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남미 콜롬비아의 산토도밍고에서 음악이 있는 저녁

carmina 2014. 8. 15. 12:43

 

 

 

카르타헤나 산토 도밍고. (음악이 있는 저녁식사)

(2009년 )

 

카리브해를 끼고 호텔로 가면서 옆에 성곽이 있길래 단지 성곽만을
보존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 성곽안에 커다란 도시가 들어 가
있다. 실로 몇 백년 전의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고 그 안에는
대통령의 궁 같은 것이 있어서 오늘 같이 국가적인 행사가 있는
날에는 성벽에 창을 들고 서 있을 파숫군들이 긴 기관단총, 철모와
군화를 신고 성벽에 10 미터 간격으로 경비를 서고 있는 그 안에 있는
건물들에 식당과 선물가게들이 즐비하다.

택시를 타고 저녁식사를 위해 간 곳은 산토 도밍고. 옛 건물들 사이에
광장이 있고 그 광장에서 노천 식당이 널려져 있다. 식당의
종업원들이 부지런히 자기들 자리로 오라고 소리치지만 이미 정해진
곳이 있어 어느 골목을 찾아 들어가지만 도무지 식당들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몇 몇 옷가게도 실내에 옷 몇 개를 놓고 장사를 하고
있고 많은 집들의 문들이 굳게 닫혀 있는데 안내하는 현지인은 잘도
찾아 간다. 어느 레스토랑 같지 않은 집으로 들어가니 그 안에 조그만
테이블과 몇 손님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다. 


무척이나 지적으로 보이는 여 주인이 끈이 있는 큰 안경을 쓰고
주문을 받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면 생글 생글 웃는 모습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이렇게 주문 받는 것 조차 외국에서는 차이가 있다. 이런
것도 상품의 하나인데 우리 나라는 거의 모든 식당이 이런 면에 너무
소홀하다. 먹기 싫으면 관두라는 태도들, 왜 우리 식당에 와서 나를
괴롭히느냐는 표정들, 내가 주는 대로만 먹으라는 불친절, 굳이
특별하게 메뉴에 없는 것이나, 준비되지 않은 것을 시키면 무조건
안된다라고 하는 비장인정신 등?


아무래도 바닷가에 왔으니 해물이 제격일 것 같아 해물 종류를 알아
보니, 오징어, 바닷가재 등 별로 가지수가 많지는 않지만 요리 방법이
다양하다. 그 요리 방법을 하나 하나 설명해 주는데 현지어로 하다
보니 같이 간 현지인이 그것을 다 통역해 준다. 그래도 귀찮은
기색없이 설명하고, 통역해 주고..  너무 좋은 사람들.. 어떻게 이런
사람들 사이에 게릴라가 있고 반군이 있다는 말인가?


서양요리는 재료보다 어떻게 요리하였느냐가 더 중요하다.  메뉴도
주로 요리한 방법이 요리 이름이 되고 이런 것들을 잘 모르면 자칫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되어 나올 수가 있다. 스테이크도 Well
done을 시키면 너무 딱딱한 스테이크가 되어 나오기에 나는 항상
Medium Rare를 시킨다. 스테이크는 조금 부드러워야 맛이 있으니까..

소스를 곁들인 조그만 오징어가 먹음직스럽고, 매콤하게 만든
바닷가재가 입 맛을 돋군다. 해물덮밥을 시켰더니 같이 있던 직원이
쌀이 톡톡 튀긴다고 시키지 말란다. 난 그게 좋은데..


한국식당에 있는 요리 이름. 'GEDUPBOP' 'GEMULCHIKE'  자칫
스페니쉬를 모르면 개덮밥, 개물찌게같이 보이지만 스페니쉬로는
단어의 첫 G는 H로 발음하니 회덮밥, 해물찌게로 읽어야 한다.

다음 날 다시 저녁을 위하여 산토 도밍고를 찾았다. 이번에는
노천광장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와 있던 직원이 잘 가는
식당인듯 어느 자리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리를 잡고 말았다. 앉자
마자 옆으로 모이는 거리의 악사들. 기타하나 둘러 메고 홀로 혹은
여럿이서 노래를 주문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훌륭한 기타 솜씨들, 전통적인 라틴 음악, 남성들의 씩씩한 음성
그리고 쾌활함들이 이 들의 노래 속에 잘 나타내 보인다. 이 곳은
멕시코의 엘 마리아치 같이 전통적인 복장이나 당연히 있어야 할
바이올린 트럼펫 등의 악기 구성들은 상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악사들이 너무 많이 몰려 들어 사양하기에 바쁘고 악단 뿐만이
아니고 사진사, 구두닦이, 선물장사 등등 잠간 앉아 있는 동안에
수없이 옆에 와서 우리를 유혹한다.  왜 껌장사는 없을까?


5명이 앉아서 4인분을 시켰는데도 주인 아줌마는 상관없는 듯 그
뚱뚱한 몸매가 활짝 웃는 모습으로 주문을 받는다. 이런 낙천적인
매너는 어느 국민성에서 나오는 것일까?  한국에서라면 반드시 얼굴을
찡그리며 마지못해 주문을 받거나 혹은 1인분 더 시켜야 한다고
강매할텐데?


눈을 들어 주위를 바라 보니 내가 어느 유럽의 고성 가운데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긴 이 곳도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니
유럽문화나 다름없지.  하이델베르그의 어느 광장이 생각나고
이태리의 어느 식당이 생각난다. 


꼬치 요리, 오징어, 닭고기 그리고 게의 다리만 요리한 것으로 무척
맛있는 올리브기름으로 살짝 튀긴 마늘 빵과 함께 저녁을 즐긴다.
음식이 맛있는 것 뿐 만이 아니고 주위의 사람들, 이국의 풍경,
음악이 있고, 신기함이 있어 더욱 즐거운 저녁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이 있었으면 합창이라도 한 번 했을텐데 못내 아쉬웠다.

이런 곳에 특히 도둑들이 많다고 같이 간 현지인은 우리들 보고
조심하란다.  자기도 그런 경험이 있다면서 잃어 버린 후 현상금을
걸고 찾았더니 그 다음날 돈만 없어진 채 되돌아 왔단다.


많은 사람들이 이 환상적인 공간을 메우고 있다. 만약 이 곳에서
노래를 불러 본다면 어떨까?  아마 사방이 고성으로 둘러 쌓여 있어
좋은 반향이 나올 것 같은 생각만 한다.  노래를 주문한 어느 손님
앞에 4인조 남성 보칼이 열심히 노래를 불러 주고 있다,  베사메
무쵸, 콴타라메라 라 팔로마 등등..  아마 노래를 주문한 이는
외국인이리라. 그렇게 흔한 노래를 주문하는 것을 보니..


대략 한 번 주문하면 서너 곡은 들려 주는 것으로 보인다. 어디선가
그리 능숙하지 않은 기타 소리가 들려 보니 장발의 외국인이 가로등
아래서 혼자 흥겨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결코 남미 음악
같지 않은 노래를? 저 사람이 내가 가지고 싶은 기분을 내고 있다.

광장 옆에 특이한 선물가게가 있어 들어가보니, 각종 장식용 총과,
옛날의 기마병들 드리고 기사들이 사용했음직한 칼, 방패, 투구 등을
판매하고 있다.  투구를 들어 머리에 써보고 칼을 들어 보니 어찌나
무거운지 예전의 기사들은 힘이 아주 장사였던 것 같다. 장식용으로
사고 싶었지만 총이나 검 같은 것들의 운반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진즉에 포기해 버리고 만다.


비싸지 않은 식사비를 서로 나누어 내고 호텔까지 쿠체 즉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쿠체를 식당아줌마를 통해 호텔까지 가는
것으로 예약을 하고 우리가 선물가게에 들어가 한참의 시간을
지체했는데도 마음착하게 생긴 쿠체의 마부 아저씨는 한참을 기다려
주다가 결국은 안되겠는지 선물가게에 들어와 갈 것이냐고 묻는다.
고마운 아저씨같으니라고..


직원들보고 서둘러 쇼핑을 마치라 하고 마차에 올랐다. 따가닥
따가닥, 밥 공기로 말 발굽소리를 만들어 내는 특수 효과같은 고성의
바닥을 걸어 다니는 말발굽 소리가 너무 정겨워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수 백년 전 저런 말발굽소리와 함께 스페인이 이 땅을 점령한
후 이들의 피는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동양인보다 훨씬 더 못생긴
원주민들이 서양 사람들과 피를 섞고 난 뒤는 무척이나 훤칠한 키와
골격으로 남미의 모든 것이 유럽 사람들의 그것과 다름없이 되어
버렸다. 


쿠체가 시원하게 뻗은 해변가 도로를 천천히 달린다. 옆으로는 빠르게
지나가는 택시들, 자가용들? 천천히 가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길가에 한가롭게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자세히 보이고
성곽의 바위 하나까지 자세히 볼 수 있어 좋다.


이 곳의 젊은이들의 사랑표현은 직설적이라 사람이 옆에 지나가도
애인한테 사랑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대 부분 가벼운 입술
키스 혹은 볼키스에 불과하다.


이렇게 천천히 가는 인생을 즐기고 싶다. 길 옆에 있는 나무들,
바다에 부서지는 파도들의 물거품 그리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차근 차근 바라 볼 수 있는 인생의 여유를 가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