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남해 바래길 3일차

carmina 2015. 1. 7. 23:22

 

 

2015. 1. 3

 

게스트 하우스 뒤의 낮은 산.

그러나 아침부터 허위대며 올라가보니 눈 앞에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움에서 깨어나지 못한 섬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이미 바다는 시뻘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양 옆으로 새가 날라가듯이 구름이 활처럼 퍼져 있고

그 구름들까지 물들고 있다.

해가 떠오르면서 바람을 세게 불면서 오는지

구름도 바람에 날라가는 듯한 모습이다.

 

이렇게 멋진 일출을 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름답다. 참으로 아름답다.

비록 매일 보는 해이지만 태어나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새 생명이 태어날 때의 신비함이 가득하다.

카메라 기능을 석양모드로 조절하니 사진의 색깔이 달라진다.

아스라히 먼 점위에 무언가 살짝 비치는가 싶더니 시뻘건 태양이 떠오른다.

비록 주위에 구름이 많아 원같이 둥그런 모습은 아니지만

해가 솟아 오르는 부분은 어릴 때 아버님이 일하시던 용광로의 쇳물같은

빛깔로 천천히 떠오르고 있다.

 

뒤를 바라보니 높은 바위산에 작은 암자가 보리암이라 한다.

같이 올라 온 태국인은 저 곳에 가 보았다며 주로 한국의 절을 찾아 다닌단다.

 

잠깐사이에 해는 바다가 밀어내듯이 급격히 커지고  구름은 더 벌겋게 타오른다.

송창식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위에 이글거리나

피맺힌 투쟁의 흐름속에

고귀한 순결함을 얻은 우리 위에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앞길에서 훤히 비치나

찬란한 선조의 문화속에

고요히 기다려온 우리 민족앞에

숨소리 점점 커져 맥박이 힘차게 뛴다

이땅에 순결하게 얽힌 겨레여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올해 내 모습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저 태양처럼 늘 한결같으면 좋으련만 단지 바램일뿐이다.

작은 흔들림에도 내 생활은 출렁거리고

변화가 생기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부디 저 태양같이 그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하루를 돌 수 있기를 바란다.

 

친구와 아침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피곤한 주인이 잘 때 살짝

배낭을 메고 게스트하우스를 빠져 나왔다.

 

바래길 3코스 구운몽길을 상주은모래비치로부터 벽련마을을 향해 역으로 걷는다.

어제 산책할 때도 바래길 이정표를 보지 못했는데

분명 상주해수욕장으로 끝에 쯤에 표시가 있을 것 같아

아침 바닷가를 걷는데 이상하게 이정표가 없다.

 

길을 가다가 멋진 외국개와 산책나온 아주머니에게 바래길을 물어보니

자기는 여기에 펜션을 낸지 10일 되었다며 바래길을 모른다.

그럴 수 있나? 자신이 사업하겠다고 자리잡은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장사를 시작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백사장이 끝나는 곳에 길도 이어지지 않기에

인근 마트에 들어가 바래길을 물으며 벽련가는 방향이 저기 보이는 길이

아니냐며 언덕을 가르켰더니 그 길은 끊겨 있단다.

벽련가는 길은 아까 우리가 일출을 보기 위해 올라갔던 쪽으로 가야한단다.

지금 무슨 얘기하는거야?

다시 다른 마트로 가서 물었다.

나이든 할아버지가 바래길은 큰길 따라서 가다보면 큰 운동장이 있는데

그 곳으로 가야 한다기에 또 그 곳으로 찾아갔으나 역시 바래길은 아니었다.

 

어제 안내센터의 여자분이 길을 물을 때 동네 사람들보고 묻지 말라 했는데

충고를 무시하고 물어 본 내가 잘못이다.

 

결국 게스트하우스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차를 가지고 와서는

길이 없다는 곳까지 태워 준다. 아스팔트 도로가 끝나는 그 곳에 바래길 리본이 달려 있다.

 

그리고는 조금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며 알려 주기에 고맙다고 하며

내려가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아저씨가 우릴 부른다.

잘못가고 있다고..

우리가 길을 잘 못 갈까봐 그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 보고 있었나 보다. 고마운 사람.

어제 저녁에 먹은 회와 고깃값도 받지 않더니 이런 배려하는 마음도 있네.

 

숲길로 간다.

1코스와 2코스에서 보던 잘 만든 이정표는 없지만 리본이 가끔 달려 있고

길은 외길이라 찾기 쉬웠다.

 

아침바다에 찬 바람이 분다. 옷 사이로 쌀쌀한 냉기가 스며든다.

그러나 그것도 가파른 산을 올라가느라 금방 잊었다.

여름에 왔으면 숲이 우거졌을 그 곳에는 앙상한 나무만 가득하다.

그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산소를 보며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았다는 부러움보다는

이 곳에 산소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생각났다.

 

힘들면 멈추어 서서 바다를 구경하기를 몇 번하며 한 참을 올라가니

그 높은 곳에 세멘트 도로가 이어졌다. 이제 산의 반대편으로 온 것 같다.

그런데 이정표가 없어 갈래길에서 계속 머뭇거리게 된다.

 

출력해 온 3코스 안내도에는 이 근방에 일몰 전망대가 있다는데

어느 곳인지 표시를 해 놓지 않았다.

 

산 언덕에 흰 뱀같은 길이 길게 이어졌다. 오가는 사람도 없고

갈색과 소나무의 옅은 푸르름외에는 원색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산 아래 마을도 무채색이다.

어제 종일 보아오던 예쁜 집들은 다 어디갔는지..

 

지도에는 비룡계곡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이정표가 없으니 어디가 비룡계곡인지 모르겠다.

 

이제 대량항을 향해 걷는다.

마을 입구에 길이 갈라지는 곳에 이정표가 없어

아주머니가 시금치를 캐고 계시기에 길을 물으니 역시 잘 모르신다.

 

이제는 감각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산꼭대기에서 더워서 벗었던 자켓이 산 아래 내려오니 다시 추워졌다.

대량항의 마을표식이 보였다.

조용히 잠들어 있는 마을.

어촌에 들어오고 나가는 배도 없다.

 

대량마을에서 소량마을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 길이다.

가끔 커브길을 갈 때는 차를 조심해야 한다.

해변을 따라 가는 길이 이 곳 밖에 안 되는 것을 지형을 보고도 알 수 있었다.

해안을 따라 가파른 언덕 위에 도로를 만들어 놓았으니 그 아래는

걸을만한 코스를 만들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곳은 집집마다 빨래 널듯이 물메기를 넣어 놓고 있다.

어제 밤 그제 밤에도 먹어 본 물메기탕 맛이 아직도 입에 감돌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생선 살이 부드럽게 솜처럼 풀어지는지 입에 넣으면

솜사탕 먹는 것 같다. 그냥 물만 넣고 끓였다는데 국물맛이 참 시원했다.

 

요즘은 어촌이나 농촌을 가도 집집마다 벽을 그냥 두지 않는다.

어제 가촌마을도 그랬고 여기도 집집마다 대형 벽화를 그려 놓았다.

이제껏 많은 벽화를 보았지만 소량마을에 있는 어느 집의 벽화는

그야말로 절의 단청처럼 알록달록한 벽화를 그려 넣었다.

 

소량마을에서 다리를 넘어 드므게마을로 넘어 가는 길에

마을 입구에서 어떤 아저씨가 시금치를 캐고 있는 것을 보더니

친구가 갑자기 이 곳의 시금치 맛이 궁금했던지 아저씨가 캐고 있는

시금치를 5000원어치를 샀는데 배낭이 가득 차도록 양이 많았다.

 

이 곳에 오니 다랭이 마을임을 실감나도록 비탈길마다 층층이

밭을 만들었다. 시금치나 파 등은 굳이 물을 주지 않아도 잘자라기에

저렇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이 곳에서 드므게마을가는 길은 온통 숲길이다.

그것도 아주 깊은 숲.

사람하나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길.

나무 사이를 비집고 다녀야 할 정도이고

사람의 흔적이 별로 없어서인지 낙엽이 많이 쌓여

때론 낙엽에 발이 푹 빠진다. 그러다 발이 삐끗했다.

다행하게도 그리 아프지 않아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에

잊었던 통증이 온다.

 

한참을 걸어서야 숲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바로 앞에 이번 여행의 끝인 벽련마을이 보였다.

어느 집 담벼락 안에 탱자가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다.

 

파란 바다가 펼쳐져 있다.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 바다.

벽련 마을의 어느 식당에 이런 글이 써 있다.

야채는 심고, 고기는 잡고...

신선한 것만으로 음식을 만든다는 말이다.

벽련마을에 너와집으로 되어 있는 펜션이 보기 좋다.

 

벽련마을에 버스가 어디서 서는지 몰라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오가는 마을 사람이 없다.

 

큰 길에 올라가 버스 정류장을 찾아 시간을 보니 버스가 자주 있지 않아

안내센터에 물어 보니 고맙게도 직접 차를 가지고 왔다.

식사때가 되었기에 바래길의 별미인 멸치정식으로 점심을 같이 했다.

멸치회는 직접 잡히는 어촌외에는 먹기가 힘들다.

부산의 기장에서 먹던 멸치 무침을 맛있게 먹고

남해읍까지 데려다주는 길에 탈 박물관에 들러 잠시 구경하고

긴 긴 고속도로를 달려 집에 오니 지난 3일간의 여행이 꿈만 같다.

 

3일간 찍었던 사진을  큰 TV로 다시 보면서 나는 다시 바래길을 걷는다.

 

이 길을 꽃이 피는 봄이나 여름에 아니면

단풍이 좋은 가을에 걸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또 한 번 오고 싶은 생각이 내 마음에 강렬하게 꽂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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