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유럽방문기

유럽배낭여행기

carmina 2013. 12. 5. 16:57

 

1995. 8. 중순

 

담배연기를 무척 싫어하는데, 예약을 부탁한 이가 애연가였나 보다. 여행사에서 대신 잡아 준 자리가 비행기 맨 뒷좌석의 흡연석이다. 양쪽에 시꺼먼 여자가 나란히 앉아 연신 담배를 피워 대고 있다. 연기만이라도 피하고 싶어 모포를 머리 끝까지 덮고 잠을 자 버렸다.

 

아프리카 가나 출장계획이 갑자기 5일 줄었다. 당초 8월 15일에 돌아오는 계획이었는데, 8월 11일로 변경되었다. 11일이 금요일, 다음 날 출근하면 토요일, 그리고 그 다음 월요일은 화요일인 광복절 덕분에 샌드위치 데이.

 

절호의 찬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계획이 별안간 머리 속을 휙 스친다.

 

만약 토요일 그리고 월요일에 휴가가 가능하다면 돌아올 때 중간기착지인 유럽에서 며칠 더 머무를 수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부서장께 승인을 얻었다.

 

그리고는 서둘러 귀국스케줄을 변경하고, 부지런히 여행계획을 그리기 시작했다. 통신망을 통해먼저 유럽여행을 경험한 사람에게 참고 자료를 얻은 후, 비데오 카메라도 빌리고, 시청 앞 나드리 여행사에 들러 상담하여 여정을 잡고 삼개국을 여행할 수 있는 유레일 패스 5일짜리를 280불에 샀다.

 

스위스, 프랑스, 독일 3개국을 6일간 여행하며 이틀은 기차 안에서 잔다. 출장 가방속에 빈 배낭을 챙겨 넣었다.

 

모포 속에서 뒤치닥 거리며 불편한 잠을 잔 후 칫솔과 면도기를 들고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눈동자가 새빨갛다.

 

어느 덧 비행기는 쮜리히 공항에 도착하니 시간은 06:25분을 가르친다. 출장가방은 공항내 47번 COIN LOCKER에 스위스 5프랑 코인을 넣고 잠가 버렸다.

 

‘너 여기서 5일만 잠자고 있거라. 내 후딱 다녀올 끼라.’

 

우선 공항 역 인포메이션 데스크인 i에 들러 여행이 시작됨을 신고하고, 패스에 도장을 찍었다. 환전도 하고. 차장이 오기 전에 유레일 패스에 오늘 날짜를 적는다. 책자를 통해 이미 자세히 읽은 유럽철도여행안내서 내용대로 하고 있다. 오른쪽 귀에 귀걸이를 단 친절한 남자 차장이 검표를 해 준다. 쮜리히 중앙역 스낵코너에서 간단한 빵으로 아침을 때우는데 옆에 앉은 두 아가씨 말이 한국말이다. ‘어디 가냐’고 물으니 유럽 배낭 여행 중 스위스에 지금 도착했단다.

 

역에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 들어 바닥의 빵 부스러기를 쪼고 있다.

중앙 역에서 루체른으로 가는 차에 올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그림을 본다.

 

넓은 초원 위에 과자로 만든 것 같은 집하나, 잘 다듬어진 잔디, 평화스럽게 풀을 뜯는 얼룩송아지, 쭉쭉 뻗은 높은 나무, 쓰레기 하나 없는 잔잔한 호수, 한 페이지씩 넘기는 책장을 덮으니 루체른역이라 한다. 깨끗한 의자와 열차안, 차내에 짧은 구간인데도 스낵 차가 다닌다.

 

화장실도 깨끗한데 이상하게 대소변이 그대로 철로로 쏟아진다. 왜 그럴까? 골프장에는 사람하나 없다. 평일이라 그런가? 차창밖으로 보이는 거의 대부분의 벽에 그라피티라고 불리는 이상한 낙서가 예술적으로 그려져 있다.

 

기차에서 내리니 우산 없이도 맞을만한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목에 건 비데오카메라가 무겁다.

 

i 에 들러 호텔을 찾는다. 책자에 나온 호텔은 무척 비싸다. 130 - 140 프랑, 싼 호텔을 주문하니 펜션을 소개해 준다. 도보로 10 분 거리. 배는 고팠지만, 우선 숙소부터 해결 하여야 하기에 비오는 거리를 지도를 들고 찾아 가니 56 프랑짜리 펜션이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반긴다.

 

주인 아줌마가 무척 친절하고, 방까지 들어와 방안의 이런 저런 비품들의 사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방에는 세면기하나, 침대하나 옷장하나 있고, 화장실, 샤워실은 공동사용이다. 숙박비는 아침포함이라며 시내지도와 열쇠 두개를 준다. 하나는 방 하나는 호텔 문 열쇠라 한다. 설명을 들으니 새벽에 나갈 때 열고 나가고, 열쇠는 문 앞 박스에 넣으란다. 전화가 없어 모닝 콜을 걱정했더니 자명 종 시계를 빌려준다. 친절도 하지.

 

아프리카의 먼지를 샤워로 흘려보내고, 카메라, 비데오, 안내책자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우선 전화국에 들러 한국의 가족에게 전화하고, 독일의 아는 분에게 여행계획을 말씀드렸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눈 앞에 호수를 대각선으로 가로 지은 긴 목조다리가 걸려있다. 지붕이 있고, 다리 옆에는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안내책자를 보니 카펠 다리라 한다. 천정에는 석가래에 여러 그림이 그려 있고, 중간에 선물코너가 있다. 제일 먼저 십자가 모양이 선명한 스위스제 주머니 칼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고, 호수 가에 유럽의 도시들을 사진에 담고 있다. 나도 그 중에 한 무리이고....

 

다리를 건너, 멀리 보이는, 탑이 높은 교회를 찾는다. 지도를 보니 호프교회, 경건한 분위기의 내부 장식과, 온 건물 벽과 창문 등이 조각으로 가득 아로새겨져 있다.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잠깐 기도를 드리고 나와 다음 지도상의 사자 상으로 향하는데 한 무리의 동양 젊은이들의 입에서 귀에 익숙한 우리 말이 나와 말을 붙이니 성신대 여행동아리라 한다.

 

사자 상으로 가는 입구에 선물가게들이 있는데 감탄사가 나올 정도의 자그마한 인형들이 쇼우 윈도우에 가득 전시되어 있다. 스위스를 연상케하는 각종 인형들, 찻잔들, 여기가 여행 종착지라면 사 가지고 가고 싶지만 참고 조금을 걸어가니, 커다란 바위벽에 고뇌에 찬 모습의 사자가 깊게 조각되어 있고 그 밑은 연못으로 쓰였다는 넓은 공간이 있다.

 

이 곳에서 음악회도 열린다 하나 지금은 공사중이다. 바로 그 위에 빙하공원, 입장료 4 프랑, 과거 유럽이 빙하시대에 있었다는 여러 흔적들이 깊게 파여져 있다. 깊은 바위 구덩이 속에 동그란 바위등 오랜 세월의 풍상과 동결 그리고 해빙의 단계를 거친 지표 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그 모든 것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매 유적 물마다, 설명서를 앞에 붙이지 않고, 입구에서 나눠 준 허름한 유인물에 각 코스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는 점이 또 한번 이 들의 자연 보호에 대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감하게 한다.

 

빙하공원내의 어느 방에 가면 유리벽으로 가득 채워진 미로가 있어 들어가 보니 길을 못 찾을 정도로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입장한 모든 사람들이 출구를 찾느라 헤매며 즐거워 하고 있고 통로일 것 같아 손을 뻗치면 유리벽이 가로 막는다. 겨우 겨우 출구를 찾아 나오니 성신대 학생들이 쉬고 있어 여러 가지를 물어 보았다. 언제 나왔느냐. 밥을 먹어 보았느냐.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이것 저것 물어보고 혼자 다음 목적지인 바그너 기념관으로 향했다.


 
 

안내 책을 보니 역에서 걸어서 30분, 호수를 끼고 돌면 여유있게 갈 수 있으리라 하고 걷기 시작했다. 호수 가에 젊은 남녀들이 사랑에 빠져 있고, 부지런히 사랑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한 참을 걸어도 목적지는 먼 것 같아 행인에게 물어 보니 앞으로도 30분은 더 걸어야 한다나.

 

한적한 곳이 무서워 얼른 큰 길로 나와 버스를 탔다. 짧은 시간에 도착해 바그너 기념관을 찾으니 14:00 부터 오픈한다고 되어 있다. 호수가 넓은 잔디위 조금 높은 곳에 아담한 3층집에서 작곡에 열중해 있었던 바그너의 모습을 그려 본다.

 

나와 같이 기념관 문 열기를 기다리는 한 외국 아가씨가 있어 말을 붙인다. 미국 아틀란타출신, (이 들은 꼭 출신을 도시가 아닌 주를 이야기한다) 이름은 엘리자벳, 여행중이란다. 정시에 문을 연 기념관에 들어가니 4 프랑 입장료를 내고 사진촬영은 플래시만 금지한다. 바그너의 오리지날 악보들이 진열되어 있고, 코지마와의 사진들, 기념 우표, 손 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피아노, 3층에는 온갖 그 시대의 악기들이 진열되어 있다. 피아노의 전신인 클라비에, 쳄발로 등 그리고 관현악기들, 열려진 창문으로 밖을 보니 호수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악상이 절로 떠 오를 것 같은 분위기이다.

 

엘리자벳도 예술적인 곳에 관심이 많았는지 나와 의견이 통일되고 다음 피카소 기념관을 찾아 갔다. 루체른의 골목길을 따라 기념관으로 가는 도중 ‘내가 맥도날드로 점심을 때웠다’고 했더니, 맥도날드를 못 알아 듣는다. 재차 얘기하니 한참 웃는다. 나는 "맥"에 악센트를 주고 발음했더니 그게 아니고 "도"에 악센트를 주는 것이라면 깔깔댄다. 한참 언어를 주제로 얘기하고, 주택가 한 가운데 있는 피카소 기념관을 찾으니 입장료 3프랑, 작품이 다칠까봐 비데오와 카메라를 맡기라 한다.

 

작품은 주로 사진으로 말년에 피카소가 젊은 아내 쟈크린과의 생활들을 흑백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다. 역시 작품 설명은 별도로 나눠 준 유인물에 있다. 거의 2백장에 달하는 사진들을 꼼꼼히 보고, 일부 피카소의 작품들을 관람하고 나니 다리가 무척 아프다. 벌써 몇 시간째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에리자벳과 호숫가의 카페에서 맥주 한 잔 시켜놓고 여러 얘기를 한 후 헤어졌다. 그 녀는 사춘들과 또 다른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면 부지런히 갈 길을 갔다. 역 앞에 백화점에 잠시 들ㅣ에그러 구경하고 피곤해 숙소로 가서 잠시 쉬었다.

 

저녁을 그냥 건너 뛰기에는 무언가 허전함을 느껴 간단히 요기라도 할 목적으로 역 으로 다시 걸어 나와 어슬렁 거리다 어느 큰 셀프 서비스 식당을 들어가니 많은 한국 아가씨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나를 보고는 ‘혹 이곳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밥을 찾는 그들의 요구는 무리였다. 유럽여행을 외국청년들과 대화 한마디 나누어 볼 기회도 없이 깃발하나 보고 쫓아다니는 그들과 함께 스파게티로 같이 저녁을 때우고, 그 들의 여행얘기를 잠시 듣고 호숫가의 저녁을 산보로 즐겼으나 인적이 드물어 안전상 일찍 호텔로 돌아오니 9시, 그런데 아직도 날은 훤하다. 내일 일찍 일어나 첫 기차를 타야 하므로 창문의 겉창까지 닫고 잠을 청했다.
 
 

융프라우

 

거의 손님이 없는 첫 기차를 타니 한적해서 좋다.

 

기차는 인터라켄을 향해 조용히 달리고 있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어제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시끄러움도, 아침 출퇴근의 복잡함도, 분주히 움직여야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바쁜 서울 사람들의 모습은 이 곳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몇 번을 차가 멈추었고 어느 역에서는 좀 오래 머물렀을 때, 나이드시고 다리가 좀 불편하신 할아버지께서 창문 밖으로 무어라고 소리치길래 다른 사람에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 보니 한 시간 도 넘게 쉴 거냐고 빨리 가자고 하신단다. ‘여기에도 이런 분도 있구나’ 하며 혼자 웃었다.

 

거의 손님이 없는 열차 안에서 비데오를 돌려 아름다운 풍경들을 찍고 싶었지만, 그 때마다, 나무가 가려 번번히 실패했다. 주택가 옆에 이쁘게 단장해 놓은 비석들이 보인다. 좁은 땅 위에 빽빽하게 비석과 꽃을 꽂았다. 생명이 있을 때는 넓은 대지에 살고, 호흡이 없을때는 아주 적은 땅으로 만족하는 이 들의 사고 방식이 부럽다. 죽어서도 많은 땅을 차지하려는 우리네 습관과 비교할 때 부끄럽기만 하다.

 

큰 호수를 끼고 한 참을 가니 어느 새 인터라켄에 닿고, 많은 사람들이 정거장에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열차표를 사려고 하니 스위스 프랑이 조금 모자라 카드로 긋고, 시간을 물으니 출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매표창가에는 어느 동양인이 매표원과 자꾸 실랑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화를 내는 것은 동양인뿐이고 매표원은 전혀 무표정이다. 서둘러 기차에 오르니 벌써 자리가 없다.

 

겨우 한 좌석을 찾아 앉으니 중국아가씨들이 세명이 앉아 있어 말을 붙인다. 대만에서 왔다고 한다. 또 한 명의 중국인 젊은이가 여행객과 같이 있다. 여행에 대한 대만 젊은이들의 사고방식 등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창 밖을 보니 산 꼭대기에 하얀 눈이 덮여 있는 것이 보인다. 쏟아지는 감탄사들, 말씨들을 들으니,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 완전히 세계로 가는 열차임을 느낄 수 있다. ‘그래 난 지금 세계의 한 가운데 와 있다’. 기차가 어느 정도 간 뒤에 열차를 바꾸어 타라 한다.

 

라우터브란넨역에 도착하고, 이 곳 부터는 급경사의 산이 시작되나 열차 레일 한 가운데로 톱니 바퀴가 있어 산을 오르는 데 지장이 없겠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향의 기차에 올라 타느라 분주하다. 융프라우에 올라 가는 길은 두 길이 있다.

 

열차는 산의 좌 우를 각각 돌아 간다. 어차피 양 쪽 다 가야 하니 아무 차나 올라 탔다. 겨우 자릴 찾아 앉으니 아까 그 소리 친 할아버지가 옆에 앉아 계시다. 배낭을 매신 것을 보니 분명 산에 오르는 것이리라. 또한 중국 아가씨들도 있고. 영어를 잘은 못하지만 그래도 또박 또박 말 하는 모습이 한국젊은이보다 낫다. 역시 대만 대학생들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화를 끊을 수 밖에 없었다. 창 밖의 풍경이 완전히 우리 모두의 탄성으로 입을 벌리게 한다. 정상에 하얀 눈과 깍아 지른 절벽과 또한 언덕에 푸른 숲속의 작은 집이 절로 마음에 평화가 생긴다. 전쟁없는 곳, 시기와 질투가 없는 곳같이 보이며 열차에서 내려 그냥 눌러 앉아 살고 싶은 충동은 어쩔수가 없다.

 

기차는 아주 천천히 톱니바퀴의 궤도를 달리고 있다. 어디 쯤 엔가 왔을 때, 방송이 나온다. 불어, 독어, 영어, 그리고 일본어. 옆 좌석의 일본인 부부여행객들이 영어로 할 땐 못 알아 듣다가 자기네 말이 나오니 무척 반가와 하며 호들갑을 떤다. 과연 일본은 크다. 조그만 섬나라가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기차를 또 한번 갈아 탄다. 이 곳에서 산의 반대 편을 올라 온 승객들과 다시 합쳐 진다. 기차안은 이제 더 이상 앉을 자리가 없다. 조금을 달리니 바위를 뚫은 동굴속으로 기차가 들어간다. 안내 책을 보니 이 터널은 약 7.2 Km라 한다. 바로 옆 자리에는 귀에 익은 스페인 말이 유난히 유난히 시끄럽다.

 

중간에 얼음의 바다라는 곳에 잠시 정차하여 손님들에게 밖의 풍경을 구경하게 한다. 동굴의 조금 넓은 곳에 밖을 볼 수 있도록 유리로 막아 놓은 곳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설해 그 자체였다. 사람의 키 만큼이나 높게 쌓인 눈 위에 발 자국하나 없고 시야에 닿는 모든 곳이 고요한 흰색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기차는 중간에 또 한번 정차하여 융프라우요흐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이 곳에서 기차를 안 탈 수는 없다. 차장이 남아 있는 사람이 있나 없나 확인하고 출발한다. 하긴 그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오래 서 있으면 안전상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 동태가 되거나, 냉동인간이 되어 이 산속에서 하나의 하얀 동상이 되어 천 년 만 년 남거나.....

 

기차는 종착역에 닿는다. 많은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고 이 높은 산꼭대기 밖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내부가 무척 현대적인 빌딩에 들어와 있다. 깨끗한 카페가 있고, 식당이 있고, 화장실과, 선물 판매점과, 국제 전화와.... 많은 사람이 오고 가지만 도무지 지저분한 곳이 없다. 왜 그러나? 한국사람도 무척 오는데 그 들의 행동은 한국과 틀리다.

 

넓은 유리창 밖으로 다시 하얀 설원이 펼쳐져 있다. 아득하게 보이는 곳 눈 덮힌 그 사이로 등산객이 내려오고 있길래 망원경으로 자세히 보니, 서너명이 눈사이 발자국이 만들어진 길로 두터운 방한복을 입고 하산하고 있다. 얼마나 좋았을까. 저 들의 산행은...,

언젠가 아내와 함께 한 겨울 설악 산행이 생각난다.

 

이때 시간이 11시 30분정도.. 한 무리의 한국 학생들이 그만 내려가야 된다고 서두르고 있다. 알아 보니 조조할인티켓으로 올라오면, 12시 전에 내려 가는 기차를 타야만 한단다. 이 곳을 그렇게 빨리 내려가. 돈이 아깝지.

 

비데오로 열심히 밖의 광경을 찍고 이리 저리 돌아가니, 얼음 굴이 나온다. 양쪽벽, 바닥, 천정이 온통 얼음이다. 벽에 손잡이가 있고, 사람들이 엉금엉금 손 잡이에 의지해 길을 가고 있다. 가 보진 않았지만, 이 곳은 완전히 북극같다. 녹지않은 얼음 벽과, 구석 구석 얼음의 조각들, 곰, 독수리 , 펭귄, 등등 온갖 것들을 조각해 놓았지만 전혀 녹지 않는다. 그리고 그 얼음속에 형광등이 빛나고 있으니 이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장력이 없음이 아쉽다. 파란 불 빛이 얼음 속에서 나와 신비스러운 영화의 한 장면같고, 좁은 통로에는 개 한마리와 여행을 떠나온 외국인이 열심히 개를 자식과 같이 사진에 담느라 열심이다. 완전히 개 팔자가 상팔자이다. 반팔 옷을 입은 여행객도 많이 보이고, 그 얼음 위를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가는 아가씨도 있다.

 

얼음 골목을 여기 저기 돌다보니, 내가 건물 밖으로 나오게 되어 버렸다. 그 곳은 눈 덮힌 곳, 건물주위의 눈은 조금 녹고 있지만, 저기 멀리 보이는 산 꼭대기에는 하얀눈이 그대로 덮혀 있다. 그 곳까지 갈 수있게 만든 시설이 부럽기만 하다. 서울에서는 한 여름인데 이 곳에서는 눈위를 걸어간다. 그리고 그 정상에 서니 발 아래 아득히 펼쳐지는 설국, 먼 곳에는 수풀이 있다. 도무지 떠나기가 싫다. 필림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사진을 찍어대고, 비데오를 돌려 댔다. 머리에 눈 뭉치를 올려 놓고 한 장. 어찌 이 곳에서 노래가 없을소냐?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다 그만 이 곳의 장엄함에 비긴다는 것이 너무 초라하여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전 세계의 많은 인종들이 이 정상에서 자연을 즐기고 있다.

 

갑자기, 영화에서나 봄 직한 장면이 연출된다. 깍아지른 절벽밑에서 빨간색의 헬리콥터가 갑자기 정상으로 치솟아 오르면 바로 여행객 옆에 한 바퀴 선회하고 내려 앉는가 싶더니 한 사람을 내려 놓고 다시 치 솟아 올라 산 아래로 곤두박질 하며 사라져 버린다. 그 장면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잊지 않았다.

 

오래 있고 싶었지만, 배도 고프니 식사나 하자. 산장 식당에 때가 때인지라 많은 사람이 줄지어 서있다. 이것 저것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시켜 놓고 창가에 앉아 포식했다. 깨끗한 식당이 좋았고.....

나와서 선물가게 들러 엽서와 그림책을 몇 개 샀다. 내가 아무리 좋은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도 카메라와 내 실력이 그 아름다운 배경을 못 담을 테니.....

 

아쉬운 하산을 한다. 무리가 내려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예정된 정확한 시간에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이 너무 많아 다음 차를 타고 내려 오다 도무지 이 곳을 이렇게 쉽게 내려가는게 안타까워 중간에 내렸다. 역에 조그만 오두막까페(샬레)가 있고, 그 밖으로 나가니 산골짜기 풍경과 멀리 보이는 마을들이 무척 정겹다. 반바지 하나만 걸치고, 위는 알몸으로 까페 베란다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외국인들과 무척 비싸보이는 점심을 즐기는 일본인들이 섞여 있다. 망원경으로 멀리 아득한 곳을 보는 것만으로 즐기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마누라에게 무척 미안한 마음과 다음에 같이 이 곳에 오고 싶다는 겉치레 인사와.....

 

다음 기차를 타고 가니 기차 옆에 한적한 시골 풍경이 아름답고 그 곳에서 여유를 가지고 돌아다니는 여행객들도 있다. 시간만 있으면 이 곳에서 한 일주일 있다 가면 좋겠구만. 벵겐에서 하차.

 

베란다에 꽃이 있는 호텔들과, 졸졸 흐르는 약수터가 보기 좋아 거닐다 보니 누가 반갑게 아는체를 한다. 얼굴이 낯이 익은데.. 그 쪽에서 먼저 소속을 밝힌다. 어제 루체른에서 보았다고. 아 맞다. 성신대 여행 동아리들이다. 몇 몇 아는 얼굴들이 인사하고, 사진 한장 같이 찍으며 얘기를 하다 보니 이 팀들도 조조할인 티켓으로 올라와 하산하다 그냥 내려가기가 아쉬워 도중에 내렸단다. 이젠 표를 다시 사야 할 판이니. 다음 정거장일 라후터부란넨까지 걸어가려 하니 같이 갈 의향이 있느냐고 나에게 물어오길래 쉽게 승락해 버렸다.

 

내려가다 꽃집아가씨와 사진도 한 장. 이정표에 다음 역까지 도보로 50분으로 표시되어 있어 이까짓것 했다. 그러나 무거운 짐과 (이 배낭을 출발지 코인 라커에다 보관해 놔야 하는건데 잘못했다) 가파른 경사가 무척 힘들었다. 머리에 손수건으로 띠를 해 땀이 흐르는 것을 막고 발 앞 꿈치에 무리가 오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50분 거리가 이렇게 먼 줄 미처 몰랐다.

 

그 가파른 길을 산악 자전거로 내려가는 젊은이들이 있고, 나이 든 분들이 땀 흘려 걸어 올라오는 모습도 보였다. 역 가까이에 번지점프가 가능할 것 같은 다리 위를 지나 옆에는 현대식 주차장이 보이고 많은 차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만남이 반가워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 하나씩 선사. 얼마나 좋아하는지.. 가게 주인이 물건 고를 때는 냉장고 유리를 통해 보라고 화난 얼굴로 충고한다. 타고난 절약습관인가.

 

학생들과 이런저런 담소하며 다음기차를 타고 오스트발트역까지 내려와 헤어졌다. 만약 다음에 다시 온다면 이 곳에서 일박하는 게 낫겠다. 쥐리히까지 가는 기차시간이 아직 멀어 먹을 것 사냥에 나섰다.

 

그토록 유명한 곳이지만, 거리엔 한 낮인데도 인적이 뜸하다. 기차가 도착할 때 외에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이 감돈다. 어슬렁거리는 이들은 거의 다 동양인이다. 슈퍼를 찾아 이것 저것 챙기고 있는데, 한 아가씨가 한국인이냐며 아는 체 한다. 싼 숙박지를 찾는다 한다. 이 곳은 얼마냐고 물으니 20 프랑이라면 무척 비싸다고 한다. 와 이 돈이면 나에겐 무척 싼 편인데, 이 아가씨는 그것도 비싸 혹시 역 구내에서 숙박해도 되는지 나에게 묻는다. 용감한 아가씨네. 겁도 없이.. 한국에서도 이렇게 용감할까? 버드와이저와 빵을 사고 편안히 시골 열차 플랫홈에서 여유를 즐기고...

 

쮜리히로 가는 열차 편에 올라 창 밖을 보니 계속 호수를 끼고 열차가 달리고 있다. 호숫가에는 개와 단둘이 낚시를 즐기는 사람, 수영을 즐기는 사람 등등 마치 한 편의 조각배모양 아름답기만 하다. 앞 자리에는 미국 대학생 두 명이 냄새 풀풀 풍기는 발을 길게 뻗고 맥주를 즐기고 있다. 아리조나 주에 있는 대학생들이라 한다. 얼굴이 무척 햇볕에 그을은 것으로 보아 등산을 한 것 같다. 그 들은 베른에서 내리고 나는 계속 이 열차가 쮜리히로 가겠지 하고 기다렸으나 도대체 떠날 생각을 아니한다.

 

열차 안에 나 외에 몇 사람밖에 없고 밖에서는 어느 외국인이 손 짓으로 나 보고 자꾸 내리라 한다. ‘아니야 이 열차는 분명 쮜리히까지 가는 것을 확인하고 올라탔는 데 웬 소리냐‘ 하고 계속 앉아 있으려니 열차에 불이 꺼진다. ‘어이쿠 잘 못 탔구나’.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내려 열차시간표를 확인하니 몇 분후에 똑 같은 자리에서 쮜리히 가는 편이 있다. 내가 방송을 잘 못 들었나? 의아심과 함께, 좌우단간 쮜리히가는 열차를 타긴 탔다.

 

21:30분에 쮜리히에 내려 간단히 저녁을 빵으로 때우고 11 시의 파리행 열차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있어 배낭족이 대기하는 라커으로 가니 온통 한국 대학생들이다. 그 중 애티가 있어 보이는 어느 두 아가씨와 합석을 하여 이것 저것 얘기를 하다 보니 둘 다 이화여대 다니는데 오누이라 한다. 동생이 병에 걸려 빌빌거리고 있다. 아버님 드릴 귀국선물을 사지 못해 다른 나라에 갔다가 다시 오는 길이라 한다. 유레일 패스의 장점이 바로 이것이구나.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니.

 

밤에 열차 안에서 군것질할려고 사 놓은 음료수와 과자들을 모두 두 아가씨에게 주고 제 시간에 도착한 파리행 열차에 타려고 하니 모두들 100 미터 단거리 경주하는 사람들같이 열차를 향해 뛰고 있길래 왜 그러냐고 물으니 조금 늦게 타면 자리가 없단다. 난 쿠세트라 예약이 되어 있다 하니 그럼 안녕히 가세요 하고는 저 앞으로 한 참을 뛰어 가버렸다.

 

내 자리를 찾아가니 한 아가씨가 3 층에서 자고 있다가 불을 키니 어설픈 인사를 한다. 아 이 열차는 그저 잠만 자는 거구나. 열차가 낮 동안 계속 다녀서인지 내부가 무척 덥다. 내 자리는 삼층. 아이쿠 이거 잘 못 잡았구나. 완전히 달군 쇠 철판 아래서 자게 생겼네. 삼층으로 기어 올라가 짐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 입는데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겨우겨우 잠자리를 펴 놓고 불을 끄고 자려 하니 도무지 잠이 오는 것 같지 않은데 몸은 이미 잠들고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내가 꿈 속으로 가 있었고, 누군가 불을 키는 바람에 눈을 뜨니 승무원이 몇 가지 국경통관 양식을 놓고는 금방 오겠으니 작성해 놓으란다. 졸린 눈으로 작성을 하고 승무원을 기다리다가 또 잠이 들고, 또 한 번 승무원이 불을 키고는 작성한 양식과 여권을 달란다. 이미 이러한 절차는 책을 통해 알고 있길래 익숙하게 여권을 건네 주고 진짜 긴 잠으로 빠져 들어 갔다.

 

밤새 화장실을 가고 싶었으나 방 안의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줄 까봐 참았다. 또 한 번 승무원의 기습적인 방문에 눈을 뜨니 아침이고 여권을 주고 간다. 서둘러 화장실을 찾으니 웬 걸 줄줄이 대기 중이다. 열차 한 칸에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이... ‘야 이거 큰일 났다.’ 내 차례까지 오기 전 까지 기다리다가는 정말 국제 망신이 예상되는 무슨 일인가 날 것 같다. 정말 참을 수 없길래, 세면실에 들어가 슬쩍 하려다, 도무지 맘이 안 내켜 건너편 열차에 가니 마침 화장실 문이 열리며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살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안내책자에서 프랑스의 파리 편만 찢어 가지고 온 것이 무척 다행이다.

 

부피도 가볍고, 빵 쪼가리를 입에 물며 미리 읽어 둔대로 전철 역에 가서 하루동안 마음대로 전철과 버스를 탈 수 있는 후루엘라1을 27프랑에 구입하니 우리나라의 전철 지갑과 똑 같은 비닐주머니에 전철역 안내표랑 같이 준다. 친절도 하지.

 

하루에 파리를 모두 보는 법을 이미 숙지한 상태이므로 망설임이 없었다.

 

시테섬으로 가자.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시테섬에는 너무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다. 지하도를 올라오니 어디 잘못 내렸나 할 정도로 조용한 곳에 몇 몇 이국인들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모르면 무조건 물어야지. 지도로 불분명하니..

 

프랑스특유의 경찰모자를 쓴 경찰에게 가서 노트르담을 물었다. 굳이 긴 영어 필요없지.

 

바로 저기란다. 가리킨 대로 모퉁이를 돌아가니 넓은 돌 광장이 나오고, 거대한 성당이 얼기설기 공사용 막대기로 가리운 채 흉한 모습을 드러낸다. 아 이곳이 콰지모토의 노트르담인가?

 

그 꼽추처럼 추하기만 하다. 불과 몇 명의 관광객만이 아직 열지않은 매표소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너무 일러도 탈인가? 사원 앞 돌 계단에서 잠시 쉬며 주위를 보니 무척 지저분한 모습이 밤새 이곳에서 노숙한 사람들이 많았음을 알수 있다. 시간이 되어 표를 판다.

 

어두컴컴한 문을 지나 들어선 곳 역시 어두컴컴하다. 그러나 잠시 눈에 어둠이 익어 안을 둘러보니 아! 이거야 말로 엄숙의 경지에 있다. 프랑스 역사가 모두 천정의 유리 벽에 그려져 있고 십자가를 상징화한 건물 구조가 중세 모든 성당의 한 모습이다.

 

조그만 촛불이 가운데 제단의 양쪽에서 빛나고 있고, 초 하나에 1프랑인가에 팔고 있다 물론 셀프서비스로.. 어디에선가 녹음된 것 같은 미사곡이 흘러나오니 더 엄숙함에 이른다. 그러나 그 엄숙은 잠시만에 깨져 버렸다. 많은 무리의 관광객들이 비록 조용하나마 구두발소리로 이 조용함을 깨뜨리고 있다. 무척 조용조용 안내를 하는 가이드의 설명에 잠시 귀를 기울이고 못내 아쉬운 그 곳을 나오면서 어둠 속에서 사진을 몇 컷..

 

밖에 나오니 광장에 사람들이 제법 모여들고 있다. 그중 한 서너 명의 한국인 가족같이 보이는 무리가 있길래 가까이 가니 역시 한국말이 들려온다. 온 가족이 유럽여행을 나왔단다. ‘오메 부러운거..’ 어디가나 한국사람들은 옷차림이 분명하다. 어쩜 그렇게 한국식의 잠바 그리고 아줌마들의 옷 스타일..

 

다시 지도를 꺼내 들고 다음 목적지인 퐁네프다리를 찾아간다. 경찰이 지키고 있는 약간 관료적인 냄새가 나는 건물 앞을 지나 큰 길을 가니 강변을 계속 가는 듯한 버스가 있길래 아까 산 티켓을 보여주며 퐁네프하니 타란다. 바로 다음 정류장에 내려 앞을 보니 불어를 몰라도 영어식으로 읽어도 퐁네프 다리를 알 수 있는 특이한 다리가 세느 강에 길게 놓여 있다. 퐁네프다리가 나오는 영화를 보아서인지 약간 지저분한 다리를 연상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깨끗한 회색빛 돌다리를 걸어가 본다.

 

다리 위 난간에 규칙적으로 아치형의 돌 의자가 난간에 붙어 있고 그 곳에서 지저분한 모습으로 잠을 자던 영화배우 (이름이 생각안난다)의 모습을 그려 본다.

 

다리 중간에 기사상이 우뚝 서있고 비둘기들이 한가로이 기사와 놀고 있다. 다리위로 계속 출근하는 듯한 사람들이 스쳐 가고 왔다 갔다는 증명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아 지나가는 어여쁜 프랑스아가씨에게 영어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니 화들짝 놀라며 걸음을 재촉한다. 자기랑 사진 찍자는줄 알았나 보다.

 

정말 아무것도 흥미를 끌 만한 꺼리가 없는 이 곳도 영화하나로 사람들이 꼭 들러야 하는 관광코스인 것을 보니 영화산업도 대단한 국가 홍보사업의 하나임을 느끼며 다리를 건너 바로 보이는 그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거대한 성 같이 끝이 안 보이는 루브르 박물관의 위용에 한 참을 서서 쳐다보고는 안내 책자를 보니 아직 개장시간이 안 되었길래 세느강을 보고 싶어 강변으로 발길을 옮겼다. 굳이 계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완만한 경사를 따라 다리 아래를 내려가면 보니 다리 저 건너편에는 아직도 젊은이들이 모포를 뒤집어 쓰고 자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집시들인가? 역시 이쪽 강변에도 어떤 사내가 웃도리를 완전히 벗은 모습으로 길게 누워 아침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나도 무거운 배낭을 내려 놓고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차마 웃도리는 벗지 못했지만...

 

강에 발을 담그기에는 뚝이 높아 안 되었고 강물에는 이끼가 많이 끼어 있음을 보며 강변에 앉아 한가로이 여행중의 망중한을 즐겼다. 내 주위에 비둘기가 몇 마리 있어 가만히 사진을 찍으려 노력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외국인을 싫어 하나보다.

 

한 시간정도 여유를 부리다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하여 지나가는 사람에게 입구를 물으니 따라오라는데 아 이런 또 고정관념이 무너졌다. 보통 입구가 건물의 앞에 있으려니 하였는데 루브르는 건물의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닌가. 입구를 보는 순간 또 한 번 놀랐다. 거대한 두개의 삼각형 유리 건물이 입구인데 그 주위에 분수대가 있어 얼마나 깨끗하고 산뜻함을 느꼈는지...

 

아주 어렸을때 어느 만화의 한 내용이 생각났다.

 

두 돈 많은 사람이 거액을 들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지어 달라고 각각 다른 건축설계사에게 부탁하였는데 모두 상대방에게 공사중의 자기의 작품을 보이기 싫어해 현장주위를 늘 가리고 오랫동안 작업을했다. 한 쪽은 자꾸 위로 올라가며 위용이 드러나는데 한 쪽은 전혀 위로 안 올라가니 이게 웬일인가.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 작품을 공개하는 순간 한 쪽 돈 많은 사람이 그만 기절하고 운명을 달리 했다. 현장에 아무 것도 없지 않는가. 세상에 거기에는 단지 조그만 입구 하나만 달랑  나와 있을 뿐...

 

그 설계사는 지하에다 세상에다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지은 것이었다.

 

루브르가 그 식이었다 그 넓은 광장에 있는 사람들이 그 유리 건물 속으로 해서 모두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입구에는 절대 음식물 반입금지라며 몇 명의 안내원이 관람객의 모든 소지품 및 짐들을 검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찾아낸 음식물은 가차없이 모두 쓰레기통으로 직행. 그러니까 이 곳에 올 때는 절대 음식믈을 가지고 오지 말라는 것이다.

 

‘아 이게 역사의 보물들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비결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며 나도 캔 맥주를 보여주며 이것은 어떠냐고 물으니 그 것도 안된단다. 에라 그 자리에서 한 캔을 다 비워버리고 주위에 보니 몇 명의 한국 아가씨들이 손에 모두 각종 음식믈을 들고 안절부절한다. 그러면서 ‘아저씨 이거 가지세요’ 하는데 ‘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하고 주머니 많은 내 조끼에 모두 집어 넣고는 다시 그 검사원앞에가서 ‘자 이제 캔 맥주 다 먹었습니다’ 하면서 빈 캔을 보이니 그대로 통과... ‘야 덕분에 먹을 것 잔뜩 챙겼네..’

 

지하로 내려가니 깨끗한 환경에 실내는 입구의 유리 벽을 통해 자연광으로 밝았으며 그 곳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표를 사기위해 길게 줄을 늘어 서있다. 입구는 하나가 아니고 원형의 실내에 사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입구인 것 같았으며 중앙에는 각종 안내 팜플렛 및 각종 언어로 안내를 해 주는 아가씨들이 상냥한 미소로 안내를 하고 있었다.

 

매표소에는 몇 가지 가격표가 표시되어 있는데 도무지 어떤 것을 내가 사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영어안내는 전혀 없다. 불어로 예비고사를 치룬 나지만 이제 모두 잊어버려 그냥 큰 돈 하나 내밀고 대강 표와 거스름돈 집어들고 들어가려 하니 배낭을 맡기고 오란다. 아 작품의 안전을 위해 배낭은 허용이 안되는 구나하고 바로 옆에 보관하는 곳이 있어 무료로 맡기고 번호표하나 달랑 받고는 카메라만 하나 달랑 둘러메고 편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니 유료 안내 책자 및 홍보물을 파는 곳이 있다.

 

박물관은 크게 몇 개 분야로 나뉘어 있는데 그림분야 그리고 조각분야로 나뉘어 있으며 사람들이 자주 찾는 모나리자 와 비너스여신이 있는 곳은 건물 모퉁이마다 가는 곳을 표시해 관람객의 편의를 도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안내책자에는 루브르 박물관을 다 볼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가져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길래 어느 정도 인지 실감이 안 났는데 직접 와서 보니 그 말이 허풍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가판대를 지나 바로 위를 보니 웅장하고 목이 없는 석상이 관광객들을 제일 먼저 반기고 있다. 그 것을 배경으로 모두가 사진찍기에 바쁘고. 그 앞에서 사진을 박아대는 거의 모두가 동양인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정말로 많은 그림들, 많은 조각들.. 모두에 사연이 있고 모두에 작가의 이야기와 역사가 있을 법한데 나는 도시 관심이 없는 분야이길래 그냥 겉돌았다. 그러나 이 곳에 온 이상 모나리자와 비너스는 보고 가야지...

 

작품을 찾아가는 도중에 수많은 그림들 거의 모두가 주님의 모습과 그 제자들 또 카톨릭 성화들이 그림 하나가 온 벽을 하나 가득 채우기도 하고 혹은 여러개가 걸려 있기도 한데 그 숫자에 놀라기도 했다. 보아도 보아도 끝이 없는 그림들...

 

그리고 어느 통로를 가니 사람들이 무척 모여 있다. ‘아 저곳이 모나리자구나’

 

대한항공 달력만큼이나 한, 별로 크지 않은 그림 속의 모나리자가 육중한 안전 장치안에서 몇 백년후의 사람들에게 똑같은 미소로 맞이하고 있다. 오른손이 위냐 왼손이 위냐하는 것도 확인하고 (어디였더라, 또 잊었네) 가까이 가서 사진도 찍었다.

 

모나리자가 무엇이길래 그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도무지 그림 상식이 없는 나로서는 알 수 가 없음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저러나 나도 왔다 갔다는 증명사진을 박아야 하니 사진을 좀 찍고 싶었으니 도무지 말 붙일 마땅한 사람이 없어 모나리자만 계속 찍어댔다. 후레쉬는 안 되지만 건물 전체가 채광이 잘 되어 있어 굳이 후레쉬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런 것 까지 고려한 건물양식이 부럽기만 했다.

 

계속 복도를 돌아 돌아 가니 어느 복도에 드디어 비너스의 여신상이 복도를 가로막아 서있고 그 주위에 역시 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기념사진 촬영하느라 비비고 설 자리가 없다. 하얀 대리석에 신체에 조금 금이 간 비너스. 별로 가슴도 크지 않았지만, 얼굴의 선이 무척 뚜렷하였다.

 

‘만약 팔이 있었다면 어디를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 이건 기념사진을 박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침 옆에 동양인아가씨가 하얀 벙거지 모자를 뒤집어 쓰고 혼자 있길래 영어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니 아가씨는 선선히 응한다.

 

워낙 사람들이 운집해 있어 제대로 얼굴이나 잡혀는지 모르겠다. 여자가 아무래도 일본 사람같기에 "아리가도우 고자이마스"로 인사하고 이제 출구를 찾아 나섰다 도무지 여기를 다 돌려면 며칠이나 가져야 하는가?

 

밖에 나오니 너무 조용하다. 그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나?

배낭을 찾아 놓고 다리가 아파 한참을 의자에 앉아 쉬고는 아쉬운 발걸음으로 지상으로 올라 갔다. 역시 이 곳도 장애인을 위하여 엘리베이터가 있고 몇몇 나이 드신분이 이용하고 있음을 볼때 왜 우리나라는 저런 편의시설이 없는 걸까 하는 아쉬움.

 

밖에 나와 지도를 펴 들고 다음 목적지인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음악 좋아하는 내기 이 곳을 방문 안하면 두고두고 후회하리라. 지도상으로 보니 도보로 충분한 거리에 오페라 하우스가 있기에 천천히 걸어 큰길로 나가 멀리 보니 웅장한 건물이 길의 끝에 자리잡고 있다.

 

'아. 저기로구나...’

 

하우스 앞에는 몇 몇 젊은이들이 계단에 앉아 웃통을 벗어 던지고 혹은 애인과 같이 입 맞추느라 정신 없고 사람들은 계속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요금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무척 어둡다. 그러나 들어서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바로 들어가는 입구에 계단이 있고 그 곳에 각종 오페라의상을 화려하게 차려 입은 마네킹들이 온갖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의상의 화려함은 물론이고 배경까지 무대 그 자체 였으며 일층의 구석구석에 의상들을 유리창 속에 그대로 진열되어 있어 더욱 화려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극장내의 LOCKER에 배낭을 맡기고 본격적으로 극장의 안 쪽으로 들어 가 무대 뒤에 구석구석 진열되어 있는 각종 의상, 역대 유명 출연자, 작곡가, 역대 공연작품의 PAPER MINIATURE (가장 탐나는 물건임) 그리고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공연 악보들, 정말 그 것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멋있게 못할까? 하는 서러움때문에..

 

예술의 전당 무대 앞이나 뒤나 삭막한 콘크리트밖에 없고 무언가 공연이외에 역사에 대해서는 너무 등한시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특히 악보 및 대본들을 정리해 놓은 방이 너무 보기 좋아 몰래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다 걸려 제지를 받기도 했다. 조용해 보이는 관리여자가 오더니 다름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고 나에게 주의를 주는 그 매너가 선진국의 모든 사람들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았다. 정말 오래도록 이 곳에 머무르고 싶었지만 또 배도 고프고 아쉬운 발걸음으로 입구의 매점에 잠깐 들르고는 나와서 마침 주위에 몰려 있는 여행사를 찾았다. 아직 돌아가는 비행기가 확인이 안되어 있으니 마음이 조급하다.

 

그러나 어디에도 SAS는 없었고 전화로 확인해 보니 아직도 확인이 안 되어 있단다. 급한 김에 마일리지 사용이 가능한 인근의 델타 항공을 들어가 혹 아시아 쪽으로 가는 비행기가 있는지 확인하였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기에 포기하고 거리의 포장마차에 들어가 먹을 것을 찾았다. 프랑스 특유의 긴 빵에 소세지를 넣고 파는 게 있기에 주문했더니 긴 빵을 반으로 뚝 잘라 바닥에 고정된 긴 쇠꼬챙이에 빵을 거꾸로 꽂아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소세지를 넣고 소스를 발라 나에게 건네준다.

 

먹을 장소도 마땅치 않기에 바로 옆 은행입구에 적당히 진 치고 빵을 먹는 나의 모습을 만약 한국에서 보았다면 영락없는 거지신세다. 머리에 질끈 동여맨 손수건과 주위 사람들의 멋진 모습들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동양인. 혼자 빵을 먹으면서도 웃음이 나옴을 어찌 할 수 가 없다. 혼자 먹는 건 확실히 맛이 없는지 얼마 안 먹고는 그대로 배낭에 꾸겨 넣었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가 어데냐...

 

에펠탑이지. 자 드디어 에펠탑에 간다. 프랑스의 가장 자랑스런 관광지, 아니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장소를 찾아 간다. 지도에서 인근 전철 역을 찾아내고 무슨 색갈 몇 번 선인지 확인하고 출발..

 

워낙 교통 지도가 잘 되어 있어 찾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전철에서 내려 밖을 나오니 저기 멀리 하늘 높이 솟은 탑이 보인다. 아무래도 필름이 모자를 것 같아 필름을 한 통 더 사고 물도 한 병사고 천천히 탑을 향해 걸어가니 길 거리에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다. 그 중에 한국인도 보이니 유학생인 듯 싶다. 그리고 필리핀인 같이 생긴 사람들이 양동이에 음료수를 넣고 팔고 있고...

 

자꾸 나보고 초상화 한 장 그리란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그거 그리고는 싶어도 가지고 다닐 수가 없다고 손짓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갑자기 시야에 넓은 공터가 나타나며 코끼리 다리통(4 기둥)만 보이는 에펠탑이 눈 앞에 나타난다. 한 눈에 대단한 철구조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감히 꼭대기 까지 올려다 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하늘을 향해 치 솟아 있다.

 

이걸 사람이 만들었다고?

 

네 철제 기둥 사이에 공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리 저리 다니고 있

었으며 그 중에 몇몇 장삿군들이 이런 저런 장난감을 달고 있었다. 머리에 쓰는 우산, 날라 다니는 모조 종달새 그리고 부채 까지...

각 기둥에는 매표소가 있고 길게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어 나도 그중 한 줄에 서서 좀체로 줄어들지 않는 줄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내 바로 앞에 어느 두 남녀가 무어가 그리 좋은지 연신 입을 맞추어 대고 있어 도대체 눈길을 어디 두어야 할 지 안절부절하다가 마침 매표소 앞에서 에펠탑의 설계자인 에펠씨의 동상이 있어 사진을 찍는 척 하고 두 남녀를 카메라에 담았다. 내 차례가 왔고, 중간까지 올라가는 요금과 꼭대기 까지 올라가는 요금이 상당히 차이가 있으나 여기가지 왔는데 중간만 가면 되나?

 

조금 비싸지만(55Fr) 꼭대기 까지 올라가는 티켓을 끊었다.

 

엘리베이터는 우선 2층에 멈추고 일단 손님을 모두 내려 놓는다. 2층에는 넓은 철판으로 만든 공간이 있고 사람들이 바깥 풍경을 즐기고 있다. 이 곳도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해서 밑을 내려다 보니 겁먹기 가장 좋은 위치이다.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3층 (꼭대기)까지 가는 편으로 갈아탄다. 역시 사람이 길게 늘어서 있고 멋진 프랑스 젊은이들이 유니폼을 입고 안내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는 초 고속으로 상승하더니 아찔한 위치까지 올라가서 정차 하였다.

 

자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왔다. 탁 트인 공간에 바람도 없고 파리의 시내가 전혀 가림이 없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전망대를 돌아가면 에펠탑의 역사및 그간의 일어 났던 일들이 사진으로 혹은 그림으로 설명되어있으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언젠가 비행기가 에펠탑에 부딪힌 적이 있는데 전혀 골격이 상하지 않았다고 하는 설명서다. 100년 전에도 그 정도의 충격에도 견디어 낼 수 있는 완전 무결한 건축물을 지음으로서 건축가로서의 자부심을 갖는 장인 정신이 부러웠다.

 

또 탑의 도색과 청소를 위해서는 특별히 산악인중에서 밧줄타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의뢰를 하여 한다고 한다. 탑의 정상에 실내가 있고 그 실내를 들어서니 현재 위치에서 보이는 각종 특별한 건물들의 이름이 써있어 멀리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천장모서리에는 탑을 기점으로 전 세계의 주요 도시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어 서울의 거리를 읽느라 잠깐 향수에 젖기도 했다.

 

날이 오랜만에 화창한지 저 아래 어느 궁 앞에 있는 분수대 옆 잔디에는 젊은 남녀들이 거의 알몸으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으며 조금 성질이 급한 젊은이들은 분수대로 들어가 한 여름의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하는 일들을...

 

약간의 선물을 사고는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에펠탑에서 내려와 다음 목적지인 개선문으로 향했다. 역시 아침에 사 둔 전철 표로 개선문 근방의 전철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오니 이게 그 유명한 샹제리제 거리라 한다.

 

개선문. 하얀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자리잡고 있는 곳은 로타리의 한 가운데이다. 안내서에 개선문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해 건물을 보니 사람들이 개미만하게 보인다.

 

그러나 내가 지금 보통 다리가 아픈게 아니다. 전날 스위스에서 산을 걸어 내려운 탓인지 내 체력에 한계가 온것 같다. 그리고 목이 타서 물을 사려고 했으나 주위에 아무리 둘러봐도 물파는 곳은 없으나 많은 사람들이 물병을 가지고 다니다. 어디서 샀을까?

 

개선문주위에 많은 한국인을 볼 수 가 있었다. 그중 환전소에서 만난 젊은 남녀는 여행자 수표를 잔뜩 현찰로 바꾸고 있어 한국인의 낭비벽을 엿 볼수 있었다. 마침 옆에 맥도날드가 있어 들어갔다. 역시 맥도날드는 여행자에겐 최고의 휴식처다. 그냥 앉아 있어도 누가 가라는 사람도 없고, 감자튀김하나 시켜 놓고 하루 종일을 있어도 전혀 간섭을 받지 않는다.

 

온갖 민족이 우글거리는 계산대에서 나도 줄을 서고 얼마나 갈증이 났는지 콜라를 대형으로 주문했다. 1.7리터 정도되는 큰컵에 빅맥하나 사들고 편하게 자리잡고 배낭 끌러 놓고 자 이제 시식해 볼까? 내가 이 많은 콜라를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을까?

 

세상에! 그 많은게 모두 내 뱃속으로 들어가버리네..

완전히 물 배를 채우고 끄윽하고 트림하니 모두 소화가 된다.
거 참 신기하단 말야 맥도날드는 아무리 빨리 먹어도 체하니 않으니...
콜라 탓인가..

 

다리에 조금 힘을 얻고 밖으로 나왔으나 역시 계속 걸어 다니는 건 무리다. 차도보다 인도가 더 넓은 샹제리제 거리의 의자에서 몇 번을 나누어 쉬었다. 개선문을 올라갈 생각도 못했고...

 

대신 한국학생들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마침 주위에 디즈니랜드 장난감 가게가 있어 우리 딸이 좋아하는 디즈니왕자님과 공주님인형을 몇 개 집어넣었다.

 

샹제리제 거리에 극장식 레스토랑인 "무랑루즈"가 있다. 화려함의 극치라는 곳..

 

시간이 낮인지라 전혀 손님은 없고, 입구에 사진만으로 만족해야 했으며 입구에는 무랑루즈의 선물코너가 있어 사진첩과 티셔츠등을 팔고 있었다.

 

거리의 끝까지 가서 드골 광장을 보고 싶었으나 너무 다리가 아프기에 다음 목적지인 몽마르트 언덕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내려가니 그 곳에 생수를 파는 벤딩머신이 있지 않는가. 그렇구나 여기 였구나 물을 파는 곳이....

 

물병 하나 사들고 전철타고 몽마르트로.....

몽마르트. 화가들의 꿈의 고향.

 

전철을 나와 지상으로 올라오니 선물가게부터 눈에 들어온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게에 즐비해 있고 이미 파장시간인지 하나 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으며 나보고 문 닫기 전에 빨리 사란다. ‘농 빠르동’으로 사양하고 몽마르트 언덕으로 천천히 올라가니 하얀 둥근 돔의 건물이 눈 앞에 우뚝 서있다.

 

건물로 올라가는 비탈길에 잔디밭과 계단이 있으며 많은 여행객들이 편하게 쉬고 있다.

 

비탈길 중간에는 참으로 희한한 광경을 펼쳐지고 있었다.

어느 할아버지가 손에 먹을 것을 들고 참새들을 불러 모으고 있지 않는가..

 

거기다 비둘기까지...

비둘기야 많이 볼 수 있고 손 위에 쉽게 올려 놓을 수 있다 하지만. 참새까지 모여 드리라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 할아버지 손위에는 참새가 수북하다.

 

할아버지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내 옆에 어느 한국인 청년과 어린이가 있고...

 

어! 이런! 아침에 루브르 박물관의 비너스상앞에서 사진을 찍어 준 아가씨가 있지 않는가?

 

일본 사람인지 알았는데 한국 사람이라니...

반가움에 인사를 하니 자기도 날 알아보았단다..

그 아가씨도 나를 다른 나라 사람으로 알았대나?

 

박물관에서는 혼자였는데 돌아다니다 한국인 청년과 어린이를 만났단다.

 

청년은 영국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어린이는 김 태현이라는 여의도의 어느 국민학교 5학년짜리 조카였다. 선생님이 유럽여행을 적극 추천하여 무조건 삼촌을 따라 나왔단다.

 

청년이 사 온 청포도를 먹으며 여행이야기를 한 참 나누었다.

어린이는 한국에서 혼자 나와 영국에서 삼촌을 만나 유럽여행을 하고 있고 삼촌 따라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 즐기고 있다. 태현이가 어디에선가 카메라를 잃어버려 사진을 별로 찍지 못하였다고 불평하자 태현이가 또 미안한 눈치를 보인다. 아가씨는 직장인인데 여름 휴가를 맞아 친구와 둘이 한국을 떠나 나왔는데 친구는 먼저 들어가고 자기는 혼자 계속 다니고 있다고..

 

나이가 들어보여 대충 물으니 27살, 직장을 물으니 나와 동종업무를 하고 있다. 내 직장을 얘기하니 우리 회사에 아는 친구가 있다고....

 

아가씨의 취향을 물으니 우리 회사에 내가 좋아하는 젊은이가 원하는 타입이라 귀국 후 연락해 주면 그 젊은이를 소개해 주기로 했다

저기 언덕을 돌아 올라가면 무명화가들이 즐비한 몽마르트 언덕이 있다 한다. 그러나 이젠 정말 기력이 다 떨어졌다.. 몽마르트는 포기...나는 미술 별로야...

 

그 일행들에게 저녁을 대접 하겠다하고 부근 버거킹에서 가지고 있는 프랑을 모두 털어 푸짐하게 여행지에서의 만찬(?)을 즐겼다.. 모두들 얼마나 좋아하는지...

 

우선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 수 있어 좋고, 화장지 조금 슬쩍해 와서 좋고 낯 모르는 사람이 먹을 것 사주니 좋고....

 

젊은이는 어느 한국인이 소개한 하숙집에서 기거를 하고 있고 아가씨도 어느 싸구려 한국 하숙집에 있다 한다.

 

난 다음 목적지인 독일로 가는 밤열차를 타기위해 중앙역으로 가야 했고 모두들 밤에는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하다 하여 숙소로 가는 길이라며 전철을 탔다. 넷이서 전철에 둘러 서서 얘기 도중 문득 내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이상한 손이 들어오는 어떤 느낌이 있어 얼른 내 손을 지갑쪽으로 돌리며 뒤를 보니 무표정한 프랑스 젊은이가 딴 청을 하고 있다.

 

소매치기구나... 얼른 내 지갑을 벽쪽으로 향하고 모른 척 얘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한국말로 일행에게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저기 청바지 입은 사람이 소매치기다. 조심해라...’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하고 전철에서 나오니 이런! 그 소매치기가 계속 쫓아 온다. 전철 통로는 무척 한산했고 날 구석에 몰아 세워도 전혀 무방비일 것 같다.

 

마침 어느 아주머니가 큰 개를 데리고 지나가길래 바짝 그 옆에 따라 걷고 옆에 마침 출구가 있어 얼른 빠져 나와 골목에서 벗어나왔다. 프랑스의 전철 출구는 사람이 나가면 안 보이게끔 되어 있다. 마치 자동 문처럼....

 

겨우 한 숨을 몰아 쉬고 천천히 그 다음 목적지인 독일로 가기 위해 내가 탈 열차를 확인하다.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어 역내 과일가게에 들러 아까 맛있게 먹었던 청포도와 열차 안에서 먹을 요량으로 빵을 사 들고는 한 구석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이 곳에서도 역시 한국 청년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어 합석하고 서로의 짐을 봐 주며 빈 몸으로 역 구내를 산책도 하였다.

 

열차는 밤 11시에 있다. 떠날때 부터 침대칸을 예약하였기 때문에 전날의 고통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짜증스러워 진다. 찜통.. 답답함. 움직이기 어려운 환경... 등등

 

11시 못되어서 기차가 도착하니 미리 좌석을 차지하려는 젊은이들이 마치 사냥꾼에 쫓기는 노루떼들처럼 단거리 경주를 하고 있다. 하긴 긴 밤을 고대로 앉아 가야 하니 만약 자리가 없으면 정말 난감하겠지..

 

조금 남성스러워 보이는 여성 승무원이 정해주는 침대 칸에 자릴 잡고서 아직 시간에 여유가 있어 창가에 기대어 밖을 보니 그 중 한 젊은 한국 부부가 젊은이들보다 늦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뒤쳐져 갔다가 자리가 없는지 자꾸 열차의 앞 뒤를 왔다 갔다하며 당황해 하고 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길이 아무도 없음을 안타까워 하며 내 방에 일행인 듯한 인도인과 한참 담소를 나누었다. 인도의 전자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인가 본데 이런 싸구려 여행을 하다니 불쌍도 하지....

인도인 특유의 예, 아니오의 표정, 완전히 한국과 반대다..

 

Yes는 고개를 가로 젓고 No 는 고개를 앞 뒤로 움직이는 통에 정확하지도 않는 영어 발음에 이해하느라 무척 힘들다.

 

열차는 한 참을 지연출발하고 있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 침대 칸에 두 명의 흑인 프랑스인이 동참한다. 조금 역겨운 냄새가 났지만 그들도 나에게서 역겨운 냄새를 맡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냥 참는다.

 

한참 후에 덜컹하며 열차는 떠나고 또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워야 했다. 밤새 열차 마주쳐 지나 갈때 나는 소음 속에서 이리 저리 뒤치닥 거리다 보니 열차가 어느 역에선가 도무지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

 

에라 신경써서 뭐하냐 지가 알아서 가겠지.

 

난 분명히 프랑크푸르트가 종착역인 기차에 탔으니 지나치는 불상사는 없겠지.. 자다 보니 또 입국서류 기입과 여권을 보관하고 회수하는 절차를 거쳤다. 스위스에서 프랑스올 때 고생했던 생리현상을 미리 해결했으니 이처럼 편한 것도 없지...

 

여권을 돌려주는 승무원의 문을 여는 모닝콜에 대충 일어나 양말 갈아 신고 꾀죄죄한 얼굴로 일어나 밖을 보니 전혀 또 다른 도시가 눈 앞에 있다.

 

독일이구나....

 
 
 

독일에서.....(8/12)

 

밤새 프랑스를 달려온 기차가 서서히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들어서고 있다.

 

짐이야 간단히 배낭 하나 뿐이니 달랑 둘러메고 또 다시 새로운 나라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는다.

 

이 곳에서는 인간적인 대접을 받기로 약속되어 있어 자못 기대가 된다.

 

이곳에서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제법 높은 지위에 있는 분이 오늘 내일 2일 동안 이곳 역에서부터 온 종일 가이드하기로 되어 있고 오늘 저녁은 그 집에서 자기로 되어 있으니 실로 얼마만에 한국인 가정에서 자보는 셈인가?

 

바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저기 철로 끝쯤에 아는 얼굴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다. ‘아이고 반가와라...’ 팔이 떨어질세라 악수로 인사하고, ‘그간 머리가 더 허얘졌네요’ 하고 형식 반 진심 반으로 인사한다.

 

헤어진지 한 1년 되었나? 우리 동호회원의 한 분으로 우리랑 자주 어울렸었지.

 

사람이 마음이 선하면 나이 들어서 그 선함이 얼굴로 나타난다 했나?

 

나이 들면 정말 얼굴을 속이지 못하나 보다.. 나보다 10살이나 더 위지만 아직 얼굴이 동안이고 히끗한 머리가 더욱 어울린다.

우선 아침을 역 구내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구내의 맥도날드에 들렀다.

 

맥도날드에는 우리 외에서 어느 한국 대학생들이 옆에 와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맥도날드 아침은 미국에서 많이 먹어보아 익숙해 있다. 계란 스크램블과 연한 빵. 오랫만에 먹어보니 이것도 맛있네. 하긴 유럽여행동안 식사가 어려운 점은 없으니까. 없으면 구내 빵가게 가서 쥬스하나 빵하나 먹으면 그걸로 충분하니...

 

옆에 대학생들은 강원도의 관동대학생이라 한다. 내 앞의 있는 분의 신분을 알고는 무척 어려워한다. 그리고 자기학교 교수님의 이름을 대며 안부를 물으니 더욱 안절부절한다.

 

간단한 그러나 배부른 식사 후 주차장으로 가니 새까맣고 멋진 벤츠260이 날 반긴다. 벤츠. 정통 독일차로 독일을 여행하게 생겼네..

 

오늘 내일은 완전히 날 마음대로 하세요.

 

난 이 곳에서는 전혀 사전 계획이 없으니 알아서 날 어디던지 데려가던지 말던지...

 

우선 무얼 보고 싶냐고 하길래 씨디를 사고 싶다고 했더니 차는 어는 상가길목으로 찾아 가고 차에서 내려 상가를 둘러 보았지만 오늘이 토요일이고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주 부분만 열려 있었고 그 중 한 가게에서 씨디를 팔고 있었으니 워낙 비싸 일찍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로 하고 인근의 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을 보기위해 발길을 돌리니 한국에서 온 보이스카웃 대원이 무척이나 많은 일행이 구석구석에서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강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다리를 지나 강 저편으로 가니 독일의 가장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다름 아닌 벼룩시장.

 

스위스 쮜리히에서 이런 벼룩시장을 본적이 있다.

모두 자기가 쓰던 것을 가지고 나와 마음대로 가격을 책정해 놓고 노천에서 팔고 있다.

 

물론 음식도 있고 온갖 고물상과 도저히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골동품들도 즐비하다.

 

먼 남미에서 혹은 아프리카에서 온 물건들도 있고 추운 나라에서 쓸 법한 물건도 즐비하다.

 

애들 노트와 연필까지 그대로 들고 나왔고, 유행이 지난 듯한 옷가지들..

 

솟 뚜껑까지 정말 가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만물이 강변에 가득 진열되어 있어 그 중 나의 관심사인 음악소도구에 눈길을 돌려보니 몇 개의 유명 레이블 클래식 음반과 팬 플류트가 눈에 띄어 깍고 깍아 내 놓은 가격의 반정도로 흥정해 구입했다.

 

안내자는 나보고 자꾸 지갑을 조심하라는 말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나는 수시로 지갑이든 호주머니를 확인했다. 정말 많은 것들을 사고 싶었지만 그 중 유별나게 내 구매욕심을 부추겼던 것은 아주 옛날 유성기. 일본의 빅터사에서 광고용으로 내 걸었던 사진의 그 유성기. 스피커 앞에 강아지 한 마리가 앉아 있던 그 물건 커다랗고 녹이 파랗게 슬은 원형 스피커가 달려 있는 축음기를 사고 싶어 몇 번 망설였지만 도무지 가지고 갈 방법이 없어 포기해야만 했다.

 

이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너무 지체할 수 없어 인근의 시청과 기타 명소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다음 간 곳은 시청으로 실제 집무를 보고 있다 하지만 관광객들을 위해서 관광코스가 별도로 준비되어 있다. 얼마되지 않는 돈이지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역대 시장의 초상화가 넓은 홀에 걸려있었고 가끔 시장이 이 곳에서 회의를 주관한다고 한다.

 

본인도 가끔 여기에서 시장주최의 회의에 턱시도를 입고 아주 근엄한 모습으로 참석한 적이 있다고.... 그러면서 자꾸 관청 사람들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 지금 본인의 옷차림의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조금 불경한 옷차림이라고 가능한 관청 사람들과 만나기를 회피한다.

 

그곳에서 얼른 나와 다음은 괴테하우스롤 갔다.

 

괴테가 잠시 머물렀던 곳마저 그가 쓰던 소도구 책상과 그 외 몇가지 만을 내 걸고는 괴테하우스라 이름 붙여 놓고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유럽인들의 관광사업에 대한 마인드가 무척 부럽기만 하다.

내가 문외한이라 그런지 별로 구경할게 없는 이 곳에 관광객들이 떼지어 몰려들어 왔다가 조용히 밀려 나간다. 그리고 바울 성당이라는 곳.

 

마을의 공회당 같은 이곳은 도무지 성당 같지 않고 이 곳에서 미사를 볼 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내가 여태 보아 온 성당의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다. 카톨릭에 대한 상식이 별로 없어 특별한 감흥이 없었기에 아쉬워 하기도 했다.

 

그리고 혹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상가들 문 열었나 가보자 하여 아까 그 시장터에 갔더니 많은 노천 장사꾼들이 온갖 독일 특유의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팔뚝만한 소세지. 그걸 어떻게 먹는지 모르겠는데 모든 가게마다 그 소세지를 팔고 있었고 간이 의자에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우리의 남대문 시장처럼 여유를 즐기며 오찬을 즐기고 있어 우리도 합류했다.

 

물론 과일도 무척 많이 팔고 있었지만, 음식 고르는 것조차 안내자에게 맡기니 독일 특유의 음식을 먹어보자고 한다. 아무렴 독일에 왔는데 독일 음식 먹어야지..

 

어느 가게 앞에 앉아 안내인은 주먹보다 더 큰 빵에 소세지를 넣은걸 주문하고 각각 하나씩 들었다. 소스는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가 보통 먹는 케찹과 좀 특이한 겨자가 있었다. 나는 겨자란 무척 매운 것이고 주로 회를 먹을 때나 냉면 먹을 때 매콤하게 먹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케찹을 주문했더니 겨자를 한 번 먹어보란다.

 

매웁다고 싫다 했더니 매웁지 않다고 자꾸 권하길래 못이기는 척하고 빵 사이에 끼운 소세지위에 조금 발라 한 입 베어 먹으니 어이구 이런 겨자 맛이 꿀맛이네. 겨자가 단 겨자도 있나?

 

그 다음에 듬뿍 발라서 겨자 맛으로 빵을 먹었다. 어찌나 맛이 있는지...

 

왜 음식 좋아하는 내가 이걸 미처 몰랐을까?

 

그 뒤로 귀국해서 이런 겨자에 맛들여 백화점의 수입상 코너에서 이 겨자를 사들여 요즘도 즐겨하고 있고, 맥도날드나 켄터키 치킨집 가면 꼭 이 겨자를 주문해 먹고 있다.

 

시장에는 예술의 나라다운 노천 행위예술공연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는 사이를 뚫고 앞으로 가서 보니 어느 긴 머리의 키큰 남자가 이상한 음악에 맞추어 땀을 뻘뻘 흘리며 이상한 포즈를 계속 취하고 있다. 마치 우주를 자기가 혼자 떠 받드는 듯한 포즈와 비행기처럼 몸의 형태를 만들어 오랫동안 가만히 유지하기도 하고, 마치 인도의 요가처럼 그런 고행을 사람들 틈에서 계속 공연하니 여기 저기서 카메라가 터지고 동전도 던져진다.

 

시간이 바빠 오래 서 있지 못하고 씨디를 사러 큰 가게에 들어서니 가격이 우리나라 씨디의 1.5배를 호가하길래 많이 보지 못하고 그냥 나와 버렸다. 물론 원판이라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씨디 제작 기술도 이젠 나무램이 없기에 굳이 독일에다 비용투자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은 쾰른 대성당으로 가기로 하고 휴일의 한적한 길로 접어들어 곧 고속도로로 들어서고 차는 말로만 듣던 독일의 대표적인 명소인 아우토반을 시원하게 진입해 들어갔다.. 속도를 내니 계기는 금방 시속 180 키로, 그래도 우리 차를 앞지르는 차들이 부지기수다. 하다못해 모터사이클조차 시속 180 키로 이상으로 달리고 있다. 그리고 시속 200 키로, 추월하는 차는 BMW, PORSCHE정도이다. 차위에 사이클을 두대씩 올려놓고 하이킹을 떠나는 여유를 즐기는 독일 민족들이 무척 부럽다. 아우토반은 통행료가 없고, 시속제한은 물론 없다.

 

그러니 자연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 속도에 뒤처지는 자동차는 경쟁에 살아남지 못한다.

 

옆에 노견옆으로 한국현대 쏘나타가 빌빌(?) 거리고 약 140 키로로 달리고 있다. 옆에 건물이 없어 속도감을 못 느낄 정도로 편안하고 어쩌다 100키로 정도로 속도를 줄이면 마치 우리 나라의 정체도로를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고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보다는 차가 좋아서인지 가속할 수록 더 편안해지고 운전석은 물론 옆좌석에도 에어백이 달려 있어 안전은 틀림없을것 같았다.

 

그리고 좌석의 움직임 또한 아주 여러가지 각도로 움직일 수 있도록 좌석모양의 그림이 있고 그 그림을 손가락으로 조절하면 저절로 내가 앉은 좌석이 움직여 실로 좋은 차는 다르구나하는 감탄도 했다. 물론 과거 해외생활 시절에 이런 외제차를 안 타본 것은 아니지만 새삼 눈에 이 것 저 것 보이는 것은 고속도로가 특이해서 그러지 않았나 생각된다.

 

과거 중동시절에 서버밴을 몰고 시속 180 키로 로 달리기를 자주 하였고 어떤 때는 미제 시보레를 오랫동안 몰아보고 또 일제 토요다 크레시다를 몰고 가다 큰 사고가 났지만 차가 좋아서인지 아직도 내 몸이 성한 것을 보면 차는 과연 좋은 것을 써야 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아우토반은 동서로 달리고 있고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흔히 볼수 있는 급정거한 스키드 마크는 보기가 힘들다. 간혹 보이기도 했지만....

 

고속도로의 주변경관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끝 없는 밀밭과 추수를 하였는지 황금물결의 벌판이 한 폭의 그림같다. 건초를 커다란 카페트 말듯이 크게 말아 군데 군데 모아 놓았다. 저 건초는 어디에다 쓰나.

 

쾰른으로 가는 길에 안내자도 잠시 쉴 겸 어느 명승지 한 곳을 들르기로 하고 잠시 아우토반을 빠져나와 벤츠는 어느 한적한 곳으로 접어 들고 독일식으로 생각하면 많은 차들이 주차장에 편하게 서 있다. 차에서 내려 풀냄새 가득 풍기는 오솔길을 따라 조금 걸어 들어가니 거대한 동상이 서 있고 그 앞에 푸른 강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그 동상이 뭐라드라. 과거 독일 통일을 이루었던 유명인사로 고색창연한 동상에 온갖 새들의 실례로 잔뜩 더럽혀져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벤츠는 쾰른 대성당으로 향하기로 하고 무척이나 먼길을 아우토반으로 드라이브해서 갔지만 주위 풍경이 워낙 멋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두 사람을 태운 벤츠는 쾰른 대성당으로 가기전에 아우토반을 한 참을 달리다 라인강변으로 접어 들었다.

 

과거 외국 생활시에 일과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조각 맞추기

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조각의 수량이 많을수록 그리고 그림이 멋있을 수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라인강변의 그림이었다.

 

특히 고성의 아름다움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지금 그 그림속을 내가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묘한 상상을 하면서 벤츠는 기분좋게 라인강변을 달리고 있다.

 

주말에다가 2차선 도로이지만 오고 가는 차는 과히 많지 않았고 교통 또한 전혀 붐비지 않아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달리는 드라이브는 우리의 경춘가도랑 너무 비교가 되었다.

 

가히 상상하기도 싫은 한국의 교통지옥은 전국에 걸쳐서 안 막히는 곳이 없으니...

 

외롭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주유소와 작은 집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고성들이 계속 펼쳐지고 더욱 관심을 끈 것은 라이강변의 포도 밭들...

 

강변 양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포도밭들이 8월 독일의 진한 태양열을 가득히 머금고 셰계의 미식가들의 입 맛을 돋구기 위하여 익어가고 있었다.

 

한가지 의심스러운 것은 미국같이 넓은 평원에 있는 게 아니라 기계적인 영농이 어려울테고 분명 사람손으로 일일히 포도밭을 가꾸어 나갈텐데 그 많은 포도밭들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궁금하였지만 답변은 모두 사람이 한단다.

 

그렇구나.

 

독일 사람들이 근면한 이유.

 

그들은 일을 안 할 수가 없는 환경이다. 저 많은 포도밭을 모두 일일히 손으로 경작해야 하니.....

 

로렐라이 언덕.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실제로 로렐라이의 전설은 노래에 불과하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야기
가슴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구름걷힌 하늘 아래 고요한 라인강
저녁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아주 평범한 언덕에 아무것도 없었으나 자꾸 외국인이 와서 로렐라이언덕이 어디냐고 찾는 바람에 관광목적으로 최근에 그 일대를 그럴듯하게 꾸며 놓았단다.

 

강 한복판에 인어동상을 세우고 언덕위에는 조그만 카페와 기념품 가게 그리고 넓은 주차장을 만들어 놓고 언덕위에서 라인강을 볼 수 있도록 조그만 전망대를 마련해 놓았다.

 

사람들이 무척 뜸하고, 거기에도 역시 한국관광객이 있었으며, 외국인도 보였다. 매번 이런 외국관광지를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과 너무 대조적인게 한국은 이런 유명장소만 있으면 길거리에서 불량식품같은 먹거리를 파는 장사꾼들이 주변 환경을 더럽혀 놓는데 외국 특히 미국이나 유럽쪽은 그런 환경이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더라도 음식을 파는 곳이 없다. 특히 지정된 장소 이외에는...

 

그러니 그 물이 얼마나 맑은지...

 

이곳도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음식점은 찾아볼수가 없다. 한국의 관광시설에 대해서도 이 원칙은 꼭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 잠깐 얘기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버렸다.

 

공기 맑고 바람이 솔솔 부는 라인강 언덕에서 노래와 여행의 피로를 바람으로 말끔히 씻은 후 다시 라인강변으로 달리다가 진기한 풍경을 보았다.

 

반대편 차선에서 말 두필이 끄는 이륜마차가 신혼커플을 태우고 천천히 라인강변을 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마부도 중세 복장을 하고 있어 이채로왔고, 더욱 의아한 것은 그 뒤를 따르는 차들이 앞에 몇 대는 신랑 신부의 가족이나 친구들인 듯 차에 신혼행진을 위한 차들임을 나타내고 있었으나 그 뒤의 죽 늘어선 차들은 이 결혼식과 전혀 관계없는 이들의 차 같은데 아무도 빨리 가라고 경적을 울리거나 추월하는 차도 없었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이윽고 도착한 곳은 쾰른 대성당... 세계에서 크기로서 둘째라면 서러워 할 만큼 크다고 한다.

 

웅장하다 못해 어마어마한 성당이 새까만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도무지 올려다 보아도 끝이 없고 성당의 모습을 가까이 카메라에 담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워낙 크고 높아 사진을 제대로 담을 수 가 없었다

 

조금 멀리서 사진을 한 방 찍고, 들어가고자 했으나 워낙 관광객이 많아 들어가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또 배가 출츨하길래 인근 맥도날드에 들어가 앉으니 금새 동양인 피부를 가진 가족이 있어 반가움에 눈 인사를 하고 같이 합석하니 우리 민족.

 

독일의 다른 도시에서 가족과 잠시 관광왔단다.

 

우리 안내인과 이것 저것을 물으니 그 쪽 회사의 직원들과 우리 안내인과도 잘 아는 사이라 한 참을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얘기를 들으니 유럽에 나와 있는 한국무역회사 직원들은 이렇게 가끔 차 하나 가지고 전 유럽을 여행다닌다고 한다. 부러움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하긴 비자낼 필요도 없고 그저 차만 타고 어디든지 가면 되니 휴일 날 부지런하기만 하면 유럽 체류기간동안 일생의 가장 좋은 경험을 하게 된단다. 마치 우리나라의 경기도 충청도를 마음대로 다니는 것과 같다.

 

미국과는 달리 밤에도 신변안전도에 있어서도 걱정 없고 전 유럽인들이 친절하고 외국인과 벽이 없어 대화도 어렵지 않고 안내 시스템도 잘 되어 있으며 숙박 시설 또한 여러 가지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어 여행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단다.

 

또 이들은 대개 불어, 영어 독어 등을 자유자재로 하기에 언어 문제도 여행자가 한 가지만 잘 알고 있으면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주위는 깨끗하였으며, 한국에서 늘 있는 흔한 노점상들도 하나 없다. 사람만 모이면 늘 먹을 것만 생각하는 우리네 민족의 의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사람들은 그저 조용히 왔다가 가지고 가는 것은 사진과 추억 뿐이다.

 

좋은 여행을 기약하고 우리는 그대로 나와 이제 안내자의 집을 향하여 먼 길을 달렸다.갈 때와 마찬가지로 오는 길 또한 주위의 모든 풍경이 편안함 그리고 평온 그 자체였다.

 

오는 차 안에서 그간 피로가 많이 쌓인 것이 폭발하여 코피가 나는 것을 겨우 참고...

 

차는 프랑크푸르트의 어느 한적한 주택가로 들어가고 길에 사람하나 없는 골목으로 들어가다가 주택가에 위치한 주유소에서 안내인이 손수 차에 기름을 넣었다. 그런데 이 주유소가 이상한 것이 주유소에서 술을 팔고 있지 않는가?

 

아니 주유소에서 술을?

 

이유를 물으니 대개의 동네 사람들이 퇴근길에 집에 들어가다가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고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 때 즐길 술을 이 곳에서 구입한다고 한다.

 

식사에 술이 빠지면 뭔지 허전하다는 민족이라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특히 포도주는 손님 접대에 필수품이라 어떤 고급 포도주로 손님을 접대하느냐에 따라 손님의 등급을 매긴다고 한다. 안내자도 연신 나에게 오늘 저녁에 귀한 포도주를 구입해 놓았다고 좋은 저녁식사를 기대해도 좋다고 할 정도이니....

 

벤츠는 어느 조그만 정원이 딸린 집으로 들어가 차에서 버튼을 누

르니 차고의 문이 위로 스르르 열리고 나는 배낭을 꺼낸 후 주차시키기를 기다렸다.

 

아직 부인이 안 들어 왔는지 문은 잠겨있었으나 부인도 내가 잘 알기에 전혀 부담이 없는 집이다. 집은 정통 유럽식풍으로 아담한 모양에 2층집이었다.

 

오늘 아침 샤워도 못했으니 양말은 냄새가 풀풀나고 머리는 꽤좨좨하여 얼른 샤워부터 요청을 하여 2층으로 안내를 받았다. 이 집에 학생이 하나 있는데 지금 영국에 놀러 갔단다. 그 학생방에 여장을 풀고 샤워실에서 오랜만에 깨끗한 환경에 느긋한 샤워를 즐겼다.

샤워 후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반가운 얼굴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그 분의 부인이 무척 오랜만이라며 먼 길 다녀 온 식구 같이 반갑게 손을 내민다. 식사가 준비될 동안 집을 한 바퀴 휘 돌아보고, 정원을 잠깐 보니 잔디가 잘 정돈되어 있어 야외에서 식사를 하고픈 충동이 일었다.

 

한 참을 고국소식을 전하느라 수다를 떨다가 식당에 앉으니 제일 먼저 귀한 손님이 오느라 귀한 포도주를 준비했다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포도주를 따라 준다.

 

향내가 그윽한 포도주가 입 안에 가득하고 그것보다 더욱 좋은 냄새는 흰 쌀밥과 구수한 김치찌개가 더욱 입맛을 돋군다. 너 본지 오래로다. 싱싱한 야채와 토속적인 한국음식들이 상에 그득하다. 내가 집을 떠나 온지 오래인걸 아는지 순전히 한국음식으로만 준비했단다.

 

밥을 두 그릇이나 비워 가면서 접시의 반찬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후식으로 과일에 커피까지 한 잔하니 여행의 노곤함이 갑자기 퍼 붓는다. 오랜만에 만나 많은 얘기를 듣고 싶을 텐데 내가 너무 피곤한 기색을 보이니 아쉬운 눈치지만 내가 잘 방으로 안내한다.

 

오늘은 꿈속의 고향을 찾아 배낭여행을 떠났다.
 
 

독일이야기 (2)

 

다시 독일에서의 2일째 여행길.

 

하이델베르그...

 

오랫만에 좋은 침대에서 푹 잠을 자고 난 뒤라 조금 늦잠을 잤는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아침인사.

 

아침에 비록 간단하나마 푸짐한 식사를 즐기고 주일이니 예배는 봐야 하기에 한인교회를 우선 들렀다. 도심지의 낮은 빌딩안에 위치한 한인교회는 2부예배를 보는지 8시 예배는 우리를 포함해 모두 5명이 목사님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지성으로 하루쯤 쓸 경비에 상당하는 액수만큼 감사헌금하고.. 하이델베르그로 벤츠를 달렸다.

 

차를 타고 달릴수록 빠져드는 주위의 경관에 감탄하고 무척이나 먼 길을 달려 어느 주택가쪽으로 들어서니 강을 끼고 하이델베르그의 고성이 보인다.

 

차를 아래 주차장에 세우지 않고 성의 위쪽으로 올라가 어느 골목길에 간신히 주차하고 편하게 성으로 내려갔다. 이 길을 걸어 올라오는 것도 힘든 일이라고 하면서...

 

사람하나 지나다닐 만큼의 뚫린 돌담을 통과하니 깨끗한 잔디밭이 보이고 마당 구석에 큰 조각품과 분수대가 보인다. 그러나 시야는 곧 고색 창연한 성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하이텔베르그

 

거의 전 세계의 민족들이 이곳에 찾아들고 있었다.

 

많은 무리의 동양인, 백인, 그리고 소수의 흑인들.

 

남미풍의 사람도 많았고, 한국말도 많이 들렸다. 특히 이 곳은 노인의 관광이 많은게 특징이었다. 겨우 걸음을 걸을 정도의 기력을 가진 노인 부부들이 많이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돌담에 기대어 한가로이 사람구경을 하고 있고 성이 과히 크지 않아 조그만 공간에서 사진 찍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성은 일부가 전쟁때문에 무너져 내려앉은 채로 오랜 세월동안 그대로 있어 파란 이끼가 끼어 있고 성의 벽돌은 빨간 벽돌 색갈로 아주 특이한 돌로 빚어 만든 것이라 한다.

 

우선 입구를 들어가자 바로 눈앞에 포도주 통이 있다는 방에 들어가니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포도주 오크통이 옆으로 거대하게 누워 있고 그 통을 돌아 볼 수 있도록 나무 계단이 놓여 있어 한 바퀴 휘 돌아보니 포도주 통은 물론이고 온 사방에 전 세계의 언어로 낙서가 쓰여 있고 크기는 폭만 사람키의 두 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높이는 한 세배쯤 되나 혹은 더 되던가?

 

방의 한 쪽 구석에서는 이 곳을 입장하는 관광객들에게 포도주 한잔씩을 팔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 포도주 한잔 값에 잔 값까지 포함되어 있어 누구나 한 잔씩하고 기념으로 그 잔을 가지고 간다. 포도주를 좋아하는 민족이라 어느 가게를 들어가도 포도주병이 제일 눈에 띄인다.

 

사람들의 틈을 헤집고 밖으로 밀려나와 성의 돌담에 기대어 저 멀리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리고 강가에 아름다운 집들이 그림처럼 놓여져 있고 어디를 보아도 이 유명 관광지에 교통난은 없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평화롭게 흐르는 강물에 나룻배가 정박해 있고 강물은 깨끗하기 그지없다.

왜 이들은 하수도로 지저분한 물을 버리지 않는가?
왜 인근의 공장에서는 폐수를 이 강으로 그냥 버려 버리면 생산단가가 낮아 질텐데 왜 그렇게 안할까?

 

강물이 있으면 사람들이 배를 타고 싶어하고 유람선을 영업종목으로 해서 많은 돈을 벌수 도 있을텐데.. 시내에 버려진 비닐 봉지들이 바람에 날려 강물에 떠 내려가면 강물이 오색으로 아름다울텐데...

 

낚시꾼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람 뜸한 이곳에서 낚시대를 놓고 있으면 고기 잡는 맛이 새록새록 날텐데...

 

스위스의 주택가를 흐르는 조그만 실개천이 얼마나 맑은지 바닥에 자갈이 다 보일 정도로 보였던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하이델베르그 성을 보고 내려와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유명한 맥주집을 찾기로 한다. 창문이 환히 열려져 있어 누구나 들여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맥주집은 조금 어두컴컴하지만 그 안이 요란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요란한 색깔로 치장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진 엽서 등이 온 벽에 그득함을 본다. 한가롭게 그 안을 들어가 볼 수 있는 처지가 못되어 대충 안을 보고 조금 옆에 있는 광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미 해가 한 낮에 있는 점심때라 사람들은 요기를 위하여 광장에 가득 널려 있는 의자에 가득 앉아 있다. 무엇인가 더 보고 싶어 발 길을 옮겼지만 마땅히 볼 것이 없다며 광장 옆에 있는 성당으로 안내한다. 성당 안에는 하이델베르그의 각종 관광 서적과 사진 그리고 엽서들을 팔고 있다. 역시 영어 설명과 사진이 곁들인 책을 하나 샀다. 나중에 기행문을 쓸 때 참고하기 위해...

 

성당을 나오니 어느 상점이 유리문에 낯 익은 합창단의 모습이 걸린 포스터가 보인다. 선명회 합창단의 독일 공연. 이곳에서 우리 나라 유명 합창단의 공연 포스터를 보니 무척 반갑다. 그리고 그 옆에는 4인조 밴드가 열심히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때가 때인지라 시장기도 돌고 광장의 노천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리속에 끼고 싶어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자는 제의를 이런 곳이 좋다며 먼저 찾아 들어갔다. 어제 먹은 소시지와 햄버거가 너무 맛있어, 오늘도 예의 그 맛을 즐겨 보기로 한다.

에이프런을 걸치고, 주머니에는 메뉴판과 커다란 돈 지갑을 든 웨이터가 분주히 식탁을 오가면 주문을 받고 즉석에서 계산을 해 준다. 역시 독일 소시지는 이름이 날 만하다.

 

독일 소시지에 대해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친구가 독일로 유학을 가서 공부하던 중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 아가씨를 만나 결혼하고 한국에 데려왔는데, 아내가 임신 중 먹고 싶은 것들, 즉 독일 소세시, 훈제 돼지고기 등등 모두 독일에 있는 음식들이기에 친구는 어쩔 수 없이 국내의 유명 호텔들을 찾아다니며 아내의 입맛을 채워주었다고 고생담을 얘기하는 것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하이델베르그를 끝으로 유럽배낭여행의 마무리를 짓고, 다시 푸랑크푸르트의 중앙역으로 돌아가는 긴 드라이브길에 올랐다. 역으로 가는 도중 아직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의 예약이 안 되어 있어 계속 핸드폰으로 연락해 보았지만, 아직도 컨펌이 안되어 불안한 맘으로 중앙역에 도착해 독일에서 가이드해 준 고마운 분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독일을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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