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제주도올레길

제주도 올레길 15코스

carmina 2014. 1. 23. 08:45

 

 

올레길 15코스 (2014. 1. 14)

 

한림항의 경찰서에서 올레길 지도를 얻고 넓은 항구를 걷기 시작했다.
아직 점심시간이 안되어 항구에 식당들이 많지만 모두 패스하였지만 이게
나중에 큰 어려움이 될 줄이야.

 

한림항 여기 저기에 갈매기만큼이나 많이 바닷가에 솟대를 세워 놓았다.
썰렁한 바닷가보다 이런 작은 조형물이 걷는데 힘이 된다.
목장승도 일반 장승과는 달리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조각해 놓았고
관광객이 제주바닷가에서 가끔 보는 용천수에서 목욕도 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용천수는 아마 바닷가에 있는 샘에서 나오는 민물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길가에 넓은 그물 위에 꼬득 꼬득 하얗게 말라가는 고기들이 군침을 돌게 한다.

그러다 문득 바닷가 작은 바위섬에 갈매기들이 떼지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모두 하나같이 한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저것도 본능일까? 수 십 마리의 갈매기 대부분이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한 마리가 날아 오르면 다 같이 날고, 쉴 때는 다 같이 쉰다.
자연의 법칙은 참으로 오묘하다.

 

이제 서서히 비양도도 시야에서 멀어져 간다.
한림항을 지나니 다시 조용한 마을 길로 들어선다.
오래 되었지만 깨끗한 동네. 어느 집도 집 앞에 쓰레기를 내어 놓은 집이 없다.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깨끗하고 돌담도 무너진 곳이 없이 잘 정비되어 있다.
제주도는 관광지로서 유럽의 유명도시에 비해 손색이 없다.

 

15코스를 걷다 보니 자주 보이는 것이 하늘의 비행기다.
제주공항으로 접근하는 여객기들이 줄기차게 구름을 뚫고 내려오고 있다.

바다가 조금씩 낮은 각도로 보이는 것을 보니
포장된 마을길이 조금씩 경사를 지며 올라가는 것 같다.

넓은 밭 사이를 바람이 불고 있다. 모자를 꾹 눌러 쓰지 않으면 날라 갈 정도로..

쉬고 싶지만 바람을 피할 공간이 없어 앉지도 못하겠다.
커다란 수조의 콘크리트 기둥 뒤로 몸을 숨겨 보았지만 4방향 모두 바람의
영향력에 벗어나지 못했다.

큰 길가에 나무로 만든 쌍둥이 하르방이 있는 팽나무 밑에 마련된 쉼터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에게 인근 식당을 물어보니
머리를 갸웃거리며 없는 것 같다기에 다시 길을 떠났다.

 

길은 아직 먼데 모이는 것은 오로지 넓은 밭들 뿐이다.
거의 무아지경으로 걸을 뿐이다. 점심시간도 훌쩍 지났고 배는 고프다.
특별한 지형지물도 없고 눈을 끌만한 표식도 없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팻말. 그루터기 쉼터 800미터. 얼마나 반가운지.

힘이 나기 시작한다. 쉼터니 무언가 먹을 것이 있겠지.
물론 걷다가 이런 상황이 생길까 봐 비상식량은 챙겼지만 그래도 식사는
편한 곳에서 해야지.

 

그런데 막상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쉼터에 오니 문이 닫혀 있다.
적혀진 전화번호로 연락하니 오늘 일이 있어 못 나온단다. 아이고야..
바람을 피할 버스 정류장에 앉아 에너지바를 하나 꺼내 먹고는
마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버스를 보고 다시 바람을 안으며 길을 떠났다.

지도상에 위치를 보니 선운정사가 멀지 않았다.

길가의 밭에서 혼자 밭일을 하는 남자분이 계시기에 인근 식사할 곳을 물었더니
허리를 피는데 추워서 그랬던지 코에서 콧물을 주르륵 흘리시며
남읍초등학교나 가야 식당이 있을 것이라는데 거기까지 약 2시간을 가야 한다며
여기 절에 가면 아마 밥은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준다.

 

날이 조금 푸근해 져서 옷도 갈아 입을 겸해서 넓은 선운정사 안에 있는
화장실을 찾아가는데 마침 스님이 마주오며 내게 합장을 하면서 공양하고 가란다.
공양? 아…밥 먹고 가라고..
정말 솔깃한 제안이다. 이 유혹을 어찌할꼬.
그래도 내가 교회 집사인데 절밥을 먹어도 될까?
그러면서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론을 세운다.
종교의 갈등이 서로 만나지 않은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서로 밥 먹으면 다 해결되는데 밥부터 먹어라.
스님이 배고프다고 교회에 와서 밥을 달라하면 안 줄 것인가?
내가 절에서 밥을 먹는다고 내가 부처를 믿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절의 지하에 있는 넓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마침 아주머니 몇 명이 식사를 하고 있다가 나를 반긴다.
불교에서는 아주머니라 안하고 보살님이라 하겠지?
반찬은 멸치로 끓인 김치찌개, 날김, 김치, 콩나물 정도.
그걸 보고 절에서 멸치는 먹는 것을 알았다.
속담에 눈치가 빨라야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 먹는다 해서
스님들은 생선도 먹지 않는 줄 알았다.
시장이 반찬인지라 특별한 반찬이 없는데도 밥은 꿀맛이었다.

 

내가 알기론 제주시 쪽에서 한림항으로 가는 길에는 환상적인 바닷길이 많은데
여기 15코스는 내륙으로 걸어서인지 거의 볼만한 경치가 없다.
다른 코스들이 모두 바닷가를 걸으니 일부러 일부 코스는 내륙으로 걷게 디자인했을 것이다.

 

배가 든든하니 걸음이 빨라진다.
앞으로도 남은 길이 12키로 정도이니 적어도 4시간은 걸어야 한다.

길을 걷다 보니 커다란 수로를 만났다.
어제 같이 긴긴 수로 길을 걸을까봐 살짝 겁이 났다.
농로로 한참을 가다가 저 편에 나같이 혼자 걷는 사람이 마주 오고 있다.
반가움에 인사를 했지만 이 사람이 고개만 꾸뻑이고는 그냥 가 버린다.
혼자 걸으며 사람의 정이 그립지 않았을까?

 

제주도의 평범한 볼거리 중의 하나가 밭 가운데 있는 무덤들이다.
분명 그 밭 소유의 선조일 것이며, 후손들이 그 밭일을 하며 조상이 우릴
도와주실 것이라는 토속신앙이 있을 것이다. 물론 큰 공동묘지도 있지만
대부분의 묘지가 이렇게 밭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 후손은 아무리 힘들어도 그 밭을 가능한 팔지 않을 것이며,
부모님 산소가 가까이 있으니 늘 산소는 정갈하게 손 볼 것이다.

기독교와 카톨릭이 보편화된 유럽에서는 조상의 산소를 교회 내에 마련한다.
교회는 주로 교회 앞 마당에 만들고 성당은 지하에 만든다.
그렇게 되니 후손들이 그 교회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멀리 살아도
부모님 산소에 가기 위해선 틀림없이 어릴 적 다니던 교회에 다시 가야 한다.

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도심지 한 복판에 있는 교회의 내부에
납골당을 짓도록 허가해 달라는 진정서를 시에 건의했지만 모두 묵살되었단다.
요즘은 법이 바뀌어 가능하다지만 아직도 한국인에게는 그런 납골당이
내가 살고 일하는 공간에 두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큰 길에 있는 어느 교회 앞에 주일예배에 올레꾼들을 환영한다고 써 있다.
유럽을 여행할 때 늘 성당을 찾아 다니던 문화가 있지만
한국교회는 외국과 달리 예술적인 교회건물이 아니라 관광자원이 되지 못한다.

 

큰 도로에서 남읍으로 가는 숲길 입구에 나무들이 모두 훼손되어 있고
산으로 올라가는 길과  옆길로 가는 길이 있어 보이는데
가까운 곳에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올레센터에 전화해 보니 요즘 제주도에 소나무재선충이 많아

숲에 병든 나무를 모두 잘라내고 있단다.

그 때문에 리본 이정표도 많이 사라지고 가능한 그 곳을 지나치기를 바란다며

윗길로 올라가보라기에 길이 있었음직한 숲으로 들어갔으나

도무지 길이 아닌 것 같아 덤불을 헤치고 내려오다 뿌리에 걸려 넘어지다 보니

손에 상처도 생겼다.

 

산의 옆으로 내려오니 저 아래 길에 리본이 달랑거리고 있다.

알고보니 여기 고개를 올라가지 않고 왼쪽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조금만 옆으로 돌아갔으면 보였을 것을 일단 올라가 본 것이 실수였다.

(글을 쓰면서 내가 이 곳을 과오름으로 착각한 것을 알았다)

 

나무는 여기 저기 꺽여 있고 잘려져 있고 숲은 겨우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공간만 있다.

다시 트인 공간으로 나오니 길가에 이쁜 마가목의 빨간 열매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올레길을 걷다보면 이런 것 뿜만이 아니라 예쁜 집들이 많아 좋고, 넓은 밭에

빼곡히 들어 찬 채소들이 좋고, 때로는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함도 좋다.

 

남읍초등학교 앞에 금산공원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초등학교 앞이라

아이들 수준의 공원일 것 같고 다시 내려오는 과정이라 힘도 들고 해서

나 자신에게 요령피워라 하고 발길을 돌려 버린다.

 

학교 앞에 있는 공공화장실앞에서 중간스탬프를 찍고  깨끗한 거리를 지나니 몇 개의

식당이 보이지만 모두 조용하다. 만약 여기까지 굶고 왔다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차도로 나와 고내봉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서니 저 봉우리를 올라갈 생각을 하니

맥이 탁풀린다. 이제까지 걸어온 거리도 거의 25키로인데 과오름을 지나 

고내포구까지 가는 나머지 6Km 정도를 더 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오늘은 여기서 끝내기로 하자 하고 내일 이 곳을 찾아오기 위해

길 옆에 있는 마을의 이름을 카메라로 찍어 두었다. 

 

택시도 버스도 없는 곳에서 지나가는 차에게 엄지손가락을 올려 태워 달라고

부탁해 보았지만 승용차는 모두 지나치는데 레미콘 트럭하나가 내 앞에 멈춘다.

이렇게 좋을수가..  고내포구까지 부탁드린다 했더니 차고가 그 쪽이니 타라고 하기에

높은 발받침을 힘들게 올라가 자리에 앉으니 기분이 무척 좋다.

 

고내포구 근처의 하쿠나 마나타 게스트하우스에 자리를 잡고 피곤하여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며

옆으로 움직이다가 그만 엉덩이로 안경을 눌러 버려 무테안경의 끈이 떨어져 버렸다.

 

이런 난감함이...주인이 급히 가까운 한림읍에 안경점에 가는 버스편을 알려주고

침침한 눈으로 버스를 타고 카드를 요금판에 댄 후 자리를 찾아가는데 기사가

나보고 뭐라 한다. 시외버스는 목적지를 먼저 말하고 기사가 요금표를 찍은 후

카드를 대야 하는데 그냥 대고 들어갔다며 내게 화난 목소리로 나무란다.

 

외지인이니 그럴 수도 있는거지 내가 돈을 안 낼려고 그런 것도 아닌데 

너무 소리 크게 낸다고 따지려다가 그냥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 버렸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바라보는 해지기 전의 구름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햇살을 바라보며

내게 펼쳐질 앞길을 생각해본다. 이런 여행을 즐거움으로 지속할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도피처로서의 여행이 될 것인가.

노을을 늘 아름답게 볼 수 있을런지 아니면 오늘도 덧없이 하루를 보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 

 

저녁 게스트 하우스는 사람이 적었다. 할머니 엄마와 두 딸 가족, 다른 방에 아가씨 2명

내 방은 늦게 오기로 한 젊은이. 저녁을 먹어도 사람이 많아야 좋은 것을 먹는데

가족일행과 메뉴가 조율이 안되어 밤거리를 혼자 나왔다.  

 

포구에 쥐치회를 파는 곳이 있어 군침을 삼키고 들어갔는데 이미 영업이 끝났단다.

어쩔 수 없이 인근 국수집을 들어갔는데 음식점 내부가 정갈하고 메뉴도

조금 특이했다. 문어국수, 흑돼지 짜장면, 전복짜장 등...

역시 제주에 어울리는 메뉴다.

 

흑돼지 짜장면을 시키지 주인이 말을 건다. 횟집가서 쥐치회에 소주한잔 하고 싶었는데

없어서 여기왔다 했더니 자기가 막걸리를 사오겠다며 나가더니 한참뒤에 들어 온다.

이 추운데 멀리가서 사온 것 같다. 주인이랑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낯선 곳에서 방랑자 다운

저녁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에 주인이 차려주는 정갈한 아침밥을 먹고는 직장 다닌다는 여주인이

나를 어제 중단한 곳까지 데려다 주며 물어보니 서울에서 제주로 온지 4년되었는데

아내는 직장다니며 사장이 게스트하우스일을 도맡아 한단다. 하다못해 아침 식사를

하는 것까지...

 

백일홍길이라고 이름붙여진 과오름 가는 올레길은 오름으로 올라가지 않고

휘 둘러 가게 되어 있다. 편하게 천천히 올라가는 길.

마치 커피 냄새가 코로 들어 올 것 같은 조용한 아침 숲길을 올라간다.

그런데 그 편안한 숲길이 곧 처참하게 무너진 나무숲이 눈쌀을 지푸리게 한다.

재선충에 걸린 나무들을 베어 버렸는지 길이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그렇게 나무를 베어버려서인지 이정표도 이상하게 되어 버리고 숲을 지나니

다른 길이 또 보였다.

 

큰 길 옆에 넓은 취나무밭에 할머니들이 1열로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기에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 할머니 군단들이 제주도의 농산물 채취를 책임지고

있나 보다.

 

길이 보광사가 있는 고내봉으로 올라간다. 어제와는 달리 바람이 없고

날이 따뜻하여 경사가 그리 크지 않은 언덕을 올라가는데 내복이 불편하다.

잘 다듬어진 산책길, 아침 산책을 즐긴 사람이 천천히 마주치는데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입구에 큰 종이 있는 보광사는 빈 절인 듯 인기척이 전혀 없다.

화장실을 사용하고 물을 내리니 물도 안 차있는 변기통이었다.

수도도 안 나오고...갑자기 유령의 마을에 온 섬득함을 느낀다.

 

고내봉에 올라가니 중턱에 운동시설이 있고 멀리 바다가 보인다.

그간 숲길만 걷다가 바다로 간다는 희망때문인지 룰루랄라 흥얼거리면서 언덕을 내려간다.

이젠 고내포구까지 2.5키로 불과하다. 뭐 이정도야 어렵지 않게 걷는다.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오솔길 옆에 말한마리가 무덤가에서 풀을 뜯고 있다.

이번 여행에 말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서귀포쪽에 비해 말을 키우는 곳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억새가 가득한 언덕길. 억새만 봐도 좋은데 그 사이에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고 그 사이 작은 오솔길을 걷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라.

내가 내 사진을 찍지 못함이 심히 안타깝다.

 

언덕 옆에 아주 큰 바위가 있어 마을의 상징이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바위의 유래와 그 뒤에 당산나무가 보인다.

이곳이 하가라 고내봉 큰신마을 하르방당 이라 부르고 정초에 한번씩

제사를 지낸다고 설명이 되어 있는데 신기한건 마치 무슨 약효가 있는

돌인것 처럼 돌의 효험이 천연두와 홍역으로 적어 놓았다.

이런 무속신앙은 처음 보네.

 

어제 차를 타고 고내포구로 갈 때는 무척 먼길로 생각되었는데

실제 걸어보니 그다지 먼길이 아니다. 어제 레미콘 트럭 아저씨가

나를 내려 준 곳에 도착하여 큰 길이 아닌 밭사이 길을 걸어 가니

어제 저녁 국수집 옆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다.

 

이제 여기서 3번째 올레길 완주 스탬프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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