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7일
올해의 첫 나들길 걷기 며칠 전부터 매서운 날씨가 3~4일 이어졌다.
다행히 나들길 떠나는 토요일은 조금 따뜻해 졌다.
아침 일찍 차를 몰고 강화로 향하는 내 차의 왼쪽 백미러에 와이셔츠 단추크기의 붉은 태양이 점처럼 찍혀 있고
잔설이 남아 있는 벌판 위 하늘에는 기러기가 한 줄로 길게 비스듬하게 날아가고 있다.
자주 보는 얼굴들이지만 반가운 얼굴들.
그래도 늘 새로운 얼굴들이 보인다.
이 추운 날에도 어디서 그렇게 몰려들 오는지...
초등학교 3학년 짜리 애들도 보인다.
그런가하면 나이가 87살이 넘은 할아버지도 보인다.
그야말로 10대로부터 80대까지 연령층의 사람들이 골고루 모여 겨울 나들길을 간다.
그렇게 해서 모인 인원이 30명의 넘는다.
버스 정류장에서 모두 둥그렇게 모여 준비운동을 하고 출발.
오늘은 나들길 중에서 제일 긴 코스인 23.5키로의 7-1코스
바닷가에 바람이라도 불면 오늘은 무척 힘든 걷기가 될 것 같다.
가죽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시렵다.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는다.
지난 번 가을 김장 때 쯤 이 길을 걸었는데 오늘은 사람의 인적조차 보이지 않고
길가의 모든 상가들도 거의 문을 열지 않았다.
부지런한 우리들.
마을길을 지나는데도 인기척은 없다.
어쩌다 지나는 동네 어른에게 같이 길을 가는 아이에게 인사하라 가르쳤다.
동네 어른이 슬며시 웃으며 지나간다.
그토록 짖어대던 마을의 견공들도 오늘은 추워서 그런지 조용한 편이다.
마을의 빼꼼이 열려있는 나무대문이 추워서 문도 안 닫고 들어간 것 같이 보인다.
마을 길 옆에 100년이 지난 성공회 성당 내리교회.
역시가 있는 곳이라 매번 그냥 지나치던 곳이지만 오늘은 애들도 있으니 들러 보기로 하자.
인기척 없는 성공회교회 마당에 높이 1미터 정도의 종이 있다.
누군가 호기심에 밧줄로 매달려 있는 둥그런 나무로 종을 울려 본다.
종 밑에 파여진 곳에 항아리를 하나 놓아서 그런지 종소리가 무척 맑게 울린다.
누군가 만류하여 타종을 멈추었지만 종소리의 여운은 무척 오래 남았다.
드문 드문 남아 있던 감나무의 열매도 이젠 보이지 않고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둔 길가의 늙은 호박도 이젠 눈 비를 맞아 구석에서 썩어들어가고 있다
썰렁한 벌판에 남아 있는 곡식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
까마귀와 까치들이 떼로 모여 벌판을 가득 채우고 있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
바닷가에는 포말이 얼어 붙어 길게 흰 띠를 두르고 있다.
잠시 쉬고 있는데 동네 어른이 지게를 지고 올라 오는데
지게의 재료가 나무가 아닌 알미늄이다.
아하..세월이 이렇게 바뀌었구나.
산길로 접어드니 언덕 그늘에 녹지 않는 눈들을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뽀드득 거린다.
눈이 오는 길을 걷고 싶었는데 오늘은 이걸로 만족해 하자.
가끔 숲길 진행방향의 오솔길에 눈이 가지런히 양 옆으로 정리되어 있다.
누가 이 길을 쓸었을까? 군 초소로 가기 위한 군인들이 그랬을까?
아니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길이 미끄러워서 그런지 평소 가볍게 보던 낮은 언덕도 오늘은 조심스레 걷는다.
혹시나 미끄러지면 큰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
스틱을 쥔 손이 무척 차갑다. 오늘이 춥긴 춥구나
옷깃을 더 여미어 본다. 오후에는 따뜻하다 했는데..
늘 일행을 인도하던 분이 오늘은 안나와 대신 앞장 서서 걷는데
유난히 빨리 걷는 분이 있어 일행이 힘들어 한다.
보조를 맞추게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혹시라도 연장자께서 힘들어 하실까봐 적당히 보조를 맞추고
언덕을 뛰어 올라가고 싶어 하는 남자 아이에게도 천천히 호흡을 하며 걸으라고 알려준다.
나 혼자 걸으면야 내 페이스대로 걸을 수 있지만
남들과 같이 걸을 때는 적당한 수준에서 무리지어 걸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행렬이 길다. 그만큼 오늘은 어렵다는 이야기다.
멀리 보이는 바다물이 서서히 들어오는 것 같다.
멀리 보이는 바닷가에 얼어붙은 포말이 더 차가워 보인다.
가끔 시야를 산으로 돌려 보아도 오늘은 나무들조차 추워보인다.
내가 오늘 무언가 걱정이 있는 것 같다.
거의 2시간을 걸었나?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한 갯벌식당에 거의 다 온 것 같다.
그 앞 바닷가에 얼어붙은 포말에 일부러 걸어 들어가 밟으면 부서지는 작은 걱정을 오히려 즐겨본다.
어차피 빠지지야 않을테니..
누룽지같이 밟으면 바삭거리는 얼어붙은 포말들을 밟는 기분이 무척 좋다.
앙상한 바다갈대들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고, 개구쟁이처럼 여기 저기 누비고 다녔다.
점심은 볼테기탕. 여전히 여기 식당은 갖가지 반찬이 입맛을 돋군다.
내가 좋아하는 벤댕이젓갈과, 간장게장과, 콩잎 절임과, 맛있는 두부무침까지..
맛있는 점심 먹었으니 다시 걷자.
앞으로 남은 거리가 17키로 정도니 다른 코스같으면 거의 한 코스 거리다.
바닷가 뚝을 걷는 길. 멀리 갯벌센타의 전망대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를 파노라마 사진으로 찍어 보았다.
폐타이어 계단으로 만들어 놓은 거의 80도의 경사가 있는 언덕길을 올라가
다시 숲길로 접어 드니 호젓한 오솔길. 혼자 걸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때로는 혼자 걷는 시간도 가져보아야겠다.
쓸쓸함을 즐기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으리라.
바닷가 초소에 초병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기에 손 흔들며
"수고한다.. 건강하라" 크게 외치며 지나간다.
젊은 시절 그렇게 하릴없이 보내는 것 같지만 지금 네 모습을 나중에 회고해 보면
인생에서 가장 멋있고 자랑스러운 시절일 것이다.
모쪼록 건강하게 그 시간들을 잘 이겨내길 빈다.
북일곶돈대에 올라가니 발자국없는 눈밭 돈대위에 펼쳐지는 겨울바다가 장관이다.
소리쳐 노래 불러본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일행 중 처음 보는 분이 걸쭉하게 판소리 한 판도 들려 준다.
노래가 있다. 웃음이 있다. 즐거움이 있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반겨하는 이들이 있고
혼자 웅얼거리며 노래해도 누군가 따라 하는 이들이 있다.
지속적으로 바다와 숲길이 이어지는 7-1코스
얼마전 카페 게시판에 긴 뚝길 끝에 있는 발판이 위험하다고 올린 것을 보았는데
그새 말끔히 새로운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고마운 강화군청.
공무원에 대해 그다지 신뢰하지 않지만 이 곳은 올 때마다 기분이 좋다.
갯벌센타 조망대 앞에서 가지고 온 간식들을 풀어 놓는다.
사람이 많다 보니 메뉴도 갖가지다.
과일, 떡, 빵, 누룽지, 초코렛, 매실차, 때론 막걸리까지..
노래를 불러 달라는 길벗들의 요구에 앞에 나가
"어쩌다 일이 있어 나들길에 오지 못하는 토요일엔
꿈 속에 나들길이 보인다"고 얘기하고
황진이가 쓴 시에 곡을 붙이 '꿈길에서'를 불러 본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리운 우리 임은 길 떠나셨네
이후엘랑 밤바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서서히 사람들의 모습에서 피곤함이 보인다.
하긴 쉽지 않은 길이다.
나도 다른 날에는 느끼지 못한 발의 통증도 가볍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코스는 끝없이 갯벌 뚝길을 가야 하는 길이다
다행히 여름 내 잡초로 덮혀있던 세멘트 길 옆의 조그만 흙길을 밟는 기분이 좋다.
바닷물이 밀려온다.
그것도 아주 서서히..
갯벌가에 얼어 붙었던 포말들이 서서히 물에 뜨기 시작한다.
조금 지저분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겨울의 참 맛을 느껴서 보기 좋다.
겨울 해가 서서히 빛을 잃어간다.
그 빛은 모두 밀려오는 바다가 빨아 들이고 있다.
갯벌뚝 반대편에 양어장이 이젠 커다란 낚싯터로 변해 버렸다.
무척 넓은 얼음 벌판에 몇 몇 낚싯군들이 있기에
일부러 뚝에서 내려 얼음호수를 걸어가 낚싯군에게 다가갔다.
혹 호수가 깨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얼음위에 모두 발자국이 나 있기에 깨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낚싯군이 구멍 세개를 뚫어 놓고 낚싯대 3개를 들이우고 있어
무엇을 낚느냐 물어 보았더니 얼굴도 돌리지 않고 붕어를 낚는다 한다.
작은 붕어 몇 마리를 낚기 위해 이 추운 날 얼음 위에 텐트를 치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인내.
그 들의 마음도 이 추운 날 바람을 맞으며 먼 길을 걷는 우리들과 다르지 않으리라.
바닷가 큰 바위에 작은 바위들이 틈새를 파고 들었다.
아니다. 작은 바위들이 줄지어 있는 곳에 큰 바위가 오래 전에 덮쳐 눌렀다.
커다란 바위에 마치 쫄대를 박아 놓은 것처럼 길게 다른 색깔의 바위줄이 있는 것을 참으로 신기하다.
저렇게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넓은 벌판에 흰 눈 덮힌 고려산을 배경 삼아 흰 비닐로 감싼 볏집들이 커다란 눈 송이처럼 놓여 있는
정경이 한 폭의 풍경화같이 아름답다.
좌우로 펼쳐지는 풍경들이 나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너무 아쉽다.
긴 뚝길을 거의 4시간 가량 걸어 도달한 동막해수욕장에는
추위를 즐기는 연인들이 사랑의 표현을 즐기고 있다.
젊은 시절 함박눈이 내리면 제일 먼저 바다를 가고 싶었다.
함박눈송이가 바다의 수면에 닿을 때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눈송이를 보면
정말 가슴이 후련했다.
종착지인 본오리 돈대에 올라가 뉘엿 뉘엿 넘어가는 새해 첫 주말의 태양을 즐겼다.
완주 스탬프를 찍어 주는 대련횟집에 들어가 맛있는 해물칼국수를 즐기다 오니
태양은 겨울바다 저편으로 넘어가고
둥근 보름달이 구름 한 점 없는 저녁 하늘에 휘영청 비추어 주고 있다.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이 나들길을 찾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꿈길에서 자주 찾아 가고 싶다.
정겨운 사람들, 웃으면 같이 웃어주는 사람들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본 받고 싶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서로 다독거려 주며 용기를 주는 사람들 속에 나도 있고 싶다.
다시 오겠지.. 다시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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