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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한 춘천 여행

carmina 2014. 5. 11. 16:10

 

아들 춘천여행

 

아들과 함께 여행한다는 것.

정말 아빠에겐 고역의 하루였다.

아니 모든 아빠에게가 아니고 나에게만 적용된것이었지만...

학교가 개교기념일이라 평일날 오붓이 둘이 같이 여행을 떠나기로 며칠전부터 계획하고 오늘 회사 휴가도 냈다.

작은 녀석은 며칠전부터 몸이 아파 동행하지 못해 아침부터 온갖 심술을 다 부렸으나 선물 사준다는 말에 금방 꺽어졌고..

집을 나설때 부터 혼자 다짐했다.

절대 오늘은하지마라라는 말을 안하기로...

그리고 절대 교육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기로...

그러나 전철을 탈 때부터 입이 근질거려서 견딜수가 없었다. 자꾸 질서를 지키지 않으려는 아니 나처럼 하지 않으려는 녀석에게 하지 마라 라는 말을 안하기로 했으니까...

물론 애에게는 나의 그런 혼자의 다짐을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마라라는 말이 목구멍 까지 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몇 차레...

전철을 타고 청량리역에 내려 제 시간에 맞추어 왔다 생각했는데 어제 인터넷에서 조사한 기차 시간표가 차이가 있다. 아차 옛날 시간을 그대로 올려놨구나..

40분을 기다리는 동안 청량리 역 광장을 멋지게 날라다니는 비둘기 떼들이 아들의 눈에는 무척 신기한가 보다.

늘 학교와 집만을 오가며 그 세계 속에서만 살던 애가 빌딩 사이로 보이는 각종 상표들에 관심을 보인다. 맥도날드 롯데 삼성 등등...

상표와 특허의 중요성을 한참 설명해 주고 조금 일찍 무궁화호를 타니 한 무리의 아주머니 여행객들이 기차에서 수다에 바쁘다.

여자들은 다 저래 하는 아들을 아무말없이 쳐다보고 잠시 후..

기차는 편안히 떠나가며 성북역을 조금지나니 산야의 모습이 차창밖으로 펼쳐지며 아들은 금새 신기해 한다. 하긴 이런 기차 여행을 한국에선 처음 해보는 것일테니...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둘이 앉는 의자며 뒤로 젖혀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계속 재잘댄다.

최근 세계의 핫 이슈인 복제인간부터 대통령 문제, 환경문제까지..

학교생활 친구들 얘기 애들끼리 하던 얘기들을 계속 내 앞에  조잘거린다. 누구는 폭탄주를 먹었다는 둥... 이상한 볼펜을 가졌다는둥.. 여태 애가 학교다니면서 이런 얘기들을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

난 계속 듣기만하고 애는 들어주는 상대가 있어서인지 쉴새없이 말을 꺼내고 계속 주제가 바뀐다.

1시간 반 동안의 기차 여행 속에서 정말 아이는 말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것들을 아빠에게 쏟아 놓는다.

한잔의 캔맥주를 마시며 아들에게 아빠 술먹는거 싫지 않지 했더니 응 괜찮아 아빠는 한 번도 취하지 않았잖아. 내심 아빠를 그렇게 이해해 주니 고맙다며 감사하고..

기차에서 내리니 바로 앞에 소양댐 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서있다. 기차에서 같이 탔던 거의 대부분의 손님이 그 버스를 채웠고 차는 한산한 춘천 시내를 빠져 나가 소양댐으로 올라가는 가파는 길을 꾸불꾸불 올라가고 시야에 소양댐이 크게 보이나 애는 그게 큰것인지 작은 것인지 구분을 못한다. 하긴 여태 비교할 상대가 없었으니..

그러나 버스에서 내려 소양댐의 위에서 소양호를 바라다 보았을 때는 아이도 감탄한다. 정말 넓다고..

그래 넓은 건 비교할 것이 있었겠지. 학교 운동장보다 넓었으니..

엄마와 함께 십 년전에 이곳에 왔었다는 것을 얘기하고 ...

엄마에게 전화한 후 아이는 계속 흥겹다. 잘 포장된 길을 마치 춤을 추듯이 걸어 다닌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지 길가의 구멍가게에 있는 멸치같은 빙어어항을 한참을 쳐다보고 있다.

배도 타보는게 좋을 것 같아 선착장으로 나갔다.

한산한 선실내에는 젊은 연인들이 대부분이다. 배가 떠난 후 금방 눈살찌푸러 지는 건 선장이 틀어주는 캬바레음악 . 왜 이런걸 혼자 듣지 손님들의 대 부분이 그런 음악을 즐기는 층이 아님을 알면서도 혼자의 흥을 위해 그걸 방송으로 틀어 놓는 것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되는지...

갑판위에서 자꾸 여기 저기 망아지 처럼 돌아다니는 아이가 위험해 보이긴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도 위험한 것을 알고 배도 충분히 안전시설이 되어 있으니.. 스스로 알아서 하리라.

시원한 바람을 맞고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배가 달린다. 아이는 아직도 이호수를 바다로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설명하는데 한참을 걸렸다.아주 넓게 소양호를 돌고 배는 청평사로 가는 선착장에 잠시 기착, 일행을 내려 놓는다.

돌아가는 시간표를 확인하고 우리도 내려 흙길을 걷는다. 도심지를 떠나 이렇게 먼곳까지 와서도 이제야 흙을 밟는다.

아이는 신이 났다. 뛰어가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재미로 쌓아놓은 돌탑이 아이의 눈에는 무척 신기하기만 하다.

낙석주의라는 말을 낙서주의로 잘 못 읽고는 왜 이런곳에 낙서를 주의시키나 하는지 이상했다면서 혼자 깔깔 웃는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이 아이의 입을 자꾸 벌어지게 한다. 매일 학교에서 운동장 두바퀴를 돈다며 시골길을 열심히 뛰어가는 모습이 흙이 사람을 그렇게 즐겁게 하나보다.

청평사를 가기에는 아직도 멀어 갈림길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다.

'너는 비빔밥 먹어라 아빠는 코리안 스파케티 먹을란다'

하니 애가 솔깃해한다. 여기도 스파게티 있냐고.. 메뉴판을 보여주며 여기 막국수 있잖아 이게 코리안 스파케티야. 하니 애가 깔깔 웃는다.

배가 고팠는지 비빔밥하나를 뚝딱 해치우고 나는 매운 막국수를 먹고 난뒤 입술이 얼얼하다.

식사후 더 올라 갈까 하다가 너무 늦어질것 같아 그냥 되돌아가기로 한다.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은 시냇가로 난 길을 택하기로 하고 아이는 시냇물을 깡총거리며 길을 걷는다.

아이에게 용기도 시험해 볼겸

다움아 저기 시냇물위를 걸을때 한발 빠지기 전에 다른 발을 얼른 밟고

또 그다음 발 빠지기전에 다른 발을 밟으면 안빠지겠다하고 말했더니

애는 금방그래? 그럼 해 봐야지하더니 시냇물을 풍덩거리며 빠져 들어갔다.

물론 두 발이 몽땅 물에 빠지고 신발과 양말이 모두 흥건히 젖었는데도 아이는 재미있기만 하다.

배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모퉁이를 돌아 선착장에 닿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신이  나는지 힘들다 하면서도 오히려 먼 길을 택해 걷는다. 이제 어디로 가느냐는 아이의 질문이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섭한가 보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다가 고속터미날앞에서 불현듯 공지천이 가고 싶어졌다.

얼른 차에서 내려 터미날 옆의 공지천을 찾으니 낚시꾼들이 낚시에 여념이 없다. 애는 한참을 보더니 낚싯대를 빌려주는 곳이 없느냐고..

우리도 낚시하고 가자 한다.

시간이 없다하고 말하니 금방 체념한다. 강가에선 여기저기 낚시꾼들이  고기를 낚아 올린다.

손 바닥보다 더 큰 붕어들이 퍼드득 거리며 끌려 오다가 강태공의  손에서는 얌전하기만 하다. 애는 쪼그리고 앉아서 그 광경들을 보느라 자못 진지하다.

낚시를 하고 싶다는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버스를 타고 남춘천역에  내려 시간표를 보니 한 50분뒤에 비둘기 호가 있다.

1,000원짜리 몇장을 들고 얼마예요 했더니 1,600원이라 한다.

아니 어린이 한 명 어른 한 명이라니까요. 맞아요 1,600. 거참 이상하다.

아직 나도 비둘기호를 안 타보았는데 통일호보다 한 등급아래인지 위인지 모르다가 표를 사보고는 가장 낮은 등급인 것을 알았다.

표는 한 30년전의 경인선 추억이 되살리게 하는 두껍고 조그만 기차표이고  좌석지정도 물론 없다. 오래전 협궤 수인선 기차를 타던 생각이 난다.

기차시간이 아직 멀었으므로 춘천오면 꼭 해야 하는걸 빼먹었으니 지금 해야지. 먼곳까지 다시 나가는 것은 안될것 같아 역 바로 앞의 허름한 식당에서 닭갈비를 주문한다. 무척이나 매웁게 했는데도 아이는 맛있다고 먹는다. 아빠와 함께 이런곳에 오니 평소 안 먹던것도 맛이 있나보다.

역앞 슈퍼에서 과자와 계란 구운 것을 사 들고 열차를 기다리는데 애가 철길에 자꾸 내려선다. 늘 전철의 높은 승강장만 보다가 바로 발 앞에 있는 철길도 신기한지 계속 철길에서 놀고 철로 위를 걸어가는 모습이 아무래도 주의를 주어야 할 것 같아 처음으로 하지 마라 고 했다. 그건 위험한 것이라고...

그러나 속으로 나도 어릴 적 철로 위를 많이 다녔는데..하고 생각하면서 이것마저 지적하지 말걸 했다. 어릴 적 그 철길 위을 돌아다니고 그 위에 큰 못을 하나 두어 기차가 지나 간 후 납작해진 못 대가리로 날카로운 칼을 만들던 기억이..

기차는 마치 피난열차같이 허름하기만 하다. 전철같이 마주 보며 앉는다.

사람들이 기차 문을 열고 타는 모습도 아이에겐 무척 신기하다.

얼른 자리를 잡으니 옆에 흑인 둘이 손을 꼭 잡고 정다운 얘기에 여념이 없다. 아이는 배가 고팠는지 과자며 계란 등을 맛있다고 까먹느라 정신이 없고 기차는 모든 역에 정차하면서 조금 시간이 지체된다.

이렇게 많은 역들이 있었나?

그러나 이런 때가 아니면 이런 열차도 타 볼 기회가 없으리라 하고 맘을  편히 먹는다. 어차피 오늘 아무 일도 없으니 나도 맘껏 완행열차의 여유를 즐기리라.

어느 호기 좋은 사람이 젊은 대머리흑인에게 말을 건다. 자기도 대머리라며 서로 상대방의 대머리를 만지며 깔깔 거린다. 난 두 사람을 통역해 주느라 얘기에 끼어들고 나누어 주는 오징어를 흑인과 함께 질겅거리며 3류기차 여행을 즐긴다. 모든 사람들이 정겹게 보이는 것은 서로 마주 앉아서일까?

성북에 내리니 이미 8 20분 어둠이 도시에 가득 차있다.

다시 회색도시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철은 지하의 어둠속으로 들어가고 우린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힘든 일이었지만 이만하면 오늘 목적을 달성한 것이리라.

거의 아들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알아서 하게 하고 그렇게 '하지마라' 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하루를 지내는 데에 전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리고 아들은 오늘 종일 흥겨웠다.

평소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그냥 공부하다가 시무룩하게 잠자리에 들던 아이가 오늘은 아빠에게 뽀뽀까지 하며 안녕히 주무세요 한다.

그래 이제 아빠도 가급적 널 구속하지 않을란다.

오늘은 애보다 아빠에게 더 교훈적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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