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지리산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방광 - 산동 간

carmina 2014. 5. 4. 11:28

 

 

2014. 5. 1

 

지리산 둘레길 방광 - 산동 간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 핸폰으로 알람 시간을 셋팅해 놓았는데

나를 깨운 것은 창밖에서 들리는 새들의 맑은 소리와

어디선가 멀리 들리는 닭울음 소리였다.

 

지난 밤 서울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전남 구례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1시 반

버스 안에는 지리산 등반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들은 버스에서 내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택시를 잡고 방광마을로 향했다.

 

이미 지난 해 방광마을에서 오미 방향으로 가기 위해 하루 묵었던 곳이기에

민박으로 대여해 준 마을 청년회 사무실을 찾는 것은 쉬웠기에 민박손님 있다는

팻말이 걸린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에는 침구가 단정하게 펴 있고 방은 따뜻했다.

이미 평소 잠자는 시간보다 한참 늦은 시간이기에 금방 잘들 수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마지막 둘레길 걷는 아쉬움이랄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잘려다가 혹시 이 밤에 지리산 골짜기 밤 하늘에 아름답게 빛나고 있을 별을

못 보는 것이 아닐까 하여 다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니 구름만 가득했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던가? 4시인가? 아니 내가 잠을 잤던가?

 

오늘 걸어야 할 길은 방광에서 산동 구간. 둘레길의 19번째 코스이며 내일 걸어야 할

산동에서 주천구간까지 걸으면 내게는 지리산 둘레길을 온전히 한 바퀴 돈 셈이다.

 

아침을 간단히 커피와 가지고 온 빵으로 해결하고 숙소를 나서니 8시 5분전.

아무도 없는 마을의 골목에서 아는 척 하는 것은 낯선 이의 인기척을 거부하는

마을의 개들 뿐이다.

 

마을 입구의 커다란 느티나무도 잎으로 충분히 그늘을 만들어 줄 만큼 무성했고

집집마다 돌담벽이나 다른 벽들에도 넝쿨이 휘감고 있고 문이 열려 있는 마당에는

철쭉같은 봄꽃들이 가득 펴있었다.

 

마을을 지나가니 큰 거리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는 할머니 3분이 의자에 앉아 

이른 아침에 원색의 등산복을 입은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계시기에 가볍게 인사하고

길 옆에 보니 커다란 간판에 참새미마을이라는 민박집 안내 표시가 있다.

이 곳은 도로 옆 골짜기에 커다란 쉼터를 마련해 놓고

거의 기업형태로 영업하는 민박집인 것 같다.

 

대개 지리산 둘레길 안내센터에서는 이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박집은

추천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방광마을에서 묵고 싶다 했을 때 소개해 주는 것은

이장님 연락처 였다. 물론 나도 안내센터의 그 원칙을 존중한다.

적어도 지리산 둘레길에서는 영리목적보다 시골의 마을 집에 묵으며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

 

참새미 쉼터 옆으로 난 작은 오솔길로 올라가니 이제야 제대로 둘레길을 걷는 기분이 난다.

수목 양묘장옆으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보랏빛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요즘은 농촌에서도 참새를 쫒기 위해 이전같이 팔벌리고 움직이지 않는 허수아비보다는

바람에 따라 이러 저리 움직이며 빛은 내는 셀로판용지를 쓰고 새들이 무서워하는 솔개나

독수리모양을 그려 넣었다. 농부들도 이젠 머리를 쓴다.

 

마을을 벗어나 숲길로 들어서니 처음부터 부드러운 흙이 덮힌 가파른 언덕길이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가장 큰 이유. 힘들지만 가장 자연에 가깝고 야성에 가까운 길이기에

편하게 걷는 제주도 올레길보다 더 걷는 의미가 있다.

 

작은 시내가 흐르는 오솔길은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정도의 좁고 귀여운 길이다.

이런 길은 나이 들어 머리 허옇게 된 후 머리 같이 늙어가는 아내와 아침 산책차 걸어보고

싶은 길이다.

 

멀리 산이 보인다. 그런데 산 중턱이 뿌연 안개가 끼어 있어 오늘 날씨가 덥겠다 생각했는데

그게 안개가 아닌 줄 나중에야 알았다.

 

천천히 산길을 오르니 비 오면 건너기 힘든 작은 계곡에는 통나무 몇 개를 해 놓아 다리를 해

놓았다. 인공적으로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다리보다 이런 다리를 건너는 느낌이 훨씬 좋다.

간간이 시야기 트이는 공간에서는 켜켜히 쌓여 있는 산들을 보며 내가 지리산 깊숙한 곳에

들어 와 있음을 실감한다.

 

어느 정도 산을 올라 갔던지 땀이 흐른다. 다 올라왔다 싶은 언덕 위에서

아침에 추울까봐 껴 입고 왔던 내의를 벗어 버리고 맨 살을 드러낸 상체로 언덕에 서니

시원한 바람에 가슴과 등에 솟은 땀이 금방 들어가 버렸다.

조끼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과일 하나를 까 먹고 있는데 

갑자기 일렬로 늘어선 중학생 정도의 남녀 학생들이 인사도 없이 내 옆을 지나간다.

이건 웬 일.  이제까지 이 곳 둘레길을 여러 번 걸었어도 이런 행군을 본 적이 없다.

 

급히 그 들과 같이 걷기 위해 배낭을 정리하고 따라가니 맨 뒤에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이 카메라를 들고 따라가고 말해주기를

대안학교 학생들인데 둘레길 완주를 위해 11일째 걷고 있는 중이란다.

 

아이들은 중간에 전망이 좋은 곳에 의자가 있어도 쉬지 않고

걷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내가 따라가기 힘들 정도이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이렇게 정신없이 걷게 만들었을까? 

젊은 시절에 이런 중학생 아이들과 설악산 등반을 하다가

아이들의 놀란만한 산행을 따라가느라 혼난 적이 있긴 했다.

몸무게가 가벼우면 산행도 쉬운 법이다.

부모님이 할 수 있다면 아이들과 가능한 산행을 즐겨야 한다.

 

맨 앞에 여자 선생님이 리드하고 학생들은 일렬로 앞 사람의 뒤꿈치만 보고

정확한 간격으로 따라가는 아이들은

신발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상복차림이다.

이렇게 빨리 걸으면 땀이 많이 나서 고급 등산복을 입지 않으면 불편할텐데

땀을 흘리는 애들도 거의 없다.

 

애들을 따라 가다가 화장실이 있는 곳에서 아이들이 잠시 쉬고 있기에

어디가 제일 힘드냐고 물었더니 갸웃거리기에 내가 제일 힘들었던 웅석봉을 언급했더니

키 큰 여자 아이가 반사적으로 내게 답을 한다.

"거기 짱이예요" 

"짱? 아저씨는 거기 올라가느라 거의 초주검되었는데 짱이라니?

"힘드니까 짱이죠"

아! 아이들은 그런 것에서 더 희열을 느끼는 구나.

애들을 옆에 두고 혼자 걷다가 보니 숲길이 끝나는 곳 쯤에 작은 정자와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있어 이 곳에서 애들이 쉬겠지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거침이 없다.

 

길 옆에 대전리 석불입상이 있기에 잠시 구경하는데 뒤 따라오는 아이들이 그냥 지나칠려 하기에

앞서가는 선생님에게 여기 불상을 보고 가시라고 하고 아이들에게 미륵불의

입상과 좌상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입상은 사람보다 약간 큰 크기 정도의 불상으로

목이 떨어진 것을 보수했고 좌상도 머리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줄지어 가는 아이들 옆으로 같이 걸으며 즐겁게 동심의 마음으로 돌아가며 행복하게 걷는데

길 옆에 잘 지은 주택에 한갤러리에서 여자분이 일부러 우리를 맞으며 그림 구경하고 가라기에

나는 갤러리로 들어가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시가 없었는지 그대로 갈 길을 가 버렸다.

 

갤러리에는 구례 지역의 예술인들이 합동 전시회를 열고 있고 작품의 종류도 서예, 풍경화, 정물화,

조각 등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실내에는 은은한 클래식이 흐르고 여자분은 내게 따뜻한 커피를

종이컵을 뜨거울까봐 겹으로 담아 건네 주고는 천천히 둘러 보라며 나가버렸다.

내겐 그림보다 깨끗한 정원이 보이는 갤러리 한 켠의 넓은 창에서 들어 오는

빛이 있는 작은 공간이 더 마음에 들었다.

 

갤러리에서 나와 아이들이 사라진 세멘트 길을 걷는데 꺽어지는 길 끝에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던 남자교사가

길 반대편에서 오면서 길을 잃었다며 머쓱하게 웃는다.

 

덕분에 내게 동행이 생겼다.

또 한 분 더 늦게 따라가는 머리가 센 나이가 있는 분은 전체 책임자 선생님인 것 같다.

아이들의 걸음을 따라가기 어렵다며 힘들어 한다.

그리고 다른 길에서 얼굴을 완전히 감싸고 허름한 옷을 입은 여자분이 천천히 걸어 온다.

학생들 일행은 아닌 것 같다. 갑자기 여기 저기서 동행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여자분은 인사만 받고는 말없이 아주 느리게 걷는다.

 

남자 교사는 내게 전방의 산에서 보이는 안개같은 것이 송홧가루라며 알려 준다.

그렇구나. 송홧가루였구나. 어쩐지 안개와는 다른 색깔이더라. 

주위에 소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소나무 숲에서 노란 가루가 구름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

어릴 때 어머니는 인절미를 콩가루 대신 노란 송홧가루를 묻혀 만드시곤 했다.

아직도 그 달콤함이 기억이 난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따라가느나  마음이 급한 것 같기에

나는 길가에 일부러 자리를 잡고 간식이나 먹고 가겠다며 떨어져

큰 돌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도로가 잘 다듬어진 전망이 좋은 이 길에는 잘 지어진 주택들이 한 눈에 봐도

도심 사람들의 주말 별장임을 알 수 있고, 별장의 정원에도 잘 다듬어져 있어

이제까지 걸으며 보아 온 시골 집들과 전혀 다른 나라에 온 듯 했다.

 

방광마을의 전 코스인 오미마을에서 산동으로 가는 경유지인

난동마을로 가는 길은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지난 달에 벚꽃이 가득한 4월에 섬진강을 끼고 난동까지 걷는 평탄한 길이고

또 하나는 이렇게 산길로 해서 방광을 지나 난동을 거쳐 가는 산길이다.

지리산 둘레길 개통 후 두 개의 코스 중 하나를 버릴까 말까 무척 고민하다가

그래도 두개 각각 하루 코스인데 버리기 아까와 두 코스를 모두 걷기로 결심했었다. 

 

길을 떠난 지 약 5Km 정도 된 지점에 난동 갈림길을 표시한 이정표가 있어

지난 달의 아름다웠던 길들이 아직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 한 참을 되새겨 보았다.

 

구례재로 오르는 끝없이 구불 구불한 언덕을 오른다.

시야가 닿는 모든 산에 울창한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차서 바람이 불때마다

송홧가루가 연기처럼 피어 올랐다가 금새 사라진다.

이제까지 산을 많이 다녀 보았지만 오늘처럼 멋진 광경은 처음이다.

 

구비 구비 이어지는 언덕을 오르며 가끔 지나가는 승용차들을 보니

재를 넘어 오는 도로 상태가 좋은 것 같다.

아스팔트가 끝이 나는 지점 쯤에 벌통이 가득히 널려 있는 숲 속에서

간간히 벌들이 몰려 다니는 것을 보며 조심스럽게 걷는다.

가끔 뒤돌아 보니 언덕 한 쪽의 작은 저수지가 맑은 하늘 빛과

잘 어울리는 초 여름의 풍경을 보여준다.

 

이런 멋진 길을 나 혼자 걷는 것이 내게 참 인생의 사치스런 시간이다.

유독 맑아 보이는 계곡물은 이 곳이 상수도원이라는 경고장이 붙어 있다.

멀리 산 사이로 펼쳐진 평원 위에 아스라하게 넓은 논밭과 마을이 보인다.   

지리산을 걷는 또 다른 느낌. 높은 곳에 올라 골짜기 골짜기의 마을을 볼 때마다

내 마음에 평화가 밀려 온다.

 

초록의 마을들 사이로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지고

룰루 랄라 혼자 노래 부르며 길을 걷다가  

이정표의 거리표시를 보니 거의 절반 정도 걸었다.

이 곳에 오기 위해 인터넷 검색 중 둘레길의 모든 이정표의 기록과 소요시간을

아주 자세히 적어 놓은 블로거가 있어 대략의 거리와 시간 계산에 좋은 도움이 되었다.

 

나도 내 여행 후기를 쓰는 목적이 나의 여행기록도 물론 있지만

혹시라도 보이는 모습을 글로 표현하는 내 글이

걷기를 계획하는 사람들 혹은 이 길을 걸어 본 사람들이 당시의 모습을 추억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늘 이렇게 기록을 해 두고 있다.

 

이 곳 구례재는 가까운 곳에 구례수목원이 있어 눈에 보이는 나무들이

다른 곳보다 더 아름답다. 멀리 보이는 능선에 몇 가지 색깔의 철쭉들이

계획적으로 조림되어 있어 옷을 맵시있게 잘입은 여인의 모습이 상상된다.

 

봄이면 지리산 바래봉에 유명한 철쭉제가 열리는데 산 하나가 완전히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든다.

오래 전 그 곳에 갔다가 그만 그날 비오고 산에 비안개가 잔뜩 끼어 결국 올라가다가

포기하고만 기억도 있다.

 

힘들게 땀을 흘리며 길을 올라가다가 가끔 쉬며 아래를 내려다 보면

내가 걸어 온 길이 마치 스프링처럼 구불 구불 휘어진 모습에 희열을 느껴

더 자극을 받아 다리에 힘을 내 본다.

그러나 한 구비 올라가면 정상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길이 

다시 이어지면 나를 실망시키고 지치게 만들지만 가파른 길이 아니라 무척 다행이다.

그 길을 가끔 승용차들이 휘익 지나가면 부러움 보다는 이 아름다운 길을

편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이 불쌍해 보인다.

그들은 고생을 하는 나보고 불쌍타 하겠지?  

 

도저히 끝이 안 보이던 정상이 눈 앞에 보이는 전망대를 보며 안도의 숨을 쉰다.

정상에 차를 가지고 온 사람들도 전망대 옆에서 쉬기에

사진좀 찍어 달라고 부탁할려 했는데 내가 올라가니 차에 올라 내려가 버려 아쉬웠다.

많이 올라왔는데 이 곳의 해발 높이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없다.

지리산 둘레길은 대부분이 이런 높은 재 하나는 넘어야 한다.

 

이제 편안하게 임도길을 따라 내려 간다. 조용한 숲길 터널.

가을에는 단풍의 고운 빛깔로 산을 가득 채울 단풍 나무들이

어두운 자주빛을 머금은 채 가을을 기다리는데 나무들이 많아 이 곳의

가을 풍경이 기대된다. 이런 멋진 길을 나 혼자 누리는 것이 아쉽다.

 

그렇게 탑동까지 끝없이 편한 임도로만 내려갈 줄 알았는데

이정표가 다시 숲길 계곡으로 안내한다.

이런 곳에는 혹시라도 지나치는 사람이 없도록 수없이 많은 산악회 이정표가 붙어 있다.

길을 걷다가 둘레길 이정표를 찾기 힘들면 이런 리본을 찾아도 되지만 가끔 그 리본이

지리산 등반을 하는 산꾼들이 만들어 놓은 정상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어 자세히 보아야 한다.

 

계곡물이 따라 내려가는 산길은 그야말로 다듬지 않은 야생의 길이다.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이 얼기 설기 땅에 뉘어 있고,

사람다니는 흔적이 있는 길 이외에는 그 어디에도 사람들이 머무른 흔적이 없다.

북한산 둘레길을 한 번 찾아갔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고 모든 공간에 사람냄새가

가득해서 실망한 적이 있다.

나무가 울창하여 하늘이 보이지 않으니 어머니의 모태같이 온화하고 편안함을 느낀다.

 

내 앞에 어떤 이가 장화를 신고 손에는 나물을 캔 듯 망태를 들고 계곡을 내려가고 있기에

인사를 드리고 먼저 앞으로 가는데커다란 공간이 펼쳐지며 세멘트 도로가 이어졌다.

 

눈 앞에 한옥으로 잘 지어진 건물 근처의 사방 갈림길 어디에도

둘레길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 내가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뒤 따라 오던 아저씨가 나무지팡이로 내게 앞으로 직진하라고 알려 준다.

후에 인터넷을 찾아 보니 이 건물이 산동문화 예술촌임을 알았다.

예술인들끼리 마을을 이루어 사는 것도 내가 바라는 희망 중의 하나이다.

나는 물론 전문예술인은 아니지만 그 들의 삶을 동경하고 있기에 할 수 만 있다면

그 들의 이웃이 되고 싶다.

 

다시 탑동마을로 가는 편한 길이 이어진다. 옹벽을 잘 만들어 놓은 큰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멀리 보이는 집들이 탑동마을인 것 같다. 

벌써 12시가 넘었고 배도 출출하다.

어쩌면 먼저 간 대안학교 학생들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겠다 생각하고

어쩌면 다시 만나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한참을 내려와 이끼가 가득 끼어 있는  돌담이 있는 마을의 큰 정자나무 밑에

앞서 간 학생들이 모여 있어 반가움에 다가가니 모두 도시락을 먹고 있다.

 

계속 걷는 아이들이 어떻게 도시락을 싸 왔을까?

인솔 교사에게 물어 보니 아침에 숙소에서 나올 때

각자의 도시락에 원하는 양만큼 밥과 반찬을 담아 온단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마을에 편의점이라도 있으면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고 싶다 했더니

아이들도 교사도 모두 괜찮다며 사양한다.

저녁에 숙소를 물으니 내가 오늘 예약한 펜션과 같다. 

펜션에서 자기는 싫은데 주천까지 가는 길에는 그 곳밖에 머물 곳이 없다 한다.

 

학생들을 뒤로 하고 큰 길로 나와 눈에 보이는 식당을 찾아 들어가니

혼자 먹는 손님은 안된다며 다른 집을 알려 준다.

인근 식당에서 주문한 김치찌게에는 반찬이 10가지가 넘는다.

역시 전라도 음식은 다른 지방과 사뭇 다르다.

찌게의 돼지고기도 큼지막하게 쎃어 놓아 보는 것만으로 좋다. 

역시 여행은 자연 외에 음식을 즐기는 재미도 있어야 한다.

 

탑동마을에는 큰 계곡이 있고 도로가 넓으니 인근에 음식점과 펜션도 많아 편하게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곳에 거처를 두고 트레킹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식사 후 큰 도로를 건너 다시 마을길로 들어섰는데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곳에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 거리며 찾아 보니 누군가 이정표 앞에 트럭을 세워 보이지 않았다.

한 사람의 무관심이 다른 사람의 큰 시련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데 멀리 보이는 산이 유난히 샛노란 송홧가루로 뒤덮혀 장관을

연출한다. 볼 때마다 과연 이때쯤 아니면 언제 이런 것을 볼 수 있을까 하고 감탄한다.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는 길가에 활을 쏘는 국궁장이 있고

계곡 옆에 어린이 놀이터였는지 그네가 있는데 사슬로 만든 그네끈에 녹이 슨 것을 보며

영화를 좋아하는 내 생각에는 마치 핵전쟁 후에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추측해 본다.

 

길 저 끝에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보기 좋은 사찰과 석탑이 있으나 

문은 열려 있으나 생소함이 느껴 들어갈까 하고 주저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마을길로 들어섰는데 나무 가지처럼 갈라지는 두 갈래길에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어느 길일까 추측해 보다가 이정표가 없는 것을 보니

아무 길로 가도 다시 모여지는 길일 것 같아 계곡을 따라가는 길을 택해 가는데 집들이 모두 낡았다.

 

그러다가 동네 끝의 경로당이 있는 곳에서 길이 막혀 버려 돌아갈까 하다가  

작은 샛길 코너에서 현대식 건물들이 보이고 이정표가 보여 따라가니

사람들이 몰려 있는 산동면사무소가 방광 산동 코스의 종착점이다.

구례재를 넘는 것 이외에는 어렵지 않게 한 코스를 마쳤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