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남해 바래길 1일차

carmina 2015. 1. 7. 23:05

 

 

2015.1 1

 

여기가 한국인가, 이태리의 해안풍경인가?

여기를 어디 어촌의 모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생선냄새 풍기고, 허름해야 하고, 엉성하고 색깔없는 슬레이트 지붕과

다 쓰러져 갈 듯한 대문이 보통 어촌의 풍경이라고 당연시 여길텐데

이 곳 남해 바래길은 이제껏 다녔던 어촌의 상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이제껏 국내의 여러 곳의 트레킹 코스들을 다녀 보았지만

설마 저 곳을 갈까 하는 의아해 하는 곳에 코스를 만들어

매니아들을 즐겁게 해 준 바래길에 칭찬을 보내고 싶다.

 

남해바다의 다도해는 우리나라 국립공원에 속한다.

대개 국립공원은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등 커다란 산에 타이틀이 붙는데

남해의 다도해는 섬으로서는 유일하게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이 붙는 곳일 것이다.

 

2014년 연말 크리스마스 샌드위치데이

2015년 연초 샌드위치데이

두 번의 연속된 연휴에 한 번은 호스피스 봉사로 지내고

한 번은 캐나다에서 한국에 잠시 지내러 온 친구와 겨울 트레킹을 떠나기로 했다.

 

당초 여수 금오도 비렁길을 고려했으나 뱃시간이 잘 안 맞아

인근에 있는 남해 바래길을 선택하고 인터넷으로 교통편을 알아보니

동서울터미널에서 떠나는 것으로만 조회되기에 예약을 하고

소요시간을 보니 6시간. 왜 이리 오래 걸릴까?

그리고 잊었다가 아무래도 다른 편이 빠를 것 같아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진주까지 가서 남해를 가는 것으로 결정해 놓고

가능한 빨리 남해에 도착해 첫 날 잠시라도 걷기 위해 1월 1일 아침 일찍 떠났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내가 무언가 실수하는거야.

알고보니 왜 남부터미널에서 떠나는 것은 생각도 못했을까?

실수도 이런 실수가 없다.

 

바래길에 대해서 이것 저것 조회를 해 보았다.

그런데 코스마다 오고가는 교통편이 불편했다.

우선 점심식사 장소와 잘 곳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기에

안내센타에 전화해 자문을 구하니

오후에 도착하니 1코스의 중간부터 걷고 종점에서 자는 것이 낫겠다고 추천해 준다.

어쨋든 오전에 진주에 도착하여 생전처음 남해대교를 타고 남해로 들어갔다.

 

남해 도착하자마자 혹시라도 남해를 떠나는 날 표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같아

미리 예매를 해 놓고 1코스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바래길은 전체 10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고

남해군의 반도를 휘휘 돌아가도록 트레킹 코스 디자인되어 있다.

혹시 제주도처럼 밋밋하지 않을까?

바람이 너무 거세지는 않을까?

유명세도 있는데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까?

이정표는 잘 되어 있을까?

숙소 구하기는 쉬울까?

먹거리는 주로 무엇이 있을까?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기대하는 즐거움이 있다.

 

1코스 다랭이 지겟길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의 풍경을 보니

계절은 이미 한 겨울 속에 들어 와 있는데 다랭이 논들은

파란 모습이 보여준다. 무엇이 자라길래 저렇게 파랄까?

 

안내센타에서 알려 준 대로 사촌해수욕장에 내리자 마자

등산모가 강한 바람에 휘 날아가 버린다. 처음부터 쉽지 않네.

등산모의 내피를 내려 귀까지 덮고 옷도 목근처까지 지퍼를 올렸다.

그리고는 바로 바래길로 들어서니 거칠고 가파는 산길이다.

 

땅을 잘못 밟으면 돌들이 우르르 밀려 내려갈 것 같은 비탈길을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니 평평한 길이 나온다.

첫 번 목적지인 몽돌해변을 따라 가니

길가의 커다란 느티나무 하나가 도로의 중간 정도 공중까지 뻗어 있다.

아마 거센 태풍이라도 불어 쓰러지는 날에는 지나가는 차가 위험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안도 잠시.

눈 앞에 펼쳐지는 선구 몽돌해안의 아름다운 광경에 넋이 나가버렸다.

큰 활 모양의 해안가에 작은 집들이 보이고 그 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보며

내 입에서 탄성이 터진다.

그것도 마을을 앞에 두고 양 쪽으로 바다가 나뉘어 있는 것을 이전에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있었을까?

 

몽돌해안으로 가기 위해 숲길로 들어가는 두 갈래길이 있어

일부러 숲 쪽으로 가기위해 들어가다 길 끝에 내려가는 길로 리본이 있고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도록 보호막도 쳐 있어 따라가는데 문득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눈 앞에는 바위 절벽뿐. 마치 빠삐용이 탈출하기 위해 떨어진 그 절벽같다.

밑에는 바위 틈 사이로 파도가 치고..

어디로 가란 말인가. 왔던 길을 다시 가도 방향을 모르겠다.

그러다가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 가다가 문득 이 길은

일부러 이렇게 길을 길게 유턴하게 만든 코스였다.

 

마을이 발 아래 있다.

그런데 발 아래 색깔들이 다른 곳과 사뭇 다르다.

붉은 흙이 길게 이어져 있고 그 아래 푸른 시금치

밭을 보호하기 위해 덮어 놓은 흰 비닐이 이어지는데

마치 네델란드의 넓은 벌판에 핀 수출용 꽃밭같이 긴 띠를 이루고 있다.

 

마을에는 파란 바닷물에 어울리는 색깔의 지붕을 가진 집들이 모여있다.

다른 해안의 주택들과 다르게 비교적 정갈한 집들이 보기 좋다.

 

몽돌해안으로 내려오니 둥그런 바닷가 돌들의 실체가 보인다.

관광객들이 돌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써붙인 애교용 안내판 앞으로 펼쳐진 파란 바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데 파도가 동해안이나 서해안처럼 치지 않는다.

섬들이 많이 바람이 많이 불어도 큰 파도가 밀려 오지 않아

바다에는 잔 파도들만이 일렁이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남해바래길의 뜻을 이 곳에서 알았다.

"바래"는 옛날 남해 어머니들이 바다를 생명으로 여기고 가족의 생활을 위하여

바다가 열리는 물때에 맞추어 갯벌에 나가 파래나 미역 고동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는

적업을 말하며 그 때 다니던 길을 "바래길"이라고 한다.

 

몽돌해안을 걷는데 반가운 펜션이름 하나. 까미노.

눈 익은 조개껍질 이정표 심볼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가야지..가야지. 산티아고.

 

이 작은 동네에 어울리지 않은 큰 교회하나.

마을은 작은데 교회는 마을 사람들을 다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로 큰 것 같다.

 

마을을 벗어나 숲길로 다시 들어선다.

계절은 이미 겨울인데 이 곳 따뜻한 남쪽나라의 숲길은 아직 한참 가을이다.

와삭대는 낙엽들 그리고 아직 푸른 잎을 자랑하는 나무들과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들.

그리고 어디선가 이름을 들었을 법한 진보라빛의 넝쿨들까지..

 

멀리 아름다운 집들이 보인다.

긴 숲길을 따라가다가 옆에 정자에서 바라 본 바다는

그야말로 지중해의 바다를 연상케한다.

멀리 큰 상선과 컨테이너 캐리어들이 있는 곳은 아마 여수앞바다일 것이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 사마귀처럼 하나 솟아 있는 작은 섬. 이름하여 소치.

어떻게 저런 이름이 붙었을까? 지난 해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도시 이름인데..

 

날씨가 추우니 걷는 이들도 없다.

묘비하나 없는 공동묘지 사이를 지나며 마음이 안쓰럽다.

누구의 무덤인데 이렇게 초라하게 버려져 있을까?

묘비가 없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연고 없는 이들의 무덤일 것 같다.

 

해가 저물고 있다 길을 서둘러야겠다.

멀리 보였던 이쁜 집들의 실체가 보였다.

남해 빛담촌이라는 이름의 펜션촌.

집들이 모두 특색이 있다.

저물어가는 해의 남은 빛들이 모두 이 곳으로 모여 있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건물을 보고 나도 모르게 산토리니 라는 말이 나왔다.

요즘 무엇이던지 금방 기억이 안나 어려운데 어떻게 이 단어가 문득 터져나왔을까?

지중해의 섬 그리스에 유명한 산토리니.

그 곳의 건물을 카피하여 만든 예쁜 펜션이 바다를 향해 자리 잡고 있다.

이름도 똑 같은 산토리니.

그 사이에서 사진을 찍은 우리들 등산복의 거무튀튀한 복장이 어울리지 않았다.

 

승용차들이 자주 지나가는 길을 따라 가는 도로 옆에 예쁜 펜션들이 가득하다.

이런 곳에서 하루 묵으면 없던 사랑도 저절로 생겨날 것 같다.

바래길은 차들이 다니지 않는 언덕길로 걷게 하다 보니

바다를 바라보는 시야도 참 좋다.

바다는 바다대로 좋고 하늘에 낮은 산 위에 둥실 떠 오른 흰 달이 있어 좋다.

 

해가 점점 기울면서 산그늘이 서서히 덮힐 무렵

모퉁이를 돌아가니 땅거미가 진 가천마을이 보였다.

이태리의 친퀘레레처럼 언덕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는 듯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많고 사람들이 언덕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 곳이 어떤 곳이기에 사람들이 많을까?

우린 당장 숙소가 필요하기에 다른 사람 블로그에서 본

민박집들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곳을 찾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서 묵을지 골목골목을 지나다 보니 이 곳은 다랭이마을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 옛날 선조들이 척박한 생활을 극복하기 위해 산비탈을 깍아 밭을 만들고

농산물을 팔기 우해 지게를 지고 다녔던 길.

그들은 아직도 바닷가 언덕위에 여기 저기 작은 밭을 만들어 농작물을 기르고 있었다.

이 곳에 유명 탤런트이름이 걸린 카페도 있고 화덕피자를 굽는 곳도 있고

각종 먹거리들이 있는 식당들이 많았다.

 

민박을 알아보다가 마침 '즐거운 집' 이라는 깨끗한 펜션이 좋아

투숙을 결정하고 무엇을 먹을까 이집 저집 기웃거리는데 메뉴가 한결 같아

펜션에 취사가 되니 직접 취사를 위해 마트를 찾았지만 그마저 없어

주인 집에 가게를 물어보러 갔더니 마침 주인집의 아들부부가 부산에서

부모님 뵈러 와 저녁을 먹다가 차라리 우리와 같이 먹자며 부른다.

 

먹을 곳도 없어 없던 차에 넉살좋게 그 집 저녁상에 앉았다.

아들이 부산에서 사가지고 온 숭어회와 감성돔회 그리고 이 곳 특유의

물메기 지리탕을 먹으니 얼마나 저녁이 행복하던지..

 

밤별이 보고 싶었는데 추워서 엄두도 못내고 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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