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제주도올레길

올레길 19코스

carmina 2014. 9. 10. 08:31

 

2014. 9. 3

 

올레길 19코스 (조천 만세동산 - 김녕)

 

비가 부슬 부슬 내린다.

같이 걷는 친구는 자신이 가는 곳엔 날씨가 늘 좋다고 자신하니

나보고 걱정말라 한다...이 것도 복일까?

 

아침에 주인이 구워 준 맛있는 토스트와 과일 그리고 커피를 즐기고

어제 끝냈던 19코스 시작점까지 태워 주어 다시 비 적신 조천 만세동산에

도착하여 길을 떠났는데 카메라 케이스에 이상이 생겨 얼른 손을 보고

앞서가는 친구를 따라 차가 다니는 길로 갔는데 아무래도 길이 이상하여

주위를 둘러 보았으나 이정표가 없어 제주 항일기념관을 앞을

그냥 지나치다가 가도 가도 이정표가 없다.

 

문득 이 길이 아니다 라고 직감하고 뒤를 돌아보았으나

다시 돌아가기는 너무 먼길.

길 옆에 소방서에 들러 올레길을 물으니

150미터만 더 가면 학교가 있고 해변으로 나가는 길이 있다기에

학교가 금방 보이려니 하고 걸었지만 한 참을 가도 학교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차를 타고 가면 먼길도 그 정도 거리밖에 생각이 안되는 듯 했다.

 

마침 길에 왼쪽으로 올레길의 특유의 파란 화살표가 페인트가 공사중인

숲속으로 나 있기에 이 길이려나 하고 들어갔다가 다시 막힌 길이라 낭패.

다시 되돌아 나와 그제서야 그 화살표가 올레길 이정표와 조금 다름을 알았다.

 

올레길 안내센터에 전화해 물으니 원래 조천 만세동안 뒤로 해서 가야 하는데

잘 못왔으니 해변으로 가는 길을 찾으라 한다.

 

방향을 잡고 한참을 가니 학교를 찾고 골목길에 이정표가 보였다.

그다지 많이 걷지 않았는데 길을 잃었다는 조급함과, 비가 내려 습해진

날씨 때문인지 땀이 비오듯 흘렀다.

 

텅빈 파란 운동장이 있는 다문화학교 앞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어떤 이가 배낭을 메고 먼저 지나 가는데 텐트와 침낭을 지고 가고 있다.

저것도 좋은 방법이네. 혼자 여행한다면 해변가에 어느 곳이던

텐트치고 잘 수 있겠다 생각했다.

 

함덕해변으로 찾아간다.

바닷가에 출항을 기다리는 배들이 정박해 있다.

제주도 바닷가를 지나면서 다른 지역의 해변과 다른 점은

배들을 바로 바다와 접하는 해변에 정박하지 않고

바다 안쪽에 넓은 공간을 만들어 정박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이는 태풍이 많은 곳이니 파도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도록

대비를 하는 것 같다.

 

여기도 바다 옆에 넓은 공간을 만들어 배들을 많이 정박시켜 놓고

올레길은 다리를 넘어 가게 해 놓았다.

 

함덕의 넓은 해변에 인적이 없다. 비는 오고 해변은 썰렁하다.

수심이 얕은 듯 모래언덕이 넓게 보인다.

 

해변의 넓은 잔디 공원에 제주도의 설화를 동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고기를 잡는 어부들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만들었는데

어부들의 표정이 참 진지하다.

 

너무 더워 해변가 시원한 카페베네에 들어가 커피와 팥빙수를 즐겼다.

 

합덕해변은 주위에 넓은 잔디 공간이 있어 산책코스로 좋을 것 같다.

잔디에 열대나무들이 가득하고, 바다에 모래사장이 넓어

가족들이 무릎까지 빠지는 얕은 물가에서 놀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 캠핑카들이 집단으로 있어 고급 펜션을 빌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해변에는 이정표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은지 카페를 나왔는데 방향을 모르겠다.

상인에게 올레길을 물어보니 길을 따라 가라했지만 내 올레길 상식으로는

길을 따라 가면 안 될 것 같아 두리번 거리고 이정표를 찾으니

아니나 다를까..해안가의 망루에 리본이 달랑거리고 있다.

 

해변을 끼고 서우봉으로 오른다.

올라 가는 언덕에 제주도 방언들을 계속 써 놓았다.

 

- 메께라! 삼춘 왓수광

- 놀멍 쉬멍 줏엉갑서

- 두렁청이 어디로 가잰 햄수광?

- 졸바로 봥 갑서해 푸더지믄 하영이

 

서우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올레길과 서우봉 둘레길이 있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 정자에서 바라다 보는 합덕해변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파란 바다와 하얀 모래, 끝없이 닿는 시야에 푸르름. 제주의 참 모습을 보여준다.

 

언덕을 오르다가 능선 숲길을 한참 지나 일몰지점이라 표시된 곳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가슴 가득 안겨온다. 가는 곳 마다 탄성이 나온다.

역시 길은 참 좋은 곳이다.

 

서우봉 반대편으로 나와 언덕길을 내려가며 바다를 보니

파란 바다에 검은 물체가 하나 움직인다. 해녀다.

녹색의 해먹을 수면에 띄우고 자주 자맥질을 한다.

 

바다 옆에 마을 어른들이 쉬고 있는 정자에 올라가

발바닥에 열이 나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지고 길게 누웠다.

제주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자는 어디든 바람이 잘 부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바람이 분다. 땀이 식는다.

 

정자에서 나와 제주 43사건시 북촌리 주민 대학살 기념관에 들어가니

순간 엄숙함이 느껴져 풀어헤쳤던 등산복을 여미었다.

 

방 하나의 벽에 가득찬 사망자의 명단. 그 앞에 커다란 촛불하나 타고 있다.

사람이 이렇게 잔인해 질 수 있을까?

한국판 홀로코스트를 연상케하는 제주 43사건.

차마 기억하기 싫다.

 

원래 19코스가 바로 해변을 따라 가는 길이었는데

여기 기념관이 생겨서 일부러 돌아가게끔 변경했단다.

 

모퉁이를 돌아가니 어제 우리가 묵었던 북촌 하늘금 게스트하우스이 보였다.

가까운 곳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할 것 같아 해변의 방모루 식당을 찾아

맛있는 회국수와 회덮밥으로 포만감을 누리고 친구 부인은 걷기 힘들다며

게스트하우스에서 쉬고 친구와 나만 둘이 오후 걷기를 시작했다.

 

게스트하우스의 어느 분이 어제 19코스릃 설명해 주면서

올레길 코스 중 바다 말고 내륙으로 들어가면 별로 경관이 안좋다는 말에

친구 아내는 포기했지만 큰 길을 지나 숲으로 들어가며

친구와 나는 우리가 원하던 길이 이런 길이야 라며 기뻐했다.

문득 길에 용의 문신이 새겨진 것 같아 자세히 보니

뱀한마리가 입을 멀리고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그대로

차 바퀴에 깔렸는지 거의 박제가 되어 버렸다.

 

나무들이 울울창창한 숲길을 지나는데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처음엔 지나가는 비려니 생각했는데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기에 우산을 들고

습기찬 나무들 사이를 걷는데 내 몸이 빗물에 녹아 그대로 숲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동복 새생명 교회를 지나 근처에 학교도 없는데

아주 넓은 공간에 잔디가 깔린 운동장 앞 정자가 앉아 비를 잠시 피하지만

아무래도 구름의 모습을 보니 금방 지나갈 비가 아니다.

 

그러나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니 우산을 쓰지 않아도 숲이 막아준다.

벌러진 동산으로 가는 길. 무언가 길이 벌려진 곳이라는 것 같다.

기분좋게 숲속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전화벨이 주머니속에서 심하게 떨고 있다.

회사에서 온 전화. 이 때 부터 저녁 때까지 내 걷는 리듬이 흔들렸다.

큰 일을 마치고 왔기에 당분간은 일이 없을 줄 알고 휴가를 냈는데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져 여기 저기 확인전화해야 하고..

그러나 내가 돌아가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기에

숲속의 경치를 즐길 여유도 없이 걸으면서 전화에 매달렸다.

 

숲길 끝쯤에 방목하는 말이 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ㄷ 자 철구조물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긴 숲길. 사람보다 말이 다니면 더 편할 것 같은 길이다.

 

숲길을 빠져 나오니 이제 비가 그쳤다.

멀리 먹구름이 가버렸고 친구는 서울 소식을 전한다.

비가 무척 많이 온다고..

 

이제 19코스의 길이 끝나간다.

바닷가 앞에 있는 20코스 간새에 도착해 19코스 완주 도장을 찍고

오늘 걸어 오면서 예약해 놓은 김녕 우체국앞 길가에 있는 S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니 리셉션데스크에 사람이 없어 전화로 찾으니

남자가 나오더니 방을 안내해 준다.

거의 20명이 족히 들어가는 넓은 이층침대 방.

너무 더워 몸부터 씻고 방에 앉아 발에 물집이 잡혔기에 밖에서 바늘과 실을 사가지고 와서

물집을 치료하고 탁구장과 식탁이 있는 공동공간으로 나와 내부 시설을 보니

지저분하기 그지 없다. 사무보는 공간은 거의 잡동사니로 너저분하게 쌓여 있고

아침 식사를 하는 공간의 부엌도 더럽기기 이만 저만 한게 아니다.

아침은 밥으로 주는 모양인데 야외 바베큐용 큰 쿠커가 몇 개 있고

그 안에 있는 음식을 자유롭게 먹는 것 같은데 열어보지 않아도 뻔할 것 같다.

 

친구는 샤워 후 부인을 마중나가 데리고 왔는데 부인이 이 곳의 지저분한 모습을 보더니

여기서 잘 수 없다며 다른 곳으로 가자 해 환불을 요구했더니 목욕비만 지불하고

무작정 나와 버렸다.

 

아마 게스트하우스를 소유한 사람은 따로 있고

관리는 알바생을 두어서 하는 듯 주인의식이 없어서인지 그렇게 지저분했다.

게스트하우스가 우후죽순 생기다 보니 이런 폐단이 생긴다.

 

인근에서 식사를 하면서 전화로 여기 저기 인근 숙소를 알아 보고

친구가 밖으로 나가 인근의 숙소를 알아보고서야 조금 비싸긴 하지만

깨끗한 숙소를 찾아 이동했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하얀 색깔의 게스트 하우스는 주인 아들이

디자인 감각이 있는지 방바다 거실마다 화장실조차 이쁘게 디자인 해 놓았다.

 

그렇게 둘쨋날의 밤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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