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국내여행기

광주 망월사

carmina 2014. 5. 11. 16:12

 

광주

 

또 객기가 발동되었다.

떠나고 싶은 마음은 늘 꿈틀거리고 있다가 때만 되면 그게 우선 아내에게 아양으로 나타난다.

: 여보 나 또 떠나고 싶은데...
아내 : 이 양반이 또 이러네
..
: 난 이렇게 살고 싶은거 잘 알잖아
..
아내 : 이번엔 안되
.
: 에이 자주 가는거 아니잖아
.
아내 : 이번엔 어디로 갈라고
..
: ... 역사의 현장
..
아내 : 어딘데
..
: 광주.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아내는 그래도 떠날꺼냐고 묻는다.

아래녁은 괜찮을 거라고 하고는 어차피 결행한거 비때문에 주저 앉을수는 없다.

주일 2시에 교회를 나와 집에 가족들 바래다 주니 아내는 낮잠을 즐기러 침대로 들어가 버리고 난 가방에 카메라, 읽을 책, 그리고 냉장고에서 캔 맥주와 오징어를 꺼내 대충 쑤셔 넣고 나 다녀올께... 뒷전으로 들리는 소리 전화해...

흐린 날에 새마을호 창밖도 역시 촉촉히 비가 내린다.

여행중 기차에서 말동무를 만나는 적은 극히 드물다. 오늘도 역시 없고...

그저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가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호남쪽은 자주 가는 편이 아니다. 업무상의 출장도 전혀 없고 단지 아내가 고향이 전북이라 전주까지만 다녀온 적이 있다. 광주라고 하면 내가 군복을 입었을때 전혀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고 2달여 정도 지낸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역사의 가장 큰 사건이 있었다.

그때 난 제대후 복학하여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기사들을 몰래 읽으며 그 곳의 참상을 미리 알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야 했다. 나는 운동권학생도 아니었고 그저 취업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대학 4년생이었으니...

그곳이 과연 어땠었나? 가보고 싶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가서 고인들의 명복을 빌어야 겠다. TV에서 가끔 보여주는 영상만으로는 만족할 수 가 없어서...

기차는 밤 늦게 송정리역에 정차하고 나의 기억은 1977년으로 되돌아 간다.

논산훈련소에서 막 신병 훈련을 마치고 후반기 교육을 광주의 상무대에서 받기위해 밤에 충청도 강경역에서 야행 열차를 타고 아침에 송정리 역에 내리니 전혀 다른세상이 보였다. 논산훈련소에서 보낸 2달간의 생활은 마치 20년을 지낸 듯했다.

우리는 푸른 옷에 따블백을 들고 열차에서 내려 인솔상관이 마치 큰 은전이라도 베풀듯이 호송차가 오기 전에 역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사먹으라는 명령에 박박머리의 이등병들은 우루루 역구내 식당으로 몰려가 설렁탕을 시켜 먹는데 오랫만에 먹는 사제밥이 얼마나 꿀맛인지 특히 깍두기가 너무 일품이라 아직도 그 때의 맛이 눈에 선하다. 그땐 어느 음식이건 사제음식이면 맛있었겠지만...

기차안에서 일부러 굶었다..

송정리역에서 저녁을 먹고 싶어서..

역앞에 이제 막 장사를 끝내려고 하는 식당에 들어가 정식을 시켜 혼자 밥을 먹는데 상 하나에 반찬이 가득하다. 거의 산채나물인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입에서 침이 나올 정도로 신맛이 도는 충분히 익은 음식들이다.

특히 파김치가 너무 맛있어 이거 다 먹으면 내가 오늘 물 많이 먹고 밤에 화장실 가느라 고생하지 하면서도 그 맛에 그만 폭 빠져 버렸다.

배 불리 먹고 계산하니 내가 먹은 것에 비해 돈 내기가 미안할 정도로 저렴한 가격,

3000. 이래도 장사되나? 그러나 아줌마가 나에게만 적게 받지는 않겠지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버스를 타고 금남로를 찾아 갔다. 어둑한 길. 아무도 없는 곳에 버스를 내리니 부슬부슬한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길가에 이정표를 보니 이곳이 금남로이다. 그리고 저 앞에 전남도청이 보인다. 이곳인가. 무수한 총탄이 오가던 곳이?

폭도진압이라는 명분을 내 세운 명령에 충실히 복종하는 군인들에 의해 안경낀 학생들이 짓밟히고, 곤봉으로 머리를 구타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시민들이 총을 들고 사수하던 곳.

그 때의 상흔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더구나 밤이니...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기에는 내가 그 역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앉아 있었었다.

도청 앞도 몇 대의 버스와 승용차만이 가끔 돌아 갈뿐 너무 인적이 뜸하다. 상가도 거의 철시하여 차 한잔 마시기도 어려웠고 잘 곳을 찾아야 겠다.

도심지여관에서 그냥 하룻밤을 묵고 아침에 길가로 나오니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다.

망월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니 무척 뜸하다. 택시를 타고 가기로 하고 택시기사와 흥정하니 나보고 이상하단다. 이렇게 비오는 날 무엇 때문에 그런 곳에 가는지...

역사를 보고 싶다고 우물거리니 아무 말 없이 데려다 준다. 합승객도 역시 없었고...

망월사.

내가 그 곳에 와있다.

일반 공동묘지와 전혀 다를 바 없지만 입구의 낮은 곳에 특이한 봉분들이 몇 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사진이 묘지 앞에 놓여 있고 어느 묘지 앞에는 투명 프라스틱 통 안에 수 없이 많은 종이 학들이 가득 들어 있다. 어떤 뜻들을 담고 있을까?

어린 여학생들의 사진들. 교사,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홀로 우산을 들고 숙연해지며 기도를 아니 할 수 없었다. 역사의 희생자들. 구르는 수레바퀴에 치인 자들.옆에서 쓰러지는 친구들, 제자들과 동네 젊은이들, 그리고 자식들의 피흘림에 나서지 않고서는 안되었던 사람들.

미처 시신을 찾지 못한 실종자들의 사진들이 비에 젖지 않도록 해 둔 게시판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흐리고 있다.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이곳 망월사 공동묘지에 무척이나 운 나쁜 초상을 치루는 차 한 두 대만이 간혹 공동묘지 저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이고 ...

묘지하나하나에 쓰여 있는 글들을 모두 읽어보았다. 이를 글로서 적어놓지 않음은 역사는 그렇게 글 하나하나로 평가될 수 없는 것이기에 단지 그런 슬픈 역사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알고 싶어 단지 눈으로 보고 읽는 뚜렷한 사건들을 머리속에, 기억속에 그저 흐리멍덩하게 집어 넣고만 말았다. 단지 민족의 아픔이 아직도 크다는 것을....

빗발이 굵어지고 우산으로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거세었다 들어오는 택시도 버스도 없다.

마침 인근 구멍가게에 문이 열려 있어 비를 피할 요량으로 들어서니 가게 아저씨 역시 이상한 눈 빚으로 쳐다본다. 비 오는 날 뭐하러 이런 곳에 오느냐는 눈 힐난.

버스 언제 오느냐는 질문에 벌써 올 시간이 넘었다고 하면서 버스가 손님이 없으면 안들어올 수 있다 하면 슬쩍 핀잔을 놓는다.

하염없이 기다릴 수 밖에...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 화장실을 물으니 고개로 저 밖을 가리킨다.

비가 콘크리트 바닥을 무척이나 세게 두드리는 그 곳에 다 쓰러져가는 화장실이 꺼먼 입을 벌리고 있다. 토끼처럼 뛰어가 문짝이 떨어진 화장실에 앉으니 마치 광주의 원혼들이 금방 내 밑에서 손을 내 밀 것만 같다. 얼른 일을 보고 다시 차를 기다리니 마침 초상을 치룬 봉고 한대가 저기 지나간다. 막무가내로 손을 흔들어 태워 달라고 손짓하니 차가 저만큼 가다가 선다... 어이구 하나님 감사합니다.

차 안에는 소복을 입은 아주머니 몇 분이 나를 이상한 눈 빚으로 맞이하고 비에 젖은 나에게 바닥에 있는 양동이들을 치우며 한 켠 자리를 내어 놓는다. 아무도 말이 없다. 하긴 슬픔의 차 안에 내가 타고 있으니..

그러나 차는 곧 멈추어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물이 불어 차의 반이 물에 잠기는 개울의 중간에 차가 멈추어 시동을 다시 못 걸고 있다. 난감해 하고 있는데 마침 트럭이 하나 뒤따라 오다가 차체로 봉고를 밀어 개울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 곳에서 이름없는 나그네의 무덤이 될 뻔 했네.

차 타고 가는 동안 비는 서서히 멈추었고 한적한 논길을 지나 시내에 도착하여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서 무척 고맙다고 인사하니 진한 남도 사투리로 잘 가라고 인사한다.

역 앞에 오니 올라가는 기차를 타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시간이 남을 때는 홀로 볼링장을 찾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에 인근 볼링장을 찾으니 가까운 곳에 없고 택시 기본요금거리에 있단다.

물에 폭 적은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홀로 볼링 몇 게임을 즐겼다.

깨져라 질서정연히 늘어서 있는 10개의 핀을 향해 공을 집어 던진다.

규격화된 건 싫어.

경직된 사고 방식은 싫어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있어야 하는 건 싫어.

넌 깨져야 해..

누구는 좋고 누구는 무조건 나쁘다는 흑백 논리는 깨져야 해.

한 밤중에 아내가 홀로 누워 있는 침대에 살짝 몸을 갖다 대며

여보 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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