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겨울바다에 핀 꽃 (나들길 7코스 갯벌보러 가는 길)

carmina 2015. 1. 18. 15:54

 

 

2015. 1. 17

 

사막의 나라 사우디의 닫힌 공간안에서  2박 3일 종일 일만 하다 돌아 오니

무언가 나를 해방시키고 싶었다.

 

사우디도 지금 겨울이라 여름양복을 가지고 갔더니 추웠고

밤에도 반바지 입고 자는 것도 추울 정도였다.

 

7코스는 출발점과 도착점이 같아 차를 가지고 나왔다.

강화 벌판에 겨울새들이 무리지어 하늘을 나르고 있다.

끝없이 이리 저리 자리를 옮기는 철새들.

낮은 산 넘어로 한 떼가 날아오더니 그 다음엔 다른 산에서

또 다른 한 떼가 날아온다.

어떤 새는 2마리, 어떤 새는 한가족같은 5마리

어떤 새는 유치원같이 그룹으로 몰려 다닌다.

벌판은 죽었는데 그 속에서 살아 있는 것들이 벌판을 움직이고 있다.

 

요즘 토요도보가 참여도가 적어 몇 주전에는 5명인가 걸었다는데

오늘은 무려 16명이나 모였다. 리딩하는 이가 표정이 밝다.

그냥 댓가도 없이 자원하여 하는 일인데도 사람인지라

인원수에 따라 아마 마음이 편치 않을 때도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여느 때보다 웃도리 옷하나를 더 껴 입었다.

그래서 그런지 갑갑하긴 해도 몸이 춥지는 않지만

모자를 귀까지 덮고 목토시를 코까지 올리지 않으면 한기에 살이 차갑다.

 

작은 개천의 물이 다 얼어버렸고, 길가에 검은 덮개로 두텁게 가리운

인삼밭을 보니 더 차갑게 보인다.

추위에 어깨를 웅크린 둑길을 걷는 길벗들의 그림자가

텅빈 옅은 갈색의 논에 비친 검은 그림자는 마치 패잔병들이 걸어가는 것 같다.

 

늘 걷는 길이지만 작은 고개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푸르다 못해

창백함을 먼저 생각되게 하는 것은 아마 날씨 탓일 것이다.

평소 이 곳을 지나면 들르던 역사있는 내리 성당도 오늘은 누구도

가보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갑자기 소방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갔는데 우리가 올라가야 할 길목에

서 있었다. 혹시 산불이 난 것은 아니겠지.

세멘트 도로를 올라가는데도 소방차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기도 한다.

이미 진화된 것일까? 조용해야 할 산길에 차 소리가 정적을 깨고 있다.

 

비탈 진 언덕길을 올라가니 추위에 언 내 몸이 조금 열이 나며 등에 따뜻함이

그리고 두터운 장갑안에서도 차갑게 느껴지던 내 손도 온기가 느껴지고..

 

이 길을 걸어 본지 오래되서인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주변의 모습이 보인다.

작은 사찰이 새로 지어 지고 있고 산 기슭을 깍아 평지를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아

집터를 닦은 것 같다.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 몇 개의 컨테이너 놓여져 있다.

 

일행 중에 이 근처에 자기 집이 있다며 잠시 마당에서 쉬고 가자기에 따라가니

길가에 하얀 집으로 안내하고는 마당에서 커피를 즐기는데 집에 있던 그 분

남편이 개량한복을 입고 우릴 반긴다. 깔끔한 외모라 직업을 물어보니

여의도에 있는 대기업에 근무하고 여기서 출퇴근한단다.

그 사실이 얼마나 부럽던지..

멀리 용인에서 온 길벗 한 분이 돼지 족발을 간식으로 싸 왔기에

이 추운 날 아직 온기가 식지 않는 족발을 먹으며 한껏 기분이 좋아진다.

집에서 기르는 커다란 개에게도 한 입 넘겨 주기도 하고..

 

그 개가 얼마 전 고라니를 4마리나 물어왔기에 그걸 달여주는 곳에 가서

무릎 관절에 좋은 보약으로 만들어 왔다고하는데 마침 집 옆 산에서

작은 고라니 한 마리가 산으로 튀고 있다.

 

그 개가 우리 길을 계속 따라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그 집 주인은

되돌아 가 버렸다. 

 

펜션촌을 지나는데 갖가지 소품들을 길가에 장식해 놓은 개인 집들이 많아

그 집 마당을 넘겨 보기도 한다. 역시 마당의 잔디도 잘 다듬어져 있다.

작은 나무토막으로 만들어 좋은 소품들이 길을 걷는 이들을 즐겁게 해 준다.

이 모습을 다른 이도 보았는지 비슷한 소품들이 몇 개 보인다.

강화나들길 이정표 위에도 재미있는 소품을 올려 놓아 좋아 보인다.

 

여름엔 이 길에 산딸기와 개복숭아가 참 많았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모두 죽은 풀잎들 뿐이다.

그러나 그 죽은 나무가지들 사이로 흰 꽃들이 피어 있다.

자세히 보니 으아리꽃의 이파리들이 시들은 채로 매달로 모두 하얗게 변해 버린 것이다.

그것 또 한 아름답네.

 

언덕을 올라 가니 교회가 있는 평화스러운 마을 저 뒤 

우리가 가야할 길 넘어로 멀리 바다가 보인다.

바닷가에 하얀 띠. 밀려온 파도가 차가운 날씨에 얼어 붙어 생긴 흔적이리라.

 

벌판을 가로 질러 가니 바다와 벌판 사이의 큰 하천에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여러 대를 놓고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우리가 인사를 해야 겨우 아는 척을 하고는 다시 뚫어지게 찌만 보고 있다.

하루 종일 저렇게 앉아 찌를 보고 있으면  다른 잡념이 들 것 같지 않다.

바닷가 둑으로 올라갔다.

썰물 때인지라 갯벌 저 끝 아득히 먼 곳에 바닷물이 보인다.

 

이 길은 지난 해 한 번도 걸어 보지 못했다.

여름에 여기 코스에 둑이 폭우에 무너졌다 해서 한 번도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길이 조금 달라졌다.

아마 무너진 둑을 보수하면서 다른 부분도 같이 보수한 것 같다.

  

원래 둑을 지나 산길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물이 모두 나가 있으니 바닷가를 걷기로 했다.

바람에 떨어진 나뭇가지들이 바다에 떠밀려 이리 저리 헤매다가

바닷가 숲 속에 몰려 있다. 나무들이 밟으면 바스라질 정도에

오랜 세월이 그 곳에 머물러 있었다.

 

얼어붙은 하얀 파도들은 바닷가의 커다란 하얀 꽃이 되어 있었다.

끝도없이 긴 긴 흰 꽃밭. 일부러 등산화 뒷굽으로 그 꽃들을 밟아 본다.

와삭 와삭 무너지는 소리가 기분이 좋다.

바닷가의 풀잎들도 완전히 땅에 납작 엎드린 채 겨울 바람을 피하고 있다.

풀잎의 생존 방법이리라.

 

오랜 세월 파도가 할퀴고 지나간 바위에 새겨진 무늬들을 보니

문득 화가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 연상되었다.

태양의 무늬를 그려 넣은 고흐의 화풍이 바위에서 보인다.

혹시 고흐도 이 바위를 보면 대개중의 햇빛 뿐 만이 아니라

바위도 이렇게 그렸을 것 같다.

 

길 벗들이 바닷가에서 굴을 주웠다고 소리치며 내게 전해 주기에

가만히 보니 굴이 몇개 들어 있어 깨뜨려 보니 하얀 굴이 있긴 하지만

얼어 버렸는지 마치 상한 것 같이 보였다.

누군가 그 찬 굴을 먹어 보고는 기분좋아 한다.

걸으면 이런 재미가 있다.

 

산길에는 썩지 않는 낙엽이 눈처럼 소복하고 와삭거리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

신발로 낙엽츨 쓸어가며 걸었다.

 

북일곶돈대에서 바라본 바다. 멀리 이전에는 강화도의 일부였다는 장봉도와 시도가 보인다.

젊은 시절에 나는 안 갔지만 형님들이 그 곳으로 여름에 여행을 갔던 기억이 있다.

멀리 배로 한시간 반넘어 걸리는 주문도도 보이는데 거리상 그렇게 오래 갈 거리가

아닌데 왜 그리 오래 가나 했더니 바닷가 물길 때문에 일부러 돌아가느라 그렇게

걸린단다.

 

시간은 이제 막 정오가 지났는데 태양은 아직 하늘의 가운데 오지 못한 채

긴 태양의 흰 그림자를 바다 위에 드리운 채 천천히 공간을 흐르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평화스러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길은 바닷길로 다시 산길로 다시 바닷길로 다시 산길로 아기자기하게 이어진다.

바닷길을 걸을 때 심하게 부는 바람에 장갑을 껴도 손이 시렵고 등이 차가운데

산길 양지밭으로 들어서면 금새 바람한 점 불지 않고 따뜻한 햇빛에 기분좋다. 

산은 산대로 푹신한 낙엽이 좋다 바다는 바다대로 촉감좋은 갯벌이 좋다.

바닷가길에는 고라니의 두개의 굽이 선명하게 보이는 발자국이 찍혀 있다.

동물의 길이 자연의 길이요 우리의 길이다.

 

장화리 낙조 전망대 인근에는 썰매장과 철새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 차들이 많이 들어오고

매일 낙조가 될 때 사람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비닐텐트도 만들어 놓았다.

 

여기 7코스를 올 때 꼭 점심을 먹는 갯벌식당은 늘 단체여행객들의 식사로

발 디딜틈이 없었는데 오늘은 우리만을 위해 조촐히 점심을 준비했다.

여기서는 늘 생선 볼테기탕을 먹는다. 국물이 시원하고 곁들여 나오는

간장게장과 두부조림이 상당히 맛이 있다.

 

점심을 먹고 펜션촌을 지나 숲길로 들어섰다.

울창하게 솟은 나무들. 긴 긴 숲길.

7코스에는 여기 숲길이 가장 마음에 든다.

숲길도 넓고, 평평하고, 길 옆에는 갖가지  나무들은

이 모양 저모양으로 하늘 높이 솟아 있고 얼크러 설크러져 있다.

 

이제 길이 끝나간다.

마을 길로 내려 오니 지나치는 길의 집들의 주위 나무들에 피었던

꽃들의 기억들이 주저리 주저리 전설처럼 떠 오른다.

벼락맞은 나무도 그대로 남아 있고..

저 나무에는 얼마나 많은 전설과 사연들이 있을까?

다 무너져가는 집들에는 어떤 가족들이 어떤 웃음과 어떤 슬픔들이 있었을까?

 

게으른 밭에는 가축의 사료로 쓸만한 짚더미들이 겨우내 밭에 방치되어 있고

감나무 높은 곳에 주렁 주렁 열려 있던 까치밥용 감들도 이젠 모두 얼어붙은 채

땅에 떨여져 사람들과 차들의 바퀴에 문들어져 버렸다.

이 겨울이 지나면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겠지.

얼어붙은 땅 속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들이 숨어 있을까?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시골의 봄은 성격이 급해 도시보다 더 빨리 달려 올 것이다.

그러나 아직 겨울은 봄이 오지 못하게 더 추워져야 하고

폭설이 더 많이 와야 하고, 바람은 더 심하게 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올 것이다.

 

꽃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