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12월 중순에 독일을 다녀와 아직도 남은 동전이 입고 다니는 양복의 동전주머니에서 딸랑거리는데 꼭 한 달만에 다시 그곳을 찾는 출장이 생겼다.
독일의 겨울을 깔보았다가 얼마나 추운 출장을 다녀왔는지 이번에는 지레 겁을 먹고 외투도, 스웨터도, 장갑 그리고 목도리까지 챙겨넣을 정도로 긴장되었다. 물론 한국은 떠나 오던 날 일주일 간 지속된 맹추위로 기온으로 보면 독일보다 더 춥다.
세계 경제가 어렵다는 것이 직접 내 몸에 오지 않았는데 이번 출장부터 내게 직접적인 피해가 와 버렸다. 10시간 이상 비행이면 기내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을 타고 다녔는데 올해부터는 회사 비용 절감의 목적으로 무조건 아무리 장시간 비행이라도 이코노미를 타야만 했다. 그리고 가능한 비싼 국내항공사보다 조금 싼 외국 항공사를 이용해야만 하기에 독일의 경우 루프트한자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공항에서 VIP 라운지를 이용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신용카드를 플래티넘급으로 이용했더니 공항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프라어리티 패스는 늘 가지고 있어 오늘도 공항라운지를 이용하는데는 불편함이 없다.
인천공항에 국내항공사 전용 터미날과 와국항공 전용 터미날이 별도 있는데 왜 외국항공 터미날에 대한항공 라운지가 있는지 모르지만 덕분에 한가하고 조용하며 공항의 넓은 시야가 좋은 라운지에서 편히 쉬다 기내로 들어가면서 넓은 비즈니스좌석을 아쉽게 뒤로 하고 이코노미 내 좌석으로 들어가 앉아 제일 먼저 의자를 뒤로 젖혀 보았더니 겨우 고속버스 정도의 기울기 밖에 허용이 안된다.
내 몸의 느낌이 간사해진 것을 느꼈지만 좋은 세월은 지났구나 하는 아쉬움만 가득.
11시간 반의 긴 비행. 영화도 그다지 많지 않다. 헐리우드 영화 몇 개, 인도, 독일 영화 몇 개. 영화도 아껴서 봐야지. 어차피 올 때 또 봐야 하니까.. 이번 출장은 완전히 번개처럼 미팅하고 돌아와야 하기에 여가를 보낼 MP3나 DVD 플레이어는 챙기지 못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다 보니 면도기도 놓고 왔지만..
조금 무뚝뚝한 기내 서비스를 받으며, 화장실을 찾으니 밑으로 내려가란다. 어허라. 화장실 5개가 아래층에 별도로 모여있네. 흠. 이것도 좋은 아이디어네. 기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화장실 때문에 급할 때는 기내에서 앞 뒤로 눈치보며 찾아다니곤 했는데..
호텔에서 사용할 면도기나 하나 기내비치용을 가지고 갈려 했더니 그것도 모자라 이미 다 소모되었기에 줄 수가 없단다.
루프트한자의 기내식도 그다지 맛있는 것을 못 느끼고, 음료수 한 잔 부탁하기 위해 호출벨을 눌러도 오지 않는 서비스를 받으며 사람들이 왜 국적기를 탈려 하는지 새삼 느낀다.
11시간의 비행이면 몇 시간을 족히 누워 자야하는데 자리가 불편하다 보니 그러지도 못했다. 기내 영화 프로그램에 독일 신년 음악회 공연실황이 있어 반가움에 틀어 보니 올해 우리 딸의 대학입시 곡목인 생상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 그리고 그리그의 피아노 콘서트가 나를 행복하게 했다.
공항에서 내리니 역시 독일의 추위는 한국과 사뭇 다르다. 매섭게 부는 바람은 없지만 한기가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공항이 있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목적지인 도르트문트로 가기 위해서 기차로 2시간가량을 더 가야 한다. 이미 예약을 다 해 놓고 지불까지 마쳤기에 타는 건 문제 없다.
약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있어 면도기나 사려고 기차 터미날내의 대형 슈퍼마켓을 찾았다. 오래 머무를 계획이라면 맛있는 것 좀 사서 호텔방에서 즐기고 싶지만 모두 포기하고 일회용 면도기이외에 시간차 때문에 잠이 쉽게 들지 못할 것을 대비해 조그만 와인병만 하나 챙겼다.
기차가 정시에 도착했는데 열차내 방송으로 독일어로 열심히 안내하는데 어떤 여자손님이 알려 준다. 30분정도 지연될 거라고.. 자리 잡고 앉아 너무 피곤해 잠을 자고 싶은데 옆에 앉은 여자손님이 블랙베리 전화를 들고 도무지 쉬지도 않고 떠들고 있고 뒤에 손님도 그 여자 목소리보다 더 크게 떠들고 있다. 그러나 한국시간으로 치면
잠결에 열차 승무원이 검표를 위해서 깨울 때야 겨우 눈을 떳는데 얼핏 들으니 이 열차가 연착되어 쾰른까지만 운행하니 내려서 갈아타라 한다. 갑자기 긴장된다. 지금 여기가 어디냐고 옆에 있던 손님에게 물으니 쾰른이란다. 허둥지둥 내릴려 하는데 다른 이가 서둘러 막는다. 여기 쾰른아니라고..아마 먼저 손님은 내가 이게 쾰른가는 열차냐고 물어 본 줄 알았나 보다.
한 밤중에 쾰른에 내리자마자 바로 앞의 열차를 갈아타니 잠시 후 바로 떠난다. 만약 내가 어느 열차를 탈지 몰라 우왕좌왕했으면 아마 열차를 놓쳤을 것 같았다.
여행의 팁. 길을 모르면 자꾸 확인하라. 한 사람에게 물어 본 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같은 것을 또 다른 이에게 물어 보아라. 이건 매번 여행할 때마다 경험한다.
열차를 갈아타고는 긴장된다. 이제부터 졸음이 와도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같이 열차내에 도착지를 알려주지 않고 도착 전 독일어로 무언가를 한참 얘기 후 잠시 영어로 도착지만 잠깐 알려 주는데 정신 집중하지 않으면 흘려듣기 일쑤고 우리가 알고 있는 발음과 다르니 상당히 조심해서 들어야 한다.
도르트문트에 30분 늦게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직원이 마중나와 있다.
그리고는 가방을 풀었는데.. 아뿔싸. 거래처 손님줄려고 사가지고 온 한국 전통주가 그만 마개가 빠져 쇼핑백이 온통 술판이다. 호텔방에 술 냄새가 진동한다. 어찌 포장을 이렇게 했을까. 술이 나오는 곳을 조그만 코르크 마개로 막아 놓고는 여행용품으로 팔다니…아무래도 한국 도착하자마 클레임 걸어야 할까보다. 영수증도 술에 젖어 글씨가 모두 지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