온 해물을 먹었다는데 오늘은 모두 사서 먹는 것으로 했다며

다행으로 생각했다. 아니면 진행팀에서 미리 알고 있던 것일까?

 

점심식사를 하고 숙소로 향하는데 동해 바다에

거대한 파도들이 밀려 오고 있어 모두 탄성을 질렀다.

저녁식사 장소인 바닷가 식탁에서 보니 그 파도는

멀리서 보던 것 이상으로 금방이라도 쓰나미가 올 듯

하얀 포말들이 우리 바로 앞에서 부서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몇 미터 높이의 파도가 밀려와도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너울성파도가 그런 것이었던가?

 

다른 일행이 미리 옆 자리에서 식사를 끝내는 참이었다.

금방 멍게를 손질하고 큰 홍합같은 섭을 끓여 따로 가져 온

회와 함께 즐긴 후 노래가 시작되었다.

구성지게 부르는 하모니카 소리에 모두 흠뻑 빠져 있을 때

옆 팀에서는 앰프를 준비하고 섹소폰을 준비했다. 

우리 노래가 시작된 후 도무지 그치지 않으니

옆팀에서 자기들은 이 장비들을 인제에서 돈들여서

빌려 왔다고 사정하며 마이크로 노래를 불렀다.

 

통기타의 맑은 소리와 앰프의 큰소리가 어울리지 못하듯

목소리만으로 부르는 포크송과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트롯트는 어울리기 참 힘들었다.

 

우린 핑계김에 준비해 온 불꽃놀이 기구들을 들고

조금 떨어진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나왔다.

이미 도착한 젊은이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불꽃들이

힘찬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에 빨간꽃 노란 꽃의 화단을 만들고

하늘로 열심히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그들이 물러가고 난 뒤에 우리도 질세라

열심히 맑은 하늘로 젊은 시절에 간직했던 꽃들을 쏘아 버리고

앞으로의 소망을 적은 풍등을 만들어

별과 달이 빛나는 까만 공간에 높이 높이 날려 보냈다.

누구는 나에 대한 소망

누구는 가족에 대한 소망

누구는 미래에 대한 소망들을 모두

높이 계신 이가 접수했을 것이다.

 

바닷가에서 씨름이 벌어졌다.

넘어뜨릴려던 사람이 넘어지고

잊어서는 안될 물건들이 모래 속에 파묻혔다.

 

그 옆에 종일 일하고 쉬고 있는 작은 배의 난간에

모두 둘러 앉았다.

노래가 시작되고 젊은 시절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 시간이 영원히 끝이 나지 않길 빌었다.

어니언스가 다시 뭉쳤고

요절한 비운의 가수 김정호가 다시 되살아 났다.

사월과 오월이 아직 만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노래를 하고

트윈폴리오 그리고 송창식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통해

현역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커다란 파도에도 요지부동이던 바람이 갑자기 불어와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했다. 

우리가 나이든 것을 알았을까?

 

모두 아쉽다는 표정으로 주섬 주섬 일어나 숙소로 돌아 와

남자와 여자들이 따로 방을 배정해 일정이 모두 끝나는 줄 알았다.

 

방이 넓다는 핑계일까?

아니면 먹을 것이 아직 남아 있으니 해결하자는 무언의 행동인가?

 

여자들이 화장기 없는 얼굴로 한명 두명씩 모여들며

옆에 있는 다른 팀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하게 시작한 노래가 다시 불이 붙었다.

 

그래도 이제 나이가 있는지

젊은이들이 있는 다른 방에서는 아직도 시끄럽게 소음이 계속되는데

우린 겨우 1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슬그머니 일어서야만 했다.

아!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젊은애들의 정력은 못 따라가는구나.

 

슬프다.

 

그러나 기쁘다.

우리에게 아직도 이렇게 노래를 할 마음들이 살아 있으니..

 

누군가 얘기했다.

다음부터 짜장면을 먹어도 좋으니 2~3개월에 한 번씩 

모여서 노래하자고...

 

정말?  좋아 죽겠네..

나...노래라면 한가닥 하걸랑...

근데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우리 모두가 나 같았다.

 

우리는 노래로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