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유럽방문기

유럽음악여행

carmina 2013. 12. 5. 17:05

첫번째 날.(파리 도착)


이번 여행이 이제껏 다른 여행 보다 훨씬 재미있으리라는 것은 이미 자명한 사실이었다. 평소에도 일 주일에 한 번씩 노래하기 위하여 만날 때마다 즐거움의 연속이었는데 그들과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쁨과 설레임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해외 연주를 위해 10일간이나 같이 지내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우리 모두 노래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들로서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은 세상일게 뻔하다.

 

비행기에 탑승하면서부터 우리의 웃음은 시작되었고 파리까지의 12시간이라는 긴 비행시간이 도무지 지루함을 모를 정도로 서로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새로운 경험을 시작하였다. 에어프랑스가 국내 취항하는 항공사로는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김치 팩과 또 고추장들을 다들 하나씩 챙겨 넣는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육중한 비행기가 파리의 샤를르 드골 공항에 바퀴를 내리고 천천히 활주로를 지나가는데 아스팔트옆 푸른 잔디에 하얀 것들이 움직여 자세히 보니 토끼들이 여러마리 뛰놀고 있다. 작위적인 것인지 아니면 자연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토끼들이 프랑스의 이미지를 우선 기분좋게 한다.

 

활주로 아래로 차가 다니도록 되어 있어 가끔 비행기 창문으로 차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짐을 찾는 동안 옆에 음료 무료 자판기가 있어 우르르 몰려가 커피, 쥬스 등을 마구잡이로 뽑아 마시고 나오니, 현지 안내인이 마중 나와 있다. 대형 버스에 짐을 모두 싣고 프랑스에 첫 발을 내 딛는다. (물론 나에겐 두번째 여행이긴 하지만...)

 

첫번째로 우리 일행의 시선을 끈 것은 대형 입간판이었다. 나체의 여성이 모델로 나온 입간판은 유럽의 첫 인상이 섹스의 천국이라는 묘한 인상을 풍기게 했으나 나중 그 선전이 여성의 옷 선전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기발한 광고 아이디어에 혀를 내 둘렀다.

 

옷이라는 것은 마치 아무 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편해야 한다고....
그러한 유형의 누드 모델은 여러가지 포즈로 아슬아슬한 부분만 가리고 여기저기 세워져 있어 충분한 눈요기감이 되었다.

 

도착한 날이 주말이라 그런지 교외로 나가는 차들의 행렬로 반대편 차선은 거의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어느 유럽에서나 마찬가지로 차들은 모두 조그마하고 우리나라의 티코나 프라이드, 조금 크면 엑셀 정도의 소형차가 대부분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는 쉴 새 없이 파리를 소개하고 있다. 파리는 시테섬을 중심으로 환상으로 펼쳐져 있으며, 세느강을 중심으로 강북은 상업지역, 강남은 문화가 발달되어 있고, 파리의 면적, 인구 등등... 누가 물어 본 것도 아닌데 마치 녹음기처럼 줄줄 흘러 나온다. 마치 잘 훈련된 사냥개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든다.

 

프랑스에 없는 것이 세가지 있단다.

공중 목욕탕과, 쓰레기통 그리고 화장실이 그것이다.

목욕은 대대로 하녀들의 시중으로 처리했기에 공중 목욕탕이 없으며 이로 인하여 사람들의 몸에 냄새가 많이 나기에 필연적으로 향수문화가 발달되었단다. 그래서 그런지 향수의 이름이 거의 불어인 것은 새삼 깨닫는다.

쓰레기통은 최근 테러가 많고 그 원인이 주로 쓰레기통에 있는 폭탄으로 생긴 것이기에 길거리의 쓰레기통을 아주 없애 버렸단다.

또한 이 사람들은 화장실을 자주 가지 않는단다. 여행 내내 화장실 문제는 우리들에게 가장 큰 골치 거리였다. 특히 여성들에겐... 가이드는 우리에게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의 불편함부터 협박을 놓았다. 아침에 호텔에서 나오면 점심 식사 전까지 화장실 갈 시간이 없으니 반드시 호텔에서 완전히 해결하고 나와야 한단다. 거리의 화장실은 모두 유료라 한다.

 

차창가로 보이는 거리의 이곳 저곳에 있는 간이 화장실의 모습은 여행객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서 애쓴 정성도 보인다. 간이 화장실은 물론 코인을 내고 들어가도록 되어 있고 냉방 및 난방이 되어 있어 일부 부랑아들이나 거렁뱅이들의 좋은 안식처가 되기에 15분 정도 지나면 저절로 문이 열리도록 되어 있단다. 느긋하게 일을 보다가 갑자기 시간이 되어 문이 열리면..

 

우리는 저녁밥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버스는 인적이 뜸한 파리 시내의 골목을 이리 저리 누비더니 어느 한적한 골목에 차를 세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보이는 나무가 마로니에란다. 열매의 모양이 우리나라의 토종 밤 같아서 가이드는 스스로 그 나무를 '나도 밤나무'라고 붙였다 한다. 길에 떨어진 밤톨이 있어 손에 드니 우리네 밤과 너무 똑 같다.

씹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차마 그리하지 못함이 아직 이질 토양과 문화에 대한 거부감인가? 우리나라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에 이런 열매가 있었던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착하는 날 부터 한국식당으로 가기로 했다는 말에 나는 저윽이 실망했다. 왜 이리 한국 음식들만 찾는가? 그러나 단체 행동이라 나의 취향을 포기하고 한국의 거리라 하는 골목으로 들어서니 여기 저기 한국말로 써있는 간판들이 보인다. 식당 앞에 어느 이발소에는 우리 공연 포스터가 붙어 우리를 반갑게 했다.

 

식사가 나오기에 앞서 다같이 '날마다 우리에게...' 찬양을 드리니 식당 창문을 열어 놓아서인지 우리의 화음이 골목에 골골이 울려 퍼지고 지나던 행인이 창문을 통해서 우릴 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지나간다.

 

수입 쇠고기(?)로 불고기 파티를 한 후 버스는 한적한 시내의 공원을 지나 호텔로 향하는데 공원 설명이 재미있다. 공원마다 특색이 있어 어느 공원은 아베크 족들, 어디는 호모들, 어디는 레스비언들 등등. 그리고 어느 곳은 나체로 일광욕하는 곳 등. 다양하단다.

 

지금이 철이 아니라 나체는 볼 수 없고 다른 여행객들은 그런 곳을 지나치면 다른 예정을 취소하고라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요청하기도 했단다.

 

시내 곳곳에 여전히 나체의 여성들이 광고 모델로 등장한 광고판이 여기저기 즐비하고 그 거리를 지나 HOLIDAY INN호텔로 들어서니 어느 덧 해가 지고 있다.

 

호텔 앞에 'GRILL'이라고 레스토랑이 있는데 지붕 모양이 솥두껑 처럼 생겨 특색이 있다. 바베큐를 요리할 때 연기 빠지는 후드를 그렇게 처리했다고 한다.

 

단원들의 모든 방은 미리 정해져 있고 가이드로부터 내일의 일정에 대해 얘기를 듣고는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방으로 들어가 버리니 파리에서의 첫날 밤이 지나갔다.

 

12시간 동안 좁은 자리에서의 비행과 8시간의 시차가 있으니 피곤도 했으리라... 한국시간으로 한다면 꼬박 밤을 새고도 오전시간을 지낸 셈이니....
 
둘째날. (파리 1일)

 

대개 이러한 긴 여행에는 새벽부터 눈이 떠지는 게 보통이다. 내 경우도 새벽 5시경에 잠이 깼지만 다른 이들은 2시경부터 잠이 안 와 혼났다고 한다. 아직 식당에 들어가긴 이른 시간이라 잠시 산책을 하고자 밖으로 나가니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 혼자 온 테너 단원 한 명이 창문을 열고 신선한 아침공기를 마시고 있다가 나를 보았는지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자기는 벌써 아침 조깅을 끝마쳤다고 웃으며 인사를 한다.

 

호텔 밖으로 나오니 지휘자부부가 미리 나와서 유럽의 아침을 즐기고 있다. 하긴 지휘자님이야 외국에 연주여행차 다니는 적이 많지만 사모님은 이렇게 남편과 호젓이 외국의 새벽길을 걸어 보는 것도 처음이시리라. 호텔 앞에서 사진도 하나 찍어드리고 거리로 나오니 아무도 없는 썰렁한 거리에 바람도 차갑기에 서둘러 식당으로 들어가 버렸다. 호텔의 부페 식당은 나이 든 분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고, 줄지어 내려오는데 모두 나이 든 단원들이다.

 

반가운 인사들과 함께 어우러져 완전히 웨스턴 스타일의 아침식사들을 즐긴다. 빵과 버터, 햄, 소세지, 열대과일 등. 난 외국에선 이런 게 적성에 맞다. 고추장 보다는 딸기잼이고, 된장국보다는 향기있는 스프가 좋다.

 

식당은 우리 일행으로 시끄러워지고 식사후엔 한국으로 전화하느라고 부산하다. 전화걸 줄 모르는 단원들에게 친절을 베풀다 보니 대형 버스가 밖에 기다리고 있다. 저녁에는 연주가 있어 모두들 연주복을 미리 챙겨 나와 버스에 오르니 안내가 불어로 인사말 부터 가르친다. 봉쥬르, 봉 스와르, 메르시 보꾸...

 

버스는 어느 새 세느강가를 달리고 강가의 오래 된 건물에는 프랑스의 대표승용차인 르노의 간판이 크게 붙어 있다. 공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 저 곳은 아무 것도 없단다. 강폭이 좁은 것에 대해 다들 의아해 하니 안내는 우리의 한강이 큰 것이지 세느강이 작은 것이 아니라 한다. 하긴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다.

 

세느강을 달리다 보니 에펠탑이 보인다. 아! 에펠탑을 보니 프랑스에 다시 왔음을 새삼 깨닫는다. 어느 터널을 지나가는데 가이드가 이 곳이 다이애나가 사고 난 곳이라 한다. 다들 서둘러 창 밖으로 눈을 돌렸으나 이미 버스는 한참을 지나 와 버렸다. 버스의 뒷면 유리를 통해 보이는 그 장소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군데군데 꽃을 놓은 것들이 보인다. 다음에 지나칠 때 조금 천천히 가겠노라고 가이드가 말하며 프랑스와 파리의 역사를 줄줄이 늘어 놓는다. 파리는 원래 이 곳에 살던 원주민의 이름이었으며, 프랑스는 두개의 섬으로 부터 시작되고 루이 14세, 루이 16세의 이야기들, 그리고 대혁명까지....

 

거리의 동상중 갑옷을 입은 여자 동상이 있으면 그것은 무조건 쟌다르크로 보면 된다고 한다. 하긴 거리에 동상이 무척 많다.

 

버스는 세느강을 바로 지나 시테섬으로 들어가 어느 골목에 우리들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건물 그늘에 가려 조금은 어두운 길을 외국 사람들과 섞여서 우르르 밀려 들어가니 내가 지난 번 홀로 파리 여행을 시작했던 바로 그곳이다. 그 때에는 썰렁한 거리였던 게 생각나는 걸 보니 내가 너무 빨리 왔었나 보다. 지금도 이른 시간인데 벌써 눈에 보이는 노트르담 사원 앞에는 많은 무리들이 군데군데 모여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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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는 우리를 모두 둘러서게 하고 노트르담 사원에 얽힌 전설과 현실을 건물에 조각되어 있는 갖가지 형상들을 보며 설명을 한다. 그리고는 바로 가이드가 섰던 자리의 바닥에 있던 곳을 가르키니 청동으로 만든 표시가 있다. 그 곳이 바로 파리에서 거리를 재는 기준점인데, 손바닥 만한 그 곳에서부터 모든 거리를 기록한단다. 파리로부터 몇 키로라 함은 바로 여기서부터 몇 키로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곳을 발로 밟으면 파리에 다시 올 수 있다는 여행자들의 호기심 어린 이야기가 있어 모두들 그 곳을 밟느라고 조그만 발들을 포개었다. 난 지난 번 여기를 밟지 않았는데도 2년만에 다시 왔는데 이곳을 밟으면 일 년만에 다시 오려나 하고 나도 틈에 끼어 살짝 발을 올려 놓는다.

 

노트르담 성당안은 어두컴컴하고 사람들이 조용히 정해진 길을 가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우측에 눈에 익은 커다란 조각이 있다.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는 그림. 피에타상이다. 헨릭 입센이 지은 '인형의 집'이라는 소설의 표지가 이 그림으로 되어 있고 그 책의 케이스를 내가 아주 어릴 적에 도시락 케이스로 사용했기에 나에게는 무척이나 친근한 그림이다.

 

조그만 초를 잔뜩 켜 놓아 경건함을 더하게 하고 천정과 높은 창문에 새겨져 있는 각종 성당 유리 무늬들의 그림이 망원경으로 보니 수도자들 그리고 교황에 얽힌 이야기들 등등 여러 이야기들을 조각해 놓은 그림들이 바로 눈 앞에 잡힐 것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노틀담 성당 뒷 편 정원에서.....

 

하나 하나 자세하게 볼 시간도 없이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저절로 밖으로 나와 성당 뒷편으로 가니 꽃밭이 무척 아름답다. 앞에서 볼때는 성당이 우중충하고 검은 회색빛이었는데 뒤에서 보는 성당은 여러 가지의 건축 양식과 아기자기하게 생긴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버스에 다시 오르고 다음 행선지인 몽마르트 언덕으로 가면서 가이드는 쉴 새 없이 파리의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파스칼의 동상이 옆을 지나가고 역사가 서린 건물들이 하나 둘씩 스쳐갈 때마다 가이드는 설명하랴, 무선 전화기로 오는 전화를 받으랴 무척 바쁘기만 하다.

 

버스는 몽마르트 언덕입구에 닿고 아스팔트 대신 돌로 짜 맞추어진 보도위에 우리들을 토해 놓는다. 언덕으로 가는 입구는 예나 지금이나 상가들이 즐비하다. 빵을 파는 집 선물가게, 옷감 파는 집이 아직도 정겹기만 하다. 몽마르트라는 이미지와는 도대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상점들이지만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서 그림을 그려 하루하루를 사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 이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허름하고 싸구려인 물건들도 이들의 생활을 대변하는 것이리라. 사원이 있는 언덕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조그만 쇠문으로 되어있다. 이른 아침 시간인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있고 서두른 관광객들의 무리가 가이드의 말을 듣느라 바쁘다. 양쪽 계단 사이로 파란 잔디가 마치 이불을 깔아놓은 것처럼 정갈하다.

 

계단에서 앨토 테너 파트별로 다 같이 사진을 찍자하고 사진대형으로 서다가 누군가 노래하자고 얘기하여 사진을 찍으면서 다같이 노래를 시작했다. 순간 우리 주위에 있던 관광객들의 시선과 귀가 모두 우리 쪽으로 모여들고 우리는 한 곡이 끝난 뒤 관중들의 호응에 답하고자 또 다른 곡을 연달아 내 놓는다. 이것으로서 음악 여행의 시작은 야외공연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언덕 위에 우뚝 서있는 모스크는 여전히 하얀 색의 부드러운 돔이 우리를 맞는다. 참새와 비둘기떼가 열심히 잔디 위에서 모이를 찾고있고 잡스러운 물건들을 파는 흑인들이 자꾸 옆에 와서 치근거린다. 새모이만 있으면 내 손에 저 참새들과 비둘기들을 모을 수 있는데 하는 아쉬움 속에서 언덕을 오르고 지난 번 너무 힘들어 올라가지 못했던 사원 뒷편으로 올라가다 보니 계단 입구에 한 신사가 까만 모자와 정통 프랑스 예복을 입고 마네킹처럼 꼼짝도 않고 서 있다가 사람들이 신기해서 모여드니 사람들을 향해 슬쩍 윙크를 하고는 다시 마네킹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사원의 옆길로 돌아가니 또 진기한 모습이 보인다. 두 어른과 한 아이가 하얗게 온 몸과 얼굴에 회칠을 하고 무언의 마임을 펼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만 두 어른은 인간이지만 아이는 그저 장난감에 불과하다. 어른들 옷 속으로 숨겨진 끈을 이용하여 마네킹 어린이 인형의 팔을 움직이면서 관광객들의 시선을 끈다. 그 앞에 조그만 깡통과 함께....

저렇게 온 몸에 하얗게 회칠을 하고도 견딜 수 있을까?

 

가이드는 우리를 몽마르트 언덕 위에 모아놓고 그 앞에 보이는 건물이 유명한 오페라 '나비 부인'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라 한다. 사람들은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니 가이드는 그렇게 '아하'하고 아는 척 하는 사람은 모두 거짓말이라 하며 일행을 놀린다. 그곳은 단지 '나비부인'에 출연했던 가수가 그 곳에서 머물렀던 곳이라 하며 유머로 일행을 즐겁게 한다.

 

사원 뒤에는 완전히 그림 판이다. 아니 예술가(?) 판이다. 이젤을 펼쳐 놓은 화가들이 손에 화판을 들고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가이드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 빨리 초상화 그릴 사람은 그리라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은 그리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대충 가격과 그리는 시간도 가르쳐 주며 더 달라고 하거나 오래 그리는 것은 바가지라며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 충고에 겁 먹었는지 아무도 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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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종기 모여있는 야외 전시장들의 그림들은 대부분 화려한 파리의 여러 모습들인데, 화가 마다 고유의 화풍들을 고집하고 있어 그림마당이 이채롭다. 둘레에는 차를 마실수 있는 카페에 사람들이 그득하고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한가로이 그림을 즐기고 있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계속 파리의 시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그 유명한 단두대인 키로틴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콩코드광장 옆을 지나고 유럽에서 제일 높다는 몽파르나스 타워를 차 안에서 구경만 한다. 삼성이 그 빌딩의 3분의 1 정도를 구입했다고 하며 무척 자랑스러워 한다. 차는 어느 길을 돌아가 오페라하우스의 뒷면의 극장으로 들어가는 비스듬한 길의 역사를 이야기해 준다.

 

나폴레옹이 이 오페라하우스를 들어올 때 마차를 타고 직접 극장 안에까지 들어 갔기에 그렇게 길이 나 있단다. 지난 번 왔을 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길들이 모두 사연이 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파리의 유명한 광장을 유세장소로 사용하는 당이 서로 틀리다 한다. 콩코드 광장은 우파가 사용하고 공화국 광장은 좌파가 사용한단다. 갑자기 우리나라의 여의도 광장과 보라매 공원이 연상되는 것은 무엇일까?

 

부인네들이랑 여행해서인가? 버스는 쇼핑센터에 일행을 내려 놓는다.

 

쁘렝땅백화점. 서울의 을지로에 분점을 두고있는 이 백화점의 본점은 오로지 여성만을 위한 백화점이라 한다. 역사가 무려 100년이 되었다는 이 백화점에서 남성용 물건을 샀다하면 거짓말이라 한다. 그래서 쁘렝땅 백화점 바로 옆에 브뤼멜이라는 남성용 백화점이 있다.

 

외국 여행객들을 위해 면세 혜택에 대해 한참을 설명해 주지만 나에게는 그게 모두 상술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외국에서 비싼 옷 가지들 사치품들 사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는 우리를 이곳에 내려준 것 부터 마땅치 않다. 그러나 일행의 절반이 넘는 여성단원들은 즐겁기만 하다.

 

무언가 복잡한 면세에 관한 안내를 건성으로 들으면서 나누어준 백화점의 매장 안내서에 옆 빌딩 지하에 음반코너가 있음을 우선 확인한다. 지금부터 '쇼핑시작' 하는 가이드의 신호가 있자 부인네들인 마치 묶어 놓았던 짐승들처럼 일제히 쇼핑 사냥에 나선다.

 

지하의 음반코너에는 눈에 익은 씨디들이 많았으나 가격을 보니 한국가격의 무려 1.8배 정도되는 수준이라 기획품으로 내 놓은 것 외에는 살 것이 없었다.

 

클래식음악이란 전 세계인이 즐기는 음악이라 굳이 나라의 구별은 없는 가 보다. 혹 프랑스 특유의 합창 씨디가 있나 천천히 뒤적거려 보았지만 맘에 드는 게 없어 홀로 밖으로 나와 시내를 걸어 보았다. 과연 예상대로 백화점 근처에는 어느 나라나 다 그렇지만 수많은 군중들이 지나치고 있고 갖가지 장사꾼들도 많다.

 

길거리 한 구석에 어느 남자가 핸들을 돌리면 음악이 나오는 뮤직 박스를 돌리고 있는데 그 옆에 보니 모포를 덮은 고양이가 강아지의 배를 베고 서로 사이좋게 낮잠에 빠져 있다.

 

고양이와 개의 앙숙관계가 예술의 나라, 멋의 나라인 프랑스에서는 적용이 안된다는 말인가? 디즈니랜드의 통속적인 만화의 소재를 여기서는 바꾸어야 할 것 같다. 파리의 어느 곳이든 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중동지역 혹은 서남아 지역에서 온 뜨내기들이 조잡스러운 장난감들을 팔고 있다. 이들은 이런 장사를 해야만 하는가?

 

쇼핑을 끝내고 이미 물건과 씨름을 끝낸 이들이 어떻게 하면 면세를 받는 것인지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 하나 둘 버스에 오른다. 첫 날 관광이 이렇게 피곤하니 내일 종일 관광은 어떨까? 버스의 푹신한 의자가 감촉이 좋다. 일단 오늘 관광은 이것으로 끝내고 저녁 공연을 위해서 리허설이 필요하다. 교회는 어느 골목에 있다 하는데 버스가 들어 갈 길이 없어 어디론가 뱅글뱅글 돌다가 결국은 대로에 차를 세워두고 모두 차에서 내려 조금 걸어야 했다. 사람이 거의 안다니는 골목 양쪽에 조그만 차들이 질서정연하게 서있고 교회인지 주택인지 분간이 잘 안되는 건물 사이에 회색빛의 성당풍 교회가 눈에 보인다.

 

교회로 들어가기 전에 기념사진 하나 찍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교회는 조금 음산하고 마치 지하에 공동묘지라도 있을 듯 한 분위기이다. 아마 진짜로 지하에 공동묘지가 있느지도 모른다.옛날에는 대개 교회지하에 공동 묘지가 있었으니....

 

족히 8명 정도는 앉을 수 있는 길고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기도부터 하고 손으로 의자의 감촉을 느끼니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의자인지 의자의 팔걸이나 귀퉁이의 나무 장식에 사람손길이 반들반들하다. 이 교회는 지은 지 100년이 넘은 교회라 한다. 천정이 유리같이 되어 있어 채광은 제대로 되는데 그 곳에 전등이 없다. 교회에는 다른 기독교적인 장식이 거의 없고 한국교회처럼 여기저기 구호나 성경말씀을 적어놓은 것도 없다.

 

교회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허름한 곳에 들어가 우선 소리의 공명상태를 보려고 손 바닥을 마주치니 무척 청아하게 울린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다. 소리의 울림상태가 무척 좋다. 어느 성당이나 그렇듯이 적은 인원으로 노래를 해도 내부에 잘 울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국에서 온 연주자들이 이 곳에서 음반제작용 녹음을 한단다. 강대상에 있던 것을 내려 놓은 듯한 목회자용 보면대의 모양이 특이하여 한 참을 들여다 보았다. 보면대의 상판이 독수리의 모양 그대로 조각되어 있는데 커다란 날개죽지를 움켜 잡고 설교하는 목사님의 모습이 상상된다.

 

지휘자님의 서두름에 미처 여기저기 둘러볼 시간도 없이 리허설대형으로 서 악보를 편다. 내부가 잘 울리니 큰 소리를 내지말라는 부탁과 함께....

 

2명의 한국 젊은이가 이리저리 다니며 무대, 전등, 마이크 등 공연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있다. 여성합창을 연습하는 동안 잠시 교회의 옆 마당으로 나가니 쉴 수 있는 의자와 탁구대 그리고 조그만 하늘에 다른 주택들이 올려다 보인다.

 

마당 귀퉁이의 아주 구형의 수도꼭지가 있어 혹 고장난 것이 아닌가 하고 꼭지를 돌리니 제법 시원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와 물 본김에 세수를 한다. 이렇게 수도가 오래 되어도 녹물하나 없이 깨끗한 물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리허설 후 간단히 빵과 음료수로 요기를 하는 동안 어느덧 공연 시간이 코 앞에 있는데 찾아오는 관중이 거의 없다. 유니폼을 다 갈아 입고 우리는 노래할 준비가 다 되어 있는데도 찾아오는 이가 없어 무척 의아해 했지만 이 곳 사람들은 태평하기만 하다. 우리도 공연시간이 지나가도 억지로 태연한 척 하고 기다릴 수밖에. 예정된 시간보다 약 30분이 지나자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 들고, 그 사이에 하루 늦게 떠난 대원 한명이 무사히 합류하여 정작 공연은 예정시간 보다 40분 이상 지난 다음에 시작되었다.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 관중은 우리 인원만큼이나 될 정도로 드문드문 앉아 있다.

 

(연주 이야기는 후에 기록하기로 함)
 
여행 3일째... (파리 2일)

 

오늘은 주일이다. 경건한 날에 여느 날 같으면 교회 갈 계획 밖에 없는데 이곳에서는 관광할 생각부터 한다.

 

어제밤 유럽에서의 첫번째 공연에서의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아침의 침대에서도 이리저리 뒤치닥 거리다 아내가 깰세라 조심스레 일어나서 뜨거운 물에 우선 샤워부터 한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들, 재미있는 말들을 들을 수 있으려나...

 

호텔의 아침 메뉴가 어제와 같지만 그런대로 맛이 있다. 빵과 맛있는 버터 그리고 햄들이 구미를 돋군다. 뜨거운 물을 원하는 나이 든 단원이 영어가 부족해 망설이는 것을 보고 얼른 가서 웨이터에게 뜨거운 물을 얻어다 주니 무척 좋아한다.

 

어디 가서라도 무엇을 얻어 먹더라도 얘기가 통하면 노력을 덜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다.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등 조금씩은 모두 배워 놓을만 하다. 특히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면 짧은 인사 한 마디, 길 물어보는 말, 그리고 무엇을 부탁하는 말 등 쉬운 한마디들이 절대 필요하다.

 

아침에 호텔에서 한국으로 전화하여 장인어른과 애들의 안부를 묻고 로비로 내려오니 우리 일행 때문에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며 또 웃음들이 홀을 울린다.

 

어제와는 달리 본격적으로 돌아다닐 옷 차림과 멋을 한껏 낸 모습들이 더욱 생기 발랄해 보인다. 불어 특유의 비음이 섞인 말을 쓰는 가이드가 아침부터 긴장되어 우리를 맞는다.

 

하긴 우리는 그에게 대단한 고객이다. 조금 까다롭기도 하고 어찌보면 무척 편한 고객이기도 하다. 시내로 나가는 대절 버스 안에서 오늘의 계획을 간단히 얘기해준다. 루브르, 베르사이유, 에펠. 크게 이 세가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빠듯한 일정인데 우리가 그 안에다가 주일이라 예배를 꼭 드려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시간상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무척 걱정한다. 한 개 코스 정도는 빼먹을지도 모르겠다고...

 

차는 시내로 나가는 길을 가다가 어제 그냥 지나친, 갑자기 유명해진 장소 즉 영국의 다이아나 공주가 사고난 지하차도에서 서행을 한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몇몇 사람들이 꽃을 들고 서 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벤츠가 완전히 부서졌다는 지하도의 중간 분리대 기둥이 전혀 손상이 없다. 하다 못해 콘크리트라도 부서진 자국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모습은 얼핏 지나치며 보는 눈에도 말짱하기만 하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다이아나의 죽음이 사고사로 보지 않는다고 한다. 같이 탄 중동부국의 재벌아들과 결혼이 약정되어 있고 다이아나가 임신해 있어 자칫 영국의 국왕 자제들과 중동 아랍민족에서 난 자제들과 배다른 형제관계가 되지 않나 하는 걱정에 비밀스런 공작이 있었다하는 소문들이 있다 한다.

 

차는 강변을 따라 가다가 루브르로 가는 길에서 이상하게 지하차도로 들어가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단체관광객들만이 주차하는 곳이라 하는데 지하에는 모두 버스들만 주차되어있고 그 길을 따라 나오니 바로 박물관의 지하로 통해있다. 지난 번 왔을 때는 지상의 유리 피라미드 통로를 통해서 음식물 반입을 철저히 조사당한 후 계단을 통해 내려왔는데 단체관광객들은 그런 절차가 없다. 이미 표를 사는 넓은 홀에는 온갖 민족들이 그득하고 채광이 잘 되는 지하공간의 아름다움은 이미 박물관의 웅장함을 미리 예견하는 듯 하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자국민들의 일자리 기회를 주기 위해 이 곳 루브르 박물관에서의 안내 및 설명은 외부 가이드를 허락하지 않고 반드시 프랑스인이 해야만 한다고 못박았단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불어를 모르고 이 곳에서 근무하는 가이드도 외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안내는 손님들이 데려오는 가이드를 사용하되 이곳에서 근무하는 가이드에게 안내비용을 지불하는 일종의 편법을 쓰고 있다. 그런데도 프랑스 가이드들은 꼭 일행을 따라 다니며 자기 역할을 시간으로 때운다.

 

특이한 것은 단체 관광객들에게는 관람시간이 한 시간만 허용된다고 한다. 그 말이 무척 의아했다. 루브르를 다 보려면 일주일을 가지고 보아도 제대로 봤다고 얘기할 수 없는데 한 시간이라는 말은 너무 지나치고 내가 지난 번 왔을 때도 3시간을 돌아 다녀도 그저 그림들, 조각들을 그냥 지나친 것 뿐인데 하는 걱정이 있었다.

 

가이드는 마치 전쟁에 출전하는 사람처럼 상기된 얼굴로 표를 하나씩 나누어 주며 지금부터 자기를 반드시 따라다녀야 하며 만약 길을 잃으면 앞으로 한 시간 뒤에 이곳 입구에서 만나자고 한다.

 

그리고 출전. 가이드는 중요한 것만 몇 개를 설명한다고 하는데 말이 어찌나 빠른지 마치 교과서를 달달 외운 것 같이 목에 핏대를 올려가면 설명을 한다. 그림의 구도, 작가의 의도 그 시대의 배경 등을 다른 그림들과 비교하면서 설명하기도 하고 한 곳에서 설명이 끝나면 마치 경주하듯이 다른 장소로 가서 예전에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그림들을 아주 자세히 설명한다.

 

보는 사람들의 착시 현상을 노린 그림들이 천장에 있어 마치 조각된 것처럼 있다는 설명, 모나리자와 같은 포즈로 그린 또다른 남자 초상화, 눈썹이 없는 모나리자의 시대적 유행 등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속사포 쏘듯이 말하는데 목이 금방 쉴 것 같아 안스럽기만 하다. 차라리 그냥 여유있게 보고 싶건만....

 

나이든 사람이건 젊은 사람들이건 잘도 가이드를 쫓아 다닌다. 그 사람 없어졌네 하고 따라다니다 보면 다음 장소에서는 어느새 옆에 와 있고 부지런히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을 하고 있다. 오히려 그 모습들이 나에겐 더욱 재미있는 구경거리이다.

 

비너스 조각을 지나올 때 까지만 하더라도 가이드를 부지런히 쫓아 다니느라 몰랐는데, 루브르 박물관의 옛날 모습을 축소해 놓은 곳에 와서는 지하라 그런지 썰렁한 기운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오이디푸스의 신화를 그려 놓은 조각을 설명할 때는 가이드이 목이 완전히 허스키로 변한다. 저러다 다른 관광지에 가서 설명을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밖으로 빠져 나오니 시간은 정확하게 우리가 들어간 뒤 한 시간이다. 아하! 프로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탄성과 함께....

버스는 다시 시내들을 돌아다닌다. 운동장이 없는 소르본느 대학 옆을 지날 때 파리의 대학들은 모두 운동장이 없다는 설명이 어김없이 붙여진다. 지나가는 건물,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설명거리이다. 프로 가이드로서의 노릇도 정말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자신의 계획과는 달리 관광객들의 특별한 요청이 있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없는 시간을 쪼개어 우리 가이드는 우리 요청대로 우리가 예배드릴 장소로 안내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파리를 방문했을 때 아침 조깅을 하였다는 공원 저편에 4명의 여인이 지구를 받들고 있는 특이한 조각이 멀리 보인다. 어느 철문을 지나 들어가니 나무가 많고 사람들이 천천히 산책을 하기도 하며, 여기저기서 일광욕과 에어로빅을 즐기는 무리들이 있는 공원이다. 이 곳 이름이 뤽베송공원이란다. 혹은 반바지 차림으로 혹은 웃통을 벗은 채 혹은 두터운 코트 차림의 사람들이 천천히 공원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예배드릴 적당한 장소를 찾는다. 공원 안에 마침 지붕이 있고 의자가 여기 저기 흩어진 곳을 찾았다. 이곳의 의자들은 모두 쇠로 만들어져 있어 그냥 밖에 내놓아도 상하지 않고 칠을 제대로 해서인지 녹이 슨 의자도 없다. 의자를 들어 한국인의 전형적인 모임 형태인 둥그런 원을 만든다. 임원진에서 미리 준비한 주보를 나누어 주고 다 같이 둘러 앉으니 작은 교회가 만들어졌다. 한 두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이면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고, 그래서 예배드리는 곳이 어디라도 바로 그곳이 교회이리라....

 

 


단체안에 장로님이 모두 4분이나 있어 기도, 설교, 헌금기도 등을 돌아가면서 담당했다. 우리가 묵도 후 찬송을 시작하니 산책하던 외국인들이 우리 주위로 모여든다. 동양인들이 멋있는 화음으로 노래하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다. 황혼길에 들어선 노부부는 우두커니 서서 우리와 함께 예배에 참석하는 듯한 자세를 취해 우리를 더욱 신나게 한다. 찬송 후 기도하고 고개를 들어 보니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합창단의 창설자이고 정신과 의학박사인 원로 장로님의 말씀이 오늘은 더욱 새롭기만 하다. 예정에 없던 헌금을 하느라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돌렸다. 헌금은 어제 우리가 공연한 교회에 헌금하기로 하고....

 

예배 후 꽃이 아름답게 장식된 공원 한 가운데서 즉흥 공연을 갖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고 우리는 더욱 신이 나서 앵콜을 자청해서 부른다. 공원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인원을 세니 두 사람이 빈다. 가이드는 조금 기다리다가 걱정되는지 서둘러 공원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간다. 한 참을 지나 두명을 데리고 온다. 둘이 얘기하면서 가다보니 일행이 없어졌다고.... 첫 날 공항에 제일 늦게 나온 단원이 또 이번에도 끼어 있어 한참 놀림을 당했다.

 

오늘 점심은 프랑스 정식으로 한다고 한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일반 프랑스식 대중식당인데 이미 음식이 준비되어 있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가이드는 음식먹는 방법을 설명하고 일행은 화장실부터 찾느라 바쁘다. 애피타이저로 달팽이 요리부터 나온다. 조그만 도자기 그릇에 구멍이 나 있고 그 안에 까만 달팽이가 기름속에 놓여 있다. 미리 겁을 집어 먹은 사람들은 손을 못대고 있으나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맛부터 본다. 곁들이는 포도주 한 잔과 함께.... 조금 짭짤하고 기름기가 있으나 맛은 워커힐의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먹던 것과 전혀 다르다.

 

기름까지 빵으로 찍어 먹고 조금 맛이나 볼 정도로 나온 스테이크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고나니 아쉽다. 무언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이다. 배불리 못 먹어서 그런가?

 

곁에 외국인이 먹고 있는 스파케티에 눈길을 주니 침이 꼴깍 넘어간다. 저걸 먹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옆에 또 다른 단체 관광객이 와서 앉는데 한국인이다. 어디 가나 한

국인은 가는 곳이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음식점도 그런 우리들의 음식 습관을 알아서인지 미리 준비해 둔 음식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식탁으로 배달된다.

 

오후에는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갔다.

 

루이 14세의 영화와 사치스러움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는 황금궁전의 입구는 모두 돌로 되어 있다. 황금과 부귀와 영화도 모두 궁전 안에서만이리라. 밖으로 나가면 모두 한갖 돌 밖에 없는 세상인 것을....

 

베르사이유! 너무도 많이 듣던 이름의 궁전이다. 꿈의 궁전의 대명사. 태양왕 루이 14세. 온갖 화려한 수식어가 그를 늘 따라 다닌다.

그 말을 확인이라도 하듯 궁에 들어서자마자 벌써 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있다. 입구에서 가이드가 표를 구입해 가지고 올 동안 첫 번 코스를 보니 넓은 홀앞에 못 들어가게 줄이 쳐 있는데 그 안에는 진짜 황금이 저렇게 많을까 할 정도로 화려한 홀이 저 멀리 보인다. 높은 천정에 벽화들과 금빛의 홀 전면은 너무 멀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 당시의 화려함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가이드는 이 곳에서는 안내가 허락되지 않으니 설명없이 그냥 둘러보고 오란다. 그러나 이곳저곳에 다른 가이드들이 설명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곳에서 근무하는 가이드들은 아닌 것 같다. 혼자 온 사람들은 길게 생긴 전화기같은 것을 들고 녹음된 안내 방송들을 듣고 하나 하나 둘러보고 있다.

 

이 곳은 전체 12개의 코스로 되어 있는데 왕비의 침실에서는 조금 특이한 설명이 있다. 호화로운 왕비 침실 옆에 조그만 문이 있는데 저 곳으로 왕비가 밤마다 다른 남자들을 불러 들였단다. 하긴 금력과 권력이 성욕을 억제하지는 못하리라. 왕비의 침실 뿐 아니라 외빈들이 기다리는 방, 거울의 방 등 모든 방이 화려함 그 자체이다.

 

어느 방엔가에 나폴레옹의 대관식 장면을 그린 대형 벽화가 걸려 있다. 오전에 루브르에도 이것과 똑 같은 그림이 있는데 어딘가 다른 부분이 한군데 있으니 찾아보라는 가이드의 설명도 있고 해서 모두들 기억을 더듬어 무엇이 다른지 머리를 맞대었다. 결국 우리들은 나폴레옹의 다섯 여동생중 한 명의 드레스 색깔이 루브르에 있는 것은 흰 드레스인데 이곳은 핑크빛으로 되어 있다고 결론짓고 지나가는 이곳 안내에게 물으니 그 답이 맞다고 한다.

 

모두들 왜 틀릴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누군가는 '혹 임산부이지 않겠느냐, 왜냐하면 두 손이 배를 감싸고 있으니 일부러 임산부는 그런 색갈의 옷을 입혀서 조심하게 했던 것일 것이다'하는 주장이 소리를 높혔다. 그러나 나중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그 여동생을 좋아해 일부러 자기 사랑을 표현하느라 그렇게 다르게 그렸다는 설명에 다 같이 재미있어 했다.

 

천정과 벽화, 카펫트, 그리고 커텐 등의 화려함에 입만 벌리고 다니다가 밖으로 나오니 정원이 무척 넓다. 저기 멀리 다른 궁이 보였지만 시간이 없어 포기하고 그 다음 관광지로 가기 위해 궁을 나와 기념사진 하나 찍고 나니 가이드이 설명이 덧 붙여진다. 지금 서 있는 이 곳에서 저 앞을 보면 건물들이 모두 눈 아래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 당시 루이 14세가 자기 궁보다 높은 것을 짓지 못하도록 해서 이렇게 일부러 이곳에 성토를 해서 높게 지었단다.

 

이어서 가이드가 또 어느 한 건물을 가리키는데 그 건물은 조금 높게 지어져 있었다. 루이 14세가 몰락한 후 시민들이 그에 대한 대항의 의미로 건물 하나를 높게 지어 루이 14세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나오는 길에 버스 주차장 옆에 아랍 사람으로 보이는 듯한 사람이 파리의 명승지를 그린 수채화 그림을 팔고 있어 아랍말로 인사하고 얼마냐고 물어보니 20프랑이라 한다. 내가 이슬람식 인사를 하니 무척 반가와 하지만 5프랑으로 깍자하니 절대로 안된다 한다. 애초 내가 살 마음이 없었던지라 그냥 차에 올라 서고 차가 떠나는데 차에서 잠시 소란이 벌어졌다.

 

누군가 탑승 전에 이상한 장난감을 하나 샀는데 조그만 동물인형으로 옆구리를 누르면 끝이 빨간 큼지막한 고추가 불쑥 앞으로 나오니 너도 나도 서로 먼저 보려고 하는 통에 그 인형은 한 참 수난을 겪어야 했다. 특히 여자단원들이 더욱 신기해 하고 자꾸 먼저 보려 하는 것은 잠재적인 불만감인가 하며 겉으로 속으로 얼마나 웃었던지...

 

더군다나 그 인형을 산 단원의 말에 따르면 자기가 무심코 지나가는데 장사하는 아랍인이 한국인인줄 알고 10프랑이라며 자꾸 따라붙드란다. 빨간 고추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도 재미있었지만‘씹프랑’이라는 우리말 발음이 더 재미있어 하나 샀다는 설명에 단원들 모두들 씹프랑, 씹프랑하며 또 얼마나 웃어제꼈는지...

 

베르사이유 궁전을 가기 전 점심을 하고 여느 가이드나 다 그렇듯이 손님들을 쇼핑센타로 데리고 가는 바람에 그곳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하여 그 다음 코스인 에펠탑에 가기가 힘들다고 말하며 가이드는 그 탓을 우리들에게 돌린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신청자에 한하여 프랑스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중 하나인 리도쇼를 가게 되어 있어 어차피 시내로 나와야 하나 운전기사가 저녁에는 별도로 요금을 주어야 하니 우리들 보고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다. 당초 리도쇼의 관람료가 일인당 120불 정도 예상했으나 가는 인원이 적어 180불을 내야 한단다. 우리는 모두 경악했다. 180불이면 한화로 따져서 무려 20만원에 가까운 돈을 토플리스 춤을 추는 여자들을 보기 위해 내야 한다는 부담감때문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도 포기했다.

 

그러나 언제 이런 구경 또 하겠느냐 하는 몇몇 열성파들은 리더의 반 협박조인 말투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겠다는 사람들'의 축에 끼어 손을 들었다.

 

가이드는 그 대신 저녁에 일인당 50불씩을 내고 에펠탑과 세느강의 야경을 보기 위한 유람선을 타지 않겠느냐는 제의에 다 같이 공조했으나 리더의 제의로 한 사람이라도 가지 않으면 저녁 관광은 포기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하여 거수투표하였으나 두명의 단원이 반대표를 내어 저녁 관광은 무산되었다.

 

그 중 반대한 대 기업 사장인 한 사람이 나중에 넌즈시 나에게 귀뜸하기를 '일 인당 50불이면 35명 인원을 따져볼 때 자기 하루 급여보다 많으므로 이건 부적당하다'라고 자기 주장을 소곤거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군중심리에 따르지 않는 현명한 판단으로 결정을 내리는 성실한 기업가에게서 또 한 수 배웠다.

 

가이드도 공조하고 리더가 무산되었음을 알리는 선언이 있은 후 가이드는지금 부랴부랴 서둘러서 해지기 전에 에펠탑을 보아야 한다면 서둘렀다. 그러면서 가능한 지 몰라 여기저기 전화도 하는 둥 부산을 떨며 에펠탑에 도착하니 시간은 4시 반.

 

에펠탑은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수천톤의 시커먼 철 구조물이 당초에는 100년 전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기념비로 만들고 박람회만 끝나면 철거하기로 하였으나 그대로 둔 덕택에 프랑스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고 그로 인한 현재의 관광수입은 천문학적 수준에 달하고 있다 한다.

 

100년 전에 이러한 철 구조물을 만들었다는 건축설계의 진보성에 내심 감탄해 하며 이전 파리 방문시 올라갔던 엘리베이터 앞에 다시 섰다.

 

에펠탑은 4개의 다리기둥으로 모두 올라갈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고 다리 중간부분에 가서 내려 최고 높은 데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갈아 타야 한다. 예전이나 지금도 역시 검은 피부색의 이방인들이 하찮은 장난감들을 팔고 있고 금박으로 조각한 미스터 에펠의 흉상이 무심히 관광객들을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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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에펠탑을 배경으로....

 

미리 예약을 했다고는 하나 제대로 들어갈지 모르겠다면서 에펠탑

의 안내원과 빨리 들어가게 해 달라며 한 참 흥정을 한다. 그러다가 우리는 단체 손님이라 다른 문을 통해서 들어가는데 엘리베이터 하나에 우리 45명 인원이 다 들어가도 남을 정도이다. 좁은 공간에 모두 빽빽히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가이드는 우리에게 시간이 없으니 그냥 둘러보고 내려오란다. 일행은 바빴다. 비록 시간이 없어 이 좋은 관광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즐거웠다. 모두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 우린 족하니까...

 

중간층인 2층에 내리자마자 서둘러 맨 꼭대기층인 3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로 바삐 발길을 옮겼고 꼭대기에 올라가자마자 파리의 거리를 내려다 볼 시간도 없이 흩날리는 머리 카락을 다듬어가며 기념사진 찍기에 바빴다. 좁은 공간에서 사진찍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증명사진 찍는 이것 만큼은 꼭 해야 하기에. 마치 초상화 그리듯이....

 

에펠탑의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는 파리의 전경은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듯이 말이 없는 고대의 건축물들과 파란 잔디들이 아득히 멀리 누워있다. 이 역사는 언제까지 갈 것인가? 천재지변이 일어나 에펠탑이 무너지지 않는 한,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나처럼 아래를 내려다 볼 것이고 비록 에펠탑이 쓰러져도 파리는 다시 세울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도둑놈이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고 나올 때에 반드시 부엌에다 대변을 보고와야 마음이 편하다는 말이 있어 이런 말에 공조한 다른 단원과 어떻게든 이곳에서 화장실에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조금 지체하느라 늦게 밖으로 나오니 모두 차에 탑승하고 있다.

 

에펠 탑 배경사진을 찍지 못해 무척 아쉬었는데 가이드가 어느 곳에서 버스를 세우더니 일행에게 이곳에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과연 그곳은 에펠탑이 멀리 보이고 그 큰 건축물이 카메라의 조그만 시야게 가득 들어온다. 때가 저녁때 쯤인지라 역광이 안 좋았으나 부부사진, 단체사진을 여러 각도로 찍고 하루의 관광을 끝내고 저녁을 한식으로 때웠다. 이렇게 외국에서 매일 쌀밥 먹는 게 싫은데 단체행동이니 그냥 즐겁게 생각하기로 한다.

 

호텔로 돌아와 저녁에 리도 쇼 가는 사람들을 보내고 몇몇 사람들에게 저녁에 인근 잔디밭에 가서 노래하자고 슬슬 부추기는데 모두 그러자라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간 후 피곤해서 쓰러졌는지 모두 감감 무소식이다.

 

가방에 가지고 간 조그만 하와이기타인 우클레레의 줄을 튜닝해 놓고 있으니 누군가 전화벨을 울린다. 리더와 총무가 동부인해서 포도주 한 잔 하러 가자며 로비에서 만나자 한다. 마다할 내가 아니다. 싱글로 온 형님 한 분과 다른 이들은 모두 부부동반해서 밖으로 나왔다. 하긴 인원이 많으니 모두 다 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함이 아쉽다.

 

변두리 호텔이라 저녁이 되니 차 하나 제대로 다니지 않고 인적 하나 없다. 호텔 바로 아래 레스토랑이 있어 식사하지 않고 야외에서 포도주만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느냐고 물으니 자기네는 안되고 저기 모퉁이에 다른 가게에 있다 하길래 한 참을 내려가니 제법 큰 술집에 야외 테이블이 비어 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예쁜 여자 웨이터에게 포도주를 큰 병째 청하고 안주는 그냥 거저 주는 것으로 달라 하니 웃는 얼굴로 스낵을 가져다 준다. 밤 늦게까지 정통 유럽의 새빨간 포도주에 스낵과 정담 그리고 음담을 안주 삼아 두병을 나누어 마시고 술이 얼근해져 밤길을 기분좋게 아내와 같이 걸어 오면서 파리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한다. 호텔 방으로 돌아오자 잠이 쏟아져 내린다. 그대로 쓰러진다.

 

여행 4일째..(파리 - 독일)

 

오늘 파리를 떠나 제 2의 기착지인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간다. 홀로 여행 같았으면 어제 밤에 기차를 타고 새벽에 독일로 넘어가련만 이번은 조금 돈도 들었고 편한 여행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나라를 이동하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는 것은 사치가 아닐까? 분에 넘치는 짓을 하다 보면 무언가 일이 생길텐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정말 여행에서 가장 큰 실수를 했다.

 

여행사측에서 그만 비행기 탑승시간을 잘 못 알았다. 이런 실수를 .... 그것도 한 두명이 다니는 것이 아니고 무려 45명이 한꺼번에 다니는 여행이고 더군다나 오늘 밤에 독일에서 공연이 있지 않은가...

 

그 사실을 모두 아침에 차가 공항으로 출발하고서야 알았다. 도로는 월요일 아침이라 출근차량으로 이미 한 없이 막혀 있고 우리가 탄 버스는 어느 길을 가다가 길이 막혀 다른 길로 돌아간다. 여기 저기서 불평이 나온다. 여행사를 잘 못 택했느니 한국에서 따라나온 여행사측 직원이 해외여행에 너무 어수룩하다느니 등등... 물론 나도 그 불평하는 축에 끼었다. 해외여행을 많이 해 본 나로서는 여행사에서 따라 나온 부사장이라는 사람의 공항업무 처리, 고객을 대하는 태도 등이 무척 어색해 보인다.

 

비행기를 이미 놓쳤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게 가르쳐 준 비행기 이륙시간에도 차가 밀려 제대로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 거대한 드골 공항을 뺑뺑 돌아 어느 입구에 차를 세우고 이게 빠른 길이라며 우리들에게 짐을 싣고 내리는 계단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그러나 텅빈 탑승카운터는 아무도 우리를 반기지 않는다. 모두들 가방을 열을 지어 세워 놓고 다급해진 현지 가이드, 여행사 부사장, 그리고 우리 진행팀들의 초조한 모습이 보인다.

 

이미 비행기는 떠났단다. 그리고 다음 비행기도 예약이 어렵단다. 워낙 많은 인원이라 그럴 만도 하지.

그럼 에어프랑스 말고 다른 비행기편은 가능한가?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편은 자주 있는가?
혹 기차나 버스로 가야 되는 것은 아닌가?

 

등등 한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사람들은 불안해하나 그래도 우리 모임이 워낙 낙천적이고 친한 사람들의 모임들인지라 진행팀을 믿고 장시간 서서 혹은 앉아서 큰 소리 하나 없이 담소들을 나누고 또 군데군데 모여 음담패설로 시간들을 때운다.

 

한 참 후에 가이드가 백방으로 노력했는지 대안책을 가지고 왔다. 일행을 앞에 놓고 기쁜 소식 한 가지와 나쁜 소식 한가지가 있다며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기쁜 소식은 자기와 앞으로 몇 시간을 더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나쁜 것은 우리가 두팀으로 헤어져 가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들 그거야 상관 없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힘썼는지 오늘내로 프랑크푸르트로 갈 수 있게 해 준 가이드가 고맙기만 하다. 그것도 연주 전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웬만한 말 주변 없이는 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일행 중 8명 정도가 한 시간 늦게 다른 비행기로 와야 한다고 하며 젊은 사람들 중에 몇 명의 이름을 불러준다. 나도 후발대에 끼어 있다. 나야 어찌하던 좋다는 생각과 함께 오히려 여행이란 이렇게 조금 빗나가는 것이 더 좋은 경험과 추억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기쁜 마음으로 응한다.

 

선발대가 떠나는 시간이 오후라 점심을 이 곳 파리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모두 무거운 가방을 다시 들고 나와 주차장에서 한 없이 기다리는데 조금 지루한 것 같아 어제 조율해 놓은 우클레레를 꺼내어 노상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냥 혼자 부르면 스스럼 없이 따라 하는 것이 우리 합창단의 전통이라 나 혼자 음악을 즐기듯이 커다란 시멘트블록 위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이윽고 버스가 오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 인근 한국식당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조금은 침울해진 분위기를 바꾸고자 마침 가지고 간 조그만 하모니카를 꺼내어 나이 든 단원에게 건네주니 그 분은 하모니카의 달인인지라 아주 멋있는 곡들로 일행을 흥겹게 만든다. 모자르트의 곡들, 성가, 미국 민요 등등 레퍼터리도 끊이지 않고 C 장조 밖에 안되고 한 옥타브 밖에 안되는 조그만 하모니카 안에서 온갖 구수한 멜로디들을 듣다보니 어느덧 시내에 들어와 있고 급히 차린 식탁인 듯 한적했던 한국인 식당은 갑자기 몰려든 대식구들을 맞이하느라 손이 부족하여 쩔쩔맨다.

 

합창단의 부지런한 여자단원들이 손을 돕고 식사를 시작하였으나 모두들 마음이 급해서인지 금방 밥 한 그릇을 비우더니 밖으로 나선다.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 먼저 30명이 넘는 단원들이 다른 비행기편으로 떠나고 우리 8명만 조촐하게 남아 공항의 이 곳 저곳을 돌아 다니며 커피와 청사내의 이국풍경들을 즐긴다.

 

생각해 보니 지금쯤 한국에서는 추석 전 날이라 형제들이 모여 있으리라. 전화를 거니 아니나 다를까 전화선 저 멀리 한국에서 들리는 소리는 이미 형제들이 모여 앉아 웃음소리와 즐겁게 노는 소리가 가득하다. 내일 TV에 우리들 얼굴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소식을 전하고 명절날 여행와서 죄송스런 맘을 전화상으로 전한다.

 

우리 탑승시간까지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다시 청사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고 하릴없이 청사내에서 시간을 때우다 시간이 되어 첵크인 한 후 선물코너에서 서성거리다가 탑승하려고 하니 이 곳은 탑승하는 방법이 여느 공항과 다르다. 콩코스에 버스가 닿고 그 버스의 객실이 높이 올라와 손님들을 태우고 활주로에 있는 비행기까지 손님들을 데려다 준다.

 

여러해 전에 사우디의 제다공항에 이런 시스템이 있어 한 달에 한 번씩 이용했던 나에겐 익숙한 탑승방법이다. 그런데 갑자기 같이 간 일행들이 안절부절하고 있다. 한명이 안 탔다는 것이다. 그것도 해외여행을 처음 나온 여자 단원인데 그 버스가 떠날려고 하는데도 그 단원은 타는 기색이 안 보인다고 모두들 밖을 쳐다보고 걱정이다.

 

버스 떠나는 것을 늦추어야 하는게 아니냐고 걱정하고 있어 난 그들에게 안심을 시킨다. '아마 이 버스가 두번째 운행편일 것이다. 첫번째 운행시 그 여단원이 탑승했을테니 걱정마라, 만약 첵크인 한 후 손님이 타지 않으면 비행기는 떠나지 않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누차 강조해도 여행사의 부사장이란 사람은 걱정이 태산같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여단원은 미리 비행기에 타고 있고 혼자 왜 우리들이 안타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단다. 1시간 반 동안의 비행은 짧은 거리인데도 심적으로 피곤했었던지 잠이 퍼붓는다.

 

깨끗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 천천히 걸어 나오는데 미리 와 있던 단원들이 반기고 아내도 나를 보고 반가워 한다. 1시간이나 먼저 떠난 선발대도 약 15분전에 도착했다고 하며 잠시 떨어져 있었어도 나라가 틀려서인지 반가움의 정도가 틀리다.

 

모두 차에 타고 출발하며 이 곳 독일의 가이드가 인사를 하는데 금방 실망감이 앞선다. 나이도 많고 말도 느리고 설명도 무척 교과서 읽듯이 한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합창단의 구단원의 형님인데 이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고 음악에 상당한 식견이 있어 우리의 가이드로 선택되었다고 한다. 조금은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출발하고 공항을 막 벗어나니 왼편에 조그만 숲을 가르치며 이곳에 축구 연습장이 있는데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 있을 때 연습하던 곳이라 한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모터쇼가 있어 관광객이 무척 많으며 호텔도 잡기 어렵다고 한다. 독일의 첫 인상은 파리와 사뭇 다르다. 파리는 유행과 패션의 고장이라는 선입견때문인지 모든 게 화려해 보였고 독일은 검소하고 근면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깊게 박혀져 있어 모든 것이 별로 치장도 안하고 건물 또한 특징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 계획대로 되었다면 오전에 도착하여 오후에 로렐라이 언덕과, 뢰머광장, 시청사, 구 시가지, 대성당 등 나혼자 지난 번 보았던 곳들을 아내와 함께 다니며 추억에 젖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한 사람의 잘못으로 그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버스는 어느덧 시내로 들어가고 눈에 익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지나가다가 잠깐 세우더니 이곳 교민들이 우리를 위해 사 놓았다는 포도와 바나나를 어느 한인 선물가게에서 가지고 나와 차에 실었다.

 

그리고 빨리 교회에 도착해 리허설을 해야 한다는 지휘자의 조급한 마음에 버스가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각자의 짐들에서 연주복들을 챙기고 짐을 다시 집어 넣느라 길가에서 법석을 떨었다. 이미 한 번의 공연이 있었기에 우리는 느긋하나 지휘자는 그렇지 못한 가 보다.

 

넓은 잔디 밭에 따로 떨어져 있는 교회는 파리의 주택가 교회와는 규모면에서도 더 큰 것 같다. 교회안에서 미리 준비하고 있는 교민들이 우릴 무척 반긴다. 교회의 내부는 넓으나 반 정도는 강대상과 준비실이 차지하고 있고 교인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조금 적게 보이며 좌석도 접의자로 준비되어 있어 분위기가 교회보다는 시골 공회당 같았으나 교인들의 태도는 따뜻함이 보인다.

 

음을 맞추어 보고 연주복을 갈아입는데 아까 차에 실었던 포도가 금방 사람들의 입맛을 압도해 버린다. 껍질까지 먹을 수 있는 청포도는 어찌나 맛있는지 단원들 모두 노래할 때 목소리에 장애가 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는 작은 포도 알을 뜯기에 바쁘다.

시간이 되고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에 많이 들어와 앉아 있다. 특히 현지 독일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고 정장을 한 모습이 이채롭다. 확실히 독일은 근면한 나라인가? 시작 시간을 파리처럼 늦출 수는 없었다. 모든 접의자를 다 펼치고도 객석이 꽉 찼다. 흥겨운 우리의 공연을 듣고 보는 교민들의 얼굴에서 행복을 읽을 수 있다.

 

이곳에는 워낙 먼 곳에서 차를 타고 오기 때문에 공연 관람객 100명이 한국에서 1000명에 해당된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이해가 된다.

공연 후 다음 날 관광지인 하이델베르그까지 먼길을 달려가야 하기에 시간을 벌기 위해 가는 길 도중에 있는 호텔에서 숙박한다고 하여 모두들 연주복 차림으로 차에 올라 2시간 가까이 차를 달려 도착한 호텔은 첫눈에 호감이 가는 멋진 호텔이었다.

 

바우어호텔, 아마 호텔 체인인 것 같다. 전체적으로 둥근 건물이 특이하고 가운데는 도너츠같이 그대로 비어 있어 모든 객실이 마치 같은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객실문을 여니 방 안의 짜임새 또한 아! 역시 독일이구나 하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비행기를 놓치는 야단법석을 떨며 이동하는 것도 피곤했지만 아늑한 호텔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 따뜻한 물로 샤워하자마자 그냥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오늘 무산될 뻔 했던 공연이 성황리에 끝나게 된 것을 감사하며 일단 공식 연주일정을 마감한다.
 

 

유럽 음악여행 5일째 (하이델베르그)

 

마치 어느 왕궁의 화려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듯한 아늑한 분위기 속의 호텔에서 아침을 맞았다. 내 생전 많은 나라, 여러 곳의 호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았지만 이곳처럼 아늑함을 느낀 곳이 없었던 것은 내가 이제까지 너무 비지니스 호텔들만 찾아다녀서일까?

 

무늬가 있는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욕실에 들어가니 볼록거울이 달려있다. 욕실의 거울에 달린 볼록거울이 면도하기에 너무 편한 물건인 줄 이제야 알았다. 평상시의 내얼굴보다 3배가 크게 보이는 얼굴에서 아주 조그만 털까지 세세하게 볼 수 있어 면도를 아주 상큼하게 할 수 있어 귀국하면 이것을 사서 설치해야 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어제밤에 어둠을 뚫고 들어온 호텔에서 잠시 걸어나와 밖을 걸으니 조용한 마을의 한 귀퉁이에서 우리가 하루를 쉬었음을 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면 더 걸어 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인적 드문 거리가 조금 우리를 겸연쩍게 하여 식사를 위해 호텔의 윗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니 여긴 어제밤 우리가 잠든 방보다 더욱 분위기 있는 곳임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온통 창문으로 둘러 쌓인 레스토랑에서 앞이 훤히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자 했으나 벌써 창가는 다른 이들의 차지로 넘어가고 가운데 쯤에 자리를 잡으니 지난 밤의 반가왔던 얼굴들이 여기저기서 인사를 나눈다.

 

식사 또한 프랑스의 호텔 부페보다 메뉴가 좋았고 먹음직스러운 빵과 샐러드 그리고 또한 자스민 차의 향기가 서양음식을 먹고 난 후의 개운치 못한 입을 말끔히 씻어 준다. 레스토랑의 주위에는 와이어와 철판을 이용해 베란다를 만들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어 있어 다른 이들이 밖에서 우릴 보고 웃음 짓는다.

 

예술을 사랑하는 나라라 그런지 호텔 주위의 여기저기에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어 포스터를 배경으로 사진 하나를 찍고 차에 올라 하이델베르그로 향한다.

 


독일의 아침벌판을 창가로 그윽하게 바라보며 고속도로 주위의 나무들이 아주 조금씩 기울어져 있는 것을 보고 바람이 오랫동안 강하게 지속적으로 불고있음을 안다. 여기저기 사탕수수가 자라고 있다고 하는 가이드의 설명에 담배밭과 사탕수수라는 옥수수같이 생긴 나무들을 처음 볼 기회가 있었다. 넓은 벌판과 푸른 초원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그림같은 집들을 보며 저런 곳에서 하룻밤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멀리 보이는 마을에 교회 하나 뎅그러니 서 있고 여기저기 푸른 목장에서 소들이 거닐고 있다. 이곳 교회는 십일조 같은 헌금은 없고 모두 정부에서 제공되는 월급으로 해결된단다. 특별히 헌금을 하는 것은 주로 특정한 목적이 있을 경우에 하지만 그것도 원칙적으로 허용이 되지 않는단다. 목회자는 년 이천만원 정도를 정부에서 받는다.

 

버스는 아우토반보다는 국도를 택해 하이델베르그로 간다고 한다. 하긴 그편이 우리에겐 더욱 좋은 기회이다. 아우토반에서는 승용차는 속도제한이 없지만 버스는 시속 100키로 이상 못넘게 되어 있어 오히려 답답함을 느낄 정도이다. 독일인들의 안전성에 대한 관념은 과연 자동차의 나라답게 철저하다.

 

또하나 특이한 것은 우리 버스에 운전기사가 두명이다. 헝가리에서 온 차라 하는데 독일에서는 한 사람의 운전기사가 4시간 이상을 계속해서 운전을 할 수 없어 이런 장거리 여행에는 반드시 교대로 운전해야 한단다. 맘좋게 생긴 기사들이 우리를 편안하게 해 준다.

 

또 한가지 그냥 무심코 지나치면서도 무언가 하나가 빠진 것 같아 생각해 보니 고속도로에 도로공사를 하는 것이 전혀 없고 경찰차도 전혀 보이지 않음이 우리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고난 차량도 거의 없고 중간에 서있는 차도 볼 수 없다. 왜 그럴까?

 

버스는 계속되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가며 시골 마을을 구석구석을 달린다. 가이드는 음악에 대해 아주 박식하여 여러가지 재미있는 음악의 역사에 대해 천천히 그리고 세세하게 가르쳐 준다. 그러나 어느 때는 녹음된 설명을 틀어 주어 우리들을 조금 실망시키기도 한다.

 

몇 시간을 달려 버스가 우리를 쏟아 놓은 곳은 하이델베르그 고성의 입구이다. 이제 불과 4일을 지냈는데 벌써 카메라의 필름이 다 소모되었는지 필름을 요청하는 사람이 많다. 늘 나만은 가지고 있으리라는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인지 나에게 곧잘 필요한 것들을 요청한다.

 

잔디를 갓 베었는지 풀 냄새가 그윽한 성안의 높은 성벽에서 바람을 깊게 코로 들이마시며 다시 이곳에 왔음을 실감한다. 한국인 여행객은 우리만이 아닌 듯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리고 개량 한복을 멋있게 차려 입은 어느 한국인이 돋보인다.

 

성의 입구에는 전쟁시 쓰러져 무너진 성벽의 일부가 오랜 세월을 그대로 잠자고 있고 파란 이끼와 담쟁이들에 의해 둘러 쌓인 것이 이년전 그 모습과 변함이 없다. 하긴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저 성의 저 무너진 성벽은 그대로 역사의 중후함과 그 고색창연한 품위를 그대로 간직할 것이다.

 

성안으로 들어가면서 성문이 아주 무섭게 생겼음을 새삼스럽게 쳐다본다. 문의 윗 부분에는 그대로 내려오면 마치 콩가루가 될 것 처럼 육중하고 뾰죽한 쇠가 당시의 상황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성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다 같이 모여 노래를 한다. 하이델베르그의 고성에서 '하이델 뢰스라인'을 부르니 지나가던 외국인들이 우리 주위에 둘러서서 즐거운 모습으로 야외공연을 즐기고 있다. 앵콜로 두 서너개의 노래를 더하고 세계에서 제일 큰 포도주 통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높이가 8미터나 된다는 포도주통의 주위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 기념을 낙서로 가득 채워 놓았다. 전 세계의 언어가 아무 의미 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 그리고 친근한 아랍말까지 이 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 통을 돌아가기 전에 평생 술을 먹다가 죽은 한 재미있는 삶의 역사를 가진 사람이 그 통을 지키고 있고 줄을 담기면 우스꽝스러운 장난감이 나오는 물건이 있어 관광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수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그 줄을 한번씩 당겨볼텐데 고장이 안나고 작동이 되는 것을 보면 누군가 계속 수리를 하거나 혹은 고장이 안 날 정도로 단순하고 견고히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포도주통 입구에는 포도주 시음 코너가 있고 5마르크를 내면 기념으로 마신 잔을 준다. 집에 한 개가 있으니 구색을 맞추기 위해 한 잔을 더 마셨다.

 

성의 뒷편에는 도시를 잘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그 전망대의 바닥에는 이 곳을 만들 때 일부러 그랬는지 바닥에 누군가의 신발자국이 깊게 파여져 있어 모두다 그 곳에 자기 발을 맞추느라고 애를 쓴다. 마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럼 그 곳에 자기 발이 맞으면 그 성의 공주가 될려는 마음들인가. 크기가 적은 것을 보면 어린애 것이거나 혹은 여자 발임에 분명하다.

 

아쉬운 발걸음으로 이끼가 축축한 성의 뒷길을 돌을 하나하나씩 밟고 한 참 밑으로 내려오니 조그만 분수가 있고 일행은 그곳에서 잠시 쉰다. 여자들이 쇼핑을 하고 싶어해 마침 구석에 있는 한국인을 위한 가게에 들어가 또 한번 가게를 휩쓸었다. 나도 이곳에서 이번 여행을 위해 도움을 준 이들을 위한 선물을 구입하고 계속 그안에 있기 싫어 밖으로 나오니 같은 처지의 단원들이 한가롭게 의자에 앉거나 분수대 앞에 앉아 있다.

 

분수대 앞에 편하게 누워 한 낮의 태양을 즐기니 이보다 더한 편함이 어디 있으랴. 어느 순간 조용한 빈 광장에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더니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 나온다. 독일 전통 민요인 '가우데 아무스 이구투, 유베 네스뎀 스무스....'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 서서 노래를 따라한다.

노래가 있은 곳에 우리가 있고 우리가 있는 곳에 노래가 있으니....


 


일행은 모두 학생감옥으로 향했다. 지난 번에 가보지 못했던 그 곳에는 일반 주택의 대문처럼 아주 보잘 것 없으나 이미 남미 쪽에서 온 듯한 다른 관광객들로 가득 차있어 약간 기다린 후에 우리는 천천히 어두컴컴한 학생감옥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이곳은 당시의 하이델베르그 학생들이 만든 자치감옥으로 나쁜 짓을 한 동료들을 잠시 수감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이곳에 들어오는 것도 학생들에게는 자랑할만한 일 중의 하나였다고 하니 대학 시절의 낭만도 가지가지이다. '

 

물론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놓았지만 그 안에 써 있는 낙서들을 보니 그 당시에 써 놓은 것만은 아닌 것을 보아 아마 관광객들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참 지난 후에 출입을 통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온통 시커먼 색으로 벽을 칠한 감옥은 워낙 훼손이 많이 되어 그렇게 조치를 취한 것이란다. 아주 오랜 책상들과 낡은 철 침대들! 그것들 또한 학생들에겐 이 학생감옥과 함께 소중한 것이었을 것이다.

 

학생감옥 구경 후 일행은 이곳의 일정을 끝내고 버스 있는 곳으로 오니 강 건너편에 보이는 마을이 한 폭의 그림 그 자체이다. 마치 도원경 같이 펼쳐져 있는 그곳에 가보고 싶으나 그 곳에 가면 아주 영영 돌아오지 못할 아득한 나라일 것만 같다.

 

버스는 점심을 위해 중국식당으로 향했다. 일행등이 모두 중국음식을 좋아하진 않았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식당이 없었고 나이든 이들은 현지음식은 더욱 어려운 선택이었기에 그래도 젓가락질을 할 수 있는 중국음식 밖에는 이 많은 일행이 갈 곳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뮌헨으로 가는 긴 여정을 떠났다. 무려 5시간이나 걸린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일행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으나 그 오랜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는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계획해야만 했다. 물론 가이드는 그 나름대로 손님들을 위해 음악적인 그 무엇들을 준비하고 계속 설명과 녹음 테이프들을 틀어주었지만 일행들은 여행이 무척 피곤한지 점심을 먹고 난 나른함 속에 한잠을 길게 자고 난 후 잠시 쉬기를 원했다.

 

어느 휴게소에 들러 사람들은 화장실로 다급하게 달려가고 어느 외국인이 먹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우루르 달려 갔으나 독일 마르크 밖에 받지 않는 통에 미처 마르크를 준비하지 못한 단원들은 더욱 갈증을 더했다.

 

마침 나에게는 한국에서 준비한 마르크가 조금 있어 내 것은 해결되었으나 다른 이들은 어떻게 하면 마르크를 바꿀까 하다가 마침 가게에 캐쉬카드가 있고 나이 든 여단원 하나가 혹시나 해서 한국에서 가지고 온 크레디트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시도했는데 그게 성공하고 마르크가 기계 사이로 삐쭉 얼굴을 내밀자 얼마나 기뻐하는 지 마치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그 돈을 들고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로 가는 것을 보고 여행은 사람을 순수하게 만드는 좋은 계기임을 새삼 깨닫는다.

 

잠시 쉬고 나서 생기가 돌았는지 평소에 입심좋은 몇 몇 단원이 온갖 야한 얘기로 한동안 좌중을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지만 시간은 그래도 철철 넘치게 남고 급기야는 시간을 때울 재미있는 일을 모두의 관심사에서 찾고 글로서는 밝힐 수 없는 그 일이 몇 시간 동안 우리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우리의 게임이 재미에 재미를 더하고 땅거미가 서서히 자리 잡을 때 우리는 온갖 농담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버스는 이미 새로운 도시에 접어 들어 가이드는 무슨 말인가 해 줄려고 기다렸으나 우리 얘기가 끊이지 않자 결국은 우리 얘기를 중단시키고 이제 막 들어온 뮌쉔이라고 발음하는 뮌헨를 안내한다. 이곳에는 대학들이 많은 듯 책을 든 젊은이들과 책방이 여럿 있었고 큰 건물들이 모두 대학들이라고 한다. 보도에는 자전거나 스케이트 보드가 다닐 수 있는 조그만 길이 구불구불하게 마련되어 있다.

 

저녁을 위해 우리가 찾아 든 곳은 5000명이 들어 갈 수 있다는 '호프 브로이' 즉 맥주집이다. 한국의 맥주집에 가면 의례 걸려 있는 사람많은 맥주집이 여기인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가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안은 충분히 시끄러워져 있다. 가운데에는 브라스 밴드가 신나게 연주하고 있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벌건 얼굴로 밀려드는 우리들에게 시선을 준다.

 


우리 일행은 자리도 잡기 전에 이미 분위기를 알았고 몇몇이 자리를 잡으려고 웨이터와 얘기를 하고 있을 동안에 다른 이들은 브라스 밴드 앞에서 구경을 하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음악이 나오고 술냄새가 있고 정겨운 사람들이 있는데 그대로 있을소냐? 옆에 있는 여단원하나와 금새 엉겨붙어 신다는 춤을 춘다. 누구나 다 맥주를 시켰다.

 

안주는 돼지고기 삶은 것, 소세지 등 정통 독일식 안주로 상을 채우는데 조금 먹었는데도 맥주를 먹어서 그런지 금방 배가 부른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고 밴드는 한국의 '아리랑'을 연주한다. 귀가 솔깃해 가서 물으니 밴드 단원중 한 명의 부인이 한국사람이라 한국노래를 몇개 가지고 있단다.

 

또 다른 것을 물으니 '사랑의 미로'가 있단다. 그것 좀 연주해 달라고 부탁하니 지금은 안된단다. 하긴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해서 한 곡씩 그 나라 노래를 연주하면 밤새도록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밴드는 아름다운 여자를 내세워 신나는 요들을 노래한다.

 

총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들어왔는데 오늘이 월례적으로 축하해 주는 단원들의 합동 결혼기념일 파티가 있는 날이라 어디에선가 케이크를 구해 왔다. 한국 같지 않아서 케이크 구하기가 무척 힘들었다는 총무에게 박수를 쳐주고 우리는 모두 케이크와 우정과 오랫동안 같이할 형제애의 마음으로 노래를 하고 축하를 하고 건배를 했다.

 

끼리끼리 모여 사진을 찍고 평소 술을 거의 하지 않던 단원까지 기분이 무척 좋은지 맥주를 연거퍼 마셨는지 얼굴이 벌겋고 기분이 무척 상기되어 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웃고 떠들고 어느 여단원은 외국인과 스스럼 없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모두 한 식구가 되어 기분이 고조해 있을 때 가이드의 제안으로 모두 기차놀이를 했다. 우리의 긴 일행은 모두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테이블 사이사이를 돌아가면서 흥겹게 노래한다.

 

아무도 우리의 이러한 행동을 나무라는 사람도 없고 모두 주위에서 박수를 쳐 주며 흥을 돋군다. 때로는 손님 모두가 일어나서 이러한 기차놀이에 합세한다고 하나 호응이 적어 우리는 그대로 기차놀이한 채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 밤길을 걸어가며 노래를 하니 누군가 제지를 한다. 이 곳에서는 시끄럽게 하면 안 될것 같다고... 조금 걸으니 시청앞이라는 마리엔 광장에 도착해 우리는 야경으로 빛나는 광장 주위의 건물의 아름다움에 또 한번 취해 버린다.

 

이런 좋은 분위기를 그대로 지나칠소냐...일행은 밤거리 광장에 자연스럽게 둘러서서 길거리 연주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몰려들고 감동을 받은 누군가가 동전을 바닥으로 던졌는지 무언가 땡그르르 바닥을 구른다.

 

끝 마무리를 '즐거운 나의 집'으로 마무리를 하고 돌아 서려는데 주위에 서 있던 외국인이 우리가 부른 곡이 무슨 곡이냐고 관심을 보인다. 곡 이름을 대주고 우리 단체를 얘기해 주니 무척이나 부러워 한다.

 

밤거리에는 여기저기 우리 같은 음악인들이 즉흥 연주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 지는 곳, 문화가 있는 곳, 시끄러운 랩이나 록 사운드가 길거리를 울리기 보다는 모두가 공감하는 음악들이 구석구석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유럽의 한 모통이에서 우리는 이들의 문화를 부러워한다.

 

버스에 타고 어두운 거리를 보다가 문득 하늘을 보니 환한 달이 어제와는 분명 틀리다. 며칠전부터 보아 온 달은 분명 보름달이고 그 달을 보며 한국에 있는 형제들을 생각했는데 지금 독일에서 보는 달은 완전히 초생달이 아닌가?

 

아니 이럴수가.... 국가를 하나 지났다고 이렇게 달을 보는 각도가 틀려지는가 하고 궁금해 하다가 얼핏 개기 월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중에 CNN뉴스를 보니 과연 개기월식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호텔은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제법 고급스럽고 방 또한 아주 고급이다. 조그만 냉장고 옆에 조그만 포도주가 냉장고 밖에 나와 있어 혹 서비스로 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전화해보니 포도주는 차게 먹는게 아니기에 밖에 두었다고 하여 잠시 좋았던 맘이 공허함으로 바뀐다.

 

아직 자기에는 이른 시간인 것 같고 아까 시청앞 광장에서의 여흥이 남아 있어 로비로 나오니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노트북이 있어 카드를 긋고 시도를 해 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밤마다 무엇을 하는지 방에만 들어가면 밖에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밖에 나오는 내가 이상한가?

 

6일 차 (짤쯔부르그)

어제 밤 호텔에서 배고픈 늑대처럼 서성거리다 밖에 나가‘돌연변이하여 개가 먹어 버린 달’을 쳐다 보면서 ‘왜 이런 호텔은 시내 중심에 있지 않고 외곽에 있어 밤에 아무 것도 할일 없게 만드는 거야’ 하면서 투덜거리다가 할 일이 없어 방으로 들어와 그대로 조그만 침대에 쓰러졌는데 아침에 뿌연 커텐 넘어로 빛이 들어와 단잠을 깨운다.

 

호텔룸은 맨 꼭대기층이라 그런지 이층으로 되어 있고 그 곳에 있는 넓은 침대는 아내가 혼자서 기도하느라 독차지 하고 말았다. 그 침대에 누워 경사진 창문을 통해 바라다보는 독일의 아침이 멀리 도시 위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무척 큰 호텔이라 아침 식사를 위한 부페도 상당한 큰 규모이고 어제의 그 좋은 호텔식사도 여기에 비하면 댈 것도 안된다. 모두들 신나게 먹고 몰래 몰래 과일들을 싸들고 나와 가방에 챙겨 넣는다. 여행에는 이런 재미가 있어야 맛이 난다. 그러다 들키면 더 재미있는 것이고....

 

매일 보는 이들도 왜 이리들 반가운지...

직장생활하면 매일 같은 사람을 보아도 그리 반갑지 않은데...

오늘은 오스트리아로 건너간다. 시골길을 한참 달리고 가이드는 오스트리아의 역사와 음악의 세계들을 준비해 온 테이프를 틀어 주며 조용한 아침여행을 시작하게 한다.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말보다 창가로 스쳐 지나가는 평화스러운 마을들과 추수가 끝나 깨끗이 정돈된 밀밭들이다.

 

한참을 달리다 버스가 장거리 운행을 위한 주유를 하기 위해 잠시 들른 곳이 오스트리아와 인접한 국경마을이란다. 사람들은 우 몰려 내려가 화장실부터 해결하고 주유소의 구멍가게에서 이것 저것 보며 호기심을 달랜다. 다른 여자들이 모두 선그라스를 끼고 있는 게 부러웠던지 아내는 프랑스에서부터 선그라스를 하나 가지고 싶어 했지만 너무 비싼 것 같아 망설이다가 이곳에 여행자를 위한 선그라스가 비교적 싼 것이 많아 새빨간 선그라스를 하나 사 주었다. 굳이 좋은 게 필요없다는 생각 때문에 아내에게는 미안했지만 이것으로 만족해하는 아내가 고맙다.

 

남들처럼 좋은 옷이나 귀금속들을 남편 눈치를 보거나 가정형편을 뻔히 잘 아는 처지에 욕심을 내기가 어려웠던지 돈을 몽땅 쥐어 주었는데도 나중에 버스에 오를 때 보면 그 돈을 그대로 나에게 내민다. 아무것도 안샀다고... 너무 비싸더라고.... 하긴 그 말에 동의한다. 외국에서 사는 모든 것들은 한국에 가면 정말 싸고 좋은 가격으로 구입을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기분으로 바꿀 수도 없는 것들을 위해 달러를 헤프게 쓴다. '내가 나중에 남은 돈 다 줄테니까 한국에 가서 사'라고 위안을 한다.

 

조그만 시내 위에 다리가 놓여 있고 그 다리를 건너자 우리나라의 파출소 같은 조그만 건물이 하나 있다. 이곳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이란다. 전혀 국경 같지 않은 국경이다. 국경을 지나 처음 들른 곳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전 세계에 있는 누구나에게 애창되어 온 불멸의 명곡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작사 작곡된 마을(오베른도르프)이라 한다. 우리는 즉흥적으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화음을 연습한다. 지휘자님은 그제 연주만 끝내고 귀국하셨기에 대신 연세가 있는 단원 한 명이 리드하여 입을 맞추어 놓았다.

 

인적이 뜸한 곳에 우리를 내려주는데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사람들이 없다. 버스가 내린 곳 근처에는 주택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 잡고 있고 문간에 놓인 꽃 한 송이, 창가에 심어 놓은 화분들이 오스트리아의 첫 인상을 밝게 해 준다. 마치 한국에 있는 애들에게 '네가 이 담에 살 집을 그려 보아라'하면 모두가 저런 집들을 그릴 것만 같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작사 작곡자가 살던 집들은 없어지고 대신 조그만 교회를 지어 그 들을 기념한다고 한다. 목초를 실은 수레가 길 모퉁이 서 있고 푸른 잔디가 잘 정리되어 있는 곳에 지붕이 둥그렇고 겉 모습도 둥그런 조그만 창고 같은 집이 있다. 그 곳에 들어서니 긴 의자 대 여섯 개 그리고 앞에 십자가, 양쪽의 높은 창의 한쪽에는 작곡자, 맞은 편에는 작사가가 선팅되어 있다. 작곡자가 있는 곳에는 곡의 두 마디가, 그리고 작사가가 있는 곳에는 가사가 원어로 써 있다.

 

다 같이 좁은 자리에 혹은 앉고 혹은 서서 우선 기도부터 드린다.

 

전 세계인에게 희망의 노래를 만들어 준 이를 위해..... 그리고 버스에서 연습해 두었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를 아주 경건히 합창을 하니 좁은 공간안에 메아리쳐 더욱 아름답게 들린다.

 

밖으로 나와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기념사진을 하나 찍고 바로 앞에 있는 제방 계단을 오르니 얕아 보이는 강이 길게 굽이쳐 돌아가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무도 발이 닿지 않은 곳 같이 고요함 그 자체로 멀리 보이는 곳에 교회가 있고 마치 아기예수가 조용히 그곳에 내려 올 것만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인가? 노래 박사들? 노래를 부르는 나이든 천사들... 뚝에 앉아 오랫동안 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기념관 옆에서 농사일을 하는 할머니가 있어 같이 사진 찍자고 청하니 흔쾌히 응한다. 마치 엽서의 한 폭 같은 이 곳 배경은 사진이나 달력의 좋은 소재감이다.

 

그리고 버스는 다시 인근의 짤스부르크로 달려간다. 모짜르트의 고향,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였던 곳, 짤스부르크! 거리 곳곳에 오스트리아의 냄새가 듬뿍 난다. 길거리 곳곳에 아름답게 장식된 꽃밭과 여기저기 나 붙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공연 포스터들 그리고 '사운드 오브 뮤직'의 관광안내들. 영화 한 편을 잘 찍어 그 영화의 무대가 되었던 곳을 찾아 다니는 뮤직투어가 이 곳에서는 유명하다고 한다.

 

하긴 누군가가 가지고 온 여행안내 책에도 그런 관광 코스가 그려져 있다. 우리가 처음 간 곳은 그 영화에서 도레미송을 부른 공원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꽃밭이었다. 그냥 넓은 곳에 꽃을 키워 놓은 곳이 아니고 꽃밭을 여러가지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긴 가꾸어야 상품이 된다. 아님 전혀 가꾸지 말던가... 우리도 물론 영화속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도레미송을 불렀다.

 

꽃밭에서는 신혼부부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풍속은 이젠 한국에서도 익히 보아 오는 모습이다. 드레스를 입고 예식장에서 형식적인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라 야외로 나가서 맘껏 자랑해 보는 것도 멋있는 추억거리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내가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일행은 어느 다리를 건너 모짜르트의 생가로 간다. 깨끗한 강물에 오리가 한 두마리 한적하게 노닐고 있고 멀리 보이는 산 자락에는 커다란 성이 보인다. 조금은 흔들거리는 다리를 건너가니 거긴 완전히 모짜르트판이다. 보이는 가게나 물건이나 모두 모짜르트 일색이다. 포스터는 물론이고 조그만 선물 하나에도 모두 짤스부르크와 오스트리아 모짜르트가 색인되어 있다. 마치 오스트리아가 모짜르트인 것처럼....

 

생가 앞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고 가이드는 어느 연한 갈색으로 된 집을 가르치며 '저기 창문에 꽃이 있는 집이 모짜르트 생가'라 한다. 그러나 워낙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진을 치고 있어 우리는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모두 기념으로 그집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쌍쌍이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한다. 집은 무척이나 오래 되었을 텐데 도무지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수리한 흔적도 없고 마치 새로 지은 것처럼 집의 겉 모양이 깨끗하다. 매일 가꾸는 것일까? 사람들의 훈훈한 입김은 늘 집을 따스하게 만드나 보다.

 

모짜르트 생가 옆에 모짜르트 대 성당이 있다. 성당 앞에는 이름 모르는 거리의 악사들이 기타로 연주를 하며 동냥을 구하고 있고 조그만 기념품 가게들이 성당벽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가 형식적인 성당의 내부를 본다.

 

 성당의 입구에는 기부금을 받는 나이 든 아주머니가 있어 '우리는 노래하는 단체인데 이곳에서 노래해도 좋으냐'고 허락을 구하니 흔쾌히 응하여 가지고 있는 동전으로 헌금을 하고 일행에게 노래불러도 좋다는 승인을 받았으니 한 곡 뽑자고 제의, 모두다 수락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알렐루야'를 찬송한다.

 

다른 곳보다 더욱 공명이 잘 되는 것 같았고 그 소리의 울림과 관광객들의 시선에 답하고자 우리는 내쳐 두 곡을 더 해 버린다.

 

 

나오는 길에 성당에 다시 헌금하고, 나와서는 다시 어느 골목에 있는 중국 음식점에서 점심을 때운다. 한 무리의 한국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고 종업원은 바삐 움직인다. '빨리 빨리' 라는 소리를 이미 들었는지 손놀림 발 놀림이 잽싸다.

 

 

식사가 나오는 동안 인근 환전소에서 오스트리아 실링으로 환전하고 식당으로 돌아와 입으로 바람불면 훅 날라 갈 것만 같은 쌀과 기름진 중국음식으로 허기를 때운다. 뜨거운 중국차가 맛있어 여러 잔을 들이키고 밖으로 나오니 인형가게에 갖가지 인형들이 즐비하다.

 

우리 딸에게 줄 인형을 골라 보려 했지만 너무 비싼 가격이라 포기하고 만다. 식사를 마친 후 모자르트의 동상앞에서 사진찍느라 모두들 정신이 없다. 동상의 주위에는 선물가게 카페, 음식점들이 있어 공간이 무척 복잡해 보이나 이층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 부러워 보인다. 저런 여유가 있는 시간이 지금은 아쉽다.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가 버스를 기다리니 버스가 어디 다른 곳에 갔는지 보이지 않아 한 참을 그 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할 일없이 시간을 때운다. 커피를 파는 곳도 없고 선물가게도 마땅치 않다. 그곳은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가는 골목이라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던 가이드는 무척 당황하고 여기저기 다녀 보며 버스의 행적을 찾는다.

 

한시간 정도 그렇게 허송시간을 보내고 우리 버스는 이제 비엔나로 향한다. 꿈의 비엔나. 악성들이 살고 그들이 음악의 꿈을 키우고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즐거워하는 음악의 소재가 되고 거닐던 곳, 과연 그곳은 그들이 음악의 영감이 줄줄이 흘러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아름다운 도시인가? 그곳은 어떤 곳인가?

 

비엔나를 향해 가는 버스는 시골의 한적한 길을 따라 어느 강가를 끼고 한참을 달린다. 그 다음 간 곳은 모짜르트의 어머니가 살던 곳이라 한다. 하긴 어머니에 대해서도 보아 둘 필요가 있다. 음악성은 어머니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을 테니까...

 

우리가 가는 곳은 대개 다른 관광객들은 그냥 지나치는 곳이라 한다. 버스타고 일부러 이곳까지 오지도 않지만 우리는 비엔나로 가는 길이니 잠시 들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가이드는 덧붙인다.

모자르트의 어머니는 평화스러운 곳에서 살았다. 넓은 호수가 있고 조그만 도시가 아름다운곳. 우리는 그곳에 내리고 모두들 좋아한다. 탁 트인 시야가 좋고 그림같은 집들이 좋다.

 

호수가로 나가니 여행 온 아이들이 많다. 연주를 하는 곳인지 조그만 야외 무대가 있는데 텅 비어 있고, 강가의 가게에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아이들로 조금 시끄럽다. 저렇게 푸른 물이 아직도 이 오염된 지구상에 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멀리 보이는 산도 거의 개발이 안된 채 조그만 집들만 한 두채 지어 있고 산으로 둘러 쌓인 호수에는 한가롭게 배들이 바람을 맞고 있다.

 

현지화가 있어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니 교회앞에 모짜르트의 조그만 동상이 있고 그 앞에 분수가 자그마하게 있다. 분수에 이끼가 그대로 끼어 있어 냄새가 푸르럽고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킨 의자는 사람들의 손길로 반들반들하다.

 

멀리 보이는 산위로 가는 케이블카도 평화롭게 오가고 있다. 시간만 있다면 아니 내가 지금 배낭여행중이라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길거리의 마을 입구에 붙은 안내문에는 마을에 있는 가게들의 이름이 보기 좋게 커다란 게시판을 장식하고 있다.

 

2차선 도로를 가로 질러 가는데 양 옆으로 달려 가는 차들이 무조건 사람이 있으면 멈추고 사람 먼저 지나가게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차도에 차가 먼저이지 않고 사람이 먼저인 이 나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우리는 바쁜 갈 길을 가기 위해 시골길을 계속 달려가는데, 우리들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많다. 왜 이 곳에는 도로공사하는 곳이 없나? 왜 이곳에는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경찰차나 응급차가 없는가? 우리 운전기사도 절대 과속을 하지 않는다. 타고난 운전습관인가 아니면 어떠한 제도가 있는 것인가?

 

해가 거의 다 서산으로 넘어 갈 때 쯤 안톤 브루크너의 기념관에 도착했다. 한적한 길 옆 하얀 건물에 대머리가 벗겨진 작곡가를 위한 안식처가 마련되어 있다. 중년의 여인이 안내를 보고 있고, 각종 악보와 잘 알아 볼 수 없는 글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구석으로 들어가니 브루크너의 인형이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기대어 있는 것이 특이했다.

 

마치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걸터 앉은 모습에서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 엿 보였고 그 평범함에서 대가의 비범함이 눈 빛에 어리고 있어 무언가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처럼 한 참을 쳐다 보았지만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기념 씨디를 사려고 하였으나 무척 비싸고 가지수도 별로 없어 포기하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씨디가 코리돈 싱어스가 부른 부르크너의 모텟트라 관심을 가지고 보았으나 잘 알아 보지 못하는 독일어라 자세히 읽어 보지 못함이 아쉬웠다

 

비엔나에 도착하니 거의 밤이 깊어 길가의 가게들이 이미 어둠에 쌓여 있다. 순간 눈에 얼른 뜨이는 것들이 있다. 섹스 샵들. 지나치는 길가에서 이런 가게들이 무척이나 흔하게 보인다. 그러나 버스는 우리를 그곳에 내려 주지도 않고 그런 가게들은 이미 문이 닫혀 있다.

 

가끔 포르노를 상영하는 곳으로 보이는 가게들만이 문을 열고 그래머의 아가씨들이 문 앞에 서 있다. 가이드는 절대로 저런 곳에 들어가지 말라 한다. 잔뜩 바가지 쓰기 일쑤고, 그냥나오고 싶어도 갈테면 가 보라는 식으로 반 협박을 한단다. 한국인들은 그래도 가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식사를 하기 위해 우리가 내린 곳은 역시 무척이나 큰 식당이다. 넓은 홀이 아니고 적당한 홀들이 여기저기 있고 식당에 막 들어서자 눈에 끄는 장식물은 나무를 다듬는 연장들이다. 이곳은 슈베르트, 베에토벤 등이 자주 드나들던 곳으로 비엔나의 북쪽에 위치한 베에토벤 동네라 한다.

 

들어서면서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와 어코디언 소리에 이미 취한 탓인지 먼저 와 있던 손님들은 포도주로 얼굴이 벌겋고 많이 상기되어 있다.

 

조금은 젊은 듯한 키 큰 바이올리니스트와 나이 든 어코디언 주자가 온 홀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팁을 바라는 연주를 해 주고 있다.

 

식사에 포도주 가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기에 포도주들을 병째로 주문하고 다 같이 '날마다 우리에게' 찬송을 부르며 식사를 기다린다.

 

식사는 특이하게 먼저 뜨거운 철판을 테이블에 놓고 한 참 후에 뜨거운 접시에 각종 안주거리들 즉 익힌 돼지고기, 소세지, 그리고 순대같은 것들을 가득 채워 놓는다. 음식이 빨리 식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뜨거운 철판을 놓은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포도주가 몇 순배 돌아가고 바이올린과 어코디언이 오고 각종 귀에 익은 노래들이 계속 연주된다.

 

그러면서 어느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연주를 하는 모습이 팁을 요청하는 것 같다. 일 불 짜리를 바이올린사이에 끼워 주고 우리는 노래에 젖는다.

 

특히 바이올린은 우리 노래 '아리랑'과 '밀양 아리랑'을 구성지게 연주하여 일행 중 무용을 전공한 두 사람이 나와 춤으로 우리를 즐겁게 한다.

 

식사를 마친 후 모두 그냥 가기가 아쉬었는지 그 자리에 서서 노래 파티를 즐겼다. 이런 좋은 자리에 좋은 술에 좋은 기분에 노래가 없을소냐. 몇 곡을 부르니 다른 방에 있던 소님들이 우리 방으로 와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다.

 

밤은 이슥하고 우리는 조금은 낡아 보이는 호텔에서 오스트리아의 첫 날 밤을 즐긴다. 역시 호텔 주위에는 밤을 즐길만한 시설도 없고 모든 상가도 철시해 아쉬운 밤을 조그만 공간에서 마무리 한다.

 
 

 

유럽 음악여행 7일째 (비인)

 

지난 밤에 방이 추운 것 같아 방에 난방 기계를 열심히 뜯어 보았지만 안되는 것 같아 전화를 거니 난방이 안된단다. 가뜩이나 어두침침하고 카펫트도 깨끗하지 못한 오스트리아의 호텔은 이미지가 안 좋았는데 아침 부페 식당까지 먹을 것이 가짓수도 많지 않고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론트 데스크에 놓인 고객을 위한 사과가 탐스러워 이거 가져도 되느냐고 했더니 손님을 위한 것이라 하길래 금새 소문을 퍼뜨려 우리 일행이 모두 가지고 말았다. 여행 중 이런 간식은 무척 필요하다. 특히 사탕은 피곤할 때 아주 좋은 피로 회복제가 되고 과일은 답답한 버스 내에서 입안을 시원하게 해 주는 좋은 청량제가 된다.

 

물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필수이고 누구나 조그만 물병 하나씩은 반드시 휴대해야 장기간 여행이 좋다. 물을 살 수 있는 곳도 흔하지 않아 아침이면 호텔 식당에서 물을 얻어 가지고 나오는 것이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편하다.

 

지난 밤 꿈에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오늘 여행 중 누군가를 만나겠구나 했는데 그게 아침 식당에서 이미 해결되었다. 같이 간 대원 한 명의 조카가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온 누나를 만나러 호텔에 아침부터 와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기존 가이드 외에 또 다른 현지 가이드가 아침에 호텔 로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키가 크고 목에 팥알 만한 검은 사마귀가 자꾸 눈에 거슬리는 가냘픈 여자인데 독일어 전공을 하고 종일 우리와 같이 다니면서 계획적이고 좋은 설명들을 해 주어 인상적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완전히 음악의 나라이다. 모짜르트는 말할 것도 없고, 베토벤, 슈베르트, 하이든, 브라암스, 특히 전 유럽에 왈츠를 퍼트려 유명해진 요한 스트라우스 일가 등. 인류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길이길이 명성에 남을 인물들이 이곳에서 자라고 그들의 음악세계를 그렸다.

 

우린 제일 먼저 쉔부른 궁부터 방문했다. 비록 음악과는 관련이 없지만 오스트리아의 왕비 마리안느를 비롯한 역사와 나폴레옹의 근대 역사까지 관련된 유럽의 건축물들은 빼 놓을 수 없는 깊은 관계이기에 누구나 먼저 이곳을 들른다 한다.

 

버스에 내리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하고 있다. 쉔부른 궁의 넓은 뒤마당을 통해 궁의 옆을 지나 바로 눈 앞에 펼쳐진 시야는 그야말로 탄성의 도가니다. 우선 궁의 내부는 그렇다 치고 정원에 나무들을 어쩌면 저렇게 잘 가꾸어 놓았는지 이해가 안될 정도이다.

 

가이드는 우리를 모아 놓고 합스부르크의 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공주 마리 앙트와넷트가 이곳에서 지냈고 어린 모짜르트가 이곳에서 연주하고 난 후 마리 앙트와넷트와 결혼하고 싶은 꿈을 꾸었던 곳이라고 말한다.

 

지금 보이는 쉔부른 궁은 원래 시녀와 종들을 위한 것인데 그 내부가 너무 으리으리하고 거의 금으로 장식이 되어 있단다. 내부가 볼 것이 많으나우리가 원래 예약을 해 놓지 않았고 우리 일정이 빡빡해서 미리 포기했단다.

 

마리아는 그 궁을 지은 후에 자기 왕궁을 짓고자 했으나 종들의 궁을 짓다가 그만 너무 돈을 많이 써 자기 궁을 못지었단다. 인간의 욕심은 이렇게 한이 없나 보다. 마치 어릴 때 읽은 동화처럼 어느 사람에게 말을 달려 해가 지기 전까지 네가 달려 돌아 온 곳을 너의 땅으로 해 준다 했으나 땅을 더 가지고 싶은 욕심에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 오지 못해 수포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후 그 왕궁에 버금가는 멋진 성을 마주 보이는 높은 곳에 짓고자 했으나 그도 짓다가 실패하고 말았고 그 짓다만 궁의 벽만 외로이 산꼭대기 높은 곳에 세워져 있었다. 자기 위용을 기리기 위해 세운 아주 큰 독수리 형상만이 쉔부른 궁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다.

 

일행은 설명을 듣고 천천히 산 꼭대기로 올라가는데 옆의 숲이 정말 칼로 두부 자르듯 아주 정확하고 평평하게 다듬어져 있다. 그것도 나무의 높은 꼭대기까지 정리되어 있으며 그 숲은 내부도 그런 식으로 잘 정돈되어 있고 그 숲의 내부에 조각들이 잘 안치되어 있다.


 

잔디는 전혀 위로 삐져 나온 것이 없이 평평하고 잘 다듬은 흔적이 보인다. 구비구비 갈 짓자로 올라가는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니 우리의 영화 '서편제'가 생각났다. 이런데서 노래하고 내려 오는 것을 롱테이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욕심인가?


 

언덕 위에 올라가 내려다 본 쉔부른 성은 그 위용이 더욱 대단했다. 사진 찍기에 배경이 너무 좋아 모두 부부끼리 서서 사진을 '앞으로 박고 뒤로 박자' 했더니 그 말이 재미있어 또 한번 크게 웃는다. 워낙 친근한 사람들이다 보니 유적지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만 이렇게 말로 서로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도 여행중 느낄 수 있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나폴레옹이 짓다 만 성의 계단에서 파트별로 나누어 노래하며 단체사진 찍고 천천히 다시 갈 짓자 길을 내려오니 쉔부른 궁의 마당에서 제복을 멋지게 차려 입은 브라스밴드가 한창 흥을 돋구고 있다.

악보를 조금맣게 축소해 비닐로 코팅하며 다니는게 재미있다. 그리고 대부분 나이가 든 사람들이 연주를 하는 모습은 더욱 정겹다. 여행 오기 전 한국에서 본 탄광촌의 브라스 밴드가 스토리인 영국 영화가 생각났다.

 

천천히 쉔부른 궁을 빠져 나와 버스로 돌아오는데 조그만 삼륜차에 아이스크림, 콜라 등을 파는 장삿군의 모습이 재미있다. 사람 두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인 삼륜차는 손으로 밀면 옆으로 넘어질 것 같다.

 

다른 장소로 이동 중에 버스 안에서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건물들을 보며 가이드가 재미있는 설명을 한다. 저기 보이는 것이 미술학교인데 히틀러가 저곳에 와서 시험을 쳤다가 낙방되었단다. 만약 그 때 시험에 합격했다면 세계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호텔에서 대한항공을 폭파시킨 마유미 즉 김 현희가 하루를 묵었다 한다.

 

다음으로 간 곳은 어느 공원인데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 한다. 가 보니 요한 스트라우스의 금박 동상을 세워 놓았다. 의무 방어전을 하기 위해 모두들 부지런히 사진 찍고 일행은 또 다른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이동했다.

 

가이드는 사진밖에 남는 것이 없다며 겸사겸사 여러 곳을 다니는 곳이 낫다 하며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어느 궁전인데 이슬람의 모스크식 궁이 인상깊고 잘 다듬어 놓은 정원이 배경이 무척 좋다. 그곳에서 모두 사진 찍고 궁의 뒤로 돌아가니 커다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동상이 양쪽에서 같은 모습으로 커다란 정원을 지키고 있다. 몸은 날개가 있는 사자 모습을, 위는 아름다운 여자 모습을 한 조각은 그 유방이 탐스러워 많은 사람이 만져보느라 손상되어 자꾸 보수해 놓지만 계속 유방이 부서진다고 한다. 하긴 그 유방이 손때가 꼬질꼬질 묻어 있다. 나도 그 유방을 만지며 아내와 같이 기념 사진을 찍는다. 성안에 잠깐 들어가 보니 여전히 유럽의 상징 조각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절앞에 우뚝 서있는 각종 마왕들처럼....

 

보통 관광객들이 별로 가지 않는 곳도 우리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가기로 했다. 바로 클래식음악의 최고 영웅, 베토벤이 산책하던 곳,

 

베토벤은 독일인임에도 이곳 빈을 좋아했고 이사를 잘 다녔기 때문에 여기저기 베토벤의 기념 건물이 있다. 한 동네에서도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녔고 지금 그집들은 모두 관광지가 되어 돈을 벌어 들이고 있다. 동네 입구에는 베토벤이 다녔던 길이 약도로 표시되어 있다. 우리도 천천히 길을 걷는다. 나도 혼자 베토벤 같은 명상에 젖고파 팔을 뒤로 하고 고개를 숙이며 길을 가는데 일행 중 누군가 나의 행동을 간파하고는 놀린다. 시냇물을 따라 가는 길에는 조그만 벤치 그리고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조용한 동네에서 그런 엄청난 곡들을 생각해 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인간의 머리는 커다란 우주 같다. 조그만 뇌에서 만들어 내는 곡들이 우주의 신비 만큼이나 오묘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고 불행하게도 한다.

 

산책로의 끝에는 베토벤 흉상이 말없이 서 있다. 별로 손 돌보지 않은 것 같은데도 흉상은 전혀 흠이 없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와 보질 않았나? 산책길은 조그만 골목으로 이어지고 어느 집에서는 베토벤이 전원 교향곡을 작곡한 곳이라는 팻말도 붙어 있다

 

지금 우리 눈으로 보아도 평화스러운 마을인데 베토벤 당시의 그곳의 환경은 어떠하였기에 베토벤이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그토록 아름다운 전원 교향곡을 지을 수 있었는지 상상하기가 어렵다.

 

일행은 그간 늘 점심을 중국음식으로 먹어 질렸는지 아침부터 한식

을 먹게 해 달라고 가이드를 졸라 그날 점심은 한식 김치찌게로 즐겼다. 몇 몇 분들이 남은 반찬을 싸가지고 가는 열성을 보이는 모습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와 한적한 주택가에서 오스트리아의 조그만 창들을 본다. 개와 나란히 세상을 바라다 보는 할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유럽은 대개 창문마다 나무로 만든 여닫이 창이 따로 있다. 여름에는 해가 한 밤중까지 있기에 잠을 잘 수 없어 저렇게 겉창을 따로 만든다 한다. 하긴 재작년에 스위스에서 잘 때도 밤 9시가 넘어도 밖이 훤한 것을 보았었다. 유럽은 창이 아름답다. 각 층마다 특이한 전통이 있고 갖가지 꽃으로 장식을 해 놓아 보는 이로 하여금 저 안에 사는 사람들의 심성을 생각하게 한다.

 

식당 가까운 곳에 슈베르트의 생가가 있었다. 우중충한 색갈의 커다란 문에서 우린 조그만 쪽문을 통해 생가로 들어갔다. 별로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인 듯 낡아 보이는 건물이 아직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나무 난간도 그대로 있다. 전시관에는 슈베르트가 쓰던 올갠, 그리고 유명한 슈베르트의 동그란 안경의 유리알이 깨진 채로 잘 전시되어 있고 눈에 익은 초상화가 우리를 반갑게 한다. 슈베르트의 음악을 헤드폰으로 들을 수 있게 해 놓았고 여러 가지 악보의 원본이 전시되어 있다.


 

조용히 실내를 돌아 다니며 구경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벌써 그다지 넓지 않은 마당에 내려가 있는 사람, 아직 이층의 난간에 있는 사람들이 제각기 서 있다가 누군가의 제의로 노래를 한다. 모두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보리수' , 그리고 '숭어'를 노래한다.
노래하는 모습들이 너무 행복해 보여 난 그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비엔나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한다. 특히 도나우강이 보이니 더욱 말이 많아지는 가이드의 설명은 무척 재미있다. 도나우강에 얽힌 이야기들, '도나우'라는 말은 '돈 강의 늪지대'라고 한다. 지금은 개발이 되었지만 과거엔 모두 늪지대였다 한다.

 

옛날에는 도나우강이 자주 범람하여 누군가의 제안으로 섬을 하나 인공적으로 만들었더니 그 뒤로 강물이 범람하지 않았단다. 그 뒤로 섬을 중심으로 '신 도나우' '구 도나우'로 나뉘었고 문화도 서로 조금씩 달라졌다 한다.

 

도나우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가니 현대식 건물이 보이며 저곳이 유엔본부라 한다. 과거 유엔 사무총장인 발트하임이 오스트리아 사람이라 저 건물을 지어 놓고 유엔에 단 1실링에 세를 놓았다 한다. 그는 단 1 실링으로 비엔나를 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어 놓았다.

 

그곳에서 전 세계의 회의가 열리고 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여 들고 그들이 돈을 뿌리고 다닌다. 호텔, 관광지, 유적지, 음악회, 섹스샵 등등

 

가이드는 일행을 도나우 강변으로 안내하고 우리를 그곳에 내려 놓는다. 강가에는 낮은 풀과 의자들이 뎅그마니 놓여 있고 우리는 모두 그 곳에서 비엔나에서의 잠시 동안의 여유를 즐긴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난 잠시 왔다가는 사람임을 새삼 깨닫는다. 마치 저렇게 흘러간 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듯이 나도 잠시 후엔 저 물처럼 이 곳에 없으리라. 단지 잠시 스쳐가는 인생 길에 아주 모래알 같은 시간을 택해 유럽을 돌아다니고 있다.

 

버스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 시내로 들어가는데 가이드가 저기 보이는 예쁜 건물이 무슨 건물 같아 보이느냐고 일행에게 묻는다. 다들 이쁘게 생긴 건물을 보고 갖가지 추측을 얘기했으나 모두 틀렸고 그곳이 쓰레기 소각장이라 하니 다들 놀란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이 저렇게 아름답고 시내 한가운데 있느냐고...

 

이런 것이 바로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라 한다. 내가 버린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내 집 앞에 처리장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 그러니 처리장을 운영하는 사람도 행여 유독가스나 처리 안 된 물질이 그대로 배출되지 않게 신경을 쓴다고 한다. 그들의 사고방식이 한 없이 부럽다. 님비(NIMBY)현상에 젖어 있는 우리들은 언제나 이런 건전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어느 가이드나 다 그렇듯이 우리를 시내의 선물가게로 데리고 가 돈을 쓰게 만든다. 선물가게에서 슈베르트의 조그만 흉상 하나 사는 것으로 만족해 하고 밖으로 나와 우리나라의 명동 같은 곳을 방문한다.

 

차가 다니지 않는 넓은 인도가 있고 양쪽으로는 각종 백화점,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가이드는 이곳에서 우리에게 자유시간을 주며 저기 보이는 슈테판성당까지 다녀 오란다. 길을 천천히 걸어가니 필리핀인들로 보이는 길거리 악단들이 길거리 연주를 위해 악기들을 조율하고 있다. 그 중 팬 플류트로 보이는 악기를 조율하는 모습이 신기해 한참을 보고 있는데 대나무를 여러개 묶은 팬 플륫의 구멍 사이로 무언가를 자꾸 집어 넣으면서 튜닝을 한다.

 

무엇을 집어 넣는가 자세히 보았더니 마른 옥수수 알갱이 같길래 물어보니 맞단다. 전체 조율하는데 한 참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다시 앞으로 걷는데 길 한가운데 카페도 있고 밖에서 음식을 즐기는 이곳 사람들이 가득 모여 앉아 한 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길거리 곳곳에는 모짜르트 시대의 은빛 금빛 가발들을 쓰고 전통 의상을 입은 젊은이들이 공연 안내 전단을 돌리며 가끔 사람들과 사진도 같이 찍는다.

 

이곳에서 쇼핑을 즐기려는 아내와 같이 다니기 싫어 아내에게 수중에 있는 돈을 모두 주고 다른 일행들과 같이 슈테판 성당에 들어가고자 했으나 지금 예배중이니 들어가지 못한단다. 너무 오래되어 매연과 풍상으로 검게 퇴색한 성당은 닦을 수도 없을 정도라 한다. 몇 군데 닦은 흔적이 있지만 다른 쪽은 여전히 검은 색갈이다. 성당 지붕에 조차 독수리의 형상을 모자이크 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그 시대의 예술을 사랑했던 마음을 짐작케 한다. 성당 앞 광장에는 말을 타고 관람을 즐길 수 있도록 기수들이 말을 데리고 대기하고 있고 그 뒤로 천천히 돌아가다가 난 이상한 광경을 발견했다.

 

옷을 얇게 입은 어느 아가씨 하나가 길 가는 신사 한 사람과 다리를 부딪혔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여자 측에서 고의로 부딪힌 것이 분명한데 여자는 갖은 엄살을 부리며 죽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서 신사에게 손을 내 민다. 돈으로 해결하라는 것인지 신사는 어쩔 수 없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건네주고는 총총히 가버린다.

 

난 아무래도 이상해 그 아가씨를 계속 쫓아 가는데 아가씨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들고 하나하나 계산하고 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아, 전문 퍽치기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걷는 것도 조금 이상해 누구라도 부딪히면 그대로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 아무래도 마약을 복용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와 같은 느낌을 가졌던 우리 일행 하나도 계속 그 여자를 쫓아 가다가 그 아가씨가 또 다른 남자와 부딪히며 돈을 요구하는 것을 보았다 한다.

 

'사는 방법도 여러가지구나'

 

목이 말라 길거리의 슈퍼에 들어 물을 한 병 샀다. 외국을 다니면 늘 물 살 때 조심을 한다. 탄산수를 사지 않기를... 그러나 여지없이 사면 탄산수이다. 이번에도 실수했다. 사서 마개를 딱 따는 순간 '또 탄산수구나' 했다.

 

그 많던 우리 일행들이 어디론가 가 버려 주위를 둘러 보아도 나와 또 다른 한명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둘이 길 한가운데 있는 카페에서 비엔나 커피를 한잔 시켜 마시며 일행들을 기다린다. 실은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라는 것이 없다. 그건 완전히 한국에서 이름을 만들어 낸 커피일 뿐이다. 비엔나 커피라 함은 기존의 커피에 아이스크림을 넣은 것 뿐이다. 이곳에서 비엔나 커피를 주문하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는다.

 

일행들이 하나 둘 약속된 장소로 가고 있는 것을 보며 우리도 일어서 가는데 저 앞에서 무언가 쿵작쿵작하며 요란하고 사람들이 모두 둘러 서 있다. 여자 집시가 길거리에 조그만 나무무대를 만들어 놓고 하이힐로 바닥에 소리를 내가며 열심히 땀 흘리면서 집시춤에 몰두해 있다. 보라빛 드레스를 입은 집시의 춤추는 모습이 무척 뇌쇄적이다. 집시춤을 보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헝가리를 가서 꼭 집시춤을 보고 싶었는데...

 

또 다른 곳에서는 어느 코메디언이 무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웃기고 있다. 우리는 전혀 못 알아들으니 재미가 없어 지나치고 아까 튜닝을 하던 필리핀 밴드가 열심히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그렇게 돌아 다니다 보니 오후가 거의 다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꼭 데리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며 가이드는 어느 길을 따라 가는데 단원 하나가 급히 차를 세우고 뛰어 내린다. 우리는 영문을 몰라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아는 사람을 우연히 차창 너머로 발견하고는 급히 왔던 길로 뛰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늘 인맥이 많아 여기저기 안 다니는 곳이 없는 그 단원의 저력은 이곳에서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나중 얘기를 하는데 교회 성가대 지휘하시던 분이 오스트리아 유학을 갔는데 우연히 보았다고 하며 그 분에 대해 얘기하는데 옆에 있는 아내도 자기도 그분이 학교 다닐 때 은사였다면서 자기도 만났으면 무척 반가웠을 거라 하며 아쉬워 한다.

 

해가 거의 떨어진 광장에 거대한 여자의 동상이 우뚝 서있다. 오스트리아의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동상이라 한다. 마리아는 남자들의 방탕을 막기 위하여 남성금욕법을 만들어 남성들의 지위를 막 깍아 내렸다 한다. 그 말에 여자 단원들이 무척 좋아하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우뚝 선 마리아의 동상 주위에는 건장한 남자들의 조각이 그녀를 보필하고 있다.

 

건너편에 왕궁이 있다하여 방문하니 아주 넓은 정원에 왕궁이 반원형으로 있고 앞에 넓은 잔디가 펼쳐져 있다. 가이드는 이곳에서 빈 소년 합창단이 매주 공연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볼 수가 없다며 우리보다 더 아쉽게 이야기한다.

 

멀리 보이는 시청사의 뽀족한 탑의 내력이 시민과 성당의 권위와 관련있음을 한참을 재미있게 설명하는 손 끝에 서서히 어둠이 밀려 올 때 쯤 우리의 그날 예정된 주간 관광이 끝나고 저녁은 한식으로 즐겼다.

 

이날 저녁에는 우리가 이번 여행 시 무척이나 기대했던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다. 콘서트 관람.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빈에서 하루 약 100여 개가 넘는 클래식 공연이 열리고 공연은 한 단체가 계속 한 군데서 하는 것이 아니고 며칠은 이곳 또 며칠은 저곳으로 옮겨 다닌단다. 한국에서 떠나 올 때부터 유럽의 공연 관람 시에는 정장을 해야 한다는 여행사의 안내가 있어 모두 나름대로 정장을 준비해 가지고 왔으나, 가이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여행객들을 위해서 굳이 그런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공연 관람이 가능하도록 허가를 하였기에 우리는 별도의 준비 없이 공연장으로 찾아 갔다.

 

여행 중에라도 저녁에 비는 시간에 유럽의 공연일람표를 인터넷으로 찾아 내 나름대로 목록을 만들어 준비하였으나 유럽의 모든 공연은 철저하게 예약제이기 때문에 예약되지 않으면 공연 관람이 불가하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어 진즉 포기했다.

 

우리가 찾아 간 곳은 KBS의 '열린 음악회 빈 공연' 시 조 수미, 김 건모 등이 노래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어 무척 기대하였으나 우리가 오늘 보는 공연은 그 옆에 조그만 다른 콘서트 홀이었다. 로비는 무척 넓었고 대 공연장 가는 계단과 우리가 갈 소공연장으로 가는 계단이 따로 있어 안내들이 제복을 입고 미리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를 하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이 미리 좌석이 지정되어 있지 않고 누구나 먼저 들어가 좋은 자리 차지하는 시스템이라 서두를 필요가 있다기에 우리 팀이 제일 먼저 가서 공연장을 보는 순간 우선 실망부터 했다. 아주 초라하고 나무 의자 그리고 너무 단순한 무대가 마치 초등학교의 강당 분위기 정도 밖에 느낄 수 없었다.

 

공연시간은 다가오고 군데군데 안내원들이 팔고 있는 팜플렛을 사서 보니 그날 공연 내용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팜플렛 설명이 몇 개 단체와 극장을 소개하는 일반적인 내용이었으며 공연될 레퍼터리도 너무나 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 모자르트의 오페라 중 너무 대중적인 아리아가 전부였다.

 

우리가 여유있게 들어온 때문인지 주위를 둘러보아 가장 좋을 것 같은 이층에 자리 잡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사람들이 잠간 사이에 자리를 모두 메꾸고 단체 관람객인 듯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드니 금새 빈 자리를 찾지 못할 정도로 만원을 이루었다.

 

이윽고 약 20명의 소규모 오케스트라가 자리 잡고 흥겨운 스트라우스의 왈츠로 시작, 베이스 1, 테너 1, 소프라노 1, 메조 소프라노 1명 등 성악가 4명이 번갈아 독창 그리고 이중창 4중창으로 흥겨운 시간을 이끌어 갔다. 레퍼터리가 귀에 익은 때문인지 듣는 이도 무척 즐거운 표정 그리고 부르는 이도 또한 늘 하는 곡인지 아주 자신만만하게 소화를 해 내고 있다. 그리고 짜여진 연출대로 지휘자와 단원들의 적당한 쇼맨쉽 그리고 화려한 의상이 관광객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물론 도밍고 카레라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자들이 이곳 빈을 좋아하고 자주 찾아와 연주를 하지만 그 표를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유명 연주자들이나 지휘자들이 공연하는 장소는 아주 정통 유럽식 공연장에다가 관객도 정통 의상을 입어야 한다고 한다.

 

저 건너 편 멀리 앉아 있는 단원들의 표정을 보니 여행에 지친 듯 피곤해서 졸고 있는 단원들이 많고 기대했던 것보다 그다지 재미가 없는 듯 흥겨운 분위기는 아니다. 하긴 우리 같은 아마츄어 음악 애호가들에게 좋은 연주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으리라...

우리에게는 단지 음악의 도시 빈의 분위기와 얼만큼 많이 음악이 어우러진 도시인 줄 아는 것 만으로도 좋은 여행 기회이리라.

 
 

 

제 8일째 (오스트리아 - 체코)

 

오스트리아를 떠나는 날이다. 음악의 도시 비엔나를 떠나 우리는 어릴 때 감히 엄두도 못냈던 공산주의의 나라 체코 방문을 위해 먼 길을 가야 한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는데 그 과정이 우리 같이 민족이 피를 흘리고 아픔을 간직한 채 분리된 것이 아니고 단지 말 한마디로(자리를 두 개로 하기 위해) 분리되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얼핏 이해가 안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라라는 개념이 그렇게 쉽게 나눠지고 합해질 수 있는 것인가?

 

조용한 오스트리아 빈의 아침거리를 벗어나고 있다. 버스는 외곽으로 나가다가 어느 커다란 고성같이 생긴 곳에 차를 멈추고 이곳이 음악가들의 공동묘지라며 우리를 내려준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행인들의 발걸음은 거의 없고 커다란 조각이 묘지 입구에서 산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들어가기 전에 아무래도 위대한 음악가들에게 헌화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 입구의 옆에 있는 꽃가게에 들러 조화를 장미로 한 송이씩 두 송이를 샀다.


 

입구를 들어서니 깨끗이 청소된 대로 주위에 온갖 형상의 묘지가 가득하다. 가이드가 미리 유명 악성들의 묘지가 있는 안내서를 배포해 주었지만 주머니에 꾸겨 넣고 일행을 따라가니 모두들 가이드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이곳에 귀에 익은 악성들이 모두 있단다. 모자르트, 슈베르트, 브라암스, 베토벤, 요한 스트라우스 등이 한 곳에 모여 있다. 설명을 들어보니 지금 이곳의 묘지는 단지 형식적일 뿐 실제 묻힌 곳은 다른 곳에 있단다. 그리고 모짜르트의 묘는 특히 어딘지도 모르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짜르트의 묘를 찾아 어쩔 수 없이 이 곳에 영묘를 만들었단다.

 

우리는 그곳에서 모든 악성들을 위해 원로 장로님의 대표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조용히 묵상하고 가지고 간 꽃들을 헌화하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 보았다. 묘지의 비석들은 거의 모두 똑같은 것이 없을 정도로 디자인이 다양했고, 음악가들의 묘지가 많은 듯 어느 비석에는 악보가 새겨져 있기도 하고 어느 비석에는 지휘자인 듯 지휘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기도 했다.

 

묘지 중앙에 큰 교회가 모든 영령들을 가득 담은 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이드가 우리를 어느 변두리의 묘지로 데리고 가 담에 기대어 서 있는 묘지 중 어느 한 곳을 가리켜서 자세히 보니 유명한 피아노 교본의 스승인 '체르니'의 비석이 서 있고, 그 옆에 어느 비석을 가리켜서 보니 '살리에르'라고 써있다.

 

아! 살리에르가 여기 묻혔나?

 

모짜르트 시대의 궁정악장이었으며 모짜르트 보다 더 유명하였다는 그 사람, 하이든과 베토벤의 스승이기도 하였으며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후세에 악평을 듣고 있는 사람. 최근 들어서 살리에르의 음악이 재평가 되어 연주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당시 큰 명예와 영화를 누렸던 그가 지금은 공동묘지의 담에 겨우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있고, 그가 가소롭게 생각했다는 모짜르트는 묘지의 중앙에 자리잡고 온 세상 사람들의 경애와 칭송을 받으니 이런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역사는 언제 평가되는가? 역사는 누가 평가하는가? 역사는 무엇으로 평가하는가? 역사는 어떻게 평가되는가?

 

공동묘지를 떠나 버스는 한적한 시골길을 계속 달렸다. 그리고 하이든의 생가를 방문한다. 하이든의 생가는 지붕이 우리의 초가집처럼 만들어졌으며 조그만 마당에는 하이든의 흉상과 포도나무 그리고 자두나무가 탐스럽게 익어 가고 있다. 기념관을 천천히 돌아보고 인근에 있는 하이든의 어머니 묘소를 찾는다. 유럽에는 대개 교회 안에 묘지가 있다.

 

교회의 입구는 두꺼운 쇠 창살로 된 철문으로 가려져 있어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 철문에는 '조셉 하이든'이라는 글이 철로 그려져 있었다. 마당에 하이든 일가의 묘지인 듯 여기저기 하이든이라는 이름이 있으나 죠셉 하이든의 묘지는 없었다.

 

이제 오스트리아에서의 공식 일정은 모두 끝났다. 아니 일정은 끝났지만 이직 마무리 안된것이 있다. 유럽에서 면세물건을 사면 국경을 나갈 때 산 물건에 대한 일정액을 현금으로 상환받는다. 유럽에는 면세 협정이 되어있는 나라도 있고 되어있지 않는 나라도 있어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일행은 프랑스, 독일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 면세로 산 물건들을 반드시 국경을 넘기 전에 신고하고 현금을 돌려 받아야 한다. 물건을 구입한 사람들이 많아 모두 일을 처리하느라 한참을 버스에서 기다려야 했다. 우리 부부는 면세로 산 물건이 없어 하릴없이 차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가이드는 체코로 가기 위해서 슬로바키아를 거쳐 가는 길이 빠른데 슬로바키아를 지날 때 비자가 필요한 지 모르겠다며 여기저기 알아 보고는 필요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슬로바키아 국경을 넘어 한참을 달리니 시장기를 느낀다.

 

오스트리아에서 체코로 가는 도중에 식사할 장소가 마땋치 않을 것을 알고 가이드가 미리 도시락을 준비했다고 한다. 두 세 군데를 찾다가 어느 곳에 이르러 자리를 보니 조그만 건물 옆에 반원형으로 세멘트 벽이 조그맣게 있어 화장실이나 무슨 휴게실이겠거니 하고 보니 그곳에 돌 식탁이 준비되어 있고 이미 그러한 몇 군데의 돌 식탁은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점심을 즐기고 있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풀밭과 건물 옆에 사람이 안 다니는 공간에서 가지고 간 도시락을 즐겼다.

 

외국에 나와서 이렇게 도시락을 까 먹는 것도 처음이네 하며 모두들 웃어가며 풀밭의 식사를 끝내고, 마침 버스 옆에 있는 조그만 승합차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기기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가서 살펴보고는 우리는 모두 탄성을 질렀다. 조그만 봉고같은 승합차의 뒷부분에 가정의 부엌같은 시설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얶기 때문이다. 싱크대, 찬장, 냉장고, 수도꼭지 등 마치 비행기의 화장실처럼 조그마한 공간에 필요한 것이 다 있어 승합차를 개조해 여행을 즐기는 유럽사람들의 낙천적이 사고방식이 부러웠다.

 

물론 예정에도 없었지만 체코로 가기 위해 통과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슬로바키아에서는 한 일이 점심 먹은 일 밖에 없었다. 체코로 넘어가기 위해 슬로바키아 국경(국경이라고 해야 큰 산이나 강같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평지에 토일게이트 같은 것이 있을 뿐)에 도착하니 진기한 광경들이 펼쳐진다.

 

국경통과는 쉬운 일이 아닌지 차들이 아주 길게 줄지어 섰는데 앞의 차들이 멈추어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차가 밀리면 그냥 시동을 모두 그대로 켜 놓은 채 기다리는 것이 보통인데 이들은 모두 시동을 끄고 앞의 차가 움직이면 다시 시동을 키고 조금씩 이동한다. 날씨는 덥지 않은 편이지만 그래도 차가 달리지 않으니 점점 더워지고 에어콘이 꺼 있어 무척 덥지만 차문을 열어 열을 식힐 뿐 시동을 켜 놓은 채 기다리는 운전수들은 안 보였다.

 

차가 기다리고 있는 동안 잠시 나가서 얼른 환전을 하고 왔다.

 

한참을 기다려 전통적인 구 소련의 빨간 테두리가 달린 군인 모자와 복장을 한 국경경비 군인이 올라와 가이드와 몇 마디 하더니 모두의 여권을 준비하고 있으라 한다. 유럽을 다니면 몇 나라를 방문하건 유럽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밖에 여권에 출입국 도장이 찍히지 않아 아쉬웠는데 이곳에서 여권에 흔적이 남게되어 나름대로 기분이 좋았다. 군인은 여권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무조건 스탬프를 눌러댄다.

 

차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지나가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오스트리아와는 전혀 딴판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이제까지는 보이지 않던 도로공사가 많아지고 우리와 비슷한 고층 아파트도 보이고 조금 지저분한 느낌,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푸근한 느낌을 주는 것은 왜 일까? 날씨가 갑자기 찌푸등해지면서 앞 유리창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차는 너무 오랫동안 달렸는지 어느 주유소에서 잠시 쉰다.

 

밖으로 나오니 한기가 밀려들고 한적한 주유소의 화장실은 우리 일행으로 붐볐다. 역시 그 곳 공중 화장실도 여자만큼은 유료였다. 특이한 것은 그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고 입장료을 받는 아가씨가 무척 미인이고 글래머라 이런 아가씨가 도심으로 나가지 않고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도무지 우리네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워낙 먼 길이라 지루하긴 하지만 버스의 여기저기서 음담들을 늘어 놓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급기야는 누군가의 제안으로 가장 재미있는 음담을 이야기 하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기로 하고 모두 1불씩 우선 갹출했다. 평가는 모두의 웃음으로 내리기로 하고 잠시 시간을 주니 금새 파가 생긴다. 누구에게 몰아 주자고 하고 남이 이야기할 때는 웃지 말자고..

 

한국사람은 둘만 모이면 모임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다. 평소에 그토록 시시한 농담과 음담에서 잘 웃던 단원들이 돈이 걸려 있으니 웃음을 아낀다. 아니 자기 편이 이길 수 있도록 억지로 웃음을 자제하고 있다. 과연 웃음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실감했다. 결국은 몇 명 대표로 나온 사람들의 유머와 음담에 모두 웃지 않고 그 게임은 승자가 없이 끝났다.

 

차에서 내릴 때 쯤에는 이미 체코의 늦은 오후였다. 우리가 도착한 호텔은 하이텔이라는 테니스클럽 전용 호텔인데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무척 고급스러웠다. 부속건물에 들어가니 대규모 실내 테니스코트와 각종 테니스용품파는 곳이 있는데 역시 고급용품들이다. 이곳 체코에서 나브라틸로바라는 유명한 선수가 나올 수 있는 것이 모두 이런 시설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테니스용품가게에 드보르작의 씨디가 있어 가격을 물어보니 한국보다 훨씬 싼 가격이다. 물건이 체코가 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쌀 줄이야.. 핑계김에 몇 종류 안되는 씨디와 머리밴드를 하나 샀다.

 

호텔에 여장을 풀면서 단원들에게 시내 나가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차편이 없으면 호텔 셔틀버스를 이용해도 된다고 했더니 모두들 솔깃한지 나가겠다고 한다. 후론트에서 셔틀버스 시간을 알아보고 단원들에게 식사 후 나가고 싶은 사람은 모두 모이라고 했다.

저녁은 호텔레스토랑에서 하기로 하고 모두 둘러앉았는데 마침 그날이 반주자의 생일이라 갑자기 생일파티가 이루어졌다. 모두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자르며 적포도주로 건배하니 이국에서의 생일을 맞는 반주자의 표정에서 행복이 보인다.

 

가이드가 우리 버스의 운전기사와 50불에 시내까지 같이 다녀오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하긴 그 기사는 이곳에서 잠만 자고 내일 본국인 헝가리로 가야하는 일정 뿐이니 부업으로 그들에게는 적지 않은 돈을 버는 셈이다. 50불은 원로 단원 한명이 희사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어두운 밤거리의 프라하로 들어섰다. 멀리 건물의 옥상에 대우의 이름이 걸린 네온사인이 빛나고 앞서 가는 승용차가 대우의 르망임을 보고 대우의 저력을 본다. 어느 골목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스산한 밤거리를 옷 깃을 여미고 이미 모든 가게가 철시한 시내로 다리를 건너 들어간다. 다리에서 멀리 바라보니 유럽 특유의 불빛에 빛나는 왕궁이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비록 문이 닫혀 있긴 하지만 가게안에 진열된 유리제품들이 무척 아름답다.

 

갑자기 넓어진 시야에 넓다란 광장이 한눈에 들어오고 주위에는 커다란 성이 있고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있다. 광장의 한 가운데는 계단이 있는 조각품이 있어 누군가의 제안으로 즉흥 연주를 펼친다. 계단에 무대대형으로 서고 노래를 하니 여기저기 몰려 있던 관광객들이 모두 우리 쪽으로 몰려와 타원형으로 둘러서 우리의 노래를 즐긴다.

 

아래서 듣는 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은 어느 관광객은 노래하는 우리 틈에 끼어 같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더욱 신이 나서 몇 곡을 더 부르고 나니 노래가 끝날 때 쯤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가 우리의 노래가 끝남을 무척 아쉬워 한다. 우리가 계단에서 내려오니 어느 관광객하나가 우리 단원 한 명과 같이 사진 찍자고 어깨를 나란히 한다.

 

다시 광장으로 내려와 남들이 다 가는 어느 길을 따라 가다가 우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프라노의 노래소리에 발길을 멈춘다. 골목이 꺽이는 곳에 있는 문이 닫힌 가게 앞에서 손에는 빨간 꽃과 악보인 듯한 책을 들고 까만 드레스를 입은 나이 든 여자 한명이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자세히 보니 여자의 뒤에는 휠체어가 있어 장애자임을 안다.

 

한국에는 이런 장애자들이 흘러간 옛 노래나 곡조도 맞지 않는 찬송가를 부르며 구걸을 하는데 이곳 유럽의 장애자는 고급 클래식으로 지나는 행인의 동정을 구한다. 하긴 우리가 돌아다닌 곳의 유럽은 어느 곳을 가도 우리나라 같이 바닥을 기어 다니며 구걸을 요청하는 걸인들을 보지 못했다. 모두 악기나 혹은 춤 혹은 코메디로 수준이 높게 행인들을 대한다.

 

우리 모두 서서 듣고 있으니 그 여인은 잠시 숨을 가다듬고 나더니 다음 곡으로 'Panis Angelicus (생명의 양식)'이라는 유명한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돌림노래로 부르게 되어 있고 교회성가로 자주 불리는 노래다. 우리 모두 이 노래를 익히 알기에 여인이 부를 때에 모두 허밍으로 화음을 넣었다.

 

여인은 갑자기 노래를 중단하더니 어쩔 줄 몰라하며 다음 마디를 부르지 못한다. 우리는 손짓으로 계속하라고 청하니 여인은 이어 노래를 하고 우리도 계속 화음을 넣어 노래를 하는데 이미 여인의 노래소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고 목소리에 울음마저 섞여있다. 여인은 결국 울먹이는 목소리로 노래를 제대로 끝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우리는 모두 지갑을 털어 여인 앞에 놓인 빈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 사랑을 던졌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아까부터 보아왔는지 어느 한국인 대학생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자연스레 우리를 소개하고 우린 가는 곳마다 노래를 하니까 노래를 더 듣고 싶으면 따라 오라 했더니 왔던 길을 다시 간다며 우리와 동행한다.

 

제법 흥청거리는 골목길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부산하다. 늦게까지 문을 연 가게들은 티셔츠와 음반과 여러가지 장식품들을 팔고 있다. 어느 다리에 오니 사람들이 무척 많이 몰려 있고 다리 한 가운데의 난간에 있는 어느 조각품의 일부분을 만지면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해 모두 그곳을 어루만진다. 우린 다리 위에서 또 한번 노래의 향연을 가진다.

 

그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이 '몰다우' 강이라 한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몰다우라는 말 보다는 '불타바' 라는 말로 더 통용된다고 한다. 강의 끝에 조그만 난간에 스메타나의 동상이 인어공주의 동상과 함께 있다. 스메타나의 '몰다우'라는 교향곡이 생각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모두들 피곤한지 말 한마디 없다. 내가 조그맣게 우리의 포크송들을 부르니 누군가 화음으로 화답한다. 그리고 그 화음은 전체로 이어져 모두 이밤이 아쉬운 듯 조용한 노래로 이국에서의 밤을 접고 있다.
 

제 9일째 (프라하)

 

체코 프라하에서의 하루가 밝았다. 호텔 로비에는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단원들이 아침 식사를 끝내고 조금은 춥다 싶었는지 두터운 옷차림의 여행 복장으로 옹기종이 모여 있다. 그러나 오늘 관광 후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파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어있어 모두들 짐을 가득 가지고 나와 버스에 싣고 있다.

 

이곳에서도 별도의 가이드가 고용되었는데 키가 자그마한 아줌마이다. 이곳에 선교차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자기소개를 한 후 일행을 처음 데리고 간 곳은 프라하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 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이미 공기에는 한기가 가득 들어있다. 따뜻한 옷을 미리 준비못한 아내에게 잠바를 벗어주고 난 안 춥다고 으스대며 모자를 눌러 쓴다.

 

가이드는 이곳이 프라하 시내 관광의 시발점인데 버스가 이곳에 기다리지도 않고 오늘 우리가 다시 이곳으로 오지 않으니 혹 일행을 잃어 버리면 곧바로 공항으로 가라며 엄포를 놓는다. 그리고 이 태극부채를 보고 따라 오란다. 우리 중 대원 한 명이 우린 모두 잘 아는 사이라 잃어버릴 염려 없으니 그 태극부채를 우리가 들고 있겠다고 하며 부채를 인계받는다.

 

관광은 프라하의 하벨 대통령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궁 앞의 허름한 초소 문 옆에 부동자세의 근위병이 자세 하나 눈 하나 흩뜨리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다. 그러나 그 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조각은 보기에도 으스스하고 잔인한 동상이었으며 이는 과거 구 시대의 독재정치를 표상하는 상징이라 한다. 시대가 바뀌면 구 시대의 유물을 즉시 철거해 버리는 우리네 상식하고는 전혀 틀리다.

 

사회주의 나라 답지않게 하벨대통령궁은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고 누구나 자유로히 왕래할 수 있다. 데모대를 막기 위한 닭장차도 주위에 물론 없고 특별히 경계를 심하게 하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인가? 혹은 너무 정치를 잘 하니 믿고 맡기는 것일까? 아님 조금이라도 이상한 눈치를 보이면 과감히 숙청당하는 것이 무서워 아무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걸까? 아무튼 대통령궁은 조용하기만 하다. 궁안에 있는 성 마태와 다른 성인의 조각품들이 오래된 건물의 역사를 말해 준다.

 

궁내의 화초에 물을 주기 위한 살수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고 있어 가이드의 설명은 그 소음에 묻혀 버리지만 열심히 듣기 위해 두 손을 귀에 대고 경청하는 우리 단원들의 노력은 더욱 진지하다.

 

대통령궁을 보고 밖으로 나오니 프라하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프라하에는 백 탑이 있다고 한다. 하얀 탑이 아니고 백 개의 탑이 있다는 말이다. 프라하에는 유난히 탑이 많아 그렇게 이름 붙였고 그 탑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탑의 꼭대기에는 금속으로 장식조각을 올려 놓았다. 그 금속 조각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프라하 시내를 무척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프라하를 백탑의 도시, 황금의 도시라고 한단다. 그리고 멀리 산 너머에 뾰족한 탑이 눈에 익어 물어보니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과 같은 모양이지만 높이도 다르고 파리 것에 비하면 그다지 구경할만한 가치는 없다 한다.

 

좁은 언덕을 내려 가다가 무려 천년에 걸쳐 건축했다는 커다란 니콜라스 대성당을 맞는다. 이 성당에 얽힌 사연이 재미있다. 특히 문에 역사가 있는 내용들을 리얼하게 조각해 놓은 것이 이나라 사람들의 역사의식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알게 해 준다.

 

내려 오다가 무심코 서 있는 경비원에게 사인을 요청하니 갑자기 주문받아 어리둥절하면서도 웃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팜프렛에 이상한 글씨의 사인을 해 준다. 가이드는 이 골목이 '황금 골목'이라 한다. 금을 세공하는 집이 많아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한다. 그러나 금을 파는 가게는 별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골목 입구에 유명한 소설가 카프카의 집이 있으나 들어가지는 못했다. 아주 허름하고 낮은 집에 창문마저 색이 바래져 있다.

 

카프카의 집 옆에 향기 나는 나무 조각을 파는 선물가게가 있어 들어 가 보았다. 머리 선과 몸 선이 전체적으로 둥글고 색갈이 아름다운 목각 인형들이 즐비하다. 그 인형의 특징이 인형의 머리 부분을 열면 크기가 다른 꼭 같은 인형이 들어가 있고 그 인형의 머리를 열면 또 꼭 같은 인형.. 이렇게 몇 단계를 거쳐 내려가면 아주 조그마한 인형이 감탄할 정도로 이쁘게 자리잡고 있다. 계란 모양의 색갈이 아름다운 목각을 사서 선물로 챙겨 넣는다.

 

골목을 따라 내려가다 프라하에 대한 영문 책자도 길거리 장삿군에게서 사서 넣었다. 책을 사느라고 조금 늦게 내려가는 길 옆에는 조금은 지저분한 동네가 앞으로 길게 누워 있다. 우리 일행들이 어느 가게 앞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어 나 역시 호기심에 가까이 가서 보고는 한 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조그만 카드에 볼록렌즈가 있고 그 렌즈를 통하여 보면 카드안에 아주 조그맣게 그린 여인의 그림에 부끄러운 부분만이 렌즈로 크게 확대되어 보인다. 섹스 산업은 어느 나라나 유망한 사업인가 보다. 삶의 가장 기본적이 욕구이기에....

 

골목 끝에 도달하니 어제 밤에 와 보았던 칼교의 맞은 편과 만난다. 어제 밤의 다리 위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관광객들만 즐비하던 다리 위에 그림과 조그만 장식품을 파는 길거리 장삿군들이 옆으로 길게 줄지어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려 한다. 펜으로 그린 그림들이 보기 좋아 가격을 묻고 흥정을 하고자 하나 전혀 흥정이 안된다.

 

'왜 그러느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느냐' 하고 따졌더니 상의에 부착된 조그만 표를 보여준다. '그게 무엇이냐'고 했더니 허가증이란다. 이것 하나 팔아서 내가 이익을 모두 가지는 게 아니고 나는 단지 파는 역할 뿐이란다. 아하! 이게 사회주의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오늘도 역시 다리 위에는 많은 관광객들과 배낭 여행객들이 즐비하다. 어느 나라나 다 그러한 기념물이 있듯이 이곳에서도 그곳을 만지면 이곳에 다시 올 수 있다는 조각품이 다리 한가운데 있다. 왕비가 부정을 저지르고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했는데 왕이 눈치채고 신부에게 말해줄 것을 명령하지만 그 신부가 끝까지 거절하자 물에 빠뜨리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그 조각품 중 물속에 빠지기 직전의 신부를 만지면 프라하에 다시 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모든 여행객들이 그곳을 어루만진 탓에 전체적으로 우중충한 조각 가운데 그 신부만은 그 강직함 만큼이나 빛을 발하고 있다. 마치 놋쇠그릇을 닦은 것처럼 반들반들하다.

 

다리를 지나고 어젯 밤 걸었던 길을 거슬러 올라 가니 역시 커다란 광장이 우릴 반기고 어제 밤과는 달리 더 많은 관광객들이 가득 차 있다. 특히 광장 구석의 성당 탑에 있는 시계는 이곳에서 유명한 구경거리라며 많은 사람이 그앞에 가득 몰려있다. 시계는 12시에 종을 치는데 종을 칠 때마다 시계 안에 있는 조각품이 들락날락거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시계를 설계한 사람을 다른 나라에서 데리고 간다 하기에 체코의 자랑거리가 다른 나라에도 있으면 안된다는 체코 국민들의 자존심 때문에 그 사람을 죽여 버렸다 한다.

 

성당 앞에는 이제 막 결혼식을 마친 커플이 하얀 드레스를 입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고 있다. 신랑과 신부는 많은 사람들의 집중적인 눈길은 아예 관심도 두지 않은 채 열심히 웃고 사랑의 키스를 나누고 신랑은 신부를 두 팔로 안으며 갖가지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두 사람을 태우고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차도 대기하고 있다.

 

광장에는 필리핀인 듯한 사람들이 조잡한 물건들을 가지고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 중 철사로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 내는 물건이 있어 애들에게 주고파 하나 사서 챙겨 놓으니 안내는 어느 선물가게로 일행을 안내한다. 어느 나라의 안내원이나 똑같은 코스를 밟는다. 손님들이 원하건 말건 무조건 선물가게로 안내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뒷거래가 있나 보다.

 

우리들을 안내한 곳은 체코의 유명한 특산품인 유리 세공품 백화점이다. 유리로 온갖 색을 넣어 정말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기도 하고 전시된 제품도 가격만 비싸지 않고 운반에만 문제 없으면 사고 싶을 정도로 탐스러운 물건들이 수없이 진열되어 있다. 역시 여자들은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좋은 물건만 있으면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 두리번거리고 부르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 모습이 싫어 밖으로 나오니 광장 한 구석에 있는 노천 카페에 쇼핑을 포기한 우리 단원부부가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있다. 그 옆에 앉아 다른 단원과 흑맥주을 시켜 쌀쌀한 바깥 공기를 즐기며 맥주를 즐긴다.

 

시간이 되어 우루루 백화점에서 몰려 나오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모두들 중국음식을 싫어하지만 초이스가 없다. 체코의 전통음식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없어 아쉽지만 단체 관광이라 미리 체념해 버린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얼핏 선물가게에 눈이 뜨이는 물건이 있어 발길을 멈춘다. 오스트리아의 길거리 악사들이 연주하던 대나무 팬파이프 같은 것이 선물가게에 진열되어 있다. 가격도 적당하여 얼른 하나 사서 챙겨 넣는다.

 

인근에 어두컴컴한 중국집에 들어가 예의 끈기 없는 쌀로 지은 밥과 기름기가 풍성한 중국음식을 대충 해 치우고 밖으로 나오니 이제는 여행도 지겨운지 일행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힘들어 보인다. 하긴 여행도 거의 막바지다.

 

버스는 한적한 주택가로 접어 들다가 돌로 바닥을 수 놓은 길에서 내려 음악가들이 묻혀 있는 공동묘지로 향한다. 바닥의 돌들은 수 천년 세월을 사람들의 발에 닳고 닳은 듯 모두 모서리가 둥글고 그 모습에는 단단함이 서려 있다.

 

공동묘지의 입구에 일행을 세운 가이드는 커다란 기둥같았던 돌이 세 조각이 나 땅에 박혀버린 사연의 전설을 재미있게 설명한다. 애기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로마에서 이곳까지 커다란 돌 기둥을 가지고 오다가 그만 문 앞에서 지정한 시간이 다 되어 기둥을 내 팽개치니 이렇게 세 조각이 나 버렸다는 얘기가 그럴듯 해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지 돌 기둥은 사람들의 손길로 반질반질하다.

 

공동묘지에는 오스트리아 같이 정돈되었거나 질서는 갖추어져 있지 않지만 체코의 대표적인 작곡가들이 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돌아 보고 있다. 드보르작과 스메타나의 묘지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이고 여기저기 애호가들이 놓은 꽃이 아직 싱싱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런 묘지를 찾을 때마다 한국에도 이러한 묘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절로 생긴다. 왜 우리는 이런 작곡가가 없을까? 왜 우린 이런 좋은 것을 관광상품으로 내 세우지 못하는가? 아니 우린 역사의 왕족들만 아주 커다란 묘지로 간직하고 있다. 영릉, 장릉, 서오릉 등등....

 

묘지의 옆에는 성당이 있고 성당의 문 위에는 아까 그 돌에 대한 전설이 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시간이 없다고 하여 들어가지 못함이 아쉽다. 성당 옆에 있는 언덕에서 바라보는 시원한 강 줄기와 언덕의 바람은 피곤한 여행객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해 주고 있다. 파란 강물이 굽이쳐 흐르고 멀리 보이는 마을들의 모습에서 어찌 이런 나라가 사회주의인가 의심이 날 정도로 평화의 기운이 서려 있다.

 

언덕을 삼삼오오 내려가는 단원들의 뒷 모습이 무척 정겨워 보인다. 어느 단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오랜 날 동안 같이 있어도 늘 반가워하고 이야기 하기를 즐겨하고 노래하기를 즐겨할까? 음악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모임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드는 것인가? 이러한 모습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유지할 것 같다.

 

버스는 도심을 벗어나 공항으로 가는 길을 한참을 달리다가 어느 외따로 떨어져 있는 깨끗한 양옥집 앞에 세운다. 가옥 옆에 비스듬히 서 있는 동상의 모습에서 드보르작의 기념관임을 금방 깨닫는다.


 

마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듯한 기념관은 아주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외진 곳이라 그런지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뜸하다. 매표소에서 팔고있는 드보르작의 씨디가 무척 저렴하기에 두개를 사서 넣는다. 이런 기념관을 찾을 때마다 어쩌면 이렇게 유명 음악가들의 물건들을 보관할 수 있고 오랜 세월 동안 간직하고 있다가 후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정리를 해 놓았는지 이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관심도가 부럽기만 하다.

 

이제 공식적인 모든 관광이 끝났다. 기념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항에서 비행기로 처음 기착지인 프랑스의 파리로 날아가 그곳에서 대한 항공을 타고 가면 끝이다.

 

프라하공항은 별로 북적대지도 않고 청사는 채광이 잘되어 더 넓어 보인다. 시간이 여유가 있어 주머니에 아직 남아 있는 체코현지화를 소진하기 위해 청사내 선물가게에 들어가 초코렛 등 조그만 물건들을 이것저것 사며 동전 한 닢까지 모두 써버렸다.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수속하느라 조금 짜증이 나는지 여행사 직원의 얼굴이 붉어짐을 보며 무척 애쓰고 있구나 하며 안쓰러워 한다. 조금 젊은 직원이 동행했으면 쉽게 처리할 수 있으련만 하는 아쉬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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