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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한 춘천여행

carmina 2014. 5. 11. 16:11

딸과 함께 한 춘천여행

 

어느 때부터 인가 딸에게서 사랑을 뺏겨 버렸다고 생각했다.  아빠를 징그러운 남자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고 애교나 귀여움은 오로지 엄마를 위한 것이 되어 버렸고,  아빠는 늘 불편한 존재, 그리고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고만 생각하는 딸이 점점 싫어지기만 했다.  딸이 아빠의 팔장을 끼워 본지도 어느 때였는지 기억이 까마득하고

어떻게 하면 만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늘 있다가 주위사람 들로부터 요즘 초등학교에서 봄 가을에 교장의 재량으로 2 ~ 3일간의 단타 방학을 한다는 얘기가 있어 어느 날 아침에 딸에게도 슬쩍 물어 보았다.  혹시 징검다리 휴일에 쉬는 날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생각난 듯이 4월 초파일의 하루 전 월요일, 일일 방학을 갖는다며 통신문을 보여 준다.

아빠랑 같이 여행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금방 좋아라 한다.  그러더니 그 날 저녁에는 나에게 무척 애교를 부리면서 혹시 아래 층 친구도 같이 가면 안되냐고 부탁하기에 아무래도 그렇게라도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러마라고 승낙은 했지만 막판에 그 아이가 못간다 하기에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회사에 하루 휴가를 미리 알려 놓고, 컴퓨터로 춘천가는 표를 예약해 놓았다.  이제 중 3짜리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개교기념일 날 휴가를 내고 둘이만 같이 가 보았던 같은 코스를 택하기로 하고 딸에게도 같은 원칙을 세우기로 했다.  즉 종일하지마라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물론 사전에 딸에게 그런 얘기는 해 놓지 않았다.

아이는 아래 층 아주머니에게서 들었다며 춘천에 명물인 닭갈비에 대해 벌써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하긴 아들도 춘천 한 번 다녀 온 뒤로 닭갈비 애호가가 되어 있으니

3일전에 예약했는데도 벌써 9시와 10시대의 춘천행 열차는 좌석이 없어 조금 이르긴 하지만 8 35분 차를 예약하느라 조금 일찍 집에 나왔다.  아이는 집을 나오며 전철까지 가는 택시를 타자마자 벌써 만화책을 꺼내 읽는다.  처음부터 말리고 싶었으나 그냥 두었다.  그 나이에 만화를 안보면 언제 보겠느냐는 생각과 한 번 다 읽으면 다시 꺼내 보지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길을 가면서도 만화책을 보는 아이를 그냥 두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아이에게 6000원을 주었다. 전철 표도 일부러 네가 가서 목적지를 이야기하고 사가지고 오라고 시켰다.  무엇을 사 먹고 싶다 하기에 네가 알아서 사먹으라고 시켰다. 그 대신 돈은 더 안주겠다고 사전에 다짐 받아 놓았다.

전철 안에서도 아이의 만화책은 끝나지 않고 청량리에 가서야 겨우 끝났다.  오랜만에 청량리에 와서 그런지 역의 건물도 새로 바뀌었다.  역사에는 벌써 많은 아이들이 주로 엄마의 손을 잡고 재잘거리느라고 주위가 시끄럽기만 하다.  아마 많은 초등학교에서 오늘 일일 방학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가족 단위보다는 주로 동네 엄마들끼리 같은 또래의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나와, 엄마는 엄마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겸사 겸사 여행을 즐기는 것 같다.  

춘천가는 길은 강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열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옆의 아이는 이제 만화책에 눈을 돌리지 않지만,  아직도 아파트 촌을 지나는 기차의 창밖 모습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기차 길 가에 허름한 집들을 보며 저런 집에서도 사람이 사느냐며 의아해 한다.  

이렇게 우리 아이가 바뀌었을까?  하긴 하루의 생활이 늘 아파트에서 시작하여 아파트로 끝나고 어디 친척집을 가도 모두 아파트고 또한 아빠 친구들 모임도 그런 곳에서만 만나니 어릴 때 비록 작은 곳에서 살았어도 그런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이대로 아이가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그런 또래 아이들이 모여 어울리는 대학교를 간다면 아이의 사고방식은 어떻게 바뀔까? 이런 애들이 다른 환경속에서 자란 아이들의 심정 그리고 그 들이 겪는 고통을 알까 ?  

자기보고 무엇을 보라고 하는지 이해 못하겠다며 나는 무엇을 보느냐고 묻는다.  아빠는 여행 다니면서 눈으로 자연을 본다 했다.  아이가 재미있는지 그럼 코는?  하고 묻는다.  코는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했다.  입은?  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맛본다 했다.  귀는 여러 나라 여러 지방의 말을 듣는다 했다.  다리는 이곳 저곳을 다니기 위해

아파트 촌이 지나고 육군사관학교 있는 곳에 와서야 제대로 자연이 보이는지 아이가 그제서야 파란 잔디에 눈이 간다.  지난 번 미국여행다니면서 골프장을 많이 봐서인지 아이는 금새 그 잔디가 골프장의 모습인 것을 안다.  

아이는 아직까지 창가의 정겨운 시골풍의 마을이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 같다.  하긴 늘 만화에서 보아 오던 것들이라 그런 것들이 생소하지만은 않을테지. 자기가 조금이라도 귀찮은 것은 하지 않으려는 아이라 창 밖에 전혀 새로운 풍경이 펼치는 데도 아이는 햇빛이 싫다고 커튼을 쳐 버리고는 언제 도착하는 지 시간만 재고 있다.

아이의 머리 속에는 닭갈비만 있는지 10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시장기가 돈다고 밥부터 먹잔다춘천에 오면 점심 사줄 사줄 사람이 며칠 전만 해도 장기 근무를 했는데 그 며칠을 기다리지 못해 지난 주 수원으로 가버렸다.

춘천역에서 택시로 명동닭갈비집을 찾아 갔다.  이 곳은 내가 대학시절 온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전혀 어디가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다가 닭갈비집들이 모여 있다는 골목으로 올라가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 당시만해도 하나 밖에 없던 것 같은데 골목에 들어서니 저마다 원조를 자랑하며 자기네 가게로 돌아 오라고 손짓이다.

인상이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있는 어느 한 집을 들어가 2인분을 시키니 넓은 푸라이팬에 야채와 함께 양념으로 잘 묻힌 뼈 없는 닭갈비, 떡 볶이 그리고 고구마가 얼마나 많이 담겨 있는지 다 먹을지부터 걱정이 앞선다.  아이가 닭고기를 좋아하니 먹을 수 있겠지 했는데 아이는 늘 고기를 밥과 같이 먹던 습관이 있어서 밥 한 그릇을 주문했는데 밥 공기에 가득 담긴 밥 한 그릇을 아이는 닭갈비 몇 점 안대고 밥만 거의 남김없이 혼자 먹어 버렸다.

그제서야 1인분만 시킬 걸 하는 후회가 있지만 남는 것을 싸가지도 못할 것 아까운 야채와 고구마를 조금 남기고 내가 고기를 모두 먹어 버렸다.  고기도 맛있고 야채 또한 맛있어 먹성 좋은 사람들과 같이 먹으면 서로 먹을려고 전쟁을 벌일 것만 같았다.

명동에서 버스를 타고 소양댐으로 가는데 앞에 앉아 있는 남자 셋 중 한 명의 말투가 얼마나 이상한지 한 참을 귀를 쫑긋 세워 들었다.  술이 조금 취한 것 같은 사복 군인인데 옆 자리의 상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완전히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경어체로 된 국어 책을 읽는 듯하다. 문어체와 구어체가 그렇게 틀릴까?  

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며 외국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서투른 영어로 마치 교과서처럼 이야기하는 우리들의 말을 듣는 외국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들을까?

점심을 금방 먹고 와서인지 내 이빨에 고추가루가 끼었다고 아이가 전철표로 모서리로 고추가루를빼 주면서내가 이런 일까지 하네하며 혼자 깔깔 웃는다.

야외의 신선한 바람이 창문을 열고 들어와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고 버스는 금방 소양댐에 닿는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시원한 공기가 가득 들어와 아이는 코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좋아하는 표정이 한 폭의 좋은 사진 같다.  소양댐 위의 인공폭포에 시원한 물줄기의 낙차와 그 위에 매달은 고기 모형들이 우리 뿐만 아니라 단체로 놀러 와 이제 막 도착한 젊은이들까지 환호하게 만든다.

넓은 소양호를 바라보라고 아이에게 권했지만 아이는 그것보다 화장실이 급하다며 저 넓은 곳을 보라는 내 말을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화장실을 가잔다.  

아빠로서 비록 인공으로 만든 것이지만 거대한 자연을 딸이 보고 감동을 얻기를 바랬지만 감동이라는 것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기에 일부러 아이에게 다그치지 않고 화장실부터 찾아 주었다.

아이는 화장실에서 나오자 마자 눈 앞에 보이는 배부터 타자며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이는 배가 너무 타고 싶었나 보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막 떠나려는 청평사 행 배를 타고 파란 호수를 물살을 가로질러 가는 배의 선미에 앉은 아이는 무척이나 즐겁다. 물살이 얼굴로 튀기고 배 안에는 직장에서 단체 여행 나온 듯한 젊은이들이 더욱 떠들썩하다.  그 안에서 등산화를 신은 수녀님들이 조용히 김밥도시락을 먹고 있다.  아마 수녀님들도 그렇게 젊은 아가씨들처럼 소리를 지르며 배를 타고 싶겠지.

15분 거리에 있는 선착장은 몇 년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다.  길가의 돌무더기들이 몇 년 전의 모습대로 그대로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모두 무너지고 새로 쌓아 올린 것인지 모르지만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재미 삼아 올려 놓은 조그만 돌탑들이 아직도 많다. 아이도 돌을 올려 놓고 싶다고 얼른 뛰어 올라가 자그마한 돌덩이 몇 개 올려 놓고 온다.  사람들이 돌을 올리면서 소망을 비는 것을 아는 아이이기에 무엇인가를 빌었을텐데 무엇을 빌었을까?  일부러 물어 보지 않았다.  아이의 꿈은 스스로 키워 가게 놔두고 싶어서..

길 가에 다 쓰러져가는 매점 하나는 그대로 있으나, 돌무더기길에 예전에는 없던 콘크리트 길이 나 있기에 웬일일까 하고 의아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입구에서 돈을 받는다.  문화재를 보면 2000원 안 보면 1000원이라 하기에 절에 무슨 문화재가 있겠느냐는 생각에 아이랑 같이 그냥 절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지나치기만 할려고 1000원짜리를 끊었다.

입구의 커다란 안내도에 대략의 등산코스가 그려져 있고 산 너머 다른 쪽에서 찻길을 따라 승용차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 오던 길로 되돌아 가고 있다.  청평사는 해발 약 700 미터 높이의 오봉산 자락에 있어 그리 높지는 않으나 아이가 힘들어 할까봐 구성폭포까지 가는 것으로 하되 그것도 힘들면 어느 정도 걸어 가다가 되돌아 와야 겠다는 대충의 계획을 짜고 올라가는데 길 옆의 허름하고 보기 흉한 음식점들이 여전히 어디나 같은 메뉴로 호객하고 있으나 시원한 바람에 그런 것들을 묻혀 버렸다.  

몇 달 동안 가뭄이 들어 계곡에는 물이 거의 없어 메마르고 먼지가 푸석하다.  이런 산길은 혼자 흥얼 흥얼 거리며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고 싶으나 아이는 내 입에서 노래가 나오기가 무섭게 나를 제지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끄럽다고…   아이는 아빠의 그런 모습이 무척 싫은가 보다.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아빠가 노래를 좋아하여 흥얼거리는 모습을 아빠가 다른 사람들에게 노래를 자랑하고싶어 부르는 줄로 알고 있는지 같이 다닐 때 내가 노래부르는 것을 질색을 한다.

언젠가 미국 여행 다닐 때 왜 아빠가 노래하는 것이 싫으냐고 물었더니 답변은그냥…’이라고 얼버무린다.  무척이나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자라 온 아이이기에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아이를 이렇게 키우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지나치는 내 잘못도 크지.

길을 따라 올라 가다가 파란 나뭇잎들이 가득한 곳에 노랗게 말라 버린 대나무가 눈길을 끈다.  다른 나무들이 모두 자기 빛을 잃었을 때 혼자 눈 속에서 독야청청하던 대나무의 파란 앞들이 왜 이리 노랗게 변했을까?  나무가 죽은 것 같지는 않은데 아마 내가 대나무의 생리를 잘 모르니 신기할 뿐이다.

       

나무 벤치를 몇 개 지나고 포장 마차를 몇 개 지나며 올라 가다가 보니 또 다른 매표소가 가로 막는다.  문화재를 보기 위해선 1000원 더 내란다.  난 문화재 볼려고 오는 것이 아니니 그냥 올라 갔다가 내려 오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이다.

1000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런 얄팍한 문화관광비 정책에 화가 나서 그냥 내려 와 버리고 말았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럴 수가 있느냐며 아이에게 동의를 구했더니 아이가 대뜸 하는 말이아빠 우리 이민가자아빠가 이민가고 싶은 마음을 알았는지 아이의 눈에도 이런 것이 잘 못된 것인줄 알고 이런 꼴 보느니 차라리 이민 가는 편이 낫다고 먼저 말을 한다.  

도무지 내려 오다가 화가 안 풀려 길 옆의 넓은 나무벤치에 누워 아이보고 잠깐 쉬자고 하니 창피하다며 내려 가잔다.  무엇이 창피하냐고 했더니 길거리의 벤치에 누워 있으면 거지같단다.  그래도 난 자고 싶다고 누워 버리니 아이는 자기 혼자 내려 간다고 내려가 버렸다. 아직은 봄이라 낮은 산에 여리디 여린 푸르름이 보기 좋아 한참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었는지 아이가 다시 올라 와서 나를 깨운다.  

산을 내려 오다가 아까 처음 표를 산 입구에서 3명이나 몰려 있는 매표원들에게 아이가 보는 앞에서 강력히 항의했다. 1000원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따졌더니 이 곳에 발을 닿으면 1000원을 내야 한단다.  자기들이 나루터에서 이 곳 까지 아스팔트도 깔고 청소도 하니까 1000원을 받아야 한단다. 그럼 왜 등산도 못하게 하느냐고 했더니 등산길은 따로 있다며 내가 올라 갔던 길은 문화재가 있는 구역이라 문화재를 보지 않아도 그냥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1000원을 더 내야 한단다.  어이가 없어서 그냥 내려오고 말았다.

멀리 배 한 대가 손님들을 다 내려 놓고 육지로 돌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태우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기다리기에 서둘러 배를 타고 소양댐의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소양댐의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아이랑 호수에 돌던지기를 했으나 아이는 아직도 힘이 부족한 듯 호수까지 돌을 던지지 못했다.  아직은 그렇게 어린 아이구나.  

아이는 광대 분장을 한 아저씨에게 엿을 사들고 신이 나서 먹는다. 담수호의 돌 뒤에서 어느 어머니가 아이에게 무언가 잔뜩 주의를 주고 있다.  늘 애들과 밖에 나오면 나도 늘 저런 모습이었는데 적어도 오늘 만큼은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리라 하지만 아무 것도 용서해 줄 것이 없다. 스스로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나이이니까

주차장의 넓은 공간에서 아이에게 댐의 역할을 가르쳐 주려 했더니 아이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아빠의 말을 가로 막는다.  내가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려 해도 이미 아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줄 아는가 보다.  언젠가는 더 많은 것을 스스로 알게 되겠지.

공지천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내려 오는데 아이는 금새 피곤했는지 창가에 기대어 정신없이 자고 있다. 그렇게 피곤하게 걸은 적도 없는데 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든가 보다.  시외버스 터미날 앞에서 버스를 내려 공지천 옆의 유명한 이디오피아 카페를 들어 가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시켜 주었다.

창 밖으로 공지천 앞의 새로운 다리를 놓는 공사 현장을 보다가 아이의 눈이 둥그레지며 빨리 밖으로 나가자 한다.  호수 위로 떠있는 오리보트를 타고 싶어 한다.  노를 젓는 것이 아니고 발로 운전하는 것이라 쉬우리라고 생각하고 3인승 보트를 하나 빌렸다.

구명 보트를 입고 천천히 호수 가운데로 나가니 아이는 신이 났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의 들뜬 마음을 전하고 친구에게도 전화해 보지만 그만 자랑하고픈 친구가 서울을 가버렸단다.  

물살을 가르며 카누 연습을 하는 아가씨들이 날렵하게 카누를 저어 달리는 모습이 상쾌하다. 특히 2인승 카누의 노를 젓는 모습은 마치 싱크로나이즈 스위밍을 보는 것 같이 가히 발레에 가까울 정도로 아주 정확하게 노를 저어 쏜살같이 앞으로 나간다.  

그리 붐비지 않는 호수에서 맘껏 노를 저으며 적당히 따스한 날씨 속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낸다. 멀리 하늘에 헬리콥터가 가끔씩 지나가고 우리같이 가족단위로 나온 오리보트 그리고 젊은 연인 커플들이 드문 드문 옆으로 스쳐 지나간다.

카누를 젓는 아가씨들에게 웃어 보이고 옆의 오리 보트에서 즐거워 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손짓을 하자 우리 아이는 질겁을 한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는체 한다고내가 틀린 것인가아이가 틀린 것인가

호수를 빠져 나와 옆의 조각공원에서 아이는 실컷 모델처럼 이쁜 표정으로 내가 들고 있는 사진기의 렌즈를 들여다 보았다.  김유정의 문학비가 있고 가족의 사랑을 조각해 놓은 것들. 군데 군데 젊은 연인들이 조각들같이 봄 날의 따스함을 즐기고 있고,  중년부부들이 잔디밭에서 소주와 맥주를 기울이고 있다.

조각공원 앞의 공지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대를 보고 아이에게 저 것 멋있지? 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금새 실망한다.  이미 몇 달 전 미국의 라스베가스에서 환상적인 분수쇼를 본 적이 있어 저런 것 가지고는 좋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버스정류장으로 다시 와서 남춘천 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너무 버스가 안오기에 택시를 타고 기차 역으로 왔다. 아이는 다시 만화에 빠지기 시작한다.  만화는 보고 또 보아도 재미있나 보다.  하긴 네 아빠도 중 3 때까지 만화광이었단다.

편한 무궁화를 타고 돌아 오는 기차 안에서 아이 몰래 사 둔 과자를 꺼내 드니 좋아라 하며 우물거리다가 아이는 완전히 잠에 빠져 들었다.  아이가 평온하게 잠든 모습을 보고 어둔 밤을 달려 청량리역에 내리니 저녁이라 부모의 따스함이 그리웠는지 아이는 기차에서 내리자 마자 아빠의 팔장을 자연스럽게 낀다.  실로 몇 년만의 아이가 스스로 팔장을 끼는 것 같다.  

전철을 타고 계속 자고 싶다기에 노약자석에 빈자리가 있어 앉으라 했더니 그 곳은 자기가 앉을 곳이 아니라며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한다.  실제로 노약자석이라 양보를 했을까 아니면 TV의 광고물에 영향을 받아서일까? 아무래도 좋다. 적어도 내가 키우는 아이는 그런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저녁에 식탁에 둘러 앉아 아이에게 물어 본다.

다해야 오늘 즐거웠니?”
. 아주 좋았어요
.”
다음에 또 아빠랑 같이 갈래
?”
싫어,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

아빠의 딸을 데리고 같이 여행을 떠난 의도는 장래에 예술을 해야 할 아이이기에 넓은 자연을 보여 주며 작은 감동이라도 가지길 원했지만 아직은 놀기 좋아하고 힘든 것을 짜증내는 나이라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함이 아쉬웠다. 하지만 아마 아이의 가슴속에서는 커다란 소양댐의 맑은 물이, 파도를 가르는 포말들이 기억에 오래 남아 그것들이 감성으로 커지길 바랄 뿐이다.  또한 그러한 감성들이 아이가 이 다음에 바이올린 선율로 나타나길 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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