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강원도 구시골 트레킹

carmina 2014. 7. 17. 21:43

 

강원도 구시골 트레킹 (2014. 7. 12)

 

지인이 모 여행카페에서 구수골 트레킹한다기에 신청한 후

인터넷으로 지명을 찾아보니 구수골이라는 이름이 많다.

구수는 소 구유를 말한다 하니 미국식으로 하면 펀치볼 지형이라 할까?

그러나 정식 명칭은 구시골같다

 

이 여행팀은 조직적으로 여행을 준비한다.

미리 답사가는 사람은 참가비를 제외해 주고

버스도 고급버스로 준비하며, 참가도 절대 선착순이고, 취소시 위약금도 낸다.

걸을 때도 앞 중간 뒤에 무전기를 들고 서로 연락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먹는 것도 다른 모임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즐긴다.

그리고 코스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고

트레커들이 좋아할 만한 코스를 선별하여 정기 걷기를 모집한다.

그래서 이 모임에 참석하면 모든 것이 안심이 된다.

 

주말까지 출근해야 하는 요즈음에 에어컨 가동하지 않는 휴일에 출근하면

도무지 근무가 어려워 그냥 이해해주겠지 하고 늦게 신청했더니

대기리스트에 있다가 막판에 추가되었다.

 

지난 밤 이른 열대야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새벽에 일어나 모임장소로 가는 것도 힘들고

버스를 탄 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자 둬야 하는데...하는 조바심속에서도..  

 

버스가 어디론가 고속도로를 향해 가다가 희뿌연 아침 안개가

가득한 강을 지나 가평 톨게이트로 빠진다. 그리고도 한참 주행.

창가로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선을 보자마자 하차하여 산행 준비를 한다.

여기가 어딘가? 도무지 모르겠다.

 

오늘 코스는 모임의 회원 중 중 야영생활하는 이가 추천하였다며

나무가 우거진 숲길 만을 걷는다 한다.

준비운동을 한 뒤 요즘 등산객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야생진드기 보호를 위해 

몸 전체에 소독약을 미리 뿌려주기도 했다.

 

약 30명이 넓은 임도를 따라 걷는다.

몇 명은 산악자전거를 타고 훌쩍 날아가고 우리는 느림의 미학을 즐긴다.

 

우리를 안내하는 이는 4륜구동 짚차를 타고 먼저 달려가 길이 갈라지는 곳에

차를 세우고 다시 역으로 걸어와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배려한다.

원래 지방 자치기관에서 정해진 트레킹 코스가 아니라 이정표라는 것은 없다.

단지 길이 좋아 걸을 뿐이다.

 

나무 사이로 아득히 멀리 보이는 곳에 강이 구비 구비 흐르고 있다.

이 곳의 나무들은 주위를 둘러 보아도 병든 나무가 없이 푸르름만 가득하다.

빼곡이 들어서 있는 소나무들이 전혀 사람들의 손이 가지 않은 듯 하다.

단지 다듬어 놓은 것이라면 차가 한 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을 만들어 놓은 것 뿐.

 

평소 사람이 다니지 않았음직한 길을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이 꼭 꼭 밟아 나간다.

차만 다닌 길이라 길 가운데는 풀들이 무성한데 바퀴가 닿는 곳은 모두 흙이 들어나 있다.

그 자리에 풀이 전혀 없는 것을 보니 많지는 않지만 차가 풀 자랄 사이도 없이 다니나 보다.

 

산 딸기가 익어간다. 나뭇가지를 헤쳐 하나 따서 먹어보니 아직 맛이 덜 들었다.

그래도 씁쓸한 맛과 입 안에 닿는 까칠한 느낌이 좋다. 사람들이 손에 가득 산딸기를 들고

맛보라며 주기에 몇 개를 입에 털어 넣으니 신맛이 가득 찬다. 좋다.

 

거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인지 길 옆에는 칡이 가득 퍼져 있다.

누군가 칡꽃을 꺽었다며 자랑한다. 개복숭아가 주렁 주렁 매달렸지만 따는 이가 없다.

 

앞서가는 남자가 길가에 피어 있는 갖가지 꽃들을 하나씩 모으더니 한참 뒤에

커다란 야생화 꽃다발을 만들었더니 모두 감탄하며 한 번씩 품에 안고 사진을 찍는다.

야생화 꽃다발을 든 나이든 여인들의 모습이 꽃 만큼이나 아름답다.

 

멀리 보이는 곳에 골프장이 아주 작게 보인다.

비록 숲을 훼손하여 만든 곳이지만 먼 곳에 그런 깨끗한 잔디가 있음이 좋다.

남들은 내 사회생활 수준에 골프를 치지 않는다고  뭐라 하지만 내겐 그런

남과 경쟁을 위한 레저보다 혼자 묵묵히 땀흘리며 걷는 이 기쁨이 좋다.

앞으로도 내게 골프는 없을 것 같다.

 

길을 내기 위해 산 허리를 깎았는지 비탈진 경사 꼭대기에 나무 한 그루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서 있다. 비라도 한 번 오면 무너지지 않을까?

 

삼삼 오오 웃으며 걷는 이들. 대개 여자들은 이렇게 걸으면 부엌의 일들을 이야기한다.

맛있는 김치 담그는 법, 과일주나 효소 만드는 법, 등등

그런데 도심 속 유명 카페에 모여앉은 아낙들처럼 부동산이나 아들 자랑들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좋다.

 

잠시 쉬는 시간에 내가 노래를 하고 처음 보는 깨끗한 피부의 여자가 부채를 손에 들고

판소리를 한바탕 구수하게 쏟아낸다. 자연속에선 언플러그드 음악이 좋다.  

 

끝없이 폭이 같은 길을 걸으며 조금 밋밋해 보이지만 눈을 들면 울창한 나무들이

가득한 숲이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나무가 저렇게 울창하게 자랄려면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하나. 아마 625동란때 황폐했던 산들이 아버지대의 선조들의

노력으로 이렇게 된 것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능선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산 너머에 예쁘게 만들어 놓은 캠핑장에 도시에서 온 차들이 옹기 종기 모여있다.

편한 여행. 그것도 좋다. 그치만 땀흘리며 걷는 우리 모습은 더 보기 좋다.

 

오늘의 여정 속에는 이제껏 해 보지 않았던 프로그램이 있다.

홍천강에서 카약타기. 그래도 오늘은 샌들형 등산화를 신고 왔고

일부러 갈아 입을 옷도 챙겼다.

 

조용한 마을 지나가니 봄에 심어 놓은 벼들이 뜨거운 태양빛 속에 파랗게 익어가고

옥수수도 그 기세에 눌릴세라 두툼한 옥수수 자루를 자랑하고 있다.

 

고속도로 밑에 만들어진 길고 둥근 터널을 지나면서 이태리 가곡 오 솔레미오를

크게 외쳐 부르니 내 노래에 커다란 공간이 커다란 울림으로 화답을 하고 있다

 

강이 보인다. 갑자기 어디선가 비명이 들린다.

무슨 소리일까? 줄 지어 주차되어 있는 차들 사이로 모터보트 뒤에 달린

커다란 고무보트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고무보트가 거의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공중에 떠 달리니 그리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고 있다.

 

조용한 산 속에서 내려와 요란한 기계음을 들으니 갑자기 다른 세계에 온 듯하다.

하얀 물보라를 내고 달려가는 모터 보트 뒤에 스키를 신은 사람인 물고기처럼 유영하고 있다.

차들이 줄지어 서있고 많은 차들이 지붕에 보트를 싣는 장비가 갖추어져 있다.

멋지게 사는 사람들.. 그들도 멋지고 산 하나를 둘레 둘레 걸어 온 나도 멋지다.

 

이 곳에 대형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회원이 있는 곳에 들어가

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카약을 타고 싶은 사람만

약 4키로 떨어진 강변을 따라 배바위라는 곳으로 걸어갔다.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 날씨가 더워서 인지 빈 몸으로 걸어가는데도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배바위는 강 한 복판에 아주 커다란 바위 두개가 이어져 있는데

멀리서 보면 커다란 배같이 보이고 그 위에 큰 소나무 2그루가 있어

방송에서 애국가나 나올 때 보이는 영상 중의 하나라고 누군가 알려 준다.

 

한 참을 기다리니 모터 보트가 날렵하게 생긴 카약을 줄을 지어 가지고 와

카약 타는 법을 알려 준다.

 

앞과 뒤에서 노를 젓는데 배가 제대로 앞으로 가는 법,

그리고 카약이 자꾸 옆으로 갈 때 방향 잡는 법을 알려 준다.

생전 처음 타는 카약. 앞에 타는 처음 보는 분도 겁이 나는지

뒤도 안 돌아 보고 열심히 노를 젓는다.

나는 뒤에 타고 노를 저으면서 방향을 제대로 잡는 법을 알고부터는

내 입에서 온갖 강에 대한 노래가 흘렀다.

 

그러다가 옆으로 모터 보트가 지나가면 파도가 쳐서

우리 배가 출렁대니 카약이 쓰러질까봐 겁이 난다.

물론 구명 조끼는 입었지만  앞의 분도 겁을 내는 것 같다.

 

한 30분 정도를 타고 내려가 카약을 반납하고 텐트로 돌아 오니

먹음직스러운 통삼겹 바베큐가 준비되어 있다.

캠핑동호회 몇 분이 바베큐를 준비해 주었는데 여느 요리와 상당히 달랐다.

어쩌면 이렇게 구울 수 있을까?

고기도 맛도 있고 곁들이는 묵은 김치를 싸 먹는 맛은 더 신비하다.

 

비록 조금 밋밋한 길을 걷기는 했지만

자연 속을 걷고, 맑은 물위에서 배타고, 맛있는 고기를 먹고,....

 

오늘은 하룻동안에 많은 일을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절대 할 수 없는 일들..

 

어쩌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문짝이 부서져

문 떼어내고 먼 길을 달려 집으로 왔다.

 

 

 

 

 

 

 

 

 

 

 

 

 

 

 

 

 

 

 

 

 

 

 

 

 

 

 

 

 

 

 

아래의 몇 장 사진은 카페에서 퍼옴.

 

 

 

    

'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 > 여기저기 코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 바래길 2일차  (0) 2015.01.07
남해 바래길 1일차  (0) 2015.01.07
한강변 걷기 2  (0) 2014.05.11
한강변 걷기  (0) 2014.05.11
인천대교 걷기  (0) 2014.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