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16코스 서해 황금들녘길

carmina 2014. 9. 27. 23:53

 

 

2014. 9. 27

 

강화 나들길 16코스 서해황금들녘길 

 

올해는 왜 이리 9월 10월 토요일마다 결혼식이 많고 일이 많은지

10월에 일정을 보니 도무지 토요일은 하루도 시간을 못낼 것 같아

지난 해 강화 나들길 16코스의 그 황금벌판을 올해는 못보고 지나칠 것 같은 조바심에

9월의 마지막 날 토요일에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지난 해 기록을 보니 10월 초순이 넘어야 벼가 누렇게 익었기에

강화로 가는 길에 김포의 벌판을 아직 내가 바라던 색은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못보고 지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오랜만에 강화를 찾으니 터미널의 화장실도 5년만에 완전히 탈바꿈했다.

아마 인천아시안게임때문에 모두 보기좋게 개조한 것 같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주요도로도 말끔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아시안게임기간동안 차량 2부제 운영을 하니 도로도 한산했다.

날마다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창후리 선착장엔 평소같으면 교동으로 떠나는 사람들로 붐빌 시간인데

교동 연육교가 건설되어 이젠 교동까지 여객선은 운항되지 않아

선착장으로 향하는 입구에 크게 열려진 철문이 쓸쓸해 보인다.

주차장 한 켠에 항상 그물망에 가득히 널어 말리던 생선들도

오늘은 잔 생선만 조금 보이고 수없이 많은 파리들이 촘촘한

그물을 뚫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바닷길로 향하는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작은 길.

보기만 해도 흐뭇한 이 길이 16코스를 안내하는 긴 길이다.

그 길 옆에 조용한 집 한채의 담장 안에 탐스런 감들과 커다란 배가 주렁 주렁 열리고 있다.

누군가 흑심을 품었다면 이 과일들이 남아나지 않았을텐데 다행하게도 아무도

모진 마음을 가지지 못했나 보다. 감사해라.

 

나들길을 처음 나선 길벗들이 이 작고 일직선으로 뻗은 길에 이미 감탄사를 만발한다.

그러나 저 길 끝에 펼쳐질 또 다른 세상을 보면 더 놀랄걸요?

이 길은 오늘 새벽에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 지인 부부가 보내 준

산티아고 까미노사진과 너무 비슷하다.

 

하늘로 뻗고 있는 가을의 은빛 억새가 하얀 구름과 멋지게 어울려

수없이 셔터를 눌러야만 했다.

가을은 무거운 것들은 떨어트리고 가벼운 것들은 하늘로 올려 보낸다.

길가의 커다란 풀들이 내 키만큼 자라  열병식을 해 주고

멀리 보이는 희미한 석모도의 산들이 하늘의 구름과 멋진 자연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아! 가을이다.

 

황금벌판 입구 나들길 여권에 스탬프를 찍기 위해 만들어진

나무 상자 문구멍에 손가락을 넣으려다 그만 멈칫했다.

엄지손톱만한 청개구리가 그 구멍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를 어쩌나.. 손가락을 집어 넣어야 하나 그냥 두어야 하나.

머뭇거리고 있는데 청개구리가 안으로 들어가기에 문을 여니

또 다른 청개구리가 스탬프와 도장사이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

개구리들을 건드리지 않게 조심하며, 여권에 출발 도장을 찍고

문을 살짝 닫아 주었다.

미안하다. 남의 주택에 불법침입했어도 그건 네집이다.

 

서너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정도의 충분한 둑길.

길도 푹신한 흙길. 굳이 등산화나 트레킹화를 신지않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편한 길이다.

 

이 아름다운 길을 오손 도손 친구들과 같이 걸으면

얼마나 깔깔거리며 하루를 즐길 수 있을까?

이 멋있는 길이 오늘은 우리 만의 길이 되어 버렸다.

 

갯벌들이 썰물로 인해 서서히 모습을 들어내고

갯벌 위 아주 작은 게구멍들에서 나와 놀고 있더 게들이

인기척에 놀라 순식간에 동시에 사라졌다가 가만히 있으니

눈치를 보다 다시 동시에 나와 갯벌의 표면을 움직이고 있다.

 

누런 황금색의 망월 벌판. 아직 약간 푸르름의 빛이 보이기는 하지만

파스텔톤의 넓은 황금벌판은 좌우로 그리고 멀리 앞으로

시야가 닿는 먼 곳까지 펼쳐져 있다.

지난 해 보았던 수없이 많았던 제비들의 무리는 어디로 갔을까?

아직 곡식이 덜 익어 보이지 않는 것인가?

참새들도 보이지 않는다. 아직은 때가 안 된 것 같다.

 

갯벌로 나있는 긴 돌방죽에 않아 홀로 낚싯대를 드린 아저씨도

아직 때가 아닌 듯 미끼 뜯긴 빈 낚싯대를 들어 올리고 있다.

 

바다 건너편에 지난 번 다녀온 석모도 상주해안길이 또렷이 보인다.

그리고 뒤에는 별립산. 멀리 보이는 건 적석사가 있는 낙조봉 등...

바람이 살랑 살랑 불고 있다.

양팔을 펼치니 겨드랑이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평소같으면 바다로 이어진 돌방죽 끝에 낚싯군들이 점령하고 있을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뜸하게 보인다.

 

작은 쉼터에 만든 나무 터널에 담쟁이 넝쿨을 올려야겠다.

내년 여름쯤엔 볼 수 있을려나.

 

둑과 황금벌판 사이의 작은 수로에도 낚싯군이 있는데

제발 저 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현장 사진을 찍어 둔다.

 

자식같은 벼들이 잘 자라는지 동네 아저씨들 자전거로 긴 논길을

달려가고 있다. 벼들을 지키는 것은 골골이 심어둔 수숫대일까?

어느 곳이나 허수아비같이 수숫대를 심어 놓아 벼를 익는 지표로 삼아도 될 것 같다.

 

다행하게도 아직 큰 태풍이 없어 쓰러진 벼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미 벼를 수확한 곳에는 박 베어낸 듯 벼들이

가지런하게 누워 있어 그것조차 아름답다.

 

바닷물이 썰물되어 열려진 공간에 하얀 백로가 먹이를 찾는다.

어부들이 썰물 때 고기를 잡으려고 쳐 놓은 그물 막 근처에는

온갖 바닷새들이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다.

 

신축된 망월돈대가 아직 자리잡기 전에 사람들이 올라가 또 무너졌는지

여기저기 때운 자국이 가득하다. 이 돌들은 몇 십년 몇 백년이 지나야

다른 돈대처럼 고색창연하게 변할까? 하얀 빛의 돌 위로 천천히 흘러가는

하얀 구름이 하늘과 땅의 멋진 경계선을 만들고 있다.

 

갑자기 벌판 사이로 트레킹 복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 온다.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 들은 돈대에 올라가지도 않고

그대로 통과하며 빠른 걸음으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제까지 나들길을 이렇게 무표정하게 아무 인사도 없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는데 내가 인사를 해도

건성 건성 받는다. 트레킹을 위한 트레킹인가?

 

다시 계룡돈대까지 이어지는 길은 야생풀들이 가득해

겨우 발 하나 지나갈 정도로 길이 좁고 풀들이 무성하다.

거의 정글을 걷는 기분이다. 이것도 좋다.

만약 이 곳에 잡풀대신 코스모스를 심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일행도 타 그룹에서 온 일행들도 무아지경으로 걷는다.

나? 나는 여유를 누리며 실컷 사진을 찍으며 걷는다.

길과, 사람과 바다와 하늘을...

오늘따라 구름이 뭉실뭉실 떠가며 수만가지 형상을 보여준다.

둑위에 누워 구름만 보아도 하루 종일 즐거울 것 같다.

 

계룡돈대에 몰린 많은 사람들이 옹기 종기 모여 간식을 먹더니

안내를 멋지게 하는 듯 홀연히 모두 사라져 버린다.

 

벌판 옆을 걸을 때는 보이지 않더니 높은 돈대에 올라 옆으로 보니

격자무늬의 벌판이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계룡돈대를 넘으면 벌판을 보는 풍경은 끝이 난다.

그 끝에쯤에 편하게 앉아 바다를 보라며 튼튼한 벤치를 몇 개 만들어 놓았다.

 

앞서간 많은 일행들이 모두 식당으로 들어가 움직이지 않는 용두레처럼  

동네가 조용하다. 식당앞에 마을 아저씨들만 담소를 나누고 있기에

인사하고 쉬고 있으니 일행 중에 안면있는 아는 이가 맛있는 포도를 내 온다.

 

자. 여기서부터 지난 번 코스와 다르다 하니 눈 부릅뜨고 길을 찾아 보자.

오래 된 마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양철로 덮은 정미소가

다 녹슬어서 툭치면 무너질 것 같다.

 

이정표가 여기서부터 변한다. 황청저수지로 가다가

덕산산림욕장으로 해서 외포리로 갔던 길이

관상수도원을 지나 덕산 숲길을 우측으로 돌아 외포리로 간다.

이정표가 없을지도 모르니 나들길 전문리더가 전화로

길 잘 찾으라며 상세하게 알려 준다. 고마운 사람.

강화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것을 부탁하고 물어 보아도

한 번도 싫어하는 기색이 없다. 말없이 리딩하고 길벗들을 소소한 것같이

챙기면서도 내색한 번 하지 않는다.

 

낙엽이 쌓여 고즈넉한 길을 지나 관상수도원으로 가는 길 바닥에

수도사같이 흔들림 없는 움직임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 또 내 욕심을 자극하는 빈집과 잘 가꾸어 놓은 집들이 보인다.

이러다가 진짜 강화에 집 한 채 살라.

 

가파른 관상수도원 언덕길을 지나 바로 정문 앞에서 담을 끼고 오른쪽으로 도니

무수히 많은 밤송이들이 떨어져 있다.

같이 걷는 이들이 떨어진 밤톨을 줍느라고 뒤를 따라 오지 않는다.

한 참을 기다리가 다시 조금 경사진 숲길로 접어 드니 

멋진 산책길이 나온다. 수도사들의 산책길인가?

왜 이런 멋진 길이 이제야 나들길에 포함되었을까?

숲 길 한 가운데 이미 털려 버린 밤송이들의 시체가 그득하다.

숲길을 한 참을 들어가다가 나들길 이정표를 하나 발견.

 

이젠 더 멋진 숲길이 펼쳐진다.

아무도 걸어보지 않았음직한 작은 숲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아마 덕산을 길게 돌아가는 코스인 것 같다.

아직 리본이정표가 별로 없지만 길을 찾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오늘 사람들이 한 명도 지나가지 않은 듯 앞서가는 내게

거미줄들이 쉴 새없이 막아선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나.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히고 손수건이 폭 젖을 정도로 걸었을 때

길 옆에 다 쓰러져 가는 배 한 척이 숲 속길에 들어와 있다.

그 앞에 강화 유스텔이라고 커다란 간판이 보이고

여기서 밑으로 내려가니 도로 옆에 이제까지 강화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상한 조형물이 길 가에 가득하다.

옛날 사람들의 풍습을 보여 주는 돌 인형,

등대 모형, 돌로 만든 커다란 배, 등등... 

여기가 어딜까? 이정표를 찾아도 없다.

 

전화로 물으니 숲을 나와 위로 올라가야 외포리가 나온단다.

그러니까 이 길은 외포리를 지나 망양돈대를 지나가면 나오는 길이다.

이제까지 한 번도 차로도 가지 않은 길이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언덕을 넘으니 바로 눈에 익숙한 외포리가 보인다.

오늘의 여정은 여기서 끝낸다.

그리고 맛있는 전어구이와 전어회무침 그리고 칼국수를 다같이 즐겼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당분간 바빠서 나들길을 오지 못할 것 같다.

차가운 바람이 불 때 쯤 다시 와야겠다.

 

뭉게구름 둥실 떠가나 연노란 벼들이 층층이 열을 지어 익어 가는 것을 보며

제발 수확전까지 태풍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마침 오늘이 강화 장날이라 풍물시장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숲속길은 호젓해야 걷는 맛이 나고

장날은 이렇게 복잡해야 사람 사는 맛이 나지.. 

 

그리고 나는 오늘도 걷는 맛에 사는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