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유럽방문기

이태리 밀라노

carmina 2012. 5. 17. 12:41

 

2012년 5월 둘째주

 

지난 해 공부때문에 유럽여행의 맛을 들인 딸이

아빠처럼 여행의 재미를 느꼈는지 올해는 봄부터 방학동안 즐길 

유럽 여행 계획을 짜고 있다.

밀라노에 도착해서 이태리를 한 바퀴 도는 코스.

미리 예약하면 항공료가 싸다고 6월에 떠날 비행기를

나름대로 인터넷으로 조사하여 3월에 예약하고

기차와 숙박시설도 4월에 모두 내 신용카드 번호를 알려주어 예약해 놓았다.

그리고 밀라노에 있는 다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은 인터넷으로도

예약이 안된다기에 내가 직접 전화를 걸어 예약을 도와주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이 얼마나 설레일까?

그런 생활이 참으로 부럽다.

앞으로 몇 개월 뒤에 일을 미리 예약해서 갈 수 있다는 일이..

 

그런 딸을 심히 부러워 했는데 업무때문에 내가 먼저 밀라노에 갈 일이 갑자기 생겼다.

그것도 많은 인원이 미팅때문에 같이 가야 한다.

 

미팅준비하느라 일주일을 꼬박 야근하고

밀라노에 가서도 4일동안의 미팅에 종일 매달려야 했다

 

밀라노 도착하니 저녁 8시.

한국시간이라면 이미 어두워졌을텐데 유럽의 여름은

9시 반이나  넘어야 컴컴해 진다.

넓은 지평선위의 고즈넉한 저녁 무렵에 엷게 물들어가는 저녁노을.

반면 유럽은 가을 겨울엔 해가 무척 짧아 돌아 다닐 시간이 부족하기에

유럽여행은 여름에 가기를 권한다. 

 

호텔 앞에 내리니 수양버들의 꽃씨들이 마치 커다란 함박눈처럼

온 하늘을 덮고 있다.

당초 민들레 꽃씨인줄 알았는데 일행 중 한명이 수양버들 홀씨들이라고

가르쳐 주어 검색해 보니 맞다.

이 꽃씨들이 어느 정도 날리냐 하면 길을 걸어다니면

마구 콧구멍과 입으로 들어 올 정도로 많고

길가 구석 구석에 눈쌓인 것처럼 소복히 쌓여 있고

어느 빈 상가엔 치우지 않아서인지 뭉쳐지면 눈덩이가 될만큼 홀씨가 모여있다.

 

열명이 넘는 우리 인원이 호텔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시키고

하우스 와인을 시켜 마시는 동안 우리 직원들은 식사가 늦게 나온다고 투덜댄다.

와인 향기를 맡고 한 모금을 입에 넣으니 얼핏 까르미네르 품종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거의 모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우리가 식사 때 주로 밥을 먹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주 메뉴가 피자인 것 같다.

 

여러가지 메뉴를 먹는 우리들에 비하면

이들은 큰 접시하나 그리고 샐러드나 빵이 전부.

참으로 단순한 메뉴지만 이들의 식사시간은 무척 길다.

 

레스토랑 가서도 음식 빨리 달라고 조르는 사람은 한국사람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이들은 무척 느긋하다.

하긴 길가의 상점도 시에스타 (낮잠)을 즐기기 위해 잠시 문을 닫을 정도니..

워커홀릭인 한국사람에게는 이런 여유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호텔 근처 식사에 만족하지 못한 직원들이 업무 후에 전철타고 나간 두오모 광장 근처

늦은 시간인데도 여전히 두오모 앞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거리의 악사들이 멋진 연주들로 길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유럽의 모든 박물관이나 미술관 및 성당등의 유적지는 일찍 폐장하기에

저녁시간에는 사람들의 물결도 뜸하고 식당도 여는 곳이 많지 않다.

 

두오모광장에는 비둘기들이 관광객과 아주 친하게 지낸다.

몇 몇 흑인이나 아랍계 남자들이 다가와 옥수수 알갱이 몇 개를 집어 주며

비둘기 주라고 친절을 베푸는데 단지 친절이 아닌 것이 확실할 것 같아 피하고

무척이나 반가운체 하며 '곤니찌와' 혹은 '니하우마' 하고 아는 척을 하는 흑인 청년들의 손에는

색실이 들려 있다. 손을 내밀면 여지없이 손목에 색실을 두르고 돈을 내라 하는 뻔한 수작이기에

미소는 좋지만 그들과도 거리를 둔다.

 

여럿이 몰려 다니다가 나는 골목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빠져

그만 일행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탈.

그때부터 혼자 저녁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골목에서 흥겨운 음악이 울려퍼진다.

올갠을 연주하고 트럼펫을 불고 여자가 싱어.

그런데 트럼펫 2개를 들고 동시에 연주하고 있다.

저렇게 불 수도 있나?

무리의 흥겨움 속에 내 몸도 흔들 흔들..

 

관광객들의 철시한 두오모 광장앞에는

길거리 악사가 기타를 들고 포크송을 연주한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두오가 보이는 길가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와인 한잔을 놓고 내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유럽풍의 오붓한 저녁을 즐긴다. 누가 뭐래도 이런 것들을 즐기고 싶다.

 

출장 마지막 금요일

미팅이 어제 모두 마무리되었고 우리도 저녁 귀국 비행기라

우리 일행은 금요일 아침부터 각자의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어떤 이들은 먼 곳에 있는 명품 아웃렛에 가기로 하고

어떤 이들은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로마로 떠나기로 하고

어떤 이들은 그냥 시내 관광.

 

나는 홀로 시내 예술 관광을 즐기기로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금요일 갈 곳을 여기저기 적어 놓았다.

 

몇개의 박물관과 성 그리고 미술전시회.

 

아침에 일찍 눈을 뜨고 소형 배낭과 카메라를 들고 이른 시간 전철에 올랐다.

서울의 전철같이 붐비지는 않지만 빈자리도 없고, 서서 가는 사람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

 

제일 서울의 전철과 다른 것이

서울의 전철안 사람들은 거의 모두 스마트폰에 빠져 있지만

이 곳 사람들은 그런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고

책이나 신문을 읽고 아주 작은 소리로 옆에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다.

 

이태리의 직장인들의 모습.

우리네 정형화된 양복의 모습은 별로 찾아보기 힘들고

무어라 표현하기 힘들지만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 편해 보이는 옷차림들이다.

 

두오모성당이 있는 두오모역.

이 곳은 몇 개 노선의 환승역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그 들 중 유독 관광복 차림인 나도 무리에 섞여 내려 입구를 찾는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다니니 방향감각을 잃었다.

 

밝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웅장한 오각형의 성당 두오모 앞에 서 보니

500년에 걸쳐서 만들었다는 높이 약 150미터의 세계 최대의 고딕양식인 

백색의 건축물에 내가 초라해 짐을 느낀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두바이의 버즈칼리파도 800미터가 넘지만

한국의 삼성이 불과 몇 년만에 뚝딱 해치웠는데

불과 150미터의 건축물을 세우기 위해 보낸 500년은

건축물 외벽의 각종 조각물에서 부터 그 연륜을 가늠케 한다.

성당의 외벽에 부조되어 있는 수없이 많은 찬란한 예술품들.

하나 하나를 보니 그 세월이 당연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두오모의 입구에 기관단총을 든 군인이 입장하는 사람들의 가방을 열어 체크한다.

좁은 문을 통해 들어간 두오모성당.

 

아주 큰 문뒤에는 작은 문이 존재한다.

그 작은 문을 밀고 들어가면 다시 거대한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그 거대함에 압도당한 숙연함.

전등하나 없는 어두운 성당 내부에 빛은 천정에서 모자이크를 통해 들어오는 가는 빛들

그리고 길고 가느다란 촛불들의 약한 빛들.

 

내부를 관람하기 전에 우선 나도 현지 사람들 몇 명처럼

성당 왼편에 있는 작은 예수상 앞의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렸다.

 

다른 사람들 처럼 헌금을 넣고 양초를 하나 집어

길게 열지어진 촛불꽂이에 올려 놓고, 기도를 드린 후

앞에 있는 청동으로 만든 예수님의 가시면류관에 손을 얹고 소망을 빌었다.

 

카톨릭에서 새벽 미사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유럽의 성당에 가면 직장인들이나 주민들이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성당에 들러

간단히 기도를 드리고 간다.

 

다른 성당과는 조금 다르게 이 곳 두오모 성당엔

본당의 양 옆에 빨래줄에 널린 이불보처럼 커다란 걸개그림이 틀없이 걸려 있다.

조용히 혼자 구노의 상투스 노래를 원어로 불러 본다.

 

상투스 상투스 상투스 도미누스

상투스~ 사바오쓰.

프레니쑨 체리에 테라~~

 

아주 작은 목소리로 부르는데도 코폴라 꼭대기까지 내 목소리가 전해지는 것 같다.

 

두오모 성당의 코폴라에서 밀라노 시내 전경을 바라보는 줄 알고

코폴라 가는 길을 물었더니 거긴 못간다 하기에 꼭대기는 어떻게 올라가느냐 물어보니

밖으로 나가서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이용하란다.

 

정문 앞에 있는 안내원에게 Roof 가는 길을 물으니

내 발음은 Loof 라며 자기를 따라 한다.

혀를 굴리며 Roof... OK. Grazie.

 

엘비베이터로 올라가는 요금 12유로, 걸어서 올라가는 요금은 7유로

계단숫자가 250개로 되어 있다.

뭐 이 까짓것 쯤이야.. 전철 도곡역 지하에서 지상까지 올라오는게 거의 100계단인데

이 정도쯤이야 어렵지 않지.

 

좁은 길을 휘휘 올라가니 작은 사각형의 공간으로 햇빛이 스며들고

그 앞에는 여지없이 누가 누가 여기 왔었고..하트 표시도 자주 보인다.

그러나 그 글을 쓴 날짜가 모두 올해인 걸 보니 이런 낙서를 주기적으로 지우는 듯 하다.

 

갑자기 커다란 햇빛이 커다랗게 비쳐지며 하늘이 밝아 진다.

다 올라왔구나.

 

비스듬한 계단 형식의 중간 지붕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저 멀리 아래로 밀라노의 아침 풍경이 펼쳐진다.

도시가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문을 열고, 아침 청소를 한다.

 

나같이 일찍 일어난 관광객들이 하나 둘씩 올라온다.

 

다시 좁은 문을 거쳐 몇 계단을 올라가니

정면에서 바라보는 지붕이나 코폴라가 아니고

성당의 뒷편에 있는 지붕같다. 

비롯 성당의 최고 높은 곳은 아니지만 밀라노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같이 올라온 관광객도 사진찍어 주고 나도 찍어 달라 했다.

지붕이 햇빛이 고스란히 받고 있어 햇빛을 피할데도 없다.

그러나 그 밋밋한 지붕에도 예술품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130여개에 달하는 첨탑에도 각종 성인의 조각품이 세워져 있고

계단 손잡이 곳곳에도 성인들의 모습이 희게 빛나고 있다.

 

젊은 남녀가 지붕에 앉아 사랑을 속삭인다.

저 모습이 얼마나 부러운지..

 

두루 두루 사진을 찍고 나니 내려가니 나이든 중국인 관광객들이 올라온다.

별로 힘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것 같다.

그리고 들리는 반가운 한국말.

아가씨 두명이 힘들게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자랑스러운 아이들..

 

계단을 내려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스칼라 오페라 하우스

빈 오페라하우스와 파리의 오페라하우스와 더불어

세계 3대 오페라하우스인 이 곳의 정문은 참 빈약하기 그지없다.

언젠가 젊은 시절 배낭여행으로 찾아 가 본 파리오페라하우스도

이 것보다는 훨씬 멋있었는데..

정문이 이곳이 아닌가?

 

일년치 프로그램과 2~3개월치의 프로그램이 벽에 붙어 있다.

그런데 오페라작품들이 보이지 않고 모두 개인 리사이틀이나

교향곡 협연들로 채워져 있다.

오페라하우스라 해서 오페라만 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는 않은가 보다.

 

건물 옆으로 돌아가니 티켓을 판다.

오페라 하우스 안에 들어갈 수 있느냐 물어보니

칸막이로 막혀진 곳 뒤에서 봐야 한단다. 그리고 전시관도 있고..

 

계단을 올라가니 벽에 잘아는 오페라의 낡은 포스터들이 주욱 붙어 있다.

리골렛토, 아이다, 투란도트, 라보엠, 카르멘, 카바렐리아 루스티카나 등등..

비록 사진 하나 없는 작품 포스터지만 기분이 좋다.

나도 이전에 내 작은 취미 하나가 유명한 공연을 가면 포스터를 얻어와

내 방안에 주렁주렁 붙여 놓곤 했다.

 

이른 시간이라 조용히 혼자 볼 줄 알았는데 인도관광객이 안에 가득있다.

그들도 오페라를 알까? 전시관도 대충 대충 보는 것 같다.

 

사진찍기가 금지 된 곳이라 카메라를 목에 걸었지만

풋치니, 베르디, 파가니니의 동상들을 보니 사진찍고 싶은 욕심을 멈출수가 없어

목에 건채로 카메라의 각도만 맞추어 셔터를 눌러댔다.

 

파가니니의 청동상을 어루만져 본다.

바이올린 선률이 손으로 전달될 것만 같다.

 

오페라하우스의 관객석 뒤에서 투명 플라스틱 건너 바라보는 오페라 하우스의 무대

그다지 넓어 보이지 않는 홀에 6개의 층이 있고

눈에 보이는대로 한쪽 벽의 박스를 세어보니 각 층당 18개가 있다

아마 앞에서 본다면 박스가 각 층마다 양옆으로 20개씩 총 40개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들리는 노래소리와 피아노소리

무대에서 성악가 한 명이 오페라피트에 있는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무대리허설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 연출자인듯 사람이 같이 무대에 올라

성악가의 동선을 체크해 주고 무대 앞의 어두운 오케스트라 피트에 단원도 없는데

지휘하는 지휘자와 그 뒤로 무대 엔지니어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는지..

 

어젯 밤에 이 곳에 잠시 왔을 때도 현지에 있는 직원에게

공연시간을 알아보고 혹시 표를 구할 수 있나 물어보니 힘들거라 한다.

 

인도 관광객들이 모두 가고 난 조용한 곳에서 무대리허설을 한 참 더 보고 나왔다.

 

그리고 뒤로 돌아가니 전시관.

 

오페라에 사용했던 각종 화려한 의상과, 각종 무대소품들과 악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방에는 빼곡이 퀴퀴한 책 냄새가 맡아질 정도로 많은 음악관련 장서가 진열되어 있고

허리가 구부정한 나이가 아주 많은 할머니가 의자에 조용히 앉아 책을 보며 안내를

위한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언젠가는 저런 봉사를 하고 싶다.

 

그 옆에 깔끔한 모습의 까만 삼성 스마트 TV,

참으로 자랑스럽다. 우리의 전자제품들이 전 세계 박물관이나 전시관에서

관객들에게 멋진 영상을 보여 줄 수 있다니..

 

눈에 뜨이는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 리스트가 사용한 것이고

어찌 어찌해서 이곳까지 왔는지 라는 긴 설명이 있다

몇 백년 된 피아노지만 요즘도 가끔 사용하고 있다하니 놀라울 뿐이다.

우리 집도 최근에 아주 좋은 중고피아노를 싼 가격에 샀는데

비록 그런 피아노도 대가의 손을 거치면 이렇게 유명해지는건데..

 

방마다 역사적인 성악가들이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 중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이 비운의 여가수 마리아 칼라스.

물론 많이 본 사진이지만 이렇게 큰 그림은 처음이다.

눈을 오래 마주쳤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선물하나 살 까 하다가 너무 비싸서 포기.

 

오페라 하우스 내부로 들어가지 못해 아쉽고 오페라를 보지 못해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거리를 나와 스포르제스코 성으로 향하다가 우리 직원 일행들을 만났다.

감옥같은 그곳에서 오는 길이라고...

전철로 갈 생각이었는데 걸엇 15분이면 간다기에 나도 천천히 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곳으로 몰려가고 있기에 굳이 길을 물어보지 않아도

무리에 쓸려 가면 된다.

 

스포르제스코 성은 다빈치가 외부성곽을 디자인했다고 하는 거대한 성이다.

성의 입구에 커다란 분수대가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하는 공기를 식혀주고 있고

나도 내 몸을 식혀야 할 것 같아 물 한 병을 샀다.

 

분수대앞에 앉아 사진을 찍는 여자가 무척 섹시하여 슬쩍 카메라 구석에 담아 두었다.

성 앞에 넓고 잘 다듬어진 잔디가 인상적이다.

성안에 넓은 공터와 높은 성벽위에 있는 구조물들이 오랜 세월을 지낸 듯

시커멓고 그을려 있다. 아마 포화를 맞은 듯하다.

 

성안에 전시관을 보고자 미리 팜프렛을 보니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

그냥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 곳에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작품이 있다는 걸 알고서야

들어가지 않은 걸 후회했다.

 

천천히 성을 산책하고 나오니 하얀 히잡을 쓴 예쁜 아가씨 한 명이

사진 좀 찍어달라며 자기 카메라를 나에게 주고 작은 동상앞에 선다.

나는 깜짝 놀랐다. 히잡을 썼다면 분명 무슬림일텐데

무슬림 여자가 외간 남자 그것도 외국남자에게 이런 걸 부탁하는 것이

실로 놀랄만한 일이다.

아가씨는 포즈를 취하면서도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중이다.

 

들어오기 전에는 안보이던 살아있는 동상이 성 앞에서 이제 막

작품이 되려는지 하얀 망또와 하얀 가면을 쓰고 있다.

원래 얼굴도 회분으로 칠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젠 그것도 요령이 생겼는지 하얀 가면을 쓰고 있다. 

 

다음은 어디를 갈까..

비록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이 있는

산타마리아 델 라 그리치에 성당에 가보자

혹시나 알아?  들어 갈 수 있을지?

그 곳으로 가는 길은 한적하다.

점심시간 때 쯤인지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오고

거리의 레스토랑도 사람들이 조금씩 채워진다.

 

성당으로 가는 길 오른 편에 빨간 기둘이 가득한 기차역이 있는데

녹새 기차역사 높은 꼭대기에 현대자동차와 HYUNDAI 라는 대형 로고가

한국인의 긍지를 느끼게 한다.

하긴 이 곳 밀라노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 서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게 LG의 로고이다. 공항의 양 벽에 일렬로 붙어 있으니..

전세계 어디서든 한국의 대기업이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전에 소니, 산요, 토요다로 뒤범벅이던 광고가 이젠 그 자리를 삼성, LG, 현대가

차지하고 있다.

 

성당가는 길은 확실히 모르지만 어차피 그 쪽 방향에 있고

높은 곳에 성당의 십자가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부러

골목 골목을 누비며 찾아 가 본다.

 

빌딩사이 주택가 골목.

어느 해인가 사당역 근처에서 방배동 가는 길에 일부러 골목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골목길의 작은 집들과 마당에 화분들. 빨래 걸어 놓은 집들이

무척 졍겨워 보였다.

 

이태리의 골목은 어느 집이나 주변이 지저분한 집이 없다.

어쩌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집도 벽에 푸른 담쟁이가 덮혀 있고

골목안에 쓰레기통하나 보이지 않는다.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투도 안보이고

집 밖에 내놓은 물건하나 보이지 않는다.

창문은 어느 집이나 나무로 된 덧창이 있고 

간혹 창가 베란다에 꽃화분을 놓은 곳이 많다.

나무 덧창은 여름엔 밤 9시가 넘어도 환하니 덧창이 없으면 불편할 것이다.

 

비행기가 밀라노에 접근할 때 지붕을 보니

어느 집이나 유럽의 전통적인 감색의 지붕색깔.

골목도로는 작은 돌을 촘촘히 배열해 놓은 전형적인 유럽도로.

위에서 보나 아래에서 보나  영원히 사랑받는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

 

골목을 지나가는 백발의 할머니 두 분의 옷차림이 팻션의 도시답게

무척이나 세련되어 있다. 살아 있는 것이나 죽어 있는 것들 모든 것이 아름답다

 

특히 도로를 지날 때 그냥 지나칠 뻔 했다가 눈에 뜨이는 것은

길거리에 주차되어 있는 차가 모두 소형이나 중형차다.

트럭이라는 대형은 물론이고 소형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짐차는 주차하면 안된다는 법규가 있나보다.

또한 놀라운 것은  어느 차건 삐딱하고 질서에 맞지 않게 주차한 차가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가지런하게 주차가 가능할까?

더우기 도로에 잠시 주차하는 차도 보지 못했다.

그러니 진행하는 차가 신호등아니면 멈추는 일이 없다.

이런 교통문화는 도무지 이해 못할 일이다.

 

현지 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길가 주차공간의 색에 따라

일반용, 거주자용, 유료/비유료로 나누어 진단다.

만약 위반하면 무척 많은 범칙금이 부과된단다.

 

이런 모습을 보며 느끼는 것은

도시가 아름다워 지는 것은 모든 규칙의 엄격한 규제에 있다고 본다.

 

도로는 전차와 자동차가 동시에 다닐 수 있도록

전차의 레일이 도로와 같은 높이에 매설되어 있다.

그러니까 버스와 전차와 자동차가 모두 같은 도로를 이용한다.

그래도 차가 별로 안 막히고 클래션 소리도 안들리고 원활하게 진행한다.  

 

골목을 돌아 돌아 도착한 그라찌에 성당.

이 곳은 예약이 되어야만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유명한 곳 답게 사람들이 자주 오간다.

 

성당의 전시관 입구에 들어가니 세명의 안내원 앞에 모두 'Sold Out'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혹시 들어 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답변은 뻔하다.

 

입구만 조금 돌아보고 나오는데

작은 아가씨가 아는 체를 한다.

도네이션을 원한다.

무슨 도네이션이냐고 했더니 마약퇴치란다.

주머니에서 선뜻 2유로짜리 동전을 기부하고

서명하는 란에 한글로 내 직장이랑 이름을 써 넣었다.

 

그 앞을 하얀 교복을 입은 유치원생들이 교사의 인솔에 맞추어 무리지어 지나간다.

세상 모두가 이렇게 하얀 색깔이면 좋겠다.

그 앞에 벤치에 앉아 진하게 키스하는 젊은 남녀.

세상 모두가 이렇게 사랑으로 가득찼으면 좋겠다.

 

시간을 보니 배가 고플 때도 되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작은 레스토랑을 들어갔다.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오전에 두오모 꼭대기에서 보았던

외국인 남자 2명이 들어온다.

외모도 나같이 출장 나왔다가 시간나서 돌아다니는 옷차림.

서로 바라보고 씩 웃는다.

 

레스토랑으로 오면서 본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물관에 들어갔으니

다빈치의 작품이 전시된 것이 아니고

각종 산업혁명에 관련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해서 포기

그런데 아마 다빈치의 놀라운 과학의 발명이 기초가 되어

만들어진 문명의 산물을 전시하는 것 같다.

다빈치는 놀랍게도 1500년대에 비행기를 구상했고,

탱크를 제작해 보았고, 잠수복 제작에 관한 도면도 만들었다.

마침 밀라노 오는 비행기 기내 영상 프로그램에 다빈치의

그런 흔적들을 현대의 사람들이 그대로 제작해 실험해 보는

다큐먼타리가 있어 재미있게 보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주위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젊은 아가씨들이다. 그렇다고 시내 쇼핑센타에 있는

잘 차려 입는 여자들이 아니고 평범한 옷차림의 아가씨들.

지나가다 보니 아가씨들이 무리지어 있는 곳이 바로 대학 건물이다.

 

우리같이 대학의 상아탑을 상징하는 큰 대문이나 넓은 캠퍼스

그리고 큰 단독건물은 이 곳에는 보이지 않는다

 

문이 없으니 누구나 들어갈 수 있기에 대학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입구에 서점이 있기에 혹시 합창 악보를 살 수 있을까 하고 기웃거렸지만

악보는 없는 것 같다.

서점의 서고 사이에 있는 좁은 길에 남녀가 둘이 꼭 끌어안고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내가 그 앞으로 다가가 지나가겠다는 몸짓을 보였지만

나를 쳐다 보지 않고 서로 키스하기에 정신이 없다.

 

어쩔 수 없지. 내가 피할 수 밖에..

 

대학가 주위의 집들도 고풍창연한 오래된 건물들이다.

일부러 천천히 인적이 별로 없는 그 골목길들을 걸었다.

 

그러다가 다시 큰 길로 나오니 지하철.

시간을 보니 내가 한없이 이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전철을 타려 내려가는데 들리는 반가운 한국말.

아가씨 2명과 선글라스를 쓴 청년 한 명에게 두오모가는 길을 물으니

자신들을 따라 오란다.

지하철에서 물어보니 모두 음악 전공자들.

얼굴과 옷차림이 모두 밝다.

사람도 카멜레온처럼 주위의 모습에 동화되어 가는 것일까?

  

두오모 광장으로 다시 나와 성당 옆의 미술관에 들어갔다.

어느 한 작가의 그림을 전시하는데 화풍이 아주 특이하다.

 

무언가 반항적인 의미와, 현세대 그리고 구세대에 대한 비판

또한 종교에 대한 조롱과 비판까지...

 

그러나 놀라운 것은 나이도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작품을 제작했는지 진열된 작품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마치 노동운동의 걸개그림처럼 대형 걸개그림으로 보는 이를 압도케 하고

때로는 아주 기괴한 모습으로 만들어 낸 인형과

그림 뒤에 배치해 놓은 악마의 모습까지 그 넓은 전시관 전체를

수없이 많은 작품들로 가득 채워 놓아 보는 이를 압도케 한다.

(그 많은 그림에 대해서 쓸려면 너무 지루할 것 같아 생략)

 

거의 혼자 그 넓은 전시관을 돌아 다니고 밖으로 나와 눈 앞에 

우뚝선 두오모 성당을 보니 갑자기 세상이 밝아진 것 같다.

 

이태리에 왔으니 아이스크림을 먹어야지.

비록 로마의 스페인 광장은 아니지만 시늉은 내야지..

광장 옆에 있는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재잘거리면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고 일보러 가는 젊은 사람들 그리고

얼굴에 하얀 회칠을 한 채 부동자세로 서 있는 인간석고상을바라보며 

이국에서의 망중한을 즐긴다.

 

사람들 무리만큼이나 많은 비둘기들이 하늘로 날라간다.

대형 쇼핑센타에 비둘기들이 들어 오지 못하게 그물을 쳐 놓았다.

그러나 기어코 그물 밑으로 들어오는 비둘기들이 상가 가운데서

관광객들과 놀고 있다.

선택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이제 떠날 시간.

예정으로는 보름뒤에 다시 이 곳에 와야 하지만

업무라는 것이 늘 불확실 한 일이기에 형편되는 대로 따라야겠지.

 

다시 이런 이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

비록 힘들더라도 나이들어 일이 있음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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