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4코스 왕복

carmina 2013. 10. 2. 20:22

 

걷기 본능 (2013. 9. 28)

강화 나들길 4코스 왕복 (해가 지는 마을길)

 

가을 맑은 하늘 아래 강화의 황금벌판이 눈에 아른 아른 거려

도무지 그냥 지나치면 안될 것 같아 토요일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장삿속으로 각 지역마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벌리는 각종 축제가 아닌

자연의 축제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러나 문을 나서니 일주일 내내 맑았던 하늘엔 구름이 가득.

우산을 챙기지도 못했는데 버스 창에 빗방울이 한 두방울씩 빗겨 떨어진다.

그러나 차창 밖 도로변에 활짝 피어있는 코스모스들이 기분 좋게 한다.

 

오늘 나들길 코스 중 가장 짧은 코스인 4코스를 걷고

점심은 외포리 부근에서 대하구이가 예정되어 있어 기대감도 있다.

 

출발 전 준비운동으로 몸을 푸는 스트레칭 시간에

리딩하는 분이 준비해 온 국민체조 음악에 맞추어 몸을 풀면서

학교 다닐 때 교정에서 아침 조회시간의 추억으로 돌아가 본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던 그 우렁찬 구령 소리와 음악,

나이 들면서 참 많은 것이 잊혀지고 있다.

 

출발 지점인 허브향기를 지나 개울가 옆에 있던 포도밭에는

이미 수확을 모두 끝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수확 후의 잔가지들이

포도밭 구석에서 익다만 포도송이들 매단 채 말라가고 있다.

 

가릉으로 가는 언덕 길.

가을 꽃이 화려함을 뽐내는 그 길가에 밤나무에서 떨어진 굵은 밤송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데 어떤 녀석은 이미 누군가의 손을 거쳤고

어떤 녀석들은 나무 아래 그늘에서 터지지 못한 밤송이들이 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알이 굵지 않아 사람보다는 동물들의 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가릉 앞 잔디를 다듬는 아주머니들이 옹기 종기 모여 앉아 잡초를 뽑으며 겨울을 준비하고

그토록 푸르던 가랑의 잣나무들 사이로 말라죽는 나무가 보여

혹시 요즘 유행하는 소나무 에이즈인가 하여 걱정이 된다.

 

잣나무 숲을 지나 걷는 길.

걷기에 푹신한 숲길이다. 나들길 3코스의 끝 부분 2시간 거리와 4코스 초입의

1시간 거리는 그야말로 숲길의 다이아몬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길이 좋다.

아마 3시간을 숲 속에서 그렇게 걸으면 모든 병이 치유될 것만 같다.

같이 걷는 길벗들이 움직임이 바람에 흔들리는 금빛 억새같아 보기좋다.

 

길을 걷다 보면 작은 시냇물이 있고, 간혹 이름 모를 무덤들

지저귀는 산새들. 간혹 나무 사이로 멀리 보이는 황금벌판

야생화와 야생열매들, 모든 것들이 자연이 마련해 준 길 위의 선물들이다.

 

이 길은 나들길 중 짧은 코스이다 보니 별로 찾아 오지 않아서인지

길을 걷는 것도 마치 새로운 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가끔 이 전에 다니던 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른 길로 돌아가게 만들었고

나무에 걸려 있는 이정표도 오래되고 낡은 것이 많아 그대로 두면

강화나들길이라는 글씨도 사라지고 나무의 일부분이 될 것 같다.

마치 무덤을 돌보지 않은 채 그대로 두면 몇 년 후 그대로 숲 속의 작은 언덕이

되는 것 처럼

 

룰루 랄라 길을 걷는다.

작은 시냇물을 건너 뛰며 요들송을 부르고

언덕을 오르며 하이킹 노래를 부르고

숲 속을 지나며 아가씨들아캠프송을 부른다.

 

추석이 지나서인지 숲길들과 산소들이 벌초가 되어 있어 걷기 편했다.

아니면 군청에서 겨울 이전에 정리해 놓는다고 오솔길들을 정비했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걷는 길에 풀이 무성한 곳은 없었고

갓 벤 풀들의 흔적이 가득한 것으로 보아 작업한지 오래 안 된 것 같다.

여유롭게 걷는 길. 늘 같이 걷는 일행들이라 오손 도손 얘기가 늘 끊이지 않는다.

산행은 올라갈 때는 거의 대화가 안될 정도로 힘들고

내려 올 때도 조심하느라 얘기를 나누기가 쉽지 않은데

길걸음은 숲과 함께 대화를 즐겨서 좋다.

 

멀리 산에 바람이 분다. 아니 부는 것처럼 보인다.

날씨가 흐려 뿌연 안개에 덮힌 산. 산이 거기 있어 좋다.

나무들 사이로 사람들이 스며든다.

숲의 푹신함으로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고

가끔 오솔길에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렇게 긴 숲길을 지나가는데 문득 반대편에서

사람들이 밀려 오고 있다.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4코스를 역으로 걷고 있다.

가끔 안내하는 젊은 사람들이 일행들을 소 몰듯이 몰아가고 있다.

 

갈멜산 기도원 앞을 지나며 매번 여기를 지날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좋은 곳에 기도원을 가진 교회가 부러웠다.

주로 토요일 오전에 이 곳을 지나치기에 인적을 본 적은 없지만

늘 깨끗하고 조용한 이 곳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기도원 앞을 지나 정제두선생 묘 앞에서 간식을 나누어 먹고 다시 길을 떠난다.

하우 약수터로 가는 도로 옆에 코스모스 행렬이 아름답고

군청에서 이 곳에 여러가지 색깔의 바람개비를 많이 세워 놓았다.

운전하는 이가 시골길의 지루함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걷는 우리에겐 속도를 내는 차량들 때문에 안전이 걱정된다.

도로 조금 안쪽으로 작은 길이라도 할애해 주면 좋으련만...

 

사람들 없는 썰렁한 하우약수터 주변에 고마리꽃이 지천으로 깔려 있어

수없이 많은 야생화가 지금 강화를 더 빛내고 있다.

예쁜 펜션 앞을 지나니 이제 멀리 외포리 바다가 보인다.

그 근처 길가에 열린 참외들, 작은 수박들...

따가지고 와도 될 법한데 우린 모두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길가의 고구마 밭에서 마을 사람들이 고구마를 캐고 있기에

인사했더니 커다란 고구마 몇 개를 우리에게 던져 준다.

가지고 있는 맥가이버 칼로 쓱쓱 껍질을 벗겨내어 먹어 보니

아직 맛이 덜 들은 것 같다.

고구마는 캔 뒤 금방 먹지 않고 어느 정도 햇빛에 말려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가을 햇빛에 곡식이 익고, 과일이 익고, 농부의 마음이 익는다.

길가 마을에 사람들이 농기구를 정비하고 있기에 인사하며 지나가고

이건창묘에 올라 잠시 휴식과 여흥시간을 갖는다.

내가 코스모스를 노래하고, 다른 이가 보리밭을 노래하고

또 다른 이가 스페인노래를 부르니 길벗 중의 한 사람이 일어나

흥에 겨워 춤을 춘다. 그 모습이 얼마나 이쁜지...

 

건평포구의 선착장 끝에는 사람들이 망둥어 낚시를 즐기고 있다.

가을 망둥어는 알이 굵어 제법 낚시하는 즐거움이 있다.

포구 앞 작은 쉼터에 어떤 이들이 작은 새우를 잡아 정리하고 있어

기웃거리며 보니 겨울김장에 쓰이는 하얀 김장새우다.

지금 시기에 강화 앞 바다에 김장새우가 많이 잡혀

멀리 보이는 바다에도 새우잡이배가 그물을 끌고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어부도 농부도 바쁜 가을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점심으로 예정된 대하구이.

외포리로 가는 길 오른 편에 길벗의 아는 이가 장사하는 곳에 들어가

맛있는 대하소금구이를 먹고 새우의 머리도 바싹 구워 남김없이 다 먹어 버렸다.

소금을 두텁게 깔고 달궈진 팬에 펄펄 뛰는 새우를 던져 넣고 얼른 유리뚜껑을 닫는다.

새우들이 덮힌 뚜껑안에서 펄펄 뛰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서서히 벌겋게 익어가는 새우들...

생새우를 몇 마리 먹느라 새우를 손 안에 잡고 있으니 새우의 심장고동이 툭툭 느껴진다.

미안하다. 새우야...넌 오늘 내 점심밥이다.

 

새우구이를 다 먹고 새우를 몇 마리 넣은 라면까지 포식한 후

비록 4코스의 도착점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오늘의 걷기는 여기서 끝내고

일행들은 강화포도축제에 간다기에 나와 몇 명은 아무래도 하루 걷기가 미흡한 것 같고

더 걸을 수 있는 여력이 있어 왔던 길로 다시 가기로 했다.

 

다시 그 숲으로 돌아가고 싶다.

 

내려 올 때는 룰루 랄라 걸었던 길이 다시 올라 갈려니 땀이 흐른다.

오늘 따라 유난히 많이 보이는 오솔길의 두더지 구멍.

유심히 보니 두더지 한 마리가 막 나올려다 들어 간 듯

구멍 앞에 작은 풀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돌아가는 길은 역방향 이정표가 제대로 안되어 있어

그토록 많이 다녔던 우리들도 갈림길에서 헤맬 때도 있었다.

 

아까 사단법인 주관으로 이 길을 지나쳤던 사람들이 남긴 일회용으로 코팅된 이정표가

여기 저기 덕지 덕지 길바닥에 전신주에 벽에 붙여 있는데

이 사람들이 이 이정표를 모두 회수할까? 궁금하다.

 

순방향으로 걸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문득 문득 시야에 들어온다.

몇 명이 걸으니 걸음 속도가 빠르다.

 

어느 마주오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손에 들고 있던 포도송이를 건네 주고 지나간다.

하우약수터에 사람들 몇 명이 돗자리를 피고 돌다가 돌아가는 뒤에

코에 점이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우두커니 앉아 있다.

대개 이런 고양이는 사람이 오면 피하는 법인데...

우리가 벤치에 앉았더니 고양이가 우리에게 와서

이뻐해 달라고 우리 다리에 머리를 부벼댄다.

포도 송이를 던져 주었더니 먹지 않다가 배낭에서 쏘세지를 꺼내 주었더니 받아 먹는다.

그리고 우리가 떠나 갈 때 따라 올줄 알았는데 약수터 앞에 그대로 앉아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다시 긴 숲길로 들어선다.

불과 서너명이 걷는 숲길이 아까 몇 십명 걸었을 때와 느낌이 사뭇 다르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데 이렇게 느낌이 다르니

계절이 바뀌면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계절마다 나들길을 찾는다.

 

길벗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여기 저기 국내의 다른 둘레길을 다녀 보지만

나들길같이 걷기 좋은 길이 없다고....

 

나도 동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