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 나들길 1코스 (2012년 가을)

carmina 2012. 10. 4. 23:32

 

 

내 인생의 황금기를 걷는다.

 

가을의 멋은 온 세상을 황금색으로 만드는 신비로움에 있다.

10월 개천절 휴일, 넓은 김포벌판이 모두 황금색으로 덮이어 있고 그 위를 구름조차 너무 하얘서 투명하게 보이는 가을 하늘에 철새들이 이리 저리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다.

 

넓어진 김포 가도를 주행 중에 클래식 음악 에프엠에서 진행자가 하는 말. 혼자 여행은 별로 추천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쁜 꽃을 보아도 누구에게 얘기해 줄 수 없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같이 맛있게 먹어 줄 수 없으니 혼자 여행은 별로 권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나는 그 말에 즉각 라고 대답한다.  이쁜 꽃을 보면 꽃과 대화할 수 있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 나 혼자 이런 음식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행복감을 느낀다. 난 정상이야 비정상이야? 여기에 옳고 그름은 없다고 본다.

 

시외터미널 근처의 조산평 벌판은 누렇게 익은 벼 이삭들이 온통 낫을 기다리고 있다. 길이 막히지 않아 평소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좌석을 길게 눕혀서 킹스 싱어즈의 아카펠라 송 ‘You are the Music’이 경쾌하게 내 좁은 공간을 기름지게 한다.

 

명절의 마지막 휴일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적은 길벗으로 출발한 강화 나들길 1코스. 비록 같은 코스를 몇 번을 걸어도 계절마다 다른 모습이니 싫증이 나지 않는다.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미리 그려보지 않아도 자명한 사실은 온통 황금색의 대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동문 앞 벤치에는 동네 아주머니가 멍한 눈으로 가을을 보내고 있고 아주머니 발 앞의 무성한 토끼풀도 이제 스스로의 무성함을 자랑할 날도 얼마 안 남아 마지막 남은 푸르름을 맘껏 내 놓고 있다. 동문을 지나 담 안에 있는 감나무에서 잘 익은 감들이 주렁 주렁 열려 있고 어느 집 옥상에는 감을 꿰어 널어 말리고 있는 골목을 지나  600년 수령의 느티나무를 보는 순간 무언가 이상해 보인다.

 

이번 태풍에 피해를 입었다. 작은 가지 몇 개가 부러진 것이 아니고 커다란 나무 줄기 하나가 마치 팔이 어깨부터 찢어져 나간 것 처럼 거의 높이 1m 폭이 50Cm나 되 보일 정도로 커다랗고 보기 흉측한 속살을 내 보이고 있다.

 

그런데 그 찢어진 부분 안에 이상한 응고된 갈색의 액체 덩어리가 보인다. 느티나무 밑에서 고추를 다듬던 할머니 두 분이 저게 나무의 수액이라고 말해 주고 나서야 새삼 그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 사람도 상처나면 피가 나는데 나무라고 피가 없을까? 저렇게 커다란 덩어리가 피처럼 맺혔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아무래도 하루빨리 임플란트처럼 상처를 치료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지은지 100년이 넘은 우리 나라 최초로 건축된 성공회 강화성당의 내부를 처음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열려 진 문 안에 어떤 분이 성당의 역사를 많은 사람을 앞에 두고 설명을 하고 있다.

 

성당의 내부가 천정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유럽의 성당에서 본 모습처럼  양 옆의 기둥이 무척 비슷하게 보인다. 천정은 전통 두개의 천정을 이용한 한옥양식이지만 자연채광 시스템을 이용하여 빛이 자연적으로 제단을 밝히도록 하는 서양식을 따른 것이 동서양의 양식을 절충하여 민심을 다독거리려 애쓴 모습이 보인다.

 

이 곳 성당도 태풍 3개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성당 옆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면서 오래 된 담을 덮쳐 담의 일부가 무너지고 말았다. 불과 태풍 몇 개에 이렇게 피해를 입었으니 지난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을까나.

 

북장대로 향하기 위해 가는 골목에 있는 집에 자신있는 문패 하나가 걸렸다. ‘행복이 가득한 집얼마나 행복이 가득하기에 저렇게 자랑스럽게 써서 밖에다 걸어 놓았을까? 지붕을 빨간 기와로 만든 멋스러운 집도 있고 고풍스러운 대문이 어울리는 집도 있다.

 

지난 2년간 보수했던 향교가 공사가 끝났는지 잘 정리되어 있지만 여전히 별로 정이 가지 않는다. 아마 향교라 함은 고풍스러움이 있어야 하는데 새로 지은 전통가옥들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몇 십년 몇 백 년 지나야 정이 들 것 같다.

 

향교옆 오래된 빨래터인 은수물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이 빨래터는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 이끼가 많이 낀 바위에 물이 흐르니 발만 닿으면 미끄러진다. 비록 물을 콸콸 쏟아내고 있지만 아무도 마실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 이젠 숲속으로 들어가 볼까? 북문으로 가는 이 길은 비스듬한 언덕을 올라가 5부능선 쯤의 나무 장대속을 걸어가는 기분이 좋다. 단지 길이 조금 짧은게 흠이랄까?  북문 앞에는 자가용을 타고 온 사람들이 관광을 하고 2년전 부터 시작된 북장대 올라가는 길의 공사가 이제 끝나 성벽이 잘 다듬어져 있고 돌 계단도 만들어 졌지만 돌계단 보다는 일부러 옆의 흙길을 따라 올라간다.

 

조금 힘들여 올라간 곳의 시야에 펼쳐지는 장관. 산 아래 보이는 것이 온통 황금벌판이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이런 곳에 정자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만들지 못했나 보다. 멀리 바다 넘어 보이는 곳이 북한땅이리라. 오늘은 날씨가 좋아 망원경이 있으면 그 곳의 건축물도 보일 정도다.

최영섭의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목청껏 불어 제껴 본다. 한 때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가사까지 바꾸어 부르게 했던 어처구니없는 정권. 이런 일도 있었다. 몇 년 전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한국에 와서 평화 콘서트를 잠실운동장에서 가지면서 당초 우리 합창단과 함께 '그리운 금강산'을 부른다 해서 연습을 했는데 하루 전에 갑자기 곡목이 '나의 살던 고향'으로 바뀌었다. 이유는 그 노래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가 부르면 남한에서 북한의 땅을 탐내는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대나?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아쉬워하며 내려가는 길도 아름다운 길이다. 나무 아래 작은 그루터기에 앉아 쉬며 간식을 한다. 오늘 우리의 걸음은 도무지 가을 정취에 흠뻑 젖어 쉬고 싶은 곳이 많아 그런 곳에서 쉬느라고 진행이 늦다. 언덕 아래에 작은 빨래터도 2년 전에 예쁘게 만들어 놓았던 시비, 솟대 등 장식물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마을로 접어 들어 대월초등학교로 향하는 도로변에 지난 번에 보았던 수박이나 야채들이 있던 밭들이 수확 후 잘 다듬어져 있다. 시간의 흐름을 본다. 언제나 보아도 인적없는 대월초등학교옆에는 커다란 수세미가 익어가고, 모퉁이를 돌아가니 마을을 잇는 굴다리 내부에 얼마 전 어린아이들이 예쁜 색깔로 강화도 나들길 벽화를 그려 놓아 아직 색감이 그대로 살아 있어 지나가는 흥이 절로 난다.

 

태풍때문에 언덕에 거친 바위들이 들어나도록 깊은 골이 생겼고 유난히 건강한 소나무를 자랑했던 언덕 옆에 푸르렀던 소나무가 쓰러져 있고, 언덕 끝 부분에는 소나무들이 말라가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다시 소나무 냄새가 지속적으로 가득찬 길을 걷는다. 숲은 정말 모든 것을 치유시키는 힘이 있을까? 강원도의 어느 지역에 측백나무 숲이 있는데 그 곳을 아토피 전문치료 숲으로 이용하고자 누드 워킹할 수 있는 방안을 계획중이라 하는데 실현될까? 정말 가끔 이런 숲 속을 지날 때는 맨발로 아니 더 나아가서 온 몸을 벗고 다니고도 싶다. 

 

숲길에 남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놓은 오디밭이 있는데 이미 거의 모든 오디를 다 수확하고 일부러 이 곳이 오디밭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려는지 빨간 오디 몇 송이를  남겨 놓았다. 그러나 손 닿을 만한 거리도 아니기에 그냥 보는 것으로 족하다.

 

늘 가던 길에 보이지 않던 묘가 보인다. 묘가 있던 자리에 납골당을 세워 놓았는데  그 앞에 몇 개의 비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가족묘를 이렇게 납골당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보기에 좋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죽으면 수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들어 수목장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서 큰 나무를 보면 저 곳이 좋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많다. 

 

연미정으로 가는 길에 연미정가든이라는 식당에서 지난 번에 오리고기 바베큐를 맛있게 먹었는데 오늘은 오리 백숙을 먹었다. 백숙은 2시간을 익혀야 한다기에 우리가 출발 전에 미리 주문해 놓았기에 푹 익힌 오리고기의 냄새가 좋다. 누군가 들꽃을 꺽어 식탁위에 올려 놓는다. 꽃 몇 송이가 이렇게 식탁을 우아하게 할 줄이야. 마당에 널은 빨간 고추는 익어가고 연미정가든에서 연미정으로 가는 길의 오른 쪽에는 뭉게 구름  하늘아래  황금벌판과 수수와 억새가 이어지고 왼쪽에는 고구마캐기 체험행사하는 듯 도시 사람들이 몰려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이다.

 

연미정에 올랐다. 하늘이 맑아 멀리 북한의 개풍군의 흰 건축물도 보일 정도다. 그 아래에 가기 힘든 길이 북쪽으로 주우욱 이어져 있다. 연미정 커다란 느티나무의 손상된 가지에 세멘트로 막아 놓았는데 그 뒤에 파란 가지가 있어 마치 세멘트에서 가지가 돋는 것 같이 보인다. 저 세멘트같은 북한 땅에 푸른 가지가 저렇게 돋으면 얼마나 좋을까?  연미정자에서 사람들 따스한 가을 햇살을 즐기고 있고, 우리도 연미정에 둘러 앉아 신선처럼 한담을 즐긴다. 세상이 이렇게 늘 평화스러울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갈길이 멀다. 앞으로 갑곶돈대까지 먼 길을 가야 하기에 더 쉬고 싶지만 일어서서 걷는 둑길은 황금벌판에 취해 노래가 절로 나온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가을의 풍요로움을 낚고 있고,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송사리들이 낚싯군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무리지어 다니고 있다. 한쪽에선 벼가 익어 고개가 숙여지고 한 쪽에선 새 생명이 자라나 머리를 들고 헤엄치고 있다.

 

둑길을 가다가 순간 내 눈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인다.  바닥에 은빛 선으로 무늬를 그려 놓았다. 이게 뭘까? 가느다란 은빛 선을 따라가다 보니 작은 달팽이가 몸을 숨기고 있다. 아하 이게 논우렁이구나. 둑길에 이런 은빛선이 얼마나 많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무수히 많은 논우렁이 있는 것 같다.

 

논둑길 끝에 도착할 때 쯤엔 모두 기진맥진. 비록 여름처럼 덥지 않아도 너무 긴 거리를 걸어서인지 모두 쉬고 싶어했다. 다행히 그 끝에 숲이 있고 숲 속 그늘에서 마지막 간식들을 해 치우고 멀지 않은 곳에 기대가 되는 소나무숲을 찾는다. 죽죽 뻗은 소나무 숲에서 저마다 소나무 하나씩을 가슴에 껴 안아 본다. 우리는 모두 자연으로 치유하고 자연으로 사랑한다.

 

오늘은 길이 조금 힘든지 모두 이어지는 긴 세멘트길을 걷기 싫어해 비록 정규코스는 아니지만 마을길을 가로 질러 갔다. 그런데...그 끝의 논에 있는 벼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 벼 이삭에 까맣게 썩어가는 것인지 매달린 것인지 병에 온통 까만것들이 가득 매달려 있다. 나중에 검색해 보이니 이게 벼이삭 누룩병이라 한다. 비료를 많이 주었거나 일조가 부족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안타까와라..

 

긴 걷기가 끝났다. 다음 주 토요일에는 교회의 찬양대원들을 가족과 함께 모두 데리고 이 곳을 오기로 했는데 그 때 황금벌판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 태산같다.

 

난 오늘...내 발에 그리고 마음에 황금주단을 깔고 다녔다. 일 년에 이런 걷기는 한 번 밖에 없겠지. 이 시기를 놓치지 않아서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