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아프리카방문기

아프리카 가나

carmina 2013. 12. 5. 16:58

 

1995. 8

 

새까만 나라 아프리카...


비행기는 스위스의 쥐리히에서 갈아타게 되어 있다. 그것도 하룻밤을 묵은 뒤에...
호텔은 무료 제공되고 잠간 동안 쥐리히 시내를 구경할 시간도 있다.

 

처음 가는 유럽. 공항에 내려서 입국절차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간단했고 (여권에 입국도장도 없으며, 코리아는 그냥 여권도 보지않고 입국시킴) 공항은 무척 깨끗했다.

 

그러나 비록 공항내라도 내가 다음 여행지로 가기위해 발걸음을 옮긴 터미날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곳은 주로 아프리카 노선인지 완전히 시커먼스들이 그득했고, 사람들의 모습과 손에 든 것 모두 초라하고 값싸고, 지저분한 모습들만 눈에 보였다. 거기다 터미날 수리까지 하느라 공항은 더욱 어수선했고, 내 주위의 사람들 또한 예의 없는 몸가짐으로 긴긴 시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중 백인들도 있어서, 어느 한 사람이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다가 백인 아가씨가 사납게 쏘아 붙히니 남자는 계면 쩍은 듯 총총히 다른 곳으로 사리져 버렸다.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에는 거의 모두 흑인들만 타고 있었고, SAS 직원들은 승객들이 많은 짐을 가지고 타지 못하도록 기내로 들어오는 문 앞에서 제지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 이 들은 무조건 짐을 많이 가지고 갈려고 애를 쓰고 있고, 무료하물로 부칠수 있는 수량이 정해져 있어 남는 것은 모두 손으로 가지고 가느라 기를 쓰는 모습에서 우리네 모습도 똑 같을 때가 있는데 하는 씁쓸함이 남는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승무원이 기내에 향수를 뿌렸고, 여기 저기서 카톨릭 신자인 듯한 흑인들이 안전한 귀향을 위해 가슴에 성호를 긋고 있다. 가끔 밖으로 보이는 육지의 모습은 완전히 사막밖에 보이지 않아 기내의 지도를 보니 지금 지나는 곳의 지형에는 점들만 가득하다. 사막.

 

한참을 적도부근으로 날아가다 마을이 조금 보이는 듯 싶더니 가나에 다 왔단다. 비행기는 무사 착륙하고 흑인들은 동체가 땅에 닿자마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안전하게 왔다는 것인가? 그리고 비행기 조종사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리라..

 

비행기한 번 타는 것이 힘든 민족이기에 하늘의 새를 타고 날아다니다 땅에 무사히 내렸으니 신기하기도 하겠지.

 

밤인데도 적도의 후끈하는 기운이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면서 처음으로 아프리카의 가나땅을 밟는 나의 코끝에 스친다.

 

많은 색갈중에서 유난히 하얗게 보이는 것이 우리 직원이고 어떻게 이런 공항내 제한 구역까지 들어 와서 영접을 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여권을 내 놓으라 하더니 내가 입국절차를 밟지 않고 다른 사람이 모두 대행해 주길래 그냥 청사를 나올 수 있었다. 완전히 귀빈 대접을 받네...

 

이런 입국수속 대행은 내가 88올림픽 자원봉사할 때 김포공항에서 귀빈영접 하느라 이렇게 각국의 장관들을 대행해 준적이 있지만 일개 한국기업 사원 내가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낯 간지럽기만 하다. 청사를 나오니 많은 무리의 환영객이 앞을 가로 막았는데 도무지 캄캄하기만 하다.

 

모두 새까만 피부이고 옷도 모두 남루해서 도무지 그 앞으로 걸어가지지 않는다. 안내인이 길을 만들고 밖으로 나오니 반가운 얼굴들이 검은 얼굴에 하얀 치아를 내밀고 나를 껴안고 있다.

 

이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현지인들이라 익히 알고 있는 얼굴들.. 우리의 무거운 가방을 엉성하게 생긴 손수레로 가득 담아서 주차장으로 무겁게 끌고 가고 있는 짐꾼들의 모습이 무척 안스럽기만 하다.

 

주차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이 우리 현대의 포니가 아닌가.. 한국에서는 이미 단종된 지 오래인데 이 곳에서는 택시들이 포니가 많다.

 

날 맞이하는 외국인도 기아의 캐피탈을 가지고 왔으며 그 외에서 다른 국산 차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

 

국제공항 주차장이 완전히 시골길처럼 흙이 그대로 보이고 여기 저기 푹푹 파져 있다.
피곤한 몸을 현대 갤로퍼에 싣고 저녁을 먹으로 가자는 우리 직원의 말이 별로 반갑지 않다. 잠이나 자고 싶은데...

 

밤이 깊어갈 때라 주위 풍경이 안 보이지만 거리에 가로등도 없고 시내로 향하는 길도 울퉁불퉁하다.

 

호텔에 먼저 도착해 여장을 풀기로 하고 조금 누추해 보이는 건물앞에 차를 세우니 샹그리라 호텔이라 한다. 샹그리라, 도원경, 파라다이스, 엘도라도, 삼포 모두 같은 의미지..

호텔인데도 건물이 전혀 높지 않고 모두 단층이다. 카운터에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호텔 직원들이 Check-In Card를 내밀고 이것 저것 쓰고 있는데 쥬스한잔을 내 온다.

 

세상에 전 세계 많은 호텔 다녀 보았지만 Check-In 할때 음료수 주는 호텔은 처음보네..

호텔의 모든 방은 넓은 정원에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정원에는 분수가 있고 테니스장과 수영장이 얼른 눈에 보인다. 열대수림속에 마치 간이 건물처럼 생긴 호텔 방에 짐을 놓으니 반가운 손님이 나 보다 먼저 방을 점령하고 있다.

 

도마뱀. 이 곳에선 바닥을 기어다니는 모든 것들이 도마뱀이다. 손가락 굵기만한 것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색갈을 가지고 있었고 그 놈이 내 방의 벽시계속에서 밑으로 죽 내려오고 있었다. 위험하지 않다기에 그냥 내 버려 두었다.

 

대충 짐을 들여 놓고 어둠속으로 차를 몰아 가니 희미하나마 고속도로 비슷한 것이 눈앞에 죽 뻗어 있다. 가나에서는 하나 밖에 없는 고속도로 라 한다.

 

고속도로까지 가는 길도 완전히 가로등 하나 없고 노면 상태도 울퉁불퉁, 이정표도 없고 도무지 처음 오는 사람은 오무지 길을 찾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을 것 같다.

 

차가 뜸한 고속도로를 한 참을 가다가 어느 마을로 들어서니 반가운 태극마크가 앞에 내 결려 있는 한국식당이 넓은 주차장을 가지고 손님이 오는 걸 아는지 문을 열며 반긴다.

역시 현지인이 식당일을 하고 있고 주인은 역시 한국부인이다.

 

전세계의 한국식당을 돌아다니다 보면 한국식당의 경영은 주로 한국부인들이 하는게 공통점인 것 같다. 그래야 한국인들 대하니 쉬우니..

 

다른 음식은 한국과 비슷한데 쌀이 틀리다. 끈기가 없고 마치 중동지방 쌀 같길래 물어보았더니 이 쌀은 이 곳에 구호물자로 외국에서 들어오는건데 비공식적으로 빼 돌려 온다고 한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먹성좋은 나이기에 모두 말끔히 비워버렸다.

하루를 이국땅에서 도마뱀과 같이 혼숙하며 잠이 잘 안오는 밤을 엎치락 뒷치락 거리며 보내고 아침을 맞는다.

 

마침 호텔에서 아침을 제공하기에 출장비는 절약될 것 같다. 야외식당에서 아침식사를 즐긴다. 크라상빵에 버터,커피 그리고 오믈렛이나 반숙된 달걀로 아침을 때우고, 우리가 일할 곳까지 데려다 줄 차가 기다리고 있는 밖으로 나와 반갑게 맞는 어느 빼빼 마른 젊은 흑인과 하얀 르망이 기다리고 있다. 이 곳에는 한국차가 무척 많다고 한다.

 

어디에서 누가 쓰던 차인지는 모르겠는데 내부가 흑인의 얼굴같이 지저분하고, 차는 그래도 어젯 밤에 달렸던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지장은 없다.

 

이제부터 이상한 세계로 들어간다.

어제 밤에 전혀 안 보였던 광경들이 눈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현지인의 생활모습

 

차는 고속도로로 접어들기 위하여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길을 몇번이고 로타리를 지나면서 아침 출근시간대의 거리를 보니 버스는 있는데 정류장은 없고, 정류장같이 사람들은 모여 있는데 전혀 정류장 표시가 없다.

 

그래도 차는 잘도 서고 버스에 못탄 사람들은 지나가는 트럭에 올라타느라고 기를 쓰고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도착하여 요금을 내는데 지폐가 완전히 너덜너덜하여 겨우 원형만 보존할 만큼의 완전한 황토색 지폐를 요금으로 내고 있다. 세상에...

 

저걸 또 지갑에다 넣는 것이 아니고 그냥 지저분한 손으로 꼬기꼬기해서 한 웅큼 거스름돈으로 집어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톨게이트에는 정말 남루한 옷차림의 아줌마들과 어린애들이 빵과 과자류등을 손에 들고 운전수에게 하나 팔아달라고 사정하고 있고, 자꾸 유리문을 두드리며 구걸을 원하고 있다.

 

특히 우리같이 하얀 피부의 외국인에겐 더 적극적으로 구걸을 한다. 보통 미국의 흑인은 피부는 까매도 치아는 무척 하얀 법인데 이곳은 치아까지 닦지 않아서 치아가 누렇다.

차는 시원하게 일자로 뻗은 고속도로를 가고 도로에는 전혀 분리대 라던가 혹은 철조망도 없어 말이 고속도로지 사람들이 쏜살같이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 가기도 한다. 길가에는 곳곳이 한 두명씩 차를 얻어 탈려고 손바닥을 아래위로 부딛쳐 가면서 멀리서부터 손짓을 하고 있고, 도로변은 완전한 초원으로 낮은 나무숲들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펼쳐져 있다.

 

큰 트럭위에는 사람과 소나 양들이 모두 같이 타고 있고, 어느 픽업트럭 에는 정말 차 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는지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람을 짐 칸에 가득 태운 채 시속 100 키로 이상 질주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차가 급정거하면 그대로 차위에서 떨어질 것 같은데 차에 잘도 앉아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가끔 고속도로의 세멘트바닥의 가운데를 맨발로 걸어가는 사람도 목격했고 도무지 그 사람들이 얼마나 먼길을 저렇게 맨 발로 걸어가는지 상상이 안된다. 아베베의 후손들이라 맨발로 익숙해져서 인가?

 

차는 우리의 목적지인 가나의 정유공장에 거의 도착하고 거기까지 가는 길도 새로 포장을 하는지 도로가 새빨간 흙으로 덮여져 있다.

 

이 나라는 돌이 없어서 도로포장을 해도 도로가 자꾸 패이고 금방 상한다고 한다. 도로 공사장에는 안전화도 안신은 일꾼들이 땀을 닦는 수건들을 하나 걸친 채 도로포장 장비도 변변치 않은 것으로 작업에 열중하고 있으니 도무지 능률은 오를 것 같지 않다.

 

정유공장 앞에 수 많은 정유트럭들이 그날의 기름을 받고자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참 어이가 없고..(대개 정유공장에서 생산된 휘발유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전국으로 이송되어저 각 정유 터미날에서 공급받는게 일반 상식인데.) 이 곳을 파이프라인을 설치하면 모두 도둑질 해 간단다.

 

공장 앞에는 빈민촌이 있어 나무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거의 쓰러져가는 집에서 물건 조금 놓고 손님을 맞고 있다.

 

그리고 몇 몇 아이들이 맨발도 축구를 하고 있는데 공이 도대체 공 색갈이 아니고 검은 색이다.

 

공장안에는 별로 노동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얘기 반 일 반 하고 있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참 어이없는 인간들...

 

그래도 세월이 가긴 가니 참 신기하기만 하다.

 

정유공장에는 몇년에 한 번씩 정비하는 기간이 있어 그 기간에는 기름을 모두 배출시키고 그 안에 들어가 청소도 하고 고장난 곳을 수리하기도 하고 새로 설비도 하곤 한다.

 

오랫동안 불을 사용했으니 공장내의 탑내부는 시커멓게 껌댕이가 묻어 있어 그 안에서 작업을 하고 나오면 얼굴은 물론 옷까지 모두 시커멓게 나와야 하는게 정상이다.

 

우리들은 잠시 들어갔다 나와도 금방 시커먼게 티가 나는데 이사람들은 도무지 들어 갔다 나온건지 아니면 안 들어간건지 얼굴이 원래 시커머니 알 수 가 없다.

 

그리고 아무데서나 옷을 갈아입는다고 볼것 못볼 것 다보고..

거기도 시커먼것을 눈으로 확인..

 

공장내는 여전히 이쁜 도마뱀들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그러나 사람들의 심성이 얼마나 착한지 모두 우리들에겐 친절하고 모든 것이 우리들 먼저 하도록 편의를 봐 주었다.

 

이런 생활은 일 주일이나 계속되었으며 오전에 현장에 두시간 그리고 점심식사하고 또 2시간 정도 지나면 하루 해가 갔다.

 
 
 

서서 소변보는 여자들

 

아프리카로 출장가기전에 주위에 아프리카에서 오래 생활해본 직원들중에 간혹가다 아프리카에서는 여자가 서서 소변을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모두 그럴 수 없다고 믿지 않았다. 여자가 신체적인 구조로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아마 잘 못 보았을 것이라고 모두들 전혀 믿지 않았다.

 

그날도 가나에 체류하는 동안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르망을 타고 현장으로 가는 길어있다. 고속도로 들어가기 전에 버스 정류장이 있으나 그 정류장에는 단지 버스가 정차한다 뿐이지 전혀 정류장 표시도 없고 인근에 건물 또한 보이지 않는다. 혹 물건 파는 장사군은 길에 몇 개 물건을 늘어 놓고 파는 것이 보통이다.

 

대개 도로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시골길 같은 길로서 도로가 있고 주위에 풀숲이 있고 도로와 풀숲 사이에는 조그만 도랑이 있으나 물은 거의 없는 편이다. 비가 자주 오지 않으니 물은 찾아 보기 힘들다.

 

아침에 사람들이 낡은 버스에서 우루루 내려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차에 무임 승차하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도 있고, 또 인근의 먼 마을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버스가 얼마나 먼 거리를 다니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누구든지 아침 시간에 출근하느라 집에서 나오고 버스를 타고 의자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화장실에 가야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대개 정류장에는 비록 화장실은 없더라도 건물들이 많으니까 아무 건물이라도 들어가서 급한 용무를 해결할 수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이 곳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화장실이라고는 없고 건물 또한 없으니 그런 급한 일이 생기면 어디에선가 해결해야 한다. 남자들에게야 널린게 화장실이니 아무데서나 우선 작은 용변은 해결할 수 있지만 여자들은 기저귀를 차고 다니지 않는 바에야 어디에선가 그 들도 해결해야 한다.

 

그럼 여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속도로 톨게이트라해서 어떤 건물이 있는게 아니고 그냥 표만 팔고 거두어 드리는 조그만 초소같은 곳일뿐이기에 도움이 못 된다.

 

보았다.

 

내 차가 넓은 로타리를 돌아가는데 그곳 버스 정류장의 버스가 막 떠나고 길가에는 이제 막 버스에서 내린듯한 한 여자가 거리를 등지고 서서 머리에는 무엇인가 보따리를 잔뜩 이고 한 손으로는 치마의 앞자락을 들어올리고 엉거주춤 서있으며 그 가랑이 사이로 힘찬 물줄기가 여자앞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너무도 신기한 모습에 입이 벌어졌지만 차마 그곳에서 차를 세울수는 없었다. 내 입에서는 그저 ‘어, 어 … 저기 저기…’라는 작은 외침만 있었고 잠시 후 내 차가 그 자리를 떠난 후에야 그 잠간의 광경을 현지인 운전수에게 얘기할 수 있었다.

 

새까만 얼굴의 젊은 운전수는 그럴 수도 있다 하며 나의 놀라는 모습을 무척이나 재미있어 한다.

 

그러면서 여자들이 왜 서서 소변을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첫째 화장실이 없고 둘째 수풀속에는 해충들이 많아서 쪼그리고 앉을 수 없으며 셋째 이곳 문화상 여자가 길에 서서 소변보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그곳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면 볼수 있었겠지만 그 이후로 그런 상황을 또 다시 볼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신체구조상 여자가 서서 소변을 볼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인간도 동물인지라 다윈의 진화론에 따라 환경에 적응하며 몸의 구조가 바뀌는게 아닐까?

그 로타리 주위에 커다란 공익광고가 써 있었다.

 

“우리는 모두 에이즈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Botanic Garden (식물원)

 

주말이 되었다. 어디론가 놀러 가고 싶어 몇 명의 출장팀들이 적당한 곳을 찾았지만 원래 관광하고는 거리가 먼 나라라 도무지 갈 곳이 없었다.

 

그래도 그냥 보내기에는 섭섭하여 마침 우리랑 같이 일을 하는 현지인이 안내하기로 하고 차로 몇 시간 거리에 있는 식물원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밀림이 있는 곳에 무슨 식물원이 필요할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갈 곳이 없기에 더 이상의 논란의 여지는 없었다. 그 날 불행히도 차가 토요타 픽업 한대 밖에 여유가 없었으나 출장자들이 모두 가겠다하니 어쩔수 없이 우리도 현지인들처럼 짐 칸에 두명이 앉는 수 밖에 없었다.

 

하급 직원을 뒤에 태우면 오히려 그들이 비애감을 느낄까 봐 내가 자청해서 짐 칸에 타 보겠다고 하고 출발한 후 도심지의 길 한 복판으로 들어가니 길가의 검은 얼굴들이 흰 이를 들어내 놓고 우리 보고 웃고 있다. 백인이 차 뒤에 탄 건 처음 보는지 애들은 손을 흔들고 있고. 그 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나도 웬지 기분이 좋았다. 그 들과 동질감을 느껴서 일가? 그 날은 우리 차는 완전히 동물원이었다.

 

덜컹거리는 길을 따라 가다보니 비가 내렸지만 우리는 고스란히 오픈카에서 비를 맞는 수 밖에 없었고 내 자신이 그런 꼴을 당하고 보니 남이 이렇게 당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속으로는 무척 심각해 지기도 했다.

 

차는 한 참을 달려 어느 낮은 산 길로 접어들고 조금 높이 올라가자 눈 앞에 펼쳐지는 대 평원에 그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벌판에 집이라는 한 채도 없이 아득히 지평선이 있는 곳에 보이는 곳은 모두 낮은 수풀뿐,

 

산 길을 한 참을 달리니 숲속 조용한 곳에 식물원이 있고 그런 곳에서도 요금은 받고 있다. 식물원 단지에는 정말 거대한 나무들이 꽉 차 있었다. 뿌리를 들어낸 나무 밑둥에는 개미가 대단히 큰 집을 짓고 살고 있고 어느 나무하나에는 세계에서 가장 둘레가 큰 나무라고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림으로 보기에는 미국의 있는 어떤 나무보다 작아 보이는 것 같던데… 우리 모두 팔을 벌려 에워싸도 감싸지 못했다. 또한 어느 나무에는 수령이 가장 많은 나무라고 써 있기도 하고... 어느 정도인지는 나중에 자료를 봐야 되겠다고….

 

그리고 바닥에 수 없는 돈(?)이 깔려 있었다. 서울 시내 꽃 집에 가면 조그만 화분에 감각을 가진 화초 즉 잎을 손으로 툭 건드리면 오므라드는 그 풀을 화분 하나에 1000원 혹은 2000원에 팔고 있으니 온통 사방에 깔려 있는 이 풀을 캐다가 한국에 팔면 제법 돈 장사가 될 것 같다. 막대기를 풀 밭에 던지니 떨어진 주위에 풀들이 모두 잎을 옴추리는 모습이 재미있어 자꾸 던져댔다. 자꾸 돈 욕심이 생기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

 

우리네 상식으로 당연히 식물원이라면 있어야 할 예쁜 꽃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식물원에 대한 개념이 어느 것이 옳은가?

 

식물원내에는 염소고기를 구워서 파는 곳이 있어 가보니 염소고기를 꼬치에 구워 팔고 있는데 진짜 나무가지 끝을 뾰족하게 깍아 만든 꼬치의 모습이 좋아 몇 개를 사 먹었다.

식물원내의 야외 카페에서 정통 아프리카 맥주한 잔 하고 있으니 하늘에는 커다란 독수리 같은 새가 유유히 날아 다니고 있고 네팔에서 온 듯한 중들이 붉은 장삼을 걸치고 소풍 온 모습도 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목각 인형을 제작하여 파는 곳이 있어 모두 잠시 차를 멈추고 차에서 내리니 서로 자기네 가게로 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 가게라는 것이 그냥 거적대기로 사방을 가린 것에 불과하지만…

 

가게마다 온갖 모양의 나무를 깍아 정말 정말 싼 가격으로 팔고 있는데 이렇게 싸게 팔아서 이익이나 남을까 할 정도의 의아심이 우리를 재미있게 했다.

 

이 것 저 것을 고르다가 북을 샀다. 우리나라의 장고 같은 건데 동물가죽을 양쪽으로 입히고 소리가 좋았고 점원이 아프리카 특유의 손놀림으로 시범을 보이는데 옆구리에 끼고 손가락으로 두드릴 때 태고의 원시적인 소리가 들리는 듯 해 무척이나 사고 싶어졌다. 내가 해 보니 잘 안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그걸 5000원에 샀다. 10000원 달라는 것을....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가에는 과일들을 싸 놓고 지나가는 차에 손짓하며 과일 사가라는 아줌마들이 줄을 이어 있기에 내려서 살펴 보니 과일들은 주로 파인애플, 바나나, 카사바와 그 나라의 과일인데 얌이라고 하는 것들이 대 부분이다.

 

카사바는 고구마 같은 건데 녹말이 많아 좋은 식량이 되기도 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카사바를 수입해서 설탕도 만들고 물엿등을 만들 때 쓰기도 한다.

얌이라는 과일 아니 채소의 일종 같은데 처음 보는 것이다.

 

우리를 안내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 과일을 죽처럼 쑤어 먹는다고 한다.

바나나와 파인애플은 완전히 헐 값이고 사과같이 생긴 과일을 무더기로 싸 놓고 1000원도 안되는 가격에 가지고 가라고...

 

이 나라는 돈 없어도 충분히 생명연장에 지장이 없을 것 같은 나라다. 길가에 혹은 산에 널린게 먹을 거니 걱정이 없다.

 

어느 넉살좋은 아줌마는 과일을 팔다가 옆에서 지켜 보고 있는 입술 두툼한 여자애를 가리키며 자기 딸인데 우리보고 데려가라 한다. 과일 사면 딸을 그냥 주겠다고..

이것 저것 5000원어치를 샀는데 차에 가득 찼다. 그걸 가나를 떠나 올 때 까지 며칠을 먹어도 못 먹어 대 부분은 버려 버렸다.

 
 
 

아프리카인의 음악

 

음악의 근원은 아프리카에서 나왔다 한다. 태초의 북소리와 정글에서 울려나오는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리듬이 되고 모든 자연신에게 바치는 제사에서 음악을 사용하여 제사를 더 신성시하고 흥을 돋구었다.

 

전세계의 인종 중에서 몸으로 노래를 부르는 인종은 아마 아프리카의 흑인들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천부적인 리듬과 몸의 골격상 노래를 부르면 몸이 저절로 움직여지는 흑인들은 어느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다고 어느 음대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듯하다.

 

흑인들은 엉덩이뼈가 조금 특이하다고 한다. 아무리 김 건모가 랩을 잘 한다 해도 흑인들의 랩을 따라 할 수 없는 것처럼 모방은 할 수 있어도 원조는 안된다는 것은 몸의 구조상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유명 합창단이 흑인 영가를 아무리 잘 불러도 한국에 자주 오는 할렘성가단같이 부를 수는 없는 것처럼…

 

시내를 잠깐 나가보았다. 길을 걷는데 어느 곳에선가 음악이 흘러 나오는 순간 인근에 있던 흑인들이 몸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음이 눈에 보인다. 억지로 갑자기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조금씩 움직임이 거리를 흐르고 있다.

 

애기를 등에 업고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있는 아줌마마저 몸을 흔드는 것을 보고 그만 기가 죽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어쩜 이렇게 음악이라는 것과 가까이 있을까? 하는 의아함에 음악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나도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이 나라는 국민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이다. 길거리의 가정 집도 무척 초라하고 거의 다 쓰러져 가지만 교회만은 좋은 벽돌로 잘 지어져 있고 그것도 한 두개가 아니고 정말 서울의 야경에 십자가 수 만큼이나 교회가 많았다.

 

평소엔 거의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을 무척 자주 보는데 주일날은 모두 어디서 구했는지 모두 깨끗한 옷에 좋은 구두나 운동화를 신고 있다. 모두 주일을 위해서 특별히 예비해 놓고 이 날 만을 위해서 입는 예복으로 보인다.

 

교회는 벽돌로 지었지만 벽에 구멍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일부러 구멍을 많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아 에어컨 구입할 형편은 못되니 자연 통풍을 시키는 것으로 추측된다.

 

예배 끝날 시간에 주택가에 차를 타고 다녀 볼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 기쁨에 찬 모습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는 풍경이 너무 보기 좋았다.

 

일요 예배를 TV로 중계해 주는데 마치 미국의 흑인 교회같이 예배의 전 흐름을 성가대가 주도하는데 모두 몸을 흔들며 찬송하고 목회자도 찬송을 부르며 몌배를 보는 사람도 가만히 있는 사람이 없고 모두 흔드는 기쁨에 찬 성가대의 찬양에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좋은 기회가 하나 생겼다.

 

우리가 방문한 가나의 국영석유공사의 직원 한 명이 자기 딸의 생일 축하에 우릴 초대했다.

갑자기 초대를 받아서 선물을 무엇을 준비할까 하다가 마침 아프리카 도착하는 길에 유럽에서 사 둔 메니큐어를 이쁘게 싸고 노트장 만한 카드를 현지에서 하나 구해서 방문했다.

 

우리를 초대한 시간은 오후 3시, 점심을 먹고 가야 하는지 아니면 점심초대인지 몰라 한참을 걱정하다가 조금 먹고 가기로 했다. 그래도 상류층에 있는 직원이라 집이 좋았고 정원이 넓었다. 마당에 큰 나무가 있고 나무 밑에 의자 몇 개와 양주가 놓여 있었다.

 

초대한 사람과 서로 끌어 안고 가슴으로 인사하고 부인하고도 역시 가슴으로 인사를 하는데 그만 그들이 전형적인 체격에 가슴이 뭉클함이 갑자기 나를 어색하게 한다.

주인은 생일 맞은 딸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마당의 잔디밭에는 몇 몇 젊은이들이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정원의 앞에는 음향기기와 큰 스피커가 있어 여기서 파티가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티가 시작하기 전에 집안을 구경시켜 주기에 들어가보니 몇 개의 응접실을 보여주는데 이 사람도 해외 여행을 많이 해서인지 외국으로 들여 온 물건이 많았고 가족사진을 걸어놓는 것는 여느 민족과 같았 보였다.

 

가나 토속 맥주와 양주가 몇 순배 돌아가고 있는 동안 젊은이들이 서서히 한 두 명씩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젊은이들 모두 술을 알만한 나이인데 전혀 술을 마시지 않는다. 부모님이 베풀어 주는 파티라 자제를 하는 건지 원래 안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한 참을 지나도 먹을 것이 나올 낌새는 전혀 없어 점심을 먹고 오길 잘했다고 우리끼리 얘기하고 한 참을 그렇게 시원한 바람과 세상얘기로 웃음을 즐기다가 한 낮의 뜨거운 열기가 가실 때 쯤 일하는 사람인 것 같은 젊은이가 몇 개의 테이프를 오디오에 넣으니 신나는 아프리카 음악이 흘러 나왔다.

 

그러더니 모두 천천히 일어나서 정원 앞의 공터에서 서로 마주보고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전혀 격렬한 몸 놀림이 아니고 아주 흐느적 흐느적 거리며 소리하나 지르는 사람 없이 계속 몸만 흔들거리고 있다. 의자에 앉은 우리 일행도 조금씩 앉은 채로 몸을 흔들어가고 그 사이 옆 집에 사는 아저씨 부부도 와서 같이 합석하고는 같이 흔들면서 술을 나누기 시작했다.

 

음악은 잠시도 쉴 새없이 흘러나오는데 재즈나 락보다는 약간 부드러운 음악으로 모두 쉴새없이 아주 천천히 음악에 맞추어 아주 똑 같은 모습으로 춤을 추었지만 전혀 싫증내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마치 우리가 김치를 매번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처럼 저런 춤이 저들의 생활인가?

 

젊은이들 사이에는 춤을 안 추는 사람도 없었고 술을 찾는 사람도 없었으며 무리 중의 어른들인 우리만 계속 술을 마셔대고 있다.

 

어둠이 완전히 무리를 덮을 때 쯤 식사가 부페로 준비되고 일행은 모두 보이지 않는 질서를 유지하면서 여러가지 메뉴의 식사를 즐긴다. 메뉴는 닭고기, 소고기, 야채 등 아주 평범한 것들이었지만 모두 먹을 만큼 넉넉하였다.

 

나의 통념은 또 한 번 깨져 버렸다. 식사 시간에는 모두들 앉아서 다 같이 식사를 하겠지 했는데, 부페를 즐기기 위해 모여드는 젊은이들이 모두 식탁주위를 오가며 춤을 추며 다니고 접시을 손에 .들고도 모두 춤에 열중이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먹으면서도 어깨를 움직이면서 음악에 빠져 있고 식사 중에도 얘기는 모두 조용조용히 나누고 있다.

마치 춤의 천국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한 참 분위기가 몽롱한 분위기에 젖어 있을 때 주인이 우리를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고 내가 일행을 대표하여 생일 축하 인사를 해 주었다.

 

그러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를 분위기는 도무지 아니었다. 우리를 초대한 주인과는 한국에서 같이 한 두 달 동안 근무할 때 노래방에 가서 이미 서로의 노래 실력을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같이 억지로 노래를 강요하거나 당연히 돌아가면서 노래하는 풍습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생일 축하 인사 후 우리도 춤에 빠져 들어 갔다. 젊은이들 틈에 끼어 나란히 서서 그들과 같은 포즈로 추고 디스코 장에서 추는 그런 요란한 춤을 도저히 이 곳에서 추었다가는 그렇게 많은 음악이 흐르지만 부루스곡은 전혀 없었다.

 

밤이 이슥해서야 우린 아쉬운 자리를 떠나야 했다. 다른 젊은이들은 계속해서 춤에 젖어 있고 언제 그 파티가 끝나는지 모르지만 그 들은 크게 떠들지도 않고, 많이 마시지도 않고, 아주 껄걸 웃으며 지내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것들을 보며 한국인의 파티 풍조가 아프리카의 흑인들보다 못한 것이 부끄러웠고 우리 젊은이들도 이곳에 와서 한 수 배워야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댄스홀의 여자들 

 

도착하는 첫날 어차피 한 일주일 묵어야 하니 호텔방의 냉장고에 무엇인가를 채워 넣기위하여 운전기사가 딸린 르망으로 시내를 나갔다.

 

인근에 도무지 큰 상점이란 없고, 몇 몇 구멍가게가 보이길래 모두 들러서 맥주를 사려 했으나 참 이상하게 파는 곳이 없었다. 차를 타고 다니며 물어 물어 겨우 한 곳을 찾아 맥주를 달라고 했더니 가게 옆 의자에 앉으라 한다. 도무지 길 거리에 앉아서 먹기는 좀 곤란하기에 점원이 현지의 토속 맥주를 가지고 와서 병마개를 딸려 하기에 얼른 제지하고 우린 호텔에 가서 먹어야 하니 그냥 달라 했다. 그랬더니 우리를 이상하게 보면서 손을 내 저으며 안된다고 한다. 손짓 발짓 섞어 가며 호텔에 가지고 가겠다 하니 막무가내로 안된다 한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꼬마가 가게 일을 보고 있는데 왜 안 되는지 설명을 못하길래 운전기사를 동원해서 물어보니 이 곳은 유리가 귀해서 모든 병은 반드시 회수해야 하고 맥주를 팔면 반드시 공병을 반납해야 한단다. 그래서 그 병까지 우리가 사겠다고 했더니 그것도 안된다 한다. 반납된 병 만큼 새로 사오는 것인가 보다

 

결국은 포기하고 다른 외국인을 위한 술집을 찾아 갔다. 그곳에선 하이네켄을 팔길래 조금 비싸다 싶지만 살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과일은 어느 가게나 풍성하고 정말 값이 싸서 잔뜩 사다 놓고 먹느라 상해서 못먹고 버린 것도 있었다.

 

어느 날 저녁은 남자들만이 모여 있으니 또 객기가 발동해 저녁에 디스코클럽을 가기로 했다.

 

어둑어둑한 시간에 차를 타고도 한 참을 달려 유명하다 하는 디스코클럽을 들어가려 하니 주차장에 손님이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차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 일찍 왔나’ 하고 시간 보낼 때도 없고 해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고 어두컴컴하고 썰렁한 홀에 락 음악만 가득 차 있었다.

 

조금 앉아 있으니 어둠 속에서 유령같이 두 개의 하얀 옷만 펄럭거리며 걸어오더니 옆에 앉는데 보니 흰 옷을 입은 검은 여자다. 워낙 검고 또 홀이 어두워 조금 눈이 나쁘면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이다. 이곳의 아가씨들은 무척 화려했다. 밖의 세상하고는 전혀 틀리다. 구두도 신고 옷도 조금 촌티가 날 정도로 화려하게 입고, 입술에 진한 루즈와 귀걸이 팔찌 등등으로 치장을 했다. 마치 뉴욕의 어느 바를 생각하게 한다.

 

아가씨들 손에 이끌려 디스코를 추고 우리는 조금 어색한 춤 솜씨로 한참을 시간을 보내니 손님들이 서서히 밀려드는데 거의 백인들이고 그 들이 들어 올 때 마다 손님 수만큼 어디에선가 검은 아가씨들이 걸어 나왔다. 이 곳의 아가씨들은 대개 늘씬하고 거리의 여느 아가씨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이 곳 사람의 눈으로 보면 미인 축에 속한다.

 

홀은 더 시끄러운 음악과 춤으로 열기가 감돌고 있고 어느 순간 부루스 음악이 나와 내 옆의 아가씨와 자연스럽게 홀로 나가 아가씨를 가볍게 안고 부루스를 추며 아가씨의 등에 길게 몇 갈래로 땋아 있는 머리를 만져 보았다. 보통 보기에도 부드럽지 않게 보였지만 막상 아가씨의 머리를 손으로 만져 보니 이건 완전히 밧줄과 다름이 없다. 그것도 배에서 사용하는 거친 밧줄같은 촉감과 푸석푸석하고 그 머리에서 나는 짙은 흑인 냄새가 조금 역겨웠지만 여자도 나에게서 김치냄새 마늘 냄새를 맡으며 역겨워 하겠지 하는 위안으로 그냥 음악에 따라 돌고 있는데 여자가 내 귀에 소근거린다.

 

‘‘오늘 밤 아저씨랑 같이 있고 싶어요’’

“난 이 곳에 집이 없는데….”

“호텔에 계세요? 호텔도 좋아요”

 

하긴 여기 호텔은 현지인과 같이 방에 들어가도 막을 경비원이 눈에 안 보인다. 대개 후진국에서는 현지인의 매춘을 막기위해서 호텔 앞에서 경비원이 들어가는 손님을 모두 주시하고 매춘 행위로 보이는 손님의 행동이 있으면 슬쩍 제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호기심 발동.

 

“같이 나가면 얼마야”

여자는 갑자기 희망을 얻었는지 애교를 잔뜩 부리며

“음. 100불만 주세요”

‘에이 비싸다’ 하고 싫은 표정을 지었더니 ‘그럼 50불’.

여기서 그만...

 

실은 외국다니면서 이런 기회는 수 없이 많지만 아직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숙맥인지라 이런 얘기가 별로 어울리는 편이 아니다. (절대 진실임)

그리고 이 곳은 에이즈가 무척 성행하는 곳이라 떠날 때부터 이미 다녀 온 직원들이 충고를 한 바가 있다. ‘절대 이 곳에서 여자를 금지하라. 이 곳은 에이즈의 근원지이다’ 라고...
 
흑인 밴드와 함께.

 

낮에 일을 하고 돌아 오면 저녁에 특별히 갈 곳이 없는 한 호텔에서 잠이 오기 전까지 서성거려야 한다.

 

일을 끝내면 다 같이 모여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오기도 하지만, 그것도 싫을 때는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끼리끼리 모여서 먹는다. 호텔은 정원이 넓고, 수영장과 테니스장이 바로 옆에 있어 정원에 앉아만 있어도 저녁 소일 거리는 충분하다. 정원에서 보통 생선구이를 주문해 먹으면 수 없이 달려 드는 파리를 손으로 내 쫓으며 먹어야 한다.

 

식사를 하고 돌아 온 날은 대개 맥주 한 병 시켜서 아주 천천히 정원에서 식사하는 다른 이들이나 수영장에서 놀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며 소일하는 것이 보통이다. 수영을 하는 이들은 거의 백인들이고 흑인들이 수영하는 것은 그 호텔에 묵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것이 인종차별인가?

 

늘 밤마다 수영을 하는 이들 중 어느 키가 몹시 큰 은발 머리의 여자가 눈길을 끌었는데 이 여자는 우리가 아침을 먹는 시간에 꼭 우리 옆 자리에 앉아 같이 식사를 하곤 하여 어느 날 내가 아침 식사 도중 그 여자를 불러 같이 식사하지 않겠느냐고 청했더니, 얼른 내 제의를 승락하고 내 옆에 와서 같이 식사와 얘기를 즐겼다.

 

네델란드에서 온 이 여자는 가나의 농업부문에 대한 실태를 조사차 이 곳에 장기 출장중이란다.

 

정원에는 오른 쪽에 ‘피자헛’이 있는데 이 피자헛의 외부 모습이 조금 특이했다. 대개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피자헛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지붕의 입구는 똑 같은데 여기서는 빨간 지붕대신 밀짚으로 피자헛의 지붕과 같은 모양을 만들었으며, 피자도 커다란 스테인레스 오븐에 굽는 것이 아니고 흙으로 굴같이 만든 화덕에 피자를 굽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그 피자헛 옆에 조그만 공간에서는 매일 흑인 밴드가 각종 음악을 연주해 주고 있었다. 특해 매주 수, 목요일은 흑인 여자가 한 명 낀 4인조 밴드가 우리 귀에 익은 팝송들을 연주하고 있어 그 날만 되면 음악 듣고 곡이 끝나면 박수도 쳐 주고 가수의 감사 목례도 받곤 했다.

 

그 날도 밖에서 식사를 하고 호텔 방도 들어 가지 않은 채 정원에서 맥주를 시켜 직원과 함께 흑인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저녁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귀에 익은 팝송인 ‘러브 미 텐더’를 흑인 여가수가 부르고 있어 한 참 듣고 있는데 보통 흑인들의 노래는 1절 2절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고 같은 노래를 매번 애드립을 넣어가며 연주한다.

 

나에게 무슨 객기가 있었는지 그 날은 음악을 듣다 말고 마시던 맥주를 탁자에 그대로 놓은 채 노래를 부르고 있는 흑인 여가수에게 천천히 걸어 가서 같이 노래할 수 있으냐는 표정을 지으니 옆에 기타를 치던 남자가 얼른 마이크 하나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여가수의 노래에 화음을 맞추어 주며 조용히 따라 했더니 무척 좋아하며, 자기가 한 번 부르고는 나에게 계속하라고 권하길래 나 또한 영어 멜로디로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몇 번 같이 ‘러브 미 텐더’를 부르고 나서야 노래는 끝나고 정원에 있는 사람들은 앵콜을 청했다.

 

노래를 자청해서 하긴 했지만 조금 계면쩍어 내려 올려 하니 가수가 ‘하나 더 하자’고 부추긴다. 내가 아는 영어 팝송을 몇 개 말했더니 잘 모른다 하다가 그 중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흑인 영가를 같이 하자 했더니 금방 오케이 답변이 나온다. 하긴 그 들의 아리랑 같은 노래인데 모를리가 있나?

 

반주가 나오고 여가수의 흑인 특유 멜로디가 나온다. 본인이 한 번 하고는 나에게 권하고 내가 노래할 때 화음을 맞추어 준다. 내가 권하고 가수가 노래할 때 내가 화음을 맞추어 주는 둥 서로 음악으로 교감할 때 내 차례가 되어 아가씨보고 따라 하지 말라는 손시늉을 하고 이 노래를 찬송가의 한국어 가사로 불렀더니 갑자기 아가씨의 표정이 당황함과 함께 입가에 웃음이 퍼진다.

 

노래가 끝나고 아가씨가 나에게 깊은 포옹을 해 준다. 손 등에 빨간색으로 약간 불에 덴 자국이 있는 그 아가씨의 향수 냄새가 깊게 코에 스며 든다.

그 다음 날부터 아침 식사 시 호텔에서 일하는 웨이터들에게 나의 노래로 인한 인기가 아주 좋았고 특별 사이드 메뉴가 주어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