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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만난 음악 - 엘 마리아치 (멕시코 음악)

carmina 2014. 5. 14. 12:52

멕시코 음악

 

 

 

 

엘 마리아치라는 영화가 있었다. 멋지게 생긴 남자가 기타를 하나 들고 노래하며, 기타케이스 속에 기타대신 기관단총을 넣고 활약하는 영화로 우리에게는 엘 마리아치라는 말이 조금은 낯설지 않은 편이다.

 

엘 마리아치라는 말은 멕시코의 떠돌이 악단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기타리스트 하나로 엘 마리아치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적어도 4 - 5명이 그룹을 이루어야 하고 그 안에는 반드시 나팔수가 있어야 한다.

 

1991년 처음에 멕시코를 방문했던 날 저녁에 호텔 로비에서 청중이라고는 나 혼자 두고 기타를 치면서 열창하고 있는 한 명의 기타리스트를 보고 아주 인상 깊게 여기고 있던 차에 이번에는 꼭 이들을 찾아 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관광안내 책자에 엘 마리아치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는 가리발디라는 광장 방문과 극장식 쇼도 구경할 수 있는 코스가 있어 관광회사로 유명한 그레이 라인투어사에 금요일 저녁 표를 예약하고자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호텔에 부탁해서 택시기사를 별도로 고용하였다. 안내 책자에 보석이나 중요한 물건을 빼 놓고 가라는 경고문이 있어 지갑과 크레딧 카드 등은 모두 호텔에 빼 놓고 사진기 하나만 달랑 들고 나왔다.

 

시간당 70 페소, 둘이 가면 큰 부담이 안 되는 가격이므로 업무가 끝나고 식사를 느긋이 한 후 밤 9시에 호텔에서 택시를 승차, 이미 일주일의 업무가 끝난 조용한 도시를 택시로 달리다 어느 곳에 이르니 갑자기 주위가 시끄러워지며 도로변에 차가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고, 마리아치 특유의 검은 복장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자꾸 지나가는 차들을 멈추라고 호객한다. 왜 그럴까, 저 복장이 혹시 술집 유니폼인가 하는 의아심 속에서 택시가 속도를 멈춘 곳은 사람이 아주 많이 몰려 있고 도로 변에 이태리에서 볼 수 있는 대형 고대 건축물의 한 쪽이 세워 져 있는 지하 주차장이다.

 

주차를 하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순간부터 내 걸음은 곡마단의 소리를 듣고 달려가는 어린 아이처럼 마리아치들의 음악에 이끌려 새털처럼 가벼워 지고 있다. 비록 어두운 밤이지만 광장에 펼쳐진 마리아치들의 무리에 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이렇게 많은 악사들이 저마다의 악기를 들고 소리를 내고 있으니….

 

모두 언플러그드 음악을 들려주는 악사들은 여기 저기 서성거리며 마치 인력시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처럼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악기들도 참으로 다양하다. 일반 기타를 비롯하여 울림통 뒤가 산처럼 툭 튀져 나온 기타, 사이즈가 조그만 기타, 바이올린, 드럼, 트럼펫, 콘트라베이스, 소형 하프, 만돌린 등 시야에 즐비하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의 주요 악기들인 첼로, 클라리넷, 플륫 등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이런 것은 마리아치들의 성격에 맞지 않아서 인가?

 

 

그들은 우선 복장으로 구별된다. 챙이 넓은 서부의 모자들, 혹은 챙이 더욱 큰 산초 모자, 검은 재킷을 입었고, 모양이 큰 나비넥타이를 하였으며 혹은 머플러를 넥타이같이 맨다. 마치 보이스카웃처럼, 바지의 양쪽이 위에서 아래로 사다리 모양의 흰색 실 혹은 금실이 죽 장식되어있으며, 대개 뾰죽한 흰색계통의 구두를 신는다.

 

대개 구릿빛 계통의 피부에 콧수염을 길렀으며, 체격은 통통한 편이며 서 있는 폼이 늘 선 채로 악기를 다루어서 인지 반듯하다.

 

마리아치를 보러 나온 사람들보다 마리아치의 숫자가 더 많아 보일 정도로 가리발디 광장을 어슬렁거리는 마리아치들은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겐 자꾸 노래를 해 주겠다며 추근거린다. 노래는 대개 2 - 3곡에 50페소를 받는다. 어느 가족을 위해서는 노래의 가사를 바꾸어 주면서 노래를 해 주는지 듣는 사람들이 배꼽을 잡으며 노래를 듣고 있으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자못 진지하다. 돈을 직접 내고 듣기도 하지만 조그만 일 회용 컵을 하나 사면 음료수를 주면서 노래를 듣기도 한다. 그래서 빈 음료수 컵을 들고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은 대개 4분의 3박자의 왈츠로 구성되고, 멤버들끼리 화음으로 노래하고 때로는 독창자가 중간 중간에 노래하기도 한다. 악기를 든 모든 사람들이 노래하고 연주한다. 특히 나는 조그만 기타에 관심이 가 있었고, 그 기타를 파는 곳을 동행한 택시기사에게 물어 보았으나 낮에는 이 근방에서 파는데 밤에는 안 판다고 한다. 보통의 기타와 같은 형태이지만 크기가 약 절반이고 소리는 조금 둔탁한 편이나 휴대하기가 무척 편할 것 같아 귀국 길에 꼭 사고 싶었다.

 

굳이 손님이 노래를 청하지 않아도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마리아치들의 모습은 젊었을 때의 나의 모습을 연상케 해 한 참을 쳐다보며 사진을 찍어 댔다. 광장에서 한 무리의 가족이 이미 술에 얼근하여 주말의 여흥을 즐기고 있다가 나를 보고 자기가 마시고 있던 잔을 내게 주며 마시기를 권하기에 웃으며 받아 마시고는 다시 건네 주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들과 같이 춤을 추고 놀고 싶었지만, 조금은 안전이 걱정이 되어 자제하였다.

 

광장에는 여러 개의 동상이 악기를 든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데 모두 전설적인 마리아치들의 동상이라 한다. 주위에는 극장식 레스토랑도 있어서 실내에서 마리아치들의 음악을 즐기기도 한다. 밖에서 보니 마리아치들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도 하고 춤도 추는 여가수가 있으며 식사가 제공되기도 한다. 식사 없이 음료수만 시키는 것으로도 입장이 가능하다.

 

모자를 많이 들고 팔러 다니는 사람이 있어 검은 마리아치 모자를 하나 샀다. 마치 서부의 사나이들이 쓰는 모자, 내 검은 양복과 무척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사람들이 노래 듣는 것에 인색해서인지 노래가 흘러 나오는 곳이 별로 적고 엘 마리아치라는 극장식 레스토랑의 쇼가 10시 30분에 시작되어 우리는 그곳을 떠나와야 했다.

 

인적이 한적한 밤길을 달려 엘 마리아치 홀로 가는 길에는 매번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한가로이 구걸을 하는 거지들을 만날 수 있다.

 

10시 20분에 도착하여 앞 자리를 배정받고 주위를 보니 이미 일 층은 손님들로 가득하나 이층은 모두 비어 있는 상태이다. 오늘은 단체 관람객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가족들 혹은 친구들끼리의 모임들이 보였으며, 바로 내 앞에는 젊은 연인이 너무 꼭 붙어 앉아 식사를 즐기고 있다.

 

대머리 웨이터가 와서 주문을 받길래 식사는 안 한다 하고 음료수로 데낄라를 주문하니 무언가 다른 것을 같이 주문하겠느냐고 묻는다. 그게 잘 모르겠다 하니 좌우지간 맛 보라고 하기에 승낙을 하고 가지고 온 것을 보니 다른 것보다 독한 데낄라에 약간 매콤한 소스가 데낄라와 같은 컵에 담겨 있다. 독한 데낄라를 조금 마시고 그 소스를 조금 들이키니 금방 중화되는 느낌이다.

 

정확하게 10시 30분에 악단들이 무대 위의 계단 양 옆으로 늘어서고, 한 쪽 계단에는 기타류 그리고 다른 쪽에는 바이올린, 그리고 위에는 트럼펫이 자리 잡고 있다. 바이올린도 마이크가 부착되어 노래하는 소리와 현의 소리까지 크게 들리게 되어 있다.

 

곧 이어 마치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을 알리던 아나운서의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고 검은 옷에 커다란 모자 그리고 콧수염의 잘 생긴 남자가 경쾌한 걸음으로 올라와 스페니쉬로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노래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무척이나 흥겨운 멜로디가 계속되고 고전 의상을 입은 남녀 두 쌍이 올라와 신나게 탭 댄스와 넓은 치마를 자랑하는 고전무용을 펼친다. 아마 사랑의 노래인 듯 중간 중간 서로 키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아주 빠른 템포의 노래는 장내의 손님들을 열광케 한다.

 

곧 이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목동들의 밧줄 묘기가 펼쳐진다. 밧줄로 원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그 원을 스스로 온 몸을 통과하기도 하며, 밧줄의 원을 온 몸으로 휘 감기도 한다. 원을 만들어 팔뚝에 올려 놓고, 커다란 줄이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그 안에 또 다른 원을 만들어 돌리는 묘기를 보이며 관중들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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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묘기 후에는 젊은 여가수가 나와 팝 스타일의 노래를 열창을 하고, 다음에는 성악을 전공한 듯한 여자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나와 노래를 하는데 앨토의 음역이지만 성량의 폭이 상당히 넓어 완전히 장내를 압도하는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때로는 관중들에게 박자를 맞추게 하기도 하며 넓은 치마가 흔들거릴 정도로 열창을 한다.

 

여자성악가의 노래가 끝난 후 권총을 허리에 차고 산초 모자를 쓴 콧 수염의 남자가 검은 복장으로 무대에 올라와 노래를 하는데, 노래의 색갈이 너무 귀에 익어 자세히 들으니 한국의 김동규 소리와 얼마나 비슷한지, 거기다가 콧 수염까지 길렀으니 나에게는 완전히 김동규의 리사이틀을 보는 듯 했다.

 

 

 

 

 

이어 많은 시간을 이 남자 성악가가 무대를 장식하고 때로는 마이크 없이 노래하면서 자신의 성량을 과시한다. 객석 주위를 돌며 파티를 즐기는 젊은 여인과 같이 포옹하기도 하며, 같이 사진 찍는 여유를 즐기며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분위기는 무르익어 가고 앞에앉아 있는 연인은 계속 키스에 바쁘다. 무대 위의

 

가수를 사진 찍으며 동시에 키스하는 연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회자가 내 앞에 와서 남자 가수의 노래가 끝나는 휘날레 부분을 나에게 같이 하자고 유도하기에 서슴지 않고 큰 목소리로 노래해 주기도 하고 멕시코 고전 의상을 입은 장내 기념품 파는 아가씨와 같이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이 지속되었으나 이미 업무에 지친 내 몸이 피곤함을 알린다.

 

사전 정보에 의하면 쇼는 밤 12시에 끝난다 하기에 11시 40분에 택시를 앞으로 오라고 약속해 두었다. 밖에 나와 택시를 기다리는데 어느 걸인이 영어로 아는 체를 한다. 봉변 당 할 것 같아 피하고 마침 오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 오며 오늘 음악을 즐기는 멕시코인들의 멋진 모습들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