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온다 (나들길 5코스)

carmina 2013. 9. 7. 22:45

 

2013년 9월 7일

 

아침에 강화나들길을 가기 위해 오른 버스 안에서 들리는 노래

조동진의 나뭇잎 사이로.

 

나뭇잎 사이로 파아란 가로등 / 그불빛 아래로 / 너의 야윈 얼굴
지붕들 사이로 좁다란 하늘 / 그 하늘 아래로 /사람들 물결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 / 거리엔 어느새 서늘한 바람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고 가는데 / 우린 또 얼마나 어렵게 사랑해야 하는지

나뭇잎 사이로 별이 별 하나 /그 별빛 아래로 너의 작은 꿈이.....

어둠은 벌써 밀려왔나 / 거리엔 언제나 정다운 불빛
그 빛은 언제나 눈 앞에 있는데 / 우린 또 얼마나 멀길을 돌아가야 하는지

나뭇잎 사이로 파아란 가로등 / 그 불빛 아래로 너의 야윈 얼굴

여름과 가을 사이의 정경을 노래로 그리고 있다.

 

여름이 가고 있다.

한달 전만 해도 살인적인 폭염으로 지리산안내센터에서 나보고 둘레길을 걷지 말라 했다.

아니, 내가 서울에서 내려간다 했더니 내려 오지 말라 했다.

그런 폭염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처서에 비가 한 바탕 내리더니

폭염이 계곡에 물내려가듯이 씻은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조금씩 서늘해 지는 날씨.

아침이면 저절로 들어오는 에어컨바람이 좋았는데

이젠 아침에 이불을 덮고 자아햐는 본격적인 가을의 계절이 왔다.

 

여름내 그토록 푸르러서 도저히 풀이 꺽일 것 같지 않던 논의 벼도 머리를 푹 숙이고 있고

머리부터 서서히 노란 빛으로 염색하고 있다.

 

여름에 뜸하던 나들길벗들 발길도 다시 많아지고

삼삼 오오 정든 얼굴들 낯선 얼굴들이 터미널로 몰려 든다.

 

나들길 5코스, 고비고갯길. 처음엔 그토록 먼 길이었는데

이젠 그 정도야 가뿐히 걷는다.

리더가 오늘의 코스와 대략 시간을 알려주고 처음 온 사람들은 조금 힘들거라는 멘트로

미리 겁을 준다. 하긴 처음 나서는 사람에게 20키로를 걷는다는 것은 조금 힘든 걸음이다.

 

터미널 주위는 오늘이 장날이라 차들이 길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다.

또한 강화로 들어오는 길도 벌초를 위한 차량들이 많아 거의 도심지 출근길 러시아워 같다.

 

길을 가다가 떡집이 떡 몇 개 사고 아직은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아침의 도심지 거리를 걸었다.

숲 속으로 들어가기 까지는 아무래도 땀 흘리는 고생의 시간이 될 것 같다.

 

강화가 변하고 있다.

여기 저기 길을 새로 내고 좁은 길이 넓어졌으며, 커다란 공공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내년도에 있을 인천 아시안게임을 위해 커다란 태권도 경기장도 지어지고 있고

그동안 좁았던 김포-강화도로가 넓게 확장되어 포장하느라 오늘도 길이 막혔었다.

 

국화리 저수지 둑에 무릇이 가득 피어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바람한 점 없는 날씨 덕분에 저수지 수면은 거울같이 움직임이 없다.

비오는 날 수면 위를 치솟아 오르던 물고기들은 오늘 파업이다.

 

숲으로 가는 길에 할아버지 한 분이 배낭을 메고 인사하는 내게 물으신다.

오늘이 휴일이야?

네. 토요일입니다.

그 분들에게 토요일이, 일요일이, 월요일이 무슨 상관 있으랴.

단지 내 모습을 보고 휴일이겠구나 생각하셨겠지.

 

지난 봄에 집 앞에 작은 텃밭에 콩을 심던 할머니께서

튼실하게 자란 콩나무밭에서 일하시다가 인사하는 내게 환한 미소를 받아 주신다.

 

5코스 가는 길 옆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오래된 집이 2채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 지나가다 보니 그 집들이 헐려지고 있다. 안타까와라.

제발 나무만은 그대로 두길...

 

길 옆의 외양간에 엄마소, 애기소들이 잘 자라서 외양간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다.

난 왜 이런 냄새가 좋지?

 

숲 속으로 들어간다. 더위가 사라졌다.

올해 비가 많이 와 숲속의 오솔길들이 바위들이 모두 드러나 보이고

군데 군데 길이 상해 있었다. 이제 다시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에 눈이 샇이면

흙들로 채워 지겠지. 자연은 인간이 할 수 없는 놀라운 자생능력이 있으니..

나무들이 뽑혀져 길에 누웠고 들어나 흙위를 들풀들이 메꿔간다.

 

학생야영장에서 잠시 쉬며 간식을 나누어 먹고 다시 숲으로...

나들길이 다른 국내의 둘레길과 다른 점이 이런 숲길이 많다는 것이다.

일부러 나들길을 위해 만든 길이 아니고

오래전 부터 마을 사람들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진 길들.

그 길들이 길벗들의 발길들로 다져지고 있다.

 

비록 그 숲길들이 자연 피해로 조금씩 손상되고 있지만

이 또한 치유되리라.

 

지난 여름 폭우가 오던 날 빗물이 계곡으로 흘러 내려 힘들게 걸었던 길이

오늘은 깊게 패인 오솔길을 웃으며 지나가고 있다.

 

숲길을 걸을 때 새로 걷는 사람들이 숲 속의 친구들을 만나며 신기해 한다.

쑥부쟁이, 개망초, 물봉선과 이름을 알려 주지 않는 친구들.

낯선 것들과의 만남. 눈 마주침. 이게 숲 속 트레킹의 진실이다.

비록 처음이라 낯설어 다음에 만날 때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때 또 물어봐서 알면 되겠지. 어떤 이들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다음에 또 알면 되지.

 

멀리 파란 하늘 밑의 낮은 산들에 녹음이 우거져 있다.

그런데 길 옆에 돌연변이처럼 온통 잎이 노란 은행나무가 있다.

왜 저렇게 변했을까? 다른 나무들은 아직 노란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참..세상은 별 놈 다있어.

 

다시 또 이어지는 세멘트 길.

가끔 강화의 구석 구석을 즐기려는 가족들을 승용차가 지나가고,

우린 비록 열기가 식은 여름 태양이지만 서서히 지쳐간다.

이 길도 4년 째 걷다 보니 길 옆 어느 집에 있는 흰 개도 제법 덩치가 커 버린 것 까지 알 수 있다. 

잠시 쉬자 했더니 바닥에 드러 누운 사람도 있다.

오상리 고인돌에 와서 좀 오래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 온 사람들이 힘들어도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한다.

 

내가면 저수지로 가는 숲길의 소나무 숲이 오늘따라 더 무성해 보인다.

영지버섯은  누군가 따갔는지 기둥만 남아 있고

익지 않은 커다란 잣나무 열매가 숲 속에 뒹굴고 있다.

누군가 잣나무 열매를 음식쓰레기통 속에 넣으면 냄새가 안 난다는 팁을 알려 준다.

 

내가면 저수지의 둑길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공사가 한창이다.

이전의 둑 모습도 좋았는데...

 

다른 사람들 공사하는 흙길을 걸을 때 나는 일부러 탁 트인 시야를 보고 싶어 논둑길로 걸었다.

햐얀 세멘트길.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길 같았다.

늘 가던 내가면 밥집에서 맛있는 동태찌게를 먹고 덕산으로 올라간다.

날씨가 조금 시원해져서인지 산책나온 가족들이 많이 보인다.

 

덕산은 5코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다.

넓은 숲길. 양 옆으로 울창한 숲에 죽죽 뻗은 나무들이 가득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그 나무들 사이로 숲 바람이 불어 올 것 만 같다.

 

덕산에서 능선을 따라 외포리로 가는 길.

여기 저기 아줌마들의 손길을 유혹하는 열매들이 있다.

길을 가다가 뒤에 처지는 사람들 있으면 여지없이 그 열매들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늦게 온 길 벗이 탐스런 밤송이 2개를 내 손에 쥐어 준다.

 

오늘 따라 굿당은 더 조용해 보인다.

그리고 오늘 따라 검은 날개를 가진 나비들이 굿당 앞 수풀에 가득 몰려 있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처럼 아름다운 장면이다.

 

우리는 모두 오늘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세리모니에 참석한 것 같다.

 

10월의 황금벌판이 기대가 된다.

추석이 지나고 사람들이 산소에 절하는 것 처럼

곡식은 더 고개를 숙일 것이고 그 겸손함이 모두 황금으로 변할 것이다.

 

나들길은 적어도 계절마다 한 번씩은 와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오늘은 카메라의 메모리카드에 이상이 있어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