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군산 구불길 1코스

carmina 2012. 12. 25. 00:05

 

2012년 12월 24일

 

하얀 눈 위에 구두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발자국

누가 누가 새벽길 떠나갔나.

외로운 산길에 구두 발자국.

 

이 동요가 절로 흘러 나오는 혼자만의 군산구불길 1코스

아무도 걸어 보지 않은 눈 쌓인 긴 긴 길을 혼자 걸어 가는 즐거움을

무리 지어 걷는 이들은 알까?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날은 올해 이런 저런 일로 힘든 일과

기쁜 일이 있었던 해에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내가 내게 준 큰 선물이었다.

 

샌드위치 데이. 회사에서도 휴가를 권하고 있다.

아내에게 여행같이 가자고 권했지만 일 때문에 안된단다.

그럼 혼자 가야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어디를 갈까 망설이다가 요즘 매스콤에 자주 등장하는 철새의 군무를 볼 수 있는 곳을

걸을 수 있는 군산구불길 1코스를 택했다.

 

미리 구불길 담당자에게 전화했더니 아직 그렇게 뉴스처럼 무리지어 나는 철새는 볼 수 없단다.

그러나 그 청둥오리 무리는 어느 날 갑자기 시베리아에서

내려오기도 한다기에 운을 믿어 볼까 하고 버스를 예약했다.

 

주일 오후 서울을 떠나 늦은  밤에 군산으로 내려가는 버스의 창에

미약하나마 눈이 내린다. 눈이 오면 좋지.

오래 전 겨울에 철새를 보기 위해 장항선 밤 열차를 타고 내려갔을 때도

이렇게 작은 눈이 소복 소복 내리고 있었다.

 

2000년전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낳기 위해 이 집 저 집 다니며 쉴 곳을 찾은 것처럼

나도 터미널 근처 이 곳 저 곳 싼 모텔을 찾아 방을 구하고,

뜨끈한 온돌이 있는 곳에서 푹 잠이 들었다.

아침에 얼른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눈이 많이 쌓였네. 좋아라..

 

서울에서는 오늘 영하 13도를 기록한다는데

내 스마트 폰의 전라북도 아침 기온은 영하 7도를 가르킨다.

영하 13도 추위에도 견딜 수 있도록 평소 안 입던 내의도 입고

목도리도 하고 방한모자에 귀마개까지 착용했다.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부어 준비해 온 개똥차를 배낭에 챙기고

밖으로 나오니 눈을 밟을 때 마다 뽀득 뽀득 소리가 난다.

 

구불길 1코스는 군산역에서 출발한다기에 군산역으로 가는 길을 알기 위해

인근에 편의점에 들어가 군산역을 물으니 어디 있는지 모른단다?

어이가 없네. 군산 사람이 군산역이 어디인지 몰라?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줌마 왈, 걸어서 10분이면 간단다.

어? 이건 무슨 소리? 떠나기 전에 미리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버스타고 군산역까지 한 30분을 가야한다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아줌마 말을 듣고 참견한다.

군산역은 새로 지어 이사했기에 길 건너편에 한참 걸어가서 타야한다.

이제 맞겠지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으며 생각해 본다.

우리네 삶에 여행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는 것을..

어떻게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떠나는 데 필수인 기차여행도 안해 본 사람들이 이리도 많을까?

그 아저씨가 가르쳐 준 곳으로 한참 걸어가 정류장의 버스노선을 보니

군산역가는 버스가 무척 많다. 그런데 한 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이상해서 바로 앞의 약국에 물어 보니 버스정류장이 옮겼단다.

이거 도대체 이리도 대중교통 정보가 엉터리인 도시가 있나?

할 수 없이 택시를 탔다. 네이버 지도로 검색해 보니 6000원 정도 나온다기에..

 

지난 밤에 내린 눈으로 한적한 곳에 있는 군산역  앞은 하얀 눈으로 덮혀 있다.

구불길 안내판이 있기에 출발점이 어디인가 하고 군산역 앞에서 눈을 치우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무슨 말인지 모른다. 할 수 없이 지나가는 이에게 지도를 가르키며 물어보니

구불길은 차로 가야한단다. 나...군산 구불길 온 거 맞아?

 

할 수 없이 구불길 안내센타에 전화해 방향을 잡고 길을 걸었다.

논둑길을 향해 걷는데 소복히 쌓인 눈 길에 나보다 먼저 간 자전거의 두 바퀴 자국만 길게 나있다.

그 뒤를 내가 따른다. 길가 논 옆의 갈색 부들에 흰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멀리 보이는 논에도 흰 눈 가득. 그리고 흰 아파트 빌딩도 역시 더 희게 보인다.

그리고 한참 멀리엔 발전소에서 나오는 흰 연기가 수증기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을 걷는 즐거움.

가끔 새 발자욱과 강아지가 걸었음직한 흔적만 있다.

그렇게 이정표를 따라 가다가 두 갈래 길.

노란색 리본이 있는 방향으로 한 참을 가다 보니

어? 길이 두 갈래인데 이정표가 없다.

어디로 가야 하나?  다시 전화. 내가 잘못왔지만

지금 가는 길로 한 참 걸어가면 원래 정해진 코스와 만난단다.

그런 줄 알고 한 참을 걸었다.

 

그렇게 몇 번을 전화해서 길을 잡고 찾아간 금강 둑길.

툭 터진 시야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가에는 많은 오리들이 무리지어 있다.

가끔 해오라기로 보이는 흰 새가 오리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물 위를 헤집고 있다.

끝이 없는 눈 덮힌 금강 둑길을 걷는다.

가끔 아침 운동하는 아주머니들이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가고

나는 여유있게 길을 잘 깍은 연필로 꼭꼭 눌러 일기를 써 가듯 천천히 음미하며

뽀득 뽀득 소리를 내며 내 인생의 걷기 일기를 눈 위에 적는다.

 

강가라 바람이 많이 불 줄 알았는데 바람도 잔잔하고

그다지 춥지도 않아 답답한 귀 마개를 빼 버렸다.

 

강가의 오리들이 무리지어 헤엄쳐 가다가

어느 녀석이 방향을 트니까 모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오리는 어떤 본능을 가지고 있기에 저렇게 움직임을 재빨리 간파해서 움직일까?

TV에서 가끔 보는 가창오리들의 군무도 모두 선두에서 날고 있는 한 마리의 움직임으로 인해

커다란 화폭에 그림을 그리듯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지 않는가.

 

그렇게 한참 둑길을 가다가 샛강으로 빠지는 물속에서 문득 이상한 움직을 느껴

시선을 고정시키고 보니 붕어인지 송어인지 불확실하지만 많은 무리의 제법 큰 물고기떼가

도심으로 이어진 듯한 맨홀의 앞 웅덩이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저 곳에 투망을 던지면 그야말로 대박일텐데 하고 군침만 삼키다가

배낭 속에 먹다 남은 에이스비스켓을 가루내어 뿌리니

여느 연못의 붕어들 같으면 당장 달려와 먹이를 먹느라 한바탕 소란이 벌어질 터인데

이 물고기들은 수면에 떠 있는 과자 부스러기에 관심도 없다.

이럴 수가..  내가 잘 못 던졌나?  이번엔 과자 하나를 통째로 던져

빙빙 도는 물고기 주위에 떨어뜨렸는데도  아는 척도 안한다.

이런 꽤씸한 녀석들. 니들이 배가 부른거야 아니면 원래 과자맛을 모르는거야.

과자가 바로 위에 있는데도 그냥 지나가버리는 물고기들 때문에

결국 애꿎은 비스켓만 강물에 버린 셈이 되었다.

이상한 군산사람들, 이상한 금강물고기...

 

맑은 하늘에 비치는 맑은 수면위에 발전소 연기가 멋진 데깔꼬마니를 연출한다.

멀리 금강 수문통제소가 보이고 연휴동안 쉬고 있는 작은 배 한척도 움직임이 없다.

신선이 노는 세상이 따로 없다. 바로 여기가 거기다.

깨끗한 눈, 깨끗한 강물, 깨끗한 하늘, 깨끗한 공기..

 

구불길 이정표에는 군산역 다음에 진포시비공원인데

길을 잘 못들어 헤맨 끝에 이제야 진포시비공원에 도착하여

아침에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용변을 금강둑의 깨끗한 화장실에서 해결하고

조금 더 가다 보니 금강호 시민공원에 커다란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진포대첩비.

 

시민공원에서 다음 길로 가는 터널길에 공사중인지 길을 막아 놓았다.

그러나 터널안에서 전기공사하고 있는 곳을 지나 그대로 지나가니 상가촌이 있고

인근 전망대에 올라가 멀리 금강수문통제소를 구경하고 내려

근처 카페에서 쉬며 따끈한 커피 한잔으로 추위를 녹이고

음식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식당가를 지나 길을 따라 다시 도로를 걸어

철새조망대있는 쪽으로 가다 보니 멀리 보이는 조망대 아래

실로 거대하게 만들어 놓은 청둥오리 모형이 있다. 저 곳은 뭘까?

들어 갈 수 있는 곳인가?  그러나 애들을 위한 조악한 시설일 것 같아 그냥 지나친다.

 

이제까지 강가만 걷게 하던 구불길 이정표는 논 사이에 난 오성산으로 향하는 길로 향하고 있다.

서해 고속도로 IC로 가는 길 옆의 눈 덮힌 흙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

오성산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성덕마을.

마을에 있는 집들의 벽을 이용하여 구불길 벽화를 그려 놓아 카메라를 들이대게 한다.

지붕에 있는 눈이 녹아 고드림이 추녀 끝에 달려 있는 것을 보며

어릴 적 우리 집에 초가지붕에 달려있던 고드름이 생각났다.

고드름을 잡아다니면 초가지붕의 밀집까지 같이 딸려 나와 어른들께 혼나곤 했었다.

 

이 마을에는 유독 대나무 숲이 많다.

마을길 작은 언덕에 누군가 눈을 쓸어 놓았다.

그 언덕을  넘어가니 할머니 한 분이 빗자루 질을 하고 계시기에 인사를 드리고

마을길을 지나니 누구도 지나 가지 않은 작은 오솔길이 나를 반긴다.

그 소복한 눈 위에 보이는 흔적이라곤 발가락이 세 개인 새의 흔적들

그 흔적이 길 끝까지 가다가 어느 순간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숲속 사이 길 끝에 작은 저수지가 잠들고 있다. 

눈 덮힌 팻말을 손바닥으로 쓸고 보니 항동제라고 낚시터 겸용인 듯.

멀리 둥그런 돔 형식의 기상대 건물이 있는 오성산으로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간다.

나무 계단이 없다면 눈에 덮여 길을 찾지 못했을 것 같은 언덕을 가쁘게 숨을 몰아가며 올라간다.

 

끝날 것 같던 언덕이 계속 이어지며 올라가다 보니 어느 새 다른 쪽에서 오는 길과 합하여 지는데

그 길 부터는 발자국이 몇 개 나 있다. 가만히 어느 연인이 손을 잡고 걸어 간 듯

보폭이 일정하다. 아마 정상까지 차로 다닐 수 있는 것 같다.

 

산으로 올라가는 평평한 눈 길에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져 가상의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그 나무 그림자 계단을 따라 주욱 올라가니 건물이 두 채가 보인다

하나는 기상관측소 또 하나는 노을풍경이라는 카페 건물.

밖에 써 붙여 있는 메뉴에 군침이 돈다.

파전, 막걸리 등등..

반가움에 문을 열고 들어갈려 하니 이런...잠겨 있다.

배도 고픈데..

 

산 정상에 있는 오성의 묘지에서 금강을 내려다 보니 실로 장관이다.

반대편의 넓은 벌판도 나의 가슴을 크게 펴게 만들고

이 곳은 활공장으로 쓰고 있는데 여기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금강을 향해 날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여기서 1박 2일 프로그램을 촬영한 듯, 탤런트 이승기의 사진과 안내판이 붙어 있다.

그도 활강했을까? 

 

오성묘 앞에서 간식과 뜨거운 차로 잠시 요기를 하고

구불길 안내센타에서 알려준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이 또한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비록 이 길로 올라오자면 힘들겠다 생각하면서도

숲 사이로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넓은 시야가 내 입에서 노래를 절로 흐르게 한다.

 

유독 대나무숲이 많은 언덕을 다 내려와 노란 리본이 달린 길을 따라 가다 보니

어느 구불길 팻말이 내가 내려 오던 길이 반대 방향으로 표시가 되어 있어

이상하다 생각하며 계속 내려갔다.

 

조용히 잠들어 있는 마을에 작은 박새 한 마리가 이 나무 저 나무 옮겨가며

나에게 길을 안내 하듯이 날아 가고 있다.

흰 침대포로 덮어 씌운 듯한 커다란 눈 덮힌 저수지가 있는 길을 따라 가니

그 끝에 차가 다니는 도로와 마주 친다.

그리고 저 건너편에 서해안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다.

 

자! 어디로 가야 하나.

구불길 이정표가 사라져 버렸다.

지도상으로 보니 이 근처 구불길이 추천하는 옹고집장집 음식점이 있다 하는데

그 길이 고속도로 밑으로 나 있기에 바로 앞에 보이는 고속도로 밑 터널로 가다 보니

길이 또 두 갈래. 이정표는 찾을 수 없다.

어디로 가야 하나.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으니

옹고집은 여기서 한참 가야 하는데 어떻게 거길 걸어서 가느냐며 의아해 하신다.

멀다기에 배도 고프고 해서 인근 식당에 들어가 돌솥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앞으로 남은 길과 시간을 보니 아무래도 완주를 못할 것 같아

서둘러 점심을 먹고 나와 차가 쌩쌩 다니는 위험한 길을 따라 가다 한참 가다 보니

옹고집장집 표시가 있고 버스정류장이 있다.

 

아무래도 시간상 더 진행이 어려울 것 같고 남은 코스도 거의 대부분이

금강둑을 따라 걷는 길이라 그다지 매력이 없을 것다는 스스로의 핑계로

오늘의 걷기를 마치고 마침 오는 버스를 타고 시외 버스터미널로 돌아 왔다.

 

버스를 타고 오며 오늘의 코스를 카메라에 찍힌 장면을 보며 복기해 본다.

조용한 군산역, 인적없는 마을길, 발자국 없는 눈 덮힌 길,

맑은 금강물과, 유유히 겨울을 즐기는 철새들, 작은 숲속길, 벽화가 이쁜 마을길,

오성산으로 올라가는 언덕 길과 오성산에서 바라본 넓은 풍경들...

 

좋다. 참 좋다.

남들 눈 온다고 스키캐리어가 달린 자가용으로 먼길을 달려 사람많은 스키장으로 달려가는데

나는 대중교통을 타고 호젓한 숲길을 걸으러 간다.

그게 내 삶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

자연과 대화를 하며 살고 싶고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그 길 들을 사랑하고 싶다.

 

내 인생에게 인사한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