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에 멕시코 출장시에 써 놓은 것입니다.
금요일 밤 모두들 회식 약속이 있다기에 슬그머니 빠져 버렸다. 독한 데낄라를 소주 마시듯이 마시는 우리 직원들이라 같이 어울리기에는 내 몸이 견디어 내지 못한다.
호텔 방에 들어와 티브이나 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무언가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혼자 어슬렁 거리며 멕시코시티에서 대표적으로 번화한 거리인 조나 로사로 목적도 없이 발길을 내 딛었다.
금요일 밤은 어느 나라나 다 그러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들 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일주일의 빡빡한 생활 속에서 지내다 내일부터 2일간 쉴 수 있다는 해방감과, 오늘 신나게 퍼 마셔도 내일은 늦잠을 자도 된다는 안도감때문이리라.
유별나게 많이 보이는 거리의 삐끼들이 ‘무차차 보니따’하며 예쁜여자 있다고 술집 명함을 건네 준다. 어쩌다 손으로 받으면 얼마나 쫓아 오는지 모두 거절하지만 끈질긴 삐끼들은 계속 몇 백미터를 쫓아 오기도 한다.
노변 음식점들은 모두 길거리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자연스럽게 손님들을 맞고 있다. 유럽풍의 이러한 모습은 손님들을 유혹하는데 좋은 상술로 보인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나와 돌아 다니다가 문득 어느 술집에서 바로 입구안쪽에 재즈밴드를 구성해 놓고 쿵짝거리고 있다. 바가지 씌우는 곳은 아닌 것 같기에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홀에 손님이 가득하다. 대개 바가지 씌우는 곳은 문 앞에 밧줄이 쳐 있고 건장한 사내들이 문을 지키고 있어 웬만한 호기를 부리지 않으면 들어가기가 힘들다.
담배연기와 맥주냄새로 가득한 홀의 테이블은 이미 다른 이들이 모두 점령되어 있고 스탠드에 겨우 한 자리 정도 남아 있을 뿐이다. 스툴에 걸터 앉아 바텐더를 보니 손님이 앉아도 신경을 못 쓸 정도로 바쁘다. 벽에 가득한 수 십가지의 온갖 양주들이 조금씩 비어 있다. 또한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맥주들이 즐비하고, 생맥주를 따르는 펌프주위에는 거품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꼬로나를 주문하니 없다며 다른 맥주 이름을 말하기에 무조건 좋다하니 비슷한 맛의 맥주를 한 병 내준다. 물론 컵도 없고 안주도 없다. 옆에 조금 인상이 좋지 않은 머리벗겨진 녀석이 아는체를 한다. 코리안이냐, 서울에서 왔느냐 하고 묻지만 아무래도 전문 사기꾼 같이 보여 술병으로 ‘사루드’를 한 번 합창하고는 밴드로 눈길을 돌렸다. 기타를 치는 녀석이 모습이 무척이나 신나 보인다. 드럼과 전자 올갠의 사운드가 홀 안에 가득하고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상기되어 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특이하게 생긴 맥주병이 눈에 보인다. 커다란 비이커처럼 생긴 유리 컵의 아래 위를 길다란 유리관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래 시계 모양이고 손잡이 또한 커다란 나무 막대로 되어 있다. 높이가 약 50센티 정도 되는 이 컵은 아마 맥주 2000CC정도 들어가는 것 같아 보인다. 두 젊은이가 연신 건배를 하며 음악에 맞추어 어깨를 흔들고 있다. 내 옆에 스툴에 앉아 귀걸이를 몇 개나 달고 연신 담배를 피며 맥주를 마시고 있는 동양 여자가 아무래도 한국인 같아 보이지만 옆에 남자 친구가 있어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연신 춤을 추어가며 기타를 퉁겨 대던 흑인이 기타를 내려 놓더니 바로 앞 자리에 술을 마시고 있던 여자와 깊은 포옹을 즐긴다. 그리고 잠시 휴식. 악단의 노래가 잠시 멈추자 사람들은 주크 박스로 몰려 또 한 번 신나는 음악을 홀 안에 넘치게 한다.
맥주 한 병 값을 계산하고, 다음 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또 어느 음식점에서 요란한 소리가 흘러 나와 동정을 살핀다. 바로 문 간에서 낮은 단을 설치해 놓고 기타와 로랜드 전자올갠 그리고 드럼의 반주에 맞추어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수의 목소리에 홀려 술집앞에서 서성거리며 안을 보니 몇 명의 젊은이들이 허슬을 추고 있다. 호기심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니 혼자 왔느냐며, 밴드가 잘 보이는 구석 자리에 안내한다. 불과 얼마 안 되는 공간에서 노래에 맞추어 젊은이들 몇 명이 아주 궁합이 잘 맞는 춤을 추고 있다. 서로 팔을 돌리고 발을 엇갈리며 춤을 추는데 몇 명이 같은 춤을 추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는 누구나 출 수 있는 익숙한 춤임을 알수 있다.
가슴이 무척이나 큰 여자가 그 큰 가슴이 다 들어 내 보이는 옷을 입고 바로 코 앞에서 무엇을 마시겠느냐며 주문을 받는다. 그것도 허리를 굽혀 가며…. 잠시 아찔한 기분을 가다듬고 맥주 한 병을 청한다. 잠시 후 가져 온 맥주를 따르는 모습도 무척이나 요염하기만 하다. 내가 그렇게 보아서인가?
바로 옆 테이블에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 네 명이 맥주 한 병씩 놓고 무슨 소리인지 한 참을 키득거리다가 주사위 놀이를 한다. 그러고 보니 옆 테이블의 다른 사람들도 마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돈이 오가지를 않고 점수 또한 계산하는 모습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냥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술을 많이 시켜 마시지도 않는데 이렇게 금요일 저녁 황금시간에 죽치고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매상이 안 올라 주인이 싫어 할 텐데 웨이터들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
테이블에 조그만 부스러기만 있어도 얼른 와서 치우고 재떨이에 담배 꽁초만 하나 있어도 얼른 새 것으로 바꾸어 준다. 더구나 테이블 위의 물 묻은 컵 자국도 눈에 거슬리는 듯 행주로 깨끗이 씻어 주고 있고 서비스로 주는 땅콩이나 과자안주도 행여 비울세라 가득 채워 놓는다.
이 곳은 그야말로 주말을 즐기기 위한 곳이다. 식사와 술과 춤과 친구들과의 게임까지 한 곳에서 모두 해결하는 이들의 놀이문화가 1차 식사, 2차 술, 3차 춤, 4차 고스톱을 즐기기 위해 이리 저리 옮겨 다니는 우리네 모습과 비교된다.
이 웨이터들은 물건을 많이 팔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손님을 위해 서비스하기 위해 있음을 금새 알 수 있다. 진정한 서비스 정신인가? 혹은 주인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철부지 종업원들인가?
그나 저나 조그만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여자 가수의 모습은 정말 그렇게 신이 나는지 표정이 마치 하늘을 날아 갈 것 만 같다. 드럼들 사이에서 움직이기도 힘들텐데 팔을 흔들고 작은 발 짓으로 춤을 추는 모습이 그룹 아바의 댄싱 퀸을 연상케 한다.
오늘 밤 완전히 춤을 추기 위해 온 듯한 젊은이 두 커플이 음악이 나올 때 마다 뛰어 나가 어찌나 음악과 잘 맞는 춤을 추는지 그 들을 보는 것 만으로 나는 흥에 겨워 손가락을 장단을 연신 맞추어 대었다. 또한 전통 멕시코 음악이 나오면 어느 중년 부부가 마치 영화에서나 봄 직한 탱고를 좁은 공간에서 휘 돌아가며 즐기고 있다.
춤을 보는 것 만으로도 너무 흥에 겨워 맥주를 두병이나 시켜 마시고 또 다른 거리의 음악을 찾기 위해 어슬렁 거리니 이제는 클래식한 음악이 어느 길가에서 들린다. 거리에서 식사를 하게 되어 있는 레스토랑에 세 명의 남자가 각각 클라리넷, 플륫, 그리고 8현의 기타를 들고 남미 풍의 곡을 연주하고 있어 무조건 그 앞에 테이블을 차지 하고 앉았다.
클라리넷을 부는 이는 여러가지의 목관 악기를 옆에 두고 있고 플륫은 끝에 조그만 마이크가 부착되어 있음이 보인다. 털보 기타 아저씨는 정통 클래식을 연주하는데 이러한 트리오를 위하여 작곡된 곡이 그리 많지 않을텐데 레퍼터리는 끝이 없다. 각각 두꺼운 바인다에 있는 악보를 3권씩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곡을 직접 편곡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쳐 주고 나는 배는 고프지 않지만 맛있는 거위 간이 곁들인 스파게티를 먹으며 이국의 흥을 즐기고 있다.
밤이 늦었는지 내가 식사가 다 마칠 무렵 연주를 끝내고 악기를 거두고 있기에 기타를 든 털보를 보고 그 기타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6줄기타를 자기가 변형시켜서 8줄로 쓰고 있다 한다.
맥주 3병과 3 군데의 멕시코 음악에 취한 나는 얼근한 기분으로 이번 멕시코 출장의 마지막 밤을 모처럼 즐겁게 보냈다는 만족감에 일부러 갈 짓자 걸음으로 호텔로 발 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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