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29) 비목

carmina 2014. 6. 4. 13:33

 

 

비목 (장일남 작곡, 한명희 작사)

 

초연이 쓸고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녁에

비바람 긴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 마디 이슬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달빛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작사가 한명희씨가 625전쟁 때 치열한 전방의 화천격전지에서 발견한

이름모를 병사의 비목을 보고 작사을 했다 한다.

돌대신 나무로 만든 비목. 얼마나 많은 젊은 영혼들이

그 아래에서 숨을 죽였을까?

산중에서 우는 궁노루가 그 영혼들의 소리를 대신했을까?

 

한 때 유행하던 드라마에 여주인공 장미희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설정으로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이 노래

내게는 남다른 추억이 있다.

 

77년 4월 논산훈련소에 입소해 전반기 훈련을 받고

6월 광주 상무대에서 후반기 훈련 후

군용열차를 타고 용산까지 올라와 철문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 얼굴을 잠깐 보고 다시 트럭을 타고

허위 허위 북쪽으로 달려와 배치 받은 전방부대.

 

그것도 처음 부대가 건물도 없는 야전 숙소에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산 위에 진지를 짓는 일이었다.

산 위에 진지를 짓기 위해선

모래와, 세멘트와 물이 필요한데

이 공사 자재들을 산밑에서 모두 군인들의 몸으로 지고 날라야 한다.

20키로 세멘트, 거의 30키로 넘는 모래를 질통에 지고

물은 지게를 이용하여 걸어 올라간다.

 

그리고 산에서 일하는 군인들을 위해

숙소에서 점심을 나무통에 담아 등에 지고

뜨거운 국을 통째로 가지고 올라오며 땀을 비옷듯이 흘리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논산훈련소의 훈련은

정말 고생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던 진지공사 모습

 

나는 이등병이라 쉬운 것을 시킨다며 물 나르기 조였는데

산 아래 개울물에서 물을 두 개의 통에 가득 길어 지게를 지고

올라가다 보면 흔들거려서 물이 넘쳐 흘러 

산꼭대기 올라가면 물이 반 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면 고참들에게서 물을 적게 담아 요령 피웠다고 매일 혼났다.

 

산이 높아 하루에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올라가면

하루 해가 다가고 어스름 산길을 걸어 야영하는 숙소에 들어오면

고참들이 신병의 군기잡는다고 좁은 천막안에서 나를 슬프게 하던 시절.

그래도 밤별은 참 아름다왔다.

 

어느 날은 높은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물을 가지고 오르기 너무 머니

나보고 근처에 혹시 샘물 있으면 찾아서 가지고 오라고 지시를 받아

빈 지게를 지고 여기 저기 길없는 숲을 뒤지다가 물 소리를 희미하게 듣고

숲 속을 확인하여 보니 작은 옹달샘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물의 양이 아주 작아 철모로 물이 고인 곳을 파서 움푹하게 만들며

한참 시간뒤에 물이 고이면 퍼 담기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하릴없이 기다리는 시간동안

혼자 숲 속에서 불렀던 노래가 바로 이 노래 비목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물길러 간 나를 찾으러 나온 고참이 내 노래소리를 듣고 난 후

내게 말하길,

"정이병은 다른 사람들 작업할 때 다른 곳에서 노래만 했으니 그 벌로

다른 사람들 땀 흘리면 일할 때 옆에서 노래불러라"

이렇게 좋을 수가..

물론 그런 노래 사역이 오래 가지는 않았지만

그 뒤부터 고참들은 틈만 나며 내게 노래를 시켰다.

 

작업중에 비가 왔다가 개이면 저 언덕 넘어 쌍무지개가 뜨는 것을 보기도 하고

작업 후 어두운 길을 내려오면 날라 다니는 반딧불이를 잡아

모자의 계급장 사이에 끼워두면 모자가 반짝 반짝 빛났다.

 

비가 하늘의 구름을 따라 천천히 옆에서부터 오는 신기한 광경도 산 위에서 보았고

그 힘든 시절에 산속까지 면회를 와 주신 어머니께서

흙으로 범벅된 내 런닝셔츠를 보고 한없이 우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어느 날 내 아이들에게 부탁을 해 놓았다.

아빠 죽으면 묘비에는 이렇게 써달라.

"여기 평생 노래를 좋아하던 이가 잠드노라"

 

해마다 6월초에는 화천에 조성되어 있는 비목공원에서 비목제가 열린다고 한다.

이 노래를 부르던 노성악가 오현명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길을 걸으면 노래가 흐른다

 

 

(사진은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