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제주도올레길

올레길 17코스

carmina 2014. 1. 23. 09:32

 

 

올레길 17코스(2014. 1. 16)

 

아침에 제주 시청앞에서 버스를 타고 17코스 출발점인 광령1리로 향했다.

다행하게도 바람은 없고 날씨도 춥지 않았다.

 

출발전에 뜨거운 캔커피와 물을 챙기고 도로를 따라 걷는다.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방학중인데도 학생들이 많았고 지나가는 차들이 많았다.

도로를 한참 걸어가다가 왼쪽으로 꺽어지는데 한 눈에 탄성이 터진다.

쇠소깍에서 보던 큰 하천이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비록 비가 온지 오래되었는지

물은 없지만 하천의 양 옆을 막아 선 거대한 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한다. 만약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이 곳의

물살이 얼마나 멋있을까? 그리고 물이 많이 고여있으면 이 또한 장관일 것이다.

 

하천을 따라 걷는 길이 약간 내려가는 경사라 편하긴 하지만 이제껏 힘들게

걸어서인지 발이 편하지만은 않다. 바위를 딛을때도 조심스럽게 딛고

내리막길도 일부러 천천히 걷는다.

이제는 발바닥 아픈 것이 아니고 무릎의 뒷부분 인대가 조금 땡긴다.

조심해야지. 적당히 하자. 그러다 큰일날라.

 

이 한산한 길을 달리는 차들은 아주 가끔 아이들 유치원 버스나

주부들이 운전하는 소형차들 뿐. 길은 참 좋은데 산책하는 사람도 없다.

이 오붓한 길을 나이든 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다면 얼마나 행복해 보일까?

때로는 울창한 나무가 있고 때로는 맑은 물이 반긴다.

그러다가 높이 큰 다리가 가로지르고 하천의 가로막은 바위는 더 기기묘묘해진다.

 

길을 가다가 다리위로 올라가 천의 반대편 길을 걷는데 어느 지점에서

비가 많이와 하천에 물이 많이 고이면 우회하라는 표시가 있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세멘트 다리도 많이 손상되어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하천끝에쯤에 저 멀리 빨간 작업복과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숲속으로 열을지어

들어가고 있다. 아마 재선충 걸린 나무를 벌목하러 가는 것이리라.

이제 다시 도로로 올라와 큰 마을로 내려가는 도로로 걷는다.

 

파란 잔디가 깔린 커다란 운동장에 사람들이 모여 축구를하고 인근 공사장이 있는지

먼지를 풀풀 날리는 대형 트럭들이 자주 옆을 스쳐 지나간다. 빨리 이 곳을

벗어나아햐는데...

 

월대라는 곳에 와서야 다시 조용한 하천을 만난다.

동네 사이로 흐르는 하천은 잘 만들어진 벤치가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 같다.

여기서 얼마가지 않아 바로 바다가 연결된다.

 

파도가 멀리서부터 밀려와 흰 포말을 만들며 내 발 앞에서 부서진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그러나 그 주위에는 늘 쓰레기가 많아 안타깝기만 하다.

 

이곳 바닷가의 바위들은 조금 독특하다. 가늘고 긴 바위가 뾰족하게 바다로

향해 있는데 이런 곳을 암맥군이라 부른다. 아마 바위가 산맥같이 이어진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끝없는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이호해변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낯이 익다.

언젠가 아내와 올레길을 걸은 후 다음 날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가까운

곳에서 하룻밤 잔 곳이다.

 

멀리 트로이의 목마같은 조형물이 기억나고 우리가 묵었던 쁘티모나미라는

게스트하우스가 보인다. 바닷가에 내려와 해변에 학생들이 놀고 있다.

얼핏 유니폼 등에 강화고등학교 학생들임을 알고 반갑게 아는 척을 했는데

시큰둥 하다. 하긴 나는 낯선 사람일 뿐이다.

만약 같이 길을 걷는다면 반가왔을텐데....

 

이젠 또 끝없이 해변길을 걷는다. 아니 하늘길을 걷는다.

비행기들이 낮은 높이로 제주공항으로 향하고 있다.

끊임없이 걷다가 멀리 보이는 도두봉을 넘어야 한다는 지도 설명에 지쳐

도저히 더 못 걸을 것 같아 도두봉 앞에 있는 어느 해안에서 점심을 먹고

오늘 걷기를 포기하기 위해 가까운 곳에 찜질방을 물으니 멀지 않은 곳에 있단다.

 

식사 후 가방을 한쪽 어깨에만 걸치고 찜질방을 찾아 걷다가 뜨거운 밥이

뱃속으로 들어가서인지 다시 다리에 기운이 넘친다.

 

가는데까지 가보자. 가다가 중단하면 간만큼 이익이다.

내가 오늘 걷기를 포기하면 내일은 몸이 아파 못 올지도 모른다.

본격적으로 제주공항 바로 뒤를 지나서인지 비행기가 랜딩할 때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걷다가 쉬고 걷다가 쉬고..

 

바닷가 주변 잔디와 벤치가 좋은 곳에 누워 따뜻한 햇살에 잠깐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지 뭐..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 같다. 용두암으로 가는 길이 2키로 남았다는

표시를 보고 더 이상 걷기가 불가능할 것 같아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그대로 잠에 빠져 버렸다.

내가 여기서 17코스를 완주하지 못하고 끝낼 것인가?

낮에도 자고 저녁도 가까운 곳에서 제주도 특미인 고기국수 한 그릇 먹고

다시 들어와 또 잤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을 뜨니 몸이 개운하다. 걸어야지.

대신 배낭을 게스트하우스에 맡기고 빈 몸으로 나갔다. 어제도 이렇게

했으면 힘이 덜 들었을텐데.... 만약에라도 힘들어 바로 돌아가는 비행기

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대로 들고 나갔었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날씨도 흐리고 바람이 이제까지 불던 것보다 더 강하게 분다.

그래도 짐이 없고 짧은 거리니 문제 없을 것이다.

 

어제 중단했던 곳에서 다시 걷기 시작.

얼마가지 않아 옹두암에 도착. 이제까지 제주에 올 때마다 여기 와 봤지만

오늘같이 사람이 하나도 없던 적은 없었다.

용연교를 지나 리본을 따라 가는데 길 끝에서 유턴표시가 있다. 그럴리가..

막힌 길도 아닌데 유턴을 시키다니..

 

코스가 일부러 나무데크길을 걷게 하느라 그렇게 유턴을 만들었다.

주택가로 들어가 이리저리 흘러 가다 보니 제주 시내의 큰 거리가 나와 버렸다.

그리고는 방향감각 실종. 리본도 없고...

 

관덕정을 지나 17코스 종착점인 동문로터리를 찾아가니 그 곳에 간세가 있다.

나는 그 곳에서 끝마치는데 이제 막 걷기를 시작하는 부부가 스탬프를 찍는다.

 

그리고는 비가 오기 시작한다.

내겐 축복의 비. 새로 길 떠나는 사람들에겐 불편한 비.

 

이제 목표했던 올레길 5개코스를 모두 끝냈다.

원래 하루에 1.5코스를 생각했는데 바람이 많이 불고 몸 컨디션이 안좋아

결과적으로 1.3코스정도 밖에 돌지 못했다.   

 

다행히 이번 여행에 발바닥 물집은 잡히지 않았지만 무리했던지 입술이

다 터져 버렸다. 그래도 이건 내게 훈장이다.

 

이제까지 다녀본 개인 여행 중 가장 긴 5일동안의 여행.

조금씩 역량을 넓혀 가 본다.

5일이 보름 되고 한달이 되고 1년이 되는 날까지..

 

제주도 올레길 전체 420키로 중 5개 지선을 빼면 거리상으로는 4분의 3 정도

완주한 것 같다. 다음에 또 시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여행은 끝이 아니다. 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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