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백두대간 트레일

carmina 2013. 8. 26. 22:35

 

 

2013. 8. 24

 

아침가리골. 길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질 때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듣던 명소였다.

계곡의 물속을 걷는다. 얼마나 시원한 모습일까? 그것도 이런 더운 여름철이라면..

그런데 며칠 전 유혹이 들어왔다.

강화나들길을 같이 걷는 멤버 몇 명이 다른 걷기단체와 함께 버스를 대절해서 그 곳에 가는데

자리 하나 남는다고 내게 권유가 왔다. 마침 아내도 그날은 다른 일이 있기에 기회도 좋았고..

 

강원도 인제의 아침가리골의 계곡트레킹을 위해서 인터넷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할지 검색하여

샌들트레킹화도 사고 떠나기 전 날 저녁에 배낭 안의 짐들을 비닐 봉지로 나누어 묶고

아내에게 커다란 김장용 비닐도 구해 달라 했다.

 

그런데 이게 모두 김칫국 마시는 일일 줄이야.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서 모임 장소인 당산역에 도착하니 나를 반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곳은 이런 새벽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인지

다른 일행을 기다리는 버스의 창문에 "XX걷기여행"이라는 표시를 한 차들이 몇 대 머물렀다

전철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태워 가지고 떠난다.

나와 같이 떠날 사람들은 배낭외에 손에 작은 백을 하나 들었는데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여벌 신발을 가지고 가는 듯 하다.

 

어느 덧 이런 단체 관광버스는 일반 관광지여행지만큼이나 걷기여행이 많아졌다.

하긴 오늘 같은 코스도 일반 대중교통으로는 노선이 없어 하루에 다녀오기 힘든 곳이다.

 

자리가 넓은 25인승 버스. 일반 우등고속버스의 내부보다 더 고급이다.

버스에서 나누어 주는 아침식사대용 떡을 먹으며 도심을 빠져 나간다.

조용한 버스 안. 구리를 지날 때 쯤은 그 이른 시간에  차가 밀려 천천히 밖의 풍경을 본다.

출근할 때 통근버스를 타면 대개 눈감고 자는데 오늘은 여행이라 생각하니 창 밖의 모습이 정겨워 진다.

 

버스가 동홍천  IC를 나와 국도로 달리니 주변 풍경이 농촌과 깊은 산골의 모습으로 눈이 정화된다.

어디로 가는지 눈여겨 보았지만 처음 오는 곳이고 지명의 명칭을 붙여 놓은 곳이 별로 없었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산들은 거대한 수묵화처럼 천천히 펼쳐진다.

이 뜨거운 날씨에 넓은 논에서 혼자 일하는 농부의 모습은 파란 들녘에 작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다.

차 한대 다니지 않는 시골길.

그러나 어느 언덕을 지그 재그로 올라가는데 오픈 찦차 한대가 쏜살같이 우리 버스를 질러 위험하게

앞질러 올라간다.

 

오늘 트레킹을 리딩하는 이가 오늘 갈 코스를 설명해 주는데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는 아침가리골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오늘은 그곳을 나중에 거쳐간단다.

이 곳은 3둔 4가리로 불리우는 곳으로 월둔, 살둔, 달둔 그리고 연가리, 아침가리, 결가리, 적가리를 말하는데

가리라 함은 밭을 갈다 하는 의미로 아침가리는 워낙 첩첩 산중이라 아침에 햇살 나올 때 잠시 밭을 갈 수 있다

해서 아침가리로 불리운다. 이 곳은 워낙 깊은 산중이라 625전쟁시에도 이 곳 화전민들은 어느 날

숲에서 나와보니 전쟁이 났었다고 알 정도로 외지하고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 한다.

최근에 조성된 백두대간 트레일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두대간 등산코스를 지리산까지 산 아래에서 산들을 보며

걷는 코스라고 설명해 준다.  

 

버스가 홍천군을 지나면서 누군가를 한명 더 태우고 내면이라 곳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내리면서 보니 이 곳 트레킹하는 사람들의 배낭은 여느 배낭보다 커 보이고 짐도 많아 보였다.

 

버스 내린 곳에 있는 백두대간트레일 홍천구간이라는 이정표가 세워놓은지 얼마 안된 듯

손때가 묻지 않았다. 우리는 오늘 여기부터 양구가는 길로 걷는다. 거리로는 약 20Km.

 

길 옆으로 고랭지 배추가 질서정연하게 심어져 있는 길로 26명의 인원이출발했다.

노란 해바라기 뒤로 푸르고 무성한 숲이 가득한 산 위로 흰 구름, 그 위로 파란 하늘의 조화가 

오늘의 즐거운 여정을 가늠해 본다.

 

오늘 걷기팀은 조직적으로 걷기를 하는 듯 무전기 3대로 선두, 중간 그리고 후미에 담당자를 포진하여

걷기 속도를 조절하고 상황을 공유한다.

 

산과 산 사이로 난 돌밭 길을 걸어가니 양 옆으로 계곡 물이 흐른다.

트레일 시작을 알리는 안내초소에는 아무도 없다.

오늘 같은 날 저 안에서 있으면 인간 통닭이 될 것같다.

농부의 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멋진 집들이 숲 속에 자리잡고 있지만 인적은 없다.

무성한 수풀 때문에 보이지는 않지만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걷는 발걸음에 리듬이 생긴다.

그런데 그 리듬은 조금씩 경사지어 올라가며 서서히 리듬을 잃어간다.

길을 걷다 보니 채집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나비들이 무리지어 다니는데

어느곳에서는 그 나비들이 땅바닥에 무언가 나비를 유혹하는 것이 있는지

무리지어 몰려 있다. 이 아름다운 나비들을 이렇게 모이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인적 없는 밭둑에 누군가 호박을 잔뜩 따다가 둑에 놓았다. 어느 것은 썩어 들어가고 있어

아마 이렇게 따 놓고 그냥 잊어 버린 것 같다

 

이제 서서히 언덕으로 오른다.

길을 걷다 보니 이 길은 원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인 것 같다.

지표면이 울퉁불퉁 바위들 그리고 풀 한 포기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이 길은 사람들을 위한 길이라기보다 오프로드 드라이브를 즐기는 매니아들의 길인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가끔 캠핑장비를 실은 SUV 들이 좁은 길을지나가고 있다.

그 길 옆에 벌들이 웅웅거리는 벌집통. 리딩하는 이가 벌을 자극하지 말라 한다.

 

처음에 무리지어 걷던 일행들이 서서히 간격이 멀어진다.

이 공간에는 사람과 길 숲 밖에 없다. 사람은 푸르름에 가득찬 공간에 잡힌 포로들같이 걷는다.

숲으로 난 외줄기 길. 갈라지는 길도 없다. 그냥 한 없이 걷는다.

더운 날씨임에도 숲 속이라 그런지 도시처럼 열기는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열기를 나무들이 먼저 흡수하고 남은 열기만 있는 듯 걷기는 한결 수월하다.

가파른 언덕도 없고, 넓어지는 길도 없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숲 속길은

다른 이정표도 없다. 자주 배낭을 풀고 내려 앉고 싶을 만한 숲속의 계곡물들.

 

이전에 친구들과 설악산을 오를 때 계곡물은 여자의 치맛자락이라고 불렀다.

그 꼬임에 빠지면 점점 올라가기 싫어지니까..

 

잠시쉬면서 간식을 나누어 먹는데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난다.

일행 중 도무지 담배의 유혹을 못 참겠는지

다른 이들은 과일과 떡을 나누고 있는데

몇 명의 남자가 쪼그리고 앉아 구름과자를 먹고 있다.

 

산은 온통 야생화로 뒤 덮여 있다.

갖가지 색깔의 물봉선이 천지고 하얀 꽃이 뭉쳐 있는 이름모를 꽃, 짙은 자주 빛의 당귀

그리고 비비추같은 보라빛 꽃들... 특히 하얀 꽃은 걷는 내내 지천으로 길 옆을 덮고 있었다.

꽃의 고운 자태들이 여자들이 입은 등산복의 색깔보다 이쁘고 화려하고 탐스럽고 고고하기까지 하다.

 

자꾸 카메라를 들어 피사체를 찾아 보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한결같은 풍경들이다.

숲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높고 푸른 첩첩 산들의 무질서한 행진들.

 

이 숲 속에서 작업을 하다가 누워 쉬고 있는 인부들이 우리보고 근처에서 점심먹고 가라며 권유한다.

하긴 우리도 이제 배가 고프다. 이른 아침에 떡 하나 먹고 이제까지 걸었으니..

 

마침 길가 계곡에 적당한 공간이 있어 우르르 내려가 점심을 풀어 놓았다.

나는 준비 못했는데 아까 큰 배낭을 멘 사람들은 이것 저것 살림들을 풀어 놓는다. 

몇 명이 버너를 가져와 라면을 끓이고, 고기를 준비해 와 후라이팬에 굽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막걸리를 얼려와 한잔씩 나누어 주고,

주먹밥과 도시락을 싸온 사람들의 반찬이 가지각색이다.

이런 즐거움도 있어야 같이 다니는 즐거움이 있지.

시원한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점심을 먹으니 오전의 피로가 모두 풀리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식사시간도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밥을 먹고 걷는 길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안내자의 설명을 빌면 이전에 이 곳까지 버스가 들어왔다.

버스가 겨우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오솔길 폭이라 오프로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너무 자연을 훼손하여 이제는 그런 차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막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에 곧고 큰 나무들이 양 옆으로 도열해 있고

멀리 앞서가는 두 남자는 마치 신선들이 걷는 것처럼 보인다.

중간 중간 계곡에는 가족들이 물속에 몸을 담그고 놀고 있어 부럽기만 하고

우리도 가끔 계곡에 쉬며 일부러 발을 담그고 쉬며 걷는다.

 

가끔 금방이라도 양 옆 산에서 돌이 무너질 듯한 돌무더기들이 있어

비가 크게 오면 이 길도 막히겠다 하는 생각을 한다.

때론 길을 가다가 길 옆의 막아놓은 둑이 언덕 위에서 흘러내린 물에 쓸려 내려간 것 같은

흔적도 보인다.

 

큰 나무 숲 사이길을 걸으며 산티아고 길도 이런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도 가도 사람도 없고 마주 오는 사람도 없다.

길가의 꽃을 사람이라 생각하며 눈길을 주고

계곡의 흐르는 물이 내게 대화를 거는 친구같아 가만히 서서 거울 같이 맑은 친구의 얼굴을 본다.

자작나무 숲속의 나무들이 껍질을 벗고 내 시선을 유혹하고

여러가지 색깔의 꽃들이 나 좀 보고 가라고 아우성이라 내 걸음은 느리기만 하다.

 

나무의 그림자들이 오솔길에 천국계단같은 그림자를 만들고

우린 그 계단을 하나 하나 밟으며 걷는다.

Road to Heaven 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이 곳에선 그 어떤 슬픔도 없을 것 같다.

평지라 힘들게 걷는 것도 없고, 날씨가 뜨거워도 그다지 더운 줄 모르겠다.

 

도마뱀이 우릴 보고 도망가고, 작은 실뱀이 길에 나와 있다가 서둘러 길을 내 준다.

말똥구리가 길 바닥에 있는 동물의 배설물을 앞 다리로 크게 잘라내어 끙끙거리며 끌고 간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 보던 모습을 지금 이 곳에서 보고 있다.

 

길을 가는데 문득 넓고 황량한 밭에 집 한채가 숨어 있다.

이른바 여기가 조경동이란 곳이다 아침 조(朝) 밭 경 (耕) 동, 아침가리의 한자어이다.

이 곳에 오래 전부터 홀로 사는 이가 있었는데

최근에 그 남자가 베트남여자와 결혼하여 같이 살고 있다.

우리가 집을 구경하고 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머리를 위로 땋은 남자가

마침 차를 가지고 들어와 인사한다.

집에 굴뚝 같은 곳의 밑에 벌들이 가득 몰려 있던데 벌집인지 굴뚝인지 분간이 안간다.

집 뒤로 돌아가 보니 폐교같이 낡은 문들이 닫혀 있다.

 

그 집을 지나 다시 걷는 길.

이젠 제법 큰 밭과 집들도 보인다. 개들이 짖고,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숲길을 많이 걸어 보았어도 여기같이 긴 숲길은 처음 걸어 보는 것 같다.

옆으로 보이는 것은 높은 산맥들 뿐.

어디까지 걸어야 하나.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집들이 몇 채 있는 곳에 차에 견인하고 다니는 레저용 이동캠핑카가 있다.

무척이나 고가의 장비인것 같은데 승용차는 어디로인가 갔고 캠핑카 안에는 인적이 없다.

한국에서 저런 차를 보기 힘든데...이런 곳에는 저런 것이 집 한채 짓는 것 보다 나을까?

 

그렇게 만물에 관심을 가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다 보니

커다란 계곡에 조경동이라는 다리가 있고 그 옆에 아침가리 약초상회가 하나 달랑 세워져 있다.

이 곳이 본격적인 아침가리골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로 걸어와 여기서부터 계곡 트레킹을 한다.

나도 그걸 바라고 샌들 트레킹화를 새로 사고, 배낭의 물건들도 모두 비닐로 팩킹했건만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 우린 그 계곡으로 가지 않는단다. 

 

어쩔 수 없이 김칫국만 마신 채 세멘트언덕길을 걸어가 방동약수터로 가야 한다.

리더는 아침부터 겁을 주었다. 마지막에 깔딱 고개가 있다고..

그런데 세멘트 오르막길은 대충 완만하여 걷기에 힘들지 않지만

그 길이 너무 길어 모두 지쳐 간다.

세멘트 길이 끝나는 지점에 다시 돌바닥길이 시작되는데

그 길도 여전히 쉬운 길은 아닌다. 

 

이제까지 스틱을 2개 사용해 걸어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해 보니

한결 걸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1 시간을 넘어 걸었나?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언덕길이 한참을 걸어가니

정상에 도달했다. 그리고 부는 바람. 땀이 식어 등에 서늘함을 느낀다.

서둘러 내려가니 가파른 경사길.

걷기는 힘들지만 눈 앞에 보이는 자연의 풍경은 거의 탄성을 지를 만큼 대 자연의 모습이다.

솔잎혹파리떼들이 전혀 침범하지 못한 듯 힘차게 자란 소나무들이 즐비하고

푸르름은 도무지 빈틈이 없다.

 

지난 주 지리산 둘레길에 너무 이런 경사진 길이 많이 엄지에 이상이 생겼기에 조심해서 걸었다.

 

길이 서서히 어두워 진다.

나그네는 집이 그리운걸까? 아니면 이런 새로운 맛을 즐기는 것일까?

산에서 맞는 저녁. 멀리 노을이 물들고 산은 점점 어둠이 밀려온다.

최근들어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걸어 본 적이 없는데 이런 날도 있네.

 

참으로 색다른 경험의 트레킹이었다.

가끔 이렇게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일반 대중교통으로 가지 못하는 곳들도 가볼까나.

 

약수터있는 곳 쯤에 길이 끝나고 버스가 있는 곳에 와 시간을 보니 족히 9시간은 걸은 셈이다.

참 긴 여정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가면 이런 일은 자주 있을 것이다.

오늘도 연습하는 셈 치자.

 

돌아 오는 불꺼진 버스 안에서 모두들 자고 있는데

나는 이상하게 눈이 말똥 말똥하다.

아무래도 열정이 더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처럼 끝없이 같은 일을 되풀이하듯

끝없이 길을 걸어야만 하는 운명일까?

 

참 어려운 트레킹이었지만....

그래도 내겐 오늘 백두대간의 푸르름속에 걷다 보니

숲속의 요정처럼 내 온 몸에 푸른 잎이 돋았다.

 

또 다른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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