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폭풍후 강화 나들길 교동 다을새길 (2012. 9. 1)

carmina 2012. 9. 2. 00:49

 

 

 

2012. 9. 1

 

종일 걷고 집에 돌아오는데 버스 창 밖으로 거센 비가 쏟아지지만

우산이 없어도 전혀 걱정이 안되는 것은

이미 매 몸이나 옷이 모두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 상태이니

아무리 비를 맞아도 땀보다는 비가 시원하고 좋을 것이라는 기분 때문이다.

 

한 달 만에 찾은 강화 나들길. 그래도 걷기에 대한 책까지 발간한 나는

자칭 타칭 걷기 매니아인데 아무래도 걷기 매니아의 자격에 부족한 가 보다.

적어도 매니아라 하면 모든 상황에서도 좋아하는 것을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데 스스로 부끄럽다.

 

강화 교동도는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다. 날씨가 궂어도 안되고,

바닷물이 들어 오고 나가는 때에 맞추어 운항시간이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일 년에 겨우 2 ~ 3 번 정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서운할 것 같다.

 

또 강화터미널에서 교동도 가는 배를 타는 창후리 행 버스도 드문 드문 다니기에 시간을 맞추어 가야 한다.

오랜 만에 찾으니 못 보던 얼굴들이 많다. 예고 없이 찾아 온 나를 반가워 하는 나들길 매니아들.

 

교동도까지는 겨우 20분 정도 운항이지만 배가 떠나면 갈 방법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온다 해 놓고 조금 늦어서 배를 타지 못한 사람이 있다.

 

교동도로 가는 배 안에서 배를 싸고 도는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 주며

그 날카로운 두 눈을 사진에 담아 볼려고 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그렇게 노력하다가 배가 도착하여 결국 포기. 언젠가는 잡아 보리라.

 

교동도에 내려 다을새길로 가는 길을 걸으니

육지에서는 이미 수 십 여 년 전 사라진 세발 트럭이 내 카메라를 유혹한다.

이런 차는 동남아나 아니면 중국 지방이나 가야 볼 수 있는데

교동도는 아직도 몇 십 년전의 모습들을 볼 수 있어 좋다.

길을 가는데 지난 1 주간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두 개의 태풍으로 여기 저기 낙과들이 가득하다.

아직 익지도 자라지도 못한 풋 감이 가지 째 떨어지고,

밤송이들이 껍데기가 저절로 벌어지기 전에 땅에 떨어져 수북하다.

하나를 등산스틱으로 벌려보니 새하얀 색깔의 밤이 그대로 보인다.

 

태풍을 철저히 대비한 어느 농가의 배나무에는 모기장으로 칭칭 둘러 매어 손실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작은 나무니까 가능하지 큰 감나무나 밤나무들은 거의 불가능하다.

 

길 가의 집들에 인적이 없다. 대문마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지난 번 집 앞에 할머니가 나와 계시던 집 대문도 굳게 닫혀 있다.

태풍 때문에 마을을 떠난 건가? 아니면 잠시 뭍으로 마실 나간 것인가?

 

마을을 지나 숲으로 들어가니 평소 다니던 작은 오솔길도 모두 잔디가 무성하게 자라

어디가 길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오솔길 옆에 넓은 논의 벼들도 태풍에 피해를 입어 자다가 부시시 일어나

아줌마의 머리칼처럼 이리 저리 질서가 없이 헝클어져 있다.

 

최근 며칠간 우리가 가는 길에 인적이 없었던지

도로에 바람에 떨어져 버린 작은 가지들과 돌들이 치워지지 않은 채

길 가에 그대로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다.

숲 길로 들어가니 태풍의 참상은 더 심하다.

나무에서 떨어 진 잔 가지들이 산길에 흩어져 있어 계속 잔 가지들을 밟으며 지나가야 했다.

 

그러나 태풍은 모든 것을 파멸시킨 것 이외에 자연에게 다른 선물을 주었다.

여기 저기 수없이 보이는 버섯들. 먹을 수 있는 버섯인지 혹은 독버섯인지 모르지만

버섯들이 무척 크게 자라고 작는 버섯들도 무수히 많이 보인다.

복사지 처럼 하얀 버섯도, 주홍색의 커다란 버섯도 넓적한 버섯도 지천에 널려 있다.

 

나들길 벗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작은 쉼터의 벤치에도 길 벗들보다

바람에 떨어 진 나뭇가지들이 먼저 자리 잡고 앉아 있다.

그간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없었던지 벤치 옆에 산초열매가 가득 열려

사람들이 간식을 먹는 것도 잊은 채 산초열매를 따느라 정신이 없다.

 

잔가지들이 가득하게 떨어진 산길을 걷는다.

평지로 된 오솔길도 비가 많이 내려 골이 패어 있고 아직 비에 젖어 있지만 걷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소나무 숲을 지날 때는 비에 젖은 소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코로만 들어 오는 것이 아니고

온 몸의 피부에 있는 숨구멍으로 통해 들어오는 것만 같다. 

 

나무들의 밑둥이 요 며칠 동안 비 때문에 이끼들이 가득하다.

왜 나는 이런 이끼만 보면 좋아할까?

나무에 끼는 이끼는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그 곳에 있으면 마치 평생 먹어 보지 않는 보약을 먹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태풍과 비바람의 리듬에 맞추어 나무들이 춤을 추면 온갖 것들을 바닥에 쏟아 놓고

때로는 완전히 바닥에 쓰러져 버린 나무도 있다.

그런 나무들을 오늘은 넘어 갈 수 밖에 없다. 너무 많이 쓰러져 있어

우리 일행이 20명이 넘지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그래도 가끔 완전히 길을 막고 있는 것들은 옆으로 밀어 놓기도 하며 진행해야만 했다.

 

축축한 숲을 지나 멀리 교동향교가 보인다.

교동향교로 가는 길도 숲이 너무 우거져 향교로 가는길을 찾지 못할 정도이다.

지난 가을에 쓸쓸하기만 했던 향교가 오늘은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첫번 건물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앉아 있다.

그 중 한 분이 마당으로 내려 오면서 우리를 반기고

오늘은 특별히 초하룻날이라 향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날이라 한다.

평소 잠가 두었던 대성전에는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제사 준비를 하고 있고

그 옆의 건물도 보여 주겠다며 녹이 슨 자물쇠를 열어 우리에게 내부를 보여 준다.

 

그 안에는 이 향교에서 모시는 공자를 비롯해 여러 선인들의 이름이 써 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익히 아는 위인들, 이황, 이이, 조광조, 정인지 등가만히 보니 모두 대학자들이다.

 

오래 세월 사람들의 때가 묻은 툇마루에 앉으니 기분이 좋다.

나도 그 역사 속에 한 순간이 되어 있다.

 

향교 앞의 커다란 은행나무에서 이번 태풍에 떨어진 설익은 은행알들이

보기에도 처참할 정도로 잔디밭에 가득 떨어져 있어 안타까움만 더한다.

 

향교를 나와 숲으로 가다가 한적한 아스팔트쪽으로 나오니 어디선가 구성진 염불소리가 들린다.

화개사로 가는 아스팔트 언덕길에 천천히 올라가니

여기 저기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있고 화개사로 올라가는 계단에

흰 광목으로 마치 주단같이 덮여 있고 그 흰 광목은 사람들이 가득 모여

염불을 드리고 있는 절로 이어진다.

우리의 접근을 보고 있던 젊은 사람들이 나와 오늘은 백중기도를 하는 날이니 조용히 지나가 달란다.

그리고 광목위로 지나가지 말아 달라고 해 일부러 광목을 피해 빙 돌아 다시 길로 나왔다.

 

이제 화개산으로 올라간다.

화개산으로 올라가기 전에 리더가 산으로 올라가지 않고 먼 길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산을 올라갈 것이냐 묻기에 두말 않고 산길을 택했다.

어차피 힘든 산행이다. 비록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도 있지만 모두 산으로 올라 가기 시작한다.

지난 번에도 한 번 와 본 산이기에 이 정도야 하고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요즘 한 달 동안 거의 운동이 없어 더 힘들다. 아무래도 없는 시간을 내서라도 운동 좀 해야겠다.

 

오늘 따라 왜 이리 배낭이 무겁게 느껴지는지 겨우 정상을 올라가니

미리 온 사람들이 정자에서 이미 한 판 벌이고 있다.

최근에 우리 무리에 동참한 직업군인이 무거운 캔 맥주를 많이 가지고

이 곳까지 올라와 모두를 행복하게 해 준다.

 

오랫동안 다닌 모임이다 보니 거의 빠지지 않는 분이 나들길 토요 도보용 플래카드를 가지고 와

다른 대규모 산악회처럼 사진도 찍었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 이 곳에 올라오면 볼 수 있는 북한도 볼 수가 없다.

 

화개산에서 내려 가는 길은 완전히 잡풀들로 덮여 있어 길의 흔적이 없다.

효자묘가 있는 곳도 너무 수풀이 우거져 오늘은 흔적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올라 가기를 포기한다.

내려 가는 길에 커다란 나무 하나가 길을 막고 있어 남자들이 모두 달려 붙어 나무를 옆으로 치워 놓았다.

아무래도 비가 그치면 길 정비가 필요할 것 같다.

 

내려 가는 길도 비가 많이 내려 길들이 골골이 패어 있고

돌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어 걷기에 조금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길이 무너지지 않아 다행이다.

오랜 세월 버티어 온 황토와 돌로 만든 습식 사우나는 여전히 건재하다.

 

숲 길이 끝나는 지점 쯤에 어느 집이 새로 짓고 있는데

창문으로 꼬마 아이가 두 명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며 아는 체를 한다.

좀처럼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에서 사람들이 내려 오니 반가웠나 보다.

 

마을에 내려가니 매어 있지 않은 백구 두 마리가 길을 막고 사람을 반기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다리 하나가 없는 장애견이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멀리서 보고 두려워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교동은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이 몇 십 년 전의 동네 모습이다.

60년대의 동네 모습들과 간판들. 여기는 아무래도 문명이 들어오기를 거부하고 있는 곳인가 보다.

서울 도심을 거닐면 보이는 무수한 외국어 이름의 간판도 이 곳에선 보기 힘들다.

 

시골 마을의 식당에서 나오는 도가니탕은 완전히 도가니 판이다..

시골 인심인가? 도심 식당 같으면 몇 점 먹다 보면 멀건 국물만 남는데

여긴 뚝배기 그릇에 가득한 도가니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다

 

점심을 포식하고 이젠 월선 포구로 향하는 긴 길을 가야 한다. 햇빛이 뜨거워 진다.

사람들이 지쳐간다. 마을에 있는 대추 나무는 아직 푸른 대추들이 포도송이처럼 열려 있고

밤나무들은 그렇게 많이 떨어지긴 했어도 여전히 밤송이들은 탐스럽고

긴 논 뚝 길에 큰 키의 수수가 익어가고 있다.

어느 논은 바람에 벼가 쓰러져 보기 않좋지만 어느 논은 전혀 쓰러짐 없이 건재하다.

일찍 심은 벼들은 벌써 많이 익어 낟알이 축 처지고 있다.

 

앞서가다 보니 어쩌다 일행들과 헤어져 몇 명이 같이 걷게 되었는데

긴 논 뚝을 지나 바닷가 뚝 옆의 숲길로 가게 되어 있는데 양쪽에 흰 밧줄로 가이드를 해 놓았다.

런데 최근에 이 곳을 다닌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저절로 만들어진 길들은 모두 키가 큰 잡풀들이 길을 막고 있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다. 이 길로 가야 한다. 길이 없다.

그냥 마치 자동차 트랙처럼 길을 갈 뿐이다.

그러다 문득 장난끼가 발동한다.

누군가 이 길을 지나가는 우리 일행이 발에 걸려 넘어지게  무성하게 자란 풀을 양 옆으로 묶어 놓았다.

넘어져도 워낙 풀이 많아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갈대밭과 잡풀들의 길.  좋다..너무 좋다

언제 다시 이런 길을 걸어 볼까? 흔치 않은 경험이다.

혹시라도 뱀이 있을까 걱정은 했지만 그런 것 무서우면 이런 숲길을 걷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 산을 올라 갈 때 뱀을 본 사람도 있다 하는데 이 곳은 없다고 가정하자.

뱀이 있어봤자 실뱀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 큰 놈이 하나 숨어 있었다.

뱀 말고 커다란 고라니 한 마리가 내 발 소리에 놀라 후다닥 도망간다.

 

그렇게 긴 시간을 사람들과 어울려 걸었다.

어느 길 하나 재미없는 길이 없을 정도로 모든 길이 좋았다.

태풍 후의 엉망진창의 길이 이렇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줄 줄이야..

 

인생을 살면서 내가 견딜 수 없는 태풍이 올 때도 있겠지.

그러나 그것도 어쩔 수 없이 와야 하는 것이라면 즐기자.

군 시절에 비지땀이 빌빌 나오는 대단히 힘든 얼차려를 받으면서도 혼자 조용히 흥얼거렸더니

같이 얼차려 받던 동료가 혀를 휘 둘렀다. 그렇게 인생을 살련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 모습이나 내가 살고 싶은 인생관은 변함이 없다.

조금은 나이들어 보이고 체력이 이전보다 조금은 힘들긴 하지만

부지런하게 살면 조금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 보이리라.

 

나는 삶의 매니아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