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상주해안길

carmina 2014. 8. 7. 22:26

 

 

나들길 19코스 석모도 상주 해안길

 

무려 3개월동안 강화나들길을 찾지 못했다.

주말근무를 해야 한다는 회사 정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토요일마다 냉방시설도 안되는 사무실에 나와 비지땀을 흘렸고

주말 근무 정책의 강도가 조금 옅어지자 슬쩍 토요일 근무를 빠지고

폭염 경보가 내려진 날에 석모도안의 두번 째 나들길인 상주해안길 걷기에 나섰다.

 

3달만에 찾아가는 길은 부천에서 김포가는 버스 노선도 달라지고

강화터미널 건물안에 볼품스럽게 남아 있던 버스시간표 담에

멋진 테이크 아웃 카페가 생겼다.

 

늘 관광안내소에서 안내를 해 주던 이도 이젠 역할을 끝내고 사라졌고

대신 안내소가 약간 넓어졌지만 근무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시간에 떠나는 외포리 행 버스를 타고 석모도 선착장에 도착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 대한다. 언제봐도 즐거운 얼굴들..

 

휴가시즌이라 무척 붐빌 줄 알았는데 석모도 들어가는 차량도 비교적 적었고

배낭을 멘 여행객들은 우리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새우깡이 그리운 갈매기들은 갑판위에 나온 사람들의 눈치만 보다

멀리 다른 배를 찾아 날아가 버렸다.

한적한 포구에 생전 처음보는 모습의 하얀 나비가 바닥에서 날개를 휘젓고

날아갈려고 바둥거리나 어디를 다쳤는지 결국 날지 못했다.

 

선착장에서 상주가는 버스 한대는 오늘 우리 때문에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기사아저씨가 기분좋았던지 운전하면서 여기 저기 지명 설명을 해 주신다.

 

10시 45분 출발. 오늘은 역으로 걷기로 했다.

지난 1월 반대 방향으로 혼자 걸으면서 이 길을 역으로 오면 힘들겠다고 생각했던

가파른 세멘트 언덕은 불과 15분 정도 올라가니 언덕 위에 도착했다.

 

상주해안길 코스가 조금 짧다고 하여 코스에 없는 상주산을 올라 간다기에

별로 높지 않을 것 같아 올라가면서 저 멀리 펼쳐지는 해안과 벼가 파랗게 자라나는

들판을 보며 걷는데 날씨가 더워서인지 정상을 앞에 두고는

숨이 차고 다리에 맥이 풀려서 꾀가 생겼다.

내일 인도출장이 있으니 무리하면 안되겠다는 스스로의 변명으로

산 언덕 그늘에 앉아 몇 명이 옹기 종기 둘러 앉아 간식과 함께 귀신 싸나락을 까먹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정상까지 올라갔던 사람들이 얼굴이 벌개져서 내려온다.

너무 힘들었다고...아이고 안 올라가길 잘했네..

 

내려오는 길에 일행 중 한 명이 벌에 물렸다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여름이라도 늘 긴팔 옷을 입어야 한다.

 

모두들 산을 내려와 힘이 드는지 세멘트 도로 언덕에 모두 길게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도 술에 취한 듯 벌건 채로....

 

벌써 12시가 넘었는데 점심 먹는 곳까지 갈려면 거의 한 시간 반을 가야 하기에

서둘러 일어나 상주산을 휘 둘러가는 숲길을 걷는데 평소에 그다지 힘들지 않았던 길인데

워낙 폭염속을 걸으니 모두 힘들어 한다.

평소 힘차게 걷는 이들도 오늘은 뒷모습을 보니 모두 휘청거리며 걷는 것 같다.

 

그래도 가끔 모퉁이를 돌아갈 때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이 시원한 수박맛이다.

숲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바람을 막아 더 덥게 느껴진다.

언덕같지도 않은 언덕이 힘들게 느껴지고, 좁은 숲길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느끼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닌가 보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이제껏 나들길 걸은 날중 제일 힘들다고 맞장구치고 있다.

 

적어도 물병 2개씩 정도는 가지고 왔는데 벌써 마실 물도 떨어져 가고, 힘들어 할 때 쯤

숲속을 벗어 나오니 평지를 걸으니 바닷바람이 불어와 시원.. 시원..

 

길가에 짓다만 건물 안에  잡초가 우거져 있다. 사방이 막혔을텐데 어떻게 저리 자랄까?

 

드디어 점심 먹을 식당.

모두들 마당의 수도꼭지를 틀고 머리에 쏟아붓고 있다.

나도 식당 들어가자 마자 평소같지 않게 양말을 벗어 버리는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맛있는 비빔밥을 먹고 난 후 갑자기 가격시비가 붙었다.

비빔밥 가격을 만원이라 하니 누군가 만원짜리에는 소고기가 들어가야 한다며 불평하니

모두 한 목소리로 그렇다며 결국은 2000원 깎았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만 해도 더 이상 걷지 말자고 모두 죽을 듯이 하니

리더가 걷기 싫은 사람은 버스시간표를 알려주고 버스타고 오라며 먼저 배낭들고 나선다.

창문밖에 부는 바람을 알려주며 앞으로 걸을 길은 비록 그늘 없어도 덥지 않을 것이라고

갈 사람은 가자고 하니 몇 몇 사람이 따라 나서고

나도 그렇게 힘들더니 밥을 먹고 나니 언제 힘들었냐는 듯 다리에 힘이 생긴다. 

상주산을 뒤로 하고 나오는 나들길은 자연과 길 걷기를 죽도록 사랑하는 우리만 존재한다.

 

가끔 꽃들과 강아지풀이 가득한 둑방길을 걸으니 오전의 힘들었던 고생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걸음이 빨라지고 수다가 늘어난다.

나이든 어느 아주머니 강아지 풀을 두개 꺽어 콧구멍에 끼고

'나 김동규같지? 하고 같이 가는 여자들에게 자랑하다 그만 나와 얼굴을 마주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간다.

 

참새들 무리가 우리가 가는 길의 앞에서 계속 앞서 날아가며 길을 열고 있다.

하늘에 구름도 가득해 뜨거운 햇빛을 막아 준다.

그러나 무려 한시간이 넘는 거리인데 중간에 잠시 앉아 쉴만한 곳이 없어 조금 힘들었다. 

 

길이 즐겁다.

사람이 좋다.

뜨거운 폭염 속이라도 길이 있어 좋다.

그 어려움을 같이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