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소양강 둘레길

carmina 2014. 3. 15. 11:46

소양강 둘레길

 

이른 아침에 버스를 타고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버스를 타자마자 김밥 한 줄 먹고 잠에 떨어졌는데 자다가
눈을 떠보니 38선 경계선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38선?
내가 어디로 온거야?

오늘 소양강 둘레길은 춘천쪽의 소양강 길을 걷는 것 아닌가?
그제서야 리더가 오늘의 코스를 설명해 준다.

 

내가 어쩌다 참여하는 걷기 단체에서 권유가 들어와 같이 간다고 해놓고
공지 올린 것을 잘 읽어 보지 않았기에 어디로 가는지 헷갈렸다.

버스가 동홍천을 빠져 나가서도 약 1시간 정도 더 가는 것 같다.
북쪽의 소양강 둘레길을 걷는가보네. 기분좋다.

이런 단체여행의 즐거움은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는 곳을
갈 수 있어, 사람들 많지 않아 때가 묻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어 좋다.

 

버스가 사람들을 내려주고 다 걸은 후 종착점에서 그 버스가
기다리고 있으니 힘들게 걷고 편히 쉬며 올 수 있어 좋다.
그리고 늘 일찍 출발하니 먼곳도 가능하다는 편이점도 있다.

조용한 소양강물이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다.

강원도에 눈 소식이 있었는데 혹시 몰라 아이젠을 챙겨 왔는데
산에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은 걸 보니 대관령 동쪽에만 눈이 내린 것 같다.

일주일 동안 전국을 뒤덮었던 미세먼지도 오늘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맑고 쾌청한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적당히 흩어져 있어 하늘을 바라보는
어깨가 펴진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추운 줄 몰랐는데 탱크와 장갑차가
전시되어 있는 남북리 자유수호 희생자 위령탑이 있는
참전유공자 기념탑 앞 공터에 버스를 세우고 내리니
춘추복 등산복 입은 내 다리가 썰렁하다.

여기는 인제 원통지역. 군인들도 그 추위를 실감하는 지역이다.
조금 걷다가 보면 춥지 않겠지.

나 같은 생각을 다른 사람들도 했는지 점퍼의 내피를 빼고 왔다며
걱정하고 있다.

일행 중에 MTB를 즐기는 부부가 자전거 2대를 조립하고 있는데
저렇게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멋진 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간단히 준비 운동을 하고 지도를 보며 오늘의 코스를 정하고 출발.
살구미 마을을 거쳐 소양강을 따라 걷다가 산으로 올라가거나 혹은
강을 따라 걸어야 하는데 거리나 시간상 팀을 2팀으로 나눌 수 없고
점심시간이 안맞아 할 수 있으면 산행은 포기하고 편한 길로 가기로 했다.

1코스는 하늘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살구미에서 소류정까지 약 8.5Km
2코스는 내린길로 소류정에서 38대교까지 약 9Km 의 걸어야 하니
1코스 후 식사를 하고 다시 답사는 하지 않았지만 2코스를 걸을 것이다.
소양강 둘레길은 2개의 코스 밖에 없는 것 같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다리를 건너 강 건너편으로 넘어간다.

며칠동안 가물어서인지 강에는 물이 많이 흐르지 않아 강바닥이 보인다.
이런 깊은 산골 동네에 와도 멀리 작은 동네에 아파트가 보이는 한국은
완전히 아파트 천국이다.

 

나무를 때는 집이 있는지 굴뚝에서 연기가 마을을 덮어 가는
조용한 동네앞 도로를 지나 숲길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 길이 보통이 아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없는 듯 두텁게 쌓여 있는 낙엽이
부서진 것이 없을 정도로 모두 뻣뻣하게 살아있다.

그리고 이전의 다니던 겨울 숲길의 낙엽의 깊이가 그다지 두텁지 않았는데
여긴 확실히 깊은 산골이라 그런지 길에 바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낙엽이 가득 쌓여 있다.

 

이런 길을 조심해야지. 낙엽밑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고
자칫 바위를 잘못밟으면 발목을 삘수도 있다.

 

길을 걸어가도 나무 가지에 걸려 있는 이정표도 한 두가지 종류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 사람의 발길이 뜸한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언덕을 구비구비 오른다.

선두 그룹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보였다를 반복하고 있다.
가끔 뒤돌아 보는 후발대도 또한 올라갈 때마다 발 아래 보여지는
소양강의 모습도 나를 약올리고 있다.

 

햇빛을 자주 받을 수 있는 강가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산그늘로 가려진 부분에는 아직 하얀 얼음이 강줄기를 따라
흰 띠를 두르고 있다.

 

죽은 숲. 그러나 살아 있는 숲. 죽은 체하는 숲.
이제 한 두달만 지나면 온 숲이 와글 와글 살아날 것이다.
숲은 사계절 모두 봐야 할 것 같다.

가을에는 낙엽이 내 발자국소리에 놀라서 떨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갔던 길을 또 가고 또 간다.

 

누군가 급히 소리친다. 다람쥐 다람쥐다.

가만히 보니 인적을 느낀 다람쥐가 나무 위로 급히 올라가더니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멈추어 빤히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슬금 슬금 나무로 내려오고 있다.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언덕을 오르니 갈래길에 춘향터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웬 춘향? 남원의 춘향이가 여기까지 왔었던가?
내용을 보니 이 곳에서 동네처녀들이 모여 그네를 탔단다.

그네를 박차고 오를 때마다 보였던 소양강의 모습을 상상하며
아가씨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 언덕에서 내려오는 숲길은 동네처녀들이 많이 다닌 길인지
오솔길이 반들반들하게 길이 나 있다.


일부러 이런 트레킹코스를 만든 것인가 아니면 기존에 있던 길인가?
능선을 따라 가는 길에 축대의 돌들이 오래 지나지는 않은 것 같다.
위험한 길에 안전을 위해 마련해 준 밧줄도 손때가 거의 묻지 않았고
중간 중간에 마련해 둔 전망대의 의자들도 아직 새 것이다.

 

언덕아래 집이 한 두채 있는 마을 입구에 여러 개의 둘탑이
동네사람들이 쌓았을 것 같은데 공을 들여 작업한 것 같이 모양이 일정하다.
그러나 그렇게 돌탑을 쌓은 마을 주민들은 모두 이 곳을 떠나 버렸다.
집들의 외관이 모두 부서져 있고 사람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 곳을 떠난 사람들은 여기에 가끔 와볼까?
승용차도 들어오지 못할 곳이라 이미 걷기를 싫어하는 이들은
오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와도 반겨주는 동네사람도 없고
쉴 수 있는 곳 없는 마을에 오고 싶을까?

 

마을을 지나 다시 언덕을 오르니 어느 마을에나 마치 우물처럼 있는
성황당이 유독 돋보이는 큰 나무 아래 있었던지 성황당 안내표시가 있다.
그러나 사당은 없고 그간 마을사람들이 흔적이 없어서인지
성황당 주변은 제사를 드린 흔적이 없다. 


나무들 사이로 파란 하늘과 파란 강물이 어울리는 양복 콤비를 입은 것 같다.

조림이 인공적으로 조성이 안되어 있는 숲이라

숲길가의 나무들 모습도 제 각각이다.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그대로 썩어가고 있고
활처럼 휜 나무는 인천 자유공원의 홍예문처럼 숲길을 장식해 놓았다.

 

한참 숲길을 걸어 올라가 숲사이로 소양강이 보이며 큰 소나무가 아름답고
나무데크로 만든 쉼터 전망대가 있는 곳에서 잠시 쉬며 여흥을 시간으로
작은 음악회를 갖는다.

 

강을 끼고 걷는 길을 걷다보니 내가 흥얼거리는 노래는 온통 강에 대한 노래뿐이다.
내게 노래를 부탁하기에 평소 편하게 부를 수 있어 오디션볼 때
부르는 '언덕에서'라는 가곡을 부르고 다른 굵직한 음성을 가진 이가
신작가곡 '내 맘에 강물'을 불렀다. 그 분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을까?


길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올라가기 불편하는 곳은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걷기는
무척 편하다. 그리고 전망이 좋은 곳에서는 사진 찍을 수 있도록
전망대도 만들어 놓았다. 올라가는 곳마다 장관이고
숲속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곳에 이끼가 많이 낀 돌들과 나무들이 있어
청정지역임을 알려주고 있다.


곳곳에 유명한 동양화가들의 그림 소재 혹은 고급 아파트나 정원이 넓은 고급빌라에서
탐을 냄직한 기기묘묘한 소나무들이 보인다.

 

강은 흐른다. 쉬지 않고 흐른다.
머무를 곳없는 침묵의 흐름속에
밀리는 아픔도 지워 버렸나.

 

제목도 누가 불렀는지도 기억이 안나는 노래가 계속 생각난다.
그런데 왜 트로트 소양강처녀는 생각이 나지않을까?

 

굳이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아도 약 3부나 4부능선에 길을 만들어 놓아
길 걷기가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그러나 길 바로 아래는
약 높이 10미터 이상의 가파른 언덕이기에 해빙기에 길이 약해지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유독 나무데크와 밧줄로 만든
안전띠가 자주 보인다.

 

어느 골짜기에 이르니 보트장 팻말이 있어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줄 알았는데
625후 미군정시절 미군들이 이 곳에 보트장을 만들어 놓고
즐겼다고 해서 보트장이라 불렀다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강가 언덕의 능선길을 따라 걷다보니
1코스의 종점인 소류정에 도달할 즈음에는 시야가 트이고
강폭이 넓어진다.

 

그런데 강폭의 반은 물이 흐르고 한쪽은
늘 산그늘에 가려 얼었던 강물이 녹지 않아
동네 아저씨인듯한 아저씨가 개를 데리고 얼음위를 산책하고 있다. 
참 평화로운 시골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걷는 행복, 이런 모습을 통해 보는 평화,
숲이 내게 주는 건강한 삶의 에너지,
세상사 욕심을 줄이면 이런 곳에서 만족하며 살텐데..

그러나 우리에겐 무채색의 숲속에 유독 밝은 색깔로 보이는 등산복같이
내 삶이 남들에게 화려하게 보이길 원하고 그 화려함을 유지하기 위해
아둥 바둥 살아야 할 뿐이다.

 

숲속길이 끝나는 지점에 넓은 마당에 우뚝 서있는 느티나무에
벌써 봄기운이 가득하여 푸른 새싹들이 보여 전체적으로 푸른 기운이 보인다.
봄이다. 봄. 봄은 영락없이 오고야 마는구나.
긴 겨울처럼 마른나무들만 가득한 긴 숲길을 벗어나니 봄이 보인다.

여기까지가 1코스이고 이제 2코스를 찾아 나선다.


위로 차가다니는 고가도로 끝에 인제라는 지명을
언덕에 나무로 글을 써 놓았고 군축교를 지나 그 밑으로 난 터널을
통과하니 바로 2코스의 시작점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그러나 배도 출출하니 어디든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

숲속길을 다닐 때는 바람이 부는 것을 못 느꼈는데
큰 길로 나오니 그다지 강하지는 않지만 바람이 불어
사람들이 벗어 들었던 옷을 다시 껴입는다.

 

이제껏 우리 길벗들이 좋아하는 좁은 숲의 오솔길을 걸었으나
2코스부터는 임도라 길은 넓으나 길은 돌밭이고 나무들은 길에서
많이 떨어져 있다. 그러나 역시 강가를 걸을 수 있어 마음은 즐겁다.
그것도 아까보다 훨씬 넓은 소양강을 따라 걷는다.

 

오늘 점심은 좀 특이하다.
비빔밥. 팔도 화합을 위해 각 지방에서 난 특산물을 한꺼번에 섞어
비빔밥을 만들듯이 진행팀이 오늘은 오늘은 비빔밥을 할테니
각가 밥이랑 나물같은 반찬, 기름, 김, 튀각 등 비빔밥에 넣으면
좋을 반찬들을 가지고 오라 했다. 그리고 큰 양푼을 준비했다.

 

바람이 불지 않는 양지바른 곳에 모두 둘러 앉아
양푼에 밥과 나물등 각종 재료를 넣고 비닐잡갑을 끼고
대형 비빔밥을 만들어 다같이 나누어 먹는다.
이것 참..좋은 방법일세..

혹 손으로 주물 주물하는 비빔밥이라 비위가 조금 약한 사람들은
싫어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요리라는 것이 손으로 만들어야
제맛이니 음식을 가리지 않는 내게는 이 비빔밥이 꿀맛이다.

 

2코스인 내린천길은 아마 오래 전 임도로 쓰인 것 같다.
비록 포장은 안되어 있지만 차들이 충분히 지나갈 정도로 넓었고,
작은 자갈들이 깔린 길이라 비가 와도 운행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낮은 비탈길을 올라가는데 우리 뒤를 이어 젊은이 2명이
산악자전거를 타고 쉴새없이 페달을 밟으며 올라오고 있다.
그렇게 힘차게 돌려도 언덕이라 진행속도는 무척 느리지만
그래도 조금씩 올라가는 속도가 우리 걷는 것보다 약간 빠르다.
뒤를 따르는 사람은 여자인 것 같은데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 소나무가 거의 없어서인지
눈에 보이는 모든 나무들이 잿빛이라 이런 길 오래 걸으면
우울증에 걸릴 것 같지만 밝은 색깔의 등산복을 입은
우리들의 모습과 웃는 얼굴들이 있어 다행이다.


바로 길 옆을 흐르던 소양강줄기가
우리가 높이 올라가면 갈 수록 더 아름답게 보인다.

넓은 강변의 양옆으로 얼음띠를 두르고 가운데는 파란 강물이 
흐르는데 몇 년 전 아내와 여행했던 북구 노르웨이의 
빙하계곡을 흘러가는 강물의 모습과 흡사하게 달랐다.

끝없이 강이 이어지고 있다.
높은 전망대에 올라 우린 2차 여흥의 시간을 갖는다.

나만큼이나 노래를 좋아하는 길벗은 
최근에 자기 노래앨범을 만들었다며 씨디를 하나씩 나누어주고
얼마전에 2번째 산티아고 까미노길을 다녀왔다는 얘기에
내가 생각하는 버킷리스트를 이루어나가는 그가 몹시 부러웠다.


전망대 앞에는 여기 공사를 하면서 사고로 숨진 이들을 위해
작은 충혼비가 괜히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길이 넓어 사람들의 어깨를 나란히하고 오손도손 얘기하며 걷는 모습이 정겹다.

부부끼리, 아들과 엄마, 친구들, 그리고 우리같은 애호가들끼리..

전망대에서부터 2코스 종착점인 38대교까지는
지속적으로 내려가는 길이라 그다지 힘들지 않게 걸어가는데
누군가 앞에서 웅성이기에 숲길 옆을 보니
큰 고라니 한마리가 털만 보인 채로 말라 죽어 있었다.

 

넓은 임도가 끝나는 곳에 잘 포장된 주차장에 차들이 몇 대 보인다.
가족끼리 드라이브나 싸이클링을 즐기는 사람들 옹기 종기 모여 
쉼터에서 음식을 즐기고 있고, 멀리 다리 하나가 길게 누워 있다.


38선. 

이 곳이 한많은 38선이다.얼마나 많은 역사의 아픔들이 골골이 숨어 있을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우리 민족이 세월이 지나가면
모두 잊혀지거나 아니면 통일이 되어 새로운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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