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국내여행기

지리산 바래봉

carmina 2014. 5. 11. 16:34

바래봉

 

 

 

나이가 들어도 여행을 떠나기 전날은 잠이 온다.

용산역에서 떠나는 KTX 타기 위해 굳이 일찍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도 될터인데 눈은 새벽부터 떠지기 시작한다.

 

보름전부터 여행파트너를 모임에서 찾았지만 누구도 선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핑계김에 이번에도 혼자 여행이다.

지도를 펼쳤다. 어느 시인처럼 지도를 펼쳐놓고 연필을 굴려 끝이 닿는곳으로 떠나볼까? 설악산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너무 무리일 같다. 마침.. 오고가는 전철에서 지리산 바래봉의 철쭉일일관광을 알리는 플랭카드가 자주 보인다.

 

인터넷 검색해보니 KTX 익산까지 가서 버스로 남원까지 데려다준다. 산행하고 다시 남원 광한루에 들어오는 코스. 52,000 비싼 편은 아니다. 그냥 특별한 예약없이 가는 해보았으니..이번엔 여행사를 통해서 가볼까?

 

철도청에서 하는 청송여행보다 퍼시즌 여행사가격이 웬지 조금더 싸다. 품질이 떨어지는건가? 일반 KTX 익산 왕복하는 가격보다 월등히 것이 아마 단체할인율을 적용하는가보다.

 

봄의 푸른 청보리밭길을 끼고 1시간만에 서대전역에 도착하는 KTX 빠르긴 하다. 보통 대전하면 철도나 버스나 모두 2시간인데..반으로 줄였다. 익산까지 1시간 40분정도. 다시 익산에서 남원까지 버스로 1시간 40분정도.

 

익산에서 남원을 가는데 비가 부슬 부슬 내린다. 눈에 익은 김제, 전주길을 관통해 지나는 국도 옆에 낮은 산들이 모두 비구름에 쌓여있다.


 

 

어느 곳을 지나는데 이름이 죽림온천역이던가. 역을 배경으로 보이는 산이 마치 온천물이 솟는것처럼 산에서 뜨거운 김같은 구름이 무럭 무럭 하늘로 솟는다.

 

감자스낵을 사서 혼자 먹다가 저쪽 창가에 앉은 작은 꼬마가 심심해 보여 몇개 건네주었더니 잘도 먹는다. 나중엔 봉지째 주고 말았다.

엄마, 할머니와 같이 모양이다.

 

우리를 태운 20인승 버스가 광한루에 닿자..모두들 아우성이다. 원래 계획에는 바로 지리산으로 가게 되어 있는데 여기로 오느냐며.... 안다. 기사가 점심시간에 식당들 있는 광한루로 오는지..그게 여행이라는 연결고리에 달린 꾼들 여행사, 현지 가이드, 버스회사의 장난이다. 그러니까 가격이 싸지.

 

모두 아우성하니 어쩔 없이 차를 바래봉으로 돌린다. 왔던 빗길을 다시 달려 바래봉으로 향하는데 입구에 대형텐트가 가득 있다. 이런 철쭉 관광철에 몰리는 손님들을 위해 잠시 좌판을 열었는지 건물은 하나도 없고 모두 텐트안에서 멧돼지 바비큐를 비롯한 각종 통속적인 음식들로 버스에서 내린 손님들을 유혹한다.

 

너무 배가고파 이대로 산을 오르는건 무리고 제대로 점심을 먹고 산에 오르는건 더욱 무리라, 제일 편하고 간단히 먹을 있는 국수한그릇 막기 위해 찾아 들어간 텐트 옆에서는 우리 시골 아줌마아저씨들의 광란이 한참 무르익고 있다. 음악만 들어도 눈에 뻔히 보이는 뽕짝 음악들 그리고 춤사위들. 소리가 듣기 싫어 얼른 후다닥 말아먹고 우비를 덮어쓰고 산을 오른다.

 

입구 산부터 산의 천적인 사람들이 벌거숭이로 만들어 놓았다. 파헤쳐진 산들, 비가 내려 흙물이 등산화들 사이로 사이로 구비 구비 흐른다.   

 

산입구에는 철쭉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걸어올라간다. 이제 올라가는 나이든 부부의 모습이 너무 정겨워서 몰래 사진 찍어두었다.

 


산은 사람들을 이렇게 정겹게 해준다. 서로 힘이 드는 일이니까..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고, 혼자서도 수있지만 둘이가면 좋은 것이 산행이니까..

 

산으로 올라갈수록 안개비는 짙어진다. 귀를 시끄럽게 하는것이 우비의 부스럭 소리인지 아니면 머리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소리인지. 이미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비록 비에 홈빡 젖긴 했어도 행복한 모습이다. 어떤 여자는 남자 둘이 부축해서 내려오기도 하고..  간간히 철쭉이 보일 때마다 사진을 찍어댔지만 워낙 배경이 비구름으로 흐릿해 제대로 사진이 없다.

 


 

풀잎이 젖고 있다. 철쭉이 울고 있다. 봄날의 화려함은 잠시 농무에 잠기고 조용히 사색하고 있다. 짙은 안개속에 커다란 소나무가 철쭉을 묵직한 몸으로 지키고 있다. 감히 누구도 엄접하지 못할 자태가 신비롭기만 하다.

 


 
앞서가던 꼬마일행이 나이든 할머니때문에 행보가 늦은지 꼬마는 앞서가고, 일행은 늦다. 꼬마에게 아저씨랑 같이 가자고 이야기할까 하다가 괜히 낯선 사람에대한 경계심이 생길까봐 그냥 혼자 올라갔다.

 

지리산 바래봉은 이렇게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다.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엎어농은 모습이라 해서 이름지어진 바래봉. 사실 바래봉은 지리산의 수백개 봉우리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제일의 철쭉 군락지로 봄철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바래봉의 철쭉은 붉고 진하며 허리 정도의 크기인데 마치 누군가가 마음먹고 조경으로 꾸며놓은 것처럼 보기 좋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흔히 지리산에서 이름난 철쭉밭으로 세석평전을 얘기하지만 이도 바래봉에는 미친다. 일단 바래봉은 가기가 편하고 등반에 힘이 들지 않아 더욱 각광받을 만한 곳이다. 높이 1,165m 낮은 산은 아니지만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부분이 해발 500m 정도라서 그리 힘들지 않고 다른 봉우리에 비해 비교적 완만하기 때문에 바래봉 정상까지 2시간이면 올라 있다.

바래봉의 철쭉 산행은 축산기술연구소가 한우 방목을 위해 만들어 놓은 종축원 뒤쪽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산기슭을 향해 있는 도로를 따라가면 된다. 차도가 끝나는 정상 바로 아래서부터 철쭉 군락지가 펼쳐진다. 꽃길은 정상을 넘어 팔랑치까지 1.5km 걸쳐 피어있다. 특히 바래봉의 철쭉 가장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곳은 정상부근에서 팔랑치까지 이르는 구간이다. 그리고 팔랑치에서 1,123봉으로 오르는 능선에도 철쭉 군락이 있는데 이곳의 경관도 빼어나다

 

철쭉이 지리산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 하는데 지금 눈에 보이는 풍경은 도무지 자태를 찾아 보기 힘들다. 눈에 보이는 모조리 뿌연 저승같으니..

 

우비는 뒤집어 썼지만 바지까지 가리워 주지 않기에 바지단이 축축함을 느낀다. 그치만..산으로 올라갈 수록 기분은 좋다. 아쉬운 것은

바래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4륜구동차가 능히 산꼭대기까지 올라갈 있을 정도로 길을 다듬어 놓았다. 자갈밭길과 바위로 덮어 놓은 길들. 어디에도 계단은 없다. 가파른 경사가 구비 구비 지나고 있고 옆에는 야생곰이 출현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문까지 부착되어 있다.

 

'길을 간다. 말없이 홀로 산길을 간다'

양주동씨의 시에 노래를 붙인 '산길'이란 노래를 흥얼거리며 쉬임없이 올라갔다. 지난 일년간의 헬스장 생활이 건강에 많이 도움을 주고 있는지 별로 힘든 줄을 모르겠다. 그렇게 산길을 오른다.

 

그러나 산이라는 것이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걸으면서 계속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리 산을 파괴시켜 놓았을까? 지리산 천왕봉은 거의 8부능선까지 도로를 닦아 놓아 천왕봉오르기가 훨씬 편해 졌다는데...산이라는 것이 사람이 오르기 위해 있는건지.. 목적을 위해 산의 본연의 모습을 없애버려도 되는건지 참으로 생각해 문제이다.

 


 



여행사에서 나누어준 안내문에는 바래봉까지 2시간 반이라 했는데 이곳에서 보는 바래봉까지는 3시간 반으로 표시되어 있다. 시간의 차이. 4시까지 버스로 돌아오라는 버스기사의 말에 자꾸 시계를 보게된다. 올라 가도 올라가도 도무지 시야가 막혀 있으니 군락지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송이를 보기 위해 떠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산을 새빨갛게 물들은 철쭉의 군락은 볼만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광경을 못보니 못내 아쉽다.

 

산은 점점 가파르게 올라가고 정상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바래봉까지 1.3키로. 우와..아직도 이렇게 먼가? 참을 가다 보니 0.8키로 이정표가 보인다. 그리고 나아가다가 내려오는 이에게 정상을 어느 정도 가야 하는지 물어보니 30분정도 올라가야 한다고.. 아이고..이러다 제시간에 돌아가지 못하고 점심도 먹을 시간이 없겠다. 정상에 올라가도 구름속에 쌓인 봉우리에서 무슨 만족을 얻으랴 하는 자기 위안에 빠져 아쉬운 발길을 뒤로 돌렸다.

 

그러나 실제 바래봉의 철쭉은 올라가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에 보였다. 하산하면서 보니 기슭에 가득한 철쭉. ..그래 저것이었어.. 내가 올라가면서 뒤돌아보지 못했을까? 지난 길이 어땠는지 한번 뒤돌아 보았으면..철쭉의 아름다움에 취해 정상까지 정복했을텐데 하는 늦은 후회. 이래서.. 모양이 이런가..

 


카메라가 비에 젖는 줄도 모르고 셔터를 눌러댔다.

그리고 철쭉 언덕을 배경으로 사진도 하나찌고..

 


비에 홈빡 젖어 모습같지 않은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고생의 끝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니

행복해지기 위해선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인가?

 


다시 텐트촌으로 내려와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기웃거리는데

모두가 한결같은 메뉴..

이집이나 저집이나 모두 같다. 어느 텐트안으로 들어갔다가

아는 척도 안하기에 일어서고 어느 집은 울려퍼지는 뽕짝노래가 싫어 다른 집으로 가니 무척이나 반겨준다. 머리 젖은 것을 보고 마른 수건도 가져다 주고, 내가 추울거라 생각했는지 뜨거운 물을 컵데 담아준다. 이런 인정을 다른 집에선 찾을 수가 없었는데..

 

무얼 먹을까? 어디서나 먹을 있는 메뉴보다는..

취나물해물전이 눈에 보여 주문하고 출출한 배를 막걸리로 데워보았다. 혼자 먹는 것이 딱해 보였는지 주인 아줌마가 앞에 앉아 주방일 하다느라 퉁퉁 불고 칼로 베인 손가락을 가진 손으로 막걸리를 그득하게 따라준다. 혼자 못먹을 정도의 양이기에 적당히 요기만 하고 나와..할머니들이 산나물 뜯어파는곳에서 두릅을 샀다.

할머니의 손등의 주름같은 새끼줄로 엮은 두릅이 싱싱해 보인다.

 

다시 버스에 오르니 올때보다 사람이 많아 보인다. 왜그럴까?

자리배치가 달라져서 그런가. 내가 앉았던 자리에 다른 이가 앉아있다. 버스는 빗길을 다시 달려 처음 남원에 왔던 광한루로 돌아왔다. 지나는 길에 아파트에는 대부분 고장이 고장이니만큼 춘향과 이몽룡의 캐릭터들이 많이 보이고 여기 저기 춘향과 이도령의 이름 상호들이 많이 보인다.

 

광한루. 성춘향의 이야기가 실화일까? 소설에 불과할까? 최근에 어느 학자가 실화였다는 주장하는 학설에 놓아 관심을 끌은 있다. 그러나 논픽션에 픽션을 조금 더한건지..아니면 픽션을 논픽션화한건지는 불확실하다. 광한루가 생긴 것이 어느 때인지도 불확실하지만, 한국사람들의 마음속엔 언제나 영국의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설화가 살아있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대명사.

 

다듬어진 광한루. 주변엔 선물가게가 그득하다. 비가 내려서인지 촉촉해 보이고 깨끗해 보인다. 춘향의 영정도 기웃거려 보고 첫날 밤을 같이 지냈다는 곳도 기웃거려 본다. 월매네 , 향단이 아궁이에 불때는 장면들. 아주 높은 그네와, 널과 춘향을 곤장 때렸을법한 태형틀이 비를 맞고 있다. 마당에 곱게 은방울꽃같은 한송이

 


 

광한루 여기 저기 연못에는 붕어 잉어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먹이를 얼마나 많이 주는지 살이 모두 통통하고, 어떤 녀석들은 갑자기 하늘로 뛰어오르기도 한다. 오작교밑에는 물반 고기반이다.

 


 

혼자 돌아다니다가 후문으로 내가 나왔는지..내가 버스를 찾지못했다. 한참을 돌아 정문으로 정시에 버스를 타니 산에 같이 올라가던 꼬마가 내가 안왔다고 무척 걱정했단다. 기특한 녀석. 고맙기도 해라.

 

익산으로 돌아가는 길은 나도 피곤했던지..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거의 빗길을 과속하다시피 달린 버스안에서 얼마나 불안했던지..

 

익산에서 8 반기차를 탈려면 저녁을 먹어두어야 한다.

역앞을 기웃거리다가 골목에 있는 백반집간판을 보고 발견하고 찾아가니 제법  백여사 백반집인데..4000원에 무려 20가지의 반찬에 그만 기가 죽어 너무 맛있게 먹고나왔다. 그렇게 과식하지 않았는데 누룽지까지 먹고 왔으니..

 

달리는 소리도 별로 들리지 않는 KTX 상행선은 하행선과 다르게

주요한 역만 정차한다. 행복한 하루..

집에 , 지리산에서 사온 맛있는 두릅을 먹을 얼마나 행복하던지.. 

 

그렇게..그렇게..2007년도 근로자의 여행을 마쳤다

 

 

'국내여행 > 국내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안반도 - 기름유출, 블랙비치  (0) 2014.05.11
물향기 수목원  (0) 2014.05.11
정선5일장  (0) 2014.05.11
채석강, 모항, 변산반도  (0) 2014.05.11
소쇄원  (0) 2014.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