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27) 꽃보다 귀한 여인, 부제 전국노래자랑

carmina 2014. 5. 21. 22:51

 

꽃보다 귀한 여인 (송창식)

 

누가 그녀를 보았는가
아무도 모른다네 나도 모른다네
사슴을 닮아서 눈이 맑은 그여자
혼자서 먼길 떠나 버렸네
난 그만 바보처럼 울고 말았네
꽃보다 더귀한 나의 여인아
아무도 모른다네 나도 모른다네
하지만 호수가를 스쳐가던 바람이
얼핏 보았다고 하더라네
난 그만 바보처럼 울고 말았네
꽃보다 더귀한 나의 여인아
난 그만 바보처럼 울고 말았네
꽃보다 더귀한 나의 여인아

 

고등학교시절 부터 기타를 들고 다니며 노래를 부르다 보니

흑백 TV에 나오는 양희은, 김정호, 어니언스, 트윈폴리오 등의 가수들이

무척 부러웠다.

 

나도 노래를 하면 저만큼은 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가수를 꿈꾸기

시작했지만 내 주변생활이 그런 음악세계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당시 유일하게 무명인들을 가수로 만들어 주는 등용문이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이었다.

 

요즘은 전국노래자랑이 지방마다 돌아다니며 지방잔치가 되고 있지만

이전에는 그 곳이 유일한 공식 아마추어 가수 선발코스였다.

지금도 유명 트롯트 가수들이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발탁되는 것 같다.

 

늘 그 프로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트롯트가 주 레퍼터리지만

가만히 눈여겨 보니 기타를 들고 나오면 무슨 상이던 받는 것 같아서

참여 자격을 보니 주민등록증이 필요했다.

당시 고3 정도 나이면 주민등록증이 나왔는데 나는 동급생보다 한 살 어려서

1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감히 나간다 해도 까까머리에 까만 교복입은 고등학생의 입장에다가

그것도 대입시를 앞에 둔 고 3 학생이...언감생심이다.

 

대학 1학년. 만 18세가 지나니 지문찍고 주민등록증 발급.

드디어 도전을 해 볼까?

그 곳에 접수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가수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자. 이제 될거야... 될거야..

절대 부모님에게 알릴 사항은 못되니까 혼자 열심히 연습했다.

 

당시 KBS는 남산에 스튜디오가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 그 곳에서

오디션을 보니 그다지 울림도 좋지 않은 기타를 들고 나섰다.

 

전철생기기 전이니 일반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남산을 걸어 올라갔다.

커다란 공연홀 같은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심사위원이 피아노 한대로 즉석에서 반주를 해가며 일차 심사를 한다.

대개 그 날 심사해서 10명을 선발하여  그 날 프로그램을 촬영한다.

 

사람들이 약 300명 정도가 모였나?

어떤 이는 자기 키도 모르고 음을 잡아 탈락되고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하다가 중간에 음을 이탈하여 그냥 내려가는 등

머리를 긁적거리며 자리로 돌아가다가

내 차례가 되어 피아노 반주 없이 기타로 준비한 노래

송창식의 '꽃보다 귀한 여인'을 불렀다.

다행하게도 나는 중간에 끊지 않고 다 들어 주었고

또 다른 사람이 내 기타를 빌려 심사를 받았다.

 

모든 사람들이 1차심사 후 10명을 호명했는데

그 속에 내 이름이 있었고 내가 기타를 빌려 준 사람도 있었다.

드디어 내 꿈이 실현되기 시작하는구나. 역시 난 소질이 있어.

 

다른 이들 모두 퇴장하고 10명이 남았는데 안내자가 하는 말.

"오늘은 월말 결선하는 날이라 지난 한 달간 매주 경연에서 뽑힌

사람들끼리 다시 경연합니다.. 그러니 오늘 뽑힌 분들은

미안하지만 다음 주에 다시 한 번 모여서 다음 주 심사후 선발한

10명과 재대결을 해야 합니다"

 

대신 오늘같이 일찍 올 필요없이 다른 사람들 심사한 뒤에 하는 것이니

늦게 오라며 시간까지 알려 주었다.

 

다음 주.  더 열심히 연습하여 알려준 시간보다 30분 일찍 가기 위해

남산을 땀을 흘리며 허위 허위 올랐다.

 

스튜디오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별로 없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왜 이제 왔느냐며...

오늘은 신청한 사람들이 적어 예선이 일찍 끝났으니 어서 와서

나보고 노래하란다. 나만 부르면 된다고...

 

아니? 아직 숨도 못 고르고 튜닝도 못했는데?

 

그러나 어찌하랴...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기에 허둥대며 기타를 조율하고 지난 주에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부르는데 숨이 차서 노래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힘겹게 부르고 난 뒤, 심사위원은 최종 선발된 10명을 호명하는데

그 곳에 내 이름은 없었다. 허탈감..

왜 내가 사정을 구하고 조금 여유있게 노래하지 못했을까?

 

만약 내가 1시간 일찍 도착했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이 바뀌었을까?

 

그 뒤로 다시는 가수의 꿈을 갖지 않았다.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기타치며 노래하는 것도 힘들었고 

한번 낙방한 후 내가 가진 한계를 깨달은 것 같아서

평생 음악만 좋아하며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