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 나들길 16코스 (창후리에서 덕산까지)

carmina 2013. 10. 6. 17:11

 

강화도 나들길 16코스 (2013. 10. 5)

 

10월 첫 주 토요일의 흠잡을데 하나 없는 100점짜리 맑은 가을 날씨.

 

목요일 저녁 나들길 카페 게시판에 나를 유혹하는 걷기 공지가 떳다.

다음 주에 지리산둘레길 중 험한 코스를 며칠동안 걷기로 되어 걱정은 되었지만 1착으로 신청.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나들길의 2개의 신규코스중 하나인 16코스.

올 초부터 강화도의 북쪽 지역을 중심으로 나들길이 추가로 개발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며칠 전 미리 다녀왔던 나들길 리딩하는 이가 이미 이정표가 마련되어 있으니 많은 사람 가도 괜찮은지

공지를 올렸다. 불과 하룻만에 20명가까이 신청된 것을 확인하고 강화로 출발.

걷기 끝내고 돌아올 때 출발지점으로 다시 다기가 여의치 않아

차는 풍물시장앞에 주차하고 창후리행 버스에 탑승.

평소같으면 조용한 가을 강화인데 올해는 전국체육대회, 내년 아시안게임 준비하느라

시골 풍경들이 사라지고 있다.

 

교동도를 가기 위해 배를 타는 곳인 강화도 서쪽 항구인 창후리 도착하니

내가 좋아하는 새우젓냄새가 물씬 풍긴다. 내겐 이 냄새가 엄마냄새같다.

바야흐로 새우잡이 철이라 어판장 마당에는 새우젓 담근 통들이 가득 놓여 있다.

 

가을은 이제 더 이상 오도 가도 못할 정도로 구석에 몰려 있다.

16코스 이정표 앞에 펼쳐지는 가을 황금벌판.

벼 이삭들이 고개를 너무 숙여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바닥에 무릎까지 꿇을 것 같이 실하게 달려 있다.

밭에는 수수가 익고, 콩, 기장, 고추가 익고 하늘도 익고 멀리 보이는 산까지 익어 버린 만추의 계절.

아직 바람때조차 묻지 않은 16코스 새 이정표를 확인하고 모두 힘차게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난다.

 

몇 채의 어촌 마을 동네를 지나는데 어느 집의 창고는 커다란 태양광 발전 시설이 가득 지붕을 덮고 있다.

동네에서 바다둑으로 나가는 억새가 가득한 좁은 골목길에 비가 오더라도 걷기에 문제가 없도록

제주도 올레길의 오름에서 보았던 굵은 밧줄그물을 바닥에 깔아 놓아 길벗을 배려한 정성이 돋보인다.

 

오른쪽은 밀물시 배가 드나드는 깊은 갯골 왼쪽은 끝없이 넓은 창후리 가을 벌판.

도대체 시야를 어느 쪽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행복하다.

멀리 오른편엔 석모도의 성주산과 교동도의 화개산이 한 눈에 보이고,

왼편에는 강화도의 고려산이 황금벌판위에 봉우리를 세웠다.

그러나 보기 안타까운 것은 강화본토와 교동도를 잇는 연육교가 이제 거의 마무리 되어

아직 때묻지 않은 섬 교동도가 밀려 드는 차량들로 세속화되어 갈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곳을 하나 잃어버릴 것 같아 심히 아쉽다.

 

밋밋한 바다둑길을 걸을 때 무언가 밋밋한 것을 해소하기 위해

아치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놓아 내년쯤엔

이 곳에 무언가 넝쿨들로 장식될 것같은 기분좋은 상상이 떠 오른다.

 

양쪽으로 들풀들이 가득한 평탄한 흙길.

국내의 어느 트레킹 코스에서도 보기 힘든 자연친화적인 길인 강화 나들길에는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래서 유독 운동에 자신없는 학생들과 중년들도 많이 찾고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도 자주 찾는다.

 

몇 몇 논에는 이미 추수를 하였지만 대부분의 논이 아직 추수 전이라

벌판은 마치 주윤발이 주연하였던 중국영화 황후화의 궁전 국화밭을 보는 것 같다.

갯벌로 나가는 돌선착장 끝에는 거의 모두 낚싯군들이 가을 망둥어의 손맛을 즐기기 위해

가을 햇살을 그대로 받으며 시선을 바다에 몰입하고 있어 보기에는 좋으나

가끔 둑 위에 그 들이 버리고 간 듯한 쓰레기들이 널려 있어 눈살이 찌푸려 진다.

 

잘 다듬어 놓은 둑길위로 길벗들의 웃음소리가 가을 하늘에 메아리치고 있다.

사진에 폭 빠진 길벗도 있고, 길가의 억새들을 꺽어 소녀시절의 기분을 내기도 한다.

바닷가에 핀 이름모를 국화와 갯벌 식물인 함초의 붉은 색이 잘 어울려

자연이 스스로 커다란 캔버스를 만들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물감으로 이런 색깔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늘색, 갯벌색, 꽃들의 색깔. 벌판의 색깔들...

 

길을 걷다가 문득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는 무수히 많은 새의 모습이 보였다.

저게 뭐지? 참새인가? 크기로 보아 갈매기나 까마귀는 더 더욱 아닌데..

그 중 몇 마리가 휙 날라 다니는데 모두 소리를 친다. "제비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제비무리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전기줄에 새까맣게 일렬로 앉아 있는 제비들.

서둘러 카메라의 기능을 이용해 줌의 배율을 높여 찍어 보았다.

한국의 도심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제비

그리고 남쪽 시골에 가서도 겨우 몇 마리 볼 수 있는 제비가

이 곳에서는 헤아릴수 없이 많이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환경의 청정 수준이 다른 곳과 차원을 달리 함이 느껴진다.

 

이미 추수를 끝낸 벌판에 볏짚들을 보기 좋게 말아 놓아 동물사료로 준비해 놓아

마치 화가의 조형물처럼 가을 햇빛에 반짝 반짝 빛나고 있다.

모든 것들이 기분 좋은 가을 길 걷기.

보이는 풍경들이 모두 아름다워 연신 카메라의 렌즈를 이리 저리 맞추어 본다.

 

그러다가 문득 아름답지 않은 모습에 눈살이 찌푸러져 있다

어느 낚싯군이 자신의 승용차를 도무지 올라 오기도 힘든

둑위에 길을 막고 주차해 놓았다. 이런 공중도덕 없는 문외한이 있을까?

멀리 바닷가 갯벌 끝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이 차 주인인 것 같아 

큰 소리로 차 빼라고 외쳤지만 들은 척도 안한다.

 

이 곳 바다색깔과 잘 어울리게 위장해 놓은 둑 위의 경계초소를 지나

처음 쉴 곳을 찾아 간 망월돈대. 여러차례 보수를 했었는지 석축들의 대부분이

새로 쌓은 것 같이 하얀 돌들이 햇살에 더 하얗게 빛나고 있다.

돈대 안에 수풀도 무성하게 자랐지만 사람다니는 곳 아니니

굳이 다듬을 필요가 없이 그대로 두는게 더 보기 좋겠다.

 

간식을 나누어 먹고 다시 둑을 돌아 가는데 새우잡이 배가 막힌 둑 앞에서

벽을 뚫고 앞으로 나갈려는 시위를 하는 듯 벽을 향해 반듯하게 자리 잡고

기세등등하게 벽과 대화하고 있다.

 

이 둑을 건설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 둑에도 이끼가 끼지 않았고

벽의 어디에도 손상되지 않아 이제까지 깨끗하게 보이던 사물에 명료함을 더한다.

그런 멋진 곳에 가족단위로 소풍나와 낚시도구와 취사도구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나는 왜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보고 있을까?

 

그리고 또 하나, 갑자기 역한 냄새와 함께 개 짓는 소리가 난다.

둑 아래에 보신탕용인 듯 개들이 허름한 축사에서 도망가지 못하고

인기척에 소리만 지르고 있다.

 

이 둑 건설은 아직 현재진형형인듯 막 성토한 흙들이 부드럽게 깔려 있지만

만약 비라도 오게 된다면 이 길은 걸어서는 통과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양 옆으로도 건너갈 수도 없는 형편이니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가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생길 것 같아 걱정된다.

하루빨리 성토된 곳에 잔디를 덮고, 돌이라도 덮어 놓아야 할 것 같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둑길. 비오면 우산이나 우비로야 가릴 수 있겠지만

뜨거운 폭염이 내리 쬔다면 일사병을 먼저 걱정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긴 긴 둑길 끝 잔디를 잘 다듬은 계룡돈대에 도착해 점심 도시락을 즐겼다.

어제 저녁 오늘의 이 뜻 깊은 16코스 첫걸음을 기리기 위해 

특별한 야외의 만찬을 내 나름대로 준비했다.

스페인 레드와인과 훈제 오리.

어떤 이는 라면을 준비하고 어떤 이는 먹음직한 묵은김치주먹밥, 오곡밥도 있고

김밥 또한 오늘은 유난히 맛있다.

 

식사를 하고 여느때 같으면 정리하고 길을 떠났을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누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닌데 

하늘을 향해 식사를 끝낸 비스듬한 자리에 누워 버렸다.

그리고  하늘과 누워서 본 황금벌판이 아름답다고 이구동성으로 소리치고 있다.

 

둑을 내려왔다.

덕산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용두레 마을을 지난다.

주말인데 부모와 농촌체험을 나온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식당을 찾아가

화장실을 이용하고 수통에 물을 채웠다.

용두레는 논에 물을 퍼 나르기 위해 그네처럼 만든 전통 농기구이다.

마을 길가에는 사과가 익고 감과 밤이 익어가고 있다.

줄이 긴 그네가 있어 동심으로 돌아가 그네도 타보는 길 벗들..

우린 오늘 모두 기분이 하늘로 날라갈 것 같다.

 

용두레 마을을 지나 오른 쪽에 황청저수지에 사람들이 낚시 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 사람들과 물고기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덕산으로 가는 언덕으로 올라간다.

다듬어지지 않은 흙길, 돌길.

약간 경사가 진 긴 언덕이라 사람들이 힘들어 한다.

그러다 우르르 사람들이 길 옆 숲으로 들어가 한참 있다가 만면에 미소를 가득 담고 나오는데

주머니에는 토실토실한 밤톨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 길이 이상하다.

길 바닥에 MTB라고 써 있는 것이 자주 보인다.

올라가다 보니 어떤 이들이 길에 하얀 띠를 두르고 있다

띠에 써 있는 내용이 전국체전 산악자전거 코스. 아하...

올해 인천 전국체전 종목중 산악자전거는 강화도에서 열리나 보다.

양옆으로 커다란 나무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덕산으로 가는 넓은 숲길이 이제 막  세멘트길로 포장되었고 

양 옆이 흰 띠로 이어져 있다.

 

이런 평평한 길이 얼마나 이어질까?

모두 깔깔거리며 숲길을 걷다가 보니 문득 눈에 익은 길이 나온다.

바로 5코스의 내가 마을에서 덕산으로 올라오기 위해 올라오는 언덕길이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과 만나고 있다.

 

원래 16코스의 종점은 내가면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오늘 우리는

덕산을 넘어 외포리로 가기로 했다.

우리가 늘 쉬던 정자에는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어

다른 정자를 찾아 잠시 여흥을 갖고 익히 알던 외포리가는 길을 찾아가는데

어? 이런 좁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숲길을 MTB 경기를 위해 인위적으로 넓혀 놓았다.

물론 걷기에는 편하지만 어째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러나 경기가 모두 끝나면 다시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겠지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숲길은 나들길 5코스가는 길을 막아 놓았지만 우린 눈에 익어 제 길을 찾아갔다.

 

이렇게....

오늘 이제까지 걷던 나들길 경험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걸은 것 같다.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과연 17코스는 어떤 모습일까?

 

또 다른 기대를 가져 보자..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