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깊어가는 가을속의 나들길 (8코스 철새보러 가는 길)

carmina 2012. 11. 17. 22:26

토요일에 나들길 8코스 걷기 계획이 있어 지난 해 여기 코스를 혼자 걸었을 때

기록을 뒤져 보았더니 그 때도 이번같이 비로 인해 걱정을 했었다.

 

금요일 오후부터 비가 많이 왔다.

주초에는 토요일까지 비가 온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금요일 오후쯤 되니 중부지방의 비는 토요일 새벽이 되면 그칠 것이라고 하니 반가운 소식.

 

이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거리의 모습을 보았더니 도로는 젖어 있지만

우산을 쓴 행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비가 온 뒤로 조금 추울 것을 대비해 자켓에 내피를 챙기고

보온병에 따뜻한 개똥쑥차도 챙겨 넣었다.

 

8코스는 교통편이 불편하여 별로 내키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걸으면 그 불편함을 모두 잊기에

오늘도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서야 일찍 떠났지만 겨우 시간에 맞게 출발점인 초지진에 도착했다.

추우나 더우나 나들길에 나서는 길벗들이 손을 벌려 환영한다.

이 즐거움에 여기에 오는 것일까?

 

강화도 나들길 8코스 (철새보러 가는 길)

 

 

초지진을 구경나온 어린 아이들이 옹기 종기 모여 초지대교를 바라보고 있다.

강화의 두번째 다리. 이 다리 건설로 강화 출입이 조금 쉬어 졌지만

그래도 오후에 서울로 가는 길이 막히는 것은 여전하다.

길이 좋다 보니까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강화도에 먹고 자고 놀 곳들이 많아지고..

그렇게 불편한 모습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의 생활은 변함이 없다.

 

20여명 정도가 모여 간단히 몸을 풀고 떠나는 바닷가 둑에 찬 바람이 분다.

모자에 달려 있는 귀덮개까지 내리고 자켓의 자크를 목까지 올렸다.

어떤 이는 작은 담요까지 몸에 두르고 다닐 정도고

이런 추위를 예상하지 못한 어떤 이는 얇은 여름용 복장에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자연의 색깔이 변했다.

한여름에 푸르름속에 가득 찬 3차원 공간이 지난 달은 황금색으로 변했다가

이번 달엔 연한 갈색의 색깔이 시야를 지배하고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휘날리는 나들길 이정표 저편에 보이는 초지대교 밑의 갯벌도 쓸쓸해 보이고

그토록 많이 보이던 갯벌의 칠게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자연이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니 매번 올 때마다  지루하지 않아 좋다.

 

주택 뒤를 따라 걷다 보니 집 앞에 매어 있는 개들이 낯선 행인들에게 경고를 보낸다.

누군가 얘기한다. 강화도의 개들은 순한 편이라고..

자연이 좋다 보니 그런 말없는 동물들에게도 선한 감정을 가지나 보다.

 

갯골로 벌어진 공간에 나무다리를 놓아 보행로를 편하게 해 놓았지만

그래도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니다 보니 어떤 곳은 다리가 상한 곳도 보인다.

다시 보수해 놓겠지..

 

요즘 국내 경기가 안좋아 초지대교 근처의 커다란 상업용 빌딩도 문을 닫고

가끔 보이는 길가의 건축물도 뼈대만 짓다 만 상가도 보여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화도는 찾아오는 외지인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무언가를 자꾸 만들고 있다.

 

일년 전에 다닌 길에 비하면 여기 저기 많이 달라져 있다.

커다란 바위로 징검다리도 만들어 놓고, 바다 위를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나무데크도 더 많이 만들어 놓았다.

 

작은 바다생선들이 가을 햇살과 바람에 갯벌 위에서 말라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생선들. 우리 집 냉장고에 저 말린 생선이 떨어지는 날이 없다.

주말부부를 생활하는 요즈음이에게 어쩌다 집에서 식사하게 되면

아내는 여지없이 생선을 구워 내 입맛을 즐겁게 해 준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생선. 나는 어쩔 수 없이 바닷가 태생인가 보다.

 

아침이라 썰렁한 횟집들, 가게들, 주말이라 모처럼 기대를 하고 있을텐데

날씨가 추워지니 우리 일행 숫자가 적어 진 것처럼  많이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배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황산도 어판장 뒤로 정박되어 있는 작은 목선들이

찬 바람을 맞으며 재충전을 하고 있고,

이 곳에 스테인레스로 만든 커다란 농게 조형물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그 옆으로 낮은 산을 끼고 있는 바다 옆으로 만들어 놓은 나무데크

지난 해에는 그 데크 끝이 육지로 이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월장하여

억지로 지나가야 했지만 이제는 모두 이어져 건너편 육지로 갈 수 있다.

이런 찬 바람 부는 날에도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찬 바람을 피해 언덕의 후미진 곳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낚싯군도 있다.

데크에 낙엽이 흩어져 있어 더 을씨년스러운 길.

바람 불 때마다 이리 저리 몰려 다니고 우리도 바람따라 걷고 있다.

나무데크 옆의 산언덕에 붙어 있는 가을 잎들이 추워서인지 바위에 더

꼭 붙어 있는 인상이 드는 것은 나 만의 생각이겠지?

 

어선들이 바닷가에서 모두 쉬고 있지만 부지런한 어부가 키를 잡은 배는

구름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받으며 조용히 바다를 미끄러져 가고 있다.

노래가 흘러 나온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 오네..

 

계속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갯벌을 보며 걷는다

마치 미스타코리아선발할 때 나오는 선수들의 몸에 바른

올리브유로 번쩍이는 근육처럼 갯벌 언덕이 빛나고 있다.

어릴 때 얼마나 많은 세월을 저 갯벌 속에서 속에서 놀았던가.

무릎까지 빠지는 갯벌밭에 들어가 도랑 사이에 주저 앉으면

가랭이 사이로 스물 스물 기어 다니는 망둥어들의 느낌.

그냥 손으로 망둥어를 잡으면 되었었다.

작은 칠게하나 잡기 위해 손으로 구멍을 파고 들어가다가

잡지도 못하고 결국 포기하기도 하고..

갯벌에 맨발로 들어가면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올라오는 갯벌의 느낌이 좋다.

 

동검도로 향하는 도로 한 켠의 주차장에서 장사를 할머니들이 일찍 부터 나와

장사 준비를 하고 있다. 반갑게 인사하니 우리가 걷는 것을 아는지 이따 돌아 갈 때

사가지고 가라 하신다. 바구니에 가득 담긴 오디가 탐스러워 사고 싶었다.

 

잠시 도로를 따라 가다가 도로 밑에 만들어 놓은 돌둑으로 내려가 걸었다.

그 곳에 내려가니 바람이 적게 불어 가지고 온 간식을 나누어 먹고

다시 긴 돌밭길을 걸었다. 이 길은 조금 지루하다.

얼기 설기 놓인 돌 때문에 시야를 온전히 바닥에만 두어야 하기에 걷기에도 불편하니

어떤 이들은 차라리 도로 옆 보행로로 진행을 한다.

 

동검도로 갈라지기 전의 삼거리에 무수히 많은 무허가 간판들이 눈을 찌푸리게 한다.

저렇게 해 놓아야만 하는 것일까?

 

인근에 커다란 위락시설을 지으려는지 높은 담장을 치고 있지만

공사는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지형적인 여건으로 보아 투자할 만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이 곳에 사업을 계획한 사람이 안타깝기만 하다.

 

어젯 밤 비가 와 둑 옆의 길도 질퍽하고 겨우 겨우 세멘트 둑길을 찾아 걷고는 있지만

모두 조심 조심 걷느라 속도가 느리다.

 

그 둑의 끝에 말을 사육하는 곳이 있고 갯벌 교육장을 만들어 놓았다.

투자를 적게 할려는 듯 모두 가건물로 만들어 놓고 샤워장이나 탈의실도

바람이 심하게 불면 날라갈 것 같이 초라해 보인다.

이 곳에 용두레가 있다. 용두레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물을 퍼 올리는

그네같은 두레박인데 힘을 별로 안 들이고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재래식 양수시설이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흥미거리가 될 수 있겠다.

 

갯벌옆의 억새가 바람에 이리 저리 커다란 군무를 춘다.

바람이 너무 거세었던가 아니면 이미 억새가 질 때가 되었나

모두 가는 이파리들을 바닥에 떨구어 놓았다.

 

길벗들이 힘든지 점심을 먹을 곳이 어디냐며 찾는다.

길가의 집들 중에 눈에 확 뜨이는 진한 노란 색깔의 집이 있다.

그냥 평범한 집 같은데 일부러 벽을 완전히 노랗게 칠하고

지붕은 하늘 빛깔로 칠해 놓아 두 개의 색이 그 어느 집보다 금방 도드라지게 보인다.

저 벽에 커다란 낙서를 하고 싶다.

저 지붕에도 무언가 하늘을 바라보는 커다란 눈동자를 하나 그려 놓고 싶다.

아니면 기도를 하는 어린 아이의 손을 그려 넣을까?

 

선두리 어시장에 가까워 오니 흥겨운 품바소리가 들린다.

품바소리에 몸이 흔들 흔들.

품바의 뒤로 보이는 낮은 산에 단풍과 구름의 그림자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여러가지 색깔의 무늬가 연출되고 있다.

 

좋다...아주 좋다.

아름답다.  참 아름답다..

그 속에 내가 있다.

 

오늘 점심은 숭어회와 삼식이 매운탕.

내가 제일 즐겨하는 회를 실컷 먹었다.

그렇게도 먹고 남아 회덮밥을 해 먹었다. 포만감.

이대로 낮잠이나 잘까?

 

점심을 먹고 길벗들은 횟집에서 널어 놓은 생선들과

김장 담글 새우젓을 통째 사서 배낭에 쑤셔 넣는다.

나도 망둥어 같은 생선을 사고 싶지만 욕심내서 사가지고 집에 가면

늘 대형 마트보다 비싸다며 잘했다는 소리를 못들으니 포기한다.

나는 여행 중에 얻은 감성을 집으로 가지고 가고 싶은데...

그냥...내 마음속에만 오래 오래 간직하고 조금씩 꺼내어 먹자..

 

식사를 하고 나와 걷는 흙으로 만든 둑길.

이 지역은 군경비를 서는 곳이라 군인들이 다니기 쉽도록

숲 길에 두터운 녹색 비닐을 덮어 두었다.

 

조각구름이 떠 있는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숲길 양 옆에 펼져지는 억새들의 춤과

광활한 갯벌들이 펼쳐내는 커다란 화폭들에 폭 빠져 버린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이었지만

길을 다 걷고 나서 다시 온 길로 되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탐이 나는 길이었다.

 

억새가 춤춘다. 바람이 춤춘다.

가을이 춤을 춘다. 내 몸을 휘돌아 지나간다

나도 춤춘다. 내 마음도 덩실 덩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끝이 없다.

남이야 듣던 말던 목청껏 소리내어 불러 본다.

 

이제 오늘의 여정을 끝낸다.

왜..오늘은 이렇게 아쉬울까?

지난 번 이 코스를 걸었을 때도 아쉬워서

8코스가 끝났음에도 다음코스인 7-1코스로 계속 걸었었다.

 

본오리 돈대위에 올라가 안 보일 정도로 갯벌 끝으로 밀려간 바닷물이 들리도록 

커다란 노래를 불러 깊은 가을의 하늘 속에 내 마음을 전한다.

 

오늘의 걷기는 끝났지만  이 곳에 들어오는 버스가 한 시간 간격으로 있어

방금 놓친 버스를 기다리느라 한 시간 동안 정류장에 주저 앉아 떠들며 남은 간식 해 치우고

초지진에 돌아오니 맑은 하늘에 셀 수 없이 많은 철새들이 V자형으로 무리저어

북쪽으로 구만리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

 

초지대교를 건너 대명항에서 버스를 갈아 타고 집에 오니

걷기 종료후 무려 4시간 반이 지난 뒤에야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도심지 회사의 사무실에서 지낸 지난 일주일 50시간 과의

경중을 따지라면 단연코 오늘의 몇 시간이 나에게 몇 배로 값진 시간들이다. 

 

나와 같이 오늘 하루를 즐겁게 지낸 모든 분들에게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