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가을바다속으로 스며드는 빛이 아름답던 날 (나들길 2코스)

carmina 2014. 11. 30. 00:25

 

 

2014. 11. 29

 

금요일 비가 와 토요일 날씨를 우려했는데

외곽순환도로를 드라이브 중에 멀리 보이는 아파트와 낮은 산 밑에

안개가 걸려 몽환적인 풍경에 혼자 탄성을 터트렸지만

운전중이라 사진을 찍지 못함이 아쉬워 하는데

가을 하늘 높이 기러기들이 V대열로 하늘로 날고 있다.

가을이다. 그것도 늦가을.

단풍은 빛을 잃었고 요즘 바람불고 비가 몇 번 오니

낙엽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하다못해 빛 바랜 강아지풀조차 마치 주인 잃고 헤매이는

털빠진 강아지처럼 고슬고슬했던 잎들이 여기 저기 뜯겨 나갔고

싸리 잎 조차 도도하던 이파리들이 모두 땅으로 향하고 있다.

 

오늘은 2코스를 역으로 걷기로 했다.

그러면 초지진에서 갑곶돈대로 걸어야 하는데

초지진에서 덕진진까지는 세멘트 길이라 건너뛰고

덕진진에서부터 걷기로 했다.

 

도로에서 바로 숲길로 이어진다.

개인 사유지 옆을 통과하기에 큰 돌로 조경을 해 놓고

멋진 전통대문을 만들어 놓은 곳을 지나야 한다.

길을 안내하는 이가 이 곳에 아마 카페가 생길 것 같다 한다.

강화에 교통이 편해지니 여기 저기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육지의 틈을 타고 들어온 바닷물의 아침 햇살에

무채색의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곳에 뜨거운 캔 커피 하나 사들고 물가에 앉아

조용히 세월을 음미하고 싶다.

 

낙엽이 가득 쌓인 오솔길.

나도 가을에 입기 위해 등산복도 가을 색을 택한다.

행여 가을 숲이 놀라지 않기 위해 보호색을 만든다.

덕진진에는 특이한 비석이 있다.

일종의 경고비 라는 비석.

외국의 배들이 들어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만든 비석인가?

그 아래 가을 바다를 타고 빛들이 수면위로 반짝거리며 쳐들어 오고 있다.

그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다보는 길벗들의 실루엣조차 아름답다.

멀리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는 배가 길게 하얀 포말을 그리고 있다.

한적한 덕진진을 내려와 가을 숲속을 걷는다.

 

덕진진 밑에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돈대에

검은 대포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그 때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 대포들은 적군을 죽이기 보다는 배에 구멍을 뚫어 버려

배를 침몰시키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

 

하늘이 완전히 파랗게 질려버린 채 바다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늘 뿐만이 아니라 온갖 육지의 모든 것을 동반 자살.

 

이제 광성포대로 향한다.

포대로 향하는 길에 높은 감나무의 사람손이 닿지 않는 곳에는

까치들을 위해 감들을 남겨 두었다.

혹시나 나뭇가지를 던져 감을 따 볼까 했지만

차라리 감나무 밑에 입벌리고 있는 것이 낫겠다며 길벗이 웃는다.

 

아무리 여러번 표현해도 오늘 하늘과 바다는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어쩜 이리 조화가 아름다울까?

빛들이 스며든다. 숲으로, 바다로, 돌로, 사람들 등산복사이로..

 

처음 나들길을 시작한 것이 5년전 2코스였다.

그 때는 한 여름이었는데 늘 차를 타고 지나가는 옆에 이렇게 멋진 길이

숨어 있는 것을 알고 감탄하며 걸었었다. 그리고 한 번 빠진 나들길에

이젠 도무지 담가놓은 발을 뺄 수 없을 정도로 나와 나들길이 하나가 되었다.

오죽하면 이 곳에 살고 싶었을까?

이런 생각은 나만이 아니다.

같이 걷는 길벗중에는 나같은 소원을 이미 실현시킨 사람들이 여럿이다.

 

야생의 멋도 좋지만 길가는 편의를 위해 여기 저기 울타리도 만들어 놓고

바닷물이 들어 오면 바닷가 길을 가는데 어려우니 돌도 가져다 놓았다.

언덕이 있는 길에는 버팀줄도 해 놓았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렇게 해 놓지 않으면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이건 경제 원리랑 같다.

 

숲길을 가다보면 문득 고라니가 옆에서 튀어 달아날 것만 같다.

흙길이 좋은 곳. 강화 나들길.

 

광성보로 올라가는 길에 낙엽은 그야말로 카펫트보다 푹신하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촉촉한 낙엽은 여러 사람이 밟는데도 소리가 없다.

여름은 여름대로 즐거웠고 가을은 가을대로

여름의 좋았던 추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좋다.

 

광성보의 용두돈대에는 멋진 학습자료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임금님을 안전하게 구한 선돌의 전설도 있고

미군들의 조선인 학살터가 남아 있어 학생들도 많이 찾는다.

이 곳을 전문으로 설명해 주는 가이드가 있어 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바닷물이 소용돌이 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다른 바닷물소리와는 전혀 다른 회오리소리가 들린다.

 

강화도와 김포사이의 바다를 염하강이라 부르는데 김포쪽 강변에 하얀 별장이

귀족의 저택같이 멋져 보인다.

 

이전에는 올라오던 광성보 숲길만 보다가

반대방향으로 걸으니 새로운 아름다움이 보인다.

가끔 세상을 반대로 살아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아름다움은 늘 나와 함께 있지만 모를 수가 있다.

 

광성보는 원래 유료입장이지만 우리같은 길벗들은 다른 길로 들어간다.

만약 돈대갈 때마다 입장료를 내야 한다면 길을 포기 할 것이다.

옆길로 내려오는 길 옆에 오래된 집 추녀밑에 메주가 열을 지어 달랑달랑 걸려있다.

어머니는 매해 이 때 쯤 되면 메주콩을 절구에 넣고 빻아 메주를 만드셨다.

김이 무럭 무럭 나는 메주콩이 냄새가 너무 맛있어 먹다보면 설사하기 일쑤였다.

메주를 만들어 안방 아랫목에 며칠 묵혀 두면 집에서는 온통 메주냄새가 났다.

 

광성보입구에 새로운 조형물이 생겼다.

버스들이 돌아가기 편하게 만든 것 같다.

광성보에서 내려와 터진개쪽으로 걸어가는 길에 작은 둑길.

비록 길기는 하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고

여름에는 꽃이 많은 길이라 길어도 지루함이 없다.

단지 바람만 심하게 불지 않는다면...

 

터진개의 갯벌에 전시해 놓은 나들길 기념물들은

때가 되면 철거해야 할텐데 그대로 두어 지금은 흉물로 변해 버렸다.

그것도 예술이라고 말해야한다면 어쩔 수 없고..

 

갯벌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많은 청둥오리가 앉아 있다가

내가 소리를 치니 모두 동시에 비상한다.

김장하느라 배추를 뽑아간 자리에 푸성귀들이 남아 또 새로운 거름이 된다.

길을 걷는 내내 그렇게 썩어가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임금이 강화에 살던 시절 쌓아 놓았던 성벽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보수에 보수를 거듭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가 없다.

그래도 오늘도 여기 저기 공사하는 곳을 보았다.

그렇게 새로 보수해 놓은 곳도 세월이 지나 이끼가 끼면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오리라.

돈대의 돌에 하얀 이끼꽃이 피어 있다.

조금씩 진해지는 내 얼굴의 검버섯처럼..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많다.

홀로, 둘이서, 셋이서..그리고 가족들이..

이 바다에 망둥어밖에 없을텐데 낚싯대들은 왜 그리 좋은 것만 쓰는지..

그냥 대나무에 낚시줄 하나면 될터인데..

나는 젊은 시절 그렇게 잡았는데..

 

말끔이 다듬어진 오두돈대. 잔디도 곱게 깔려 있다.

오늘에야 오두의 한자 오자가 자라를 뜻하는 말임을 알았다.

자라같이 생긴돈대라..

 

빛을 잃은 잡초속에 노란 민들레가 유독 밝아 보인다.

그리고 길을 걷는내내 철모르는 개나리와 철쭉 그리고

목련이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도 그렇게 구분못하는 이들이 많은데 하물며

봄인지 구분못하는 꽃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둑길을 따라 참새들의 무리가 나보다 10미터 앞서 날아가기에

가메라 촛점을 맞추었다가 순간을 포착하기를 몇 번하다가

겨우 한 무리를 잡았다. 기분 좋다.

 

강화도를 걷다가 처음으로 중국음식을 먹어 보았다.

화도돈대 앞에 조금은 변형된 중극음식점.

맛이 소문난 집인지 사람들이 가득하다.

짬뽕에 홍합이 얼마나 많은지 홍합을 먹다가 보면

시금치를 넣어 녹색의 국수가 불어서 먹을 수 없을 정도라 한다.

맛있다. 탕수육도 먹을만하고..

 

돈대 위에 젊은이 두명이 양지바른 곳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다.

그리고 반대편 길에서 한 사람이 걸어 오는데 등산복에 삿갓을 썼다.

자기 멋으로 걷는다. 삿갓을 빌려 사진을 하나 찍어 보았다.

삿갓을 쓰니 갓이 너무 커서  전방이 희미하게 보인다.

이걸 쓰고 어떻게 걷지?

 

용당돈데에서 염하강 건너편을 보니 김포CC가 잘 다듬어져 있다.

그러나 산을 깎아 만든 흔적이 역력해 보기 안쓰럽다.

이젠 남은 길이 끝나간다.

 

오늘의 길은 날씨가 축복이었다.

비 개인 다음 날의 자연의 아름다움.

모두 씻겨 내려간 뒤에,

모두가 숨죽인 뒤에..

그 곳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나들길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다른 길도 마찬가지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