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14) 옛날은 가고 없어도

carmina 2013. 11. 6. 11:35

 

옛날은 가고 없어도

(손승교 작사, 이호섭 작곡)

 

더듬어 지나온 길 피고지던 발자욱들

헤이는 아픔대신 즐거움도 섞였구나

옛날은 가고 없어도 그 때 어른거려라

옛날은 가고 없어도 그 때 어른거려라

 

그렇게 걸어온 길 숨김없는 거울에는

새겨진 믿음아닌 뉘우침도 비쳤구나

옛날은 가고 없어도 그 때 어른거려라

옛날은 가고 없어도 그 때 어른거려라

 

이전에는 아내와 가끔 휴일이면 음악실이라고 우리끼리 명명한 작은 방에서

손때가 가득 묻은 한국가곡집 3권을 피아노 위에 올려 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 한 장 들쳐가며 눈에 익은 노래들을

아내가 피아노치고 내가 혹은 아내가 노래를 부른다.

이 시간들이 참 행복했는데 나이들어 맑던 내 목소리도 갈라지고

밋밋하게 살다보니 이젠 이런 기회도 별로 없다.

 

한국 가곡은 거의 모든 노래가 참 서정적이다.

그래서 영어로 가곡을 Lyric Song 이라 부른다.

가곡은 노래로 불러도 좋고 시로 읊어도 좋은 가사들.

가곡을 부르면 아득한 시절이 머리에 떠오르고

아름다운 풍경이 눈 앞에 그려진다.

 

나는 그 어떤 노래보다 가곡을 좋아하기에

강화 나들길을 걸을 때는 아름다운 자연에 어울리는

가사를 가진 많은 가곡들이 내 머릿속 데이타베이스에 가득하여

입에서는 늘 가곡이 흥얼거려진다.

 

강화 나들길 교동도 다을새길을 걷다 보면 죽도항이란 곳이 있다.

배가 닿기에 항구라고 이름 붙였을텐데

이젠 항구의 흔적조차 찾아 보기 힘들다.

그러나 그 곳에 죽도항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항구에 배가 많이 정박해 있어 배의 돛대가 마치 대나무숲을 연상할 정도로

많아 죽도항이라 지었단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살았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뱃사람들의 힘든 세월들, 그러나 그물 가득히 걸린 고기들을 싣고

노을이 물드는 바다를 뒤로 하고 항구로 돌아오는 어부의 기쁨은 어떠했을까?

지금도 죽도항 근처에는 빛바랜 그물들

그리고 이미 퇴역한 지 오래되고 방치되어 배 안에서 풀이 돋는 배도 보인다.

 

이 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마을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그 때를 회상하면 틀림없이 옛날에는 참 좋았었지 하고 생각을 할 것이다.

 

교동도의 화개산을 넘어 대룡마을로 가는 길의 왼쪽 계곡에

자연을 이용하여 만든 한증막이 있다.

계곡 옆에 돌을 무덤처럼 쌓아 돔을 만들고

그 안에 참나무로 불을 때어 열기를 가두어 둔 뒤

입구로 기어들어가 찜질을 하던 옛날 사람들.

찜질 후 나와 계곡물을 몸에 끼얹을 때의 그 시원함.

그 모습이 지금은 유적으로만 남은 한증막을 보면서

당시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김홍도의 그림처럼 머리속에 그려진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몇 백년 전 사용하던 유적들과 유물들을 아직도

사용하는 곳들이 많은데 우리는 이런 멋진 문화들을 덮어 버리고

모두 새것으로만 이용한다.

 

옛것에 집착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지만

옛것을 잃어 버리는 것도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과거의 내가 없다면 현재가 내가 없듯

과거의 선인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 모습도 없었을 것이다.

늘 과거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지난 주에 강화도 나들길 서쪽 코스인 16코스를 걷다보니

강화도와 교동도를 연결하는 연육교가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다.

이 연육교로 인해 자가용을 탄 사람들이 밀려오고

옛것이 있던 자리에 새 것을 만들어 놓아

자라나는 세대들이 옛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현실이 되어버릴까봐

생각할 수록 안타깝기만 하다.

 

조용하던 교동도의 대룡마을 골목이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시끄럽고

XX이발소가 OO헤어샵으로, XX약국이 OO메디팜으로

교동도 농산물로 손님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던 식당들도

사람들이 몰려 외국에서 수입하는 물건으로 요리할 수 밖에 없는 현실,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가 좋던 오솔길에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길가의 꽃이 만발한 숲 속에 소주병, 맥주병, 먹다 남은 음식쓰레기들이

보일 것을 생각하니 '옛날은 가고 없어도' 라는 이 노래가

더 크게 더 자주 생각날 것 같아 아쉽다.

 

길을 걸으면 노래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