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제주도올레길

올레길 18코스

carmina 2014. 9. 10. 08:24

 

 

2014. 9. 2

 

올레길 18코스

 

이른 아침 저가 항공사의 비행기가 하늘을 날랐다.

자리에 여유있는 시간이라 기내도 조용하다.

옆에 양복을 입은 이가 말을 건다.

제주도에 이주해 살고 있다며 너무 살기 좋다고..

 

늦은 여름 휴가를 9월 초 추석 연휴 전으로 잡고 길을 혼자 떠날 계획을 하다가

누군가와 같이 가라는 아내의 부탁에

문득 최근에 산티아고 일부 코스를 다녀온 시간 많은 합창단 친구가 생각나

동행을 권했더니 흔쾌히 원했다. 더구나 그의 아내까지..

 

버스에서 내려 18코스 시작점인 제주 동문로타리를 찾아 가는데

길가에 어느 나이 든 아저씨가 백년초인 듯 한 열매를 팔고 있기에

물건에 관심을 가지고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사지 않을거면 물어보지 말라며

귀찮듯이 대답한다.

 

동문로타리의 출발 스탬프 찍는 간새 주위에 노숙자들이 모여 있다.

눈이 풀린 한 노숙자가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며 악수를 청한다.

간새 옆에서 떠날 준비를 하며 가방을 챙기는데

조금 전 악수한 노숙자가 다가오며 무언가 부탁해도 되느냐기에

아무 말도 않고 자리를 이동했다.

 

부슬 부슬 비가 내린다.

이미 며칠 동안의 제주 날씨는 알아보았기에 날씨에 대한 준비는 다 해 놓았다.

산지천을 따라 걷는데 이른 아침부터 동네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이

산지천을 청소하고 있다.

제주도는 유난히 다른 도시보다 깨끗하는 것은 아마 제주시에서

제주의 이미지를 많이 노력하는 것이 보인다.

 

걸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제주의 거의 모든 집들이 인적은 없어도

집 앞이나 마당에 날라다니는 휴지나 비닐 쪼가리 하나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산지천 건너편에 중국 피난서체험관이라 써붙인 커다란 배 한 척이 궁금했다.

왜 저런 배가 있을까? 건너편이라 둘러보진 못했다.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한 친구를 위해 제주 항만 여객터미널로 올라가

간식도 사고 커피 하나도 챙겼다.

항만에는 커다란 크류즈호 한 척이 정박해 있다.

크류즈호를 보면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언제 기회되면 저 배를 타고 세계를 다녀 보리라.

배 안에서 낭만을 즐기고, 가는 곳마다 낯선 이국의 풍경들을 즐겨보리라.

육지에서 배를 타고 제주에 올 수 있는 커다란 페리호도 보인다. 

 

언덕으로 오르기 전 오른 쪽에 커다란 빈 공간이 있고

이 곳이 전에 큰 주정공장이 있던 곳이라는 팻말이 있다.

그러나 내용을 읽어 보니 냄새 좋은 술냄새가 풍기는 곳이 아니라

이 주정공장에서 제주 43사건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했던 곳이라 한다.

 

바다를 옆으로 하고 인적없는 주택가로 향하는 언덕의 계단을 오른다.

계단조차 오른쪽 왼쪽 페인트 색깔을 다르게 해 놓아 걷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한다.

이 계단의 무늬를 피아노처럼 해 놓았으면 더 좋을껄..

 

비 젖은 언덕 한켠에 작고 흰 강아지 한 마리가 어쩌다 비탈길에 올라가

내려오지도 올라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다.

저 녀석을 도와줄까 말까 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한 번 구르면 알겠지..

 

비를 맞아 촉촉한 도로와 먼지씻긴 깨끗한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골목길에

거상 김만덕의 길이라며 바닥에 동으로 만든 팻말이 박혀 있다.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TV 드라마로도 방영된 적 있는

조선시대 제주의 비천한 기녀였다가

위대한 여성경영자로 변신한 김만덕이 생각난다.

 

그렇게 주택가 골목을 걷다가 언덕으로 계속 올라가며 사라봉으로 향한다.

그런데 올라가는 길 옆에 커다란 동굴이 컴컴한 입을 하늘을 향해 벌리고 있으나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 놓았다.

 

작은 봉우리에 불과할 줄 알았던 사라봉의 뒷편에 거대한 자연의 모습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사라봉 봉우리에 있는 체육시설에서 주민들이 운동을 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팔각정에 올라 멀리 흐릿한 바다를 바라보며

가사가 분위기에 맞는 김민기의 노래 '친구'를 부르니

옆에 있는 동양인 남자가 영어로 노래 잘한다고 칭찬하며 내려간다.

 

팔각정을 나와 사라봉 뒷편으로 가는 길에 접어 들면서 탄성이 터진다.

어쩌면 이렇게 멋진 길이...

앞에서 볼 때는 오름 하나에 불과했는데 뒷 편에는 길게 산길이 나있다.

걷는 코스는 일부러 바다가 보이는 능선을 택해 만들어 놓아

한쪽은 우거진 수풀, 한쪽은 길게 이어진 잘 정비된 길을 따라 걷는다.

아침 운동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편한복장으로 삼삼오오 마주 오고 있다.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 아주 좋을 것 같다.

눈으로만 담기 아까와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한참 오름을 내려오니 이정표에 '애기업은 돌'로 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는데

어느 돌을 가리키는 것인 줄 모르겠다.

산 아래 큰 나무들이 둘러 있는 정자에 아침 산책 나온 동네어른들의 쉼터를 지나

걷기 좋게 멍석을 깔아 놓은 능선길을 한 참 걸었다.

 

바다 옆 숲길을 걷는데 바로 어제 풀을 벤 듯 오솔길에 잘려진 풀들이 가득하고

갓 벤 풀냄새가 진하게 코에 풍겨오니 풀냄새 하나 만으로도 올레길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

그런 사랑의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하듯 작은 나무로 하트모양을 길 옆에

포스트존을 만들어 놓았다.

 

해안절경으로 가는 길.

제주도 어디인들 절경이 아닌 곳이 있으랴.

해안이건, 숲길이건, 오름이건간에 거의 모두 절경이라 불러도 나무랄데 없다.

 

곤을봉 43마을로 가기 위해 작은 개천 하나를 폴짝 뛰어 넘었다.

마을에 여기 저기 집집마다 돌로 만든 작은 조각품들로 남의 집 담을 넘어보게 된다.

눈을 어디로 돌리던지 시선을 끄는 것들이 많은 제주.

굳이 인공적으로 만들지 놓지 않아도 있는 그 자체로도 구경꺼리가 많은 곳이 제주다.

전통적으로 만들어 집도, 도시 사람들이 와서 지은 듯한 예쁜 집들도..

 

숲길을 걷는다. 멀리 오름이 보인다. 화북포구로 향한다.

도심속의 길 한 켠에 코스모스가 참 예쁘게 피어 있다.

차들도 한산하고, 인적또한 없다.

모두 우리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길 같다.

포구 끝에 세워 놓은 빨간 등대도 고깃배를 위한 건지

우리 같은 나그네들을 위한 건지..

 

멀리 별도연대가 보인다. 외적의 침입을 연기로 알려 주기 위해 만든 봉화대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런 봉화대가 주로 산에 있는데

제주에서는 이런 평지에 놓여 있다.

아마 바다로 오는 적을 빨리 보기 위해서 이런 낮은 언덕에 만든 것 같다.

이런 연대들이 아마 오래전에 허물어졌을텐데, 다시 쌓은 듯

연대들의 모두 부서진 곳 없이 깨끗하다.

 

할머니 한 분이 연대입구에서 나물을 다듬다가 우리보고 올라가 보라며 권한다.

그리 높지 않은 연대에서 멀리 오름의 정상이 보인다.

별도 연대는 동네에서 멀지 않아 마을의 골목을 지나며 다음 목적지인

삼양 검은모래 해변으로 향한다.

 

멀리 공장굴뚝같이 보이는 앞 바다에 화산암들이 새까맣게 덮히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일부러 화산암들을 잘게 부수어 놓은 듯 하지만

일부러 이렇게 해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니 멀리 보이는 해변의 모래가 조금 검은 듯 하다.

그 곳에서 엄마를 따라 나온 애들이 모래장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모양이 하나 보였다.

방파제 역할을 하는 계단의 작은 틈새에 파도에 밀려 들어온 바닷물은

많지 않은데 계단 구석에서 내려 오는 물의 양이 상당히 많아 가만히 보니

바닷물의 닿는 곳에 모래톱 사이 지하에서 물이 펑펑 솟아 오르고 있다.

 

아직 시장기는 들지 않지만 막상 배고플 때 식당이 없을까봐 보이는 곳에서

무조건 점심을 먹기로 했다.

 

칡칼국수를 파는 식당.

3명이 같이 먹으니 음식 가짓수를 여러개 시킬 수 있어 좋다.

고등어 조림과 생선구이를 하나 시키니 밑반찬으로 먹음직스러운 간장게장과

작은 생선구이 몇 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젓갈이 입맛을 돋운다.

그리고 이 곳에 유명한 사람이 왔다갔다는 사진들이 걸려 있고

주인은 우리가 부천에서 왔다 하니 자신도 부천에서 살았다며

더 살갑게 우리를 대해 준다.

 

삼양 해변을 지나 바닷가를 한참 걸어 가니 깨끗한 주택가 뒤로

다시 작은 언덕을 오른다. 언덕 입구에 어떤 부부가 이 곳에 3개의 절이

모여 있다며 아는 체를 한다.

 

원당사, 문강사 그리고 불탑사.

마치 작은 동네에 작은 교회들이 여러개 모여 있는 듯 하다.

올레길은 그 중 불탑사로 향하여 굳게 닫힌 절 앞에서

이정표에 있던 오층석탑을 찾아 두리번 거리니

절의 밖에 있는 마당에 뎅그마니 자리잡고 있다.

절도 새로 짓는지 아니면 이제 막 짓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오래 된 절은 아닌 것 같다.

 

오층석탑은 첫 눈에 봐도 오랜 세월이 지난 것을 알 수 있었다.

화산암을 깎아 만든 바위의 구멍속에 파란 이끼가 가득하다.

석탑을 보고 나오는 좁은 길이 참 한적하고 좋다.

 

신촌가는 옛길로 나오는 가을 준비하는 썰렁한 밭들이 잘 정비되어 있다.

이번 제주 방문에 보였던 거의 모든 제주의 밭은 썰렁한 모습이었다.

이제 곧 제주의 색깔들이 변할 것이다.

아직은 감귤들의 노란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검은 흙으로 가지런히 정돈된 곳에 각종 나물들고 무 그리고 감자들이

심어질 것이다.

 

바닷가 검은 바위 위에 시선을 끄는 비석 하나.

누군가 자기 죽으면 이 곳에 비석을 하나 세워 달라 했는지

비문이 거의 지워져 내용은 잘 모르지만 십자가가 선명하고

일반 비석같지 않게 시 한 편이 써 있는 것 같다.

 

같이 걷는 친구 부인이 조금 지쳐가는 것 같다.

멀리 바닷가로 나가는 길에 자뀌 뒤처진다.

아마 뾰족한 화산바위로 덮힌 바닷가를 걷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길이 언제나 끝날려나.

멀리 보이는 정자에 모두 등산화를 벗고 길게 누워 휴식을 취하니

이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 같다.

 

다른 코스에서는 남은 거리가 얼마인지 자주 보여주었는데

이 곳에서는 간새도 드물게 설치되어 있고 거리 이정표도 조금 드문 것 같다.

길을 가며 예쁜 집들을 볼 때마다 이걸 사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 만의 마음뿐만이 아닐 것이다.

예쁘게 지어 놓은 집을 보고도, 오래 되어 허름하지만 깨끗한 집도.

모두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닭머르동산과 대섬을 지나 아까 보았던 봉화대 비슷한 돌 구조물이 있어

설명을 보니 봉화대가 아니고 이 곳에 귀양을 온 선비들이 북쪽의 한양을 그리며

지내던 연북정이라 한다.

 

길을 걸으며 올레길과 같은 코스로 노란 이정표가 있기에 읽어 보니 천주교 순례길을

표시하고 있다. 올레길과 같은데 이럴 필요가 있는지..

 

멀리 오늘의 종착지인 조천 만세동산의 거대한 탑이 보인다.

비가 온다.

오락 가락 하는 비가 그래도 서울보다는 덜 오는 듯 하다.

 

18코스 종착점을 알려주는 간새에서 스탬프를 꺼내 찍으니

잉크패드가 비에 젖어 흥건하다. 이번 여행에는 그만 집에서 올레길 여권을

가지고 오지 못해 별도 종이에 스탬프를 찍었는데 거의 잉크로 범벅이 되어 버렸다.

 

원래 평소 혼자 걸을 때 처럼 1개 코스와 2번째 코스를 반 정도 걸을 것을 예상해서

19코스의 중간쯤에 숙소를 정했는데 여럿이 같이 걷다 보니 여유를 부려서 인지

한개 코스로 만족해야 했다.

 

첫날 숙소로 잡은 북촌 하늘금은 19코스이 딱 중간지점에 있어

버스를 타고 찾아가니 예쁜 집에 내부도 깨끗하여 참 마음에 드는 숙소였다.

우리가 도착하니 원두커피를 갈아 맛있는 커피를 내려 주고  

저녁 식사를 위해 밖에 나가기 싫다는 일행의 요청으로

중국집에서 음식을 배달하고 치킨을 주문해 주인이 준비해 둔 독일 맥주와 함께

그간 몇 년 동안 합창단에 같이 활동하면서 소홀했던 대화와

기타로 노래를 부르며 저녁 늦게까지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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