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추락하는 가을길에서.. (나들길 3코스)

carmina 2013. 10. 31. 14:44

 

2013. 10. 26

강화도 나들길 3코스

 

금요일 저녁이면 내일의 걷기를 위해 배낭을 정리하고,
간식을 사서 챙겨 넣고, 알람 셋업해 놓고,
옷도 아침에 입을 옷을 찾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거실에 놓아 두고
카메라 밧데리 상태 체크해 놓고, 내일 날씨도 검색해 본다.
내일은 나들길이 어떤 모습으로 내 눈에 비쳐질까?
같이 걷는 길벗들은 어떤 미소들을 지을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그야말로 티없이 맑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

걷기에 이처럼 좋은 날이 있을까?

그러나 어제부터 날씨가 조금 추워졌다.

겨울 파커를 입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조금 더운 것이

추워서 감기드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

더우면 입을 조끼는 배낭에 넣고 파커를 입고 나왔다.

나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옷을 겹겹이 껴 입고 왔다가

하나씩 벗는 사람들이 있다.

 

나들길 3코스를 역으로 걷기 위해서는

강화도 탑재 삼거리에 있는 허브향기에서 모여 떠난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면서 보니 그 근처에서 공사를 하고 있고

허브와 커피를 팔던 허브향기는 폐업하고 말았다.

예전부터 이런 외진 곳에서 허브관련 사업이 될까 하는 걱정도 했지만

결국 두터운 대문을 꼭 닫아 걸었다.

그 앞에 참새 한마리가 상처입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말라 죽어 있다.

불심 좋은 일행 한 명이 참새를 휴지에 싸서 양지 바른 곳으로 보내 주었다.

 

다같이 국민체조 맞추어 준비운동을 하고 걷다가 가릉으로 가는 개울물가에

알이 작은 사과나무가 눈을 끈다.

전혀 비료를 주지 않은 작은 사과가 맛있을 것이라며 모두 눈독을 들인다.

그리고 길 옆에 핀 빨간 한련화도 관심을 갖지만 그대로 두는 것이 미덕이다.

 

말끔하게 단장 된 가릉 주위에 사계절 푸르렀던 잣나무 숲에

이상하게 누렇게 변한 잎들이 많이 보인다.

겨울에도 푸르러야 할 잣나무가 소나무 에이즈에 걸렸을까?

나무가 이 병에 걸리면 모두 잘라버린다는데 이 울창한 나무들이 사라지는 것일까?

자꾸 마음이 쓰인다.

 

잘 다듬어진 잔디의 언덕을 보니 문득 누워서 굴러 보고 싶어

배낭을 내려놓고 주머니의 꼭 닫은 뒤 두 팔로 고개를 감싸고

옆으로 길게 누워 구르기 시작했다. 하늘이 팽팽 돈다.

 

가을의 빛깔이 완연한 숲으로 들어간다.

이 길은 진강산으로 올라가는 길이기도 하다.

오솔길 옆에 진강정이라는 이름으로 정자를 최근에 세워 놓았는데

정자내에 강화 길을 찾아다니며 곳곳의 아름다움을 시로 지어 남긴

조선시대 학자 화남 고재형씨 시와 강화팔경 중의 하나라는 진강귀운의

사진이 걸려 있는데 아침이나 저녁에 진강산 중턱에 걸려있는 구름이라 하는데

이걸 꼭 왜 귀운이라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리산둘레길을 다닐 때 아침이나 저녁에 이렇게 산에 걸친 구름은 자주 보는 편이었는데

여기서는 이것을 귀운이라 표현한다.

하긴 내 고장 것은 풀한포기라도 아름답고 귀한 것.

 

3코스의 멋진 길들이 펼쳐진다. 낙엽송들이 하늘높이 뻗는 숲길.

이 길은 저절로 만들어진 길일까? 아니면 일부러 나들길을 위해 만든 길일까?

오래전부터 이 길을 다닌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내가 나무처럼 저렇게 오랜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을까?

낮은 자세로 길벗들의 사진을 찍어 보니 나무들은 더 크고 울창한 모습이 보여진다.

그러나 그렇게 죽죽 뻗은 나무 사이로 보이는 삐뚤 삐뚤 소나무들.

자연스러움이 또한 좋다.

 

가끔 숲 사이로 마을이 보이고 멀리 바다도 보인다.

밭에서 일을 하다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 마을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문득 길가 잡초속에 이젠 이 숲속에서 모두 사라져 버려야 하는 잠자리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잠자고 있다. 

카메라를 가까이 가져가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대로 죽은 채로 미이라가 되는건가?

 

길벗들이 지나간 뒤의 숲을 보니 우리가 지나온 자리에 촘촘히 나무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큰 나무들 사이를 지나 언덕에 공간이 있기에

저 곳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생긴다.

나같은 욕심이 자연을 더럽히는 걸까?

나의 그런 욕심을 언감생심이라며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들이 있다.

가톨릭대학교 부지라며 팻말이 있는 곳에 누군가 길벗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남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조소상이 여기는 내 땅이라며 욕심갖지 말라고 말하는 듯 하다.

 

길을 가다가 유난히 담쟁이 덩쿨이 많은 숲길이 있다.

담쟁이들이 나무들을 휘감고 올라가 그 곳에 몇 개 나무는

덩쿨에 휩쌓여 숨을 못쉬어서인지 말라 죽어 버렸다.

가시박이 나무도 그렇게 나무와 숲을 덮어 버려 말라 죽게 하고 떠나더니

이 담쟁이도 그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며 자신만의 삶의 방법을 택한다.

 

숲 속에 깊은 골이 패인 곳으로 난 길을 올라 갈 때

문득 저 위에서 산더미만한 큰 돌이 나릉 향해 우두둑 소리를 내며 굴러 올 것 같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처럼...

난 이것도 병이다..

가끔 내가 사는 삶이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상상..

아마 영화 매니아들은 모두 나같은 착각속에 살 것 같다.

 

단풍나무가 없는 길이라 산에 붉은 빛은 보이지 않지만

다른 나무들이 노란 색깔로 가을을 얘기하고 있다.

천천히 내려가는 언덕길에 낙엽이 가득 쌓여 있다.

나이 들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런 길을 천천히 걷고 싶다.

 

오래 전 이 곳에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에 피난왔던 왕들이

이런 곳에서 산책을 했을까?

살아 생전 다시 한양으로 갈 수 없어

이 곳 땅에 묻힌 왕들의 무덤이 다른 지역의 무덤에 비해 상당히 초라하다.

무덤을 세우는 것 조차 치욕의 왕과 왕비들의 무덤들이

이젠 따뜻한 양지밭에서 해바라기나 하고 있다.

작은 묘앞에 비문조차 희미한 비석에 겨우 겨우 추측되는 한자어들을 더듬어본다.

 

이제 숲길이 끝나 마을길로 내려 온다.

숲 길 끝나는 곳에 똑같은 집 몇 채가 몇 년째 세워지고 있었는데

아직도 공사를 끝내지 못하고 있다.

한 때 난립했던 강화의 펜션들도 이젠 사업을 접는 사람도 많아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유령의 집같은 펜션도 있다.

 

한적한 시골 도로를 걷는데 길 가 바로 옆의 유독 다른 무덤들에 눈이 간다.

무덤이 죽 줄지어 있는데 그 어느 곳에도 비석이 없다.

가묘일까? 아니면 바로 옆에 있는 집들 소유의 무덤일까?

늘 양지 바른 곳에 있고 늘 바라 볼 수 있는 곳에 부모님이 계신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제주도의 올레길 처럼 밭 한가운데 무덤을 만들어 농사일 할 때 언제든

부모님과 함께 있다는 기분으로 노동을 하면 힘들어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길가 주택의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고추들과 곡식들에서

빠지직 하며 가을햇살에 말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단독 가옥 둘레엔 각종 가을 꽃들을 심어 놓아 그냥 지나치기에 아까울 정도이다.

검은 천으로 덮혀진 넓은 인삼밭 속에 짚으로 덮어놓은 곳 위에 색고운 잎들이 있어 눈여겨 보니

인삼의 잎들이 단풍이 들어 가고 있다.

 

지난 여름 혹서기에 저수지의 물이 모두 말라 바닥을 들어 내어 그 바닥을 걷던 곳에

이젠 물이 가득 차고 낚시꾼들이 여기 저기 길게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통째로 노랗게 물든 나무 밑에서 노란 등산복을 입은 길벗이 낮잠을 즐긴다.

저대로 잠들어 버리면 얼마나 꿈같은 낮잠일까?

2인용 흔들의자 그네에 앉아 오손 도손 얘기를 나누는 자매의 모습.

마당에 호박이 뒹굴고 있고, 장독대 옆에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잎이 붉은 산수유 나무에서 빨간 열매가 열리고

멀리 언덕에서 소풍 온 사람들이 바비큐를 즐기고 있다

모두가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코스에서 늘 점심을 먹는 야콘냉면에서 특별히 만들어 준

야콘 비빔밥과, 야콘전 그리고 야콘 만두가 입에 착착 달라 붙는다.

식당 앞의 머루 덩쿨에 머루가 잔뜩 열렸었는데

수확을 일부러 안했는지 모두 말라서 쪼그라든채 매달려 있다.

 

식사 후 긴 둑을 가로 질러 올라가 천천히 걷는다.

지난 여름 실컷 따 먹었던 산딸기는 흔적도 없어져 버리고

가끔 둑에 핀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며 저수지의 맑은 물과 대화를 하고 있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난 휑한 벌판이 멀리 보이고 마을 사이로 논 사이로 난

긴 길이 내 발길을 유혹한다.

 

그렇게 신선이 사는 듯한 숲을 지나고 벌판을 지나

마을로 오니 길에도 집에도 인적하나 바람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다.

몇 백년 마을을 지켜본 느티나무도 서서히 겨울을 준비한다.

수확 시기를 놓친 수숫대가 꼬들 꼬들 말라가고

온수리 동네의 돌담장을 덮은 담쟁이도 서서히 빛을 잃어갈 때

이젠 우린 겨울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가을은 추락하고 있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