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도 나들길 2코스 호국 돈대길

carmina 2012. 11. 11. 23:15

 

2012년 11월 10일

 

입동이 지나고 낙엽이 바람불 때 마다 우수수 떨어진다.

회사 근처 아파트 골목에는 일부러 낙엽을 치우지 않아 노란 은행잎과 갈색 플라타너스 잎이수북히 쌓인 거리를 볼 때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제도 누군가 강화도 나들길 2코스를 다녀 와서 사진을 올린 것을 보니 비록 간다고 마음은 굳혔지만

빨리 가고 싶어 잠까지 설쳤다.

 

요즘 나들길 2코스는 매스컴을 수시로 탄다.

국토해양부에서 발표한 전국 걷기 좋은 해안길 에 강화도 호국돈대길을 꼽았고

매스컴에서도 요즘 이 길을 언급하며 좋다고 하니 지난 주에는 라이온스 클럽 1000명이

이 길을 걸었다 한다.

 

물론 나도 강화도 나들길을 처음 걸어 본 길이 호국돈대 길이다.

이 길의 옆으로 난 차도는 수없이 많이 다녔지만 그 옆에 이런 멋진 길이 있는 것을 알고는

그 뒤로 꾸준히 다른 나들길 코스도 찾아 다녔었다.

처음엔 혼자 다니다가 나들길 모임에 가입해 길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걷기를 거의 1년이 넘다보니

자칭 나들길 매니아가 되고 나들길 책도 내고 여기 저기 나들길을 소개하고 다닌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데도 2코스 시작점인 갑곶돈대로 사람들이 밀려 온다.

우리 길벗들 뿐만이 아니라 대형 버스가 몇 대 도착하고 학생들이 우르르 내려

인솔교사와 함께 갑곳돈대로 올라가고  옆의 잔디에는 자전거 행사를 갖는 듯

많은 자전거를 세워놓고 행사 안내후 모두 자전거를 타고 사라지고

우리도 간단히 몸을 풀고 길을 나섰다.

돈대앞에 있는 많은 비석 너머로 빨간 단풍나무가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길가의 나뭇잎들도 꽃 잎들도 모두 거추장스러은 잎들을 떨쳐 버리며 겨울을 대비하고 있다.

 

나는 내 겨울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나도 자꾸 무언가 버려야 하는데..

나이들면 빈 손이 오히려 더 아름다운 법인데

혹시 너무 많은 것을 움켜 쥘려고만 하는게 아닌지..

 

이 추운 날에도 강태공들의 극성은 말릴 수 가 없다.

갯벌 끝에 자리를 잡고 고급 낚싯대를 드리운 것이 아무래도

망둥어보다 더 좋은 것을 낚으려 하는건가?

강화도의 갯벌 장어가 유난히 맛있다고 하는데 장어를 낚고 있는건가?

 

작은 파도를 철썩이며 천천히 밀려오는 파도가 갯벌을 야금 야금 적신다.

아침 햇살이 짙은 갈색의 바닷물과 짙은 회색빛의 갯벌들에 비스듬히 비추어지며

은빛을 만들어 내고 있다.

 

2코스의 제일 큰 장점은 바닷가 둑을 겉는다는 것이다.

때론 잔디밭 때론 세멘트 둑으로 걷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시원한 바람에 쌀쌀함이 더 해져 모두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하기도 하고 모자가 있는 등산 자켓을 두텁게 껴 입었다.

 

반짝 반짝 빛나는 은색 억새가 양 옆에서 살랑거리며 사열해 주고 있고

바닷가 갯벌에 가득 핀 자주빛의 함초가 장미밭보다도 더 아름답다

길에는 억새가, 바다에는 갈대가, 갯벌에는 함초가 지천으로 핀 길을 걷는 기쁨.

자동차를 타고 휙 지나가면 절대 볼 수 없는 이 길..

느리게 살면, 낮은 자세로 보고, 내려놓고 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그래서 내 책의 제목도 '길을 겅으면 내가 보인다'라고 정했었다.

 

첫번 째 만나는 용진진에 있는 군 막사의 단청이 깨끗하게 채색되어 있고

진지도  역사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석조물과 바위로 둥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만약 이 전 모습 그래도 두었더라면 벌써 사람들의 발길에 사라졌겠지.

용진진 넘어로 흰 눈이 오는 계절을 기다리고 있는 추수를 끝낸 논에 참새들이 떨어진 낟알들을

찾다가 우수수 날아간다.

 

용진진 앞 바닷쪽에 만들어진 용진돈대도 낡은 축조물을 깨끗이 재건축해 놓아

바닥의 흙과 주위의 나무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바다를 빼 놓고는 모두 새 것들이다.

용진돈대에서 바라다 보는 염하강의 저 편 철조망이 바다를 가로막은 김포 땅에 나무들이 잘 다듬어져 있어

가만히 보니 골프장이다. 이제 저 곳의 철조망이 모두 철거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걷기 좋은 길이 또 생길 것 같다.

 

돈대를 내려오는 숲길에 이상하게 생긴 버섯이 눈 길을 끈다

마치 낙엽 속에 숨어 있던 지표면의 혓바닥이 쑤욱 나온 것 처럼 보인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자연과 끝임없이 인간에개 말을 전하고 있지만 인간이 듣지 못해

그로 인해 인간이 병들고 있다.

 

지금 이 시절 강화에 제일 많은 보이는 채소는 단연코 순무다.

강화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무우. 왜 다른 지방에선 재배가 안 될까?

순무는 맛이 다른 무우들과 맛이 사뭇 다르다.

어떤 맛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시원함이 입에 가득하고 맛이 입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 강화에서 식사를 할 때는 늘 순무를 제일 먼저 찾는다.

 

길을 걷는다.

묵묵히 땅만 보고 걸어도 앞만 보고 걸어도 좋다.

이야기를 즐긴다.

길가의 꽃과 나무를 이야기하고, 바람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린 모두 하나가 된다.

 

화도 돈대앞에 커다란 감나무에 맨 위 부분만 발간 색의 감이 매달려 있고

잎새는 모두 떨구어 버렸다. 모두 모여 감나무를 흔들면 감이 떨어 질까?

그 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으면 입 안에 감이 툭 떨어지지 않을까?

사람들이 내게 노래를 청한다.

이 좋은 날에 어찌 노래가 없을소냐.

돈대 위에 올라가 가을을 노래한다.

그리움을 노래하고, 우리네 마음을 노래한다.

 

35명이 넘는 인원이 밥을 먹을 곳이 있던가?

지난 번에는 안 보이던 식당이 생겼다. 모두 쭈꾸미 비빕밥으로 점심을 즐기고 나오니

길 한 편 주차장에 강화 주민들이 농작물을 들고 장을 펼쳤다.

순무를 사고 싶지만 지고 가기 무겁겠다.

순무를 조금 잘라 주어 입에 넣으니 침이 고인다. 참 맛있다.

찹쌀, 녹두와 팓과 콩들,  호박과 고구마, 고추들이 탐스럽다.

이런 것에 대한 욕심이 많은데 집에서 한 끼도 먹지 않는 내가 사가지고 가봐야

아내의 눈총만 먹을 뿐이다.

 

길을 가는데 우리가 걷는 풀밭 길로 차가 한대 들어 오고 있다.

도무지 차가 다니지 못할 길인데 어거지로 밀고 들어 온다.

다니다 보면 눈꼴 사나운 것이 이 것 뿐이랴

낚싯꾼들이 버린 쓰레기, 바람에 날리는 아이들이 버린 과자 봉투들..

이 추운 날 바람을 피해 둑 밑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부부들의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둑에서 저절로 자란 탐스런 호박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어떤 호박은 썩어 들어가고 있지만 모두 그대로 둔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니 가져갈 사람이 없으면 동물이 먹거나 흙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지난 달에 터진개에 설치하여 작품 전시회를 마친 야외 전시물들이 바람에 날려 쓰러지고

찢겨지고, 녹슬어 가고, 무너지고 간신히 가을의 마지막을 버티고 있다

작품 전시기간이 지났으면 철거해 놓아야 할 것 같다.

그 앞에 있는 야외 화장실에서 음악이 나온다기에 들어가 용변을 보면서 들어보니

모짜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멜로디가 소변기를 때리는 오줌소리보다 작게 들리지만

기분은 무척 좋다.

 

광성보로 가는 둑길은 거의 환상적이다.

바닷쪽 갯벌에는 자줏빛 함초밭, 오른 쪽은 은빛 억새들의 행렬

길벗들의 발길을 자꾸 붙잡는다. '나 좀 데려가 달라고..'

귀부인들의 모자에 달려 있어야 어울릴 것 같은 억새의 털이 소담스럽고

털들을 모아 솜이불을 만들어도 좋을만큼 부드럽다.

 

광성보로 가는 긴 둑을 지나 나들길은 작은 마을길로 해서 광성보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원래 광성보 들어갈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이런 방법도 있다.

광성보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만큼 조경을 잘 해 놓았다.

   

아이들이 잔디밭에 앉아 인솔교사들에게 광성보의 역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배우고 있고,

그 앞에는 높이 솟아있는 단풍잎들이 가을 하늘을 가로막고 있다.

얼마나 한가로운 풍경인가?

세상을 잠시 잊은 선경의 모습들이다.

 

광진진을 나와 밀려오는 서구의 함대들을 향해 불을 뿜던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는 돈대옆으로 해서

긴 숲을 걷는다. 아직 아침 이슬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같이 낙엽이 촉촉하다.

 

도로 옆 작은 꽃밭사이는 잡초들로 무성해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노란 단풍잎들이

잡초를 대신하고 있다. 오늘은 모든 것이 아름답다.

 

이제 멀리 초지대교가 희마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저 다리를 건너고 싶다.

지난 번 아내와 같이 걸을 때 걸어서 넘어가자 했지만

아내가 100만원 주면 넘어가겠다 하여 포기했었다.

오늘은 갈 수 있으려나..

 

숲 사이를 걸을 때 바람이 안 불어 덮기에 겉옷을 벗었다가

둑을 걸을 때는 추워 다시 옷 입기를 몇 번.

사람들도 이제 조금씩 지쳐간다. 늘 목적지가 보이면 더 지쳐 보이는 것 같다.

바닥에 누워 버리기도 하고, 조금 갯벌흙이 있을 법도 한데 그냥 앉아 버린다.

 

덕진진에 도착하니 빨간 단풍나무와 노란 은행나무와 회색빛 바다와

엷은 초록의 잔디가 잘 어울려 모두가 같은 느낌을 가졌던지 모두가 단체 사진찍고...

 

덕진진에 외국상선이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비석이 세워져 있다.

한문으로 새겨진 경고문. 그 글들을 외국 상선들이 이해 했을까?

 

덕진진을 내려와 길을 가다가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햇볕을 쬐러 잠시 나들길에 외출 나온 실뱀 한 마리가 사람들의 발걸음에 놀랐는지

급히 꼬리를 풀 숲으로 감추며 달아났다. 미안...미안...

 

이게 길이 끝나간다.

썰렁한 조지진의 바닷가.

낚시를 즐기는 사람의 통에 보니 겨우 작은 망둥어 한 마리만 꼼짝앉고 있다.

일행과 헤어져 초지대교를 걸어서 건너 대명리로 가고 싶었지만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포기.

 

이렇게 깊은 가을의 토요일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