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도 나들길 3코스

carmina 2014. 11. 2. 23:33

 

2014. 11. 1

 

가을이 깊었다.

10월초에 강화도의 황금벌판을 보기 위해 16코스를 다녀 온 뒤

한 달만에 다시 나들길 중 가장 숲길이 긴 3코스를 찾았다.

 

그제만 해도 비가 온다고 해 조금 걱정은 했지만

비가오면 오는대로 길은 다른 매력이 있으니 개의치 않고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다.

 

날씨는 내 편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김포의 상공이 하얀 구름 맑은 하늘.

오늘 날씨 짱이다.

아침에 혹시 추울까봐 조금 두터운 옷을 입고 왔더니

버스에서부터 등이 덥다.

 

강화터미널 가기 전에 넓은 벌판의 황금벼가 알곡들을 모두 내보낸 뒤

자리에 누워 햇빛바라기하여 색깔이 변해 버렸다. 역시 화무십일홍이다.

 

평소 늘 모이던 허브향기에 모여 15명이 출발하였다.

거의 2달만에 보는 얼굴들. 늘 걸으며 자연을 얘기하던 길벗들이다.

이 중 몇 명은 강화주변에 살다가 걷기에 매력을 느끼고

강화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미 터전을 강화도로 옮긴 사람들도 있다.

 

3코스는 역주행이 편하다.

2시간 넘게 걸어도 숲이 끊이지 않는 즐거움.

오늘의 숲은 어떤 모습일까?

 

고려 원종의 비(妃) 순경태후의 묘인 가릉을 지나 숲길을 들어서니

들리는 걸음 소리가 다르다.  바스락..바스락..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이 눈 송이처럼 흩날린다.

아마 조금 거센 바람이 불면 함박눈처럼 쏟아질 것이다.

 

진강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새로 만든 정자는

그 안에 벤치가 없어서인지 늘 썰렁하다.

대개 정자는 전망이 좋은 곳에 세우는 법인데 왜 이 곳에 세웠는지

처음부터 의아해 했었다.

 

길벗들이 줄을 지어 오솔길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힘든 일을 일부러 할려고 오는 사람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스스로 찾아가는 자기와의 어렵고 힘든 싸움,

남을 위한 봉사, 예술을 추구하는 모습들..

적어도 이 길에서만은 금전을 얻기 위해 몸과 마음을 쓰는

이는 하나도 없다. 그래서 아름답다.

 

이 곳 숲길에 단풍나무가 없어서인지

여느 산처럼 빨갛게 물든 잎은 보이지 않는다.

은은한 자색빛깔의 잎사귀들과, 엷은 노란 빛들.

그리고 갈색잎들이 주종을 이룬다.

그러나 가끔 돌연변이가 있어 샛노랗게 뒤 덮힌 나무도 있어

이름이 궁금했는데 아는 이가 없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인지 어느 길에선 울타리도 쳐 있고

어느 길에선 차가 들어갈 수 없도록 사유지 표시와

간이철문도 세워 놓았다.

이러다가 가는 길마저 막을라.

 

리드하는 이가 이제 나들길도 주민들의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개선할려 한단다. 외지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지만

나들길을 걷고 모두 강화도를 빠져 나가도록만 되어 있어

실제로 지역주민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며

아마 길의 중간이나 도착점에 식당들이 주로 있는 곳으로

변경을 할 것같다.

 

지난 토요일 태안솔향기길을 갔을 때 놀라웠던 것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무척 많고

그 시작점이나 도착점에 있는 횟집들이 대형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을 보고는 이게 지역경제를 살리는 길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작은 언덕을 올라가는데 길이 쓰러진 나무 하나에 가로 막혀 있다.

일행 중 이 나무라 쓰러졌다고 강화군청에 얘기했건만 아직 치우지 않았다고

불평하며 다시 사진을 찍는다.

 

길가에 몇 년동안 등나무 넝쿨로 칭칭 감아올라가던 나무 몇 그루는 결국

넝쿨의 압박에 못 이겨 거의 고사지경이다. 누가 나쁜건가?

살기 위해 올라가야 하고, 어쩔 수 없이 나무를 죽이게 만들었다.

그러니 나무를 살리기 위해 등나무의 밑부분을 잘라야 하느냐

아니면 등나무를 살리기 위해 나무를 죽게 만들어야 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잠시 쉬는 동안 마주 오던 어느 커플이 인사를 해도 아무말없이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멀어져 가는 것이 꼭 신선 한 쌍이 지나가는 것 같다.

 

가을의 풍경이 아름다워 어디든 카메라 렌즈만 갖다대면 한폭의 그림이다.

은빛 억새와 파란 하늘의 하얀 구름이 자꾸 나를 유혹한다.

가을이다. 얕은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길벗들의 모습이 사뿐 사뿐 걷는 느낌이다.

 

석릉을 향해 가는데 문득 죽어가는 갈색 숲속에 산 것이 보인다.

진달래. 이 계절에 진달래가 피어 있다.

봄인지 가을인지 모르는 살짝 맛이 간 진달래다.

인간도 그러한 사람들이 있거늘, 하물려 꽃이야 그런 것이 없으랴.

 

조용한 석릉. 돌담으로 갇힌 무덤의 잔디가 조금 손상되어 있다.

아마 뜨거운 여름과 쏟아지는 비를 견뎌내지 못했나 보다.

그러나..그것도 아물어 가겠지. 세월이 지나면...

무덤 앞에 세워진 돌장승의 코도 오랜 세월 풍상에 조금씩 깍여나가고

마치 문둥이같은 모습 그대로 선 채 죽어간다.

 

긴 숲이 지나 마을 길을 걷는데 못 보던 황토집 한 채가 보였다.

반듯한 사각형으로 아직 진흙이 마르지도 않은 곳에

직접 집을 짓고 있는 주인인 듯 분에게 인사하니 집이 거의 마무리되 간다며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라고 권한다.

일행만 없었다면 들어가고 싶었지만 사양하고 가다보니

마당에서 가을 걷이를 마친 할머니들 몇 분이 김장준비를 하며

도토리를 다듬다가 우리가 인사드리니 순무김치를 사 가란다.

 

어느 집 마당에 발갛게 익은 감이 주렁 주렁 열려 있는 곳을 지나

길이 꺽어지는 곳에 하얀 집이 한 채 있었다.

봄이면 마당에 이쁜 꽃들이 가득 피었던 곳인데

같이 걷던 일행 중 한 명이 이 집이 우리 집이라며

잠시 쉬다 가자 한다.

집에 들어서니 피아노와 그림에 관한 영어 원서들과

커다란 모나리자 그림 하나가 내 호기심을 두드린다.

딸이 외국의 유명 화가들 작품을 전시하는 일을 한단다.

할 수만 있다면 주말에 이 집이 빈다면 친구들 불러다

노래하며 주말을 보내고 싶다.

 

올 여름에 비가 안와 가물어 바닥이 들어 났던 저수지에 물이 가득하다.

멀리 물오리들이 떠 있기에 훠이 소리쳐 떼로 날라가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그녀석들은 잠자코 있고 바로 앞에 있던 물가 숲 속에서 숨어 있던

물오리 때들이 푸드득 거리며 떼지어 수면 위로 날라간다.

얼른 카메라를 들이 댔으나 촛점이 맞지 않는지 셔터 속도가 늦었다.

 

물오리들이 머물렀던 수풀에 하얀 고양이 한마리가 스며 들어가고 있어

그 것도 찍을려 카메라를 들이 댔으나 워낙 빨라 그것도 실패했다.

 

저수지 바닥에 자란 빨간 색깔의 낮은 나무숲을 지나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간 야콘냉면 집에서는 우리를 위해 특별히 우족 전골을 준비해 주었다.

저렴한 가격에 야콘만두, 빈대떡, 야콘튀김 등을 준비해 주어

정말 푸짐하게 점심을 즐겼다.

우족전골의 마지막 국물맛은 어찌나 맛있던지..

 

가파른 저수지 둑길을 올라가니 강화의 간척지 논에 심었던 벼들이

모두 사라지고 하얀 솜사탕덩어리들이 군데 군데 떨어져 있다.

농촌풍경이 평화롭다는 것은 바로 이 모습이 아닐까?

 

긴 둑길을 지나며 길벗들끼리 흥얼거리고 노래하며 걷는다.

어찌 이 멋진 길을 아무말없이 지날 수 있으랴..

그건 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마을길을 따라 걷는 길 옆에 들깨들, 미처 손이 없어 따지 못한 가지들

호박들, 바닥에 널어 놓은 빨간 고추들, 발갛게 열매 맺은 산수유...

가을은 멀어져 간다.

 

3코스의 역주행은 전등사 뒷편의 정족산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지난 2주간의 해외출장 여독이 아직 남아 있는 것같아

온수리터미널까지만 걷기로 했다. 

 

큰 연하나만 있으면 바람따라 하늘로 날아가도 좋을 것 같은 맑은 하늘.

 

버스를 타고 먼길을 달려 집에 오니 아직 벌건 대낮이다.

낮잠을 자던 아내가 일찍 온 나를 의아한 눈으로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행복한 11월의 첫 날이었다.

내 인생이 늘 오늘과 같기를...

 

Remember Nove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